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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50대 욕하지 마라


이글은 프레신안 2012-12-21일자 기사 '50대 욕하지 마라'를 퍼왔습니다.
[데스크 칼럼] 박근혜 택한 '베이비부머', 5년 뒤엔?

'오셀로'라는 게임을 좋아한다.

반상에 검은 돌이 줄지어 있을 때, 흰 돌로 양 끝을 막으면 중간의 검은 돌이 모조리 흰 돌로 바뀌는 게 규칙이다. 내가 흰 돌을 들고 있을 때, 눈앞이 온통 검은 돌투성이여도 별로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이 게임의 묘미다. 머리만 잘 굴리면 한순간에 온통 흰 돌투성이로 뒤집을 수 있다. 물론 여기서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게임 상대방 역시 하얀색인 반상을 검은색으로 뒤집을 가능성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숨 가쁜 반전과 반전. 한번 세가 꺾이면 회복하기 힘든 게 바둑인데, 그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

김대중·노무현 찍었던 '베이비부머', 왜 박근혜 밀었나


지난 1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보며 '오셀로' 게임을 떠올렸다. 많은 젊은이들이 선거 결과에 절망했다고 말한다. 또래 친구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투표 독려를 했는데, 진짜 투표율이 높았던 것은 50대 이상 연령층이었다.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다. 이들이 박근혜 후보를 밀었다.

688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번 대선을 승리로 이끄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은 진작부터 알려져 있었다. 이들 연령층이 전체 인구분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또 기업, 관공서, 언론사 등에서 요직에 있으므로 영향력도 세다. 대선 후보 가운데는 안철수 전 후보가 딱 '베이비부머' 세대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는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나이가 조금 위다. (☞관련 기사: 빚더미에 오른 베이비부머, 당신의 부동산은 안전합니까?)

'베이비부머' 세대의 정치 성향은 가변적이다. 그보다 윗세대와는 다른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청, 장년기에 1987년 6월항쟁을 경험했다. 교육수준도 높다. 적어도 이들은 조갑제류의 '묻지마 극우' 세력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에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50대 가운데 제법 많은 수가 과거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지지했다. 당시엔 이들의 나이가 30~40대였다.

'오셀로' 게임 닮은 그들, 정치 성향은 계속 바뀐다


'오셀로' 게임을 떠올린 건 그래서였다. 바둑에선 흰 돌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흰 돌이다. 하지만 '오셀로' 게임에선 흰 돌이 검은 돌이 되고, 다시 흰 돌이 된다. 정치 성향이 고정된 60대 이상이 바둑돌이라면,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을 가리키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생)는 '오셀로' 게임의 말을 닮았다.

이는 다음 선거에선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진보 개혁 성향을 띨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무조건 보수화 하는 것 아니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 중국 신해혁명의 주인공 쑨원(손문)은 "내 귀밑머리가 하얘질수록 내 마음은 더욱 붉어진다"라고 말했다.

진보, 보수는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재산 규모가 달라지고, 지식의 양과 종류가 바뀌면서 정치 성향도 함께 변하는 사례를 흔히 본다. 기자가 아는 한 공학자는 나이 들어 진보로 바뀌었다. 뒤늦게 사회과학에 흥미를 붙인 게 계기였는데, 습득하는 지식의 종류가 바뀌면서 정치 성향이 달라진 경우다. 책 한 권, 신문 한 장 제대로 읽을 시간 없이 일하다 은퇴한 뒤에 신문을 꼼꼼히 읽게 되면서 진보로 돌아선 노동자도 봤다. 지식과 정보의 양이 달라지면서 정치 성향이 바뀐 사례다. 또 학창 시절엔 과격한 좌파였는데, 사회에서 돈을 꽤 모은 뒤엔 보수파가 된 경우도 봤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재산 규모에 따라 정치 성향이 달라진 경우다.

독재와 민주 다 겪었지만, 경제적으론 늘 '부동산 불패' 신화


그렇다면 '베이비부머' 세대는 왜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을까. 아직은 제대로 된 분석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선거 전부터 진행된 이런저런 분석들을 복기해보면, 희미한 그림은 떠오른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정치적으론 거센 부침을 겪었다. 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력을 모두 경험했다. 하지만 경제, 사회적으론 대체로 일관된 경험이 있다.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다. 또 학벌주의 시대였다. 군인이 통치하건, 민주투사가 집권하건 이런 뼈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했다. 집값은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자식 과외는 시켜야 했다. 이들의 경험으론,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럭저럭 중산층의 삶이 보장됐다.

