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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9일 목요일

'학교 폭력' 진짜 원인은 '일진'도 '게임'도 아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09일자 기사 ''학교 폭력' 진짜 원인은 '일진'도 '게임'도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공작의 꼬리 경쟁] '교육 폭력'과 '학교 폭력'

요즈음 학교 폭력 문제가 크게 이슈가 되었다. 그에 따라 정부의 대책들이 있어 왔지만 학교 폭력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고, 더 잔인해졌다.

학교 폭력이 몇 십 년 꾸준히 악화되는 동안, 우리 사회의 대응은 반창고 붙이는 식의 간헐적인 예방 대책이나 사후 처벌 대책 등이 고작이었다. 손 놓고 있다가 사회적으로 물의가 되는 엽기적 사건이 터져 이슈가 되어야 뭔가 하는 걸 보여줘야 하는 압박에서 임기응변으로 나오는 대책들은 대부분 실제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며칠 전 학교 폭력 근절을 위한 정부 대책이 발표되었는데 이슈될 때마다 비슷한 대책들을 발표하는데 급급하기보다, 이제 그러한 많은 대책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신문이나 방송에 크게 뭔가 한다는 것을 공표하기보다는 진정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교 폭력의 근본 원인을 알아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정책으로 반영하여 꾸준히 개선해가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폭력, 특히 학생들에게 가하는 교육 폭력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입시 경쟁이라는 교육 폭력의 결과로 학생들이 고통 받으면서 그들의 심성이 피폐해 졌다. 학교 폭력, 우울증과 자살 등은 학생들의 겪고 있는 고통을 보여준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하고 그리고 그들의 피폐한 심성을 치유하지 못하면, 학교 폭력 문제나 우울증과 자살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육 폭력을 고치지 않고는 어떠한 예방과 처벌 대책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 폭력

현재 학생들은 사회로부터 경쟁 교육이라는 집단적이고 체계적인 아동 학대를 당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학생들이 입시 경쟁 체제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당하는 고통은 수 없이 많이 있다. 한 가지 예로 입시 경쟁으로 아이들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데, 잠을 안 재우기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그것도 1년 이상 몇 년이나 지속되는 혹독한 고문이다.

교육이 아이들에게 가하는 이러한 폭력은 학생들끼리의 학교 폭력보다 더 심각한 폭력이다. 왜냐하면 이 폭력은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차원의 폭력 아래서는 이를 피할 수 없을뿐더러 학부모나 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자녀나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학생들은 등수로 서열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비교 평가를 받는다. 학생들 자신이 등수로 평가 받듯이 그들 역시 친구와 인간의 가치를 서열로 판단한다. 그래서 급우들이 계급으로 나누게 된다. 학생들은 잘난 아이와 못난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잘 사는 아이와 가난한 아이, 힘이 센 아이와 약한 아이로 나누고 차별 대우를 한다. 이렇게 학생들이 급우를 나름대로 평가 기준에 따라 구분하고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은 학생들 자신이 학교와 가정에서 등수에 따라 차별 대우를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가장 중요한 학교 폭력의 예방책은 우정으로 형성된 급우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등수 경쟁 상황에서는 친구가 경쟁의 대상이 되고 이겨야 하는 라이벌이 된다. 급우를 배려하기보다는 1등 하는데 방해되는 라이벌로 여기는 풍토에서는 친구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형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와 달리 캐나다 등 여러 나라에서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업 평가를 등수로 표시되지 않는다. 등수로 누가 몇 등 했는지 그 서열 자체가 없고 등수로 서로 비교하는 경우 역시 없다. 그래서 수석 또는 꼴찌라는 말 자체가 없다.

입시 경쟁의 압박 강도는 살인적이다. 학생들은 아침 일찍부터 학교 수업으로 시작해서학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장기간 강도 높은 노동(?)을 시키려면 그에 따른 강도 높은 압박이 필요하다. 강한 압박을 하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밀착 통제, 잔소리, 심하면 구타로 연결되는 권위를 바탕으로 한 통제가 필요하다.

