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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1일 토요일

목욕탕·병원 있는 교회 보셨나요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5-10일자 기사 '목욕탕·병원 있는 교회 보셨나요'를 퍼왔습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7] 공룡 되기보다 나눔 택한 인천제2교회


▲인천제2교회는 2010년 예배당을 재건축하면서 이웃들이 편하게 찾아와 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교회 문을 열어 놓았다. ⓒ주재일

봄볕이 따사로운 5월의 첫째 주 화요일 정오, 일찍 점심을 해결한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인천제2교회(이건영 목사・인천시 중구 도원동 51)로 모여들었다. 교육관 5층 로비에는 먼저 도착한 노인 10여 명이 교회가 제공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인천제2교회가 운영하는 목욕탕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오후 1시에 개시하지만, 몇몇 노인들은 한 시간 전부터 도착했다.
인천제2교회는 2010년 예배당을 신축하면서 교육관 4층에 작은 목욕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고려했지만, 관련 법규를 맞추기 어려워 지역의 노인들과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내부를 조금 더 손본 다음 2012년 5월 8일 문을 열어 꼭 1년이 되었다. 동인천역 앞에서 노방 전도하는 인천제2교회 교인들이 토요일마다 노인들에게 목욕탕 이용 티켓을 나눠 준다. 사실 티켓은 이용 예상 인원을 체크하는 정도일 뿐, 티켓 없이도 이용하고 있다. 때로는 노숙하는 이들을 초대해 목욕을 돕고 새 옷도 제공한다.

일주일에 두 번 여는 교회 목욕탕


▲인천제2교회가 운영하는 작은 목욕탕. 한 번에 10명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이곳은 주변의 노인들이나 노숙인들을 위해 쓰고 있다. ⓒ주재일

일주일에 두 번 문을 여는 인천제2교회 목욕탕은 화요일에는 할아버지들이, 목요일에는 할머니들이 이용한다.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각각 30여 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목욕을 하고 간다. 목욕탕을 2년째 이용한 할아버지는 "여러 교회와 기관에서 별의별 혜택을 받아 보았지만, 목욕탕을 공짜로 이용하는 건 처음이다"며 반겼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형편에 목욕비 지출은 엄두도 안 났는데, 교회에 고맙다고 했다. 옆에 있는 할아버지들도 목욕탕이 있는 교회가 별나면서도 반갑다고 거들었다.
인천제2교회는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미리 수건과 타올, 비누 등을 준비해 놓는다. 한 번에 1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이라 한꺼번에 몰리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 김윤자 집사, 김현정 권사가 어르신들이 기다리는 동안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녹차와 율무차, 커피 등을 타 드리고 말벗도 되어 드린다. 옷이 너무 헐었거나 더러우면 새로 갈아입고 갈 수 있도록 깨끗한 속옷과 겉옷, 양말 등을 마련해 놓는다.


▲목욕하러 방문한 할아버지들. 목욕 전에 봉사하는 인천제2교회 교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목욕뿐 아니라 필요하면 새 옷이나 신발 등도 받아 갈 수 있다. ⓒ주재일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김찬식 할아버지(88세)가 운동화를 바꿔 신었다. 낡은 운동화를 본 봉사팀 팀장 김진승 집사가 새로 들어온 운동화로 바꿔 준 것이다. 옆에 있던 친구분들이 "나이키네", "잘 어울려" 하며 부러워하자, 할아버지도 흡족한 눈빛이다. 김 팀장이 때마침 안전화가 들어왔다고 하자, 막노동판에서 노익장을 자랑하는 김창호 할아버지(65)가 챙겨갔다. 평소 교인들에게 기증받은 신발과 옷 등을 깨끗하게 빨아 놓았다가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김찬식 할아버지는 신발을 선물받아 신어 보며 흐믓해 하셨다. ⓒ주재일

인천제2교회 목욕탕을 이용하는 이들은 70~90대 노인들이고, 대부분이 1년간 꾸준히 이용한 이들이다. 봉사하는 집사들과도 허물없이 지낸다. 목욕 봉사단을 맡은 박경식 목사는 지난달부터 간단한 성경 말씀을 5~10분 정도 전하고 있다. 설교라기보다는 성경을 매개로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 이야기보다 "OO 어르신은 왜 안 나오셔요", "지난주에는 왜 안 나오셨어요" 하는 안부와 어디가 아프다는 근황을 주고받는 인사가 대화의 주를 이룬다. 목욕을 마친 어르신들이 나가는 길에는 빵이나 라면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드린다. 빈손으로 보내 드리기 미안해서다.

최고의 장애인 교육 터전, 삼일특수교육센터

인천제2교회 교육관은 목욕탕이 들어선 5층뿐 아니라 다른 층도 대부분 이웃을 위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목욕탕에서 한 층 더 올라간 6층에는 삼일특수교육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장애 학생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삼일특수교육센터는 유명한 교육 시설이다. 시설이 좋은 것은 물론, 일대 일 교육 방식도 가장 앞서 가기 때문이다.
삼일특수교육센터에서는 미술·언어·인지·특수체육·놀이 치료 과목을 다섯 명의 교사가 가르치고 있다.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은 예외 없이 선생님 한 명이 장애아 한 명을 전담해서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실내 체육실을 비롯해 다섯 개의 작은 교실이 별도로 있다. 그러면서도 교육비는 다른 교육 시설에 비해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총무 최인희 집사는 지금 40여 명의 장애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고 대기자도 1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인천제2교회는 2001년 삼일특수교육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운영하던 유치원을 정리하고 장애인 특수 교육에 집중한 것이다. 인천제2교회는 인천 지역 교회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일찍부터 유치원을 운영해 왔다. 1대 담임인 이승길 목사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원조를 받아 모자원을 운영했고, 2대 담임 이삼성 목사도 꾸준히 어린이 교육에 애정을 쏟았다.
"우리 교회가 꾸준하게 해 오던 사역이지만 이미 많은 시설과 교회들이 어린이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역에는 장애인 교육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더라고요. 물론 우리 교회 안에도 지체 장애인들이 중심이 된 사랑부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일에만 예배하고 만날 게 아니라 주중에도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건영 목사)


▲인천제2교회가 운영하는 삼일특수교육센터. 대기자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미술 치료 교육 장면. (사진 제공 삼일특수교육센터)

기왕 교육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교사 한 명이 한 학생을 전담해서 가르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교사들은 모두가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이들이다. 운영비는 전액 교회에서 충당한다. 관에서 재정을 지원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 길을 택하지는 않았다. 교회가 지향하는 장애우 교육을 분명하게 이뤄 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이 목사는 말했다.
그렇다고 삼일특수교육센터가 인천제2교회만의 교육 시설은 아니다. 교인이 아니어도 비신앙인이어도 누구라도 지원할 수 있다. 교인이라고 대기 차례를 앞당기는 일도 없다. 오히려 교인들은 우리 교회가 만든 시설을 외부인이 쓰고 정작 우리는 대기자여야 한다고 불평할 만한 상황이다. 총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예외를 적용한 적 없이 공평하게 운영해 왔다며, 교인들이 교회 밖 사람들을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을 품었기에 가능했다고 교인들을 자랑했다.
특히 기존 건물을 헐고 재건축하는 과정에서도 교회는 삼일특수교육센터를 쉬지 않았다. 재건축 논의 첫 안건이 임시 교육 시설 마련이었다. 교회 앞 2층 건물을 매입해 삼일특수교육센터를 이전한 뒤 재건축을 시작한 것이다. 이 목사도 교육센터를 개관한 뒤 교회의 이런 저런 사정을 이유로 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했다.
"삼일특수교육센터는 초등부 예산의 10배를 씁니다. 그렇다고 수익이 생기는 일도, 교인이 늘어나는 일도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는 일에 왜 계속 투자하느냐는 원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 돈을 일반 교육 부서에 쓴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 학생들 교육은 우리처럼 넉넉한 교회에서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이건영 목사)

구에 하나뿐인 어린이 도서관


▲인천제2교회 7층에 있는 꿈나래도서관. 이 도서관은 인천시 중구에 유일한 어린이 도서관이다. 일반인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앙 서적은 10% 이내로만 비치하고 있다. (사진 제공 꿈나래도서관)

7층에는 어린이 도서관인 꿈나래도서관이 있다. 9000권 이상의 어린이 관련 책이 있고, 그 가운데 90%는 일반 서적이다. 기독교 서적이 많으면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위화감을 준다고 생각해 내린 결론이다. 계절에 한 번씩 새 책을 구입하면서도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다.
꿈나래도서관은 그냥 책만 보는 곳이 아니다. 구연동화 자격증이 있는 집사들이 봉사자로 나서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좋은 영화를 보고 토론한다. 인근 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 도서관 체험도 꾸준하게 온다. 어린이들이 도서관을 방문해 필요한 책을 찾아서 읽고 다시 반납하는 과정을 익히는 것이다. 특히 찾는 이들이 많은 주말에는 집사와 권사 예닐곱 명이 자원봉사자로 나선다.
도서관의 어린이 회원은 500명가량이고, 한 달에 700명이 넘게 찾아 제법 북적거리는 도서관이다. 하지만, 마침 방문한 날에는 도서관이 텅 비어 있어서 원래 이렇게 사람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간사 임순미 집사는 "주중에는 한가하다"고 했다.
"요즘에는 어린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바빠요. 학교 끝나도 학원 가느라 도서관조차 올 시간이 없어요. 잠깐 방문해도 대부분은 대출해 갑니다. 그래서 주중에는 한적한 편이지만, 작은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고 있어요." (임순미 집사)
"꿈나래도서관은 최근 인천시 중구에서 우수 어린이 도서관으로 선정됐습니다. 우리는 잘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꼭 이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중구에는 어린이 도서관이 저희 한 곳밖에 없거든요.(웃음)" (이건영 목사)