대학 나온 자식은 백수, 아파트 값은 뚝뚝, 가계부채는 '폭탄'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빚내서 산 아파트 값이 뚝뚝 떨어진다. 자식이 대학에 들어가면 자식 뒷바라지는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취업과 결혼, 육아가 대학입시만큼이나 힘들다.

이런 현실이 통계 지표로 잡힌 게 천문학적인 가계 부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폭탄을 안고 있는 이들은 불안하다. 그러니까 변화를 꺼린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라는 약속은 힘이 없다. 당장이 급하니까. 우선 폭탄이 터지지 않게 하는 게 급하다.

'베이비부머'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박근혜 후보 당선이 부동산 폭락을 막는데 유리하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유지되는 한, 이들이 박 후보를 지지하는 걸 막기는 힘들다.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나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세상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부동산 대세 하락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국민도 이걸 곧 깨닫는다. 마치 부자를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해서 국민이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 무리한 성장 정책은 재벌만 살찌울 뿐이라는 걸 이제는 누구나 알 듯 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선 '747' 공약처럼 황당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빚내서 집 사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입은 손해는 대책이 없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되는 날이 곧 온다. 빚내서 과외 열심히 시켜봤자, 그래서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봤자 인생역전 따위는 없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미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아파트와 자식이 사회안전망 구실 못하는 시대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된 뒤엔 무얼 할 거냐는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화두가 된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그때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아파트와 자식과외가 사회안전망이었다.

하지만 기껏 가르친 자식은 부모를 부양할 능력 또는 의지가 없고, 아파트는 애물단지가 됐다. 그렇다면, 사회안전망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또 이들 세대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비중이 높다. 대기업에 계속 다니기 힘든 나이인 탓이다. 대기업의 횡포를 견제하자는 목소리는 이들의 이해와 겹친다.

"복지는 공동구매, 그래서 세금이 더 싸다"


사실 이들이 짊어진 천문학적 가계부채 역시 복지와 관계가 있다. 복지가 잘 갖춰져 있어서 공적으로 해결했다면, 훨씬 적은 비용이 소요됐을 일들을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해결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든다. 흔히 복지엔 세금이 든다고 불평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차라리 세금이 더 싸다. 각자 알아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공동구매가 더 저렴한 것과 같은 이치다. 건강보험료를 조금 더 내고 건보보장성을 높이는 게 민간의료보험에 돈을 쓰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힌다는 말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이런 이치를 잘 설명했다.

복지가 없어서 생겨난 비용을 개인이 감당하면서 가계부채가 늘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질수록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문재인 후보가 TV토론에서 건강보험료 인상과 보장성 확대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경쟁력 낮은 산업에서 경쟁력 높은 산업으로…'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물론, 정치적인 부담도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 자영업자들은 세금에 가장 민감한 집단이다. "복지는 세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들은 등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 이들이 '레드오션'인 줄 뻔히 알면서 자영업 경쟁에 내몰린 이유, 경쟁 탈락에 대한 공포 등을 차분히 짚어보면 그렇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 경쟁력이 약한 산업 종사자가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원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등 복지국가의 비전이 가장 필요한 집단 역시 이들이다. 그러나 이런 비전을 다듬고 검증하고 설득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관련 기사: "'좌파'보다 국익에 무관심한 그들, '진짜 우파' 맞나?")

'현실이 된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다음 총선이 3년4개월 뒤로 떨어져 있다는 점이 반가운 이유다. 진보 개혁 진영에겐 시간이 있다.

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에 가까워지고 노인복지의 수요가 늘어난다. 현실로 경험하는 '박근혜 정권'은, 국민으로 하여금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온 '박정희 신화'에서 깨어나게 만든다. '현실이 된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다. 자신들의 표가 얼마나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여러 정당이 내놓은 복지정책을 꼼꼼히 검토한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의 비전이 있다면, 진보 개혁 진영에겐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적을 동지로…시간은 있다


간혹 영화 같은 삶을 사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초라하고 평범한 인생이다. 바둑처럼 한 집 한 집 쌓아올리는 인생, 반전이 드문 삶이다. 정치는 다르다. '오셀로' 게임처럼 반전이 꼬리를 문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되고, 적은 어느새 동지가 된다. 그게 정치다.

