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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3일 일요일

‘담장’ 넘은 올드보이들


이글은 한겨레21 2013-02-04일자 제947호 기사 '‘담장’ 넘은 올드보이들'을 퍼왔습니다.
[특집2] 한화갑·한광옥·김경재 등 동교동 가신그룹의 드라마틱한 변신… ‘소외’와 인정 욕구 때문인가, 제자리 찾은 걸까

정치인에겐 정년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에 대한 욕망에는 끝이 없다. 노욕·변절·배신이라는 꼬리표보다 자신의 권한·입지·존재가 망각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일까. 대의명분과 가치보다는 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옷을 바꿔입고, 진영을 넘나든다. 사회의 다른 분야보다 정치권에서 존경받을 만한 원로를 찾아보기 더욱 어려운 까닭이다.

» 한광옥·김경재·한화갑(왼쪽부터) 등 동교동의 가신들은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을 지원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배신자’라는 낙인보다 컸던 것일까. 한겨레 신소영 기자, 사진공동취재단

통합은커녕 되레 분열 낳는 언사 남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신은 한화갑(74)·한광옥(71)·김경재(71) 등 동교동 가신그룹이 보여줬다. 평생의 주군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에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욕은커녕 슬그머니 담장을 넘어가 상대 진영 쪽에 줄을 섰다. 박근혜 당선인이 이들의 영입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 명분은 ‘국민 통합’과 ‘동서 화합’이었다. 하지만 대선을 경과하는 동안, 그리고 이후에도 이들은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는 언사로 논란을 몰고 다녔다.
물론 최악은 단연 김경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수석부위원장의 몫이다. 그는 “광주 사람들이 문재인, 안철수를 뽑는 건 민주의 역적이고 정의에 대한 배반”이라는 등 각종 막말로 파문을 불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해 “노아무개는 싸가지 없는 발언이나 하고 호남 사람들을 한 맺히게 했다”는 말까지 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48%도 중요하지만 우선 51%를 대변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등 통합과 거리가 먼 그의 독설은 대선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박근혜 당선인이 부산 유치를 공약한 해양수산부를 호남에 유치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두고 박 당선인의 박선규 대변인이 “그건 김씨의 사견일 뿐”이라고 공식 부인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한때 ‘리틀 DJ’라고까지 불렸던 한화갑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권노갑 상임고문과 함께 동교동의 ‘양갑’으로 통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선 권 고문의 그늘에 가린 ‘을’의 처지였다. 한 전 고문이 2001년 11월20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나는 민주당에서 정통성, 정체성, 연속성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라고 애써 강조한 건 다분히 권 고문을 의식한 발언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교동의 전반적인 기류는 한 전 고문의 출마를 만류하는 쪽이었다.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는 결국 출마했고, 제주도에서 열린 민주당의 첫 대선 후보 순회 경선에서 1위를 기록하지만 광주에선 3위에 그쳐 후보직을 사퇴했다. 한 전 고문은 이 과정에 자신의 동지였던 동교동 그룹, 정확히는 권노갑 고문이 반대 쪽으로 막후에서 움직였다고 믿는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제주도에서 1위를 한 것이 나에게는 마이너스였다”며 “동교동은 내가 아니라 이인제를 밀었고, 거꾸로 광주에선 우리 세력이 나를 조졌다”고 주장했다.

