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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6일 월요일

‘구로공단 터 강탈’ 52년만에 첫 배상판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5-06일자 기사 '‘구로공단 터 강탈’ 52년만에 첫 배상판결'을 퍼왔습니다.

법원 “국가 330억 지급해야”


군사정권 시절 구로공단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땅을 빼앗겼던 농민과 유족들이 52년 만에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6부(재판장 정일연)는 1960년대 구로공단 일대 농지를 빼앗겨 소송을 냈다가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아 소송을 포기했던 농민의 유족 김아무개(43)씨 등 36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총 330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박정희 정권은 1961년 9월부터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이곳 30만평 땅을 강제수용하고 농민들을 내쫓았다. 농민들은 1964년 국가를 상대로 땅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냈고, 4년 만인 1968년 대법원은 “국가는 땅을 농민들에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또 다른 탄압이 시작됐다. 국가가 소송에서 진 뒤, 검찰과 중앙정보부는 “소송 서류를 위조했다”며 농민들을 불법 연행·감금했다. 그런 뒤 민사소송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이런 식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200여명에 이르렀다. 대부분이 강압에 못 이겨 소송을 취하한 뒤 석방되거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끝까지 버틴 40여명은 결국 기소돼 처벌을 받았다. 박정희 정권은 조작된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민사소송이 농민들의 사기에 의한 것”이라며 재심을 청구했고, 1989년 대법원은 “이 땅이 국가 소유가 맞다”고 판결했다.

처벌을 받은 농민과 그 유족들은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신청을 했다. 진실화해위는 2년 뒤 “국가가 정부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민사소송에 개입해 공권력을 부당하게 남용했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처벌을 받았던 이들은 2009년 형사재판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2011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1989년 대법원의 민사재판 재심 선고에 대해서도 재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서울고법은 “농민들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내린 당시 대법 판결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피해자들은 현재 국가 명의로 돼 있는 땅은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김씨 등 36명의 경우 국가에 뺏긴 땅이 이미 제3자 명의로 넘어간 상태여서 땅을 넘겨받을 수 없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박근혜 “정수장학회 강탈한 것 아니다” 사회환원 거부 파문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21일자 기사 '박근혜 “정수장학회 강탈한 것 아니다” 사회환원 거부 파문'을 퍼왔습니다.
기자회견서 모든 요구 외면 “최필립 사퇴요구 정치공세, 고 김지태씨 부정부패자”

고 김지태씨 유족과 정치권 언론계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사회환원 요구에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정수장학회가 저의 소유물이라든가 저를 위한 정치활동을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서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 이슈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박근혜 후보는 21일 오후 3시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수장학회가 자신을 정치적·경제적으로 돕고 있으며 △최필립 이사장의 과도한 연봉 등 정수장학회의 비리 문제와 △정수장학회는 고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강탈해 만든 장물이라는 등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강탈한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요구는 고사하고, 최필립 현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 사퇴요구마저 사실상 거부했다.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익 재단이며 어떠한 정치활동도 하지 않은 순수한 장학재단"이라며 "정수장학회가 저에게 정치자금을 댄다든지 대선을 도울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공익재단의 성격을 잘 알지 못하거나 알고도 그렇게 주장한다면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CBS노컷뉴스