사택 대신 농구장 지어


▲인천제2교회 헬스장. 교회 주변에 변변한 체육 시설이 없고 이용료도 저렴(1달에 1만 원)하기에, 이웃의 사랑을 받고 있다. ⓒ주재일

이 목사는 가난한 지역, 복지 혜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마을에 자리 잡은 교회라서 별것 아닌 일을 해도 돋보인다는 말도 곁들였다. 맨 꼭대기 층인 8층에 올라서면, 헬스장과 농구장이 있다. 헬스장에는 트레이너를 두고 찾는 이들의 운동을 돕는다. 함께 방문한 이 목사에게 교회가 별것 다하면 주변 상가들이 싫어하겠다고 했더니, 그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인근에는 헬스클럽 비슷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인천시 중구에서 영종 신도시 인구 8만 명을 빼면 2~3만 명에 불과한데,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권이 발전할 리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교회 주변으로는 각종 철물, 공업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자꾸 개발되는 신도지 지역에서 밀려난 3D 업종이라서 이곳에 집중하는 현상이 심해져 지금은 500개 정도의 작은 공장들이 들어섰다. 그래서 곳곳에서 쇳소리가 들리고, 바람을 타고 쇠 타는 냄새가 날아온다. 편의 시설도 많지 않아서 공장 주변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에게 괜찮은 운동 시설을 제공하고 싶었다는 게 이 목사의 설명.
반 코트짜리 농구장은 이 목사가 끝까지 고집을 피워 만들었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이 목사는 재건축하면서 교회 한 쪽에 농구장을 만들려 했다. 그렇지만 건축법에 걸려 실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목사는 사택이 들어설 공간을 빼고, 코트도 절반으로 줄이는 등 설계를 수정해서 만들게 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자부심 때문이었을까, 농구장에 들어선 8층 옥상 쪽으로 가면서 교회를 설명하는 이 목사의 음성이 강하고 높아졌다.

이주노동자 위한 치과·내과·미용실까지


▲인천제2교회 교육관 전경. 교육관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이웃을 위한 복지관에 가깝다. ⓒ주재일

이 정도면 교육관이 아니라 복지관이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본당으로 통하는 1층에는 치과와 내과, 미용실까지 차렸다. 게다가 모두가 일요일에만 문을 열고 있다. 평소 문을 열다가도 일요일에는 예배를 위해 쉴 법하지만, 반대로 운영하는 건 이곳을 찾는 손님들 때문이다. 이 세 곳은 모두 이주노동자, 그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주로 이용한다. 일요일에 중국인 예배를 드리고 난 뒤 이발도 하고 진료도 받는다.
"이국에 와서 아프면 서럽지요. 그중에서도 이가 아프면 제일 고생입니다. 보험이 적용 안 되는 경우가 많아 비싸서 대부분 참고 살다가 더 낭패를 봅니다. 그래서 치과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서비스일 것입니다." (이건영 목사)
이런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교인들 중에서 의사와 간호사, 약사, 미용사들이 자원봉사를 나섰기 때문이다. 주변 공단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이 한두 명 모여들면서 중국인들끼리 모여 예배를 드렸다. 담당 목회자와 예배 봉사자들도 배치되었다. 중국인들은 10여 명씩 무리를 지어 교회를 순회한다고 했다. 교회들이 나눠 주는 각종 지원 물품과 선물을 비교해서 더 나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인천제2교회는 선물이 전혀 없다. 그래도 150명 가까이 꾸준히 출석한다.
꼭 병원 진료 때문만은 아니라고 이 목사는 말했다. 불법 체류자들을 대상으로 법률 지원을 해 주고, 밀린 급여를 대신 받아 주는 일을 하는 것 때문만도 아니라고 했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6일은 짐승 취급을 받는데 하루만 사람으로 대접받는다"고 했다. 이 목사도 인천제2교회 중국인 예배가 가장 많이 모인다며, 교인들이 그들을 정성껏 만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인 예배는 중국어로 예배드리는 것 외에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다. 여느 교회의 외국인 예배와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다만 친절하게 봉사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음을 다해서 만난다는 것은 당사자들이 가장 잘 느낀다. 한국에 있을 때만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인 예배 부서의 교사들은 여름휴가 때마다 중국으로까지 심방을 떠난다. 이곳에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지 격려 방문하는 것이다.
"딱 한 번 저도 따라가 보았습니다. 기차에 버스를 몇 차례 갈아타고 며칠이 걸려 깊은 시골 마을까지 갔습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고 하니까 중국 시골 마을에 잔치가 벌어집니다. 일가친척에 이웃들까지 모입니다. 당사자는 잊지 않고 이역만리까지 찾아온 우리를 보고 눈물을 안 흘릴 수 없지요. 우리 활동은 특별한 건 없습니다. 신앙을 버리지 않고 잘 지내는지 확인하고 용기를 줍니다. 때로는 우리가 더 위로를 받고 오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모든 여행 경비를 자신들이 직접 마련하고 휴가까지 쓰면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 목사로서 부끄럽습니다." (이건영 목사)
인천제2교회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하게 중국을 심방했다. 지금까지 중국인 예배를 드리면서 거쳐 간 이들만 수백 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집사도 40여 명이다. 중국인들도 다른 교인들과 동일하게 최소 5~6년은 꾸준하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집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 중국인 노동자들도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것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역자 배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인천제2교회 목회자 18명 가운데 중국인 예배 담당만 4명이다. 주중 심방과 주말 대심방을 꾸준히 펼치면서, 신앙생활은 물론 타국 생활의 불편함을 상담하고 도울 일을 찾는다. 이러한 활동 위에 치과와 내과 치료, 이미용 봉사를 펼치기에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이 목사는 보았다.

공룡 교회로 가는 길목에서 멈추다

인천제2교회는 성인 출석 교인이 2300명, 어린이와 청소년이 950명에 이르는 큰 교회이지만, 매머드급 교회로 성장할 기회도 있었다. 실제로 그러한 교회로 갈 계획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멈췄다.
35년 된 건물이 이곳저곳에서 말썽을 부리면서 수리비로만 매년 1억 원 넘게 들자 2000년대 중반 이전과 재건축 갈림길에 섰다. 마침 신도시가 들어선 인천 연수동에 3000평 규모의 골프연습장이 경매로 나오자 매입하려 했다. 지금 부지를 팔면 인수하고 교회로 꾸미는 데 무리가 없었고, 장로들도 모두 이 방안을 환영했다. 그렇지만 이 목사가 고심하다가 거부했다고 한다.
"여러 번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홀로 가기도 하고 아내와 함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갈 때마다 반경 2킬로미터 안에 교회가 몇 곳인지 세 보았습니다. 상가 교회, 개척 교회, 중형 교회 포함해 50곳이 넘었습니다. 우리가 가면 그 교회들이 어떻게 될지는 훤했습니다. 상당수 교인들은 저희 같은 대형 교회에 흡수될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 펼친 여론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 나이를 생각하면 마지막 기회였기에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목회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큰 교회입니다. 여기서 멈출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영 목사)
이 목사는 장로들과 협의 뒤, 교인들과 논의를 거쳐 재건축을 하기로 했다. 교인 규모를 따져 4000석 규모로 만들자는 제안이 많았지만, 본당은 최소한으로 줄여 1700석 규모로 지었다. 이 목사는 "교인 수를 더 늘려가는 데 집중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고 했다. 대신 이웃이 필요를 따져 편하게 교회를 왕래할 수 있는 시설을 최대한 많이 배치했다. 지금 교육관이 사실상 복지관, 주민센터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다.
새 건물을 준공한 201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본당을 비롯해 교회의 여러 공간을 이웃들에게 내주고 있다. 인근 학교들 학예회와 각종 연주회, 시민단체들이나 장애인들의 행사도 수없이 치렀다. 최근에는 본당에서 가수 현미 씨의 효 콘서트가 열렸고, 교육관은 인하대 기독 동아리들 모꼬지 장소로 활용했다. 대관 조건은 간단하다. '금주 금연'. 대관료는 따로 책정하지 않고 교회를 빌리는 단체 형편에 맞게 감사헌금을 하면 된다.
시설뿐 아니라 인적인 구성, 재원도 나눔 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선 재정의 30%는 반드시 복지와 봉사, 선교를 위해 사용한다. 연 결산 40억 원 가운데 12억 원을 교회 밖으로 지출하는 셈이다. 교인들도 다양한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교육관 안에서 벌이는 다양한 사역에 봉사자로 나선다.
달마다 한 번씩 필치는 짜장면 봉사는 일간지에도 소개됐다. 교인 20여 명이 취사도구와 식재료를 차에 싣고 복지 현장을 방문해 삼사백 명에게 짜장면을 현장에서 바로 만들어 드리는 활동이다. 인천 지역의 여러 복지관을 비롯해 수해 현장 등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외에도 무의탁 노인들에게 때맞춰 반찬을 배달하고,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전달한다.
결식 청소년들을 위해서는 식사비로 주고 있다. 학교 근처 식당과 계약을 맺어 식비가 없는 학생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가면, 교회가 월말에 결산해 주는 식이다. 교회는 누가 먹는지 따지지 않고 영수증만 올라오면 지급해 주고 있다. 학생들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하려고 이러한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무료 식비로만 매달 50만 원 안팎으로 지출한다고 이 목사는 말했다.

