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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2일 금요일

"독도 폭파시키고 싶다"던 박정희…박근혜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22일자 기사 '"독도 폭파시키고 싶다"던 박정희…박근혜는?'을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박근혜 정부, 제2의 역사전쟁 벌일까?

이명박 정부는 가고 박근혜 정부가 온다. 지금 역사학계 초미의 관심사는 박근혜 정부, 아니 박근혜 당선자가 직접 제2의 역사전쟁을 도발할지의 여부에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을 떠올려 보자. 참으로 나라 안팎에서 역사 전쟁이 빈번했다. 그 양상 또한 전에 없던 모양새를 띠었다. 국가 권력이 직접 역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며 역사 전쟁의 도발자로 나선 것이다. 그 선봉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취임 직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 시위에 직면해야 했다. 교복 입은 소녀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에 놀란 그와 보수·우파세력은 그 원인을 역사교육, 특히 한국근현대사 교육에서 찾았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5월 당시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금 역사교과서나 역사교육이 다소 좌향좌되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할 것임을 천명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 '역사 교과서 수정 문제는 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도 우도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훈수를 두며 교과부 장관의 발언에 힘을 실어 주었다.

2008년의 역사내전은 10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내용과 관련한 수정안을 내놓으면서 격렬해졌다.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는 물론 해외 한국학 연구자들까지 가담한 역사 전쟁 속에 금성출판사가 교과부의 수정안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집필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교과서 내용이 수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집필자들은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직권을 남용한 교과부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교과부는 지난 1월 장관에게 교과서의 수정 명령 권한 및 감수권을 부여하는 법률 개정안을 내놓는 등 정권 말기까지 쉼 없이 역사전쟁을 도발했다. 허나, 민주주의의 가치와 절차를 훼손한 이명박 정부의 도발은 일단 좌절된 듯하다. 2월 15일 대법원은 교과부 장관 임의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는 것에 제동을 걸며 집필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역사 전쟁에서도 유례없는 도발을 자행했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빼앗긴 우리 땅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 10일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졸지에 독도를 세계적으로 격렬한 영토 분쟁지의 하나로 각인시키게 만드는, 즉 '낙인 효과'를 초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밝힌 이유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기에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몇 년 간의 고려 끝에 전격 방문했다고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 10일 국가원수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함으로써 졸지에 독도를 세계적으로 격렬한 영토 분쟁지의 하나로 각인시키게 만드는, 즉 '낙인 효과'를 초래했다. ⓒ뉴시스

그렇다면, 이후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는가. 불행히도 한일 간 외교 갈등의 골만 더욱 깊어졌을 뿐이다. 지금 일본 정부는 총리 직속의 독도 전담 부서를 설치하려 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미친 파장도 적지 않다. 일본인 중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2011년 7월 현재 일본 고등학생 10명 중 9명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일본 언론의 표현) 이래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 10명 중 7명은 독도를 일본 땅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일본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 김미경 교수의 2012년 조사). 한국인에 대한 우호적 인식도 급감하고 있다. 2012년 11월 일본 내각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을 친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2011년의 62%에서 39%로 급격히 줄었다. 지난 달 요미우리 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 일본인의 37%, 그러니까 3명 중 1명은 한국이 일본에 군사적으로 위험한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전 해의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23%였다. 일본 언론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서 찾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인에게 역사전쟁의 도발자라는 강한 인식을 남기고 독도를 영토분쟁화 할 수 있는 빌미를 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의 파장이 지금도 계속되면서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 성공하며 승리를 거머쥔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과거사 관련 언행은 제2의 역사전쟁의 예고편이 될 것인가.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몇 번의 고비를 만났다. 곰곰이 따져보면, 박근혜 당선인이 매번 그 위기를 자초한 주체였고, 위기의 테마는 모두 과거사였다!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에 대한 옹호, 인혁당 사건에 대한 '두 개의 판결' 발언, 그리고 정수장학회 논란 등이 그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그 때마다 사과했고,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자신의 역사관을 수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과와 해명에는 늘상 진정성 시비가 붙었다. 대선이라는 상황을 고려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므로 언젠가 번복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강했다.