박 후보는 또한 "민주당 정권 내내 (정수장학회의) 문제점을 파헤쳤고 곽노현 교육감 재임 당시 감사까지 진행했지만 전혀 문제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운영돼 왔다"며 "만약 비리가 있었다면 벌써 감독기관에서 모든 것을 동원해서 압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으로 활동했던 최필립씨가 이사장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박 후보는 "어느 재단이든 설립자의 뜻을 잘 아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설립자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한 정치 공세"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부일장학회의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에 대해서도 "부정부패로 지탄받았던 분"이라고 비난했다. 박 후보는 "고 김지태의 장학회가 이름만 바꾼 것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며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김지태씨가 헌납한 재산이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복지가들뿐 아니라 해외 동포들의 성금을 모아 만든 재단"이라며 "안타깝게도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던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분노한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할 정도"였다며 "부패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구형받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박 후보는 "그 과정에서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혔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을 헌납했다"고 말했다.
또한 "부산일보와 문화방송의 규모는 현재의 규모와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며 "부산일보는 당시 자본의 98배나 잠식돼 자력으로 회생하기 힘들 정도의 부실기업이었다"고 비판했다.
MBC에 대해서도 "라디오 방송만 하던 작은 규모였다. 오히려 견실하게 성장해서 규모가 커지자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마지막으로 정수장학회의 명칭 변경과 이사진의 거취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내놓으라고 밝혔다. 그는 "이사장과 이사진은 (정수장학회가) 더 이상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고 국민적 의혹이 조금도 남지 않도록 국민 앞에서 확실하게 투명하게 밝혀서 국민들에게 해답을 내놓으시기 바란다"며 "더 이상 의혹을 받지 않고 공익 재단으로서 새롭게 거듭할 수 있도록 이사진에서는 장학회의 명칭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잘 판단해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남기춘 “정수장학회, 총 있으면 옛날처럼 뺏어오면 되는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14일자 기사 '남기춘 “정수장학회, 총 있으면 옛날처럼 뺏어오면 되는데”'를 퍼왔습니다.

남기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클린위원회 위원장.
14일 정치쇄신특위원장 주최 오찬 기자간담회에서 ‘막말’ 빈축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수장학회 강탈 사실상 인정한 셈 
“한살이라도 젊은남자가 따라주는 게 맛있겠죠?” 성적 농담도

