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분향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분향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4월 9일 화요일

경찰, 쌍용차 분향소 질서유지선 임의 설치 논란


이글은 참세상 2013-04-08일자 기사 '경찰, 쌍용차 분향소 질서유지선 임의 설치 논란'을퍼왔습니다.

“신고된 집회신고 장소 내부에 경찰 마음대로 질서유지선 설치해”


서울 중구청이 지난 4일 새벽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를 기습적으로 철거한 이후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바로 다음날 질서유지선을 설정해 경찰이 신고된 합법 집회조차 제한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5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한 달 전 집회를 신고한 장소보다 축소해 임의로 질서유지선을 설정했다. 노조가 그간 집회 신고를 한 공간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 바로 앞뿐만 아니라 현재 화단이 설치된 자리를 포함하고 있다. 
▲ 남대문경찰서는 농성장 강제철거 다음날 점선이 그려진 3번 공간 부분을 질서유지선으로 설정해 그 공간 안에서만 노조가 집회 등을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한 달 전에 1번, 2번, 3번 공간 모두 집회 신고를 낸 바 있다. 현재 화단이 설치된 1번 공간에 쌍용차 임시 분향소가 있다.


하지만 중구청이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노조가 1년 전부터 사실상 별 문제없이 매달 집회 신고를 내고 분향소를 유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질서유지선을 설정해 그 안에서만 집회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집회 등이 열리고 있지만 시민이 불편하니 질서 유지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며 “또한 화단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질서유지선 설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경찰측 주장에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쌍용차지부 관계자는 “이미 쌍용차 대한문 농성장은 합법적으로 신고를 득하고, 합법적인 판결을 얻은 집회이다”며 “그동안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제와 시민 통행 불편 운운하는 것은 시민을 볼모로 집회를 제한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태욱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중구청이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한 것은 문제 삼지 않고, 신고를 득한 집회를 경찰 마음대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화단을 설치해 장애를 초래한 뒤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나가라는 것은 앞뒤가 바뀐 행동으로 경찰이 집회에 시비를 걸기 위해 핑계를 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이 질서유지선 설정의 근거로 대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해석을 둘러싸고도 논란이다. 집시법 13조에 의하면 관할경찰관서장은 집회 및 시위의 보호와 공공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최소한의 범위를 정해 질서유지선을 설정할 수 있다. 경찰관서장이 질서유지선을 설정할 때에는 주최자 또는 연락책임자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

권영국 민변 변호사는 “집시법상 질서유지선은 공공의 질서 유지 뿐만 아니라 집회 및 시위를 보호하고, 경찰 감시나 제한으로부터 집회 등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하지만 현재 경찰은 집회와 시위는 전혀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집회 신고된 장소 안에 임의적으로 질서유지선을 설정한 것 자체가 문제이며, 집회 및 시위를 보장하지 않아 집시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또한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앞은 그동안 시민들의 자율적 통행이 이루어지면서 유지된 곳”이라며 “갑자기 질서유지선을 설정하는 것은 집회 및 시위를 경찰의 압력으로 제한하려는 부당한 처사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이 쌍용차지부의 집회 물품을 계속 수거해 가 쌍용차범대위는 “이미 남대문경찰서에 신고된 물품인데, 경찰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일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집회물품이 실린 쌍용차지부 차량을 견인하기도 했다.
정재은 기자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노무현은 마지막까지 이런 대우 받았다.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5-23일자 기사 '국가원수 분향소 계단밑 구석에…"관람객 위해 중앙은 안돼"'를 퍼왔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OiQi9CCGUcM

노무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고 노무현은 2009년 5월 23일 세상을 떠나 29일에 수원 연화장에서 한줌의 재가 되었다. 그의 유골은 지금 그가 태어나고 자란 봉하마을, 널따란 바위 아래에 안치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다른 의견도 많았었다. 국가 원수로서 당연히 국립묘지에 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음은 당연하다. 광주에서는 그가 광주가 낳은 대통령임을 잊지 못하겠는지 분장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재가 되어버렸지만, 그의 유골을 국립묘지와 봉하마을, 그리고 광주에 분장하자는 것은 아마도 그가 생전에 그렇게도 외쳤던 ‘지역주의 타파’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었을 것이고, 또한 국립묘지에 안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음을 역사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보편적 상식을 중히 여기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혹자는 작은 비석이 아닌 것에 또 한숨을 쉬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를 생전에 촬영했던 사진 중 잊지 못할 몇 장 있다. 그중 2008년 여름 봉하마을에서 그를 동행 취재하면서 촬영했던 사진 속의 노무현은 사람들 앞에 서면 예의 유쾌한 표정이지만, 잠시 생각에 잠길 때나 뒤돌아서는 순간 그의 얼굴엔 그늘이 졌었다. 혹자는 새로운 권력이 들어선 당시에 이런 식으로 봉하마을에 사람이 모여들고, 전직 대통령이 나서 사람들을 반기고 연설하는 일을 반대했었다.

▲ 생가를 설명하고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

▲ 시민들과 대화를 마치고 사저로 들어가기 전의 모습

아마도, 그와 가까운 사람 중에 그 혹자들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계속 몰려드는 사람들을 만났고, 이에 비례해 이명박 정부의 압력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치졸하게 그의 주변을 털고 있었다. 왜 아닐까? 어느 날 청천벼락처럼 그는 갔고,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나는 또 한번의 충격을 받았다.

2009년 5월 26일, 장례를 앞둔 시점에 서울에 올라와 국가 공인 분향소인 서울역사박물관을 방문하던 날, 나는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박물관 입장객을 배려한다고 전직 국가원수의 공식 분향소를 건물 한 귀퉁이 계단 밑에 만들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외교사절 등이 분향하는 국가 공식 분향소의 모습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 국가 공식분향소였던 서울역사박물관 입구
▲ 역사박물관 입구 오른쪽 귀퉁이에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 관람객을 위해 중앙계단을 막을 수 없어 국가원수의 공식분향소를 귀퉁이에 설치, 그것도 계단 아래에 놓는 대우는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국민에 대한 모욕이다.

노무현은 마지막까지 이런 대우를 받았다.

가족장을 한다는 걸 적극적으로 반대해 국민장을 치르고 봉하마을에서 치르겠다는 장례식을 서울로, 그리고 노제까지 지내는 과정을 되짚어보면 나는 참으로 미운 인간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노무현은 무엇이었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가 엄연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그가 가고 이후에 벌어졌던 수많은 일에 대해 언젠가는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 초라한 국가 공식 분향소에 어느 시민이 남긴 방명록 하나로 대신하고자 한다.

▲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

그나마 그가 재가 되어버렸던 수원 연화장에 추모비 하나를 세우겠다는 소박한 시민의 정성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이고 보수라는 단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을까? 5천 년 역사에 없었던 일련의 과정을 훗날 역사가 어떻게 쓸지는 승자가 누가 되느냐에 달렸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