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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5일 금요일

교과서에서 ‘시조새’ 뺀다고? “한국 실망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15일자 기사 '교과서에서 ‘시조새’ 뺀다고? “한국 실망이야”'를 퍼왔습니다.

출판사 상상아카데미가 발간한 고교 과학교과서의 시조새 화석 사진. “1861년 독일의 조른 호펜의 석회암에서 최초로 발견됐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뉴스쏙] ‘한국, 창조론자들 요구에 항복’ 파문

영국의 과학저널 와 미국 시사주간 등이 창조론자들의 요구로 한국 과학교과서에서 진화론을 설명하는 시조새 등이 삭제된다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내 파문을 일으켰다. 진화학계에서는 창조론자들의 요구가 학문적으로 맞지 않다고 반박하며 삭제에 반대하는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네이처 ‘삭제방침’ 보도뒤
“지적수준 높은 한국에 실망
”외국서 빈정·우려 글 잇따라

진화론개정추진회 삭제 청원에
진화론자들 항의 청원
“개정추진회, 학문 흐름 왜곡”

“세계적으로 개인의 지적 수준이 제일 높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벌어진 이번 일은 무척 실망스럽다.”(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카) 기사 댓글)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가 지난 5일 ‘한국, 창조론자들 요구에 항복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뒤, 외국에서 우려하는 댓글들이 잇따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러 차례 우리나라 교육을 모범사례로 추켜왔던 터여서 “미국이 커져서 이동했나보다” 등 빈정 섞인 글들도 눈에 띄었다.
미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종교적 배경의 일부 학자들이 진화론을 부정하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그 주장이 정부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은 처음이다. 가뜩이나 종교 편향으로 구설에 오른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시선이 곱지 않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출판사 교학사가 발간한 고교 과학교과서에 실려 있는 말의 화석계열 그림. 말이 몸집이 커지고 발굽 숫자가 줄어드는 쪽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2월5일 교육과학기술부에는 한 통의 청원서가 접수됐다.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2011학년부터 국내에서 사용하는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의 ‘시조새’에 관한 기술 내용이 학술적으로 잘못된 것이므로 삭제해달라”는 것이다. 청원을 한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는 홈페이지에서 “생명과 물질 및 우주의 기원을 진화론적 세계관으로 진리를 호도하고 있는 진화이론의 허구를 집중 분석해” “진화론은 법칙이 아닌 가설임을 기재”하도록 하는 것을 최소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진추는 청원에서 7종의 고교 과학교과서들 중 일부가 ‘시조새는 파충류로부터 조류로 이행하는 중간종’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해 최신 학계의 흐름을 반영하지 않고 있어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진추는 “화석기록에 시조새를 포함해 어떤 중간종도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등 저명한 학자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삭제가 어렵다면 “1984년에 열린 국제시조새학술회의가 시조새를 ‘멸종한 조류’로 공식 선언한 사실, 시조새 화석에 대한 조작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함께 소개해야 한다고 교진추는 덧붙였다.
교과서 발행사들이 시조새 관련 내용을 삭제·수정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은 사실이 알려지자 진화학계에서는 “교진추의 청원 내용 자체가 학계의 주장과 학문의 흐름을 왜곡한 것”이라며 과학교과서의 시조새 삭제를 반대하는 청원을 잇따라 접수했다.
반대 청원은 국제시조새학술회의가 시조새가 현대조류의 직접적 조상종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은 시조새로 현대조류의 기원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수각류(두발로 달리는 공룡의 일종)로부터 조류가 기원했다는 주장을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굴드는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급속히 변화하는 시기와 변동이 거의 없는 안정기가 구분된다는 ‘단속평형설’을 펴면서 안정기를 표현하기 위해 ‘종의 정지 현상’을 얘기했는데 마치 굴드가 중간종을 부정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것이다. 진화학계는 교진추가 시조새 화석에 대한 조작 논란의 근거로 든 영국 프레드 호일 등의 주장 또한 사진만을 보고 내린 결론으로 실제 화석 학자들이 재분석해 위조가 아니라고 밝힌 사실을 들어 반박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교진추는 올해 3월26일에도 ‘말의 진화계열은 상상의 산물이다’란 제목의 청원을 내어 “일부 교과서가 싣고 있는, 말의 몸집이 커지고 발가락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설명과 화석계열 그림은 미국 교과서에서도 삭제됐다”며 “굴드 등이 말의 점진 진화는 학술적으로 불가능하며 상상의 산물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화학계는 “굴드 등은 말의 발굽이 4개에서 1개까지 직선적으로 진화했다고 한 계열 그림을 상상의 산물이라고 비판한 것인데 마치 진화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시조새와 말의 진화계열을 진화의 증거로 삼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교진추 쪽에서 진화학계 내부의 논쟁을 마치 진화론을 부정하는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교과부 안이한 대응이 파문 불러…뒤늦게 “전문가 의견 묻겠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입학한 신입생들은 2009년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융합형’ 과학교과서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과학 교육과정은 교과서를 제1부 ‘우주와 생명’, 제2부 ‘과학과 문명’으로 나누어 만들되, 1부에서 ‘생명의 진화’를 다루도록 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한국과학창의재단(창의재단)이 개발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교육과정은 진화와 관련해 서술해야 하는 주요 골격만 제시한다”며 “출판사들이 낡은 근거들을 가져다 쓰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시조새 삭제·수정’ 파문은 2009년 고교 과학교과서의 발행체계가 ‘검정’에서 ‘인정’으로 바뀌면서 교과서 수정 절차가 느슨해지고 교육과학기술부가 안이하게 대처해 불거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정교과서는 국정교과서나, 검정교과서와 달리 출판사가 집필해 시·도 교육청에 인정 심사 요청을 하면 큰 틀에서 주요 사항을 점검해 승인해준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가 ‘진화론 개정’ 청원을 넣은 것은 이런 빈틈을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경숙 교과부 수학교육정책팀장은 “국민 신문고를 통해 청원이 들어오면 해당 기관은 1~2주일 안에 응답해줘야 해 출판사를 통해 답변을 보내줬다”고 했다. 교학사는 이미 올해 3월 새로 발행한 과학교과서에서 시조새 그림을 삭제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는 “교육과 학문을 책임지는 교과부가 진화학 전문가들에게 한마디 문의도 없이 일을 처리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동원 창의재단 교육과정개발실장은 “교진추 청원에 대한 반대 청원에 대해서는 진화생물학자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로 하고 관련 학회에 전문가 추천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그 논문에는 내 이름이 있어야 했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06-04 일자(제913호) 기사 '그 논문에는 내 이름이 있어야 했다?를 퍼왔습니다.
[이슈추적]  표지 실려 화제된 논문 연구 참여 대학원생의 “실험 데이터는 내 것” 주장으로 논란 가열… 한국판 ‘조슬린 벨 버넬 사건’인가, 연구 업적 둘러싼 권력 투쟁인가

