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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5일 토요일

장애 입어도 나몰라라 …"무술연기자는 근로자다"


이글은 2013-05-24일자 기사 '장애 입어도 나몰라라 …"무술연기자는 근로자다"'를 퍼왔습니다.
[기획] 방송가 사각지대를 찾아가다 - ④ 무술연기자 편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TV브라운관 속 연예인들. 그러나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일반 연기자들의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내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성우, 개그맨, 무술연기자, 연극인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5000여 명 가운데 70% 이상이 연 1000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일상을 꾸려간다. 4대 보험 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출연료가 떼여도 속수무책이다. 방송의 매력에 이끌려 이 바닥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다른 업종으로 빠진 전직 연기자들도 허다하다. 미디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연기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스는 화려한 방송계의 이면, 그늘진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총 5차례에 걸쳐 게재된다. 탤런트(1회), 성우(2회), 개그맨(3회), 무술연기자(4회) 4차례에 걸쳐 이들의 현주소를 조명할 예정이며 마지막 기사(5회)에서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법제도 장치들이 필요한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사례1. 2010년 MBC 사극드라마를 찍던 무술연기자 A씨는 촬영 도중 말에서 떨어져 발에 부상을 입었고 결국 '장애' 판정을 받았다. 산재를 신청했으나 '무술연기자는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됐고,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A씨는 장애로 인해 더 이상 무술연기 일을 할 수 없어, 집에서 쉬고 있다.
#사례2. 2012년 종합편성채널의 사극드라마를 찍던 무술연기자 B씨는 전쟁장면을 촬영하던 도중 성벽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무릎 수술을 3번이나 받아야 했으나 보험 적용이 안돼, 제작사 차원에서 치료비의 일부를 보전해줬을 뿐이다. B씨는 현재 재활 치료 중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현란한 전쟁, 격투장면을 전담하는 무술연기자들은 일반 연기자들에 비해 다치는 일이 잦다. 국내 무술연기자 320여명 가운데, 한해 평균 20명이 다치고 이 중 10명은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치료비 등의 관련 비용은 철저히 방송사-제작사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관련 비용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경우 별도 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치료받는 도중의 '무급' 상태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A, B씨의 경우는 무술연기자들이 부상을 입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다.
2005년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무술연기자지부'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출연료를 받지 못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신청이 거부됐던 것도 무술연기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예술인까지 산재보험이 확대적용됨에 따라, 4월 8일 촬영 도중 부상당한 무술연기자가 처음으로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사극의 전투 장면을 촬영하다 창에 얼굴과 목을 찔려 부상당한 이 연기자는 치료비용 전액과 함께 일을 못하는 기간에 매일 평균임금 6만4천원의 70%에 해당하는 4만4800원을 휴업수당으로 지급받게 된다.

"무술연기자는 치외법권지대에서 살고 있나?"


