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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5일 수요일

재능 고공농성 100일, “‘끝까지 함께’라는 구호만 봐도 눈물이”


이글은 참세상 2013-05-15일자 기사 '재능 고공농성 100일, “‘끝까지 함께’라는 구호만 봐도 눈물이”'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성당 종탑 고공농성 100일 맞은 오수영, 여민희 조합원

추운 겨울이 지나고 곧바로 여름 같은 날씨가 찾아왔다. 고공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계절의 변화는 보다 직접적이다. 칼바람에 벌벌 떨며 혜화동 성당 종탑에 오른 지 100일. 기대했던 봄날을 맞이하지도 못한 채, 종탑 위에서 뜨거운 햇볕을 견디고 있다. 한 평 텐트 안은 한 낮의 뜨거운 공기로 후덥지근하다.

5월 15일이면 재능교육지부 여성 조합원 2명이 ‘해고자 전원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혜화동 종탑에 오른 지 100일을 맞는다. 학생들과 함께 보내야 할 ‘스승의 날’에, 재능교육 학습지교사들은 고공농성 100일 투쟁을 벌여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고공농성이 언제 끝이 날지 기약할 수도 없다. 전국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사업장들처럼, ‘장기전’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고공농성 100일을 맞아, 종탑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오수영, 여민희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을 찾아갔다. ‘잘 지내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린다. 고공에 발이 묶여, 몸과 마음에 난 상처가 곪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최장기 투쟁 사업장’으로 기록된 시간만큼, 몸과 마음에는 너무나 많은 아픔이 쌓여간다.




한파가 몰아칠 때 시작한 고공농성, 100일간의 시간

날씨가 갑자기 더워졌다. 건강은 어떤가

오수영 조합원(이하 오수영) 잘 지내고 있다. 원래 위는 좋지 않았고, 여기 있으면 움직일 일이 없어 음식을 많이 먹지는 못한다. 한참 추울 때는 추위 때문에 혈압이 많이 올라갔다. 밑에서는 100~110정도였던 혈압이 135~140까지 나오더라. 의사 선생님이 날이 너무 춥고, 몸이 따뜻해질 기회가 없어 혈액순환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혈관이 펌프질 하는 게 느껴져, 어쩔 때는 등에 심장이 생겼나보다 했다. 민희는 최근 감기몸살로 고생을 좀 했다.

여민희 조합원(이하 여민희) 입맛도 없고 위도 안 좋았다. 그러다 며칠 전 감기 몸살에 걸렸다. 이제는 꽤 나았지만, 매일 아침마다 하는 100배도 못할 정도였다. 끙끙 앓다 나았다. 잠을 잘 자지 못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여러 고민과 스트레스 때문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 내부 문제 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어 상처 되는 글이 올라오거나 하면 며칠 잠을 못 잔다. 

100일간 종탑 위에서 하루하루 어떤 일과를 보냈나

오수영 아침 8시 30분부터 100배 투쟁을 시작한다. 100배 투쟁은 하루를 시작하고,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나서 웹자보나 선전 작업을 한다. 조합원들 수가 적고, 항상 밖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문서 작업이나 선전 작업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 올라와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어깨가 결리는 게 사무직 노동자가 된 것 같다. 처음에 올라왔을 때는 일을 안 시켰는데 갈수록 업무 분담이 늘어난다. 심지어 사람들 조직하기 위한 전화까지 돌린다. (웃음)

저녁에는 매일 집회랑 문화제가 있으니 발언 준비도 해야 한다. 매일매일 뭔가 말하려다 보니 이제는 노래도 부르고 자작시를 써서 읽기도 한다. 원래 시를 잘 보지도 않는데 여기 와서 시도 써봤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밖에 있는 사람들도 너무 바빠 우리 밥도 안 챙겨 줄 때도 있다. 