성장 부흥 대신 일치와 연합을


▲이건영 인천제2교회 목사는 공룡 교회를 지향하지 않고 지금 수준에서 멈춘 것을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웃을 위해 교회를 아낌 없이 개방하고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교인들과 목회해서 행복하다고 했다. ⓒ주재일

교회 전체가 자기만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이웃을 배려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움직이고 있다고 이 목사는 자부했다. 이제 이 목사는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에 환갑을 맞아서 은퇴를 고려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나이이지만, 65세 후 조기 은퇴 시기를 결정할 생각이다. 아들과 사위 등이 모두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교인들에게 세습은 없다고 선언했다. 당회록에도 남겼다. 지금까지 지켜 온 정신을 이을 후임을 교인들과 함께 찾아갈 생각이다.
"우리 교회는 66년 동안 담임 목회자가 두 번밖에 교체되지 않았습니다. 한분은 소천, 한분은 정년퇴임하셨고, 저는 부목사 사역을 포함 26년을 목회했습니다. 요즘 같은 교계 현실에서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그만큼 교회가 일치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후에는 성장보다는 일치, 부흥보다는 연합을 우선하는 목회자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건영 목사)
이 목사는 은퇴 후 계획도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다. 미혼모 시설을 해 보고 싶다는 것. 교회 이름으로 작은 공간을 마련하면 자신은 좋은 아버지, 할아버지로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20년 전 추위를 피해 교회에 들어온 미혼모와의 만남 때문이다. 성가대 연습실에서 떨고 있는 미혼모를 사택으로 초대해 며칠 같이 지냈는데, 어느날 인사도 없이 떠난 것이 아직도 아쉽다고 했다.
"교회와 협의해야 하지만, 제 은퇴 자금에 교회가 조금만 지원해 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교회에서 기회를 준다면 마지막으로 펼치고 싶은 사역입니다. 그분들의 좋은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싶습니다. 아내는 늙어서도 부엌에 가둬 두려 한다고 핀잔을 주지만, 당신이 하면 따르겠다고 합니다. 요즘 같은 한국교회 분위기라면 무사히 나가는 것만도 다행인 것 같은데, 꿈이 조금 거창합니다.(웃음)"

주재일 (jeree)  

2013년 5월 10일 금요일

한국교회의 현실, '가나안 급증' 언제까지 묵인할텐가?


이글은 플러스코리아 2013-05-09일자 기사 '한국교회의 현실, '가나안 급증' 언제까지 묵인할텐가?'를 퍼왔습니다.
"목회자들의 부정과 부패 때문" 교회와 목회자 회개 촉구

[플러스코리아] 이수현 기자칼럼= '가나안 교인'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최근 개신교인들의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말이다.

‘가나안 교인’이란 과거 교회를 다녀 신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지만 현재 교회를 나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성경의 역사 속에 신이 약속한 가나안 땅을 찾아 헤맨 이스라엘 민족처럼 정확한 소속 없이 신앙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교회에 안나가’를 거꾸로 하면 ‘가나안’이 되기도 한다.

▲ 개신교 신도들이 미국 헐리우드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JESUS=HEAVEN, NO JESUS=HELL)이라고 적힌 영문 피켓을 들고 퍼레이드를 벌이는 사진이 공개돼 빈축을 사고 있다. 이 사진은 트위터 이용자 @_Lavina 아이디를 가진 분이 "헐리웃 거리에서 태극기를 내걸고 '예수천국 불신지옥' 퍼레이드를 했답니다. 놀란 관광객들이 대피해도 확성기를 앞세워 고래고래 외쳤다던데, 민폐도 이런 민폐, 나라망신도 이런 나라망신이 없는 듯"이라며 올린 사진이다 . ⓒ 편집부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수를 정확히 집계할 수 없지만, 이 '가나안 교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신앙을 가지고서도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것일까?

이에 대해 지난 달 25일 목회사회학연구소에서는 ‘소속 없는 신앙인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기독교인이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는 316명의 사례를 분석해 밝힌 것이다.

과연 이들은 어떠한 이유로 교회를 나가고 있지 않는가? 

교회를 떠난 이유 중 가장 많은 의견을 차지한 것은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원해서’(30.3%)였으며, 그 다음이 ‘목회자들에 대한 불만(24.3%)’, ‘교인에 대한 불만(19.1%)’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대체적으로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원해서’가 30.3%였으며 여성은 ‘교인들에 대한 불만’이 25.4%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떠나기 전 교회’에 대해서는 ‘교인들의 삶이 매우 신앙인답지 못했다’가 30.6%, ‘담임목사가 매우 독단적이었다’ 26.5%로 평가됐다. 

이를 통해 살펴본 결과 교인들에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목회자와 교인들의 신앙과 삶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기독교의 모습은 목회자들의 세습 논란, 학위위조, 종교인 세금문제, 성추행, 각종 비리 사건 등으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며 수많은 비난과 질책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대형 교회 중심으로 가다보니 무리한 건축으로 인해 성경중심의 예배가 아닌 물질적인 축복과 권유들이 쏟아져 부담을 느끼는 교인들도 적지 않다.

현재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등 총칭)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심지어 개신교를 믿지 않는 이들은 개신교(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를 정도이다.

이에 네티즌들은 “이 땅 위의 모든 교회들이 초대교회 정신과 자세로 돌아가야 산다. 그 길만이 여호와 앞에서 바로설 수가 있으며, 여호와께 영광을 드릴 수 있는 길이다."
 
" 주님의 말씀 가운데 온전히 바로 깨어서 자신들의 십자가를 바로지고 나가는 주님의 복된 자녀들이 다 됩시다 !”, “가나안 교인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교회를 나간 성도들의 목적은 가르치지 않고 어떻게 하라는 행위만 가르치고 강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왜 교회 안 나가는 교인이 늘었을까? 이유는 너무나도 부끄럽게도 목회자들의 부정과 부패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교회목회자들 모두 물러나고 깨끗한 교회가 된다면 다시 많은 교인들이 몰려올거라 믿는다"라며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지난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집회에서 있어진 진정한 회개의 고백으로 전 성도들의 회개의 물결이 일어 평양대부흥이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의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는 'AGAIN 1907' 찬양의 고백처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목회자의 진실한 회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제보= webmaster@pluskorea.net 
이수현 기자 

2013년 2월 10일 일요일

교회는 차례와 제사문화 존중해야 한다


이글은 대자보 2013-02-07일자 기사 '교회는 차례와 제사문화 존중해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류상태의 주일편지] 제사문화에 대한 한국교회 대승적 결단 있어야

이번 주일(2월 10일)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설날이기도 합니다. 하여 전통적으로 설날 아침에 지내온 차례 문화와 관련하여 교우님들과 의견을 나누고 싶어 며칠 앞서 편지를 드립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제사 문제로 인해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는 교우님들이 계십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고민이지만 교회가 적절한 지침을 제시해 주지 않거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교리적으로만 다그치는 바람에 믿지 않는 가족들과 늘 보이지 않는 갈등에 휩싸여 명절이 다가올수록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는 교우님들도 적지 않습니다.

가족이 모두 기독교인이고 추도예배를 드리는 가정은 문제가 없을 수 있겠으나 차례를 드리는 가정에 참여해야 되는 교우님들은 마음고생이 많으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전통문화와 교회의 가르침이 충돌하는 이 문제를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옳을까요? 이 쉽지 않은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이삼백년 전 한반도에 찾아온 갈등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제사문화에 대한 초기 천주교의 이해

제사문제는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온 선교 초기부터 맞닥뜨린 풀기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개신교보다 100여 년이나 앞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천주교는 고인을 위해 음식을 차려놓고 절하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는 십계명의 첫 계명과,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는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여 천주교는 결국 제사문화를 거부하게 되었고, 이런 천주교인들의 태도는 조상에 대한 효를 인륜도덕의 기본으로 삼는 당시 조선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조상의 은공을 부인하는 불효막심한 죄이며, 그런 파렴치한 일을 옳다고 가르치는 천주교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사악한 종교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엔 당파 싸움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다산 정약용을 비롯하여 주로 권력에서 소외된 남인파 학자들이 천주교에 많이 귀의했기에 당시 집권 정치인들로부터 대대적인 박해를 받아 수많은 천주교 교우님들이 생명을 잃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습니다.