» 지난 5월10일치 <네이처> 485호 표지에 실린 ‘균열 제어를 통한 형태화’(Patterning By Controlling Cracking) 논문의 샘플

1967년, 24살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던 조슬린 벨 버넬은 전파망원경에서 규칙적으로 잡히는 우주 전파를 발견했다. 그는 지도교수인 앤터니 휴이시 교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휴이시 교수는 “망원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 신호는 새로운 펄서(Pulsar·천체)가 내는 것이었다. 버넬은 펄서의 최초 발견자였지만, 그 발견을 다룬 논문에서는 휴이시 교수에 이어 두 번째 저자에 올랐다. 1974년 휴이시 교수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때 수상자에서는 제외됐다.
지금은 유명한 이 이야기는 과학계에서 교수-대학원생 사이의 공로 논란에서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도 이른바 ‘버넬 사건’과 닮은꼴의 논란이 일고 있다. 이공계 연구자들이 논문을 싣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하는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에 오른 논문을 둘러싼 공방이다.
‘레미콘 회사 전전하다 유학’ 인생역정 화제
논란의 중심에 있는 논문은 지난 5월10일치 (네이처) 485호 표지 논문으로 실린 ‘균열 제어를 통한 형태화’(Patterning By Controlling Cracking)다. 남구현(33)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와 고승환(38) 카이스트 교수(기계공학)가 공동 교신저자(연구 전체를 책임지는 사람)로, 박일흥(55) 이화여대 교수(물리학)가 제2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은 물체에 균열을 가게 한 뒤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추도록 하는 기술을 담고 있다. 논문에서는 균열을 제어해 글씨를 쓰기도 했다. 이 기술은 차세대 반도체와 바이오칩 등 나노채널에 응용하면 제작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논문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내 연구팀만으로 (네이처) 표지로 뽑힐 정도의 논문을 썼다는 것도 큰 성과였지만, 공동 교신저자 가운데 한 명인 남 교수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레미콘 회사 등을 전전하다가 미국 유학을 떠나 고생 끝에 큰 성과를 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도 한몫했다.
그런데 이 화제의 논문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연구팀이 국내 언론에 논문 성과를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기 하루 전인 5월8일 저녁,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 게시판에 뜬 글 때문이다. “남 교수가 내 실험 결과를 빼앗아갔다”는 내용의 글에는 관련 자료가 파일로 첨부됐다. 글쓴이는 이화여대 물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전아무개(28)씨. 제2저자인 박 교수가 그의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전씨는 지난 5월16일에도 아고라 게시판에 글과 첨부파일을 올렸다. 두 차례 글을 통해 전씨는 “ 표지 사진을 포함해 논문에 실린 14개 샘플 가운데 10개가 내 샘플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 연구 주제를 생각하고 제안한 이는 남 교수이지만, 실험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연구노트에 기록하고 교수님들에게 보고를 드린 것은 나”라며 논문 저자에 자신을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전씨는 “논문의 최대 성과인 뾰족한 바늘 모양 패턴으로 균열이 시작하고, 계단형 패턴에서 멈추게 하는 것이 내가 직접 발견하고 구현한 결과”라는 주장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연구노트 등의 자료를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제출했고, 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네이처)에도 논문 저자 수정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전씨가 한 일이 논문 저자에 오를 수준의 역할은 아니다”라며 전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균열은 미국에서 박사과정 중이던 2007년부터 연구해온 주제로, 이미 내가 구체화해놓은 실험 조건과 재료 등을 전씨에게 제시하고 그에 맞춘 결과물을 얻은 것”이라며 “전씨의 연구노트에는 이러한 결과물이 담겨 있으며, 관리자였던 내가 연구노트에 확인하고 서명해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논문의 ‘감사의 글’(Acknowledgements)에 전씨 이름을, 연구에 참여했던 다른 카이스트의 대학원생들 이름과 함께 올렸다.