검찰 출신인 남기춘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이 논란이 일고 있는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문제제기를 하는 쪽을 비아냥대는 발언을 거칠게 쏟아냈다. 기본적으로 ‘문제될 게 뭐 있냐’는 인식을 깔고 있는 태도였다.남 위원은 14일 특위의 안대희 위원장이 주최한 오찬 기자간담회에 배석해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부의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전신) 강탈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차단시켰다. 그는 “헌납 과정에서 강압성이 있었던 것은 현재로선 인정이 된 상태다. 법률적으로 보면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라면서도 “취소권은 행사 기간이 있다. 취소한 때로부터 3년, 법률행위로부터 10년인데, 이 기간이 모두 지났으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공소시효 만료를 강조했다.그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며, “후진국 같았으면 (독재자가) 자기 이름으로 하고 자기가 먹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독재자들이 다 사리사욕으로 먹어버렸다”며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개인이 먹지 않고 공익재단을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 위원은 “김지태씨 유족들도 (재단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익재단으로 잘 운영한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자료도 제가 어디서 봤다”고 덧붙였다.남 위원은 고 김지태씨의 헌납 지분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시 김지태씨가 헌납한 게 (부산 문화방송), (문화방송), (부산일보) 주식이고, 마치 그게 5·16 장학회의 전부인양 알고 있다”며 “하지만 당시 이병철 회장이 부정축재로 걸려 1천만원인가 냈고, 몇십만원씩 낸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문화방송은 텔레비전은 없었고 라디오만 있었으며, 적자상태였다고 한다”며 “이게 정수장학회로 넘어오고 세상이 발전하면서 엄청난 재산이 됐지만, 당시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과다한 급여를 받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남 위원은 “(연간) 1억2천만원 정도 나왔다고 돼있던데, 그게 많다고 하면 많은 것이고, 적다고 하면 적은 것”이라며 “사람들이 기자들은 왜 월급을 많이 받냐고 하는데, 왜 하는 일도 없는 것들이 봉급을 많이 받냐고 하면 뭐라고 할 거냐”라고 말했다.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언론사 지분을 매각하려 한다는 최근 (한겨레) 보도와 관련해, 남 위원은 농담조로 “그걸 팔아서 안철수재단에 기부하면 안 되나?”라며 “그걸 팔아서 부산지역 노인들, 난치병 환자, 장학금 등(으로 쓴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게 선거운동이라고 나오던데, 그럼 그걸 최필립 이사장이 부산 지역만 빼고 주면 되나?”라고 되묻기도 했다.남 위원은 최 이사장의 퇴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날 안대희 위원장의 언급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소리”라며 “논리적으로 남의 재산을 갖고 ‘그만둬라, 마라’ 하는 것과 같다. (현대차나 삼성전자) 주식 한 주도 없는 사람이 ‘정몽구 회장, 이건희 회장 그만둬라’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정수장학회라는 이름 자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 부인 육영수씨의 ‘수’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 박근혜 후보와의 연관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계속 나올 것 같다’는 지적에, 남 위원은 “이름을 바꿔야죠”라며 역시 농담조로 “희망사항인데 뭐 어떠냐, (안철수 후보를 연상시키는) ‘찰스 재단’이라고 하면 어떠냐?”고 말했다.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방안 해법에 대해서도 남 위원은 진지하지 않은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총을 들이대는 자세를 취하며 “총이 있으면 옛날처럼 다시 뺏어오면 되는데”라는 농담을 하더니, ‘최 이사장과 접촉은 해봤냐’는 질문엔 “만나면 공갈처럼 보이지 않겠나. 내가 생긴 게 공갈처럼 생겨서”라고 말하기도 했다.조순형 전 의원이 박 후보의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에 대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동안 사건 수임 활동을 그만 두고 대한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연봉을 1만원만 받고 법률 구조활동을 하라”는 제안을 내놓은 데 대해, 남 위원은 “서 변호사가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일을 하게 되면 법률구조공단 사건이 엄청 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을 가만히 안 놔둬요. 그냥 가만히 처박혀 있는 게 나아요”라고 말했다.이날 남 위원의 발언 수위가 지나치다고 판단한 듯 안대희 위원장은 여러 대목에서 남 위원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으나, 남 위원은 한 차례 “나는 계속 맞느라고…”라며 웃어넘길 뿐, 줄곧 자신의 발언을 이어나갔다. 오히려 남 위원이 안 위원장의 말을 끊고 자신의 발언을 이어가기도 했다.남 위원은 박 후보 캠프의 클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어, 앞으로 네거티브 공격에 대한 대응을 전담하게 된다. 그는 이날 자리를 시작하면서 옆에 앉아있던 여기자에게 안 위원장 대신 맥주를 따라주며 “한 살이라도 젊은 남자가 따라주는 게 맛있겠죠?”라는 성적인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김지태씨 설립 부일장학회, 5·16 이후 소유권 바뀌어…‘강탈’ 논란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12일자 기사 '김지태씨 설립 부일장학회, 5·16 이후 소유권 바뀌어…‘강탈’ 논란'을 퍼왔습니다.

ㆍ정수장학회 무엇이 문제인가

MBC 민영화 계획 구상의 핵심에 있는 정수장학회의 역사는 1958년 부산 지역의 대표적 기업인인 고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부터 시작한다. 부일장학회는 설립 이후 4년 동안 총 1만2364명에게 17억7000만환의 장학금을 지급한 대표적 사회공헌 단체로 이름이 알려졌다. 김씨는 1960년 4·19 혁명 당시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부산일보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군의 주검 사진을 싣는 등 언론사주로서도 유명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부일장학회는 이듬해 5·16장학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김지태씨는 소유권을 모두 빼앗겼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정수장학회 사무실.

부일장학회의 소유권 이전 과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요구하는 이른바 ‘혁명자금’을 거부했던 김씨는 1962년 3월 재산해외도피 혐의 등으로 중앙정보부에 체포됐다. 2개월여간 구금생활을 하다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MBC·부산MBC의 운영권 포기각서를 쓰고 나서야 풀려났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를 ‘헌납’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김씨의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는 ‘강탈’로 보고 있다.