5년 뒤, 검은 돌무더기를 일거에 흰 돌무더기로 뒤집는 멋진 '오셀로' 게임 한판을 기대한다.

 
ⓒ연합뉴스

/성현석 기획취재팀장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부동산이 노후대책? 재개발 덫에 빠져보니…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5일자 기사 '부동산이 노후대책? 재개발 덫에 빠져보니…'를 퍼왔습니다.
[응답하라, 베이비부머·③] 한순간에 날아간 집, 그리고 생계수단

이영섭(가명·56) 씨는 70년대 말께 서울로 올라왔다. 35년 전의 일이다. 고향은 서울에서 400km나 떨어진 시골이다. 왕십리에 터전을 잡았다. 이후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적이 없다. 여생도 제2의 고향인 왕십리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서울에 온 이후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것부터 장사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 대로 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90년대 말 건물을 지었다. 5층 규모 주택이었다. 부동산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맹신이 있었다. 그간 모은 돈으로 집 짓는 비용을 모두 감당하긴 어려웠다. 기존에 살던 집을 처분한 돈과 은행 대출, 그리고 전세금 등으로 이를 충당했다. 5층엔 살림집을 꾸렸다.

이 씨는 건물을 노후대책으로 여겼다. 언제까지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1층 가게에서 도서대여점을 운영하며 지하 공장에서 나오는 약간의 월세를 받으면, 그럭저럭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순간에 날아간 집, 그리고 생계수단

하지만 이 씨의 노후대책은 서울시의 뉴타운 발표와 함께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뉴타운 덕분에 대박이 났으니 한턱 내라고 했다. 실제 자고 나면 집값이 올랐다. 작은 평수의 집을 가지고 있던 이웃은 앞다퉈 투기세력에 집을 팔고 이사갔다. 1000만 원대 땅값이 뉴타운 발표 후 몇 달 사이에 2000만 원을 넘겼다. 2006년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진 이후엔 그 갑절로 뛰었다.

처음엔 이 씨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었다. 조합임원이나 OS요원이 조합설립 동의서를 받으러 다닐 때만 해도 뉴타운 재개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재개발되면 1:1로 헌 집을 새 아파트로 바꿔준다는 말만 들었다.

ⓒ프레시안(허환주)

하지만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관리처분 총회 날에도 이 씨 건물 가격이 얼마에 책정됐는지 조합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따져 물어도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다'라는 말만 들었다. 최소한 내 집이 얼마에 평가받았는지는 알아야 팔던가, 아니면 그대로 살던가를 결정할 수 있겠다 싶었다. 관리처분 총회를 마치고 몇몇 이웃과 '알림방'을 만들었다. 최소한 알아야 할 것을 스스로 알아보자는 차원에서였다.

문제는 심각했다. 이 씨 건물은 현재 거래되는 시세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조합에서 주변 지역 지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감정평가를 내렸다. 그 금액으론 전세금 돌려주고 나면 자신들이 살 수 있는 집 한 채도 얻지 못했다.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추가 분담금을 내고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가기는 방법도 있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생계가 막막해져 어려웠다. 1층 가게도 사라진 마당에 다시 가게를 얻을 돈도 없기 때문이었다. 한평생 모은 돈으로 노후생활을 생각해 건물을 지었는데 한순간에 이 계획이 재개발 때문에 사라지게 됐다.

재개발 늪에 빠진 베이비부머

이런 일은 이 씨만 겪는 일이 아니다. 노후대책의 일환으로 부동산을 장만한 베이비부머가 재개발이란 늪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다.

2002년도부터 시작된 뉴타운 사업은 그동안 개별사업지구단위, 즉 재개발로 이뤄지던 사업을 대규모화한 사업을 일컫는다. 소규모 사업 추진에 따른 기반 시설 부족문제를 해소하고 주택재정비사업을 도시재생 차원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추진됐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처음 추진했다.

하지만 사업추진은 쉽지 않다.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가 문제다. 주택시장이 침체상태에 빠지면서 뉴타운 사업도 늪에 빠졌다. 뉴타운 사업이 시작된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뉴타운 사업이 과열됐지만 금융위기 이후, 다양한 문제가 표출되고 있다.