100일이라는 힘든 기간 동안, 기쁜 일은 없었나

오수영 우리가 처음 올라왔을 때 주황색 텐트였는데, 지금은 텐트가 바뀌지 않았나. 시민 분이 가지고 오신 거다. 전에 있던 텐트에서 생활할 때는 민희가 울기도 했는데, 이제는 훨씬 편해졌다. 그러고 보니 민희는 엉뚱한 것 때문에 자주 운다. 저번에는 밥 먹다 손이 시렵다고 운적도 있다.(웃음)

여민희 처음에 가지고 올라왔던 텐트는 너무 좁고 높이도 낮았다. 그래서 한 명이 구부려 앉으면 한 명은 누워있어야 했다. 매일 구부리고 있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오수영 밑에 텐트가 필요하다고 말은 했는데, 사람들도 텐트 전문가들이 아니고 이것저것 찾아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1박 2일 투쟁할 때 어떤 시민 분이 이 텐트를 가지고 오셨 길래, 유득규 언니가 이런 텐트는 얼마나 하냐고 물어봤다. 그리고나서 시민 분이 이 텐트를 빌려주셨다. 텐트가 편해지니 민희나 나나 좀 살 것 같더라.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오수영 초반에는 엄마나 시어머니 모두 ‘빨리 잘 해결돼서 내려오라’고 했다. 하지만 노조 내부 갈등이 전해지면서 엄마는 ‘더 이상 쟤네는 안 되겠다’며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어머니도 저에게 ‘네가 속고 있는 것 같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며 내려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엄마나 어머니 모두 잔소리를 많이 하시지는 않는다. 엄마는 자주 찾아오신다. 처음에는 기가 막히고 설움이 복받쳐 올라 별말 안하셨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오셨을 때, ‘지난번 왔을 때 손 한번 못 잡아 준 게 너무 생각나, 한 번 안아주고 가겠다’고 하시더라. 

아들은 1박 2일 농성촌에 아빠와 자주 온다. 얼마 전에는 런닝맨 게임을 했는데,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유득규 언니가 계속 앞에 나와 노래를 부르더라. 아들도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애가 아닌데, 계속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들었는데, 민희팀VS수영팀으로 나눠져서 게임을 했다고 하더라.(눈물)

여민희 민희VS수영팀으로 나눠서 게임을 하는데, 아이는 엄마 팀이 이기면 엄마가 종탑에서 내려오는 줄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안 부르던 노래도 하고 악착같이 게임을 했다고 한다. 유득규 언니는 아이가 이기게 해 주려고 또 악착같이 게임을 하고. 

나 같은 경우는, 남동생이 매주 수원에서 여기까지 찾아온다. 처음에는 걱정이 되는 지 ‘딴생각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다 농성 기간이 길어지면서, 동생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요새는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자주 묻는다. 매주 와서 빨래를 가져가고, 올케가 빨래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올려 보내고 있으니 힘든 것 같다. 올케도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있고, 둘 다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미안하다.

“쌍용차 동지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기륭전자 동지들 고맙습니다”

얼마 전, 같이 고공농성을 해왔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송전탑에서 내려왔다. 바라보는 심경이 어땠나

여민희 원래 복기성 동지가 페이스북에 글도 많이 올리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식이 올라오지 않더라. 내려오기 전날, 의사들의 검진 결과를 들어보니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우울했다.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는 대자본과의 투쟁이지만, 쌍용차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내려와서 다른 방안을 찾았으면 했다. 

사실 우리같이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들은 잘 지낸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매일 울어도, 밑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밝은 목소리로 괜찮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 할 때는 정말 아플 때다. 쌍차 고공농성 노동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조합원들을 생각하며, 아프다고 말도 하지 못하고 힘들었을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마음이 쓰인다. 내려가기로 했을 때 좌절감도 컸을 것 같다. 아무리 우리가 괜찮다고 해도, 그 두 분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아는 척도 못하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야 연락을 했다. 

