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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8일 월요일

그들은 곤란할 때마다 훨체어를 탄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5-27일자 기사 '그들은 곤란할 때마다 훨체어를 탄다'를 퍼왔습니다.
[정운현의 역사에세이36] 재벌총수·정계 거물들 감옥만 가면 중병, 왜?

▲ 'MB멘토'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구속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의 인허가 과정에서 수 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4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로 이감되고 있다. ⓒ 연합뉴스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사건'을 수사해 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18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은 불구속 기소했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며 현 정권의 실세로 군림해온 최 전 위원장은 감방생활을 하게 됐다.

검찰이 기소한 만큼 최 전 위원장은 조만간 정식재판에 회부될 것이며, 만약 유죄 판결이 나면 철창신세를 져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최 전 위원장은 감옥 대신 병원에서 수감생활을 대신할지도 모르겠다. 최 전 위원장은 지난 23일경 서울삼성병원에서 심혈관 수술을 받았다. 이날 최 전 위원장은 법원에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해놓고 그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구치소 밖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이는 이례적인 일이다.

최 전 위원장은 수술을 받은 후 장기간 병원생활을 할 가능성이 크며, 경우에 따라서는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병보석으로 풀려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그는 불과 20여 일간만 수감생활만 하게 되는 셈인데 이를 두고 그가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영포라인'의 좌장 격이자 '방통대군'으로 불리며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였던 그도 이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얼마 뒤 어쩌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두하는 그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이런 풍경은 그리 낯설지 않다. 과거에도 정·재계 인사들 가운데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앞두고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이들이 적지 않았다. 또 재판 중에 큰 수술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나거나 혹은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도 여럿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감옥에서 나오면 중병도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낫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거짓으로 엄살을 부렸다는 얘긴데 그런 예는 비단 근자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전에도 더러 있었다.

반민특위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해체된 지 50년이 된 지난 1999년, 필자는 반민특위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던 인사들을 인터뷰해 (삼인)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그때 만난 분들로는 반민특위 총무과장(현 사무총장) 이원용, 반민특위 특경대 부대장 이병창, 반민특위 출입기자 조덕송·오소백,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김정육, 그리고 반민특위 서기 임영환씨 등 모두 6명이다(* 이원용, 조덕송, 오소백씨는 작고함).

"경제계 사람들은 감옥 생활을 못 참아요"

▲ 임영환 씨 ⓒ 정운현
이들 가운데 반민특위에서 서기를 지낸 임영환(1924년생)씨의 연락처를 알아내기가 가장 쉽지 않았다. 직위가 낮다 보니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낮았기 때문인 셈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임 선생이 검찰 계통에 오래 종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다행히 연락이 닿았는데 당시 서소문 근처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과 달리 임 선생은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였다. 그 이유는 반민특위에서 별로 중요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또 별로 할 얘기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차례 사무실로 방문해 설득한 끝에 겨우 인터뷰를 허락받았는데 말문이 열리자 당시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술술 증언해 주셨다. 당시 임 선생은 총무과 산하 영장계에서 영장 업무를 담당하면서 피의자들의 신변 처리와 형무소 생활을 관찰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고 했다. 임 선생은 반민 피의자 가족들이 뇌물을 갖고 와서 청탁한 얘기, 형무소에 수감 중인 피의자들의 수형 자세, 특히 박흥식 등 경제계 출신 피의자들이 감옥생활을 못견뎌하더라는 얘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그 한 대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 피의자들의 수형생활 실태가 어땠습니까?
"소위 정치 분야 사람들은 수형태도가 단정합디다. 몸자세 등이."

-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최린씨라든지..."

- 그러면 다른 분야 사람들은요?
"그런데 경제계 사람들은... 박흥식씨라든지, 김금술씨라든지, 뭐라고 할까, (감옥생활을) 못 참아요. 노상 아프다, 배가 고프다, 원기가 없다, 뭐 이런 식이죠. (두 그룹이) 영 (수형태도가) 다릅디다. 그때 알았어요. 똑같이 나라 팔아먹고 친일을 했어도 그 사람하고 그 덕에 돈 번 사람하고는 사회 태도가 다르더군요. 확실히 알았어요. (경제 분야 피의자는) 옆에 가면 뭔가를 잔뜩 쌓아 놨어요."

