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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5일 목요일

한국 언론 속 ‘노동’, 이대로 괜찮은가요?


이글은 미디어스 2013-04-24일자 기사 '한국 언론 속 ‘노동’, 이대로 괜찮은가요?'를 퍼왔습니다.
[한국 언론과 노동문제1] ‘광고 종속’과 ‘노동 전문성 부재’ 속 노동보도
편집자 주: 다시 맞는 노동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기존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은 쇠퇴한 반면 역설적으로 시민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급증했다. 희망버스 등의 새로운 현상에 대해 평자들은 ‘노동없는 노동운동’이란 말로 우려하기도 하고 ‘노둥운동의 새로운 진화’란 말로 희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래도 적어도 진보진영에서는 한국 정치의 큰 문제 중 하나가 ‘노동없는 민주주의’(최장집)라는 것이 ‘상식’이 된 시점이다. 진보언론의 노동보도 역시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몇 년전과는 사뭇 달라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만으로 충분한 걸까. 진보언론은 이 정도의 관심을 기울이면 되고 방송과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언론 속 노동문제’, 그 지금까지의 성과를 반성적으로 고찰해보기 위해 미디어스는 특집을 시작한다. 특히 한국 언론이 기업 광고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와 기자 개인의 대응의 한계를 축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해 보고, 그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 내에 ‘노동전문 기자’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를 널리 고민해볼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모 기업 홍보실에서 미디어스를 찾아왔다. 그 기업의 광고집행이 새정부에 대한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해석 기사에 항의·대처하기 위해 온 것이다. 기자 한명이 직원과 마주앉자 직원은 “몇 살이냐”라고 물었고 그 기자는 “그런 말 하실 거면 일어나자”고 답했다. 
 
한 인터넷 매체 편집국의 풍경 
 
미디어스는 해석이 아니라 사실의 차원에서 오보로 판명되지 않는 이상 기사를 내리는 일은 없었고 항의한 이들의 입장이 반영할 만하다 여길 경우 수정을 보는 경우는 있었다. 그걸 알았다면 찾아올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체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여기에도 사람이 찾아올 정도면 그 관리라는 건 생각 외로 촘촘할 것이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해당 기업으로 웹을 검색하다 한시간 전만 해도 십수건 씩 검색되던 기사 중 미디어스 기사 밖에 남지 않았다며 웃었다.    
 
삼성 백혈병피해자들을 후원하며 시작한 산재인권단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처음부터) 팔아먹으려고 인터뷰하려고 경우도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처음에는 ‘팔아먹는다‘란 말이 ’조회수 팔이‘를 의미하나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온라인 매체들이 주로 많지 붙지 않았겠나. 여기저기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실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데스크의 판단에 의한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참 인터뷰를 하다 보니 사안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인터뷰를 하는 이들이 보이더라. 그럴 땐 이 인터뷰 기사가 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서는 거다. 그래서 ’팔아먹으려고 쓰시는 건 아니죠? 인터뷰 나갈 거죠?‘라고 묻기도 한다”
 
언론사 '엿 바꿔먹기' 권장하는 광고 종속의 실태
 
한국 언론의 ‘광고 종속’ 문제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문의 광고수입 의존도는 1950년대까지 20∼30%에 불과했으나 1960년대에 40%, 1970년대에 50%를 넘어서고, 1990년대 이후에는 80% 이상으로 높아진다. 더구나 2000년 이후 신문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2008년 경제개혁연대의 자료에 의하면, 신문광고 시장은 2002년에서 2006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15.8%나 줄어들었다. TV, 유선방송, 인터넷 등 뉴미디어 시장의 확대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다. 주간지의 경우 구독을 하게 되면 그래도 언론사에 이윤이 남지만, 일간지의 경우 단지 구독자만 늘어서는 늘면 늘수록 손해만 누적된다는 말이 나온지 오래다. 
 
