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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5년을 결정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4일자 기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5년을 결정한다!'를 퍼왔습니다.
[초록發光] 대통령직 인수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번 대선은 굵직한 정책 이슈는 사라지고, 단일화 이슈와 보수·진보의 세 대결로 점철된 선거였다.

그러나 기후·에너지 이슈로 보면,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는 탈핵을 주장했고, 전통적으로 핵 정책을 옹호해 온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조차 핵발전소 정책 재검토와 안전성 강화를 공약에 포함하는 등 진일보한 측면이 있었다. 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고리 핵발전소 사고 은폐·부품 비리 등으로 국민들의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 것의 정치적 반응일 것이다. 이제 대선은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고, 기후·에너지 분야를 비롯한 사회 각 영역의 국정 과제는 차기 정부의 몫이 되었다.

대선이 끝난 이 시점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구성과 역할을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역대 인수위원회의 구성과 활동 사례에서 시사점을 도출하여, 향후 두 달 동안 활동할 18대 인수위원회의 과제를 면밀히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를 도출하는 이 두 달이 최소한 향후 5년의 한국 사회를 상당 부분 규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대통령직 행사의 단절을 없애고, 권력의 교체기에 발생할 수 있는 국가 및 사회의 혼란과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계속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행법은 인수위원회를 당선일로부터 대통령 임기 시작일 이후 30일의 범위에서 존속하도록 하고, 위원장 1인과 부위원장 1인 그리고 24인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전신으로 노태우가 당선된 13대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회가 있었지만, 당선인이 대통령과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위원을 추천하였다고 하여 끝내 위원으로 임명되지 못한 채 활동했다. 13대 취임 준비위원회는 정부의 업무 보고를 받는 수준이었고, 대선 공약 사항을 국정 과제로 만드는 작업은 취임 이후 구체화된다. 현재와 같이 인수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김영삼이 당선된 14대 대선 이후부터이다. 14대부터 17대 이명박 당선인까지 역대 인수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은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야에서 여로의 정권 교체가 이뤄졌는지, 아니면 정권 연장이었는지에 따라 인수위원회 구성과 역할에 차이가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대선과 같이 정권이 연장된 경우는 14대 김영삼 인수위원회와 16대 노무현 인수위원회가 있었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인수위원회는 행정부의 비협조로 국정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권이 연장된 경우에는 행정부와의 업무 협조 문제보다는 소속 정당, 혹은 전 정권과의 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다. 김영삼 당선인의 경우, 3당 합당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당선됨으로써, 전 정권과 비교적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로 인해 김영삼 당선인은 인수위원회와 별도의 외곽에 정권 인수팀을 가동했다. 또 노무현 당선인은 소속 정당과의 갈등으로 정치인을 배제하고 외부 지지 그룹을 중심으로 인수위원회를 구성했다는 특징이 있다.

둘째, 선거 기간 동안 유력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컸는지, 아니면 근소했는지에 따라 인수위원회 활동에 다른 영향을 미쳤다.

이번 대선처럼 유력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근소했던 선거는 15대와 16대 대선을 참고할 수 있다. 비교적 여유 있게 대선을 치렀던 김영삼과 이명박 당선인은 새 정부 국정 구상과 인선 작업을 사전에 고민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반면,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김대중과 노무현 당선인은 당선된 후 급하게 인수위원회를 구성할 수밖에 없어 일정한 혼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전에서 박빙의 승부를 치렀지만, 지난 대선 이후 현 정부 5년 내내 대세론을 이끌어 왔고, 그 과정에서 일정한 참모 그룹이 형성돼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셋째, 당선인의 의지와 소속 정당과의 정치적 관계에 따라 인수위원회 활동이 달랐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 정권 연장에 성공한 14대 김영삼 인수위원회와 소속 정당에 대한 장악력이 강했던 15대 김대중 인수위원회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14대 대선 김영삼 당선인은 3당 합당의 한계 속에서 인수위원회에 정부 인수를 위한 행정 제반적 실무 작업만을 맡기고, 대선 공약은 당에서 수행하였으며, 새 정부 구성은 전적으로 참모 그룹인 이른바 동승동 팀에게 맡김으로써 인수위원회는 제한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였다.

한편, 15대 김대중 당선인은 1997년 외환 위기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라는 국내외적인 환경 속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로 당선인이 직접 주재하는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핵심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당권 장악력이 상당한 수준에 있고, 국내외 여건이 역대 정부에 비해 좋다는 점에서 유리한 반면, 공로가 있는 측근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쟁점이 될 수 있다.

