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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4일 목요일

민영화와 경쟁체제가 한국 철도의 미래일 수 없다


이글은 레디앙 2013-03-13일자 기사 '민영화와 경쟁체제가 한국 철도의 미래일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제3의 길은 없다 - 제2공사 추진은 우회적 민영화

3월 11일 새 정부의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이제 철도 정책은 박근혜정부의 몫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였던 지난 한 해는 수서발 KTX 민영화를 둘러싼 문제로 많은 사회적 갈등을 빚었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그동안 추진됐던 철도 정책이 갖는 문제가 무엇인지 심도 있게 분석하고 철도가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 임명된 서승환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청문회 과정에서 밝힌 내용과 이에 따른 언론의 보도내용을 보면 정부가 미래지향적 철도 발전 전망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인사 청문회에서의 KTX 민영화 관련 답변에서 민영화 추진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동안 철도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새 정부의 입장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어서 덧붙인 현재의 체제도 문제가 있는 만큼 제3의 길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철도 정책이 변하지 않았다는 우려를 주기에 충분하다.

철도 경쟁체제의 도입….이게 박근혜 정부의 정책?

일부 언론은 벌써 제2의 철도공사를 통한 경쟁체제 도입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장관이 밝힌 방침은 이명박정부에서 추진했던 철도정책의 연장선에 서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체제란 철도공사가 철도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철도의 부실이 경쟁의 부재에 있다는 진단에서 시작하는 논리다. 지난 십 수 년 간 철도개혁이란 이름아래 민영화를 추진해왔던 세력들이 일관되게 유지했던 입장이다.
한국철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일은 정부 정책부서에서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잣대가 협소하거나 한국철도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는 철도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아전인수식 진단과 대안으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기까지 했다.
지난 시기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수서발 KTX 민간경쟁체제 도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이 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의 문제로서의 민영화 문제이다. 아무리 시장만능주의가 대세라고 해도 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공공부문 갖는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사회기반시설인 철도의 공공적 유지는 시장경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서도 또 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시민 친화적인 보편적 복지로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이런 사회적 자산을 일부 재벌과 그들에 투자한 외국 투기자본의 몫으로 넘기는 것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반사회적 정책이다.
다른 하나는 철도산업의 진정한 발전 전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철도의 경영부실이 경쟁의 부재로 인해 발생했다는 잘못된 판단에서 시작하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에서 일관되게 주장한 “경쟁만이 살길이다”는 것은 그동안 누적돼온 정부의 정책오류까지 교묘하게 철도운영기관에게 떠넘기고 있다.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교통시스템은 사회의 변화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00년대 하루에 340여 편에 달했던 영국 각지로 떠나는 런던 발 우편마차는 철도의 등장으로 소멸해 버린다. 영국 주요 도시의 운하를 이용한 화물 운송도 철도에 밀려 사라졌다. 세계 각국에서 철도가 등장한 이래 철도는 부설된 나라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고 절대적인 수송 분담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등장과 도로교통의 발달은 철도를 한물간 교통수단으로 전락시켰고 나라 전체에 깔린 선로와 역사를 갖고 있는 이 거대한 사회적 장치는 돈 먹는 하마가 되어버렸다.
전 세계적 흐름이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경쟁을 안 해서 철도가 부실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철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도로 중심으로 교통체제가 전환되는 시점에서는 철도에 경쟁에 경쟁을 더해도 더 큰 손실만 양산할 뿐이다.
사양산업으로 몰려 애물단지가 되는 듯 했던 철도를 기적적으로 환생시킨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철도를 몰락시켰던 도로교통이다.