독자들의 구독료가 신문사의 손익분기를 맞추기에 충분치 않고 더더욱이나 인터넷으로 대부분의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수익모델을 만들어 나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언론은 (진보언론 포함) 포털에서 ‘낚시성 기사’를 배치해 트래픽을 끌어오기도 하고 새로운 유료 매체를 창간해 활로를 모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낚시성 기사’에는 도덕적인 비난을 하면서도 신간 매체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것이 현실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2010년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및 소개를 둘러싼 진보언론들의 평지풍파는 진보언론 역시 그러한 취악한 구조에 속박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겨레는 출판사에게 통상적인 도서광고비에 적용되는 할인가 역시 그 세배에 해당하는 정상가격을 요구했다. 물론 출판사 역시 애초 삼성이 소송을 걸 가능성을 대비해 책값을 높게 책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겨레 역시 비슷한 우려를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출판사는 한겨레에 세배의 광고료를 지배하는 ‘진보언론에서도 거절당한 책’이란 컨셉으로 트위터에서 홍보의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겨레는 삼성 광고 없이도 정도 걸었다"(미디어오늘 2010년 3월 3일, 안재승 한겨레 전략기획실장)는 당시 한겨레 측의 단호한 해명에 비추어 볼 때 다소 찝찔한 상황이 펼쳐졌던 것은 분명하다. 
 
경향신문에서는 2월 17일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쓴 기명칼럼이 신문에 게재되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편집국은 칼럼을 다소 수정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김교수는 받아들이지 않고 프레시안과 레디앙에 칼럼을 보냈다. 이에 당시 막내기수인 47기 기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명박은 조질 수 있고 삼성은 조질 수 없습니까”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2월 24일 지면에 1면의 “알림”과 사회면의 “경향신문, 삼성 비판 ‘김상봉 칼럼’ 미게재 전말”이란 기사로 반영되었다.
▲ 2010년 2월 24일자 경향신문 1면 '알림'


경향신문은 “알림”에서 이번 사태가 “김 교수의 이번 칼럼이 삼성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게재할 경우 자칫 광고 수주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한 때문”에 일어났음을 진솔하게 고백했다. 또한 “이 일이 있은 뒤 치열한 내부 토론을 벌”인 결과 “진실보도와 공정논평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언론의 원칙을 재확인”하였음을 천명했다. 
 
경향신문 전 노조위원장이었던 강진구 노무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당시 회사 전체가 생존을 최우선 순위로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면서 “그렇기에 어떤 기본적인 기준에 대해 합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의 광고가 크게 줄어들어 2009년 이후 전체 신문광고 시장에서 대기업 광고 비중이 크게 늘어났던 상황과 연관이 있다. 특히 당시 삼성그룹은 2008년 비자금 특검 이후 줄인 광고를 2009년에 크게 늘리는 등 ‘큰 손’으로 군림했다. 김상봉의 문제제기에 대해, 그 취지엔 동감하면서도 “(삼성으로부터) 하필 수습들 노트북도 협찬 받지 못하게 그때 일이 터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제부 선임기자가 노동문제에 관여했을 때  
 
즉 불안정한 물적 조건 속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진보언론도 마찬가지다. 진보언론의 특성상 종종 광고주의 이해관계를 반하는 주장을 펼쳐야 하기 떄문에 그들의 보도는 일종의 ‘외줄타기’가 된다. 그리고 이 외줄타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도, 진보언론 중에서 기업 쪽 전문가가 노동 쪽 전문가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12년 10월에는 과거 한겨레 내부에서 대기업 전문기자로 활약했던 곽정수 선임기자의 기사를 두고 ‘반올림’ 측과 갈등이 있었다. 곽정수 선임기자의 기사는 삼성이 백혈병 피해가족 측과 만나자는 대화제의를 했다는 것인데 ‘반올림’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것이었다.
▲ 2012년 10월 17일자 한겨레 1면 기사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기자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일텐데 한쪽이 만나기로 한 사실이 없다고 했는데도 ‘내가 들은 어떤 소스가 있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아 실망이었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해내는 격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반올림’의 변호인 측이 ‘반올림’ 자체거나 그 입장일 수는 없는 것이고 삼성 변호인과 삼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텐데 변호인들끼리의 어떠한 논의를 캐내어 삼성그룹 측의 의지로 ‘포장’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곽정수 선임기자의 경우 대기업 전문기자로 활약할 때에도 친재벌적이기는커녕 삼성그룹의 소유구조 문제를 오랫동안 비판해온 이다. 입사 후 사회부와 경제부를 거쳤고 경제부에서 활동할 때에 대기업 전문기자의 타이틀을 달고 재벌 그룹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썼었다. 그는 대기업 전문기자라는 칭호를 반납하는 과정에서도 다소 순치되는 한겨레 내부에서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를 가장 활발히 쓰는 인사로 꼽혔다.
▲ 2012년 10월 17일자 한겨레 10면 기사