» <네이처>에 실린 논문 내용.

“실험 모든 과정 진행” vs “패턴 발견도 판단 못해”


남 교수는 전씨가 주장하는 균열의 시작과 정지 패턴에 대한 발견에 대해 “사진 촬영은 전씨가 한 것이 맞지만, 발견 자체는 내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씨가 가져온 샘플을 남 교수가 살펴본 뒤 전씨에게 해당 부분을 집중 촬영하도록 지시하는 등 전씨는 보조 작업에 그쳤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당시 전씨는 균열 패턴의 발견 여부조차 판단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공로를 인정해달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내가 제시한 조건으로 얻어낸 샘플을 단지 전씨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떻게 자신의 샘플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남 교수, 전씨와 함께 한 공간에서 연구해온 제2저자인 박 교수의 말은 달랐다. 박 교수는 “앞서 균열의 이론적 배경과 재현 등을 담은 논문을 준비했는데, 남 교수가 (네이처) 편집자와 수정 작업을 거쳐 전씨의 실험 결과가 대부분인 논문으로 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전씨가 기여한 바 없어 저자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는 남 교수의 설명을 듣고 넘어갔으나, 뒤늦게 전씨가 이의를 제기해 알게 됐다는 것이다.


논문을 둘러싼 저자 공방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한 연구소 안에서 (네이처)에 실릴 수준의 논문을 쓴다는 것을 전씨가 모르고 있다가 논문 최종 발표를 앞두고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 그리고 저자로 참여한 전씨의 지도교수인 박 교수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는 점 등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상황을 이해하려면 남 교수의 국내 연구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 교수는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2010년 1월부터 이화여대로 왔다. 그는 공동 교신저자인 고 교수의 연구팀이 있는 카이스트에 합류해 논문 주제에 대한 연구를 하려 했지만 경력이 모자라, 박 교수의 ‘이화여대 초미세전기기계시스템(MEMS) 우주망원경 창의연구단’에 계약직 특임교수로 합류했다. 행정상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를 맡았지만, 실제로는 박 교수의 연구단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합류 당시 남 교수는 박 교수에게 “와 에 쓸 주제가 각각 1개씩 있다”고 말했다 한다. 연구는 고 교수의 카이스트팀과 함께 시작했고, 박 교수도 참여했다. 연구비는 박 교수의 한국연구재단 창의연구자사업과 고 교수의 교육과학기술부 중견연구자사업, 일반연구자사업에서 나왔다. 박 교수의 제자인 전씨는 2010년 3월부터 남 교수의 연구에 참여했다.


그러나 남 교수는 그해 말 연구단의 대학원생들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마찰을 빚는다. 그 뒤로 남 교수는 전씨와 하던 연구도 중단했다. 전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남 교수가 자신의 결과물을 수거해갔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실험 결과의 압박이 심했는데 전씨가 하는 작업의 진척이 더뎌서 카이스트 연구팀에 넘겼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로도 남 교수 등 저자 3명의 논문 연구는 계속됐다. 2011년 5월께 에 제출하기 위한 논문 초안을 작성했다. 최종본은 그해 말 제출됐다. 남 교수는 (네이처)에 논문이 실리는 것을 통보받은 직후인 지난 3월, 박 교수에게 사직서를 냈다. 사직서는 현재까지 수리되지 않았다.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 진행


남 교수와 고 교수는 전씨가 문제제기를 한 배경에는 연구진 사이에 교신저자를 두고 벌어진 갈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두 교수는 논문에 저자가 어떻게 실릴지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전씨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뒤늦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고 교수는 “실제로 연구에 큰 기여를 하지 않은 박 교수가 (네이처) 논문 게재가 최종 결정된 2월 말~3월 초까지도 자신을 교신저자로 넣어달라고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네이처)편집자에게 문의해서 ‘3명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는데도, 박 교수는 남 교수에게 교신저자 자리를 양보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또 “‘감사의 글’에 ‘창의재단’만 써야 한다는 등 무리한 요구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가 한국연구재단 창의연구자사업의 2단계 평가와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천문학 분야 기초과학연구단장 지원에 의 교신저자 논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남 교수도 “박 교수가 교신저자를 끊임없이 요구해와 사직서를 냈다”고 말했다.