패자나 바닥에 떨어지는 사람이 버림받는 존재가 되는 곳이 한국 사회이다. 그래서 패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두가 경쟁에 매진하게 된다. 극단의 경쟁은 극단의 불안감에서 나온다. 학부모들은 자식이 패자가 될지 모른다는 극단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입시 경쟁 아래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좋은 대학 입학을 위해 자녀를 경쟁에 밀어붙여야 한다. 자녀가 커서 사회에서 패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사회이기 때문에. 강도 높은 경쟁의 달성으로 패자를 천대하여 비참하게 만드는 비정한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모두 패자가 될까 두려워하게 되며 경쟁에 전력투구하게 된다.

학부모들이 갖는 자녀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라고 하며 좋은 대학의 입학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게 만든다. '기러기 아빠' 현상이 보여주듯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가정의 기본 단위가 쪼개져 이산가족이라는 전시나 기근과 같은 극한 상황 외에는 보기 힘든 병적인 사회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교육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유일한 방법은 입시 경쟁, 즉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교육을 포기하는 것은 보통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패자가 멸시받는 혹독한 경쟁 사회에서 주류 교육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녀를 패자로 만드는 것과 같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포기하는 다른 방법으로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가거나 자녀를 유학을 보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극소수 계층에 해당 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입시 경쟁은 아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교육은 무시하고 등수에 의해 평가되는 강압적 교육이다. 이러한 교육이 인간 성장의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에 학생들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 그 피폐한 마음에서 당연히 예상되는 것들 중의 하나가 학교 폭력이다. 아이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경쟁 교육은 어린 학생들에게 사회가 가하는 폭력이다. 결국 경쟁 교육이 학교 폭력 등 학생들의 여러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학생들이 죽어 가는데 아직도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압적 경쟁 교육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쟁 교육은 학생들에게 가하는 폭력이고 이 폭력 아래서 학생들이 피폐한 심성의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권위에 근거한 강압적 경쟁 교육은 독립적 사고, 또는 창의력보다는 권위에 따르는 복종적 사고를 강요한다. 경쟁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경쟁력은 열심히 일하는 복종적 직장인의 양성을 통한 이윤의 경쟁력을 말할지는 몰라도, 안정된 심성에 기반을 둔 독립적 사고를 하는 창조적 인간을 양성하는 경쟁력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healthylifecarenews.com

경쟁과 사회의 폭력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이 있었지만, 경제 성장 우선과 경쟁 논리의 급격한 확대로 사회 전반에 걸쳐 국가 차원의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로 전환되었다. 학생들은 그 사회의 가치를 배우고 반영하는 거울이다. 학교 폭력 역시 사회의 폭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학교 폭력이 왜 증가하고 잔인해지고 있는지 원인을 살피면, 학생들에게 자살이나 정신병의 급격히 증가한 원인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 사회 전반에 퍼진 많은 고통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보일 것이다. 근원적 치료를 위해서는 현재 한국 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고통들이 왜 그렇게 급격하게 증가했는지, 게다가 그 고통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현재 한국은 무한 경쟁이라는 경쟁병에 걸려 있다. 이 병은 근래에 우리 사회에 경제 성장이 우선되고, 차등화 강화와 국제 경쟁력이 강조되면서 무한 경쟁이라고 하는 경쟁 위주의 사회로 돌입하면서 발생했다. 현재 경쟁이 그 도를 넘어서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막대한 낭비를 초래하며, 경제성장 동력마저도 저하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권력이 남용되면 그것이 폭력이다. 경쟁 위주의 권위 사회에서는 그 권위 또는 권력이 약자를 배려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개인의 이기적 이해를 위해 남용된다. 재벌의 횡포와 같은 돈의 권력 남용, 부정부패라는 정치권력의 남용, 사법부의 권력 남용, 언론 권력의 남용과 같이 권력이 약자 위에 군림하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큰 권력을 지닌 사람이나 단체만이 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 약자를 괴롭히는 무수한 조그만 권력들도 남용되고 있으며, 폭력으로 변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약자를 멸시하는 풍조나 권력의 남용은 학생들이 보고 배운다. 그들은 나름대로 일진회와 같은 권력을 형성하고 약자 위에 군림한다.

