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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0일 일요일

그림자만 있고 2인자는 없다


이글은 한겨레212013-03-11일자 제951호 기사 '그림자만 있고 2인자는 없다'를 퍼왔습니다.
[특집] 아버지 닮은 박근혜 대통령 용인술, 내가 빚진 사람 아니라 나에게 빚진 사람 중용하는 경향 드러나… ‘쓴소리’할 김종인·안대희·이상돈 대선 이후 2선으로 사라지고, 오래 보좌한 ‘문고리 권력 3인방’ 합류한 청와대에 힘 실려

‘박통’은 2인자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측근들을 경쟁시켰다. 대통령 자신을 제외하면, 결국 모두가 ‘넘버 3’였다. 주군의 눈에 들려던, 혹은 눈 밖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던 실세들의 경쟁은 때때로 무리수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죽거나 다쳤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다른 실세로 채워졌다. 경쟁자를 향해 겨눈 ‘넘버 3’들의 총성 끝에 결국 대통령 자신이, 정권이, 한 시대가 무너졌다.
또 한 명의 ‘박통’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취임식을 기점으로 공식 임기에 들어갔다. (한겨레21)은 당·정·청을 아우르는 박근혜 시대 ‘파워엘리트’들의 면면에 주목했다. 모두의 전망과 달리 또다시 ‘대통령의 입’으로 중용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과거 언론인이자 문필가로서 내뱉어왔던 증오와 광기의 언어들도 톺아봤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의 용인술은 권력의 알파요, 오메가다. 권력자가 행사하는 권력 그 자체다. 불통과 오만의 딱지와 함께 시작한 ‘박근혜 시대’의 앞날이 여기에 있다. _편집자

5·16 쿠데타의 ‘얼굴마담’은 장도영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다.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장도영은 정일권·백선엽 등과 함께 자신의 직속 부하인 박정희의 구명운동을 벌였다. 석방 이후 박정희를 다시 군으로 복귀시킨 이도 장도영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는 박정희의 ‘생명의 은인’이다. 1961년 5월16일 새벽, 방송을 통해 공표된 ‘군사혁명 선언문’의 명의도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이었다. 쿠데타 이후 장도영의 직함은 무려 5개로 늘어난다.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자 내각 수반이었고, 국방부 장관인 동시에 육군참모총장이었다. 계엄사령관도 겸했다. 하지만 그는 김종필을 앞세운 박정희 세력에 의해 불과 한 달 보름 만에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제거되고 만다.

싸우고 숙청당한 ‘넘버 3’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8년의 재임 기간에 보여준 용인술은 대체로 그런 식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유·무형의 빚을 지고 있는 인물들은 하나 둘 밀려났다. 그는 ‘쓴소리’를 참지 못했다. 주변은 주군의 의지에 반하지 않고, 충성 경쟁에 열을 올리는 인물들로 채워졌다.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사위원장을 시작으로 감사원장까지 지낸 이석제씨는 1995년 발간한 (각하, 우리 혁명합시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박 대통령은 자기 의견에 반대하거나 분에 넘치는 요구를 하면, 그 사람을 상당히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자신에 대한 도전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한번 수가 틀리면 감정이 상당히 오래갔다. 수많은 동지들이 대열에서 떨어져나간 것도 어쩌면 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충성을 다했던 인물들도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거나, 자신의 입지에 도전하면 숙청했다. 김종필·김성곤·윤필용·이후락·김형욱 등 박정희 체제를 떠받치던 기둥들이 차례로 제거되거나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전락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공식 취임했다. 박 대통령의 용인술 역시 아버지 시대의 그것을 닮았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 빚을 지고 있는 인물들은 대선 이후 모두 2선으로 밀려났다. 정치권에선 그 대표적 사례로 김종인·안대희·이상돈을 꼽는다.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의 존재는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라는 상품에 ‘경제민주화’라는 포장을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상돈 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은 특히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안철수 전 후보의 부상으로 ‘정치 쇄신’ 요구가 거세게 일자 안대희 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영입해 맞불을 놨다. 이들은 모두 박 대통령한테 특별히 빚진 게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꾸로 이들의 존재가 박 대통령에게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이들 모두 중용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당장은 듣기 싫어도 결국 약이 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을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이후 세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 ‘박근혜 시대‘ 실세 그룹