남 교수와 고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박 교수는 “이미 창의재단 평가는 올해 초 잘 받았고, 연구윤리 문제에 나를 끌어들이는 것은 본질을 흐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전씨는 “위원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박 교수와 전씨는 5월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열린 논문 성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저자 문제를 항의하려 했으나, 출입 신청을 미리 하지 못해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이화여대는 지난 5월11일 전씨의 소명서와 연구노트 등을 접수해, 본건의 조사 여부를 가리는 연구진실성위원회 예비조사를 벌여왔다. 지난 5월22일 부정행위 등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본조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5월25일 오후 남 교수를 불러 전씨의 주장에 대한 소명 절차를 진행했다. 남 교수는 “전씨의 실제 역할을 입증할 문건이나 전자우편 등 소명 자료가 충분히 있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씨가 한국판 ‘조슬린 벨 버넬’이었는지, 아니면 (네이처) 논문을 향한 과욕으로 한 과학자의 얼굴에 먹칠을 하려 한 것인지 아직은 확언할 수 없다.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2012년 6월 8일 금요일

“지구환경 생물학적 한계점… 재앙 급습 머지않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07일자 기사 '“지구환경 생물학적 한계점… 재앙 급습 머지않다”'를 퍼왔습니다.

ㆍ유엔환경계획 보고서 경고 “국제사회 빨리 대처해야”ㆍ네이처는 “수십년내 변화”

지구가 대규모 재앙의 티핑포인트(예기치 못한 일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극적인 변화의 시점)로 다가서고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인류가 서둘러 공동대응할 것을 촉구하는 이런 경고는 오는 20~2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유엔 리우+20 지구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6일 발표한 ‘제5차 지구환경 전망’ 보고서에서 “지구 환경이 생물학적 한계점에 다가가고 있다”며 “한계에 도달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3년 동안 연구진 300명이 참여해 만든 525쪽짜리 이 보고서는 “인구증가와 지속불가능한 경제성장으로 지구 생태계가 재앙과도 같은 변화를 갑작스레 맞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척추동물 20%는 멸종 위기를 맞고 있고, 산호초 38%는 1980년 이래 사라졌고, 물과 어류 표본의 90%는 살충제에 오염돼 있다. 보고서는 바다 수위가 오르고, 홍수와 가뭄이 자주 일어나고, 물고기 씨가 마르는 것이 재앙의 조짐이라고 경고했다.

아킴 슈타이너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은 “스무 해 전인 1992년 UNEP가 첫 보고서에서 우려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환경재앙의 ‘티핑포인트’에 도달하기 전에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만든 환경개선 목표는 90개지만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목표 3분의 1이 지난 5년 동안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슈타이너 사무총장은 이번 보고서를 “(국제사회의 무책임에 대한) 기소장”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저명 과학자들도 지구가 티핑포인트로 치닫고 있다는 전망에 동참했다. 앤서니 바노스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를 비롯해 생물·생태·복잡계이론의 저명한 과학자 22명은 네이처 기고문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저명 과학자들은 기고문에서 “생태계 붕괴가 몇 세대 안에 벌어지면서 금세기 말 지구가 지금과는 매우 다른 장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기후변화와 인구폭증, 환경파괴로 생태계가 빠르고도 불가역한 변화를 겪게 되고, 인류도 이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주류 과학계는 이 같은 변화가 수세기에 걸쳐 느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해온 반면, 이들의 연구 결과는 수십 년 안에 환경재앙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경고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저명 과학자들은 기고문에서 2025년까지 인구가 현 70억명에서 93억명으로 늘고, 지구온난화가 유엔 목표치인 섭씨 2도보다 더 웃돌면 전체 생태계가 예전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 인류의 토지사용비율이 현재 43%에서 50%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면서 환경변화 ‘티핑포인트’에 근접한 시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과학자들은 “앞으로 50~100년 후 지구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우리의 희망”이라면서 “우리는 가만히 손놓고 앉아 자녀세대가 지금보다 나쁜 환경에 살도록 둘지, 아니면 행동을 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33살 한국교수 ‘네이처’ 표지 장식하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0일자 기사 '33살 한국교수 ‘네이처’ 표지 장식하다'를 퍼왔습니다.

균열현상 역발상 연구로
나노채널 만드는 데 성공
반도체·생명공학계 눈길
부친 사업 망해 대학 포기
버클리대서 5년만에 박사
“자랑하고 싶어 혼났어요” 

순탄치 않은 삶을 걸어온 30대의 젊은 교수가 과학계에서 일생에 한번 논문 저자로 등록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여기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에 표지논문을 실었다.
남구현(33·사진)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 특임교수는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 석사과정 때, 어떤 물질에 규칙적으로 금이 간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물질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여기며 피할 방법에만 골몰하는 ‘균열’ 현상을 놓고 발상의 전환을 했다. 균열을 일부러 만들고 원하는 방향으로 금이 가게 한 뒤 멈추고 싶은 곳에서 정지시키는 방법을 찾으면 유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5년이 흐른 뒤 그의 역발상 연구는 10일치 표지논문을 장식했다. 30대 국내 연구자의 표지논문 게재가 처음은 아니지만 33살은 최연소 기록이다.
남 교수는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고승환(38)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와 함께 균열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를 이용해 폭이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에 불과한 홈(나노채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자빔을 쬐어 깎아내는 기존 방식으로 지름 4인치 실리콘 웨이퍼를 나노채널로 채우려면 수천만원을 들여 수십년을 작업해야 하지만, 연구팀 방법으로 하면 몇만원으로 몇시간 만에 해낼 수 있다.
반도체와 생명공학업계의 눈길을 끌 만한 연구성과다. 나노채널은 차세대 반도체와 바이오칩 등에 쓰인다.
남 교수는 “처음 연구를 착안하고선, 당시 버클리대에서 함께 공부하던 고 교수에게 얘기하니 ‘미국의 다른 연구자에게 업적을 빼앗기지 말고 한국에 돌아가서 본격 연구를 하자’고 제안했다”며 “어차피 귀국할 생각이었기에 지도교수한테도 함구한 채 졸업 때까지 3년 동안 관련 자료만 찾아봤다”고 했다.