하지만 그런 이라도 기업 측에서 들은 정보로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피해노동자들을 소외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황은 개인의 역량을 넘어 노동문제를 다루는 현행 언론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반올림’에 대한 삼성의 태도는 어떤 식으로 도와줄 수는 있으되 산업재해만큼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곽정수 기자의 보도는 삼성의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데 도움을 준 것일 수도 있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왜 그간 우리 문제를 다뤄준 사회부에서가 아니라 경제부에서 그런 기사를 썼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예방의학'이 될 수 없는 노동 보도의 문제 
 
현장의 불만은 대체로 언론들이 노동 문제를 사건 중심으로, 그리고 공판결과 중심으로 보도한다는 것이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피해 관련) 제보자 숫자가 언론보도에 따라 달라졌다. KBS 추적60분에서 3번 정도 다뤘을 때는 숫자가 팍팍 늘었다. 하지만 작은 매체가 다루면서 조금씩 늘어나는 효과도 있었다. 한겨레 하니TV의 기획보도, 프레시안의 피해자 열전 시리즈 같이 많은 도움을 준 프로그램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논점이나 반박사안들은 거의 기사화되지 못한다. 1심 재판에서 산재를 인정받거나 사람이 죽는 다거나 하는 식의 사건이 터져야 주목을 받는다. ‘반올림’은 황유미라는 젊은 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박지연이라는 또 한명의 젊은 여성이 사망하면서(2010년) 비로소 이만큼이나 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 전 노조위원장 강진구 노무사도 “산재 문제에 관련해 ‘하인리히 법칙’이란게 있다. 현장에서 사고가 터질 정도면 수백 수천가지 징조와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그런 부분을 거의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산재예방이나 산업 안전보호를 말하지 못하고 터져난 사고에 대한 사건 중심 보도, 발생한 노조파업에 대한 보도, 법원 선고 보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동이 우리의 삶의 문제라면 진보언론들이 일상적인 노동의 문제를 지면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사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환경 관련 보도에서 더 이상 지구 온난화와 이산화탄소의 연관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데, 노동 관련 보도에서는 이와는 달리 분명한 연관성을 갖는 게 자꾸 일상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기업과 법원이 부인하고 있는 연관성을 추적하는 것이 언론의 소임일 수 있는데 이런 문제는 활동가들이 보도자료를 아무리 만들어내도 외면받기 십상이다. 
 
물론 진전된 바가 없지는 않다. 이명박 시대 노동 관련 보도는 한겨레21의 ‘노동OTL’로 대변되는 새로운 형태의 ‘체험보도’로 발전하기도 했다. 사건이 터지기 전의 노동, 삶과 생활로서의 노동에 대한 관점이 보도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노동 문제에 관한 보도가 언론의 존재론적 보수성과 취재하는 기자 개인의 비전문성의 문제를 돌파하려면 새로운 시도와 고민이 필요하다.

김도연, 한윤형 기자  |  mediaus@mediaus.co.kr

2013년 4월 11일 목요일

김정철을 김정은으로 둔갑 <더 선> 한국언론들 그대로 인용해 무더기 오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4-11일자 기사 '김정철을 김정은으로 둔갑 (더 선) 한국언론들 그대로 인용해 무더기 오보'를 퍼왔습니다.

'더 선' 인터넷 화면 캡처.


