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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5일 토요일

장애 입어도 나몰라라 …"무술연기자는 근로자다"


이글은 2013-05-24일자 기사 '장애 입어도 나몰라라 …"무술연기자는 근로자다"'를 퍼왔습니다.
[기획] 방송가 사각지대를 찾아가다 - ④ 무술연기자 편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TV브라운관 속 연예인들. 그러나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일반 연기자들의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내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성우, 개그맨, 무술연기자, 연극인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5000여 명 가운데 70% 이상이 연 1000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일상을 꾸려간다. 4대 보험 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출연료가 떼여도 속수무책이다. 방송의 매력에 이끌려 이 바닥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다른 업종으로 빠진 전직 연기자들도 허다하다. 미디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연기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스는 화려한 방송계의 이면, 그늘진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총 5차례에 걸쳐 게재된다. 탤런트(1회), 성우(2회), 개그맨(3회), 무술연기자(4회) 4차례에 걸쳐 이들의 현주소를 조명할 예정이며 마지막 기사(5회)에서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법제도 장치들이 필요한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사례1. 2010년 MBC 사극드라마를 찍던 무술연기자 A씨는 촬영 도중 말에서 떨어져 발에 부상을 입었고 결국 '장애' 판정을 받았다. 산재를 신청했으나 '무술연기자는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됐고,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A씨는 장애로 인해 더 이상 무술연기 일을 할 수 없어, 집에서 쉬고 있다.
#사례2. 2012년 종합편성채널의 사극드라마를 찍던 무술연기자 B씨는 전쟁장면을 촬영하던 도중 성벽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무릎 수술을 3번이나 받아야 했으나 보험 적용이 안돼, 제작사 차원에서 치료비의 일부를 보전해줬을 뿐이다. B씨는 현재 재활 치료 중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현란한 전쟁, 격투장면을 전담하는 무술연기자들은 일반 연기자들에 비해 다치는 일이 잦다. 국내 무술연기자 320여명 가운데, 한해 평균 20명이 다치고 이 중 10명은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치료비 등의 관련 비용은 철저히 방송사-제작사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관련 비용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경우 별도 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치료받는 도중의 '무급' 상태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A, B씨의 경우는 무술연기자들이 부상을 입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다.
2005년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무술연기자지부'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출연료를 받지 못해도 속수무책이었다.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신청이 거부됐던 것도 무술연기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예술인까지 산재보험이 확대적용됨에 따라, 4월 8일 촬영 도중 부상당한 무술연기자가 처음으로 산재 인정을 받게 됐다. 사극의 전투 장면을 촬영하다 창에 얼굴과 목을 찔려 부상당한 이 연기자는 치료비용 전액과 함께 일을 못하는 기간에 매일 평균임금 6만4천원의 70%에 해당하는 4만4800원을 휴업수당으로 지급받게 된다.

"무술연기자는 치외법권지대에서 살고 있나?"