오수영 고공농성 노동자들끼리 공동 카톡방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는데, 갈수록 말이 없어졌다. 지금은 거의 휴면 상태다. 복기성 동지도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페이스북도 거의 안했다. 소통이 없었다. 검진 결과를 들어보니, 말도 많이 없어지고, 우울증도 생기고, 혈압약을 먹는데도 혈압이 높다고 해서 너무 무서웠다.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많았다. 무사히 내려와서 정말 다행이다.

‘최장기 비정규 투쟁사업장’이라는 타이틀을 기륭전자로부터 이어받았다. 얼마 전 기륭전자분회 조합원들이 복직을 했는데 기분이 어땠나

오수영 처음에 복직 보도가 나왔을 때 오보인 줄 알았다. 사측이 조합원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재능 사측도 우리한테 ‘그래도 기륭은 복직도 수용하지 않는데, 우리는 너희를 받아준다고 했다. 우리가 기륭보다 낫지 않나’는 이야기를 자꾸 했다. 그리고 나서 기륭 조합원들이 정말 복직을 했는데, 너무 장하고 고마웠다. 또다시 회사와의 싸움을 시작하는 건데, 조합원들 모두 결심하고 들어가줘서 정말 고맙다. 

여민희 부러운 마음보다 고맙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힘들게 싸워온 동지들이 복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많이 고마웠다.



노동자들이 100일, 200일 동안 고공농성을 해도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시대다. 재능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역시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나

오수영 장기화 될 가능성이 있다. 각오도 하고 있다. 회사와는 14일까지 2박 3일 집중교섭을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회사는 단체협약은 복귀 후 논의하자는 입장을 계속 고수했다. 그동안 회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고 이지현 조합원의 복직에 대해서는 검토해 본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에 올라올 때 해고자 전원복직, 단체협약 원상회복이 관철될 때 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도 유효하다. 

장기화에 대한 각오는 하고 있지만, 걱정도 된다. 만약 200일까지 내다본다면, 6, 7, 8월 여름을 다 여기서 보내게 되는 거다. 5월인 지금도 이렇게 더운데, 그 때까지 체력이 버틸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종탑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곳이 돌풍이 심한 곳이라고 한다. 장마나 태풍이 오면 웬만한 것은 다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금은 장마나 태풍이 올까 무섭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존재하는 한, ‘끝까지 웃으며 함께 투쟁’”

어려운 질문을 드리겠다. 재능교육지부 내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해결 기미는 없나

오수영 장기투쟁사업장이다 보니, 내부 조합원들의 감정이 좋을 수만은 없다. 애정과 증오심 같은 게 서로 얽혀 있다. 과거에 극한 대립을 거치게 되면 더욱 풀기 어렵다. 서로 관계가 어렵더라도, 같이 투쟁을 하기로 했다면 그 문제를 풀고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같이 싸우자고 말은 했지만, 감정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이 폭발했고 많이 싸웠다. 애들처럼 싸웠기 때문에, 애들처럼 풀었어야 하는 간단한 문제였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라 그러지 못했고, 너무 어려웠다. 그러면서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졌다. 상대방의 상처를 받아들여야만 치료가 가능한 문제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이 조차 어려울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흐르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여민희 오래 전부터 감정의 골이 깊어져 온 문제여서 해결하기 힘들었다. 나와 유득규, 유명자 동지는 많이 친한 사이였다. 10년 넘게 노조 활동을 같이 해 왔다. 지금 회사가 노조를 이렇게까지 만들어놨는데, 우리마저도 이런 상태가 돼 버리니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밑에서 지켜보는 조합원들과 연대단위 동지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오수영 일 좀 그만 시켰으면 좋겠다.(웃음) 이건 장난이고, 사실 민희는 여기 올라와서 언니들과의 관계가 많이 망가지고 있는 것을 줄곧 생각하는 것 같다. 밤새 그렇게 혼자 울어서, 아침이면 민희가 휴지를 거의 다 써버린다. 나 같은 경우는, 운동의 원칙이나 사람사이에서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것들은 운동하는 선배들이 강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의 친소관계가 자기 정치조직의 입장, 이합집산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종탑 고공농성이 100일을 맞았는데도 입장 한 번 내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서 절망감을 느낀다. 아무리 대립이 극심하고,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역사 속에서 쌓아 왔던 운동의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종탑 고공농성 100일을 맞이해도 풀리지 않는 내부 문제를 보며 그래도 걱정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100일을 여기서 살아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느껴가는 것 같다. 고립 상태가 길어져도 생존 방법을 터득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안하셨으면 좋겠다. 많은 지지와 응원, 그리고 잘못 했을 때는 과감한 질책도 부탁드린다.

