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청·법무·검찰, 조직·질서가 무너졌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30일자 기사 '청·법무·검찰, 조직·질서가 무너졌다'를 퍼왔습니다.

ㆍ대통령·장관·총장·중수부장 서로 책임 미루고 치고받고

한국의 정부 조직이 무너졌다. 참모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검찰총장의 감찰 명령을 “수용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또 다른 대검 간부는 “중수부장의 비위 혐의를 언론에 브리핑하라”는 검찰총장의 지시에 반발했다. 검찰총장은 직속상관인 법무장관의 명령을 거슬렀다. 임기말 국정운영 능력을 상실한 대통령은 법무장관에게 사태 수습의 책임을 떠넘겼다. 청와대와 법무·검찰의 통제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붕괴된 것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29일 오후 최재경 중수부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와 지난 8~9일 10차례에 걸쳐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전문을 언론에 공개했다. 김 검사는 자신의 비리에 대한 언론의 취재망이 좁혀오자 최 부장에게 대응 요령을 조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앞서 권재진 법무장관은 “최 부장에 대한 감찰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언론에 브리핑하지 말라”는 직무명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한 총장이 권 장관의 지휘권 행사를 고의로 묵살한 것이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현관을 나서고 있는 한상대 검찰총장(왼쪽 사진). 29일 오전 출근하고 있는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오른쪽). | 정지윤 기자·연합뉴스

최 부장에 대한 감찰 책임을 맡고 있는 이준호 대검 감찰본부장은 “감찰 중인 사실을 외부에 공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한 총장에게 냈다. 그러나 한 총장은 이 본부장 대신 대검 대변인을 통해 내용 공개를 강행했다. 검찰이 감찰 내용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총장은 장관 지시를 어기고, 대검 간부는 총장 지시에 반발하는 전대미문의 명령 불복종 사건이 이어진 것이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권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현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 대통령은 “국민 걱정이 크니 권 장관을 중심으로 잘 수습하라”고 지시했다. 권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청와대와의 긴밀한 소통 속에 나온 것인데도 한 총장이 반기를 든 셈이다.

한 총장은 이날 하루 종일 조직 안에서 ‘하극상’을 당했다. 채동욱 대검 차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은 이날 오전 한 총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이에 한 총장은 30일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항명의 단초는 최재경 중수부장이 제공했다. 최 부장은 전날 자신에 대한 감찰 소식이 전해지자 “검사 수뢰 사건, 성추문 사건 이후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총장과) 의견 대립이 있었다. 그것이 감찰 조사로 나타났다”면서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검사는 총장을 치받고, 총장은 장관의 명령을 거역하는 항명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사이 검찰의 일상 업무는 마비됐다.

구교형·박영환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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