무엇보다 과도한 추가 분담금이 문제다. 원주민이 서울 도심과 역세권에 가까운 뉴타운 사업 지역 새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집 이외에도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2억여 원이 넘는다. 수도권 지역은 이보다 덜하지만,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역세권 지역은 비용부담이 1억~1억5000만 원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추가비용부담이 나오는 이유는 부동산 경기 하락 때문이다. 과거와 같은 높은 집값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원주민의 집값이 상승하고 그 개발이익으로 신축아파트를 분양받거나 분양권을 전매해 개발이익을 누릴 수 있었던 건 먼 과거의 일이 됐다.

ⓒ프레시안(허환주)

턱없이 높은 추가 분담금으로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

높은 추가 분담금으로 원주민 재정착률은 턱없이 낮다. 서울개발연구원이 미아6구역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현지거주 조합원의 재정착률은 26.8%에 불과했다. 추가분담금을 내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의 지분을 보상금으로 받고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뒤늦게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후발 뉴타운 사업 지역 조합원은 줄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2007년~2010년 3월까지 서울시에서 발생한 재정비사업 관련 소송건수는 212건으로 이중 절반가량이 2009년에 발생했다. 자치구별로는 동대문, 성동, 성북, 서대문구 등 재정비사업이 많은 자치구에서 43.5%로 가장 많은 소송이 이뤄졌다.

하지만 뉴타운 사업을 중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간 뉴타운 사업 진행비로 사용된 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뉴타운 재개발 조합은 뉴타운 사업이 진행된다는 전제하에 정비회사, 건설회사에서 미리 돈을 빌려 활동비 등으로 사용한다. 문제는 사업이 중단될 경우, 이 돈을 갚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이 돈은 한 구역당 작게는 몇억에서 많게는 몇십 억에 달한다.

서울시에서 뉴타운 사업 탈출구 방안으로 제시한 뉴타운 지역 해제 정책에 조합 단계는 지역 해제 지역으로 포함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천문학적인 돈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노후대책

이창무 한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가 2010년에 발표한 '뉴타운사업에 대한 비판적진단과 해법'을 보면 원주민이 뉴타운으로 걱정하는 것으로 '신규공급 아파트에 대한 부담금이 많아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30.5%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고급 실내장식, 넓은 평수 등이 부담금을 높이는 원인으로 꼽혔다.

또한, '임대료 수입이 없어져 생계가 막막하다'는 의견도 21.2%나 차지했다. 기존 구역에서 임대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생계유지형 가구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이영섭 씨와 같은 사례다. 말년에 찾아온 재개발로 베이비부머의 노후대책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운명에 놓이게 됐다.

- 응답하라, 베이비부머

☞빚더미에 오른 베이비부머, 당신의 부동산은 안전합니까?
☞대출받아 집 하나 샀다가 '깡통' 찼다

 /허환주 기자

2012년 10월 3일 수요일

빚더미에 오른 베이비부머, 당신의 부동산은 안전합니까?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3일자 기사 '빚더미에 오른 베이비부머, 당신의 부동산은 안전합니까?'를 퍼왓습니다.
[응답하라, 베이비부머·①] 말년에 발목 잡은 부동산 불패신화