충성을 다할 인물로 충원돼

반대로 박 대통령이 빚지지 않은 인물들이 속속 요직에 발탁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윤창중·김행 청와대 대변인이다. 윤 대변인은 언론인 시절에 보여준 비뚤어진 역사관과 상대 진영에 대한 끝 모를 증오심뿐 아니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을 지내는 동안 보여준 무능에도 불구하고 다시 기용됐다. 2002년 대선 때, 현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냈고, 당시 대선 하루 전날 “노무현 지지 철회”를 공식 발표한 당사자인 김행 대변인도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최악의 인사로 꼽힌다. 대선 과정에서 각종 종합편성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정치평론가로 변신한 그를 박 대통령이 눈여겨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전 위원장 등을 내치고 친박 인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던 인물을 중심으로 당·정·청의 진용을 짠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창중·김행 대변인의 경우 본인들의 처지에서는 박 대통령이 얼마나 고맙겠느냐. 아마도 충성을 다하게 될 것이다.” -한 정치평론가

한 정치평론가는 “김종인 전 위원장 등을 내치고 친박 인사들 중에서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던 인물을 중심으로 당·정·청의 진용을 짠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윤창중·김행 대변인의 경우 본인들의 처지에서는 박 대통령이 얼마나 고맙겠느냐. 아마도 충성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시대의 ‘파워엘리트’로 꼽히는 당·정·청의 핵심 실세들의 면면도 마찬가지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지난 2월27일 서울 현충원 국립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들어간 정홍원 국무총리는 취임사에서 ‘윤활유 총리론’을 제시했다. 그는 “기업과 개인, 시민사회가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원활히 돌아가도록, 또 공직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도록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책임총리’와 관련한 메시지는 없었다.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 낙마와 ‘불통·만만디 인사’로 인한 사상 초유의 정부 출범 지연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책임총리제’에 이어 ‘책임장관제’를 거론하며 후퇴하던 박 대통령 주변에선 이제 그런 목소리마저 실종된 지 오래다.
차례로 인사청문 절차를 마치고 있지만 정부조직법 개편을 둘러싸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아직 임명장을 받지 못해 ‘후보자’ 딱지를 떼지 못한 장관 후보자들 중에선 그나마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정도가 ‘실세 그룹’으로 분류된다. 두 사람 모두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인수위에서 당선인 대변인을 지낸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도 박 대통령의 일정을 수행하고 현장의 발언 등을 전하는 역할을 해왔다. 모두 박 당선인과 물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웠던 인물들이다.
새누리당에선 당분간 황우여 대표, 이한구 원내대표, 서병수 사무총장 등 원조 친박 인사들에게 힘이 실릴 전망이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야를 통틀어 특별한 적이 없는 황 대표는 대통령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는 ‘비서형 여당 대표’로 평가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대선 이후 황우여 대표가 한 게 도대체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 출범 과정의 진통이 계속되고, 김병관(국방)·황교안(법무) 등 문제적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자진사퇴론이 새누리당 지도부 내의 친이 혹은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황 대표는 여전히 “청문회를 열어봐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4월과 10월의 재보선 결과에 따라 여권 내에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황 대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두텁다. 새누리당의 고위 당직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당·청 관계 모델은 아무도 자신에게 도전하지 않는 ‘지금 이대로’다. 황 대표 체제가 당분간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왕수석’ 노릇 하게 될 이정현