▲ 김태득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무술연기자지부 지부장

김태득 무술연기자지부장은 16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산재가 인정된 것은 저희들에게 큰 의미"라며 "안전모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김태득 지부장은 드라마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해신) (불멸의 이순신) (무신),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그녀를 모르면 간첩) 등에 출연한 경력 15년차의 무술연기자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무술연기자가 '근로자'임을 인정받아 산재신청이 받아들여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태득 지부장은 "만약 이번에 근로복지공단이 무술연기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해서 산재를 받아들인 거라면, 2010년에 다친 A씨도 소급적용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건 아니다.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워낙 미약하기 때문에 특별히 인정해준 것일 뿐"이라며 "그동안 다친 분들이 많지만 (일정기간 쉬며 치료한 이후에는) 현장 복귀가 가능한데 A씨의 경우는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태득 지부장은 "탤런트와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무술 연기자 몇명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거의 생계형"이라며 "4대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보장제도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저희는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치외법권지대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김태득 지부장은 무술연기자들이 다른 연기자들에 비해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촬영현장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해 지적했다.     - 무술연기자라는 직종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역사가 궁금하다.
70년대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주로 영화에서 액션배우로 활약했었고, 이후 드라마 시대가 열리면서 무술연기자 직종이 많이 활성화됐다. 방송사나 외주사가 특정 무술감독한테 의뢰해서 인원수를 정해주면, 무술감독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시스템이다.
- 임금이나 복지 등 처우는 어떠한가?
조합원은 320여명인데, 대부분 힘들게 산다. 탤런트와 마찬가지로 잘나가는 무술 연기자 몇명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거의가 생계형이다. 저희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처럼 돼 있다. 사업자등록증도 없는데 왜 사업자로 분류되는가? 저희는 (방송사나 제작사가 세워놓은) 스케쥴 표에 따라서 움직이고,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 종속관계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니라니….  4대보험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보장 제도 혜택도 받지 못한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4대보험 혜택을 받는데. 저희는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치외법권지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평균적으로 1년에 2000만원에서 3000만원 번다고 보면 된다. 다쳐서 아예 소득이 없는 사람도 있고. 촬영이 있는 날만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임금은 높지 않다. 쉬는 날에 알바를 하려고 해도,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까 할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는 경력이 많고 직급이 높아지면 보수가 많아지지만 저희는 30대 초반 이후부터 점점 하향곡선이다. 나이가 들면 현장에서 부르질 않으니까. 오히려 경력많은 사람이 더 돈을 못버는 게 현실이다.

"방송사→외주사 체제로 변환되면서 상황 복잡"

- 무술연기자로서 현장에서 어떤 고충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희는 매니저가 따로 없으니까 직접 운전해서 촬영장에 가는데, 숙달된 사람은 빽빽한 일정 속에서도 졸음을 참고 운전하지만 신입들은 조는 바람에 교통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사고가 나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들도 있다. 


▲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KBS1TV에서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 촬영 당시 김태득 지부장(왼쪽)이 동료와 함께 찍은 사진

저희는 하루 일정 속에서도 이동할 일이 많은데. 관련 비용이 현실에 잘 안맞게 책정돼 있다. 드라마는 지역으로 촬영갈 때 교통비를 편도만 지급해 준다. 영화는 왕복지급해 주는데. 예를 들어, 하루 촬영 스케줄이 문경-부여-완도라면 실제 이동거리에 따른 교통비를 주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가장 먼 완도까지 가는 비용만 주는 거다.
해외촬영에 대한 규정은 명확한데, 제주도나 도서지역 같은 경우는 불명확하다. 제주도 촬영을 가면서, (관련 비용을) 나중에 받기로 했다가 결국 못받은 사례도 있다. 제주도에 가면, 당장 그날 촬영은 없지만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날도 있는데 이럴 때는 비용이 지급 안 된다. 도서지역도 마찬가지다. 배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저희가 배값을 부담해야 할 때도 있다. 촬영을 위해 지역에 내려갔다가 취소되서 올라오는 경우에도 교통비는 줘야 하는데 이것도 불명확하고. 기름값도 변동제가 아닌 고정제다. 물가는 계속 올라가는데. 최근에는 유료화된 톨게이트도 많은데, 톨게이트비도 거의 안나온다.
- 출연료 미지급 문제는 자주 일어나나?
출연료 미지급이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니시리즈의 경우, 마지막회가 나가는 달의 익월 말에 지급된다. 만약 월초에 미니시리즈가 끝나면 출연료를 지급받기까지 거의 2달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관행상 그렇다.
만약 부실외주사가 제작했다면, 출연료는 거의 떼이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저희는 출연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노동조합이라도 있어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서 대변해 주지만, 2005년 전에는 더 열악했다. 보험도 알아서 들라고 했었고, 모든 걸 개인이 알아서 해야 했으니까. 출연료를 받지 못하면, 따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그런데 만약 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출연료를 지급하도록) 강제집행하기는 힘들다. 승소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비용도 만만치 않고. 아직까지도 미지급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가장 이상적인 안은 선지급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힘드니, 3분의 2정도라도 촬영이 끝나기 전에는 지급돼야 하지 않겠나. 만약, 미리 지급한다는 규정이 있다면 (촬영 도중) 보이콧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출연료가 선지급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희는 카드빚을 내거나 돈을 빌려서 (그돈으로 생활하면서) 촬영에 나간다. 정상지급되면 나중에 메꾸면 되는데, 안나올 경우 카드 돌려막기를 해야 하고 지인들에게 신용도 떨어지고…. 출연료를 못받으면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나. 예를 들어 이사가기 위해 대출받으려고 해도, 제1금융권을 이용할 수 없으니까 제2금융권에 간다. 거기도 안되면 사금융을 이용한다. 이자가 엄청난데…. 이렇게 되면 생활이 파탄나는 것이다.
2009년 방영된 SBS 모 드라마의 경우, 아직도 저희 조합원들이 1억8천만원을 받지 못한 상태다. 생계에 큰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 드라마를 만든 제작사가 없어진 것은 아닌데 자체적인 채무관계가 있어서 돈을 못 준다고 하더라. 방송사 자체 제작 시스템에서 외주사 체제로 변화되면서 상황이 복잡해 졌다. 방송사 PD가 와서 총괄하는데, 외주사가 제작하고. 법적책임을 어디에 물어야 할지 애매하다.