도로교통의 대안으로 철도교통이 재부상한 것

한 때 선진사회의 상징이었던 도로를 꽉 메운 자동차들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로 변했고 그 대안으로 철도를 소환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도로교통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투자해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높이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KTX가 개통되면서 국내선 항공편이 부진을 면치 못한 이유는 항공사들이 경쟁을 치열하게 하지 않았거나 갑자기 경영이 부실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알 수 있다.
국토교통부의 입장을 보도하는 언론에 따르면 수서발 KTX를 제2공사에게 맡기는 것은 한국 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예나 서울지하철의 서울 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와 같은 경쟁체제를 말한다고 한다.
이것이 제3의 길이라면 꽉 막힌 길이다. 네트워크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거점형으로 운영되는 공항시스템을 철도와 비교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논리가 얼마나 빈약한지를 증명할 뿐이다.
과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는 개혁의 대안으로 통합을 선택했다. 유사기능과 중복기능의 비효율을 통합을 통해서 극복하겠다는게 그 이유다.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는 유사기능과 중복기능이 아니라 동일기능이다. 똑같이 서울에서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이다. 굳이 분할하지 않아도 되고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견해도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기된다.
서울의 지하철이 분리되었던 이유는 경제논리가 아니었다. 정치논리와 노조무력화의 한 방편으로 시도된 것으로 당시 강성노조로 이름을 떨쳤던 서울지하철공사노조에 대한 견제책이었다.
더구나 이 두 기관은 경쟁하지 않는다. 요금도 동일하고 서비스 수준도 비슷하며 무엇보다 각 노선은 독자성을 갖고 있어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수유리에서 과천을 가는 시민은 서울 메트로의 4호선을 타야하고 천호동에서 김포공항을 가는 승객은 도시철도공사의 5호선을 타야한다. 경쟁의 전제인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례를 경쟁사례라고 소개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현재 서울지하철의 발전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두 서울지하철 운영기관의 통합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두 기관으로 나뉘어진 고위 경영진들의 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비용이 절감되고 현장인력 중심의 운영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2기 지하철인 도시철도 공사의 경우 깊은 지하 심도만을 운행하는 노선이 많아 기관사들이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양기관의 통합을 통해 순환 근무 시스템을 만든다면 일정부문 해소 될 수 있는 문제다.
제2공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운영을 맡겨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이루겠다는 국토교통부의 입장은 민간경쟁체제에서 앞의 두 글자만 지운 것으로 기본적으로 수서발 KTX가 갖는 여러 가지 특혜의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경쟁의 최소한의 전제는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전국의 철도 운영을 책임지는 철도공사와 수익성이 보장된 고속철도만 운영하는 제2공사는 애초에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 철도에서 진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똑같은 노선을 하나 더 건설해 두 운영기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인데 천문학적인 철도 건설비용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제2공사가 철도공사와 공정한 경쟁을 하려면 현재 철도 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일반철도의 적자 노선을 똑같이 나누어 운영하거나 적자선만 운영하는 또 다른 공사를 만들어야한다. 철도 네트워크의 특성을 교란시키는 이런 체제가 효율적인 것인가?
제2공사 추진은 국토교통부가 그동안 민간경쟁체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비판한 비효율적인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도로공사를 효율화 시키겠다며 똑같은 기능을 하는 도로공사 하나를 더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추진과정과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은 중복투자에 따른 예산낭비, 기관간의 갈등과 책임 떠넘기기 등 무엇 하나 국민들에게 이로울 게 없는 구조다.

수도권집중 여객을 분산시켜야, 철도의 편의성이 증대

정부는 수서발 KTX 노선이 왜 계획되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되새겨 봐야한다. 한국철도의 비효율을 가중시킨 이유 중의 하나는 수도권 중심의 철도네트워크 때문이다.
KTX 수익의 80%, 수송량의 70%가 수도권 이용객이다. 일본의 여러 고속철도 노선 중의 하나인 도카이도 신간센 노선만 해도 도쿄-나고야-오사카라는 거점 대도시를 운행하면서 각각의 도시들이 품고 있는 일반철도 노선의 이용객들을 흡수하고 있다. 하루 이용객만 해도 40만명이 넘어 한국 고속철도 전체 이용객의 4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독일의 베를린-프랑크프르트 노선이나 이와 유사한 유럽의 도시 간 고속노선도 적절하게 이용객이 분산되어 있다.