"나이가 들면 보수화하는 것이 인간의 생물학적 운명"이라고 합니다. 한 정치인이 자신의 저서에 적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반론도 있습니다. 중국 근대화를 이끈 지도자 쑨원(손문)은 "내 귀밑머리가 하얘질수록 내 마음은 더욱 붉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단정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 들면서 보수적으로 바뀌고, 다른 어떤 사람은 반대겠지요. 다만 분명한 것은 나이 먹어가면서 쌓이는 인생 경험이 정치 성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세대마다 달리 겪은 역사적 경험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되는 건 그래서입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주목받는 세대가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1963년까지 9년에 걸쳐 태어난 약 688만 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까지지요. 과거 군사정부 시절 이뤄진 고도성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세대입니다. 대선 후보 가운데 1962년 생인 안철수 후보가 이 세대의 끝자락입니다. 1952년 생인 박근혜 후보, 1953년 생인 문재인 후보 역시 '베이비부머' 세대로부터 멀지 않습니다.  이들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경제를 보며 철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론 독재와 인권 탄압에 대한 기억도 생생합니다. 이들보다 윗세대는 정치적으로 여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아랫세대는 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편입니다. 반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정치 성향은 상당히 복합적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선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고도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 세대가 공유하는 역사적 경험으로 대표적인 게 '부동산 불패 신화'입니다. 한국의 고도성장기는 동시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군사정부가 줄곧 내걸었던 '물가안정' 구호는 이 시기의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게 부동산이었습니다. 집, 특히 아파트를 사두면 결코 손해 보지 않는다는 믿음은 이런 역사 속에서 잉태됐습니다.  '내 집 마련'은 이들 세대의 집단적 염원이었습니다. 실제로 사회 생활을 하는 세대 중 자가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세대 역시 베이비부머 세대입니다.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중산층 진입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동시에 부동산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이기도 했습니다. '은퇴 이후'를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한국에선 부동산이 대표적인 노후대책이었습니다. '월세 받아서 생활하는 노인'은 사회복지의 불모지대인 한국에서 베이비부머 세대가 기대하는 가장 흔한 미래상으로 통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세대에겐 요즘 언론에서 떠드는 '하우스 푸어' 현상이 몹시 충격적입니다. 일단 명문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실컷 놀아도 대기업 취업이 보장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집을 사기만 하면 이후 뛰어오르는 집값이 그간 치른 비용을 넘치도록 보상해줬던 게 이들 세대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지난 40~50년 동안의 경험을 뒤엎는 일들이 요즘 벌어집니다. 아파트 값이 떨어집니다. 집 사고 손해 봤다는 이들이 속출합니다. 대부분의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자녀 사교육비 대느라 노후자금 마련에는 실패한 이들에겐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부동산 가격을 인위적으로 지탱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리한 부동산 부양책이 경제에 미칠 해악은 누구나 예상합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부동산 부양책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닌 영향력, 그리고 이들 세대가 갖고 있는 부동산에 대한 각별한 애착 등이 이유일 것입니다. 실제로 그간 치러진 선거에서 부동산 부양책은 필승을 보장하는 카드였습니다. 진보, 개혁을 내건 세력 역시 부동산 문제 만큼은 '보수 진영 흉내내기'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선 후보들은 다양한 지역 개발 정책을 쏟아낼 조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공약은 여전히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만큼 강한 힘을 발휘할지는 의문입니다. '부동산 거품 붕괴'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건 이제 상식이 됐습니다. 부동산 관련 뉴스의 강력한 소비 집단인 '베이비부머' 세대는 부동산 정책에 민감한 만큼 이런 상식에도 밝습니다. 

그래서 보다 큰 차원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부동산과 자식에게 저당잡힌 삶에서 탈출하자는 것입니다. '월세 받아서 사는 집주인'이 되지 않더라도, 존엄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또 결혼 앞둔 자식에게 집을 사주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집 마련' 외의 노후 준비를 불가능하게 하는 지나친 교육비 지출 역시 구조적 해법이 필요합니다. 이는 복지, 노동, 교육 등이 맞물린 문제입니다. 다행히 이번 대선에선 이런 문제가 조금씩 부각되고 있습니다.  부동산 폭락 시대를 겪는 '베이비부머'의 정치적 선택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이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동산 고민을 짚어보는 짧은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영란(가명·55) 씨는 24살에 맞선을 봤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키는 좀 작았지만, 성실해보였다. 처자식을 굶겨죽이지는 않겠거니 생각했다. 두 번 더 본 뒤, 결혼을 결정했다.

신혼집은 서울에 부엌달린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생활은 쉽지 않았다. 남편 한 달 월급으론 월세 내고 시골에 계시는 남편 부모님 생활비를 부치고 나면 저축할 돈은 거의 남지 않았다. 그 와중에 첫째를 낳았다. 그리고 둘째를 임신했다. 답이 없었다. 때마침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남편은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에 자원했다.