2. 조상을 공경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오랜 갈등 끝에 천주교는 일부 형식을 바꾸기는 했지만 우리의 제사제도를 아름다운 전통문화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개신교회는 대부분 제사제도를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사를 허락한 천주교회에 대해서 우상숭배를 한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회에서도 소수이지만 제사를 지내도 괜찮다고 가르치시는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제사 문제가 교회마다 해석이 다르고 혼선을 빗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제사문화에 윤리적 성격과 종교적 성격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이어주신 조상님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효심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서의 가르침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제사문화에는 종교적 의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상을 단지 존경하고 감사하는 차원을 넘어 여전히 그 인격이 혼으로 살아있고 제사를 잘 드려야 가문이 복을 받고 잘 살게 된다는 조상신 숭배의식을 포함하고 있기에 우리 교회와 교우님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도 달리 해석할 여지는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적 요소보다 윤리성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상을 신으로 섬긴다는 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효심에 근거해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런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는 우상숭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제사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견해입니다. 천주교회와 개신교회 일부에서 제사문화를 허용하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사문화를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명절이나 기일에 조상님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감사하며 드리는 절은 부모님이나 어른들께 세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시 우상숭배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상숭배의 사전적 의미는 ‘돌이나 나무 등으로 만든 신상에 절하고 비는 것’ 또는 ‘하나님 이외의 사람이나 물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런 기초 개념을 바탕으로 우리 기독교가 이해해야 하는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을 하나님과 동등한 절대적 위치에 두고 의지하며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돈이나 권력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방식은 명백한 우상숭배입니다. 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물리쳐야 할 우상은 ‘사람보다 돈을 더 중히 여기는 물질적 가치관과 삶’이며, 또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배타적인 교리와 문자 안에 가두어 이웃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를 무시하거나 부정하여 세상에 평화를 심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는 독선적 신앙’입니다.

한국 교회는 제사문화를 우상숭배라고 비난하기에 앞서, 독선적 배타 교리를 절대화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우상숭배가 아닌지 깊이 돌아보아야 하며, 조상님에게 절을 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삶으로는 하나님을 멀리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해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제사문화를 긍정하더라도 짚어볼 점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도 우리의 제사문화를 존중하고 그 의미를 계승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조심스럽게 건의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조상님을 공경하는 전통예절의 내용은 보전하되 제사제도의 형식은 절대화하지 말고 현대사회에 맞게 좀 더 탄력적으로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사제도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려면 음식 장만에 따르는 경제 비용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여성에게 집중되는 과도한 노동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성들에게는 즐거운 명절이 여성들에게는 중노동이 되는 현실은 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남성들에 의해 애써 외면당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불균형을 기뻐하실까요?

남성들만의 명절 또는 어린아이들만의 명절이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이 즐기는 명절로 보낼 수는 없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명절에 발생하는 노동문제를 여성과 남성이 함께 지는 것부터 실천해야 하겠지만, 노동의 양을 줄이고 가족이 다같이 모여 충분히 대화하며 즐길 수 있는 명절로 분위기를 바꾸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사제도의 형식을 좀 더 간소하게 바꾸고 다른 형식의 추모방식을 함께 허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기독교에서 드리는 추도예배도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제도를 우상숭배로 거부하는 배타적 외래문화로서의 추도예배가 아니라, 형식은 바꾸더라도 조상님께 감사하고 공경하는 옛 제사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내용으로 계승하는 추도예배라면 훌륭한 대안문화의 하나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전통문화로서의 제사의례와 지금까지 교회에서 장려해온 추도예배 중에서 교우님들이 자유롭게 선택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도예배를 무가치한 외래문화로 규정하고 제사제도만 옳다고 주장한다든가, 전통적인 제사의례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추도예배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복해야 할 문화적 배타주의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차제에 우리 한국 교회가 민족의 전통문화와 기독교문화를 모두 긍정하고, 교우님들로 하여금 각 가정의 특색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가족간 갈등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우님들의 선택에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제 경우를 하나의 사례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는 유교문화를 중시하는 가정에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의 삼강오륜 강독을 듣고 자랐으며 전통적인 제사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목사가 된 이후에도 제사에 참여했지만 절은 하지 않고 기도만 드렸습니다. 보수 기독교 신앙을 갖고 계신 고모님을 생각하여 제 나름대로 선택한 고육책이었지만 다행히 아버지께서 저의 무례한(?) 태도를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큰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장손인 형님이 가족회의를 소집하여 저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이끌어오신 가문의 제사는 형식의 변화 없이 계속될 것이며 혹 마음에 불편이 있더라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따라주면 좋겠다는 부탁이었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해왔듯이 절을 대신하여 기도로 참여해도 괜찮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형님이 주관하시는 첫 제사에서 아무 망설임 없이 아버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돌아가셨지만 어렸을 적부터 어루만져주셨던 아버님의 손길이 세밀히 느껴지는 자리에서 그냥 서서 기도만 하는 것을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부모님 앞에서는 그냥 서서 기도할 수 있었는데, 아버님 앞에서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이후로도 제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형님이 주관하시는 제사 때마다 아버지께 깊이 절을 드렸고, 이후로는 조부모님 제사 때도 절을 올렸습니다.

형님은 몇 년 전 지병으로 연세에 비해 조금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장남의 역할을 이어받은 저는 가족회의를 소집하여 제사와 추도예배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상황에 적합한 지 허심탄회하게 의논하여 결정하자고 하였습니다.

은퇴권사이신 어머니께서 추도예배로 드리자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양쪽 전통이 모두 소중하지만 조상을 기리는 의미에는 다를 것이 없으며, 며느리들이 주로 겪어야 하는 여러가지 말못할 부담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며 내놓으신 의견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 의견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모두가 동의하여 이후 저희 가정은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제사를 드렸던 이전과 추도예배를 드리는 지금, 저희 가족에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를 모시고 3대에 이르는 대가족이 함께 모여 아버님과 형님께서 남겨주신 소중한 가르침과 베푸심을 기리고 감사하며 간소한 음식과 덕담을 나누는 일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 한국 교회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합니다.

과거 교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목사님 몇 분이 제사문화는 우상숭배가 아니며 차례를 드려도 괜찮다는 의견을 설교시간을 통해 발표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문제가 발발하고 교계의 추궁을 받게 되자 아쉽게도 본인들 스스로 소신을 접고 말았습니다. 교단의 눈초리가 무서워 소신대로 목회하지 못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깨어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사제도를 전통문화로 존중하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이로 인해서 한국 교회 안에 새로운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사회의 존경을 받는 공동체로 거듭나려면 창조적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 책임 있는 목사님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한국 교회는 배타적인 교리로 인해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우리 사회와 이웃종교에 무례가 되는 일을 너무 많이 해왔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동안 교회가 전통문화를 무시하거나 부정한 행위에 대하여, 또한 이웃종교를 존중하지 못하고 배척할 뿐 아니라 심지어 물리적 위해를 가한 모든 잘못에 대하여 우리 사회와 이웃종교에 진정으로 사과하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개신교 각 교단 차원에서, 또한 개혁단체들과 진보기독교언론, 깨어있는 교회들이 이 일에 적극 나서주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또한 이 문제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하고 계시는 교우님들은, 제사와 추도예배 중에 어느 것이 자신의 가정에 적절한 지 충분히 검토하여 아무 두려움 없이 편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상님들을 기리며 예를 표하는 아름다운 전통은 내용으로 계승하되, 추모 형식에 대해서는 가족회의를 거쳐 각 가정의 상황에 맞는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가족과 친지간 화목을 꼭 이루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대가족이 함께 모이는 명절에 지금까지 겪어왔던 문화충돌이 극복되고 기쁨과 행복이 가득 넘치는 명절로 보내게 된다면, 가정에서부터 평화를 이루어가는 우리의 선택에 대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설날을 맞이하여 교우님들 가정에 우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만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드립니다.

류상태

2013년 1월 7일 월요일

연말연시에 이들을 찾아 나선 까닭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1-05일자 기사 '연말연시에 이들을 찾아 나선 까닭'을 퍼왔습니다.

아직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다. 지난 10월과 11월, 각각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과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자 세 명이 회사 인근 고압 송전탑에 올라갔다.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 한 명도 10월 회사 근처 굴다리 위로 올라가 천막을 쳤다. 그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짧게는 48일, 길게는 76일을 버티고 있었다.
사람이 목숨을 내놓고 진실과 정의를 외치는 판에 정작 교회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두 팔 걷어 부치고 농성자 위로에 나선 교회는 극히 소수다. 대부분 교회는 성탄절과 송구영신 예배 준비에 바쁘다. 이전에 내가 다녔던 교회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얘기를 불편해했다. 교회는 줄곧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가르쳤지만, 막상 그런 곳에는 성경을 잘 적용하지 않았다. 몇몇 목사와 장로들은 나의 사상을 심각하게 걱정하기도 했다.


▲ 노동자들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있다. 평택 쌍용차와 울산 현대차 노동자들은 회사 인근 송전탑에 올라갔다.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는 굴다리로 올라갔다. 왼쪽부터 평택, 아산, 울산 고공 농성장. ⓒ마르투스 구권효

하지만 고공 농성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부채 의식을 느꼈다. 내가 할 일을 남이 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정의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야 한다. "함께 살자"는 외침은 성경의 메시지가 아니던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잊지 않고 있었다", "미안하다", "응원한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극심한 추위에 사람의 체온이라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의 마지막 날, 나는 고공 농성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평택과 아산을 거쳐 울산에서 송구영신 예배를 기획한 CBS 기독교 시사 프로그램 '크리스천 NOW' 팀을 따라나섰다.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를 비롯한 교인 4명과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 무지개교회 박성진 목사도 함께했다.