경쟁이 심해지면 주위 사람이 친구가 아닌 라이벌, 이겨야 하는 적이 되고 만다. 적대적 관계 속에서 상대를 해치더라도 내 이익만 차리려고 한다. 적대적 관계 속에서 상대가 못 되어야 내가 잘된다는 인식이 형성된다.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고 함께 기쁨과 고통을 나누기보다는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묻지 마 살인'과 같이 남이 잘되는 것을 못보고 고통을 받게 함으로써 만족을 얻는 심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적대적 관계에서는 학교 폭력에서 보듯이 친구가 적이 되고 친구의 고통조차 느끼는 못한다.

경쟁이 심해지면 사람들이 더욱 이기적이 되고, 이기심의 강조는 또 경쟁을 조장한다. 이기적인 기업주는 돈을 많이 벌어도 직원을 더 혹사시킨다. 이기적 상관은 부하를 희생시켜서라도 업무 실적만을 생각한다. 이기적 교장은 선생과 아이들을 희생해서라도 학교의 명성을 높이려 한다. 이기적 재벌 기업들이 구멍가게들을 없애고 서민의 삶을 희생해서라도 유통구조를 장악하려 한다. 이기적 급우는 우정이나 배려보다는 친구를 돈을 갈취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경쟁이 심해지면 남을 믿지 않는 사회가 되고 구성원 사이의 유대가 약화된다. 사람들은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 아래 주위 사람들은 승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인간의 관계가 우정이나 신뢰와 같은 가치가 아닌 서로의 이용 가치에 기초한 사회에서는 서로가 이용하려고만 하고 서로를 믿지 않게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기쁨과 아픔을 공유하는 우정에 바탕을 둔 관계는 약화되고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불신의 관계가 강화된다. 급우를 우정으로 대하는 관계라면 현재 목격되는 잔인할 정도의 학교 폭력들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경쟁의 강화는 그 도를 넘어서 '경쟁병'이 되었고 사회 곳곳에 여러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의 우울증 증가하고(2000~2007년 정신병 증가는 남자 100퍼센트, 여자는 200퍼센트)라든가, 여성들의 출산을 거부하고(한 여성 당 평균 출산율이 1.2), 어린 학생이 밤 10시 이후까지 학원에서 혹사당하고, 직장인들이세계에서 가장 일 많이 하고(한국의 직장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해 연간 약 60일 또는 490시간을 더 일한다), 자살률은 세계 2위(1989~2009년 사이 자살률 500퍼센트 증가)가 되는 것과 같이 '경쟁병'의 증상이 만연했다.

이러한 증상들은 무한 경쟁이라는 가치에 기초한 우리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 폭력 역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이러한 폭력의 한 부분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자라는 학생들은 그 폭력의 희생자로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들 자신들 역시 그 폭력을 배우고 동시에 급우에게 고통을 주는 폭력을 행사한다.

학교 폭력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폭력 특히 입시 경쟁이라는 교육 폭력의 포기라는 큰방향 전환이 요구 된다. 교육의 방향 전환을 위해서는 '경쟁 교육이 이대로 가면 미래 세대는 희망이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필요로 한다. 과거 1997년 외환 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이 한국 사회가 보여준 저력이 있다. 그들은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 기꺼이 단결하고 협동했다. 이러한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구성원들이 학교 폭력의 근본 원인을 인식하고 위기 위식을 갖게 된다면 경쟁 교육을 바꾸는 방향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서상철 캐나다 윈저 대학 교수

2012년 1월 1일 일요일

제약 자본, 정신병 주고 약 팔기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12-09일자 기사 '제약 자본, 정신병 주고 약 팔기'를 퍼왔습니다.