▲ 김태득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무술연기자지부 지부장

김태득 무술연기자지부장은 16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산재가 인정된 것은 저희들에게 큰 의미"라며 "안전모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김태득 지부장은 드라마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해신) (불멸의 이순신) (무신),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그녀를 모르면 간첩) 등에 출연한 경력 15년차의 무술연기자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무술연기자가 '근로자'임을 인정받아 산재신청이 받아들여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태득 지부장은 "만약 이번에 근로복지공단이 무술연기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해서 산재를 받아들인 거라면, 2010년에 다친 A씨도 소급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건 아니다.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워낙 미약하기 때문에 특별히 인정해준 것일 뿐"이라며 "그동안 다친 분들이 많지만 (일정기간 쉬며 치료한 이후에는) 현장 복귀가 가능한데 A씨의 경우는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태득 지부장은 "탤런트와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무술 연기자 몇명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거의 생계형"이라며 "4대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저희는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치외법권지대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김태득 지부장은 무술연기자들이 다른 연기자들에 비해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현장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 무술연기자라는 직종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역사가 궁금하다.
7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주로 영화에서 액션배우로 활약했었고, 이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무술연기자 직종이 많이 활성화됐다. 방송사나 외주사가 특정 무술감독한테 의뢰해서 인원수를 정해주면, 무술감독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시스템이다.
- 임금이나 복지 등 처우는 어떠한가?
조합원은 320여명인데, 대부분 힘들게 산다. 탤런트와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무술 연기자 몇명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거의가 생계형이다. 저희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처럼 돼 있다. 사업자등록증도 없는데 왜 사업자로 분류되는가? 저희는 (방송사나 제작사가 세워놓은) 스케쥴 표에 따라서 움직이고,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종속관계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니라니….  4대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보장 제도 혜택도 받지 못한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4대보험 혜택을 받는데. 저희는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치외법권지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평균적으로 1년에 2000만원에서 3000만원 번다고 보면 된다. 다쳐서 아예 소득이 없는 사람도 있고. 촬영이 있는 날만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임금은 높지 않다. 쉬는 날에 알바를 하려고 해도,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까 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는 경력이 많고 직급이 높아지면 보수가 많아지지만 저희는 30대 초반 이후부터 점점 하향곡선이다. 나이가 들면 현장에서 부르질 않으니까. 오히려 경력많은 사람이 더 돈을 못버는 게 현실이다.

"방송사→외주사 체제로 변환되면서 상황 복잡"

- 무술연기자로서 현장에서 어떤 고충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희는 매니저가 따로 없으니까 직접 운전해서 촬영장에 가는데, 숙달된 사람은 빽빽한 일정 속에서도 졸음을 참고 운전하지만 신입들은 조는 바람에 교통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사고가 나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다. 


▲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KBS1TV에서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 촬영 당시 김태득 지부장(왼쪽)이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

저희는 하루 일정 속에서도 이동할 일이 많은데. 관련 비용이 현실에 잘 안맞게 책정돼 있다. 드라마는 지역으로 촬영갈 때 교통비를 편도만 지급해 준다. 영화는 왕복지급해 주는데. 예를 들어, 하루 촬영 스케줄이 문경-부여-완도라면 실제 이동거리에 따른 교통비를 주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가장 먼 완도까지 가는 비용만 주는 거다.
해외촬영에 대한 규정은 명확한데, 제주도나 도서지역 같은 경우는 불명확하다. 제주도 촬영을 가면서, (관련 비용을) 나중에 받기로 했다가 결국 못받은 사례도 있다. 제주도에 가면, 당장 그날 촬영은 없지만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날도 있는데 이럴 때는 비용이 지급 안 된다. 도서지역도 마찬가지다. 배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저희가 배값을 부담해야 할 때도 있다. 촬영을 위해 지역에 내려갔다가 취소되서 올라오는 경우에도 교통비는 줘야 하는데 이것도 불명확하고. 기름값도 변동제가 아닌 고정제다. 물가는 계속 올라가는데. 최근에는 유료화된 톨게이트도 많은데, 톨게이트비도 거의 안나온다.
- 출연료 미지급 문제는 자주 일어나나?
출연료 미지급이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니시리즈의 경우, 마지막회가 나가는 달의 익월 말에 지급된다. 만약 월초에 미니시리즈가 끝나면 출연료를 지급받기까지 거의 2달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관행상 그렇다.
만약 부실외주사가 제작했다면, 출연료는 거의 떼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저희는 출연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노동조합이라도 있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서 대변해 주지만, 2005년 전에는 더 열악했다. 보험도 알아서 들라고 했었고, 모든 걸 개인이 알아서 해야 했으니까. 출연료를 받지 못하면, 따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그런데 만약 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출연료를 지급하도록) 강제집행하기는 힘들다. 승소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비용도 만만치 않고. 아직까지도 미지급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장 이상적인 안은 선지급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힘드니, 3분의 2정도라도 촬영이 끝나기 전에는 지급돼야 하지 않겠나. 만약, 미리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다면 (촬영 도중) 보이콧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출연료가 선지급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는 카드빚을 내거나 돈을 빌려서 (그돈으로 생활하면서) 촬영에 나간다. 정상지급되면 나중에 메꾸면 되는데, 안나올 경우 카드 돌려막기를 해야 하고 지인들에게 신용도 떨어지고…. 출연료를 못받으면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나. 예를 들어 이사가기 위해 대출받으려고 해도, 제1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으니까 제2금융권에 간다. 거기도 안되면 사금융을 이용한다. 이자가 엄청난데…. 이렇게 되면 생활이 파탄나는 것이다.
2009년 방영된 SBS 모 드라마의 경우, 아직도 저희 조합원들이 1억8천만원을 받지 못한 상태다. 생계에 큰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 드라마를 만든 제작사가 없어진 것은 아닌데 자체적인 채무관계가 있어서 돈을 못 준다고 하더라. 방송사 자체 제작 시스템에서 외주사 체제로 변화되면서 상황이 복잡해 졌다. 방송사 PD가 와서 총괄하는데, 외주사가 제작하고. 법적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 애매하다.