1979년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후, 박근혜 당선인은 10여 년간 대외활동을 삼갔다. 주목할 것은 1988년에 시작된 대외 활동의 첫 행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회복이었다는 사실이다. 먼저, 그녀는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이후 박정희 사망 10주기 추도 행사를 성대히 치렀고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는 영화 (조국의 등불)와 책 (겨레의 지도자)를 내놓았다. 육영수를 추모하는 근화봉사단이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이러한 박근혜 당선인의 과거 궤적이 그녀의 대통령으로서의 첫 행보도 박정희 대통령의 복권에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박근혜 당선인이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목적으로 제2의 역사전쟁을 도발한다면, 그 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폭발적일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아버지의 복권을 꾀한다는 발상 자체가 왕조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복고적이고 퇴행적인 정치 행위다. 작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서거 33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선인은 "아버지 시대에 이룩한 성취는 국민들께 돌려드리고 그 시대의 아픔과 상처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과거사는 그녀의 언행 모두에 따라 붙는 꼬리표로 말 그대로 업보다. ⓒ연합뉴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독도에 대한 이중적 행보도 쟁점이 된 바 있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 한일협정이 타결될 무렵 독도 문제와 관련해서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미국이 독도 문제가 한일수교 협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하며 한국과 일본 공동의 독도 등대 설치, 독도 문제를 다룰 한일 외교장관회담 등을 제안할 때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여 독도 주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딘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에게는 한일 수교 협상의 진전을 방해하는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고 싶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일 수교 협상에서 '비록 작은 것이지만 화나게 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독도문제인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버리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독도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모호한 행보는 그의 친일 전력, 그와 만주국 경험을 공유했던 전범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외손자로서 이번에 총리에 오른 아베의 독도에 관한 강경한 태도 등과 맞물리면서 나라 안팎에서 언제든 쟁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2년 뒤인 2015년은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일 간에 독도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과연 박근혜 당선인은 한일협정이 경제개발 자금을 대가로 식민 지배 문제와 독도 문제를 '작은 것'으로 치부하며 굴욕적으로 체결한 조약이라는 상식적 역사관을 전복하고자 역사 내전을 도발할 것인가. 또한, 일본 정부와 일본 언론이 박정희 대통령의 독도 인식의 진의를 따지며 한일협정과 맞물려 시비를 걸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외신기자들을 향해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이며 일본과의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녀가 이러한 독도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를 추구하는 한일 관계의 재정립이라는 난제를 해결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박근혜 당선인과 정부는 1980년대의 미국과 영국, 1990년대의 일본, 2000년대의 한국에서 레이건과 대처, 자민당, 이명박 등 권력자들이 근현대사를 자학사관이 아닌 영광의 승리사관으로 재조명하자며 역사 전쟁을 도발했지만,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던 전철을 그대로 밟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력이 원하는 바의 역사관을 일시적으로 강요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민주와 평화라는 상식적 가치에 기반하여 형성된 대중의 역사 인식과 역사 정서를 조작적으로 개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근혜 당선인에게 과거사는 그녀의 언행 모두에 따라 붙는 꼬리표로 말 그대로 업보다. 그것은 그녀의 과거사 관련 행보가 곧 정권적 차원의 파괴력을 갖는 중대 사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친일과 독재의 과거사로 인해 훼손된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복원하는 데 일조하는 역사 정책이 수반되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의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교수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박정희와 김종필, 독도 폭파 원조였다


이글은 대자보 2012-08-24일자 기사 '박정희와 김종필, 독도 폭파 원조였다'를 퍼왔습니다.
[논단] 일본의 망언과 도발에 분노하기 앞서 국내 친일잔재부터 처단해야

독도 문제로 한.일 간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8월 10일 중국행 배 안에서 TV뉴스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압록강-백두산-두만강 지역을 탐방하며 인터넷/와이파이 접속이 쉽지 않아 17일 귀국한 뒤에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4년 전인 2008년 7월 한.일 정상회담 때 후쿠다 일본 총리가 일본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표기하겠다고 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는 사람이 무슨 곡절로 이렇게 현란하게 변신하는지 의아하다.

한편, 문재인 후보가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박정희의 1965년 발언을 인용하자, 박근혜 후보의 대변인이 그것은 일본측에서 한 말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이 담긴 미국 외교문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박정희의 입장을 왜곡했다는 식의 논평을 냈다.