남편은 그곳에서 번 돈을 고스란히 한국으로 부쳤다. 이 씨 역시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모두 은행에 저금했다. 부업으로 인형 눈을 붙이는 일을 했다. 그 돈으로 돌이 갓 지난 첫째 아이와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지하 방 두 칸짜리 집을 샀다. 4년 만에 집에 돌아온 남편이 '무슨 돈으로 집을 샀느냐'고 했을 정도였다. 당시 은행 이자율은 연 20%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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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배신하는 않는 부동산, 하지만…

살면서 형편이 나아졌다. 적금으로 모은 돈으로 집을 조금씩 넓혀갔다. 셀 수 없이 이사했다. 조금이라도 가격대비 좋은 집이 나오면 저금해놓은 돈으로 이사했다. 돈의 가치는 떨어져도 집의 가치만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이 씨에게 집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일종의 불패신화였다.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살던 집이 재건축 지역으로 선정됐다. 한마디로 '땡' 잡은 셈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욕심이 더 생겼다. 평수도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더 늘리고 싶었다. 알아보니 원하는 평수에서 살려면 분담금 1억 원이 추가됐다. 고민했다. 대출을 받자니 한 달에 이자만 100만 원을 넘게 내야 했다. 그래도 빚을 지고 평수를 넓히기로 했다. 이자를 내더라도 나중에 아파트값이 오르면 '퉁'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맹신이 있었다.

막상 이자와 원금을 갚으려니 쉽지 않았다.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벅찼다. 남편이 사우디에 갔을 때처럼 부업을 시작했다. 베이비시터로 일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아파트에 입주한 지 8년 됐다.

빚을 한 번 지면 자꾸 지게 된다고 했던가. 아들만 둘인 이 씨의 첫째가 얼마 전 결혼하면서 빚을 또 지게 됐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첫째는 그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3000만 원을 모았다. 하지만 이 돈으론 서울은 고사하고 수도권에도 신혼 전셋집을 구하긴 어려웠다. 남편의 퇴직금이 있지만 이래저래 집안 일로 미리 당겨 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씨는 고민 끝에 1억 원을 아파트 담보로 대출받아 첫째에게 줬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시 빚더미에 앉게 됐다.

문제는 앞으로다. 둘째 아들도 조만간 결혼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둘째가 결혼하면 지금 사는 집을 팔려고 한다. 그 돈으로 빚 갚고 둘째 전셋집 해준 뒤, 남은 돈으로 자신과 남편은 수도권 외곽에 조그마한 집을 얻을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집이 팔려도 빚 갚고 둘째 전셋집해주면 남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대형인 집을 찾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도 없다. 이래저래 한숨만 늘어나는 이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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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담보대출과 자녀 결혼비용에 내몰린 베이비부머

이 씨는 베이비부머(babyboomers)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베이비부머는 경제 성장을 주도한 세대이자 경제 호황을 이끈 주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전쟁 이후 1955년부터 1963년까지 9년에 걸쳐 태어난 약 688만 명을 말한다. 49~57세 나이다.

전체 인구의 14.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계층이 주요 주택구입연령대(35~55세)에 진입하면서 한국 주택가격 상승세를 견인해온 게 사실이다. 1980년대 중반 베이비부머가 주택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소형주택 수요가 높았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선호주택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중대형 주택가격의 상승세가 나타나는 등 베이비부머는 주택가격 결정에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그렇다 보니 베이비부머에게 부동산 비중은 상당히 높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7월 발표한 '베이비붐 세대 은퇴에 따른 주택시장 변화'를 보면 베이비부머가 세대주인 가구는 전체가구의 약 24.4%를 차지한다. 이들의 자가 비율은 59.6%에 달한다. 사회생활하는 세대 중 가장 높다.

게다가 이들 가구의 평균 총자산은 3.3억 원으로 전체 가구의 평균자산(2.7억 원)을 상회한다. 주목할 점은 총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다. 이들은 2억4678만 원(74.8%)을 부동산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금융자산(7319만 원), 기타자산(996만 원) 순이다. 가지고 있는 재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라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베이비부머는 한국 부동산과 함께 성장했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베이비부머는 서로 땔 수 없는 사이처럼 됐다. 하지만 이런 베이비부머에게도 부동산 불패신화 공식이 깨지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와 함께 찾아온 '자식'이 문제다.

한국형 베이비부머가 다른 나라 베이비부머와 차별성이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식에 대한 무한책임'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자산의 상당부분을 자녀 교육비로 지출하거나 자녀 결혼비용으로 지원하고 있다. 스무살만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서구와 구별되는 한국적 특징이다. 그러나 심각한 청년 실업, 부실한 사회안전망이 더 큰 이유다. 이 가운데 교육 수준이 높아도 취업이 힘든 청년 실업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젊었던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베이비부머를 위기로 내모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통계청이 2010년 발표한 '사회조사를 통해 본 베이비부머 특징'을 보면 베이비부머의 90% 이상이 자녀 대학교육비 및 결혼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녀교육비 등이 소득에 비해 '부담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83.1%에 달했다.