일본 신칸센의 자료사진

그러나 한국철도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서울-금천구간의 고속선과 일반선이 만나는 지점의 선로 포화상태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병목구간으로 인해 늘어나는 고속열차의 승객을 감당할 수 없어 통로마다 입석으로 가득 찬 KTX가 달린다.
일반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도 대폭 줄어든 일반열차의 운행편수가 불만이다. 또 수도권으로부터 연결되어야 탑승률이 높아지는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의 비수익노선도 선로용량 한계로 열차편수를 늘일 수 없고 이것은 열차이용의 편의성을 떨어뜨려 열차이용을 외면 하게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을 찾다가 최종 선택된 방안이 수서-평택간 고속철도 노선을 신설해 체증구간을 우회하여 철도의 선로용량을 대폭 확대하는 안이었다. 서울 동남부와 수도권 동부 지역의 철도이용을 확대하고 서울역으로 집중된 승객을 분산하게 되면 한국철도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열차좌석공급부족이 상당히 해소되기 때문이다.
결국 수서-평택 노선은 한국의 사회적, 역사적 특성 때문에 기형적으로 발달한 한국철도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고 철도네트워크의 자기 완결성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수서-평택간 노선으로 선로용량의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답보상태에 빠졌던 일반철도노선의 준고속화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시속140km가 최고인 서울-대전 구간의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의 일반열차 운행시간은 1시간 55분 정도 걸리는데 이것을 시속 180km~200km 정도로 올리면 1시간 20분 내외로 운행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KTX 보다는 느리지만 150~200km 이내의 중단거리 노선은 일반열차를 이용해도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KTX의 좌석보유율을 높여 쾌적한 장거리 여행을 보장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소득과 운임수준이 아니라 기능과 용도에 따른 선택 보장해야
한국철도가 낙후된 일반철도와 고급형 고속철도로 분리되고 소득수준에 따른 차별적 열차선택이 아니라 열차의 기능과 용도에 따른 철도 선진국형 이용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시점이다.
철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재와 정부의 도로중심 교통정책, 선로용량의 한계로 인한 열차운용의 탄력성을 발휘할 수 없는 문제를 극복하고 이제야 철도운영의 본모습을 찾을 수 있는 단계에 와있다. 식민지 철도로 시작한 한국철도가 비로소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경쟁체제를 통한 효율화를 명분으로 제2철도공사를 추진하는 것은 한국철도의 앞길에 쐐기를 박는 일이다. 철도공사와 제2철도공사의 경쟁구도는 수익성 높은 고속선을 독점한 제2공사와 철도공사의 무리한 경쟁만을 촉발하게 된다. 철도공사는 현재처럼 고속철도 운영위주의 편성으로 일반열차와 고속열차의 동반성장은 요원하게 된다.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한국철도의 노선을 제2공사체제로 나누기에는 너무도 협소한 규모라는 사실이다. 철도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네트워크의 유기적 완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4-5천 키로미터의 운영노선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3500여 키로미터의 영업거리를 가지고 있는 한국철도를 경쟁을 빌미로 잘게 쪼개는 것은 국가의 장기적 발전전망에 비추어 보아도 부적절하다.
특히 제2공사가 문제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가 밝히고 있는 미래 철도 정책에 따른 신설 노선들에서 광범위한 민영화를 도입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5년간 철도에 투자될 예산은 22조원이 투입되었다는 4대강 예산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대비한 강원권 노선을 비롯한 많은 철도노선도 신설될 계획인데 이 노선들에 대한 민간투자사업 도입이나 운영권 임대를 통한 민영화는 진작부터 고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권시절 무리하게 추진하다 제동이 걸린 관제권에 대한 회수 시도도 제2공사가 설립되면 공정경쟁을 이유로 손쉽게 성사시킬 수 있다.
지금 한국철도에 필요한 것은 잘못된 진단을 근거로 한 경쟁체제의 도입이 아니라 철도 네트워크가 철도 안에서 그리고 다른 교통수단과의 조화를 통해 우리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제2공사로 얻는 이익은 국토교통부의 산하기관이 늘어 몸집을 불리는 것 외에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새로 채워 내야할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감사자리 등 고위 관료들의 퇴직 후 일자리 창출이나 정치인들의 영전자리가 늘어나는 것을 바라는 국민은 없다.
박근혜 정부는 무엇보다 국민과의 소통을 중요시 하고 사회의 여러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대통령의 뜻이 제대로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도 부처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 여론을 비롯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데 힘을 기울여 줄 것을 기대한다.

By 박흥수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한국 철도의 운명, 외국 자본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12일자 기사 '한국 철도의 운명, 외국 자본 손아귀에 들어간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대륙철도의 꿈을 파탄 낸 MB정권의 과오

막연한 꿈이 아니다. 70년 전만 해도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만주를 넘어 베이징으로,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 승객들이 출발시간을 기다리면서 김 서린 찻잔을 기울이던 서울역이다. 1936년 식민지 민중의심장을 고동치게 했던 청년 손기정이 서울역에서 베를린 행 열차를 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잊었다.