그들 역시 지나가버린 과거의 유물

어쩌면 이들의 ‘변절’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열쇳말은 ‘소외’인지 모른다. 여야 정치권이 갖는 일종의 문화적 차이도 작용했을까. 새누리당에선 대선 전 이른바 ‘7인회’의 존재가 주목받은 적이 있다. 실질적인 영향력의 크기를 두고는 여권 내에서도 관측이 엇갈리지만 어쨌든 강창희 국회의장,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김용갑 전 의원,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부총재, 현경대 전 의원 등 보수 원로그룹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크고 작은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강창희 의장을 제외하면 모두 정치의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인물들이다.
반면 과거 동교동의 ‘올드보이’들은 주군과 함께 군사정권의 폭압을 견디며 김대중 정부의 탄생에 기여했지만, 영광은 한순간이었다. 그들 역시 지나가버린 과거의 유물로 간주된 탓이다. 노무현 정부와 불화했고,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구태정치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동교동 가신그룹이나 옛 민주계 인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3김 시대의 종언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사실상 소멸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화갑 전 고문은 평화민주당을, DJP 연합 탄생의 주역이던 한광옥 전 고문은 정통민주당을 각각 창당하는 등 이들은 이미 낡아버린 깃발을, 그것도 거꾸로 잡은 채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걸 거부했다. 이번 대선에선 그마저도 던져버린 채 ‘박근혜 대통령’의 깃발 아래 섰다. 이런 이들을 바라보는 동교동의 옛 동지들은 참담한 심경을 숨기지 않는다. 한 전 고문의 오랜 친구인 김옥두 상임고문은 공개 편지를 통해 “나중에 우리가 저 세상에서 무슨 낯으로 대통령님을 뵙겠는가? 정녕 발길을 돌릴 수 없다면, 최소한 언제 어디서든 부디 더 이상 우리 대통령님을 거론하지는 말아주게”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권위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 때문인지 원로그룹을 대하는 야권 의 정치문화는 여권의 그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 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일신의 안위 때문에 진영을 옮겨간 것뿐 이고 이념적으로 봐도 진보적이라거나 개혁적이라기보다 보수 에 더 가깝다. 김대중이라는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지자 자기 자 리를 찾아간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이념적으로 진보개혁보다 보수

여전히 가능해 보이지는 않지만, 다시 한번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결국 이들을 움직였다. 한 전 고문은 대선 이후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문재인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나를 팽시켜서 내 정치 생명을 빼앗았다”고 했다. 결국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권위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 때문인지 원로그룹을 대하는 야권의 정치문화는 여권의 그것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결국 이들은 일신의 안위 때문에 진영을 옮겨간 것뿐이고 이념적으로 봐도 진보적이라거나 개혁적이라기보다 보수에 더 가깝다. 김대중이라는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지자 자기 자리를 찾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2013년 1월 2일 수요일

홍어 먹던 한화갑,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101일자 기사 '홍어 먹던 한화갑,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를 퍼왔습니다.
[주장] 호남을 후벼파고 있는 '김대중 아이들', 한화갑·한광옥·김경재

광주 촌놈인 내가 (오마이뉴스) 인턴기자로 활동했던 2012년 1월. 서울 망원역 근처의 한 홍어집에서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술이 약간 들어간 그는 내가 앉아 있던 (오마이뉴스) 기자 무리에게 격려차(?) 인사말을 전하고 식당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한 선배가 "이놈이 광주놈입니다"라고 내 출신 성분을 알렸다.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잘 해야제"라고 전라도 억양이 짙게 배인 말을 건넸다. 일선에서 물러난 '옛사람'이었지만 정치 원로이자 '리틀 DJ'인 그의 한 마디에 나는 막걸리 몇 잔의 취기가 더해져 알 수 없는 떨림을 느꼈다. 머리로는 어떻게 자제가 안 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전라도 DNA'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정치 일선에 등장했다. 이번 18대 대통령선거에서 그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 기자들이 그의 말을 일일이 받아 적기 시작했다. 이후 박 후보는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급기야 그는 선거가 끝난 지난 26일 (평화방송)에 출연해 "전라도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다 보니까 타성이 생겨서 그 탄력을 벗어나지 못했다"라며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썼을 때… 지금 생각하면 (그 정책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전라도민들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말하자면 춘향이처럼 변하지 않는 그런 게 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의 호남 득표율이 낮은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었다.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째야 쓰까'의 '짠한' 정서

▲ 한화갑 전 평화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국의 미래와 지도자의 역할' 특강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 권우성

지난 해 12월 19일 오후 6시 언저리의 광주 광천동 종합버스터미널. 18대 대통령선거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 광주의 현장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대형 TV 부근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박근혜 후보가 이긴다고 나올 경우,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이긴다고 나올 경우, 이렇게 두 가지 경우에 대비해 각각의 반응을 어림짐작하고 있었다. 야권 성향이 짙은 광주였기에 '박 후보 우세'가 타전될 경우 내가 예상한 시나리오는 '현실 부정'에서부터 '욕설 난무' 정도였다. 