▲ 크리스천 NOW 팀과 함께여는교회 등 참석자들은 출발하기 전 농성자들을 위해 격려·응원의 메시지와 목도리, 장갑 등 기본적인 방한 용품을 준비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처음에는 무슨 말을 써야 할 지 몰라 망설였지만, 이내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르투스 구권효

위태로운 농성자들, "우리 얘기를 들어 달라!"

고공 농성 현장은 처절했다. 평택 쌍용차와 울산 현대차 노동자같이 송전탑에 올라간 경우는 철탑 중간에 쇠파이프와 합판, 플랜트로 바닥을 만들고 천막을 쳤다. 지상으로부터 25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아산 유성기업 노동자는 특이하게 굴다리 옆에 쇠파이프로 앵글을 짜고 천막을 쳤다. 가로 1m 세로 2m 높이 1m 정도의 작은 공간이다. 음식, 씻을 물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지상에 있는 조합원들이 밧줄을 통해 올려 준다. 변도 이런 식으로 내린다.


▲ 평택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도착했다. "송전탑 농성 42일째"라는 현수막과 함께 벌판에 우뚝 솟은 철탑이 위압감을 줬다. ⓒ마르투스 구권효


▲ 아산 유성기업 노조는 회사 정문으로 통하는 길 굴다리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도 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갔다. 12월 31일, 76일째였다. ⓒ마르투스 구권효

여기에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얼면 잠도 제대로 못 잔다. 12월 31일 아침 기온은 영하 13도였는데, 이 정도면 고공에서는 체감 온도 영하 20도 이하다. 고공 농성자들은 감기를 달고 산다. 평택 송전탑같이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는 이명을 앓기도 한다. 울산 송전탑은 바다가 앞에 있어 쉬지 않고 바람이 분다. 아산 굴다리 옆은 4차선 도로다. 차가 지나가면서 몰아치는 후폭풍이 매섭다.


▲ 유성기업 노조가 투쟁 중인 굴다리 위는 4차선 국도다. 차가 쌩쌩 달리면서 몰아치는 바람이 매섭다. 고공 농성 중인 홍종인 지회장은 차가 지나가는 소리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쌍용차 노조가 고공 농성 중인 철탑 아래에는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의 천막이 있다. 이곳에서 조합원이 10여 명씩 돌아가며 숙식을 한다. ⓒ마르투스 구권효


▲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밧줄에 올려 보낸다. 조합원들은 고공 농성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이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의 얘기를 좀 들어 달라는 거다. 이들은 모두 회사로부터 정리 해고를 당하거나 탄압을 받은 노동자다.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며 수천 명의 밥줄을 끊었지만, 몇몇 자본가들은 오히려 배를 불렸다. 거기에 용역과 공권력을 통한 폭력, 부당한 사법 판결, 정부의 방치, 언론 조작, 국민의 무관심은 이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수년 간 수십 명이 죽어 나가고 분신을 했다. 그래도 권력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고공 농성은 어쩌면 이들의 위태로운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농성자들은 스스로 허공에 몸을 맡겼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사회로부터 '내몰린' 것이다.


▲ 크리스천 NOW 팀은 평택 고공 농성자들과 직접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영하 20도의 추위도 견딜 수 있다"며 "조합원들과 잊지 않고 찾아 주는 분들이 우리의 힘이고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멀리 그들을 해고한 쌍용차 공장이 보인다. 철탑 위 사람들은 매일 공장을 바라다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마르투스 구권효

한국교회여, 이념의 노예가 되지 말라

하지만 슬픈 자들을 위로하고, 권력자의 부당함에는 저항해야 할 교회의 방문은 뜸하다. 지금은 그나마 연말이라 몇몇 교회들이 농성 현장을 방문했지만,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교회는 없다.


▲ 평택, 송전탑을 바라보며 예배를 드렸다. 오산이주동자센터와 한국기독청년연합회(한기연) 사람들이 몇몇 찾아 왔다. ⓒ마르투스 구권효


▲ 하루빨리 문제가 해결되어 농성자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도록 기도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예배를 함께 드렸다. ⓒ마르투스 구권효


▲ 평택 쌍용차나 울산 현대차 노조 투쟁에 비해 아산 유성기업 노조 투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함께 살자"는 이들의 외침을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울산 농성장에서 드린 예배. 울산 농성장에는 지역 교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마르투스 구권효


▲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념적으로 보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으면 이런 자들과 함께 우셨을 것"이라고 방 목사는 말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평택은 2006년 대추리, 2009년 쌍용차 사건을 겪으면서 주민들이 오히려 보수 성향을 띄게 됐다. 지역 정서상 교회가 노동자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렵다. 쌍용차 노조의 한 조합원은 열심 있는 신자였는데, 교회가 사 측 편을 들면서 마음이 힘들어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한 대형 교회에는 쌍용차 경영진도, 노조 조합원도 다닌다. 교회는 가끔 조합원에게 위로금을 건네기도 하지만 거의 회사 측 입장을 대변한다. 지역 정서에 성경의 메시지가 침묵을 강요당한 셈이다.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한 조합원은 "울산 지역 교회의 99%는 보수 성향일 것"이라고 말한다. 고공 농성 77일을 맞았지만 교회에서는 한두 번밖에 오지 않았다. 그 조합원은 한동안 울산 지역에 노동자들을 위로하는 민중 교회를 다녔는데, 지금은 그곳도 그냥 보통 교회와 똑같아졌다며 아쉬워했다. 요즘도 가끔씩 교회를 찾는다는 그는 "기독교가 너무 기복 신앙이 되었다"며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고 있다.
평택 쌍용차와 울산 현대차에 비해 덜 알려진 아산 유성기업 농성 현장은 찾는 사람이 적어 외로움이 크다. 그래도 교회의 참여는 다른 곳에 비해 많은 편이다. 아산 지역 목회자들이 만든 아산인권선교위원회가 "정당한 요구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회사의 만행이 너무 잔인하고 악하다"며 유성기업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돌아가면서 농성장을 찾아 기도회를 열고 있다.


▲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성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공평하게 정규직으로만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가르친다"고 말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아직도 한국교회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념적으로 보는 성향이 강하다. 일부 교회는 이들을 위로하기는커녕, '빨갱이'로 규정짓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함께여는교회 방인성 목사는 평택 농성장에서 "이들의 요구는 '함께 살자'는 것인데 한국교회가 노동자의 투쟁을 너무 이념적으로만 보고 있다"며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다면 이런 자들과 함께 우셨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한국교회가 자꾸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인식하는 데 취약하기 때문이다. 농성자들이 거칠게 시위하는 모습만 보고 무조건 비난할 게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고공으로 내몰았는지를 인지해야 한다. '크리스천 NOW' 진행자인 김응교 교수(숙명여대)도 이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노동자들이 부당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기독교가 구제에만 힘을 쏟지 말고, 농성자들과 함께 사회구조 변혁에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투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희망의 불씨를 이어 가고 있는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는 비정규직 제도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울산에서 드린 송구영신 예배에서 그는 "성서 어느 곳을 보더라도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는 없다"며 "성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공평하게 정규직으로만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천명했다.


▲ 유성기업 노조 시위 현장. 함께여는교회 교인들이 준비한 메시지와 선물을 전달했다. 홍종인 지회장이 받은 응원 메시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홍 지회장을 응원했다. 반드시 승리해서 몸 건강히 내려올 수 있기를 빈다. ⓒ마르투스 구권효

고공 농성, 정의로운 세상에 '새잎' 되길


▲ 송전탑 중간에 쇠파이프와 합판으로 바닥을 만들고 천막을 쳤다.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수석부지회장이 고공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홍종인 유성기업 노조 아산지회장이 굴다리 옆에 한 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 지회장은 사 측이나 공권력에 의해 끌려 내려가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를 다잡기 위해 목에 밧줄을 두르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 철탑에는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소속 천의봉 사무국장과 최병승 조합원이 올라가 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뼈에 스민다. ⓒ마르투스 구권효

고공 농성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서려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들의 투쟁에 무관심한 건 어쩌면 고공 농성 자체가 너무 험하고 위태로워, 마주 보기가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련해 보이는 것과 거리끼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었다는 성경의 말씀을 알고 있다. 마음의 불편함을 바로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거든 찾아가 기도하자.
부디 이 추위가 가시기 전에 이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농성자들이 무사히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의 요구는 회사가 거짓말을 그만하는 것,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 불안한 일자리를 없애는 것, 2013년 연말은 가족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는 것이다. 모두가 인간답게 '함께 사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 유성기업 노조 홍 지회장의 아내와 아들이 저녁 식사를 챙기러 들렀다. 아내는 홍 지회장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눌러 쓴 편지를 읽어 주기도 했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이내 목이 메였다. ⓒ마르투스 구권효

울산 현대차 노조의 한 조합원은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철탑 위 동지들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다. 고공 농성의 몸짓이 정의로운 사회의 새잎이 되길 빈다.
저기를 보아라 새잎이 돋아온다고목에 새로 새로 새잎이 돋아온다따사로운 봄볕에 실눈을 부비면서아가의 여린 손 마냥 새순이 돋아온다
하! 연둣빛 새 이파리네가 바로 강철이구나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자신의 힘으로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바로 그곳에서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이 돋는구나부드러운 만큼 강하게 여린 만큼 우람하게아! 썩어진 고목에 새록새록 새잎이 돋는구나
강철 새잎이 돋는다
- 강철 새잎(박노해 시, 조민하 곡)


