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경찰수뇌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경찰수뇌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2월 23일 토요일

"현오석 부친, 4.19때 발포 명령한 경찰수뇌부"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2-22일자 기사 '"현오석 부친, 4.19때 발포 명령한 경찰수뇌부"'를퍼왔습니다.
5.16후 혁명검찰부 조사 받기도, 현오석 "보도하면 법적대응"

윤호중 민주통합당 의원이 22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의 부친 현규병씨가 4.19 혁명 당시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한 경찰수뇌부였고,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일본순사였음이 국가기록원 기록 등을 통해 확인됐다"고 폭로, 파문이 일고 있다. 

윤 의원이 국가기록원 출간물 (사건기록으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현 후보자의 부친 현규병씨는 4.19 당시 내무부 치안국 수사지도과장으로 재직했다. 

현규병씨는 당시 4.19 혁명 전날인 18일 시위대 대응과 발포명령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경찰수뇌부회의에 내무부장관과 치안국장 등과 함께 참석했다.

그는 이 일로 석달 뒤인 그해 7월 주요 발포명령자를 다루는 재판에 증인으로 불려가 "직무집행법에 의해 권한이 있다. 발포할 수 있다. 마산학생들 석방은 부당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 직후 일어난 마산데모사건 처리과정 조각과 방치 혐의로 5.16후 5.16군부 혁명검찰부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국가기록원 출간물 중 혁명검찰부의 1961년 8월 12일 수사기록은 “현규병은 내무부 치안국 수사지도과장으로서 전시기간 중 재직하면서 범죄수사지도·감독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다”며 “3·15부정선거가 감행될 때 이들은 부정선거가 탄로나거나 국민 저항이 있을 경우 이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주동자는 현장에서 구속하라고 명령, 마산시민 약 2천여 명에게 발포해 47명의 희생자를 내고 시위자를 체포해 불법감금했다”고 적시했다.

기록은 또한 “1960년 3월 16일 마산파출소를 방화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박○○이 진범이 아님을 알면서도 직권을 남용해 검찰청에 송치했다”며 “현규병은 불법구속자를 석방해야 할 지위에 있었으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불법감금한 사실이 인지되어 기소함이 타당하다”고 적시돼 있다.

이밖에 중앙일보 (조인스) 인물 정보에 따르면, 현씨는 일제 강점기인 1940년 일본재판소 서기등용시험에 합격해 일제관료가 됐고 이듬해 일제 순사부장에 합격하기도 했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해 4월16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를 참배,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의원은 "현오석 내정자는 '개인 가족사에 관한 문제이니만큼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대한민국 국무위원으로서 내정된 만큼 이는 개인 가족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의 국무위원이라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올바른 삶을 살아온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상식"이라며 현 후보자가 각료 부적격 인사임을 강조했다.

앞서 21일 현 후보자는 자신에 대한 의혹이 교통방송을 통해 첫 제기되자 기획재정부 대변인을 통해 "선친의 살아온 평생을 볼 때 부끄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개인 가족사에 관한 문제이니 만큼 보도할 경우 법적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앞서 교통방송은 윤 의원이 제기한 의혹과 동일한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신문 등 재판 기록에는 현씨가 4.19 전날 경찰수뇌부회의에서 일부 간부들과 함께 발포명령이 없는데 대해 불만을 보이며 '경찰직무집행법에는 발포권한이 있다. 마산학생들을 풀어준 것도 잘못' 등의 발언을 하며 반발했다는 증언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최병성 기자 

2012년 7월 18일 수요일

진실에 이르는 문은 하나가 아니다


이글은 대자보 2012-07-17일자 기사 '진실에 이르는 문은 하나가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용산참사를 이해하는 세 개의 문,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기여한 영화