여민희 막상 올라와 보니 농성이 길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간에 내려가고 싶지는 않다. 재능투쟁이 승리하지 못한 채 내려가게 되면 너무 많이 억울할 것 같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감정적 호소가 아닌 ‘재능투쟁이 승리해야 한다’는 공감이다. ‘내부 문제가 시끄러워서 연대를 못하겠어’ 혹은 ‘거기 가면 종탑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여 안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가 된다. 

‘무엇 때문에 못 하겠다’라는 말 보다, 먼저 같이 해 나갔으면 좋겠다. 정파 때문에 싫다는 사람도 있고, 이도 싫고 저도 싫어 숨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핑계 대는 연대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투쟁을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새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끝까지 웃으며 함께 투쟁’이라는 말이 마음에 박히더라. 그 글을 보고 한 시간은 울었다. 어떤 문제든 상관없이 항상 와주시는 분들 때문에 버티고 있다.


윤지연 기자

2012년 10월 5일 금요일

“이대론 필패”? 조중동의 앓는 소리와 4·11 총선의 기억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05일자 기사 '“이대론 필패”? 조중동의 앓는 소리와 4·11 총선의 기억'을 퍼왔습니다.
[비평] 1년째 ‘박근혜 위기론’ 엄살, 야권은 후보단일화 구호만 난무

연일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당이 한 바탕 뒤 엎어질 기세고,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일부 보수언론들은 연일 새누리당을 향해 “이대로는 필패”라는 강력한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유승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4일 비공개의원총회에서 “이대로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선대위 재구성을 비롯해 박근혜 후보에게 전권을 백지위임해야 한다”며, 박 후보를 제외한 당 지도부와 선대위원, 당직자 등의 총사퇴를 촉구했다.
경향신문은 5일자 16면 (유승민 “대구선 친박들 썩었다고 한다, 그게 현실일 수 있다”) 제하 기사에서 이날 의총에서 발언한 의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에 따르면 이날 의총에서는 “부산도 매우 어렵다”(나성린), “2002년 보다 더 안좋은 분위기”(남경필), “쇄신이 없으면 필패”(윤상현) 등 다급한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5일 조선·중앙일보는 이 소식을 1면에 다뤘다. 동아일보는 이 문제를 사설로 지적했고, 조선일보는 4일 사설에서 민주당과 묶어 새누리당의 친박프레임에 강력한 비판을 가했다. 지난 4일 남경필 선대위 부의장의 “후보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말을 통해 새누리당 내 위기론을 전한데 이어, 연이틀 이를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 동아일보 10월 5일자. 4면.