넷째, 인수위원회를 정치인 중심으로 구성했는지, 아니면 전문가 중심이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역대 인수위원회 구성을 보면, 14대(김영삼)와 15대(김대중)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구성했고, 16대(노무현)는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했으며, 17대(이명박)는 정치인과 전문가를 혼합했다. 인수위 구성은 정치적인 고려가 강하게 작동했는데, 14대와 15대는 3당 합당과 DJP 연합이라는 구조 속에서 일정한 공동 정부의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즉 당내 세력을 가진 인사들을 인수위에 배치하고, 당선인의 심복을 중심으로 별도의 정권 인수팀을 가동한 셈이다.

한편, 김영삼 당선인은 지역 안배를 중심으로 당내 세력이 약한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선발했고, 김대중 당선인은 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에서 절반씩 추천하여 국회의원들로 구성했다. 또 노무현 당선인은 당과의 갈등 속에서 학계와 연구 기관 출신으로 구성해 전문성을 강화했으며, 이명박 당선인은 당내의 인사들과 전문성을 갖춘 행정부 내의 관료, 학계의 교수를 고르게 분배하여 선정하였다.

새 정부와 인수위원회의 과제

인수위원회는 앞으로 두 달여의 짧은 기간 동안, 행정부의 업무 보고를 받고, 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을 구체화하면서 새 정부의 국정 과제를 제시한다.

예컨대, 박근혜 당선인은 기후·에너지 분야 공약으로 ➀노후 핵발전소 안전 정책 ➁신재생 에너지 보급 국가 목표 수립 ➂온실 기체의 목표 관리제와 배출권 거래제의 재구성 ➃남북 재생 가능 에너지 공동체 구축 시작 ➄에너지 빈곤 없는 따뜻한 에너지 복지 실현 등 7개 분야, 16대 약속, 10개의 실천 과제를 제시했다.

이들 공약이 새 정부의 국정 과제로 구체화되는 첫 관문은 인수위원회 구성부터 시작될 것이고, 인수위원회 결과물인 새 정부 국정 과제로 구체화될 것이다. 특히 파국으로 치닫는 이명박 정부의 핵발전소 위주의 에너지 정책 패러다임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재생 가능 에너지와 지역 에너지 체계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 것인지 주목된다.

한편, 기존 인수위원회는 재벌과 기업들 혹은 정치인들의 지역구 민원을 해결해주는 통로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당선인이 대선 내내 국민 통합을 주장한 바도 있으니, 야권과 시민 사회 세력을 인수위원회에 포함하는 등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울러 노무현 인수위원회의 '국민 제안 센터'와 이명박 인수위원회의 '국민 성공 정책 제안 센터'와 같은 국민 참여 통로와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과제도 있다.

18대 인수위원회는 정권 연장에 성공했고,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으며, 소속 정당이 다수당이고, 당과의 관계에서 당선인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대 인수위원회에 비해 매우 강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매우 높고, 전 정권과의 단절이라는 숙제는 피할 수 없는 새 정부의 운명이라는 점에서 위기 요소가 존재한다.

국민의 절반은 환호를, 나머지 절반은 근심거리를 남긴 결과이지만, 향후 두 달 동안의 인수위원회 활동과 그 결과를 통해 우리는 이전 정권와의 연속성과 단절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근소한 차이로 이기긴 했지만 박근혜 호는 출발했고, 우리는 또 다시 신발 끈을 단단히 묶을 때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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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2012년 10월 4일 목요일

문재인·안철수, 대통령 되려면 '핵'에 목숨 걸어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4일자 기사 '문재인·안철수, 대통령 되려면 '핵'에 목숨 걸어라!'를 퍼왔습니다.
[초록發光] 탈핵 프러포즈

대선에 나선 유력 후보에게 '탈핵'을 선언하고, 주요 공약으로 제시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번 대선에서 '탈핵'을 중요한 가치와 정책으로 내세우고, 낡은 체제와 질서를 극복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밝힌다면, 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자원 봉사라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후보가 없다면 무효표를 조직하는 '선거 보이콧' 캠페인이라도 나서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대선 후보들이 밝힌 복지, 평화, 정의, 안전, 상생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교육, 주거 문제 등이 매우 시급한 현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정책 방안이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성장'을 얘기하는 대목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

이제는 정치인들이 성장을 얘기할 때, 그 말에 숨어있는 함정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명박 정부 기간 내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성장'은 재벌과 소수 기득권의 전유물이었음을 누누이 확인해 왔습니다. 일례로 '녹색 성장' 한다면서 4대강 사업에 22조 원을 쏟아 부었고, 핵발전소 산업 매출이 이명박 정부 들어 이전에 비해 연간 평균 3조 원 이상 증가했는데, 그 이윤은 대부분 토건 재벌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 환경은 파괴되고, 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지역 경제는 파탄 났고,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률은 급증했습니다. 또 성장을 주장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농촌을 파국으로 내몰고 있고, 신규 핵발전소의 송전탑을 강행하면서 평생 땅을 일구어 온 농민을 자살로 내몰았습니다.