부산을 출발한 특급열차 '히까리'를 탄 후 신징까지 가서, 독립투사 안중근이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까지 703열차를 타고 도착하면 유럽행 국제열차인 701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베를린까지 가는 3등석 열차 요금은 당시 돈 350엔으로 뱃삯의 1/3에 불과했다. 일본제국주의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건설된 한국 철도는 선로 마디마디, 침목 하나하나에 조선 백성들의 피와 땀이 스며 있는 한의 쇳길이었다. 열차 이름도 일본어였고 운영자도 물론 일본이었다. 이 회한의 철길로 나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3등실 객차에 몸을 구부린 채 일본 헌병의 눈을 피해 망국의 한을 삼키며 달렸다.

독립은 이뤘으되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 남과 북이 분단되고 참혹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일본이 물러간 후 비로소 철도는 우리 손으로 움직이게 됐지만 이번에는 갈라진 부모형제들의 찢어지는 가슴들을 안고 달려야 했다.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의 깊은 골짜기에는 이 땅의 백성들과 울고 웃으며 고락을 함께한 역사의 동반자로 철도가 있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눈부신 경제발전은 철도가 자동차 경적소리에 밀려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찬란한 경제발전의 빛에 가렸던 그늘이 드러나자 철도는 이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국토 파괴, 교통 혼잡비용,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철도가 국가의 중심 교통수단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공존의 길을 여는 대륙철도 연결


한국 철도는 더디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갔다.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철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무엇보다 남북의 대결을 끝낼 수 있는 현실적 수단으로 기적을 높이 울렸다. 남북 철도 연결이 확정되고 제일 먼저 철도 연결 부지의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됐다. 수천 개의 눈 없는 살인무기 지뢰가 제거되고 군부대도 이전했다. 살벌하게 서로 노리던 철조망은 평화와 소통의 새 길로 열렸다. 두 줄 선로가 남과 북을 단단하게 이었다. 철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남과 북이 소통하자 주변 나라들도 움직였다. 러시아는 남북과 함께 북한 철도 개량 사업으로 시베리아 철도 연결 사업에 나서겠다고 하고, 한국에 차관으로 갚아야 할 돈으로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중국횡단철도에 남북의 철도를 연결시키겠다고 했다. 당사국 철도관계자들이 만나 회담을 하고 협력을 다짐했다. 남과 북의 평화공존은 주변국을 대립에서 상호협력으로 견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부산역이나 서울역에서 파리 행 기차표를 들고 열차에 오르는 일도 불가능한 꿈은 아니게 되었다.

남북 철도 연결, 그리고 중국-러시아의 대륙철도와 연결하는 것은 수십 년간 고립되었던 한국이 새로운 기지개를 펴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히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보장하는 튼튼한 쇠줄로 작용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철도는 그 특성상 인접국 간 호환이 되지 않으면 운행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특히 낙후한 북한 철도 개량 사업을 진행하고, 만주를 넘어 중국으로 향하는 노선 및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러시아, 남과 북의 상호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고 이것은 당사국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북한 철도 개량에 한국 철도와 관련 기업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신호 체계 개선, 선로 개량, 기관차 및 객차 보급 등 협소한 남쪽의 철도망에서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고 철도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출발점으로서도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철도가 그동안 지속된 반목과 오해를 불식시키는 기관차가 됨은 물론이고, 식민지 철도로 시작된 한국 철도의 한이 비로소 풀리는 새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대운하를 꿈꾸던 정권은 이 땅의혈관인 강을 파기 시작했다. 무려 22조 원에 이르는 건설비에, 앞으로 들어갈 유지비용이 얼마가 될지 상상할 수도 없다. 4대강 사업비의 1/3만 들여도 한국 철도가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하지만 토건재벌의 배를 불리는 사업의 중요성에 비하면 철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강바닥을 파내고 언저리를 콘크리트로 바르고 보를 쌓아 흐르는 강물을 썩게 만드는 사업에 모든 노력을 기울인 대가는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 한국전쟁 때 폭파돼 움직이지 않는 비무장지대 안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보존 처리 작업을 거쳐 2009년 임진각(경기도 파주시) 안 전시장으로 옮겨졌다. 사진은 옮겨지기 전 모습. ⓒ연합뉴스

역사의 후퇴, 두꺼운 녹으로 다시 뒤덮인 경의선 남북 연결 철도

뼛속까지 친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 일변도의 외교 정책과 대북 강경책, 중국 무시 정책을 펼쳐온 결과 외교에서 균형과 조화라는 기본을 무너뜨렸다. 중국-러시아의 대륙철도와 연결하기 위한 협력도 도루묵이 되었다. 북한의 주요 개발 사업은 남한을 배제한 채 중국 기업이 독점하는 상황이다.