내각과 여당이 주춤하는 사이 권력의 중심은 청와대로 이동했다. 그중에서도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정무수석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3선 의원을 지낸 허 실장은 ‘섹스관광’ 등 부적절한 언행 논란과 동생의 공천 비리, 대필 의혹까지 인 복사 수준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파문 등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시대’의 핵심 요직인 청와대 비서실장에 발탁됐다. ‘박근혜의 입’으로 통해온 이정현 수석은 말 그대로 ‘왕수석’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부실한 정무 라인 탓에 정무수석 외에 특임장관을 따로 뒀지만, 새 정부는 특임장관을 폐지하고 국회를 상대하는 정무 기능을 정무수석실로 집중시켰다. 이 밖에 이 수석은 18대 국회의원 시절 자신을 보좌했던 음종환·이현진 전 보좌관을 각각 정무수석실과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앉히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박 대통령을 오랜 기간 보좌한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존재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그룹인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모두 청와대에 합류했다. 의원실 보좌진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웬만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보다 이들의 힘이 셌다. 이들은 ‘정치인 박근혜’의 눈과 귀였고, 손과 발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와대 살림과 대통령의 일정, 메시지 등을 다시 담당하게 됐다. 인수위 국정기획분과 간사를 맡으며 부상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정도가 새롭게 떠오른 실세로 꼽힌다. 공식적 역할은 맡지 않고 있지만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박 대통령의 ‘5인 공부모임’ 멤버였던 최외출 영남대 교수 등도 외곽의 조언 그룹으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내부에선 개각 등 인사 요인이 발생하면 박 대통령의 시선이 가장 먼저 이들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박 대통령을 오랜 기간 보좌한 이른바 ‘문고리 권력 3인방’의 존재다.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그룹인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모두 청와대에 합류했다. 의원실 보좌진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웬만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들보다 이들의 힘이 셌다. 이들은 ‘정치인 박근혜’의 눈과 귀였고, 손과 발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진용은 ‘충성’과 ‘순종’의 순도에 따라 짜이고 있다. 물론 미묘한 균열의 조짐도 보인다. 진앙지는 새누리당이다. 우선 4월 재보선에서 일찌감치 부산 영도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김무성 전 의원의 ‘화려한 복귀’ 여부에 지역 정치권뿐 아니라 여권 전체의 시선이 쏠려 있다. 한때 ‘친박의 좌장’으로까지 불렸던 김 전 의원은 2010년 세종시 논란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불화했다. 김 전 의원은 ‘정치인 박근혜’를 향해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직격탄을 날렸고, 박 대통령은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선언하며 결별했다. 지난해 4·11 총선에선 김 전 의원이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일부 친이 세력의 ‘독자 세력화’ 기획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당 잔류를 선언하며 여권의 분열을 막는 일등 공신이 됐고, 대선 과정에선 박근혜 캠프 총괄선거대책본부장으로 복귀해 ‘군기반장’을 자임하며 대선 승리를 진두지휘했다.
김 전 의원의 출마에 대해 청와대 실세로 부상한 허태열 비서실장은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의 맹주’를 둘러싼 경쟁이 불가피해진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국회의원 배지도 김 전 의원이 15대 국회에서 먼저 달았고, 허 실장은 16대에 와서야 국회의원이 됐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한나라당(현재의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2005년(김무성)과 2006년(허태열) 나란히 지내기도 했다. 당 최고위원에도 김 전 의원이 먼저 진출했다.