자녀 교육까지야 생활비 일환으로 충당해왔지만 문제는 결혼비용이다. 정년퇴직과 맞물려 다가오는 자식 결혼은 베이비부머에게 골칫거리다. 베이비부머는 이것을 '빚'으로 해결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주택 등을 구입하느라 진 빚도 아직 다 갚지 못했기에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말년에 발목 잡힌 부동산 불패신화

최근 한국은행의 자료를 보면 베이비부머의 채무부담은 상당하다. 2003년에 비해 지난해 50세 이상 가계대출비중은 7.7%포인트 상승한 28.1%까지 올라갔다. 베이비부머의 총 부채규모는 평균 7513만~8806만 원으로 기타 연령대보다 상당히 높다.

특히 상대적으로 대출금리가 높은 비 은행권의 50대 가계대출비중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다. 베이비부머가 가장 고(高) 이자에 시달리는 세대라는 뜻이다.

게다가 퇴임과 맞물려 자식결혼 비용에까지 허덕이고 있다. 그나마 베이비부머는 노력하면 자신의 집은 살 수 있었지만 이들 자식 세대인 에코부머(echoboomers)에겐 집을 사는 건 하늘에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 됐다. 일반 직장인 월급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뛰었기 때문이다. 에코부머의 47.2%는 보증금 있는 월세에서 살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성공방정식은 자식세대에선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부동산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17일 발표한 8월 주택 거래량은 총 4만788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6% 감소했다. 2006년 거래량을 조사한 이후 8월 물량으로는 최저 수준이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경우 하락폭이 도드라졌다. 서울의 8월 주택거래량은 2074건으로 지난해 4428건의 절반 수준이었다. 3.3㎡당 평균 가격 역시 1693만 원으로 2006년 이후 가장 낮았다.

게다가 중대형 아파트는 제값도 못 받는 실정이다.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자료에 보면 지난 6월 용인 수지구 성복동 버들치마을 성복 힐스테이트 3차 167.58㎡형(50.6평)은 8억2732만 원에 매매됐다. 하지만 153.25㎡(45평)는 8억6208억 원에 팔렸다. 작은 집이 큰 집보다 4000만원 이상 비싸게 팔린 것이다.

베이비무버 세대가 평생 믿고 살아온 부동산 불패신화는, 그러나 말년에 그들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다.

 /허환주 기자,성현석 기자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베이비부머 자녀들 ‘취업·신용·주거난’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10일자 기사 '베이비부머 자녀들 ‘취업·신용·주거난’'을 퍼왔습니다.

ㆍ만 27~33세 청년들… “정말 시급한 해결책은 일자리”

한국전쟁 뒤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1970~199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자녀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 덕분에 풍요롭게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베이비부머 자녀들은 최근 사회 진입을 앞두고 과거 부모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고통을 겪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0일 내놓은 경제주평 ‘에코부머의 3대 경제난 : 취업난·신용난·주거난’ 보고서를 보면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자녀 세대인 ‘에코부머’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신용 불량의 멍에를 쓰고 있으며, 전셋값 급등으로 인한 심각한 주거난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메아리’라는 뜻의 ‘에코(echo)’에서 유래한 에코부머는 인구가 많은 부모세대의 영향으로 약 30년 뒤 이들 자녀세대의 인구도 많아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베이비부머들은 취업, 주거, 결혼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큰 무리 없이 사회 진입에 성공해 주도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코부머들은 잇단 경제위기로 이전에 없던 치열한 사회 진입 경쟁을 거치고 있다.

에코부머는 만 27~33세 청년들로 약 510만명이다. 남자의 경우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졸업 뒤 직장에 들어가 새롭게 일을 배울 나이다.

이들은 부모의 소득 증가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랐다는 특징이 있다. 해외 경험이 늘면서 외국어 능력을 갖추고 자기 주체성도 강하다.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고, 감성·문화·유행에 민감하며, 기존 사회질서를 거부하는 비판적인 의식도 갖고 있다. 해외 조기유학을 감수할 정도로 자식교육에 기대가 큰 부모세대 아래에서 자라 교육수준도 매우 높다.