50년 전 등장한 신경이완제는 의학적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은데도 미국 정신의학계에서 널리 애용되고 있다. (DSM)가 임상의 사이에 절대적인 진단 지침서로 각광받으며 전세계적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확한 인식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에 설립된 의료영상기업 ‘세어스캔’(CereScan)은 뇌영상으로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업체이다. 뇌영상을 통해 정신장애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PBS)(1)이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자세히 소개했다. 11살짜리 남자아이가 엄마·아빠 사이에 앉아 얌전히 자기공명영상(MRI)(2) 뇌 촬영 결과를 기다린다. 한 여성 임상사회복지사가 소년에게 떨리는지 묻는다. “아니요.” 소년이 대답한다. 대답을 들은 복지사가 가족에게 뇌영상을 꺼내놓는다. “자, 보세요. 여기는 빨간색, 여기는 주황색인 게 보이죠. 원래는 초록색, 파란색을 띠어야 정상이랍니다.” 요컨대 색에 따라 어느 것은 우울증, 어느 것은 양극성장애(조울증) 또는 불안과 관련한 각종 정신장애를 뜻한다는 설명이다.
정신장애 진단 왜 폭증하나 했더니
오늘날 미국 사회는 이상 증상에 점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세어스캔도 이런 사회적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업체에 따르면, 18~54살 미국인 가운데 ‘불안장애와 관련한 병리적 이상 및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은 7명 중 1명, 다시 말해 모두 900만 명에 달한다.(3) 미래 유망 시장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세어스캔은 앞으로 미국 내에 의료영상센터 20곳을 새로 개설할 계획이다.
일반인에게 기대되는 규범 행동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된 바는 없다. 그럼에도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은 ‘주의력결핍’ 등 병리학적 장애나 이상 증상에 대한 진단 기준을 자세히 나열·분류해놓고 있다.  (DSM)은 미국 임상의들 사이에 절대적 진단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활용 사례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그 결과  (DSM)에 따라 ‘병리적 이상’을 진단받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아래 기사 참조). 한 예로 미국에서는 2000년대 초 이후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은 어린이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1992년 1만6천 명에 불과하던 6~22살 자폐 환자도 2008년 29만3천 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2000년부터 집계에 들어간 3~6살 어린이 환자까지 모두 합하면 이 수치는 무려 33만8천 명에 이를 것이다.