▲ 악수와 포옹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사람이라면 체온이라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르투스 구권효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본보 제휴 (마르투스)(www.martus.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3년 1월 4일 금요일

교회, 변방에서 회개 외친 세례요한 생태계로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1-03일자 기사 '교회, 변방에서 회개 외친 세례요한 생태계로'를 퍼왔습니다.
'힐링' 없는 개신교, 존재 목적· 방식·위치를 재구성하자

(뉴스앤조이) 2012년 교계 이슈 정리에 이어 (뉴스앤조이) 네 명의 편집위원과 함께 2013년을 내다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기독 출판사, WCC 총회, 언론, 목회 분야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편집자 주

▲ 교회 생태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정의, 평화, 생명의 하나님나라 씨앗이 잘 자라도록 염려, 유혹, 욕심의 땅을 갈아엎고 좋은 땅을 일궈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둬야 한다. 사진은 남오성 목사. ⓒ뉴스앤조이 최유진

개신교는 3등이다. 지난 10월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발표한 종교 신뢰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는 1등 천주교, 2등 불교에 밀려 3등이다. 대중이 개신교에 대해 느끼는 신뢰도(28.1%)는 천주교(61.8%)와 불교(55.1%)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결과를 보도한 기자는 '힐링(healing, 치유)'을 주요 키워드로 봤다. 천주교는 주교회의를 통해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제주교구장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동참하는 등 사회적 약자들의 상처를 보듬는 힐링을 실천했다. 또한 불교계는 법륜과 혜민 등이 베스트셀러, 청춘콘서트, 트위터 등을 통해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을 위로하며 힐링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반면 개신교는 어떠했나? 타 종교에 대한 무례함, 이명박 정부의 개신교 편향 논란, 목회자들의 비리 사건 등으로 힐링은 고사하고 가뜩이나 세파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본래 힐링, 즉 치유는 예수님의 주요 사역이자 교회의 본래적 사명 아닌가? 세상을 치유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워야 할 교회가 역할을 못하고 있다. 힐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회가 힐링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은 모욕을 당하고, 복음의 길은 막혀만 간다. 이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2013년 한국교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생태계 재구성

2013년을 교회 생태계 재구성의 해로 삼자. 교회 생태계란 무엇인가? 같은 곳에 살면서 서로 의존하는 유기체 집단의 독립된 체계를 생태계라고 하는데, 교회도 사회적 유기체로서 다른 유기체들 즉 교회, 교단, 기관, 연합체, 신학교, 기독언론사, 기독출판사 등과 상호작용하며 생태계를 이룬다. 그런데 이 생태계가 본질적으로 심각하게 오염되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본디 섬김, 희생, 나눔이 교회 생태계의 기본 정신인데, 작금의 오염된 생태계에서는 쟁취, 성공, 승리가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옳고 그름,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뒤집어진 것이다.

오염된 구조 속에서 개인 또는 개별 교회가 독야청청하기란 쉽지 않다. 돈, 권력, 명예를 향한 탐욕을 억제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긍정적 사고, 삼박자 구원, 고지론으로 정당화시키는 이 나쁜 생태계 속에서는, 아무리 순전한 신자와 목회자라도 생존을 위한 적응의 과정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변질되기 십상이다. 이 거짓 생태계의 주범이자 최대 수혜자는 세속화된 대형 교회들인데, 이들은 막강한 물적, 인적, 정치적 자원을 투여하여 성장 지향 일변도의 생태계가 되도록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결국 드러나는 개별 교회 비리의 난맥상은 감추어진 교회 생태계 구조적 왜곡상의 표현에 불과하다.

교회 생태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 정의, 평화, 생명의 하나님나라 씨앗이 잘 자라도록 염려, 유혹, 욕심의 땅을 갈아엎고 좋은 땅을 일궈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거둬야 한다.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먼저 교회가 존재하는 위치, 목적, 방식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존재 위치의 재구성 : 중심에서 변방으로

목 좋은 신도시 중심부엔 교회가 바글바글하다. 전통적인 기독교식 가정교육을 거쳐 아이비리그 입학을 이뤄낸 차세대 주류 세력들 즉 강남 '엄친아'의 성공 스토리는 아직도 기독 출판계의 단골 메뉴다.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국회의원, 판사, 검사 등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북적대는 교회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다. 그동안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세우고 한국교회는 얼마나 감격했던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간 세월이 얼마던가? 지금 한국교회가 지향하고 존재하는 위치는 '중심'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류의 중심을 지향하고 점점 다가가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예수 잘 믿어 불신자들보다 성공하면 선망받고 칭찬 들을 줄 알았는데, 이 싸한 반응은 뭘까? 여의도 국회 옆의 가장 큰 교회를 본받아서 서초동 대법원 옆에 가장 비싼 교회 짓는데, 왜 사람들은 손가락질할까? 그 이유는 교회가 바라보고 머물러야 할 위치는 중심이 아니라 '변방'이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는 (변방을 찾아서)에서 인류사에 면면히 이어 온 변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명의 중심은 부단히 변방으로 이동해 왔다. 중심부는 변화하지 못해 쇠락하지만, 변방은 변화와 창조와 생명의 공간이었기에 새로운 중심이 된 것이다. "변방 의식은 갇혀 있는 틀을 깨뜨리는 탈문맥이며, 새로운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 그 자체이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한다. 콤플렉스가 있으면 주체적이고 창조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야말로 변방의 존재이다. 1세기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구유에서 태어나, 선한 것 나지 않는 나사렛에서 자라나, 갈릴리 바다에서 세리와 창녀들과 어울리다, 골고다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서 죽었다. 교회야말로 변방의 존재이다. 하나님나라 소망 품고, 고아와 과부 돌보며,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신앙 정조 지키다가, 영광스런 순교자의 길로 가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삶 아니던가?

그래서 교회는 변방에 있을 때 교회답다. 교회가 변방에 위치할 때 비로소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 잃을 기득권 없는 변방의 교회여야 세상 권세를 향해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다. 크고 무거운 교회에 대한 콤플렉스 없는 작고 가벼운 교회의 행복한 일상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역동성이 흘러나온다. 변방으로 향하는 노마드 교회, 이것이 교회가 지향해야 할 존재 위치이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존재 목적의 재구성 : 성취에서 회개로

'잘살아 보세 2.0'을 아는가? 이는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잘살아 보세' 정신의 요체인 세속적 번영 욕구를 '현세 축복'이라고 신학적으로 도색하고, 거기다 하나님나라 복음을 축소 왜곡시킨 '내세 천국' 교리를 장착하여, 살아서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시킨 종교 상품이다. 마침 불어온 7, 80년대 고도성장의 바람을 타서 그동안 잘도 팔아먹었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한 자기 욕망의 '성취'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다. 서울대 박명규 교수에 의하면, 지금은 해방 이후 최초로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진보하지 못하는 시대이다. 고도성장의 순풍은 멈췄고 '잘살아 보세 2.0'은 작동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수 기독교인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선택하며 망가진 제품을 만지작거린다. 번영을 향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자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이제 번영 복음의 유효 기간은 끝났다.

새해를 교회의 존재 목적을 회복하는 해로 삼자. 새로운 교회 생태계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은 다름 아닌 '하나님나라'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하나님나라는 '회개'를 통해 가능하다. 회개는 기본적으로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태도'의 실천적 변화이다. 도쿄대 강상중 교수는 에서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인생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는 '창조'와 '경험'보다는 삶을 향한 '태도'에 있으며, 태도의 변화는 '거듭나기'를 통해 가능하다. 포스트 번영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교회는 강 교수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나라의 도구로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교회의 목적을 성취의 결과가 아닌 태도의 변화 즉 '회개'에 둬야 한다. 삶의 초점을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공동체와 가난한 자에게 맞춰야 한다. 먼저 교회가 회개하자. 그동안 역할을 제대로 못 해 세상의 소망이 되지 못한 점을 회개하자. 그리고 세상을 향해 회개를 선포하자. 탐욕을 향해 달려가는 막장 인생들을 향해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촉구하자. "때가 찼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존재 방식의 재구성 : 약육강식에서 공생으로

지금은 교회 정글 시대이다. 강한 교회가 약한 교회를 잡아먹는 약육강식, 그 피비린내 나는 정글 논리가 교회를 물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형 교회의 물량 공세를 이기지 못해 싹도 못 틔워 보고 죽어 나가는 개척 교회가 태반이다. 진화론을 그토록 반대하면서, 진화론의 나쁜 점은 잘도 배웠다. 지금 한국교회의 존재 방식은 '약육강식'이다.

약육강식의 교회 현실은 잘못된 교회론에 기인한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의 지체들이다. 그런데 사도신경 암송할 때 "거룩한 공회(holy catholic church, 거룩한 보편적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공교회주의는 로마가톨릭만의 것이라고 오해한다. 뒤틀린 교회론의 결과는 교회 간의 경쟁, 시기, 질투, 다툼이다. 지구 반대편 교회를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선교비를 보내 주고 단기 선교 팀도 파송하지만, 같은 동네 교회는 치열한 경쟁 상대일 뿐이다. 결국 교회와 교회 간의 친밀도는 거리에 반비례하는 셈이다.