그러나 에코부머는 심각한 취업난으로 경제활동에 순조롭게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이 어려워 학자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에 빠진 사람들도 많다. 4년제 대학 취업률이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는 60% 수준에 이르렀지만 2010년부터 45% 수준으로 크게 하락했다. 대학원을 나온 석사의 취업률도 70%에서 60%로 급락했다.

반면 학자금 대출은 빠르게 늘면서 지난해 8명 중 1명이 연체의 늪에 빠졌다. 주거 여건도 열악하다. 1980년대 후반 고도성장 과정에서 가파르게 상승한 주거비용이 성장세가 끝난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탓이다. 주거비용 급증은 에코부머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에코부머들이 사회에 원만하게 진입하지 못하면 경제·사회적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혼 적령기인 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미루면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심화한다. 세대 간 일자리 갈등도 심해지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가족 전체가 궁핍해질 우려도 크다.

보고서는 “에코부머의 안정적 사회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첫 단추는 일자리”라며 “부모세대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 사회에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창민 기자 riski@kyunghyang.com

2012년 2월 8일 수요일

분노의 시작은 아파트였다 김병재의 문화칼럼


이글은 이데일리 2012-02-08일자 기사 '분노의 시작은 아파트였다 김병재의 문화칼럼'를 퍼왔습니다.
살판났다. 자고나면 연일 달콤한 말이 쏟아지고 있다. 자신들이 정권만 잡으면 괜찮은 직장도 다닐 수 있고, 공짜 아니면 적어도 반값이란다. 심지어 돈도 준다. 용돈정도가 아니다. 1000만원이 넘는다. 백수가 끝날 때까지 준다. 커피도 아닌데 무한 리필이다. 이제 백수도 직업이 될 수 도 있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어느 당이 집권을 하든 대한민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짜될 것이다. 

공짜정책 대부분은 2040세대에 맞춰져 있다. 5060대이상은 안중에도 없다. 2040세대가 지난 서울시장 선거때 시쳇말로 뭔가를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 실망한 2040세대가 퇴근후 투표장으로 달려가 야당 대표주자인 박원순시장에게 몰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2040세대가 분노한 이유는 경제다. MB가 경제 하나만은 살려 잘 먹고 잘 살줄 알았는데 그게 안됐다. 20대는 괜찮은 직장을 다니며 폼나게 살고 싶었는데 오히려 양극화로 박탈감만 커졌다. 3040세대는 아파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오를 줄 알고 사놓은 아파트 값이 안 올랐다는 거다. 

사실 대부분의 50대이상 베이비부머세대는 하루가 다르게 뛰는 아파트 가격으로 재미를 봤다. 불과 5, 6년전인 노무현 정부때, 최고로 오른 ‘부동산 광풍’시절엔 은행에서 2,3억원씩 대출을 받아 월 150만원 안팍의 이자를 내고도 수억원씩 남는 장사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주택경기가 주저앉았다. 대다수 국민과 정부가 바라는 바대로 아파트 상승세가 주춤, 안정세로 바뀐 것이다. 

그럼 모두가 환영할 일 아닌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면 무조건 오른다’는 불패신화를 믿고 은행에서 수억원씩을 융자받아 산 아파트가 재앙이 된 것이다. 아파트는 안 팔리고 이자만 내고 있으니 복장 터질 일이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들이다. 아파트의 거품이 꺼지면서 꿈이 깨진 거다. 아이러니다. 

박원갑 부동산분석가는 “부동산 잔치는 5060세대에서 끝난 것 같다”며 “이제 누군가는 부풀려진 아파트의 버블을 떠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3040세대가 된 것이다. 현 정부를 포함해 지난 정부부터 발표한 이런 저런 부동산정책에 유탄을 맞은 거다. 

정치권의 공짜 시리즈가 난무하고 있는 요즘, 아직은 반값이나 공짜로 아파트를 준다는 말은 없다. 예전같은 부동산 폭등을 몰고온 정책도 나올것 같지 않다. 5년전 허경영후보의 공짜메뉴에도 없었다. 설사 나온다고 해도 꼼수일 확률이 거의 100%다.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