그는 일반고인 대구 능인고를 나왔다. 고3 때 외환위기로 건설업을 하던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빚쟁이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상위권 성적에 ‘멘사’(고지능자 모임) 회원이었지만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탈출구를 군입대에서 찾았다. 병역특례(산업기능요원)로 레미콘회사에 다니면서 각종 정보사 자격증을 땄다. 특례 3년차에 항공우주 관련 업체 일을 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위촉연구원 생활을 3개월 한 것을 계기로 3년 동안 항공 관련 잡지사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그 인연으로 만난 고 황명신 한국항공대 교수의 권유로 200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년 동안 커뮤니티칼리지(단기대학)를 다닌 뒤 2005년 버클리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5년여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 귀국한 그는 1년 먼저 고 교수가 몸담고 있던 카이스트에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이화여대 박일흥 물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특임교수 자리를 제안했다.
지난해 8월 에 투고할 때 연구팀은 수월한 심사를 위한 외국 유명교수 ‘끼워넣기’를 하지 않고 한국인 과학자 3명만을 저자로 올렸다. 지난 2월 로부터 표지논문으로 채택됐다는 연락을 받고서 남 교수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동안 대전 카이스트와 서울을 오가며 밤새워 연구하던 일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누군가에게 마구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엠바고(일정 시점까지 보도 유예)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네이처’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네이트온에 무엇을 올렸다고?’라고 되물으시더군요. 아버지께 에 논문을 낸 과학자의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모습으로 패러디한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아 이메일로 보내드렸죠.” 지난 8일 기자설명회를 마친 남 교수는 “속이 시원하다”며 활짝 웃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2012년 3월 8일 목요일

"정부는 속이고 언론도 원전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8일자 기사 '"정부는 속이고 언론도 원전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를 퍼왔습니다.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공포와 체념, 원전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모순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전 세계에 원자력발전소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에 사는 인구가 9000만 명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한 바 있다. 원전 반경 30㎞는 사고시 부근 주민을 대피시켜야 하는 필수 범위다. 후쿠시마 사태 때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 내 거주주민을 전부 대피시켰다. 


한국에서는 571만 명이 이 통계에 포함된다. 이 중 가장 많은 341만 명이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산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비롯해 해운대구, 금정구 등 상당수 부산지역과 울주군을 비롯한 울산광역시 대부분 지역, 양산시 등이 범위다. 지난 1978년 가동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는 이미 지난 2007년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으나 10년의 수명을 더 연장했다. 인근 주민들은 10년 더, 원자로 부근에서의 삶을 이어가게 됐다.

후쿠시마 사태 1년을 맞은 지금, 은 원전 인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듣기 위해 고리원전이 위치한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찾았다. 공포만 있는 것도, 찬양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불만과 슬픔, 시샘과 절망으로 크게 나뉠 온갖 번민이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는, 전력생산을 고민하지 않고 소비에만 몰두하는 서울시 주민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였다(서울은 소비전력의 3%만 자체생산한다. 나머지는 전부 다른 지역에서 끌어온다). 더군다나, 이곳은 바로 원전 부근 아닌가.

- 3.11 후쿠시마가 남긴 것

☞"원자력은 싸다"?…MB의 거짓말☞ 방사능 오염 생태가 수산시장에, 그런데도 정부는…☞ 체르노빌·후쿠시마, 그리고 MB의 '악연'



▲한국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원전. 원자력발전소는 대개 해수면에 맞닿은 곳에 설치된다. ⓒ프레시안(이대희)

"이래 다 말하몬 우리한테 좋은 기가? 저 발전소 열불나는 거야 말할 것도 없는데, 기사가 나가몬 우리한테 좋아야 되지, 잘모해가 동네 망하몬 우짜노? 그라이까 동네 이름은 쓰몬 안 된데이."

지난 6일 찾은 고리원전 부근 지역의 주민들은 한사코 '동네 이름이 나가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터뷰에는 협조적으로 응했지만, 결단코 자신의 이름이나 지명이 보도되선 안 된다고 했다. 이장도, 택시기사도, 슈퍼마켓 주인도, 남편을 잃은 과부도 마찬가지였다.

원자력발전소가 두려워서는 아니다. 이들은 고리가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 부지로 확정된 지난 1969년 이후 40여년 간 국가를 상대로 싸웠다. 이제 와서 발전소를 두려워할 이유도, 발전소를 갑자기 찬양하게 될 이유도 없다.