"현장에 안전요원 한명이라도 배치해 달라"

- 다른 직종에 비해 특히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 촬영현장에서 비상상황 대처나 응급조치는 잘되고 있나?
영화 촬영 도중에는 사고가 잘 안난다. 안전장치가 잘돼있고, 리허설을 많이 하니까. 시간도 여유롭고. 그런데 드라마는 빨리 찍어서 빨리 내보내야 하니까, 서두르다 보니 다친다. 현장에서 안전장치가 제대로 정착돼 있지 않아, 저희가 자구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방송사나 제작사가 나서주지 않기 때문에) 노조 차원에서 협력병원을 섭외하고 있다. 협력병원이 지정되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현장으로 앰뷸런스가 올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치더라도, 스스로 운전해서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까 촬영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쳐도 곧바로 치료받을 수도 없고…. 굉장히 마음 아프다. 사실, 저희가 바라는 안전망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안전요원이라도 한명 배치해서, 지원해준다면 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
- 2005년 무술연기자지부가 생겼을 때, 최우선 과제로 현장에서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대책과 사고 후 보상실태 등에 대해 조사 연구작업을 벌이겠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됐나?
진행하지 못했다. 조합원들이 오히려 실태조사를 꺼린다. 실태조사를 통해 현실이 드러나면, 보험가입이 더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술연기자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가 (나중에) 보험이 해지된 경우도 있었으니까 조심스러운 거다.  - 종편 출범으로 무술연기자들의 활로가 넓어졌나?
일단, 양적으로는 넓어졌다. 그러나 아직 종편과는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종편에서도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오히려 더 심각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통일된 출연료 기준표가 아예 없으니까.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

2013년 5월 18일 토요일

“방송사, 성우 싼 값에 쓰고 2년마다 버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16일자 기사 '“방송사, 성우 싼 값에 쓰고  2년마다 버려”'를 퍼왔습니다.
[기획] 방송가 사각지대를 찾아가다 - ② 성우 편