영국의 최대 발행부수 타블로이트판 신문인 (더 선)이 김정은 북한노동당 제1비서와 그의 둘째 형 김정철을 혼동해 오보를 냈다. 한국 언론들도 (더 선)의 오보를 그대로 받아쓰는 바람에 덩달아 무더기 오보를 냈다.

(더 선)은 9일 “김정은이 지금은 미국이 증오하는 독재자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아메리칸 히어로를 연기한 소년이었다”며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학생들이 자체 제작한 미국의 인기 뮤지컬 (그리스)에 출연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기사와 함께 김정은이라고 소개한 사진 4장을 실었다.


이 사진들 중 두번째부터 네번째까지 3장에 실린 인물은 김정은이 아니라 그의 둘째 형 김정철이다. 국내에서 김정은과 김정철에 관한 연구로 권위를 인정받는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더 선)에 실린 사진들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철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더 선' 인터넷 화면 캡처. 2번째부터 4번째 사진


첫번째 사진도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철일 가능성이 크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가죽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시절에 뮤지컬 (그리스)에 출연한 것’이라고 소개된 첫번째 사진에 대해 “이 사진 속 인물도 김정은이 아닌 김정철로 보인다. 다만 이 사진만으로는 누구인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 선' 인터넷 화면 캡처. 1번째 사진


사진뿐 아니라 김정은과 김정철의 스위스 체류 시기를 봐도 사진 속 인물은 김정은으로 보기 어렵다. 김정은은 1996년 여름부터 2001년 1월까지 스위스 베른에 체류했다. 반면 김정철은 1993년 9월부터 1998년8월까지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 (더 선)에 실린 두 번째 사진에는 1995년에 촬영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데 이 시기에 김정은은 베른이 아닌 평양에 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정은은 베른 국제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1996년 스위스에 와서 외국어교육 학생반에서 1년 동안 언어교육을 받고 이후 리베펠트-슈타인횔츨리 공립학교를 다녔다. 그는 베른 국제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13년 4월10일치 A27면


YTN 화면 캡처


김정은과 김정철을 혼동한 오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에 스위스의 시사주간지 (레브도)(L‘Hebdo)가 김정철의 베른 국제학교 학력을 김정은의 것으로 보도해 오보를 낸 바 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더 선)의 오보도 (레브도)의 사례와 같은 유형의 오보다. (더 선)이 김정은과 김정철을 혼동한 것 같고, 국내 언론들도 확인 없이 보도하는 바람에 줄오보를 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규남기자 
3strings@hani.co.kr

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흔들리지 않는 김재철, 위기 모르는 한국 언론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14일자 기사 '흔들리지 않는 김재철, 위기 모르는 한국 언론'을 퍼왔습니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박근혜·새누리당에 침묵해선 안 되는 이유

"언론을 통제하는 자가 마음을 통제한다." (짐 모리슨, 미국 록 가수, 시인)

악명 높은 명사의 반열에 오른 문화방송(MBC) 김재철 사장이 이제 임명권자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도 마음대로 해임하지 못하는 실력자 행세를 하고 있다. 지난 8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의결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청와대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선대위 총괄본부의 압력으로 무산됐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서 MBC 사태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김재철 사장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그는 불참했다. 그가 국회의 증인 소환을 거부한 것이 이번으로 네 번째다. 더욱 가관인 것은 김 사장이 환노위 위원장에게 보낸 사유서에서 밝힌 불참 이유다.

"문화방송 노조는 본인의 국회 상임위원회 출석을 자신들의 부당한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알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영방송사의 사장으로 귀 위원회에 출석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방문진의 해임안 부결로 자신이 재신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환노위의 청문회 개최 이유가 사라졌다는 투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의 말대로 "김 사장이 정치적 중립을 운운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심 의원은 "국민의 대의기관을 능멸하는 태도에 조처를 해야 한다"고 흥분했다. 신계륜 환노위 위원장도 "국회모욕죄까지 같이 해서 고발하겠다"고 합세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의 지지를 믿고 있는 김 사장에게 이런 경고가 먹혀 들어갔을지 의문이다. 사내 반발과 언론계, 시민사회의 질타에도 아랑곳없는 김재철 사장의 뻔뻔한 행태는 한 주간지의 표현대로 '배째라 식'이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김재철 사장의 태도는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 언론정책의 거울이다. 조중동이 김재철의 반언론적 행동을 꾸짖기는커녕 오불관언의 태도를 방조하고 있으니 더욱 안하무인으로 나오는 것 같다.