발전소가 바꾼 것

이들은 현실이 가져오는 생존의 위기를 두려워했다.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은 그간 자신들만 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태 이후로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온 국민이 국내에도 원자력에 의한 '위험'이 있다는 걸 갑자기 자각하게 됐다. 원전 부근 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될까. 원전 부근으로 찾아오는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다. 원전 부근에는 해수욕장이 있고, 당연히 관광객에 의존하는 횟집과 민박집이 늘어서 있다. 산지 생산물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이곳은 반농반어촌이다. 버섯을 재배하고, 미역을 걷고, 생선을 잡는다. 싼 집을 찾아오는 세입자 수요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는 집값하락으로 이어진다. 주민들은 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부근 마을의 김춘호(52, 가명) 이장은 말했다.

"여가 원전 부근이라고 방세가 쌉니더. 바로 옆에 마을이나 우리 마을이나 원전 부근이긴 마찬가진데, 거기 방세가 25만 원이면 우리 동네는 15만 원이라. 그래가 돈 없는 일용직노동자, 백수 이런 아들이 여기 들어온다고. 그나마 그런 돈이라도 있으니 먹고 살지, 아이몬 우리가 머해 먹고 삽니까? 무신 국가시설이라고 물고기도 못 잡게 해, 산에도 못 오르게 해, 땅은 저거들이 다 사놔. 그런데 동네 이름 (기사에) 나가봐라. 큰일 난다."

원자력발전소는 대개 바닷가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대도시에선 떨어져 있다. '못 사는 게 당연하지'란 생각은 잘못됐다. 원자력발전소는 국가 기반시설이다. 제조업 생산에 기반이 되는 전력을 생산하는, 한국 경제 성장의 핵심 젖줄이다. 포항이 포스코로 인해 부를 얻고, 울산이 수출산업으로 인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게 더 마땅하다. 원전을 통해 지역주민의 소득이 그에 합당하게 오르는 건, 국가를 위해 삶의 터전까지 빼앗긴 이들이 어쩌면 마땅히 누려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전'이라서 그게 안 된다. 원자력발전소는 일반 제조업체에 비해 고용효과가 크지 않다. 상대적으로 고급인력 의존도가 높다. 지역 내 고용이 원활히 이뤄지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위험시설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원자력발전소 반경 700미터(m)이내에는 거주가 금지돼 있다. 관련 산업이 발달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원자력발전소 반경 5㎞를 발전소 주변지역으로 설정, 이곳 주민들에게 일부를 지원금으로 나눠준다. 이 지원금은 지역주민 소득증대사업, 공공시설사업, 교육사업, 각종 복지사업 등에 쓰인다. 시민들이 납부하는 전기세에서 나가는 전력기반부담금으로 이 자금을 충원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실제 한 마을 회관이 원전지원금으로 지어졌다. 당연히 지자체 일반회계에서 충당해야 할 시설자금을 엉뚱하게 '특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원전지원금으로 부담한 셈이다. 지자체로서는 할 일을 방기한 셈. 지원금을 지자체가 관리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지역주민들은 주장했다. 마을주민 박중호(49, 가명) 씨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은 곳에 발전소가 들어온 것도 모자라, 발전소는 주민 땅을 수용해서 삶의 터전을 뺏고 있다. 그런데 지역주민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원전지원금이 제대로 주민 삶에 기여한 게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장군의 한 마을회관. 원전지원금으로 회관을 지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지역 주민들은 지원금이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바람에 실제 주민들의 이익에 어떻게 직결되는지 알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이대희)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원자력발전소로 인해 지역은 생산기반을 통째로 잃게 됐다. 대체부지 수용 규모가 커지면서 그만큼 주민들이 농사지을 땅은 사라졌다. 접근금지구역에는 어획구역도 포함됐다. 실제 바다에는 부표로 접근 금지 구역이 표시돼 있다. 그곳은 인근 바다에서도 양질의 해삼과 멍게 등이 가장 많이 채취되던 곳이라는 게 어민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지역 내 취업은 어렵다. 외부에서 들어와 직원용 사택에 지내는 원전 직원을 제외하면, 극히 소수의 원주민이 일용직노동자로 원전에 취직한다. 삶의 터전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원전 인근 주민들은 지원금 외에도 전기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 따르면, 발전소는 원전 주변지역 5㎞ 이내 지역 주민들의 전기세를 적게는 50%, 많게는 전액 지원한다.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박영호(39, 가명) 씨는 "감면혜택이 있으니 여름에 에어컨 마음껏 쓴다. 나쁠 것 없다"며 원전이 지역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원전 사고 위험이 걱정되진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뭐, 복불복이지"하며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눙쳤다.

투쟁해도 소용없다

고리원전 주민 대부분은 원전이 들어올 당시부터 강하게 반대했다. 김 이장은 "당시 마을 어르신들이 이만저만 반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시대가 시대다 보니, 죄다 두들겨 맞고 끌려가서 '빨간 줄'만 그였다. 그 뒤로 마을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김 이장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군부는 원자력발전소 개발을 통해 지역이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전이 배출하는 뜨거운 물을 따라 고래 떼, 상어 떼가 몰려든다고 담당 공무원이 마을 어르신들께 홍보했었다고 그는 말했다. 원전 건설이 확정되면서, 대상 부지 마을 사람들은 죄다 다른 마을로 강제 이주됐다. 이주민들은 다른 마을에서 타지인이라는 설움을 겪었다. 지금도 한 이주민 마을은 동네 제사(동제)를 지낼 때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마을에서 먹고 살 길이 없어지면서 젊은이들이 모두 다른 도시로 뿔뿔이 흩어진 것도 원전이 남긴 상처다.