화려해 보이기만 하는 TV브라운관 속 연예인들. 그러나 일부 톱스타를 제외한 일반 연기자들의 형편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내 방송에서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성우, 개그맨, 무술연기자, 연극인이 소속된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전체 조합원 5000여 명 가운데 70% 이상이 연 1000만원 미만의 소득으로 일상을 꾸려간다. 4대 보험 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출연료가 떼여도 속수무책이다. 방송의 매력에 이끌려 이 바닥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엄혹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다른 업종으로 빠진 전직 연기자들도 허다하다. 미디어스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연기자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반문했다. 
미디어스는 화려한 방송계의 이면, 그늘진 사각지대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획은 총 5차례에 걸쳐 게재된다. 탤런트(1회), 성우(2회), 개그맨(3회), 무술연기자(4회) 4차례에 걸쳐 이들의 현주소를 조명할 예정이며 마지막 기사(5회)에서는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법제도 장치들이 필요한지 고민해 본다. (편집자주)

평일 오후 6시, 매주 일요일 오전 8시와 오후 1시. 20여년 전, 지상파 3사에서 만화영화를 편성한 시간대다. (세일러문), (천사소녀 네티), (슈퍼 그랑죠),(디즈니 만화동산) 등의 만화는 초등학생이었던 기자를 TV 앞으로 붙잡아 두곤 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만화영화의 감칠맛을 더해 주는 것은 당연 성우의 몫이었다. 심술궂은 스크루지부터 꾀 많은 티몬, 코믹한 말투로 성대모사까지 등장시킨 저팔계의 목소리까지. 성우들은 능숙한 연기로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어린 시절 KBS2TV에서 방영했던 (X파일)에 대한 기억도 성우들과 닿아 있다. (X파일)의 주인공 스컬리의 도도한 목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하지만 요즘, 방송에서 성우의 존재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몇 년 전 기계같이 무미건조한 투로 재미난 상황을 설명해 화제가 됐던 (남녀탐구생활)의 서혜정 성우가 인기를 끌었던 것이 성우와 관련된 가장 인상적인 기억일 뿐이다. 특히나 요즘은 연기자나 인기 아이돌 등이 성우의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잦다. 그 많던 성우들은 어디로 갔을까. 매년 새로운 성우들이 발굴되고 있기는 한 것일까. 

미디어스는 지난 2일 김영진 한국성우협회 사무총장을 만나 성우들의 ‘요즘’은 어떤지 들어 보았다. 김영진 사무총장은 94년 KBS 공채 24기로 (도전! 골든벨), (대결 노래가 좋다), (KBS스페셜) 등 굵직한 프로그램을 맡았다. 2002년 KBS (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수상하기도 한 김영진 사무총장은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는 프리랜서 성우다.

공채 2년 뒤에는 프리랜서로… “싼 값에 고급인력 쓰고 버려”


▲ 김영진 한국성우협회 사무총장. 김영진 사무총장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직 성우다. ⓒ한국성우협회

미디어스(이하 미) : 방송사에서는 공채 탤런트를 안 뽑은 지 5년이 다 되어 간다. 성우들은 상황이 어떤가.

김영진 사무총장(이하 김) : KBS의 경우 매년 12명씩 뽑는다. EBS는 2년에 한 번 뽑고 한 기수에 4명이다.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에서도 성우를 뽑는데, 투니버스는 2년에 1번 8명 정도, 애니원은 2년에 1번 10~11명 정도 뽑는다. MBC는 공채 성우를 안 뽑은 지 10년이 넘었고 SBS는 처음부터 공채 제도가 없었다.

미 : 공채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계속해서 기회가 주어진다는 측면에서.

김 : 그렇지는 않다. 공채로 뽑히더라도 2년 후 프리랜서로 전환이 돼 이후에는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한다. 매년 공채를 뽑아 싼 값에 고급인력을 쓴다. 2년 쓰고 나서는 버린다. 또 새로운 성우를 뽑고 버리는 일이 반복된다. (이미 공채를 거쳐 성우가 된 사람은 많은데, 그 사람들이 전부 일할 만큼의 일거리가 없으니) 수요 공급법칙이 절대 안 맞는 것이다. 프로페셔널한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니 차라리 안 뽑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KBS의 경우 한 해에 여자들은 2,000명이, 남자는 800명이 시험을 보는데 각각 6명이 뽑힌다. 그러고선 95만원 받는다. 새로운 아이들을 매년 뽑고 2년이 지나면 ‘알아서 프리랜서로 뛰어라’라고 하는 것이다.