김재철 사장은 사치품을 구입하는데 MBC의 법인카드를 남용하고 재일동포 여성 무용수에게 과도한 출연료를 지불해서 MBC에 손해를 끼치는 등 부도덕한 행위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는 정권에 불리한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방영을 저지해서 기자, PD들과 자주 충돌했다. 마침내 기자와 PD들이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무려 170일의 장기파업을 벌이게 만든, 한국 방송 사상 유례없는 사건의 장본인이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자리를 몇 번 내놓았어야 할 사건들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엄호로 끄떡없이 사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제19대 국회를 여는데 야당이 합의하는 조건으로 김재철 사장의 추문과 MBC 사태를 따지는 청문회가 예정돼 이제 김재철 사장이 자리를 뜨나보다 기대하는 MBC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김 사장의 신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환노위 청문회. 김재철 MBC 사장을 비롯한 사측 증인들은 단 한 명도 청문회를 찾지 않았다. ⓒ뉴시스

왜 김재철은 두려워하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8일 김재철 사장의 해임 결의안을 처리할 방문진 이사회가 열리게 됐다.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된 9인 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 2명이 야 3에 합류, 이사회에서 5대 4로 김 사장의 해임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양해가 성립됐었다. 그런데 이것을 눈치 챈 청와대 하금열 비서실장과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압력을 넣어 해임안 결의를 부결시켰다. 여당 내에서도 자격 부족의 비판을 받고 있다는 김 사장의 해임을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쪽이 막은 이유가 무엇인가?

한 때 MBC는 뉴스 분야에서 KBS의 경쟁 상대였다. 그러나 김 사장 취임 이후 2년 사이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SBS의 절반 밖에 안 되는 방송사 3위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여권은 대선에서 박 후보가 당선되려면 MBC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하고 김재철 말고는 MBC를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지 않았나 생각된다.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후보 쪽에서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박근혜 캠프 양쪽에서 방문진에 김재철 해임 반대의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언론을 선거의 도구로 이용하는 이명박 정권의 언론관을 박근혜 후보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가 박근혜의 집권을 우려하는 중요한 이유다. 유신 언론관의 부활은 용납할 수 없다. 박근혜가 2009년 조중동에 종편을 허용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찬성한 것, 지금까지 박 후보가 많은 집권 공약을 쏟아내면서도 언론정책에 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언론자유를 증진할 정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9일 KBS 이사회가 "편파방송 종결자"로 알려진 길환영 부사장을 새 사장 후보로 선정한 것도 김재철 사장을 고수하는 것과 같은 정책 노선이다. 미디어를 통제하는 자가 사람의 마음을 통제한다는 짐 모리슨의 말을 믿고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방송을 정권 재창 도구로 이용해줄 사람에게 공영방송을 맡기겠다는 정권차원의 의지의 표현이다.

한림대학 언론정보학부 최영재 교수팀이 지난달 25일부터 31일까지 KBS MBC SBS YTN 4사의 저녁시간대 뉴스 프로그램의 대선 관련 보도를 모니터한 보고서와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가 충남대학 언론정보학과 이승선 교수팀에 의뢰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지면을 통해 모니터한 결과를 보면, 지상파 텔레비전과 조중동이 얼마나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편향 보도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언론에 관심 없는 한국 언론