재산권 행사가 어려워졌다는 것도 마을 주민들이 원전을 혐오한 이유다. 국가기반시설지역인 까닭에 인근지역은 지난 2001년 말까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설정돼 있었다. 주민들은 이로 인해 재산권 행사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지역에 들어선 고층 다세대주택은 모두 임대수익을 노린 외지인 소유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지인과 극명히 차이가 나는 부의 크기는, 원전의 위험 여부를 떠나 주민들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고리원전부근 마을 전경. 최근 인근 지역에 다세대주택 신축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이들 가옥은 외지인 소유가 대부분이라고 주민들은 말했다. ⓒ프레시안(이대희)
이 때문에 지난 40여년 가까이 주민들은 꾸준히 원전 반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들이 최근 들어 반핵시위와 관련 환경단체에 냉소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다.

서토덕 부산환경연합 부설 환경과 자치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고리원전 인근주민은 워낙 오랜 시간 투쟁하고도 아무런 성과를 못 얻어, 이제는 지친 상태"라며 "어찌됐든 원전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생겨나고, 관련 일자리를 얻은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낼 힘을 잃었다.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시간이 지나면서 원전 이해관계자들은 지역 내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와 연제구, 북구의회는 고리1호기 폐쇄와 핵단지화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으나, 정작 원전을 끼고 있는 기장군의회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건설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처럼 커져가는 '막을 수 없다'는 체념 논리는 신고리 원전을 자발적으로 유치한 울산시 울주군의 상황을 낳기도 했다. 서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기장군의 반대운동을 겪으면서 원전을 자발적으로 유치하는 지역에는 인센티브 300억 원을 추가로 내놓겠다는 미끼를 던졌다"며 "울주군은 '어차피 못 막는 것, 돈이나 더 받자'는 분위기가 컸다. 이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원전을 혐오함에도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의 정서가, 지역민들의 민심 밑바닥에 깔린 셈이다. 모순적이지만, 현실이다.

그래도 커져가는 불안함

그러나 모두가 체념으로 가득 차, 우리나라 모든 혐오시설을 '밀어붙이기'로 건설하는 정부의 정책에 따르는 건 아니다. 특히 지난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에 대한 지역의 불안함이 커졌다.

서 책임연구원은 "최근 지역주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고리원전 부근 지역의 원전 반대여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며 "과거 원전지역민과 환경단체 만의 의제였던 원전의 위험성을 후쿠시마 사태 이후 국민들이 '내 문제'로 체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5월 환경과 자치연구소가 부산시 16개 구·군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8.6%가 원전의 위험성을 우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39.5%는 "원전을 점진적으로 폐쇄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고 답했고, 고리원전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43.7%가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울산시민의 불안함은 더 크다. 울산광역시는 고리, 신고리원전과 월성원전에 둘러싸인 '원자력 도시'다. 지난해 4월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 울산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1%가 도시를 둘러싼 원전에 대해 불안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위기는 후쿠시마 사태 1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6일 서울환경운동연합이 후쿠시마 사태 1주기를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65%가 원전 비중을 확대하는 데 대해 반대의견을 보였다. 또 절반이 넘는 53.5%는 국내 원전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 고리원전 부근 주민들은 건강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한 듯 보였다. 김 이장을 비롯한 부근 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마을 주민 사망원인의 80~90%는 암"이라고 강조했다. 15년 전 남편을 간암으로 잃은 박길자(72, 가명) 씨는 "남편이 발전소에서 막노동을 수년 했는데, 그거 때문에 죽지 않았을까 생각은 한다"며 "아들도 발전소에 근무해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10년 전 남편이 위암으로 사망한 김인애(70, 가명) 씨도 같은 두려움을 안고 있다. 어부였던 그의 남편은 어획을 위해 원전 반경 700m 이내에 진입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김 씨는 "남편이 한 끼라도 생선, 해삼을 안 먹는 날이 없을 정도로 해물을 좋아했는데, 그 때문에 죽은 것 아닌가 싶다"며 "남편이 사망한 뒤로 생선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핵 방사능 공포는, 원전 부근 주민들에겐 일상이다. ⓒ프레시안(이대희)
김 이장은 "지역 중학교와 일본의 중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어, 일본인 학부모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가 있는데, 부근에 원전이 있다고 하니 생선회에는 손도 안 대더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서 꼬리가 뒤틀린 생선이 나와도 '원전과 관계가 없다'고 하니 우리로선 더 할 말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아직 공식적으로 원전의 방사능위험이 인체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기록은 없고, 실제 이 지역 주민들의 사망과 원전에 대한 상관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관계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 지난해 후쿠시마 사태 직후 실시한 원자력 관계자들의 좌담회에서 이명철 한국동위원소협회 회장은 "국내 방사능 수치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논할 가치도 없다"며 국내의 방사능 공포가 부풀려졌다고 지적했다. 국내 다수 방사능 전문가들의 주장이 이런 식이다.