미 : 성우들은 임금이나 처우가 어떻게 되나. 

김 : KBS 공채 성우의 경우 고정 월급이 95만원이다. 1년차일 때. 보너스는 따로 없다. 2년차는 103만원을 받는다. 2년 간 전속으로 있을 때에는 4대 보험도 적용이 된다. 전속에서 벗어난 프리랜서들이 받는 돈은 천차만별이다. 성우 등급을 보면 만 10년차 안쪽까지가 B급이고 10년차 이후는 A급이다. 라디오 드라마를 예로 들면 프리랜서가 50분물 한 편을 하면 A급일 경우에는 24~25만원 정도 받고, B급은 그 절반 정도를 받는다. 공채 성우는 1만 5천원 안 되게 받으니 격차가 크다. 싼 값에 고급인력을 쓴다는 게 이런 뜻이다. 

방송 4사(KBS·MBC·SBS·EBS)와 애니메이션 채널에서 지원하는 노조 발전기금이 연 70억 정도 된다. 75억을 750명이 나누면 연 수입이 1,000만원 정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평균치이고 각각 벌어들이는 돈은 차이가 크다. 전체 750명(한국성우협회 회원) 중에서 100명이 버는 수입이 나머지 650명보다 많고, 50명 수입이 전체 수입의 반 정도는 될 것이다. 

미 : 성우들의 활동 기간이나 수명은 대체로 어떠한가. 

김 : 저는 전속 성우로 3년 일한 것 포함해 올해로 20년 정도 됐다. 유명하신 분들은 30년 이상 오랫동안 성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서로 달라서 딱 어느 정도라고 말하기 어렵다. 한 기수에서 10% 정도밖에 살아남지 못하다 보니,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자리를 못 잡으면 활동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다. 

미 : 성우들마다 각자 특화된 분야가 있는 것 같다. 쇼 프로그램 전문, 애니메이션 전문 등등. 이런 분야는 어떤 식으로 정하게 되나.

김 : 꼭 한 분야만 해야 된다는 법은 없지만 장르적 특성이 있어서 애니메이션이면 애니메이션, 쇼프로면 쇼프로 이렇게 맡아서 한다. 열 명 정도가 다양한 장르에서 일을 많이 하고, 내레이션 전문은 50명 정도다. 300명 정도는 애니메이션, 외화 등 더빙을 맡고 있다. 본인들이 맘먹어서 간다기보다는 초기에 두루두루 하면서 적성을 찾는 편이다.

성우 참여 프로그램 편성 적고 자막방송 시작해 성우 설 자리 줄어

미 : 2년만 지나면 프리랜서가 되는 구조라면 성우 대부분이 프리랜서라는 말인데, 프리랜서여서 어려운 점은 없나.

김 : 말 그대로 ‘프리랜서’이다 보니 각자에게 맡긴다. KBS는 공적 책임이 있는 방송사인데 공채를 뽑아놓고 2년 후에는 책임을 하나도 안 진다. 일부 사람들은 “적자생존”, “능력껏 벌어먹는 것 아니냐”라고 한다. 한 기수에서 살아남는 케이스가 10%도 안 되고, 전문성 있는 분야라서 다른 직업으로 바꾸기도 어려운데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한다. 

KBS 극회 기준으로 450명 중 425명 정도가 프리랜서인데 라디오 드라마는 거의 전속(공채) 성우들로 운영이 된다. 프리랜서 비중은 20%도 안 된다. 25명 정도가 라디오 일의 80~90%를 맡는데 아무래도 1, 2년차이기 때문에 연차 높은 선배들보다는 연기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미 : 매년 혹은 격년으로 프리랜서를 만들어 내는 방송사에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나.