<뉴저지, 미국>, 1966-엘리엇 어르위트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중증 정신장애를 이유로 연방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수혜자도 매일 1100명(성인 850명, 어린이 250명)씩 늘어났다. 정신장애자를 걸러내는 사회적 그물망이 점차 촘촘해지는 셈이다. 문제는 성인 임상시험 결과, 약물치료가 장기적으로 반드시 분명한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초기 몇 주간은 긍정적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일반적으로 위약을 복용한 경우에도 초기에는 긍정적 반응이 나타난다). 하지만 좀더 장기적 차원에서는 복구하기 힘든 뇌손상이나 후천적 이상운동증(Dyskinesia)(4) 등을 일으킨다.
본격적으로 정신이상에 대한 약물치료가 시작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프랑스 의사 앙리 라보리의 연구를 토대로 말라리아·결핵·수면병에 약물요법을 시행한 것이 단초가 됐다. 라보리 박사는 프로메타진 투여가 ‘행복감을 동반한 편안한 정신상태’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51년, 그는 이런 상태를 ‘약에 의한 전두엽백질절제술’(Medicinal Lobotomy)에 비유했다. 1949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가 창안한 ‘전두엽백질절제술’(Lobotomy)(5)에 빗대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전두엽백질절제술에 이어, 최초의 신경이완제(훗날 ‘소라진’(Thorazine)으로 불림) 역시 순식간에 여러 정신병원으로 확산됐다. 심지어 대서양 너머로까지 널리 전파됐다. 이를 기점으로 정신질환이 뇌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인식이 서서히 싹텄다. 언론매체도 대중을 상대로 리튬이나 ‘프로작’(Prozac)(1988년 시판), ‘졸로프트’(Zoloft), ‘자이프렉사’(Zyprexa) 등 여러 의약품이 지닌 ‘기적’ 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신경이완제가 등장하면서 정신과 전문의에 이어 의무실 직원, 임상사회복지사까지 전에 없던 폭넓은 약처방권을 누리게 됐다. 반면 심리치료나 운동, 영양 개선, 사회성 향상 등 다른 치료법은 등한시됐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약물치료가 더욱 증가했다.  (DSM)이 진단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정신질환의 종류도 한층 세분화되고 늘어났다. 의료 당국의 축복 속에 약물치료가 급증했다
화학적 치료 올인, 사회적 치료 외면
제약사가 우발적 정신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지 이것뿐이었다.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이 필요하듯, 여러분에게도 약이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제약업계의 충직한 홍보원 노릇을 하며 두둑이 배를 채워온 대니얼 카알랏 박사가 제약산업의 영향력을 비난했다.(6) “우리는 내방자에게 본인의 뇌가 화학적으로 불균형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환자 자신이 진짜 아프다고 믿게 만들려면 의학적으로 신빙성 있는 설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진실인지는 아직 확실히 증명된 바가 없다.”(7)
여러 추적연구(제약회사가 실시한 연구는 아니다)에 따르면, 신경이완제의 효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약화된다. 대개는 좀더 강도 높은 발작이 다시 찾아온다. 심지어 위약치료군보다 훨씬 더 심하게 병세가 악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임상의는 투약량이 너무 적거나 치료법이 적절치 않았나 보다며 오히려 투약량을 늘리거나 치료 강도를 높일 뿐이다. 결국 병세는 더욱 악화되고 장애도 한층 깊어진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런 악순환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1951년 라보리 박사가 ‘약에 의한 전두엽백질절제술’이라고 표현했듯이, 때로는 진짜 ‘전두엽백질절제술’과 유사한 악순환이 빚어진다.
아프다고 믿게 만들라
이런 불편한 진실 앞에 제약회사와 연구원들은 종종 임상실험 과정과 결과를 은폐하거나, 심지어 일부 내용을 삭제해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한 예로 미국 텍사스대학 연구팀은 그런 식으로 청소년 의약품 ‘팍실’(Paxil)의 임상실험 결과를 위조해 발표했다. 임상실험에 참여했던 환자의 자살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쏙 빼버린 것이다. 의약계는 이 약이 청소년 환자에게 내약성이 우수하다고 치켜세우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런데 이 약을 개발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과거 한 내부 문건에서 이 약이 위약보다 더 효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음이 밝혀졌다. 결국 업체는 허위광고 혐의로 법원에 제소됐다. 하지만 업체는 재판 대신 손해배상 쪽을 택했다. 재판으로 이미지가 실추돼 판매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판단이었다.(8) 이는 제약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다. 이 점에서 제약업계는 담배산업과도 많이 닮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신경이완제가 거의 효능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지어 이를 복용한 환자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은 묵살됐다.(9) 제약업계의 재정적 지원에 대대적으로 의존하는 각 대학의 정신의학과는 일반적으로 심각한 이익갈등에 노출돼 있다. 감히 의약품이나 제약사의 이미지를 실추하는 발언을 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2000~2007년 미국 에모리대학 의학대학원 정신의학과 학과장은 수백여 차례에 걸쳐 의약품 홍보 성격의 강연에 참가한 대가로 여러 제약사로부터 280만 달러 이상의 자문료를 받아 챙겼다(더욱이 제대로 소득신고도 하지 않았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연구소(NIMH)의 전 소장도 2000~2008년 ‘기분안정제’(Mood Stabilizer·양극성 장애를 조절하기 위한 약으로, 신경안정제와는 다르다)를 홍보해준 대가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서 130만 달러를 받았다. 특히 그는 당시 (NPR)의 한 인기 프로그램 진행자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에 대해 질문을 받은 그는 (뉴욕타임즈)에 “(이 바닥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고 대답했다.(10)
효과 적거나 되레 부작용 일으켜
제약회사에 이어 약처방권을 지닌 수많은 의료계 종사자까지 가세해 향정신성 의약품과 그 밖의 신경이완제 같은 약품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좀더 다양한 의약품을 더 많이 장기간 복용하도록 부채질하는 것이다. 한 예로 ‘노바티스’는 2000~200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 없이 양극성 장애와 신경성 통증 치료에 대해서도 항간질제 ‘트리렙탈’(Trileptal)을 불법으로 판촉했다가 4억2250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물었다. 오늘날 의료계에는 의약품 홍보를 위한 강연이 판을 친다. 제약사는 평소 홍보할 약을 많이 처방한 의사에게 두둑이 돈을 챙겨주고 강연자로 나서게 한다. 수많은 동료 의사들에게도 돈을 주어 청중석을 채우게 한다. 문제는 여기에 드는 천문학적 수준의 마케팅 비용이 최종적으로 의약품 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전부 환자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의사들의 공모, 약에 저는 두뇌
그렇다면 대체 정상과 질병의 경계는 어떻게 그어지는 것일까? 사실 정신질환의 범주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현 의료 시스템의 병폐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늘날 의료 시스템은 온갖 종류의 ‘장애’를 만들어내며, 환자들이 의약품을 과다하게 소비하거나, 의사들이 과잉 진료를 하도록 부채질한다. 게다가 환자가 자기에게 적합한 치료를 받기 더 힘들게 하고 -특히 ‘행위별 수가제’(FFS·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그 횟수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가 운용되는 경우 어떻게든 ‘진료 건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므로- 쓸데없는 진단 검사나 무분별한 약 처방을 부추긴다. 그런데 오늘날 오랜 추적연구의 결과가 하나둘 쌓이면서, 정신분열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약물로 다스리는 것이 다른 치료법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물론 드물기는 하나, 일부 예외적인 경우 단기간 약물치료가 더 효과적인 경우는 있다).(11) 결국 약물치료보다는 운동·대인관계·일 등이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더 편안히 해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거나, 가족 혹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받을 때 더 자주 발생한다. 1970~90년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세계의 각 문화를 대상으로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에 대해 연구한 결과만 봐도, 약물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가 중·장기적으로는 전반적으로 건강상태가 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12)
그런데도 오늘날 신경이완제가 제약사의 매출을 올려주거나 배를 불리는 데 널리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약 부문은 지난 50년간 수익성 높은 산업 중 하나였다. 법률체계도 제약산업에 한없이 관대하다. 의료개혁안을 둘러싼 논의가 한참 진행되던 2009년, 보험사·제약사·의료서비스업계 등은 자신의 이권 수호를 위해 법률 입안자들에게 무려 5억4400만 달러에 달하는 로비자금을 쏟아부었다.  2009년 미국의 정신보건 부문 의료예산은 1700억 달러로, 최대 의료예산 항목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무려 2800억 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13) 아이러니한 사실은, 정신장애 약물치료가 급증하는 현 상황이 무색하게도, 수십만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여전히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전체 인구의 16%에 달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민(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은 2014년에나 실행될 예정이다)과 교정기관에 갇힌 수많은 수감자가 대표적인 예다. 감금 생활과 투옥 환경이 환자의 병세를 더 악화시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수감자는 무려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교정기관은 이런 문제에 수수방관할 뿐이다. 그 결과 수감자들은 자유의 몸이 되고 나면 치료를 이유로 다시 약물에 손을 대거나, 심지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만다.