지난 봄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스 방송기자협회는 대통령 후보 10명 전원에게 공영방송 사장의 임명방법, 공영방송 예산, 광고, 프랑스의 해외방송, 언론의 다원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제2의 적국방송채널을 창설하는 문제 등 6개의 현안을 질문하고, 그들의 답변을 상세히 보도했다. 언론개혁 포럼인 '미디어비평행동(Acrimed)'도 대통령 후보 10명 전원에게 공영방송 사장 선출방법, 민영화한 방송을 다시 공영으로 환원하는 문제, 방송광고, 수신료, 비영리 공익방송의 신설 및 지원방법 등 6개의 언론 현안을 질의하고 이에 대한 후보들의 답변 내용을 상세히 보도해서 미래 대통령의 언론정책이 어떤 것인지를 유권자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한국 방송과 신문이 여태껏 대선 후보들에게 언론정책에 관해서 구체적인 정책질의를 했다는 보도를 보지 못했다. 지금 한국 언론은 유신체제 이후 최악의 상황이다. 유엔(UN)에서 조차 한국의 언론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내놓는 상황인데 한국 언론은 왜 무사태평인가?

문재인 안철수는 벌써 몇 차례, 글이나 발언으로 언론정책에 관해서 그들의 정책 방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언론정책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자격지심 탓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대통령의 언론관은 우리의 민주주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 지금부터라도 신문과 방송은 대통령 후보들의 언론정책을 묻고 분명한 답을 얻어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직결된 문제니까.


 /장행훈 언론인·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안철수 표절 의혹에 임하는 한국 언론의 자세


이글은 시사IN 2012-10-15일자 기사 '안철수 표절 의혹에 임하는 한국 언론의 자세'를 퍼왓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은 혹독한 검증의 대상임이 자명하다. 출마 선언은 ‘검증받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안철수 후보가 검증의 도마에 올랐다. 논문 표절 의혹이라는 제법 큰 건이 튀어나왔다. 안철수 후보는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MBC에 사과를 요구했다. 표절이라고 지적된 부분은 인용처를 안 밝혀도 전문가라면 다 아는 기초적인 공식일 뿐이라 했다. MBC는 후속보도를 통해 안 후보를 압박하고 나섰다. 공식 기호가 빠진 것까지 어떻게 같을 수 있냐며 ‘오류까지 복사판’이라고 보도했다. 안 후보 측은 노벨상 논문까지 사례로 들며 기호 누락은 ‘오류가 아닌 관행’이라 했다. 누구 말이 맞지?

유권자는 그것을 직접 검증해 가리기 어렵다. 수많은 언론과 기자가 있으니 유권자는 다양한 검증 결과를 기다린 뒤 종합해 판단하면 된다. 그러나 다양한 판단 근거들을 언론을 통해 얻어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다수 언론은 인용 보도에 만족한다. 관전하거나 싸움을 붙이는 존재에 머물고 있다. MBC가 이렇게 보도했다더라, 안철수는 뭐라더라, 전문가 생각은 어떻다더라. 표절 의혹이 제기된 논문이 있는데 왜 직접 검증하지 않을까? 박근혜 캠프 주장대로 안철수 후보 측이 언론을 위축시키기 때문일까? 언론을 위축시켜온 정치 세력의 정치 공세일 뿐, 본질은 언론이 제대로 된 검증을 포기하고 있는 게 맞다. 검증을 외면한 언론이 제법 언론 흉내는 내고 싶은 모양이다. 사설 제목이 준엄하다. ‘안철수, 각종 의혹 어물쩍 넘기지 말라.’ 말은 맞는데 이런 말할 자격이 있는 언론인지 의문이다.

노종면(YTN 해직기자, 트위터 @nodolbal)

2012년 5월 27일 일요일

코잘린 아랍여성 수술? 한국언론들만 집단 오보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5-26일자 기사 ' 코잘린 아랍여성 수술? 한국언론들만 집단 오보'를퍼왔습니다.
 [기고] 채널A 김나리 기자 "엉터리 번역과 베껴쓰기 관행이 부른 해프닝"'을 퍼왔습니다.