김 : 공채 성우 준비할 때 6~7년은 걸린다. 막내 후배 평균 나이가 30대 초반 정도 된다. 30대에 들어서면 새로운 직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엔 늦어진다. 이직, 전직이 어렵다는 의미다. 고스란히 실업자가 된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는 수차례 했다. 그럴 때마다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새로운 사람을 발굴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구조라 그럼 차라리 뽑는 인원을 줄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방송사 소속에서 벗어나 프리랜서가 된 친구들 가운데 안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거의 대부분 성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 MBC에서 매주 일요일 밤 12시에 방영되던 'CSI 마이애미 시즌10'은 MBC 봄 개편으로 인해 지난달 14일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폐지됐다. (MBC 'CSI' 홈페이지 캡처)

미 : 얼마 전 MBC 봄 개편 당시 라디오 드라마와 외화 (CSI) 시리즈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 : 프리랜서라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달라는 요청도 했지만, 성우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편성 확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외화, 라디오 드라마, 애니메이션 편성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정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많이 줄었다. KBS 라디오 드라마 1년 예산이 2억 5천에서 3억 정도다. TV 드라마는 대하사극 하나 하는데도 몇십 억은 편성될 텐데. 애초에 편성된 예산이 너무 적다.

또, 일요일 심야 시간대에 영화를 편성한다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보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다음날 출근하고 등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요일 12시 넘어서 편성하고 시청률이 안 나온다, 광고가 안 붙는다는 말을 한다. 밤 10시대 같은 골든타임에 집어넣으면 시청률이 안 오르겠나. 

미 : KBS에서 방영 중인 (셜록)은 자막방송으로 나가고 있다.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더빙보다 자막이 낫다’는 반응도 있는데.

김 : 물론 자막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상파 방송만큼은 더빙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해외는 외화 방영할 때 올 더빙인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서, 우리말 더빙 법제화를 준비하고 있다. 자막을 읽기 힘든 노인들이나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기본적인 ‘음성 제공 서비스’가 나가줘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말 보호 차원도 있다. 어느 나라나 자국어를 보호하고 있으며, 그것이 통념으로 굳어져 법제화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미디어 소외계층 보호, 우리말 보호 차원에서도 더빙 서비스는 꼭 필요하다. 

원어로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경로도 여러 가지 마련돼 있다. 다운받아서 보거나 케이블 영화채널을 보면 된다. 지상파에서 자막방송을 하는 것은 일부 마니아층의 반응에만 기댄 미디어 담당자들의 횡포라고 본다. 

미 : 그 외에도 성우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다면.

김 : 배우들 스스로 선택한 길이지만 그들이 노력을 안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도 후배들 재교육 강의를 하고 왔다. 선배들이 위협을 느낄 정도로 능력 있는 후배들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재교육 시스템 지원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자체교육을 하고 있는데, 방송통신위원회, 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지원을 받긴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힘든 부분 있으나 성우라는 직업 사랑해”

미 : 요즘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이돌 가수가, 교양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은 연기자들이 맡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김 : 타 영역에 있는 분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데는 익숙한 목소리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가 깔려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우들은 말을 정확히 구사할 수 있고 연기도 가능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알맞은 소리를 찾아내는 감각도 뛰어나고 전달력도 좋다. 순수 예술가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장르의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미 : 얼마 전 한 아이돌 가수가 애니메이션 영화 더빙을 하면서 기존 성우들보다 50배 가까이 높은 금액을 받았다고 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는지.

김 : 방송국이나 영화사 쪽이나 성우들에게 배역을 맡길 때에는 늘 ‘좀 깎아달라’고 했었다. 돈을 더 주면서도 연기력이 부족한 친구들을 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노련한 성우들은 영화 한 편 더빙하는데 반나절이면 끝난다. 프로이기 때문이다. 아마 성우가 아닌 분들은 컷마다 잘라서 갔을 것이다. 그 스타들에 반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다만 극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는 성우들을 대하는 제작진들의 마인드가 불쾌할 뿐이다. 성우들은 스타성이 부족해 연예인들처럼 ‘스타 마케팅’이 안 되다 보니 그런가 보다.