5·16장학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등이 이사장과 이사진을 도맡다시피하며 운영됐다. 초대 이사장인 이관구 전 재건국민운동본부장을 시작으로 엄민영 전 내무부 장관, 박 전 대통령의 친구인 최석채 전 MBC 이사가 뒤를 이었다. 

박 전 대통령 사후 5공화국이 들어섰고 1982년 5·16장학회는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꿨다. ‘정수’는 박 전 대통령 내외의 이름에서 각각 ‘정(正)’자와 ‘수(修)’자를 따와 지은 것이었다. 간판은 바꿔 달았지만 이사장은 박 전 대통령의 동서인 조태호 전 MBC 이사, 김창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 등 측근들이 계속 물려받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1995년 이사장직에 올랐다. 박 후보는 이후 10년간 장학회 이사장직을 유지하며 2억5000여만원을 수령했는데 정식 급여 이외에 과다하게 지급된 섭외비와 상근직 수행 여부 등으로 지금까지 논란을 빚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 요구가 거세게 일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무렵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2004년 8월 당내 진상조사단을 꾸려 환수 압박에 나섰고, 이해찬 국무총리가 그해 연말에 정부차원의 진상조사를 공언하면서 정치쟁점으로 증폭됐다. 이는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의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사건 조사로 이어졌다.

진실규명위원회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로 김지태씨를 수사했다는 사실과 구속 상태에서 강압에 의해 작성된 기부승낙서에 서명을 한 사실 등을 밝혀냈다.

2007년에는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국가 공권력의 강요에 의해 김씨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것이 밝혀진 이상 국가는 피해자에게 그 재산을 원상회복함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수장학회의 재산 환수나 환원 조치는 없었다.

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비화하자 박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을 지낸 리비아 대사 출신의 최필립씨에게 이사장직을 넘겼고 최 이사장은 현재까지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

정환보·박홍두 기자 botox@kyunghyang.com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평화의 댐 보강 사업, 의도가 수상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9일자 기사 '"평화의 댐 보강 사업, 의도가 수상하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국토부, 근본적으로 해결 했다더니 또 혈세 투입

지난 8일 강원도 화천군 비수구미골에 위치한 평화의 댐을 찾았다. 지난해 말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평화의 댐 3차 보강 공사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춘천에서 1시간 30분 남짓.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은 아흔아홉 구비 코스가 말해 주듯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길이다. 남북 분단의 상징인 휴전선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10Km 떨어져 있다.

평화의 댐 관리 사업단이 있는 댐 정상부근에는 드넓은 공간에 비해 휴일임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10여 명으로 한산했다. 상류로 내려가는 급한 길을 따라 내려가 댐을 바라봤다. 높이 125미터, 넓이 601미터짜리의 육중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마치 하늘마저 가릴 듯한 기세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평화의 댐은 소양강댐보다 2미터 높아 국내에서 가장 큰 댐이다.

코흘리개에게도 댐 성금 강탈, 대국민 사기극

1986년 10월, 당시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높이 200미터, 저수량 200억 톤 규모의 금강산댐을 건설한다고 밝혔다.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것으로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의 물 폭탄', '12시간 서울 물바다', '북한의 남침 전략' 등을 주장하며 전국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대부분 언론은 '금강산댐이 붕괴하면 100m의 물기둥이 수도권을 덮칠 것'이라면서, '200억 톤 방류 시 63빌딩의 절반까지 물이 찬다'는 식의 보도로 '서울 물바다 설'을 확산시켰다.

하지만 평화의 댐 건설의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와 대통령 직선제를 강하게 요구하는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2001년 7월 20일 방영된 MBC 의 '200억 톤 물 폭탄의 진실 - 금강산댐'에서는 평화의 댐을 아무런 쓸모없다는 의미로 '바보댐'이라 칭하면서 "정치적 목적에 의한 5공 정권의 유물"이라 규정했다. 한편에서는 중동 건설 경기 붐이 사그라지면서 건설업체 지원을 위한 술수라는 지적도 있었다.