주민들이 이처럼 공포에 떠는 진정한 원인은 그러나, 바로 불신이다. 초기부터 주민들을 속이며 진행된 원전개발, 그 후 지속된 피해와 투쟁의 실패, 타지역민들의 무관심으로 그들은 정부와 원전, 언론 등의 기관을 믿지 못했다.

김 이장은 "정부는 우리 속이기만 했고, 기자도 와서 취재하고는 막상 발전소 칭찬하는 기사만 쓰더라"며 "국민의료공단에서 우리 주민을 정기검진한다고 해도 받으러 가는 주민이 없다. '가 봤자 뻔하다'는 반응들이다. 아무도 정부 말은 안 믿는다"고 말했다.

불신과 불안함, 고통과 체념, 갖가지 번뇌가 발전소를 태우고 있었다. 이런 갈등이 '전력생산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전국의 원전부근 각지에서 조명 받지 못하고 태워 없어진다.



/이대희 기자(=부산)

2012년 1월 15일 일요일

원전 대국 프랑스의 새 안전 패러다임, ‘하드 코어’를 지켜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의 2012-01-13일자 기사 '원전 대국 프랑스의 새 안전 패러다임, ‘하드 코어’를 지켜라'를 퍼왔습니다.
절대 안전 도그마 포기, 중대 사고 때 피해 최소화 위해 핵심 시설 보강
프랑스 원자력안전청, 올 상반기 중 166억 달러 투자 예정



▲프랑스 카트놈의 원전 단지. 중대 사고에 대비한 대대적 보완이 올 상반기에 이뤄질 예정이다.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유럽 각국은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국 원전의 안전성을 재평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그 결과 보고서를 연말까지 유럽연합에 제출했다. 지난 3일 프랑스 원자력안전청도 그 보고서를 발표했다.

프랑스 원전은 즉각적인 가동중지를 요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안전하지만, 동시에 앞으로도 운전을 계속하려면  기존의 안전 기준을 뛰어넘는 보완책이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은 물론 환경단체들도 특별할 것 없는 이 발표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고, 단지 안전 보완에 100억 달러 이상의 거액이 든다는 사실을 환기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과학전문지 는 12일치에서 사설과 기사를 통해 프랑스 원자력 안전 당국의 이번 조처를 “후쿠시마 사고 이후 나온 가장 급진적인 안전 대책”이라고 평가하며 상세히 그 내용을 소개했다.
프랑스는 58기의 원전에서 전력의 75%를 생산하는 원전 대국이며 원자력 기술과 원자로의 주요 수출국이기도 하다. 일본이 신규 원전 건설을 사실상 중단한 가운데 원전 확대 정책을 펴는 우리나라 원자력 당국에게 역할 모델 구실을 하는 나라도 바로 프랑스이다.


▲프랑스의 원전 위치도. 원전 비중이 75%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다. 그림=프랑스 원자력안전청.


프랑스 원자력안전청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체 원자력 시설의 안전성을 평가해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를 는 사설에서 “신선하게 솔직하고 전향적”이라고 평가했다.

앙드레-클라우드 라코스트 프랑스 원자력안전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전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극한 상황에 시설이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원자력 안전당국은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안전철학을 근본적으로 전환했음을 분명히 했다. 다중 안전 장치를 통해 원전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존 원자력계의 도그마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청은 이 보고서에서 중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기존의 확신을 버리고 예상치 못한 대규모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대책을 마련할 것을 프랑스 원전 운영회사인 프랑스전기(EDF)에게 요구했다.

마샬 조렐 프랑스 방사성 방호 및 핵 안전 연구소 소장은 “프랑스에서 우리가 얘기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걸 상상하라’는 것”이라고 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보고서도 “안전장치가 있지만 정전이나 냉각시스템이 중단되는 최악의 사고가 났을 때 몇 시간 안에 노심용융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 원전은 다중방호에 기대는 기존 안전철학에서 중대 사고를 기정사실로 대비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사진=프랑스 원자력안전청.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 등 설계기준을 넘는 중대사고가 일어났을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핵심시설로 원자력안전청이 제시한 개념이 ‘하드 코어’이다. 주조종실, 비상 발전기, 냉각시스템 등 안전 확보를 위해 핵심적인 시설은 강화된 재료로 보완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하드 코어는 중대사고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것을 막고 최악의 손실을 경감하려는 목적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모든 원전에 설치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사고 때 주 조종실이 방사능에 오염돼 사고 현장을 통제할 운전원의 접근이 어려웠음에 비춰  방사능 누출사고 때에도 조종실로 접근하는 안전한 통로와 조종실 내부의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한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하드 코어와 함께 이번 보완책의 핵심은 신속 대응단의 창설이다. 중대한 사고가 났을 때 장비와 기술을 겸비한 조직이 24시간 안에 현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 조처가 연내에 마련된다.

원자력안전청은 이밖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에서 냉각수가 상실됐을 때에 대비한 보완과 중대사고시 원전 주변의 지하수와 지표수 오염을 막기 위한 조처 등을 사업자에게 요구했다.

국영기업인 프랑스전기는 “원자력안전청의 새로운 보완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보완책에는 최소 166억 달러가 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사고 뒤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모든 원전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에 해당하는 ‘긴급 안전점검’을 한 결과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현재 50개 사항에 대한 개선대책을 이행하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