» 2008년 12월10일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나란히 참석한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김무성 전 의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출발점부터 다른 두 사람의 ‘미묘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한겨레 강창광

“상당히 미워하는 사이”

새누리당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의 말이다. “정치적 비중으로 따지면 허태열 실장보다 김무성 전 의원이 우위라고 봐야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진으로 시작한 허 실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배운 김무성 전 의원은 출발점이 다르고 서로를 마음속에서 인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상당히 미워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허 실장은 비서에 가깝고, 김 전 의원은 ‘자기 정치’에 대한 뜻이 있는 사람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김 전 의원이 재보선을 통해 복귀하더라도 박 대통령은 아마 허 실장에게 더 힘을 실어줄 것으로 봐요.” 이 밖에 오는 5월까지가 임기인 이한구 원내대표의 후임을 노리는 친박계 인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경환·서병수·홍문종·이주영 의원 등의 출마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원내대표 진출을 노리는 서병수 사무총장은 최근 황우여 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지만 서 총장 쪽은 부인했다. ‘박근혜 시대’의 개막과 함께, 여권 내부의 ‘파워게임’도 이미 시작됐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2012년 12월 20일 목요일

33년만에 다시 열린 '박통(朴統)' 시대, 박근혜의 사람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0일자 기사 '33년만에 다시 열린 '박통(朴統)' 시대, 박근혜의 사람들'을 퍼왔습니다.
'충성'과 '신뢰'의 용인술, 불통의 장막 될 수도

33년 만에 다시 도래한 '박통(朴統)'의 시대, '박근혜의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오랜 기간 그의 정치 여정과 함께한 이들이 있었다. 리더에 대한 높은 충성심과 신뢰가 박 당선자 주변 인사들을 관통하는 공통적 특징이다. '측근 정치', '인(人)의 장막'이란 비판도 높았지만, 박 당선자 역시 누군가에게 한 번 신뢰를 주면 쉽게 접지 않는 편이다.

설움을 겪던 당내 비주류에서 당권 장악, 그리고 5년간 절치부심하고 기다려온 집권의 고지까지. 박근혜 당선자는 주변 인력 풀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 '킹 메이커'로 활동했던 이들이 차기 정부에서도 중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측근들 사이의 '쟁투의 역사' 역시 차기 정권 출범 이후 역학관계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지난 4.11 총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관계자들. '박근혜의 사람들'은 '이명박의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당내 비주류에서 당권, 대권까지…내부 권력 투쟁도

지난 1월 박근혜 당선자가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화려한 귀환'을 하면서, 새누리당 내에선 "친박이라고 다 같은 친박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았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웃지 못할 '유행어'까지 돌았다. 원박부터 신박, 복박, 중박에서 월박까지.

예컨대 지난 17대 대선부터 줄곧 박 당선자 곁에 있었던 최경환 의원, 서병수 사무총장, 유정복 최고위원, 이정현 공보단장 등은 '원조 친박', 즉 원박으로 분류된다. 복박은 친이계 쪽으로 눈을 돌렸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다시 박 당선자 쪽에 선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등을 지칭한다. 이밖에도 중립 성향으로 평가됐으나 1월 이후 친박색이 짙어진 황우여 대표, 이주영 특보단장 등은 '중박', 당초 친이계였다가 친박계로 넘어온 이들을 '월박'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면서 '공천 학살' 등 설움을 겪은 친박계라지만, 박 당선자가 등판한 지난 1월 이후 이들이 새누리당 창당과 총선을 이끌며 전면에 나선 셈이다. "더 이상 친이, 친박은 없다. 100% 친박당이다"라는 말을 이런 분위기를 상징했다.

문제는 이렇듯 박 당선자와의 거리를 놓고 당내 권력지도가 짜이다 보니, 무리한 충성 경쟁과 일부 핵심 인사들의 '전횡'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총선 직후 터진 공천 헌금 사건과 잇달아 터진 측근 비리로 '환관 권력', '인(人)의 장막'이라는 비판도 늘 박 당선자를 따라다녔다. "박근혜의 가장 큰 적은 친박"이라는 자조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충성'과 '신뢰'의 용인술차기 권력을 놓고 벌이는 측근들의 쟁투는 일정 부분 박 당선자의 용인술의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2인자를 용납하지 않고,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때문에 선거 캠프 역시 박근혜 당선자를 정점으로 하는 방사형 피라미드 구조로 구성됐다.