영화 ‘두 개의 문’은 알려진 대로 그동안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거나 가해자 편으로 치부되었던 현장 경찰특공대의 시선으로 용산 참사를 재구성하려고 노력한다. 촛불시위에 데인 후 이명박 정부가 공언한 무관용 원칙에 장단을 맞추고 출세욕와 공명심에 눈이 멀어, 테러범 잡는 데나 쓰이는 경찰 특공대를 농성 철거민 ‘섬멸’을 위해 투입하면서 진압에 필요한 기초 정보도 안주고 사지로 몰아넣었던 경찰 수뇌부의 악행이 두드러질수록, 말단 경찰들의 처지는 연민과 공감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영화는 가해자 격인 국가권력의 말단 하수인으로 치부되었거나, 도심 테러리스트들을 진압하다 사망한 영웅들이라는 극단의 평가에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느 누구의 관심도 미치지 못했던 현장의 경찰 특공대도 결국은 피해자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긴 그들은 명령을 충실히 따르도록 자동으로 입력된 기계가 되기를 강요받은 이들이다. 간첩이나 테러 진압 훈련만 받은 그들 눈앞의 존재들은 ‘진압’이 아닌 때려 부숴야 할 ‘섬멸’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특공대에서 사망자도 나왔으니 이들을 국가공권력과 같은 편으로 분류할 수도 없게 되었다.

특공대원들이, 농성자들이 특공대를 향해 부르짖었던 “다 죽어”라는 말이, 당시에는 살상도 마다지 않겠다는 적개심에 불타던 말로 들렸지만 지나고 보니 진압하지 말라는 요청이 아니었을까라고 의문을 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잔인한 국가 폭력의 말단에 머물러 있지 않다. 물론 여기까지는 많은 이들이 말한 내용들이다. 

영화가, 경찰 특공대원들이 현장 철거민들과 함께 국가폭력의 희생자에 속한다는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것도 영화적 상상력이 아닌 수천 쪽에 이르는 수사나 재판 기록을 통해 진실에 육박하려는 노력은 리얼리즘으로 충만한 다큐멘터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내게는 영화가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분히 설교적으로도 들리기도 했다. 영화 자체의 문법에 의지하지 않는 방식은 영화와의 틈을 벌어지게 만든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누누이 강조한, 말단 경찰들은 진실을 말했다거나, 특공대원들은 진압 현장에서 지옥을 보았다고 했으니 엄청난 후유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말을 통해서 강조하는 식의 직설적이거나 관객을 가르치려는 주제 전달 방식은 마뜩하지 않다. 변호사나 대책위 관계자 등 굳이 ‘우리’ 편이 관객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도 건조한 수사나 재판 기록으로도 진실에 닿는 것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말단 경찰도 피해자더라는 깨달음은 별스러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특공대의 증언대로 말단 경찰이 상부의 지시대로 따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진압 현장에서 농성자들과 함께 사망자도 나왔다.

오히려 내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영화가 의도하지 않거나 강조하지 않았던 것들에 있다. 용산참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길은 유가족이나 대책위의 절규일 수도 있고, 생각 없는 기계로 길들여져 공권력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경찰 특공대의 시각이나 진술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편이 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이 세 번째 경우를 얻은 것이 영화에서 발견한 수확이었다. 

영화가 찾은 재판 기록 중, 재판 도중 검찰이 증인으로 출석한 특공대 제1제대장에게 질문하는 것이 있다. 경찰이 농성자 진압을 위해 컨테이너를 2대 동원했다면 특공대가 (사망자를 내지 않고) 더 안전했을 것이라는 증인의 진술에 대해, 검찰은 컨테이너가 1대가 아닌 2대였다면 특공대의 입장이 아닌 농성자들의 처지에서도 안전했겠냐고 묻는다. 특공대도 아닌 농성자의 시각에서 뜬금없이 질문하니, 증인이 질문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변호사가 질문을 이해하기 쉽게 거들어 준다. 망루에서 살아남은 농성자들에게 결국은 유죄를 때리고 마는, 농성자들의 편을 들어줄 리가 없는 검찰의 입에서 농성자의 안전을 생각하는 질문이 나온 것은 의아한 장면이었다. 

‘우리’ 편이 아닌 검찰 자신도 의도했을 것 같지 않은 태도가 영화를 비집고 나오면서, 영화는 결국 농성자들의 명예회복과 정당성에 힘을 두텁게 실어주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그 위치상 농성자들의 ‘적’으로 결코 치부할 수 없는 말단 경찰의 시선과 입을 통하기보다, 명백한 ‘적’을 통해서 농성자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훨씬 더 굳건하게 입증해 준 것이다. 

당사자 유가족이든, 말단경찰이든, 공권력의 협력자인 검찰이든, 진실에 이르는 과정이 꼭 하나의 문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영화 ‘두 개의 문’이 갖고 있는 문은 세 개 쯤 된다. ‘두 개의 문’은 피해자나 넓은 의미의 피해자가 아닌 움직일 수 없는 가해자의 입을 통해서 용산참사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영화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