"현장에 안전요원 한명이라도 배치해 달라"

- 다른 직종에 비해 특히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 촬영현장에서 비상상황 대처나 응급조치는 잘되고 있나?
영화 촬영 도중에는 사고가 잘 안난다. 안전장치가 잘돼있고, 리허설을 많이 하니까. 시간도 여유롭고. 그런데 드라마는 빨리 찍어서 빨리 내보내야 하니까, 서두르다 보니 다친다. 현장에서 안전장치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아, 저희가 자구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방송사나 제작사가 나서주지 않기 때문에) 노조 차원에서 협력병원을 섭외하고 있다. 협력병원이 지정되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현장으로 앰뷸런스가 올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치더라도, 스스로 운전해서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까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쳐도 곧바로 치료받을 수도 없고…. 굉장히 마음 아프다. 사실, 저희가 바라는 안전망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안전요원이라도 한명 배치해서, 지원해준다면 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
- 2005년 무술연기자지부가 생겼을 때, 최우선 과제로 현장에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대책과 사고 후 보상실태 등에 대해 조사 연구작업을 벌이겠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됐나?
진행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이 오히려 실태조사를 꺼린다. 실태조사를 통해 현실이 드러나면, 보험가입이 더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술연기자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 (나중에) 보험이 해지된 경우도 있었으니까 조심스러운 거다.  - 종편 출범으로 무술연기자들의 활로가 넓어졌나?
일단, 양적으로는 넓어졌다. 그러나 아직 종편과는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종편에서도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통일된 출연료 기준표가 아예 없으니까.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

2012년 8월 6일 월요일

아프니까 장애인이다? 사회가 손상을 장애로 만든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05일자 기사 '아프니까 장애인이다? 사회가 손상을 장애로 만든다'를 퍼왔습니다.
[리뷰]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배제된 일할 수 없는 몸"

대다수 선진국의 ‘장애’ 규정에 준거가 되는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의 국제장애분류기준에 비추어 볼 때 장애에 대한 한국의 법적 정의는 한참 뒤떨어져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장애를 의학적이거나 생물학적 기능장애로 보지 않고, 장애의 사회적 모습을 고려한다(ICF takes into account the social aspects of disability and does not see disability only as a ‘medical’ or ‘biological’ dysfunction.). 세계보건기구는 1997년부터 여러 차례 장애에 대한 정의를 수정하면서 상황적(contextual)·환경적(environmental) 요인을 추가했다.

그러나 는 보건기구의 정의 또한 “주류적 정의”라고 평가하며 “‘의료 모델’에 기초해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본다. 보건기구의 정의에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상당한 제약’의 근거로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든다.