그러나 2인자를 두지 않다보니 측근들 사이의 '인정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한 때 '혈투'에 가까운 싸움을 벌였고, 이른바 '원조 친박'들 사이에서도 계파에 따라 수시로 기 싸움을 벌였다.

박 당선자의 이런 스타일이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용인술을 빼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정인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고 경합을 시켜 이기는 쪽을 곁에 두는 방식이란 얘기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유신 전에는 김형욱-이후락의 경쟁 구도, 유신 이후엔 차지철-김재규의 경쟁 구도로 측근들의 권력 투쟁을 유도했고, '패자'의 과오는 당사자의 능력없음, 과오로 정리됐다.

이밖에도 '배신'과 '충성'은 박근혜 당선자의 인사 스타일을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다. 배신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 반응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습 이후 유신 때 호위호식했던 측근들이 돌아서는 것을 목격한 뒤 몸에 뱄다.

이 때문에 사람을 곁에 두는 첫째 기준은 '충성'이 되고, 한 번 신뢰를 주면 잘 철회하지 않는다. 1998년 정치권 입문 후 단 한 번도 보좌진을 교체하지 않은 점, 이번 대선 캠프 구성원 대부분이 2007년에도 호흡을 맞췄다는 점은 이런 특징을 보여준다.

문제는 박 당선자 본인이 '직언파' 대신 '충성파'를 더 신뢰하다보니, 그에게 직언하는 인물 대신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충직한 '심복'들만 주변에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당내 일각에선 선거 기간 내내 "이명박 정부 때보다 인력풀이 더 좁다"는 평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이런 인사 스타일과 박 당선자 특유의 보안주의, 비밀주의가 결합하면서 생긴 고질적인 '불통' 논란은 향후 박 당선자가 극복해야할 과제다. 정윤회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4대 천황'이라고 불렸던 최측근 보좌진 그룹 등 비선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급기야 지난 10월에는 최고위원 격인 전직 비상대책위원들이 4~6급 보좌진들의 퇴진을 공개 주장하는 민망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런 폐쇄적 의사소통 구조와 철저한 보안주의가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는 높였지만, 그 누구도 박근혜 당선자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분위기가 캠프는 물론 당 전체를 잠식했다는 평도 나온다.

변화는 그 때 뿐? '박근혜의 사람들', 친이계와 다른 길 걸을까

측근 그룹들 사이의 흥망성쇠 역시 '박근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주요 포인트다. 대표적인 것이 '변화'를 상징했던 외부 영입 비상대책위원들과 친박계 핵심들 사이의 경합이다.

박 당선자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김종인 위원장을 비롯해 이상돈 정치발전특별위원, 이준석 전 비대위원 등은 사실상 새누리당의 변화를 상징해 왔다. 이들을 주축으로 총선 당시 '보수색 빼기'가 이뤄졌고, 급기야 당 색깔도 빨간색으로 바뀌었으며, 당헌·당규에 경제민주화 같은 '급진적인' 정책이 삽입됐다. 결과는 총선 승리라는 '반전 드라마'였다.

그러나 새누리당 '창당 공신'이었던 이들의 입지는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차츰 변화한다.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추진 방식 등을 두고 이한구·강석훈·안종범 의원 등 당내 시장주의자들과 끊임없이 대립했지만, 박 당선자는 결국 측근들의 손을 들어줬다. 김종인 위원장이 제출한 경제민주화 공약은 사실상 '누더기'가 되어 최종 발표됐고,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영입 인사들이 대선을 앞두고 '용도폐기'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이 시점에서 박 당선자 역시 중도층에 집중했던 기존의 선략에서 선회해 보수층 결집에 나선다. '100% 국민대통합'을 강조했지만 선거 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색깔론이 튀어 나왔다. 이 과정 속에서 김종인 위원장은 한 때 박 당선자와의 '심적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다만 박근혜 자신이 선거 과정에서 "경제민주화는 반드시 책임지고 실천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한데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 그룹이 총선과 대선 승리의 한 축을 담당한 만큼, 이들의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시에 '대탕평 인사'를 천명한 상황에서 향후 인수위원회를 시작으로 '박근혜 정부' 구성에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줄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과거 '공천 학살'과 '코드 인사'의 피해자였던 친박계가 그들의 '정적'이었던 친이계와 얼마나 다른 길을 걸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선명수 기자