물론 새누리당은 현 상태를 충분히 위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추석이 지났지만 여전히 여론조사 양자구도에서 박 후보가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텃밭 부산에서는 야권 후보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고, 총선에서 박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충청권에서도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때문에 의원총회에서 나온 비판의 목소리는 어느 정도 심각한 우려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5일 (세종시 약발 뚝…야성 회복…충청, 대선 흔든다)제하 기사에서 “한가위 민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강한 경고음을 보낸 곳은 뜻밖에도 충청지역”이라며 “대구·경북·강원과 함께 박 후보를 떠받쳐온 충청이 흔들리자 새누리당도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대선 캠프를 갈아 엎을 만큼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을까? 그렇지가 않다. 박근혜 후보는 몇 년째, 언제나 40~45%를 유지해왔다. 추석 이후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최하 40.7%(YTN 박근혜-안철수 양자대결), 최고 47.8%(국민일보 박근혜-문재인 양자대결)를 기록했다. 어림잡아 44%대 전후로 평균이 나온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4일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자신의 취약점인 젊은 세대, 자신의 강점인 여성을 동시에 감안한 듯 보인다. ©박근혜 캠프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는 야권후보들의 지지율 상승에서 기인한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위기론’이 번지고 있다. 잇따른 당 내 사건사고가 위기감을 키웠다고도 할 수 있었겠지만, 새누리당은 현영희, 현기환, 송영선 등 문제가 발생한 인물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내보내는 등 나름 성실하게 대응해왔다. 또 이것이 지지율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자당 후보의 지지율이 이렇게 견고하다면, 새누리당으로서는 자당 후보의 견고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야권 후보를 집중적으로 견제해 지지율을 낮추거나, 야권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는 정책·공약을 발표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과 언론들은 적극적으로 ‘위기론’에 부채질 하고 있다.

▲ 조선일보 10월 5일자. 1면.

그 의도가 궁금한 가운데, 당장 5일자 조선일보 1면 지면배치가 눈에 띈다. 1면 톱기사는 ‘간첩’기사다. 곧바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대북관 관련 기사가 나온다. 모두 보수진영 유권자들에게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가 바로 (새누리 “후보 빼곤 다 바꿔야”…박 “지금은 힘 모을 때”)다. 즉 1면의 흐름이 간첩→문재인 대북정책→새누리당 집권 위기 순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금 더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 이 상황이 묘하게 4·11총선과 닮았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도 새누리당에서는 연일 앓는 소리가 나왔다. 공식선거운동개시일 전날인 지난 3월 28일, 이혜훈 당 종합상황실장은 “수도권뿐만 아니라 ‘텃밭’인 부산·경남까지 야권의 도전이 상당히 강해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 조선일보 3월 29일자 4면.

당시에도 여론조사의 결과는 새누리당으로서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야권에서는 과반 이상을 자신했고, 새누리당은 공포에 떨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출범은 이러한 위기론의 결과물이다. 당은 명칭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이상돈·이준석 등 외부인사를 영입했다.
또한 현역의원 상당수를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물갈이를 이뤄냈다. 물론 이것은 대부분 친이계 숙청 형태였지만 위기론과 맞물려 그 모양새는 ‘당 쇄신’으로 결론 났다. 반면 새누리당의 위기론이 가중될수록 야권의 도취감은 커졌다. 공천, 선거연합을 통해 지역 나누기에 매진했다. 새누리당이 연일 ‘변화·개혁’을 외칠 때, 야권은 ‘단일화'와 ‘정권심판’ 외 아무것도 없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도 야권의 승리를 점치며 새누리당의 위기를 강조했다. 조선일보의 2월 8일자 4면 (지역구 불출마 선언 눈물 글썽인 박근혜) 기사는 새누리당의 위기와 쇄신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좋은 예다.
결론은 새누리당의 과반 이상 승리로 끝났다. 각종 악재가 있었지만 보수표는 결집했고 보수언론들은 ‘박근혜의 힘’(동아일보, 중앙일보), ‘새누리 대역전, 야권 패배’(조선일보)라며 그제야 새누리당의 위기론 공세를 끝냈다.

▲ 중앙일보 4월 12일자. 1면.