비비 아이샤. 코가 잘려나가고 없는 처참한 얼굴로 2010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를 장식했던 아프가니스탄 소녀. 18살이던 2009년. 아이샤는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서 도망쳤다가 남편을 포함한 탈레반에게 붙잡혀 코와 귀가 잘리는 ‘즉결 재판’을 받았다. 피투성이가 된 아이샤를 치료하고 보호해 준 것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타임은 이런 ‘스토리’를 기사로 내보냈다.
당시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군 여부로 여론이 한창 시끌시끌하던 때. 이 기사가 실린 타임 표지 제목은 ‘What happens if We leave Afghanistan’(우리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였다. 아이샤의 두려움 가득 담긴 눈과 잘린 코. 2010년 세계보도사진 대상을 수상한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렇게 탈레반의 폭력과 보호자로서의 미군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아이샤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이다. (관련 기사 )
그 아이샤가 얼마 전 국내 신문, 방송에 다시 한번 오르내렸다. 지난 21일이었다. 부장의 리포트 지시가 떨어졌다. “‘아프간 코 잘린 여성’ 리포트 준비해라” 타임 사진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아이샤 얘기임을 금방 알았다. ‘뭔가 새로운 소식이 떴나 보군 하며 우선 국내 한 통신사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 제목은 이었다. ‘성형수술 받고 재활기간 적응 훈련 마쳐’ 라는 소제목 아래 아이샤가 미국의 한 비영리의료기관에서 본인의 뼈와 조직, 연골 등을 이용해 인공 코와 귀를 만들어 이식하는 수술을 받은 뒤 새로운 삶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첨부된 사진 속의 아이샤는 코 없는 섬뜩한 모습이 아니라 오뚝 솟은 코를 가진 미소 짓는 얼굴이었다. 


▲ 코가 잘려나가고 없는 처참한 얼굴로 2010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를 장식했던 아프가니스탄 소녀 비비 아이샤. ⓒ 타임

다른 신문이나 방송 기사들의 제목과 내용 모두 해당 통신사 기사와 대동소이했다.
하나같이 ‘예쁜 코’를 되찾아 ‘새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국내 언론들이 인용한 기사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이었다. 전문을 읽어보려 데일리메일 기사를 찾아봤다. 그런데 곧 황당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읽어봐도 ‘코 수술’을 했다는 내용이 없는 것이었다.
아이샤의 코와 관련된 데일리메일의 기사 원문은 이렇다.
“Aesha has had a prosthetic nose fitted at the non-profit humanitarian Grossman Burn Center....Dr Peter H Grossman said they hoped to give Aesha a more ‘permanent solution’, which could mean reconstructing her nose and ears using bone, tissue and cartilage  from other parts of her body.”
번역하면 “아이샤는 비영리단체 그로스만 번 센터로부터 인공 코를 받았다. 주치의 그로스만박사는 아이샤에게 아이샤의 뼈와 인체조직, 연골 등을 이용해 코와 귀를 재건하는 좀 더 ‘영구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정도가 된다. 요약하면 붙였다 떼었다 하는 인공 코가 있긴 하지만 코 재건 수술은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문 기사가 한글 기사에서는 “비영리 기관 그로스 번 센터가 아이샤의 뼈와 조직, 연골 등으로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로 바뀌었다.
혹시 다른 외신 기사를 보고 쓴 것은 아닌가 해서 아이샤 관련 외신을 다시 검색해 봤다. 가장 최근 기사로는 얼마 전 CNN이 아이샤의 근황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를 썼다. 역시 코 수술을 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CNN 보도는 미국에 온 지 2년이 된 아이샤가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CNN은 여전히 그녀의 코는 잘려 있다고 했다.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인공 코가 있지만 귀찮아서 잘 착용하지 않는다고도 전했다. 자신의 뼈와 연골을 사용한 영구적인 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2-3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 ⓒ NHN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 코 잘린 아프간 여성 근황에 대해 리포트 하라는 거죠?”“어, 그 여성 수술해서 새로운 코 얻었다는 거”“수술 안 했는데요.”“뭐라고? 그러면 왜들 다 그렇게 썼지? 영국 데일리메일을 인용해서 썼던데 데일리메일이 오보 냈나?”
물론 데일리메일이 오보를 낸 것은 아니다. 데일리메일은 아이샤의 근황을 전했을 뿐이다. 한국 언론들이 데일리메일 기사를 잘못 해석해 오보를 낸 것뿐이다.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기사를 쓴 한국 기자들이 데일리메일 기사 원문을 보긴 봤는데 집단적으로 오역을 했을 경우. 아니면 누군가 처음 데일리메일 기사를 잘못 번역해 썼는데 확인도 않고 이를 집단적으로 베껴 쓴 경우.
어느 경우든 ‘기본’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우리 언론들이 아이샤가 코 수술을 받았다면서 친절하게 덧붙인 사진들은 지난 2010년 10월경 아이샤가 인공 코를 부착하고 찍었던 영상들이다. 그 사진들이 2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코 재건 성형 수술을 받은 사진으로 둔갑해 버젓이 실린 것이다. 데일리메일 기사에 실린 아이샤의 첫 번째 사진은 2년 전 타임 표지사진에 비해 많이 성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코가 없는!’ 아이샤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이런 집단 오보를 낼 수 있는지 개인적으론 황당하기까지 하다.