- 무엇을요?
"그 뭐 사과, 계란..."

- 감방 안에 있으면서요?
"예"

- 박흥식씨 같은 사람 말입니까?
"예"

- 그런 걸 누가 (외부에서) 넣어 줄 수 있었습니까?
"그때 그런 거 제재 안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형무소 측 하고 얘기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그 때 먹는 것은 제재 안했습니다. 하여튼 건강해야 조사를 하지 않습니까? 뚜렷이 (두 그룹이) 양분이 됩디다. 돈 번 사람(경제 분야 반민 피의자)들은 잘 먹고 잘 살았으니까 오히려 건강이 괜찮았는데... 갑자기 거기(감방)에 넣어 놓으니까 신체에 변화가 온 것도 있었겠지요."   
  
- 엄살도 있었겠지요.
"내가 보기엔 엄살입니다. 동정을 바라더군요."
(* 참고로, 등장인물 가운데 최린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인이나 나중에 변절하여 중추원 참의와 총독부 기관지 사장 등을 지냈으며, 박흥식은 친일 기업인의 상징으로 화신백화점과 군수업체인 조선비행기공업(주) 사장을 지냈다. 또 김금술은 악질 모리배로 일제에 비행기 헌납을 한 친일파임)

지난 2007년 9월 12일자 영국의 경제지 (FT)는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칭병(稱病)'을 구실로 위기를 모면하는 한국 재벌의 행태와 이들에게 온정적인 한국의 사법제도를 비판하는 특집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FT는 이날 '한국 재벌총수들은 곤란할 때마다 휠체어를 탄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몸이 아픈 것을 핑계로 위기를 모면한 재벌들의 사례를 소개했는데, 우리로선 창피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재계 인사 가운데 휠체어를 사용한 대표적인 사람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다. FT에 소개된 사람들을 포함해 몇몇 유명 인사들이 휠체어를 '애용'(?)한 사연을 살펴보기로 한다.   

유명인사들의 휠체어 애용사례, 살펴보니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 1999년 2월 4일, 휠체어를 탄 정태수 전 한보그룹 명예회장이 한보 비리와 관련한 증언을 위해 국회 경제청문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국세청에 의해 숨겨둔 땅이 발각돼 압류조치를 당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소위 '한보비리사건'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이 사건은 1997년 1월 발생한 한보철강의 부도와 이에 관련된 권력형 금융부정 및 특혜 대출비리사건으로, 국회에서는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58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채택되었으며,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과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운영차장 김기섭 역시 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 증인으로 나오면서 정 전 회장은 흰색 마스크에 휠체어를 타고 출석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6년 2월 4일 밤 전용기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 그룹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2004년 말 MBC 이상호 기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안기부 X파일사건'은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특정후보에게 대선자금 불법지원 공모 및 검찰간부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던진 사건이다. 이 일로 는 사과 사설을, 삼성그룹은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였으며 당사자인 홍석현 당시 주미대사는 자진사퇴하였다. 또 헌정사상 최초로 국정원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전 국정원장인 신건, 임동원씨가 불법도청 공범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5년 이 사건이 한창 수사 중일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돌연 미국으로 건너가 이례적으로 5개월 동안이나 체류하였는데 귀국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공항에 나타났다. 당시 이 회장은 건강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 2006년 7월 10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속행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정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2006년 4월 28일 비자금 조성혐의로 구속 수감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구속 두 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당초 정 회장은 2007년 2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함께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신문기고 등의 사회봉사활동을 명령받았다. 검찰의 상고에 대해 대법원은 2008년 4월 집행유예 및 사회봉사명령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면서 금전 출연의 사회봉사명령은 허용될 수 없고 강연과 기고 부분도 취지가 분명치 않고 그 의미나 내용이 특정되지 않아 헌법이 보호하는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에 중대한 침해를 초래할 수 있어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정 회장 역시 재판 과정에서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등장해 여론의 따가운 비난을 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2007년 8월 14일 법원으로부터 병치료를 위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앰뷸런스에서 내린 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차남이 유흥주점에서 폭행당한 데 분노해 직원과 폭력배들을 동원해 '보복폭행'을 함 혐의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한 김 회장은 항소심 첫 공판에서 휠체어에 환자복을 입고 법정에 나왔다. 이날 변호인은 김 회장이 "심한 우울증과 충동 조절장애, 기관지염 등을 앓고 있으며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급격히 악화됐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2007년 9월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 회장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과도한 특권의식을 버리고 사회공동체 일원으로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자세로 땀을 통해 이 사건 범행을 속죄할 수 있도록 복지시설·단체에서 대민봉사 활동을 명한다"고 밝혔다.