미 : 성우라고 하면 대개 더빙 연기나 내레이션을 담당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게임 더빙이라든지 오디오 스토리텔링 서비스 등 활동 반경이 더 넓은 것 같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성우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 설명해 달라.

김 : 쉽게 말해 일반적인 오디오 서비스는 다 한다고 보면 된다. 박물관, 유적지 가이드용으로 만들어진 음성 서비스는 대부분 성우의 몫이다. 정보를 명확한 발음으로 전달하고, 필요할 때에는 설득력 있는 감정선을 전달하기도 한다. 

미 : 지난해 3월 한국고용정보원이 759개 현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직업 만족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우가 만족도가 높은 직업 2위로 꼽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업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다.

김 : 저도 참여했다. 성우 자체 조사에서 2위를 기록한 것이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수입도 적고 2년마다 프리랜서가 되는 불안정한 구조지만, 많은 성우들이 배우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의외로 시간 여유도 있어서 만족도가 높게 나온 것 같다. 저도 제 직업을 매우 사랑한다. 그래서 힘들다고 우는 소리만 하고 싶지는 않다.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2013년 1월 8일 화요일

[사설] 방송가에 어른거리는 ‘블랙리스트’ 망령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08일자 사설 '[사설] 방송가에 어른거리는 ‘블랙리스트’ 망령'을 퍼왔습니다.

배우 김여진씨가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방송사 2곳으로부터 출연금지를 당했다고 한다. 개그우먼 김미화씨의 한국방송 ‘블랙리스트’(출연금지자 명단) 파문이나 문화방송의 ‘소셜테이너 금지법’을 떠올리게 하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척도로 불리는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이 정도 수준에 불과한지 자괴감마저 든다.김씨가 트위터 등을 통해 전한 출연금지 과정은 매우 구체적이다. 작가와 피디가 섭외를 해 출연을 약속했는데 다시 연락이 와 “윗선에서 안 된다”며 번복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진 “정치적 색깔이 너무 짙어서 윗선에서 곤란해한다”는 정도로 설명해왔으나, 이번엔 “윗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연관된 분은 안 된다고 한다”고 콕 집어 밝혔다고 한다. 방송사 수뇌부가 텔레비전에서 문 후보 찬조연설 등을 한 김씨의 경력을 문제삼아 기피인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방송사의 이런 결정은 언론의 본분을 스스로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다. 방송사는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이용하는 탓에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사회·경제 등 여러 영역의 찬반 의사를 자유롭게 소통시키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 신장에 기여해야 한다.하지만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이런 기본원칙은 휴짓조각이 됐다. 방송사 수뇌부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정치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고, 여권과 생각이 다른 목소리는 후안무치하게 적극적으로 배제했다. 이를 위해 동원한 수단으로 논란을 빚은 것이 김미화씨가 주장한 블랙리스트다. 소셜테이너(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예인)의 고정출연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문화방송의 ‘고정출연 제한 심의규정’도 마찬가지다. 이런 터무니없는 기준 아래서 김여진·김미화씨와 방송인 김제동씨, 가수 윤도현씨 등 많은 연예인들이 각종 프로그램에서 중도하차당했다.이번 출연금지 사태의 진상을 밝혀내 방송계에 블랙리스트라는 낡은 망령이 나돌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방송사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이겠지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방송의 공영성과 공정성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밝히는 것 또한 필요하다. 방송사가 새 정부의 의중을 지레짐작하고 ‘알아서 기는’ 차원에서 출연금지를 결정했어도 국민들은 새 정부의 언론관을 의심하며 추이를 지켜볼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방송사가 정치색을 이유로 연예인 출연을 제한하는 것은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국민대통합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