▲ ⓒABC

외신의 오역과 그에 따른 집단 오보.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경북 왜관의 한 주한미군기지에 여론의 눈과 귀가 쏠렸다. 지난 70년대 이곳에서 근무했던 퇴역 미군이 당시 부내 내에 고엽제 성분의 화학물질을 대량 묻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온 것이다. 퇴역 미군의 당시 발언 원문은 이렇다.
“We dug a pit with a bulldozer, donned rubber suits and gas masks and dump every imaginable chemical — hundreds of gallons if not more...” 해석하면 “우리는 고무 옷과 가스 마스크를 착용하고 불도저로 땅을 판 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화학물질들을 수백 갤런 이상 버렸다” 그런데 이 발언이 국내 언론엔 거의 대부분 “불도저로 구덩이를 판 뒤 고무 옷과 가스 마스크를 비롯해 상상 가능한 온갖 화학물질 수백 갤런을 버렸다고 밝혔습니다.”로 보도됐다.
물론 ‘화학물질을 버렸다’고 기사를 쓴 점에 있어서 ‘아이샤의 코 수술’처럼 완전 오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무 옷과 가스 마스크를 착용하고’라는 구절은 당시 작업에 동원됐던 미군들이 자신들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 알고 있었을 개연성을 우리에게 준다. 즉 퇴역 미군의 이 발언은 ‘유독하고 위험한 물질 매립’이라는 작업 성격을 당시 미군 당국이 알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방증인 것이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미군 당국이 고엽제를 실수나 일반 폐기물이려니 하고 별 생각 없이 묻은 게 아니고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고엽제를 묻었음을 방증할 수 있는 이 발언을 고무 옷을 ‘묻어 버렸다’고 번역함으로써 방증 가능성도 함께 ‘묻어 버린 것’이다.

▲ ⓒ CNN

외신 자체가 오보를 내서 그걸 따라가다 국내 언론들이 집단적으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물론 문제다. 하지만 더 크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외신은 제대로 보도했는데 1보를 전하는 특정 언론사가 해석을 잘못해서 오보를 내고, 다른 언론들이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한국말로 된 해당 기사를 무작정 따라가며 받아쓰다 집단 오보로 이어지는 경우다. 이런 오보는 그야말로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사실 확인. 이건 다시 강조하기도 민망한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그런데 그 기본이 안 지켜지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아이샤가 ‘예쁜 코를 찾았다’는 기사들은 지금도 인터넷에 그대로 올라있다. 오보를 내고도 오보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 글이 나가면 해당 기사를 슬그머니 내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쓱 지나갈 것이다. 누구도, 어떤 회사도 오보에 대한 사과나 정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베껴 썼다’는 것을 면피로 삼을 요량이면 옹색하고 구차하다. 나만 오보를 낸 게 아니라고 항변할 요량이면 뻔뻔하다. 베껴 쓴 오보는 오보가 아닌가. 집단 오보는 오보가 아닌가. 오보다. 오보라면 응당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재발 방지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채널A 김나리 기자 | media@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