[이선애 태광그룹 상무]

▲ 태광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가 2011년 1월 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온몸을 촘촘히 가린채 들것을 타고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태광그룹 비자금 의혹의 핵심인사로 지목돼 검찰 출두를 명받은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어머니인 이선애(84) 전 상무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두 번이나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다 강제소환 경고를 받고서야 2011년 1월 12일 서울 검찰에 출두했다. 이날 이 상무는 응급실 간이침대에 누운 채 검찰청사로 들어섰다. 준비한 휠체어는 타지 않았으나 흔히 병원에서 쓰는 하늘색 담요로 몸을 덮은 채 영락없은 환자 꼴이었다. 이씨의 이런 모습에 대해 검찰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그간 휠체어 환자 모습으로 검찰에 출석해 동정여론을 일으키려 했던 정·재계 인사들을 담은 스크랩을 언론에 배포했다. 이듬해 2월 1심에서 이씨는 84세 고령에도 징역 4년에 벌금 20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권노갑 전 의원]

▲ 의정부지검이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형집행정지 연장 신청을 불허키로 한 가운데 2006년 1월 13일 오후 권노갑 전 고문이 재수감되기 위해 치료를 받고 있던 서울 중구 삼성제일병원을 나서며 차량에 탑승해 있다. ⓒ 연합뉴스

동교동계의 좌장으로 불린 권노갑 전 의원은 수뢰혐의로 여러 차례에 걸쳐 감옥생활을 했다. 우선 1997년 2월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으로부터 2억5000만 원 수수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 선고 이듬해 8·15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2002년 5월엔 MCI코리아 대표 진승현 씨로부터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추징금 5000만 원 선고받고 복역 중 지병인 당뇨병 때문에 법원의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석방됐으며, 2003년 7월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2003년 8월 '현대 비자금' 200억 원을 수수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 및 추징금 200억 원을 선고받은 권 전 의원은 항소심에서 원심대로 징역 5년을 유지하고 국민주택채권 50억 원 몰수 및 추징금 150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날 그는 병보석 신청자가 입는 파란색 줄무늬 수의에 흰 수염을 기른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했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

▲ 구속집행정지로 병원치료중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04년 5월 17일 오후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안대와 마스크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대비자금 150억 원 수수혐의'로 대북송금사건을 다룬 송두환 특검팀에 의해 2003년 6월 구속된 박 의원은 2004년 11월 대법원이 현대로부터 150억 원을 수수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못하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2006년 5월 서울고등법원에서는 대북 불법송금과 대기업 자금 1억 원 수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2007년 2월 특별사면조치로 형집행이 면제되었고, 그해 12월 복권되었다. 2004년 대북송금사건 결심공판 때 마스크와 안대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두한 박 의원은 "하나 남은 눈마저 잃을지 모르니 구속집행 정지를 해 달라"고 재판부에 읍소했다.

 정운현 (jwh59)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스웨덴 거리에 넘쳐나는 휠체어와 유모차를 보고…


이글은 프레시안 2012-05-21일자 기사 '스웨덴 거리에 넘쳐나는 휠체어와 유모차를 보고…'를 퍼왔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회복지사, 복지국가를 꿈꾸다!