이웃을 고통에 빠뜨리면서 쟁취한 성장은 정의롭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성장론을 넘어 우리네들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얘기하는 대통령이 나온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누구를 위한 정권 교체인가?

이번 대선을 정권 교체의 문제로 단순화하는 것에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권 교체 자체는 이전 정부에 대한 반발심 외에 어떤 가치도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진보와 보수의 대표자임을 자임하거나, 굳이 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절반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철학적 기반이 현실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현세대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도 책임감을 갖고 있고, 기후 변화와 빈곤 문제 등 지구촌 국제 협력에도 성찰하는 대통령이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논의만 전개되는 대선 과정이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니, 주요 20개국(G20) 정상 회의를 개최했느니 하는 자랑의 이면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 지구촌 빈곤 퇴치에 기여한답시고 공적 개발 원조(ODA)를 수출에 이용하는 문제, 기후 변화에 대응한다면서 제3세계 환경과 인권을 파괴하는 문제 등 '무조건 잘살아 보세' 유의 졸부 근성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핵과학자 민병주 후보를 비례 대표 1번으로 추천한 박근혜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2060년에 탈핵을 하겠다는 문재인 후보를 보면서, 미래 세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에 걱정스러웠습니다. 죄송스런 표현이지만 본인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40년 뒤에나 탈핵하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고, 대국민 사기에 가깝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핵 발전 정책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이웃나라 일본 후쿠시마 핵 사고의 충격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것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제라도 민주통합당 강령에도 명기된 '핵 발전 정책의 전면 재검토'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탈핵 정책을 제시해 주길 기대합니다. 안철수 후보 역시,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펴냄)의 원론 수준이 아니라 분명한 탈핵 정책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프레시안

누구를 위한 핵 발전인가?

후쿠시마 핵 사고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핵 산업계는 '이대로'를 외치며 핵 발전 확대 정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 핵 발전 확대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핵 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핵 발전 매출이 있는 업체는 모두 147개였고, 이들의 매출 총액은 16.8조 원이었으며,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인력은 2만3835명이었습니다. 또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핵 산업체의 매출은 총 4.8조 원이였는데, 이들 기업의 전체 매출에서 핵발전소 관련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9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핵 발전은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끔찍한 위험을 초래하지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더구나 핵 산업 분야 인력의 3분의 2 가량은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공적 영역에 포함돼 있어, 핵 산업체에 종사하는 인력을 핵 폐로 산업으로 전환한다면, 탈핵에 따른 일자리 전환도 큰 문제가 아닙니다.

이에 반해 핵발전소의 경제성, 안전성, 민주성, 지속 가능성은 매우 취약합니다. 국가가 엄청난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면, 핵에너지는 매우 비싼 에너지이고,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았듯이 누출되면 치명적으로 위험합니다. 또 핵발전소 주변 지역의 피해와 밀양과 같이 원거리 송·배전 과정에서 부정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핵폐기물을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할 현실적인 방법은 없고,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에서 "무릇 장사란 이문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대사를 듣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납니다. 대권에 나선 후보들에게 선거를 통해 그리고 정치 과정에서 무엇을 남기려 하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핵 발전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거짓 선동하는 것에 맞서, '핵은 대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후보를 만나고 싶습니다.

전체 전력 생산량의 1퍼센트밖에 안 되는 사고뭉치 고리 핵발전소를 즉각 폐쇄하고, 핵발전소 폐로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후보를 기다립니다. 대도시의 신규 핵발전소 송전탑 건설을 위해 평생 평화롭게 땅을 일궈온 농민의 삶을 짓밟는 야만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후보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후보를 기쁘게 선택할 수 있는 대선이기를 기대합니다.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2012년 5월 18일 금요일

“몸조심 하라”던 쌍둥이 형,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18일자 기사 '“몸조심 하라”던 쌍둥이 형, 주검으로 돌아왔다'를 퍼왔습니다.