2012년 4월 22일 일요일

유승민의 '박근혜 비판'에 친박 발칵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4-21일자 기사 '유승민의 '박근혜 비판'에 친박 발칵'을 퍼왔습니다.
친박 내부 "터질 게 터졌다", 박근혜 용인술 비상

친박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20일 박근혜 위원장의 의사소통 방식과 판단력을 정면 비판하고 나서 친박 내부가 발칵 뒤집어졌다. 

21일 (서울경제)에 따르면, 유 의원은 이날 국방위 전체회의 뒤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할 때 한계를 느낀다"며 "박 위원장이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쓴 소리도 박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그러나) 만나기는커녕 전화 통화도 어렵다"며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다고 했을 때 내가 반대하자 박 위원장이 전화해서 이해해달라고 하더라. 하지만 내가 다음날 의원총회에서 반대했다"고 비사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김형태-문대성 파문에 대해서도 "두 사람 다 공천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 정리하는 게 맞았다. 공천 당시 당의 한 인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묻길래 '우리가 과반을 잃더라도 내쳐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못하더라"며 "박 위원장에게 보고했지만 안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탈당이 늦어지면서 비난만 받았다"고 박 위원장을 힐난했다. 

그는 더 나아가 "나쁜 제수는 성추행해도 되는 것인가? 친박계가 자기끼리 비호하면 건전하지 못한 세력이 된다. 친이명박계와 다를 게 뭐가 있나?"라고 현 친박계 실세로 통하는 몇몇 인사를 거론하며 "이 라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박위원장이 좋은 보좌를 받지 못해 판단에 문제가 있다. 박 위원장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거듭 박 위원장을 힐난했다.

그는 내달 전대과 관련해선 "남경필, 김무성 의원 등 친박계에서 다소 떨어진 사람을 지도부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정몽준, 이재오 의원이 비판해도 반박할 수 없다"며 친박계가 자파 인사를 당 대표로 밀고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대선과 관련해선 "총선 전 박 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30%였다면 지금은 40% 정도가 됐다. 정권 재창출을 하려면 이명박 정부가 지금보다 더 잘하고 박 위원장이 지금보다 더 현정부와 차별화해야 한다"며 "경제민주화 공약도 왼쪽(진보적)으로 갈 수 있으면 더 가야 한다. 수도권의 젊은 사람은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경고했다.

유 의원은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직후 '정치적 칩거'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 박 위원장 주변에는 소위 '신주류'가 전면에 등장했으며 이에 유 의원을 비롯한 구인사들은 심한 소외감을 느끼면서 이번에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유 의원을 잘 아는 친박 핵심은 2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TK 실세가 이번 공천을 주물럭거리는 데 대해 유 의원 등이 '그러면 안된다'고 수차례 조언했으나 통하지 않았다"며 "이걸 단순히 자리싸움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그런 잘못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실세를 주변에 두고, 그 실세를 기점으로 원로그룹과 일부 참모그룹이 버티고 있는 한 박근혜 위원장의 대선가도에도 적신호가 커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유 의원이 이번 발언을 계기로 박 위원장과 결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유 의원은 그러나 사석에서 "박근혜 대표 시절부터 나를 비롯해 전여옥, 김무성 의원은 친박 3인방이었다. 그런데 전 의원이 가장 먼저 박근혜를 떠났고 다음은 김무성 선배가 떠났다. 남은 건 이제 나하나 뿐인데, 나까지 칼을 꽂고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