대통령을 하는 사람이든,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든, 또는 그 주변에서 권세를 부리는 사람들이든, 정치를 하려면 최소한 우리 현대사는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을 제대로 뽑으려면 우리 유권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취지로 7년 전에 발표했던 글 한 토막 아래에 덧붙인다.

박정희와 김종필, 독도 폭파 제안

지난 (2005년) 3월 한 달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논란거리는 독도 문제였을 것이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일본쪽 주장에 대해 거의 온 국민이 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던 듯하다. 일본에 대한 항의와 분노의 표시로 손가락을 자른 사람도 있었고 목숨까지 내던지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일본에 대한 새로운 외교 방침을 발표하고 대통령은 ‘외교 전쟁’이란 말까지 할 정도였으니, 정부 차원의 ‘조용한 외교’조차 떠들썩한 외교로 바뀐 셈이다.

그런데 일본의 염치없는 억지와 반성 없는 망언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본이 저런 짓거리를 하는 데는 지난날 한국의 친일파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부추긴 점도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독도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만 밝힌다.

(2005년) 1월 17일 1960년대 한일협상과 관련된 외교문서들이 공개되면서 일본이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62년 9월 일본의 협상대표인 외무성의 한 국장이 “사실상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협상대표인 외무부의 한 참사관은 두 달 뒤인 1962년 11월 “(한.일 간에) 모처럼 조성된 좋은 분위기가 깨질 염려가 있으므로 제 3국에 의한 조정에 맡기자는 제의를 김종필 정보부장이 하게 된 것이며, 이는 김부장의 최종적인 생각이다”고 대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6년 공개된 미국의 외교문서에 따르면 5.16 쿠데타 이후 ‘제 2인자’로 행세하며 한국정치를 쥐락펴락했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일본의 오히라 외상에게 독도 폭파를 제안했다. 김종필이 1962년 10월 일본에 건너가 한일협정의 기초를 마련했던 이른바 ‘김-오히라 메모’에 합의하고 바로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문서’로 분류된 1962년 10월 29일의 김종필-러스크 대화록을 보면, 두 사람이 한일협정에 관해 얘기하는 가운데 쟁점이 되고 있던 독도에 대해 러스크가 그 섬이 무슨 용도가 있느냐고 묻자, 김종필은 “갈매기가 들르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김종필이 오히라에게 독도를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다고 말하자, 러스크는 자신도 그 해결책을 생각해냈다고 대꾸했다. 나아가 오히라는 독도 문제에 관해 일본 사회당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며 김종필의 제안에 만족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 1961-1963, Volume XXII, Northeast Asia,610-612쪽). 독도 폭파를 한국측이 제안하고 일본측이! 거절했던 셈이다.

게다가 1965년엔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을 방문하여 러스크 국무부장관에게 한일협정을 위해 독도를 폭파해버리고 싶다는 망언을 했다. 바로 이러한 친일파 위정자들의 망언 때문에, 설사 한일협상이 잘 풀리지 않은데 따른 푸념이었을지라도, 일본이나 미국은 한국이 독도의 진짜 주인이 아니라거나 진짜 주인일지라도 영유권을 쉽게 포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1962년 김종필과 대화를 나누며 독도 폭파를 고려하고, 1965년 박정희와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독도에 등대를 세워 두 나라가 함께 이용하기를 제안했던 러스크 국무부장관은 1945년 8월 육군 대령으로 3.8선에 의한 한반도 분할을 소련에 제안했던 사람이다. 한반도의 국토 분단을 이끌었던 그가 분단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나중엔 독도를 폭파하자거나 한.일 두 나라가 공동으로 사용하기를 제안했던 것은 친일파 정치인들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억지를 비난하고 그러한 일본 편을 드는 듯한 미국의 자세를 비판하기에 앞서,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다 미국에 굽실거렸던 한국의 위정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어떠한 언행을 저질러왔는지 먼저 아는 게 바람직하다. 해방 직후 친일과 부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업보이지만, 60년이 지난 이제라도 과거사를 제대로 밝혀야 할 필요가 이런 데 있는 것이다. / [남이랑북이랑] 2005년 4월

이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