10여 년 전 일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도착한 후,지리도 익히고 필요한 물품도 챙길 겸 가장 번화하다는 곳으로 나갔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나로서는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가장 번잡하다는 곳에서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노인들, 유모차를 탄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아무런 거리낌이나 불편 없이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사회복지사라서, 한국에서는 접해 보지를 못해서, 그 모습이 나를 사로잡은 것일까? 사람이 사는 사회의 그저 평범한 풍경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스톡홀름에서 '생활 구역 차별이 없는 도시'를 만나다

나는 그 당시 우리나라 도시 중심부 한복판에서 그들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도 그들이 살고 있었을 텐데,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나는 당시 우리 사회를 다름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야만 그 안에서 안도할 수 있는 사회로 기억한다. 지금도 나는 복지에 관한 한 우리 사회를 이렇게 느낀다. 구역이 분리되어 노인과 아이의 영역이 다르고 부자와 가난한자의 자리가 다르며, 장애인이 사는 곳이 구분되는 사회, 대한민국에서는 '가치 있는 자'와 '가치 없는 자'가 따로 떨어져 산다.

나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스웨덴 사회의 사회통합을 말하려는 것일까, 우리사회의 부족함을 들추려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사회에 대해 갖는 희망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스웨덴과 같은 복지모델이 회자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들 한다. 내 자신도 스웨덴의 전통과 문화, 견고한 노동조합, 정치적 합의, 국가에 대한 신뢰 등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 놓은 복지국가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따라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복지국가는 그 나라의 것이라 부러워하기만 했다.


▲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 요구안'에 서명하는 장애인. ⓒ프레시안(김윤나영)

복지국가, 희망은 보았으나…

그러나 이제 희망을 본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란이 전국을 휩쓸었고, 4.11 총선에서도 각 정당들의 복지공약이 넘쳐나면서 복지이슈가 선거의 전면에 등장했다. 복지 문제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선거 이슈로 등장한 것은 전례가 없는 사건이다. 복지국가, 보편적 복지가 대한민국 화두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해 보았을까?

그러나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했던가? 선거 때만 되면 재래시장을 찾고, 상인들이나 지나가는 서민들과 악수와 포옹을 하며,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여 지원을 약속하는 이른바 정치권의 민생투어는 단지 표심을 잡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제자리로 돌아가는 정치권 인사들의 태도에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진정성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진정한 복지국가로 향해 가는 데 있어서 이념적 뿌리가 없이 선거 득표만을 위해 움직여온 한국 정치의 한계를 다시 본다.

우리는 왜 늘 그래 왔을까? 진정한 복지국가를 건설하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시장과 국가 사이의 선택을 둘러싼 치열한 이념적 논쟁을 거쳐야 하고, 자본이나 노동, 그리고 국민들 사이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생략되어 온 우리에게는 스웨덴을 닮은 보편적 복지국가는 이상형일 뿐이며, 이를 토대로 한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도 우리의 풍토에서는 반복지 포퓰리즘의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요즈음의 복지국가를 향한 불씨를 살리고 우리의 복지를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가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자면 정치인들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다. 시민운동으로서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복지운동이 필요하다. 우리의 복지문제에 관하여 정치권의 허풍 섞인 논리에서 벗어나 시민 스스로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근래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2008년 광화문 거리를 밝힌 촛불시위, 무상급식운동, 희망버스, SNS를 통한 선거참여 등이 그것이다.