새로운 교회 생태계의 존재 방식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공생'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호모 심비우스)에서 꽃과 곤충의 실례를 들어 공생의 중요성을 말한다. 지구 생태계에서 생물 중량 면에서는 최고는 꽃식물이고, 개체 수 면에서 으뜸은 곤충이다. 곤충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위해 꽃가루를 날라 주고, 그 대가로 식물로부터 꿀을 얻는다. 이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막강한 두 생물 집단의 성공 비결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회 생태계의 운영 체계를 생각하는 데 큰 영감을 준다. "무차별적 경쟁보다 공생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공생만이 살길이다. 새로운 생태계에서는 공교회성이 회복하고 교회 간에 친밀한 코이노니아를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들 간에 우정 교류가 필요하다. (교회2.0목회자운동)과 (예수목회세미나)와 같은 선한 모임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교회 간의 협력도 요구된다. 최근 출범한 을 주목할 만하다. 나아가 교단 간 협력이 필요하다. 2013년 부산에서 개최되는 세계교회협의회(WCC) 10차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교리의 차이는 인정하되 함부로 상대를 매도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깨서는 안 된다. 사랑의 정신에 기초한 공생의 방식으로 생태계를 일궈야 한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3)."

결국, 한국교회 생태계 재구성의 모델은 세례요한을 많이 닮았다. 그는 이스라엘 변방 광야에서, 당대 주류 종교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과 공생했다. 새해가 밝았다. 2013년은 한국교회 생태계 재구성의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중심 지향, 욕망 성취, 무한 경쟁의 나쁜 생태계를 박살내고, 변방 지향, 회개 실천, 상호 공생의 아름다운 생태계, 세례요한 교회 생태계의 도래를 꿈꿔 본다.

남오성 /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일산은혜교회 청년부 목사, (뉴스앤조이) 편집위원

2012년 12월 2일 일요일

길은 누구의 것인가


이글은 한겨레21 2012-12-03일자 제938호 기사 '길은 누구의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특집] 대한문 옆 ‘농성촌’철거하려는 경찰-(조선일보)-중구청의 한목소리… 백화점·교회의 도로 ‘점용’엔 눈감고 미국·독일 인정한 길의 ‘소통적 기능’ 무시한 처사

서울 덕수궁의 정문인 대한문이 사람과 차의 왕래를 위해 뒤로 물러 앉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1968년 서울시청 앞 태평 로를 35m에서 50m로 넓히며 덕수궁 담장과 대한문을 원래 있던 자리 에서 해체해 20여m 뒤쪽에 다시 짓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런 서울시의 방침에 문화재관리국이 반발했고, 결국 담장만 뒤로 물리는 이상한 상 황이 벌어졌다. 대한문은 지금의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태평로 한가 운데 홀로 고립된 섬으로 남았다. 직선으로 뻥 뚫린 태평로를 달리는 차들에게 대한문은 피해가야 할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교통에 방 해가 됐고 도시 미관상으로도 흉물이었다. 대한문은 결국 1970년 여 름에 헐려 강추위가 찾아온 그해 12월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중구청이 농성촌에 철거 계고장을 보낸 다음날인 11월21일 오후, 중구 명동에선 백화점 진입 차량을 유도하기 위한 원뿔 모양의 빨간색 러버콘이 백화점 앞 도로 차선을 ‘점용’한 채 100m 정도 설치됐다. 백화점이 공용 도로의 일부를 자기 땅이라고 선을 그어버린 셈이다. 주말이나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근처 사거리를 지나는 신호를 받는 데만 1시간씩 걸리곤 한다.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 철거한 경찰

2012년 12월의 겨울은 대한문 옆 농성 천막들이 헐린 날로 기록 될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데 조금 걸리적거린다는 것이 철거 이유가 될 것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에 웬 흉물 이냐는 속 좁은 민원이 이유가 될 것이다. 섬이 된 천막들은 대한문 처럼 복원되지는 못할 것이다. 몇 차례 반복된 기억에 의하면 이른 아침 마구 짓밟힌 천막들은 구청이 끌고 온 쓰레기차에 던져질 것이 다. 천막을 친 이들은 저항하고, 일부는 사지가 들려 경찰서로 끌려 갈 것이다. 대한문 앞으로 열린 길은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것이 다. 천막이 사라진 자리는 농성자도, 보행자도 아닌 경찰들이 대신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 길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 에 답하지 못할 것이다. 길은 누구의 것인가.
조선시대 수문장 복장을 한 이들이 지키고 있는 대한문을 정면에 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난 덕수궁 돌담을 따라 비닐로 만들어진 천 막 3동이 서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천막이다. 경기도 평택 공장에서 해고된 쌍용자동차 노동 자들이 대한문 앞으로 찾아든 것은 지난 4월 초였다. 4·11 총선을 앞 두고 동료였던 해고노동자가 서른여섯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 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2009년 쌍용차 파업 이후 스물두 번째 죽음 이었다. ‘쌍용차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하 범대위)는 4월5일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며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렸다. 쌍용차 천막에는 지금도 분향소가 자리잡고 있다.
월요일마다 덕수궁은 휴일이다. 대한문이 문을 걸어닫은 11월12 일, 200일 넘게 외롭게 홀로 서 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두 개의 천 막 옆으로 천막 한 개가 몸을 붙여왔다.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 진상 규명,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핵발전 폐기, 경남 밀양의 송 전탑 건설 반대를 촉구하는 이들이 함께 마련한 천막이었다. 그렇게 세 채의 천막이 모여 ‘함께 살자! 농성촌’을 이뤘다.
그동안 범대위는 법에 따라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내왔다. 매일, 24시간씩 대한문 앞에서 옥외집회를 열겠다는 내용이었다. 천 막도 넉넉하게 적어냈다. 5월24일 대한문 주변을 관리하는 서울 중 구청이 공무원과 용역 직원, 남대문경찰서 경비 병력 등과 함께 대한 문 앞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철거했다. 집회 자체는 문제 삼지 않 았던 경찰은 천막을 걸고넘어졌다. 천막은 집회 물품이 아니라 ‘농성’ 물품이라고 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는 집회 물품 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경찰 등은 이날만 세 차례나 천막 을 헐거나 빼앗았다. 쌍용차 파업은 전쟁에 가까운 경찰의 진압 작전 으로 유혈낭자하게 끝났다. 그런 경찰이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마저 밟고 들어왔다. 그래도 천막은 다시 세워졌다.

(조선일보) “불법 농성촌 왜 철거 않느냐”

범대위 쪽은 720시간(30일) 전부터 집회신고서를 낼 수 있는 집시 법 규정에 따라 매일 아침 9시께 남대문서에 집회신고서를 내왔다. 7 월26일 집회를 한 달 전인 6월26일에 미리 신고하는 식이다. 집회신고 를 하며 하루 세 차례 있는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 행사 시간에는 희 생자 추모 문화제 등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관광객들을 배려하려는 것이다. 6월27일 남대문경찰서는 갑자기 범대위가 신고한 집회(7월7 일 0시부터 7월26일 23시59분까지)를 금지한다고 했다. 이전 신고 내 용과 변한 것은 없었다. 경찰의 태도만 바뀌었다. ‘대한문 앞은 주요 도로에 해당하여 시민들의 이 도로에 대한 수요 등을 고려할 때 집회 시 통행인에게 불편을 주고 있고, 지속적으로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 는 이유에서였다. 집시법 제12조에 따르면, 관할 경찰서장은 교통 소 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벌어지는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천막은 도로가 아닌 인도에 설치돼 있다. 도로의 교통 상황과는 아 무런 관련이 없다. 경찰은 인도도 도로에 포함된다고 했다. 차가 아닌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너비 12m 인도에서 천막 이 차지하는 자리는 3m 정도였다. 나머지 9m 공간을 통해 시민들은 큰 불편 없이 왕래하고 있었다(천막 3동이 설치된 11월 말 현재 인도 폭 이 6m로 가장 좁은 쪽은 3m의 보행 공간이 있다). 서울시의 경우 ‘세 종로∼태평로∼한강로’로 이어지는 길이 주요 도로로 지정돼 있다. 경 찰의 주장대로라면 서대문구 자하문 앞부터 효자동을 거쳐 광화문, 남대문, 서울역, 삼각지, 한강대교 남단에 이르는 도로와 인도에서는 경찰서장이 마음만 먹으면 집회·시위의 씨를 말릴 수 있다는 얘기다.
범대위는 서울행정법원에 집회 금지를 풀어달라고 소송을 냈고, 법원은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집회를 허가한다고 결정했다. 이어 지난 11월8일 “집시법에서 말하는 교통 소통은 주요 도로 전체를 기준으 로 판단해야지 차도를 제외한 인도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 다. 경찰은 집회로 인해 도로법을 위반하게 되고 문화재인 덕수궁을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보행자와 인근 상가에 피해가 속출하게 된다 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경찰이 집회를 금지한 사유와 사실관계의 동 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선고했다.
경찰의 명분이 사라지자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나섰다. ‘불법 농 성촌을 왜 철거하지 않느냐’며 기사로 바람을 넣었다. 농성촌 지척에 (조선일보) 사옥이 있다. 이 지역 도로를 관리하는 중구청이 집시법 대신 도로법을 들고나왔다. 도로법에서의 도로는 일반적으로 인도 까지 포함한다. ‘도로 점용’은 허가 사항이다. 도로나 인도변에 있는 전주·변압기·공중전화·우체통 등도 협의·승인·허가를 통해 설치 된다. 장기간 이어지는 농성촌은 결국 도로를 점용한 것인데, 경찰에 낸 집회신고와는 별개로 도로 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 법이라는 것이다. 중구청 가로환경개선팀 관계자는 “농성자들이 요 구하는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면 좋겠지만, 정당한 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를 점용하면 공무원으로서 법에 의해 조처할 수밖에 없다. 불법 을 왜 보고만 있느냐는 민원도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중구청은 11 월26일까지 농성촌을 철거해달라는 계고장을 보냈다. 전국금속노조 법률원 김유정 변호사는 “계고 처분은 강제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의 첫 단계다. 이미 법원에서 교통 소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행정대집행 집행정지 신청을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어떤 물품을 사용할 것인지는 집회의 방법에 해당하며, 이는 집회 자유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떤 물품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농성촌도 있고, 보수와 극우의 목소리도 있다. 그저 지나가는 시민도, 외국인 관광객도 있다. 길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탁기형 선임기자