출구조사 결과, 박 후보의 승리(박근혜 50.1%, 문재인 48.9%)가 점쳐졌다. 현장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조용했다. 그러나 찬물이 끼얹어진 분위기는 아니었다. 분노로, 아쉬움으로, 섭섭함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 아무 말 없이 오갔다. 예상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어디서 누구 하나가 '에라이, XX'라고 욕이라도 해주길 기다렸다. 그때 적막을 깨는 한 아주머니의 음성이 작게 터져 나왔다.

"워매… 워매… 어째야 쓰까."

'짠한' 감정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던 그 '어째야 쓰까'에 담긴 짠한 정서는 아마 자신이 지지한 후보는 물론,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이, 그리고 함께 그 후보를 지지한 모든 이를 향해 있었을 게다. 그리고 상상하건대, 32년 전 5월, 금남로의 전남도청·전남대·조선대·광주역·양동시장 그리고 이름 모를 골목 곳곳이 그 '어째야 쓰까'로 가득 찼으리라.

12월 19일 밤이 깊어 갈수록, 대한민국은 유권자 절반의 가슴이 허해졌지만, 광주는 32년 전 그날처럼 대부분의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32년 전 그 동네, '지역감정'이란 말로 표현 못해

▲ 18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19일 오후 6시 경 광주 광천동 종합버스터미널. 오후 5시 59분(왼쪽 사진의 왼쪽 상단) 방송 3사 출구조사가 나오기 직전 기대하고 있는 시민들의 표정과 오후 6시(오른쪽 사진의 왼쪽 상단)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후의 시민들의 표정이 상반된다. ⓒ 소중한

대선 후 '멘붕(멘탈 붕괴)'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 지인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중년 남성의 '어제(19일) 잠 못 주무셨지요?'라는 인사말에 감정이 풀려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고 고백했다. 내 또래의 대학생도, 나이 지긋한 교수도 각자의 입에서 '멘붕'이란 단어를 꺼냈다. 금남로 복판을 지나며 내 눈에 들어온 모든 이들이 쓸쓸해 보일 만했다. 

하지만 더 큰 멘붕은 당선인 확정 이후 인터넷과 SNS를 통해 도래했다. 92%의 표가 한 후보에 던져진 광주를 '지역 감정'이란 개념어가 둘러싸기 시작했다. 한화갑 전 대표가 "전라도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다 보니까 타성이 생겨서 그 탄력을 벗어나지 못했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급기야 5·18민중항쟁을 향한 음모론이 성행하기에 이르렀다. '폭동'이나 '북한 간첩의 침투' 같은 풍문은 사실처럼 퍼져 나갔다. 호남을 향한 평가 절하는 많은 호남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이런 아픔을 겪고 있는 동네를 향해 한 전 대표는 "쇄국정책마냥 어리석다"고 평했다. 28일 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전라도 사람은) 변화를 싫어한다"며 "앞으로 전라도 사람은 생각하는 유권자가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에 광주는 92%의 유권자가 한 후보를 지지했다. 전남은 89.3%, 전북은 86.2%의 유권자가 역시 같은 선택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을 향해서는 광주·전남·전북 각각 7.8%·10%·13.2%의 표심이 전해졌다. 박 당선인 입장에서는 한 전 대표를 포함해 한광옥·김경재 같은 인물을 얻지 못하고도 광주·전남·전북 각각 12%·12.8%·12.6%의 표를 얻은 지난 17대 대선의 보수 진영보다 못한 셈이다.

한 전 대표가 말한 대로라면 "전라도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데 왜 '리틀 DJ'를 '조금도' 따라가지 않았을까. 이것이 단순히 "변화를 싫어해서"라는 이유로, "타성에 젖"은 '지역감정'을 이유로 설명될 수 있는 걸까. 