 
▲ 당시 언론보도 내용. ⓒ이철재

다시 1986년 당시로 돌아가 보면, 정권에 의해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은 반공의 도가니가 됐다. 금강산댐 반대 및 북 정권 규탄 집회가 전국에서 잇따라 열렸는데, 1000만 명이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은 예정된 순서인 냥 대응 댐 계획을 밝혔다. 북한의 수공을 저지하면서 오히려 북쪽을 수몰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이름을 평화의 댐이라 했다. 정권은 평화의 댐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전국적인 국민 모금 열풍도 만들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배고픔은 참아도 금강댐은 못 참아'라면서 사회 저소득층도 모금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도 보도했다.

당시 거지들이 집단 시위를 했는데, 평화의 댐으로 성금이 집중되니 거지들이 적선 받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댐 건설을 위해 초등학생들까지 돈을 내야 했던 당시의 사회 단면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국민 모금으로 모인 대략 600억 등을 포함해 1500억 원으로 1987년 2월 강원도 화천군 비수구미골에 댐을 만들게 됐다. 현재 금액으로 따지면 약 1조 원이 넘는 금액이다.

평화의 댐은 노태우 정권 시절의 5공 청문회와 김영삼 정권 시절 감사원 감사결과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것이 거듭 확인됐다. 금강산댐의 저수량은 200억 톤이 아니라 27억~60억 톤으로 최대치가 방류돼도 서울 마포, 용산 일부 저지대만 침수된다는 것이다.

국토부, 2단계 사업으로 근본적으로 해결했다더니 또 혈세 투입

평화의 댐은 이렇게 아무런 쓸모없는 애물단지가 됐다. 외신에서는 이런 평화의 댐을 두고 "불신과 낭비의 기념비적 상징물"이라 꼬집었다. 하지만 애물단지 콘크리트 댐은 또다시 혈세를 빨아들였다. 2002년 2300억 원을 들여 평화의 댐 2단계 공사가 시작돼 2005년 10월 준공됐다. 2단계 사업은 당시 북한의 임남댐(금강산댐)의 여수로(댐의 비상 상황일 때 긴급하게 물을 뺄 수 있는 수로)가 없는 상황에서 위성사진을 통해 공사 중인 사면 일부가 유실됐다는 것을 이유로 긴급히 추진됐다. 그 결과 현재와 같이 높이 125미터 규모가 된 것이다. 북쪽의 임남댐은 이후 여수로를 만든 것이 확인됐는데, 결과적으로 불신과 낭비가 반복된 꼴이 됐다.

지난해 10월, 이명박 정부는 급작스레 평화의 댐 치수능력을 증대한다면서 1650억 원을 들여 보강 사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평화의 댐은 북측 사면만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데, 극한 강우가 빈번하므로 남측 석괴 부분에도 콘크리트를 덧씌우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밝힌 예산 내역을 보면 △임시물막이 및 가설비 등 250억 △콘크리트 타설 1.5m 510억 원 △감세공 설치, 측면 보강, 홍수예경보 설비 등 410억 원 △부대공 및 기타 310억 원 △관리비 170억 원 (조사 설계비 65억 원 / 관리비 105억 원) 등이다.