이번 대선에서 4·11 총선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이유다. 아울러 최근 연이어 터지고 있는 친박계 비리, 골프논란 등 각종 악재는 ‘친박 쇄신’이란 말에 가려지고 있다. 야권은 어떨까? 새누리당의 위기감이 커질수록 야권에서는 후보단일화의 목표의식이 희박해지거나 단일화만 하면 승리한다는 도취감에 들 수 있다. 서민과 노동자들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 대신, 경제민주화와 후보단일화의 구호만 난무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분명 위기다. 박근혜 대세론은 이미 무너졌다. 하지만 1년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현재의 여론조사 구도는 문재인 후보의 상승국면을 제외하면 1년 전부터 이어지던 구도다. 오히려 현재 3자 구도에서 박근혜 후보는 크게 앞서고 있고, 양자구도에서도 오차범위 내 접전이다. 여권이 위기라면, 야권도 위기다. 아직은 분명히 3자 구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누리당만 위기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정상근 기자 | dal@mediatoday.co.kr  

2012년 4월 22일 일요일

“해고는 살인”,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4-21일자 기사 '“해고는 살인”, 그것은 구호가 아니라 사실이었다'를 퍼왔습니다.
[현장]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대회…상복 입은 노동자에 쏟아진 최루액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공장으로 돌아가자.”
빗줄기가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21일 오후, 사람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이다. 2000여 명의 사람들은 울분에 차 있었다. 오후 2시부터 평택역 앞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희생자 범국민 추모대회'를 마친 이들은 빗줄기를 뚫고 공장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상복을 입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선두에서 행렬을 이끌었다. 상여와 22개의 운구행렬이 그 뒤를, 비옷을 입은 시민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오후 4시45분, 행렬이 공장 앞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경찰은 공장 앞을 굳게 막아섰다.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한 경찰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들을 맞이했다. 공장 안 옥상에는 사측 관계자로 보이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에 젖은 상복을 입은 쌍용자동차 노조 김정우 지부장이 맨 앞으로 나섰다.


▲ 평택역 앞에서 집회를 마친 2천여명의 행렬이 쌍용자동차 공장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허완 기자
▲ 한 노동자가 희생자들의 영정을 들고 공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허완 기자

“너희가 왜 우리를 막아! 너희가 뭔데! 너희 가족 친구가 스물두명이 죽었다고 생각해봐!”
조합원들은 공장을 막아선 경찰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시민들도 합세해 거친 충돌이 빚어졌다. 경찰은 “진정하라”거나 “이성을 찾으라”는 방송을 되풀이했다. “폭력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거나 “사법처리 하겠다”는 말도 했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절규하는 이들의 귀에는 경찰이 쏟아내는 단어들이 들어올 리 없었다.


▲ ⓒ허완 기자
▲ 사측 관계자들이 공장 옥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허완 기자

경찰은 곧장 최루액을 뿌려댔다. 최루액은 무차별적으로 뿌려졌다. 따가운 액체가 얼굴과 눈을 때렸다. 경찰 몇몇이 끌려나오기도 했다. 경찰은 “지금까지 하던 대로 평화롭게 집회를 해달라”고, 또 “경찰은 여러분의 적이 아니”라고 거듭 방송을 이어갔다. 대치는 30여분간 이어졌다. 이번에도 공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절규가 길바닥에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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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공장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천도제가 거행됐다. 무대 앞에 놓인 22개의 관 앞으로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섰다. 지금까지 집계된 것만 22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계종 총무원 소속 스님들은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법문을 읽어내려갔다. ‘나무아미타불’의 ‘아미타불’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 노동자도 자본가도 없는 세상을 뜻한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사람들은 말없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극락왕생을 한 마음으로 빌었다. 회색빛 하늘이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천도제가 진행되고 있다. ⓒ허완 기자
▲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천도제가 진행되고 있다. ⓒ허완 기자

이어 저녁 6시30분부터는 희생자 추모문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이 자리에는 민주통합당 문성근 당대표 권한대행과 통합진보당 심상정 공동대표도 참석할 예정이다.

허완 기자 | nina@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