책을 쓴 김도현은 “‘손상→기능제약→사회적 불리’라는 3단계 도식에서 장애의 본질과 원인은 결국 개인이 몸에 지니는 손상에 있으며, 따라서 장애 문제 역시 이러한 손상을 잘 치료하거나, 치료하다가 안 되면 재활을 통해 소위 잔존 능력을 강화시켜 해결하고자 한다”며 장애에 대한 주류적 정의와 인식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밝힌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명칭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추적하면서 정치적 함의를 찾는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불구자나 폐질자라는 용어가 쓰였다. 폐질은 고질(고칠 수 없는 병)을 뜻하며 고려 때부터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문헌에 등장한다. “이러한 용어법은 장애를 질병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시 의료적 관점에 굳게 기초해 있지만, 그 의미상 더 이상 치료나 재활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대의 장애 개념보다 나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고 장애라는 표현이 공식화된다. 이 법은 1990년에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고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김도현은 이를 영어 disability를 번역한 일본어 ‘장해자’를 참고해 옮긴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치권을 비롯해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는 여전히 ‘장애우’라는 말을 쓴다. 이에 대해 김도현은 “장애인이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나타내는 1인칭의 표현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대로 “나는 장애우입니다”라는 표현은 성립할 수 없다. 이는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김도현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마서즈 비니어드에서 농인(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한다. 왜냐면 섬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와 수화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바이링귀스트(bilinguist)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장애를 만드는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10대 중 1대만 저상버스인 한국의 대중교통은 나머지 9대를 이용하는 사람들 중 일부에게 ‘장애’를 느끼게 한다. 휠체어 이용 시민은 저상버스에서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2011년 기준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 비율은 12%고, 서울의 경우 24%다.

텔레비전 시청도 마찬가지. 수화 비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농인은 텔레비전 앞에서 장애인이 되고, 드라마 생방송에 화면해설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맹인은 장애인이 된다.

이 같은 사례는 특정한 ‘손상’이 바로 ‘장애’가 되는 경우가 아니다. 사회가 장애를 만드는 경우다. 마치 사고로 깁스를 한 사람에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데 힘든 것처럼 장애는 손상을 차별하는 사회가 원인이라는 시각이다.

김도현은 ‘장애’가 자본주의의 자본-임금노동 관계에서 생겨난 개념이라며 “일을 할 수 있는 몸(the able bodied)를 선별하기 위해 일을 할 수 없는 몸(the disabled bodies)를 명확히 규정하고자 했다”고 지적한다. 테일러·포드주의 시스템 등 엄격한 노동규율과 표준화된 동작을 요구하는 시스템은 장애인을 노동에서 배제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최저임금법’이다. 한국에서 최저임금법 적용의 예외 대상은 유일하게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다. 장애인을 노동에서 배제하는 이러한 시각은 북유럽 복지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도현은 “스웨덴의 경우에도 장애인은 ‘신체적 결손, 정신적 결손, 사회적 장애(알코올·약물중독, 언어장애가 있는 이민자)로 인해 취업이나 직장유지가 곤란한 자’로 정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김도현은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보는 비뚤어진 시각이 우생학의 유령을 되살아나게 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황우석 사태를 예로 들며 ‘척수 장애인을 번쩍 일어나 걷게 만들겠다’는 황우석의 발언은 장애인을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인다. 현재도 모자보건법은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을 근거로 장애여성에 대한 임신중절 수술을 합법적·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김도현은 장애인운동의 근본적 과제로 통합이 아닌 변혁을 든다. 그는 “우리의 신체성 자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다”는 1960년대 일본의 급진적 장애인 운동의 구호를 소개하면서 진보적 장애운동이 자본주의 사회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단순히 배제만이 문제라면 장애인들을 현재의 사회에 통합시키면 된다”면서 “그러나 기존의 사회 자체가 장애인의 실존 자체와 충돌한다면 그러한 통합은 새로운 체제,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김도현 지음/ 메이데이/ 2007년 4월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