32년 전 5월, 현장 곳곳에서 피를 흘린 이가 살았던 동네가 바로 광주다. 그 주변에서 "어째야 쓰까"를 외쳐본 사람이 사는 동네고, 하다못해 저 멀리서 '어째야 쓰까'라고 생각이라도 해 본 사람이 사는 동네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사는 동네다. 그 복잡한 '짠한' 감정을 지닌 동네가 '지역감정'이란 네 글자로 깔끔히 정제될 리 없다. 한 전 대표가 평가 절하했듯, "생각하는 유권자가 돼라"는 충고를 들을 만큼 생각 없는 동네는 더욱 아니다.

'어째야 쓰까'는 그들이 더 잘 알 것

▲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이 김경재 기획조정특보,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50.1%,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48.9%로 앞서자,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한광옥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경재 전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은 이번 대선에서 한화갑 전 대표과 같은 행보를 택했다. 그리고 김 전 비서실장과 김 전 특보는 각각 박 당선인 인수위의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행여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자리 때문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한화갑 전 대표 역시 국민의 48%를 '종북주의자'로 몰아갔던 윤창중 수석대변인 인사 조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생각의 변화와 사상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김대중의 아이들'이 노무현 정권에서 겪은 설움 또한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한화갑이어서, 한광옥이어서, 김경재이어서 문제다. 그들이 유신과 싸웠고, 김대중을 지탱했으며, 호남을 대변하는 대표였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또한 노무현 정권의 설움은 호남 사람들도 그 셋 못지않게 겪었다. 

셋 다 호남을 위해 박 당선인을 택했다지만 "널 위해 내가 떠난다"고 이별 통보하는 애인마냥 그들은 호남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김경재 수석부위원장의 '해양수산부 호남 유치' 발언이 호남 민심의 실소를 유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호남 사람인 그 셋도 '어째야 쓰까'에 담긴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 안에 담긴 짠한 정서와 '어찌해야 할지'를 구상하는 미래지향적 사고를 말이다. 대선 직후 호남의 뻥 뚫린 가슴을 그들은 메워주진 못할망정, 더 뚫어 놓는 행보를 보였다. '어째야 쓸지', 즉 '어찌해야 할지'는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그 망원역 근처의 홍어집, 이젠 못 갈 것 같다. 어째야 쓰까.

덧붙이는 글 | 소중한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소중한(extremes88)

2012년 12월 8일 토요일

DJ계 '행동하는 양심', "박근혜 지지한 한화갑은 변절자"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07일자 기사 'DJ계 '행동하는 양심', "박근혜 지지한 한화갑은 변절자"'를 퍼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를 계승하는 모임인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이 7일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등의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지지를 “일부 인사들의 변절이다”라고 비판했다.

행동하는 양심(이사장 이해동 목사)은 이날 서울 민주통합당 영등포 당사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며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 세력이 총결집해야 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유지에 반해 과거 함께했던 일부 인사들이 변절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전날 ‘리틀 DJ(김대중 전 대통령)’로 불렸던 한화갑 전 대표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외에도 최근 ‘동교동계’로 대표되는 김 전 대통령 측 인사들 중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 등도 박 후보 캠프에 발을 들였다.

부이사장을 맡고 있는 설훈 의원은 “일부 동계동계 인사들이 마치 변절한 것 자체를 변명하듯 (말하는) 행태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며 “김 전 대통령이 하신 말씀 중에 2012년에 정권교체 꼭 이루라는 말씀이 중요한 유언이었는데도 그 뜻을 저버리고 박 후보를 지지하는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해 우리는 그 자체가 변절이라는 것을 확실히 지적한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동교동계 등 김대중 지지자층의 이탈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해동 목사는 “김 전 대통령께서는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할 경우 유신세력, 전두환세력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것이라 경고하신 바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의 남기신 고귀한 뜻을 받들어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는 문재인·안철수 두 분이 함께 손잡고 정권교체를 향해 힘찬 첫걸음을 내딛는 이 시점에서 모든 민주개혁진보세력이 문 후보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