나는 사회복지사이다. 시민의 복지운동을 활성화하는데,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의 윤리강령을 보면, 전문에 '사회복지사는 인본주의·평등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와 평등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사회제도 개선과 또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저들과 함께 일하며, 사회제도 개선과 관련된 제반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 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사회복지사가 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우리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사회복지사들은 복지수급자나 취약계층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서비스를 전달하기 때문에 우리의 사회복지정책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처음 듣고 아는 정책집행자이다. 사회복지사들은 그들에 대한 이해나 실천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정치권의 의사결정자와 그들 사이의 정보의 흐름을 연결함으로써 사회복지정책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 앞에 놓인 걸림돌

그러나 아직까지 사회복지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동안 왜 사회복지계가 사회복지 관련 정책이나 논의에 소극적이었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일상 업무의 분주함 속에서 정책에 관심을 둘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고, 수급자에 대한 즉각적인 원조의 필요성 때문에 시간을 요하는 정책에 대한 논의보다는 당장 눈 앞에 닥친 실천에 집중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사회복지사는전문가로서 실천에 대한 순수성을 지키고자 이념이나 정책으로부터 떨어져 있기를 원할 수도 있다. 사회복지사들의 정치 참여나 사회 행동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몇 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이직 및 소진(burn-out)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과중한 근무시간, 열악한 보수, 비정규직 지위, 낮은 직장만족도 등으로 인해 사회복지사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역할을 다하거나 특히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둘째, 사회복지 교육과정이나 실천현장에서 개인, 가족,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미시적 실천과 사회제도나 정책을 다루는 거시적 실천 사이의 연계가 부족하다. 실천현장에서의 개인과 가족에 대한 직접서비스는 사회개혁이나 사회정의에 관한 이슈로부터 벗어나 상담이나 치료에 집중하고 있으며, 사회복지 교육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하여 전공영역도 직접실천과 행정 및 정책영역으로 나뉘어져 서로 분리된 상태로 존재해 오고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들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강요되는 일종의 소명의식이다. 사회복지실천은 헌신과 봉사라는 전통적 관념 때문에 사회복지사들은 스스로의 열악한 처우나 근로조건을 감내해야 하며, 그들 스스로나 사회복지 대상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활동이 단기적으로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때문에 그들은 복지의 증진이나 개혁을 위한 정치적, 사회적 행동에 소극적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앞에서 최근 화두가 된 복지국가에 대한 논쟁에서 우리의 복지사회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우리의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회복지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 물론 현재 사회복지사들이 처하고 있는 불편한 여건들로 인하여 바람이 바람으로 끝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우리의 의식전환과 새로운 움직임을 다음과 같이 기대해 본다.

먼저 사회복지사들이 스스로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살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대변해야 하는 그들의 옹호자임을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들이 할 수 있는 옹호전략은 사회복지서비스에 있어서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문제를 공론화하고, 그것이 단순한 조건이 아닌 문제라는 것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정문제의 공론화를 위해서는 관련 단체나 집단과 제휴하며,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일반 시민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사회적 연계망(network)을 구축하는 일이다. 사회복지사들은 지역사회의 각종 복지기관이나 단체들에서 실천하고 있는 실천가들 사이의 결속에 힘쓰는 것은 물론이고, 풀뿌리 시민들,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긴밀한 연대를 모색하여 사회 저변으로부터 복지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또한 취약계층에 대한 권한부여(empowerment) 활동을 전개하여 그들의 사회적 권리의식을 고취시킴으로써 복지운동에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복지권운동으로서 복지수혜자집단, 시민운동가, 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전공 학생, 사회복지사협회 등의 참여와 지원으로 복지국가실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지역에서 '복지국가 사회복지연대'를 결성하였고 많은 사회복지사들이 복지국가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며, 이와 같은 지역단위의 결성체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교육현장이나 실천현장에서, 그리고 사회복지사들 스스로가 실천과 정책을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일이다. 정책이 어떻게 실천에 영향을 미치고, 실천이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인식하며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 길, 사회복지사가 개척하자

사회복지사가 배제된, 아니 스스로 참여하기를 포기한 복지국가 논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도 그러하다면 복지국가 바람은 이룰 수 없는 희망사항으로만 남지 않겠는가? 이제 사회복지사들이 나서야 한다. 복지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목소리를 낸다면, 대한민국 복지국가 논의가 풍성해 질 것이며, 복지국가 운동도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에게 길을 묻는 복지국가, 사회복지사들이 만들어가는 복지국가를 꿈꾼다.


 /이진희 대전사회복지사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