2005년 10월 19일 2단계 완공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지난 86년 북한 금강산발전소 착공을 계기로 이듬해 공사가 시작됐던 평화의 댐 2단계 사업이 모두 마무리됨으로써 북측 임남댐(옛 금강산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와 북한강 상류지역의 집중호우에 따른 홍수피해를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게 됐다"고 언론을 통해 밝혀다. 근본적으로 방지하겠다던 사업이 7년 만에 또 다시 대규모 혈세가 투입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임남댐이 붕괴할 가능성을 고려해 보면 거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재 북측의 임남댐은 저수용량 36억 톤 규모로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강이 아닌 동해로 물을 흘리고 있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상 낙차가 큰 동해로 보내는 것이 발전용량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고질적인 전력난을 고려할 때, 댐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이미 2000년대 중반에 여수로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댐 안전성을 확보한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수공을 우려하고 있다. 이 점은 정치적 관계라는 점에서 쉽게 예측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김영삼 정권 시절 평화의 댐 감사에서는 임남댐에서 27억~60억 톤의 물을 모두 방류해도 서울의 일부 저지대만 침수된다고 밝힌 바 있다. 금강산댐의 저수용량이 36억 톤인 상황에서 피해는 크지 않으리라 예측 가능하다. 더욱이 수력 발전용 댐은 여름철에 물을 가득 담아 둬야 연중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전력난을 겪는 북측이 대량의 물을 북한강으로 흘려보낼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적어 보인다.

▲ 평화의 댐. ⓒ이철재

백 년도 못사는 국토부가 1억 년 대비

정부가 밝힌 3단계 공사의 근거는 극한 강우(PMP Probable Maximum Precipitation/ 가능 최대 강우량)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남댐 붕괴와 200년 빈도의 강우로 설계된 평화의 댐은 불안하므로 1만 년 빈도로 치수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보강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국토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다. 극한 강우는 2002년, 2003년 태풍 매미와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발생했는데, 그때부터 소양강댐 여수로 공사 등 기존 댐의 치수능력 증대 사업이 제기됐다. 평화의 댐 2단계 공사가 그 시점에 진행됐기 때문에 200년 빈도 설계를 1만년 빈도로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설계 변경을 통해 공사비를 부풀리는 것은 대형 토목 공사에서는 다반사다.

그럼에도 설계를 변경하지 않은 것은 대해 댐 설계 전문가는 "불가능한 상황이라 판단했을 것"이라 지적한다. 북쪽의 임남댐이 붕괴하는 것도 계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1만 년 빈도의 강우량까지 고려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댐 붕괴 확률 (1/1만)에 1만 년 빈도 강우 확률 (1/1만)을 계산하면, 두 가지 상황이 동시에 발생한 확률은 1/1억이 된다, 즉 1억 년에 1회 발생한 확률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으로 전문가들은 "백 년도 못사는 국토부가 1억 년을 고민하겠느냐"면서 국토부의 행태를 꼬집고 있다.

국토부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3차 보강을 추진한다는 정황 근거는 더 있다. 강원도 양구방면에서 평화의 댐으로 가다 보면 댐 정상부로 가는 길과 아래쪽 터널 두 갈래 길이 있다. 이 터널은 높이 6미터, 폭 10미터, 길이 약 30~40미터에 달하는데, 1단계 공사할 때 만들어진 터널이다. 정부의 주장처럼 극한 강우와 임남댐 붕괴가 되면 엄청난 물량이 유입되는데, 만수위가 되기도 전에 터널로 물이 빠져나가게 된다. 물이 나오는호스 끝을 누르면 압력이 높아져 물살이 세지는 것처럼 터널을 통해 나오는 물의 압력은 상상을 불허해 주변이 초토화될 가능성이 많다. 이는 터널이 평화의 댐과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댐 자체의 안전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 국토부는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국토부의 주장이 맞는다고 해도 1650억 원을 줄일 방안이 있지만, 이를 검토한 흔적이 없다. 댐 정상부에 파라피트(역L자형 옹벽)를 세우거나, 도수 터널을 추가로 뚫는 등의 방법은 혈세가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것이라 관련 전문가는 지적한다. 이 방법을 쓸 경우 1/5 수준으로 공사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임기 말에 갑자기 평화의 댐에 막대한 혈세를 쏟는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온다.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 평화의 댐 공사는 1단계, 2단계 공사 모두 특정 건설업체에서 진행했는데, '건설사 먹여 살리기 사업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평화의 댐의 진짜 이름은 '불신과 혈세 낭비의 댐'이다. 이런 곳에 혈세가 왜 또다시 투입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국토부는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초록정책실 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