거리는 사회적 약자의 싸움터

최창식 중구청장은 새누리당 출신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중구청의 방침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다른 구청들은 집회신고한 천막에 대해선 통상적으로 철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로법상 통행에 방해되는 시설물은 긴급 철거가 가능하지만, 대한문 옆 농성장이 그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공무원은 “특히나 인도에 설치된 천막은 집회신고가 돼 있지 않아도 웬만하면 철거하지 않는다. 간혹 국가정보원 담당자나 경찰 정보과에서 농성천막 철거를 종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중구청이 농성촌에 철거 계고장을 보낸 다음날인 11월21일 오후, 중구청 관내인 명동은 차들로 북적였다. 백화점 진입 차량을 유도하기 위한 원뿔 모양의 빨간색 러버콘이 백화점 앞 도로 차선을 ‘점용’한 채 100m 정도 설치됐다. 백화점 직원 여럿이 도로에 서서 ‘고객님차’와 그렇지 않은 차를 갈라놓았다. 백화점이 공용 도로의 일부를 자기 땅이라고 선을 그어버린 셈이다. 이 북새통에 주말이나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근처 사거리를 지나는 신호를 받는 데만 1시간씩 걸리곤 한다. 자본의 도로 점용은 사실상 무제한으로 용인된다. 대신 20년 넘게 오르지 않고 있는 교통유발부담금을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로부터 연간 몇억원씩 거둬들이는 게 전부다. 서울 서초구는 수천억원을 들여 교회 건물을 새로 짓는 ‘사랑의 교회’ 쪽에 도로 지하 공간에 대한 점용 허가를 내줬다. 소송 등 반발이 이어지고 있지만 도로 지하는 예배당으로 채워지고 있다. 일부 대형 음식점 앞 인도는 식사 시간이면 손님들 차량으로 넘쳐난다. 인도로는 걷는 것이 어려워 차도로 비켜가기도 한다. 여기서 길은,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집회가 열리는 ‘장소’는 중요하다. 어느 장소를 택하는지가 강력한 상징 효과를 발휘한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의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와 관련해 이런 설명을 달았다. “집회가 국가권력에 의해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장소나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장소로 추방된다면 기본권의 보호가 사실상 그 효력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도 집회의 자유에 있어서 장소의 중요성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집회 장소가 바로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2000헌바67·83 병합 사건) 공장에서, 고향 마을에서, 철거지에서 내몰린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거리는 언제나 없이 사는 이들, 사회적 약자의 싸움터였다. 헌법학계의 한 인사는 “도로법과 집시법이 충돌한다면 집시법이 우선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회는 당연히 도로 등 공간 점유를 전제로 하며, 다른 이들에 대한 불편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집회가 정상적인 신고 절차를 따랐다면 도로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다.

독일 역시 도로의 소통적 기능을 중시해왔다. 1970년대에 세워진 판례를 통해 ‘대도시 중심가의 넓은 보도는 공동체의 광장으로서 전적으로 장소 이동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접촉과 의견 교환에도 기여한다. 따라서 도시 청결이라는 미적 이익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우선한다’고 했다.

미국 법원 “정부 반대한다고 집회 금지 안 돼”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미 70여 년 전부터 도로와 인도가 가지는 ‘소통적 기능’에 주목했다. “도로와 공공장소의 사용은 고대부터 시민들의 특권이자 면책, 권리와 자유의 일부였다.”(1939년) 공공장소에서의 집회를 금지한 시 조례에 맞서 미 산별노조회의(CIO)가 낸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내린 결론이었다. 전통적으로 집회와 토론에 이용돼온 ‘길’의 역사성을 간파한 것이다. 같은 해 연방대법원은 도로 청결을 목적으로 전단지 배포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민권운동이 확산되던 1960년대에는 도로·인도·공원을 두고 ‘퍼블릭 포럼’, 즉 ‘공적 광장’이라는 개념이 확립된다. 도로 등은 미 수정헌법 제1조가 떠받드는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 행사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의 집회 등을 제한할 때는 ‘대체 수단’ ‘대체 공간’을 남겨둬야 한다. 제한을 하더라도 그 주장하는 ‘내용’이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금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또 ‘행정적 편의’만을 위한 제한도 금지된다. 독일 역시 도로의 소통적 기능을 중시해왔다. 1970년대에 세워진 판례를 통해 ‘대도시 중심가의 넓은 보도는 공동체의 광장으로서 전적으로 장소 이동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다양한 접촉과 의견 교환에도 기여한다. 따라서 도시 청결이라는 미적 이익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우선한다’고 했다.(문병효 ‘서울광장조례와 공물의 사용관계’)
우리 헌법재판소도 유사한 판례를 만든 바 있다.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원칙적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다.” 현실은 판례를 배반한다. 통행에도 크게 방해받지 않고, 도시 미관에도 무리가 없고, 외국인 관광객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천막을 철거하자고 난리치는 우리 현실에서는 아득한 얘기들이다.
11월20일 농성촌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서울광장은 몰라도 대한문 옆에서 이렇게 장기간 농성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거리의 신부’에게도 대한문은 낯선 공간이다. 지금 왜 대한문일까. 지난 5년간 우리 시대의 ‘중세’를 여러 차례 경험한 이들에게는 온당치 않은 질문일 수 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대한문 앞에 차려진 시민분향소가 경찰에 의해 박살이 났다. 분향소가 다시 차려지고 얼마 뒤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수단체 회원들이 분향소를 또다시 철거했다. 항의하는 시민들을 경찰이 막는 동안 중구청은 쓰레기차에 분향소 잔해를 실어 날랐다. 분향소 자리는 경찰 병력으로 메워졌다. 지난해 8월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대한문 옆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희망단식단 천막이 강제 철거됐다. 대한문은 그렇게 차곡차곡 어떤 공간의 역사성을 획득해갔다. 그러고 보면 대한문은 1919년 3·1운동의 중심이기도 했다. 고종 장례 행렬이 대한문을 빠져나간 인산일을 전후해 수만 명의 인파가 대한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지난 6월에는 두 명의 세계적 석학이 대한문 농성촌을 찾았다.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손을 맞잡았다. 그는 “분향소 설치가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알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정의’ 바람을 몰고 온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도 쌍용차 천막을 방문해 고개를 숙였다. ‘외국인 관광객’인 이들은 천막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 백화점은 차도를 마음껏 ‘점거’한다. 매출액에 견줘 쥐꼬리만 한 교통유발부담금만 내면 된다. 그럼 도로는 백화점의 것인가? 한겨레 이종근 기자

당신도 언젠가 도로에 설지 모른다

지난해 미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의 성지로 떠오른 뉴욕 주코티 공원의 원래 이름은 ‘리버티 플라자(자유 광장) 공원’이었다. 땅 소유자인 부동산 업체 회장의 이름을 따 주코티로 바뀌었다가 시위대에 의해 ‘리버티 스퀘어’로 재명명됐다. 대한문 역시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명동성당’을 대신해 이름을 바꾸고 있다. 쌍용차 대한문, 용산 대한문, 강정 대한문으로.
“‘길’은 제도나 기구에 선행했던 최초의 공론장이자, 제도나 기구가 기능하지 못하거나 나쁘게 기능할 때 출현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공론장이다.” 월스트리트 현장에서 점거운동을 체험하고 르포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를 쓰기도 한 ‘수유너머R’ 고병권 연구원은 그런 의미에서 월스트리트와 대한문 앞이 똑같다고 했다. “쫓겨난 민중이 별수 없이 찾아든 곳이지만 대의기구가 작동하지 않을 때 민중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비전을 열 수 있는 창조적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고 연구원은 “지금 대한문 농성촌은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배제와 추방을 가장 가혹하게 겪은 이들이 모인 곳, 그동안 목소리를 내도 들리지 않았던, 말 그대로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모인 곳”이라며 “강제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리도록 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목격하고 있는 ‘점거’”라고 했다.
공익변호사모임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도로 위에 선 사람이 비록 내가 아닐지라도 나 또한 언젠가는 그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공공재인 도로의 표면, 지상과 지하 공간이 공동체의 일원인 나를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도로가 공공재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