 ♣H5s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에서 5·18 항쟁 마지막날까지 저항했던 쌍둥이 형제의 형 이강수씨의 고교 시절 모습(위 왼쪽)과, 당시 함께 싸우다 총상을 당했던 동생 이강준씨의 요즘 모습(위 오른쪽). 이강준씨의 큰딸 이 초등 3학년 때 쓴 2000년 5월19일 일기(아래). ♣H6s이강준씨 제공

‘반쪽’을 떠나보낸 이강준씨의 오월5·18항쟁 32돌
도청에 가니 형이 있었다
진압 전야 “몸조심” 당부
마지막 만남이 될줄이야 

형은 총 맞고 두개골 함몰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마지막 모습 자주 생각나

5분 먼저 세상에 나온 형은 그의 반쪽이었다. 이강준(51·광주 북구 두암동)씨가 일란성 쌍둥이 형을 잃은 건 1980년 5월이었다. 형 강수씨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중 18일부터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토목공사장에서 일하던 동생 이씨도 22일부터 시위대에 합류해, 시민군 지도부가 있던 옛 전남도청에 들어가 무기고를 지키다가 형을 만났다. 이씨는 “형은 광주통합병원에서 산소통을 가져와 전남대병원 등에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군부의 피의 진압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인 5월26일 밤, 쌍둥이 형제는 서로 “몸조심하라”고 당부하며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튿날 새벽 4시께 머리띠를 한 계임군이 도청 안으로 진입하며 총을 난사했다. ‘무기고로 쓰던 숙직실 유리를 뚫고 거울에 튕긴 유탄’에 맞은 이씨는 얼굴 광대뼈가 부러지고 코밑까지 파편이 박혔다. 피범벅이 돼서도 형 생각이 났다. 새벽 6시나 됐을까? 두 손을 결박당한 채 광장에 엎드려 있던 시민군들 틈에서 “재수생입니다”라고 답변하는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살아 있구나….’
하지만 형은 6월 초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오른쪽 가슴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총알이 관통했다. 이씨는 형이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1997년 형의 주검을 망월동 옛 묘역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기 직전 법의학자에게 사망 원인을 밝혀달라고 의뢰했던 것도 진실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형의 두개골이 함몰돼 있었는데, 전문가들도 무슨 자국인지를 밝히지 못했다”며 “상무대 영창에서 고문을 받다가 (문제가 생겨) ‘위장 사살’을 당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도청 안 식당으로 주먹밥 먹으러 가다 보면 신원 확인이 안 된 시신이 많았어요. 목이 잘린 주검도 있었고요. 화가 치밀었죠. 볼 때마다 기도하고…. 울면서 밥 먹으러 갔어요. 그래서 (군인들이 진압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지요.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생각으로 남아 있었어요.”
이씨는 국군통합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상무대 군 영창으로 옮겨졌고 그해 9월 광주교도소에서 기소유예로 나왔다. 형을 잃은 상실감과 영창 안 고문의 상처를 애써 덮고 ‘오월’과 비껴 살았다. 대학을 마치고 토목업을 시작해 사업에 크게 성공하기도 했던 이씨는 9년 전 큰 시련을 겪었다. 이씨는 지금은 필리핀에서 광업 사업을 하며 재기의 발판을 다지는 중이다.
“마지막 모습이 자주 생각나요. 꿈에서도 자주 보이고요. 꿈에 형이 웃으면 좋은 일이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면 안 좋고요. 그러면 딸에게 전화해 큰아빠 묘지에 갔다 오라고 해요.”
이씨의 큰딸(22·ㅇ대 3년)은 어려서부터 전해들은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애절한 사연에 5월만 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자취하는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 근처를 지날 때면 (가해자들이) 잘살고 있는 것에 화가 난다”며 “아직도 5·18을 꾸며진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따라 5월 묘역에 자주 갔던 그는 그때의 기억을 일기에 남겼다. “큰아빠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금의 아빠랑 똑같은 쌍둥이니까 지금도 똑같을까?”(2000년 5월19일 일기·[♣사진♣])
2003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가 연 ‘5·18 글짓기 한마당’에서 최고상(초등 산문)을 받은 글에도 아빠와 큰아빠의 슬픈 이별을 기록했다.
“5·18이 일어난 지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형님의 묘지 앞에 엎드려 통곡하는 동생에게 누가 위로에 말을 해 줄 것 입니까? … 형제를 갈라놓은 사람은 목숨을 다 바쳐 사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 난 두분이 역사의 큰일에 뛰어든 용기를 배울 것이며… 혹시라도 이 마음이 흔들릴 때 망월동 민주 성지를 찾아 가슴속 깊이 민주화의 꽃을 심으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두분의 딸이 되겠습니다.”(맞춤법은 원문대로 둠)

♣H6s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