 / 올리비에 아펙스 Olivier Appaix 경제학자
의료 및 후진국 개발 전문 경제학자.

번역 / 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The Medicated Child’, TV 프로그램 , 보스턴, 2008년 1월.
(2) 미국의 경우 40~60분간 MRI로 뇌를 촬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1500~3천달러다. 
(3) ‘Anxiety Disorder’, www.brainmattersinc.com, 2009.
(4) 이상운동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안면의 움직임이 특징이다. 특히 턱에 경련이 일고, 혀가 반복적으로 돌출된다.
(5) 대뇌의 전두엽백질을 잘라서 시상과의 연락을 단절시키는 수술 방법으로, 정신분열증 치료에 사용됐다. 환자 인격 붕괴 위험 등의 부작용으로 더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6) 대니얼 카알랏,(Unhinged. The Trouble with Psychiatry. A Doctor’s Revelations about a Profession in Crisis) , 프리프레스 출판사, 뉴욕, 2010.
(7) 대니얼 카알랏의 미국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
(프레시에어) 인터뷰, 2010년 7월 13일.
(8) ‘When drug companies hide data’, (뉴욕타임스), 2004년 6월 6일. 이 회사는 30억 달러를 지불하고, 팩실 등 자사 생산 의약품과 관련한 재판을 중단시켰다. ‘Glaxo settles cases with US for 3 billion dollars’, (뉴욕타임스) 2011년 11월 3일자 참조. 
(9) 로버트 휘터커, (Anatomy of an Epdemic Magic Bullets, Psychiatric Drugs, and the Astonishing Rise of Mental Illness in America), 크라운 출판사, 뉴욕, pp.304~307, 2010.
(10) (뉴욕타임스), 2008년 11월 22일.
(11) 로버트 휘터커, 위의 책.
(12) 휘터커 인용 연구. WHO에 따른 건강상태에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포함된다.
(13)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센터, www.cms.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