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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6일 수요일

‘정신대 자매’ 멍에 안고…다시 일본서 외치는 “사죄하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05일자 기사 '‘정신대 자매’ 멍에 안고…다시 일본서 외치는 “사죄하라”'를 퍼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강제징용돼 일본 후지코시강재로 끌려간 김정주(오른쪽) 할머니와,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됐던 언니 김성주(왼쪽) 할머니가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강제징용 피해 김정주·김성주씨 이야기
점심으로 먹었던 ‘삼각빵’은 금세 허기를 불러왔다. 베어링을 깎는 일을 하던 열네살 소녀는 숙소 옆의 풀을 뜯어 먹었다. 시름시름 앓다가 머리카락이 빠졌다. 일본 소녀들이 도시락을 먹는 걸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신발을 신고 자다가 폭탄이 뚝 떨어지면 살기 위해 뛰었다. 1945년 10월 귀국할 때까지 중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다.
김정주(81·서울 송파구)씨는 1945년 2월 일본 도야마현 후지코시강재공업㈜ 군수공장으로 끌려갔다. 전남 순천 남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일본에 간 언니를 볼 수 있다’는 일본인 담임교사의 말에 속아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됐다. 언니 김성주(83·경기도 안양시)씨는 1944년 5월 열다섯살 나이로 근로정신대에 동원돼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항공제작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여학교 보내준다더니…
14살 언니는 미쓰비시로언니
볼 수 있단 말에…
12살 동생은 후지코시로

언니 성주씨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여학교에 보내준다’는 일본인 교사의 말에 속아 일본에 건너가 말 못할 중노동에 시달렸다.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지진 때 넘어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바람에 잘 걷지도 못하게 됐고 선반에 왼손 집게손가락도 잘렸다.
김 할머니 자매의 삶은 일본에서 돌아온 뒤 더욱 처참해졌다. ‘정신대’라는 명칭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았던 탓이다.
19살에 결혼한 동생 정주씨도 ‘정신대’ 이력 때문에 남편과 불화를 겪어야 했고, 서른다섯살 때 아들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2003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참가한 것을 안 아들(50)과 손자(고3)에게 진실을 차마 말 못했던 것에 용서를 구했다고 했다. 정주씨는 5일 “원통했다. 어디다 말도 못하고…. 정부도 우리 심정을 알아주지 않았다. 내 가슴의 상처는 억만금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귀국 뒤엔 위안부로 오해
상처 억만금 줘도 안된다
대법원 판결 반갑고 기뻐
8일엔 후지코시 앞서 집회”

김 할머니 자매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 후지코시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모두 패소했다. 김정주씨 등 23명은 2003년 4월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끝내 2011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이들의 패소를 확정했다. 정주씨는 지난달 24일 대법원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도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다는 소식에,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보고 반갑고 기뻤다”며 “정부나 국회에서 서둘러 해결해줬으며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주씨는 오는 8일 낮 도쿄 후지코시㈜ 본사 앞에서 열릴 ‘한·일 공동행동’ 집회에 참가해 일본 정부와 후지코시 쪽의 사죄를 요구할 참이다. 김씨 등 후지코시 피해자 3명,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김희용 대표 등 5명이 함께 7일 출국한다.
1944년 8월 여자정신대근무령이 공포돼 1944~45년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13~15살 소녀들은 후지코시 도야마공장(1089명)과 미쓰비시중공업(288명), 시즈오카현의 도쿄아사이토방적㈜ 누마즈공장(300여명) 등에서 중노동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 후지코시강재공업㈜은 1928년 베어링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출발해 태평양전쟁 때 급성장했고, 지금은 산업용 로봇 등을 생산하는 후지코시㈜로 바뀌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미쓰비시 등 한국내 자산에 청구가능 독립법인이면 일본서 다시 재판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25일자 기사 '미쓰비시 등 한국내 자산에 청구가능독립법인이면 일본서 다시 재판해야'를 퍼왔습니다.

배상금은 파기 환송심서 결정

대법원이 일제강점기에 자행된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함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이들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대상으로 국내법에 따라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체불임금과 손해배상금을 받으려면 먼저 고등법원에서 손해배상금 등을 확정해야 한다.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리 판단을 했을 뿐 구체적인 금액은 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건의 원심 법원인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에서 체불임금 등을 고려해 배상금을 결정하고,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배상금은 확정된다. 소송을 낸 피해자들은 각자 1억~1억1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금액이 확정되면 피해자들은 해당 기업에 배상금 지급을 요구하면 된다. 해당 기업이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면 가압류 등의 법적 절차를 밟아 강제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해당 기업의 한국지사 재산 또는 국내 은행 예치금 등이 대상이며, 국내법에 따라 부동산 경매와 예금 추심(대금 지급을 요청하는 절차) 등의 절차를 거쳐 배상금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국내 지사가 일본의 본사와 전혀 별개로 설립된 ‘독립법인’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독립법인은 회계·결산이 따로 운영되는 전혀 다른 회사로,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는 일본 본사이기 때문에 한국지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들은 일본 내 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해야 하고, 일본에서 또다른 법적 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윤성식 대법원 공보관은 “일본 법원에서 이미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난 만큼 한국 법원의 판결을 승인해줄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기호 경희대 명예교수는 “강제징용 당시 일본인들은 피해자들에게 강제저축을 시켰는데, 이런 미불임금 등을 포함한 돈이 현재 일본 은행에 공탁돼 있는 상태”라며 “수조원 규모에 이르지만 일본 정부는 이 공탁금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쪽은 판결 집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소송 대리를 맡은 최봉태 변호사는 “이들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충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리랑 3호 위성 관련 용역을 수주하는 등 한국과 잦은 거래를 하는 일본 기업이 비도덕적으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배상 책임을 회피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에 있는 한국미쓰비시중공업은 일본 본사가 100% 출자한 현지법인으로, 1986년부터 한국 기업의 일본수출용 자재 구매 업무를 하고 있다. 신일본제철도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조선소와 국내 자동차업계에 많은 물량을 수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쪽은 와 한 통화에서 “판결 결과는 전해 들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라 현재로서는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게 없다”고 밝혔다.
일제피해자공제조합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피해자 단체들은 24일 성명에서 “이번 판결로 피해자들과 관련한 줄소송이 예상되지만, 구순에 이른 피해자들은 판결을 기다릴 만큼의 시간이 없다”며 “독일처럼 전범 기업들이 손해배상 기금을 출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황춘화 기자, 도쿄/정남구 특파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