지정학적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강대국들을 인접국으로 두고 있는 한국이 지혜로우면서도 당당하게 외교정책을 펼치지 못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서민들의 몫이다.

남과 북은 과거로 돌아가 원수처럼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매일 문산과 개성을 오가던 경의선 철도는 운행이 중단됐다. 남북 철도 연결 구간인 경의선 승무를 담당하고 있던 철도공사 서울기관차 승무사업소의 기관사들로 이루어진 개성행 열차 담당 승조는 해체됐다. 군사분계선에 어렵게 열렸던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선로는 두꺼운 녹으로 덮여갔다. 북의 해안포가 연평도 땅에 떨어지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고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듯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향후 평화와 소통의 견인차 역할을 할 한국 철도를 재벌들의 수익 창구로 전락시키는 일이 경쟁체제란 이름으로 추진됐다. 민간자본의 선진 경영기법이란 게 고작 높은 이자놀이요,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 빼먹기요, 시민들에게 요금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서울 지하철9호선을 비롯한 수많은 민자사업에서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국토부는 여전히 KTX 민영화를 정권을 이어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WTO GPA(정부조달) 협상을 통해 한국 철도의 모든 분야를 외국자본에 개방하는 길을 열었다. 협상 과정은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진행됐다. 내용마저 뒤늦게야 밝혀졌다. 협정 내용을 보면 철도 시설의 건설, 설계, 엔지니어링, 감독, 운영 등 철도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렇게 개방이 완료되면 한국 철도의 운명은 우리 손이 아니라 수익만이 최고의 가치인 외국의 거대자본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공공성 파괴에 앞장서는 정부를 어찌할 것인가?

이런 일련의 작업에서 선봉에 선 것은 국토해양부다. 국토해양부가 KTX 민영화 추진과 더불어 줄기차게 밀어붙인 철도공사로부터 철도 관제권 환수나 역사 및 시설 환수라는 게 철도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향후 한국 철도에 들어올 거대자본들에게 철도의 각 분야를 자유롭게 운영할 권한을 주기 위한 방편이다.

WTO GPA 협상 막판 행안부의 초기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교부의 강요에 추가로 도시철도 부분이 개방되었다. 서울, 부산, 대전, 인천, 대구, 광주 등의 모든 지하철공사에도 적용되어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사회기반시설 민자사업뿐만 아니라 공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사업에도 자유로운 외국자본의 투자가 가능해져 온 나라를 민영화된 시스템으로 뒤덮는 사태가 예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WTO 협정은 FTA 협정 같은 양자 협상이 아니라 다자 간 협상으로, 이 협정이 발효되면 WTO 회원국 누구든 제한 받지 않고 한국 철도 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또 한미 FTA 협정에 근거해 다른 국제 무역 협상의 조약이 체결될 경우 이 기준에 따른 개방을 보장해야 한다. 선진 기술과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철도 선진국들에 비하면 한국의 철도산업은 대형마트 앞의 골목길 구멍가게 꼴이나 다름없다.

그동안의 WTO 협정과정을 지켜보면 철도 선진국들의 한국 철도 전면 개방 요구를 번번이 거부하고 한국 철도 산업을 보호해왔는데, 이 정권 들어 완전하고 완벽하게 개방의 물꼬를 텄다. 국토부의 정책 담당자는 5월 23일 열린 토론회에서 지역노선과 화물열차도 경쟁 입찰을 통해 민간에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철도를 갈기갈기 찢어서 수많은 철도 사업자의 하나로 전락시키겠다는 심산이다. 국가기간철도망 운영주체로서 지위를 무력화한 결과는 국내외 거대자본의 손쉬운 진출이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국토부가 증오의 눈길로 부실과 적자의 원흉이라고 몰아붙이는 한국 철도 대신에 남북철도와 대륙철도를 달리는 열차는 미국과 일본, 유럽의 자본이 운행하는 열차가 될 것이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의 국제열차를 타고 달렸다면 21세기엔 한국 철도의 이권 쟁탈전에서 승리하는 국가의 열차를 타고 달리게 될 수도 있다.

서울역에서 파리 행 열차를 타고 싶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앞을 내다본다면 미래를 책임질 교통수단이 무엇이고 또 대륙을 달릴 수단으로서 철도가 갖는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철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이를 바탕으로 한 국가와 사회 주도의 든든한 공공철도가 가져올 성과는 민영화를 통한 일부 자본의 이익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사회적 자산이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고 그 구성원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으로 사용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탐욕의 손길이 경쟁과 효율을 명분으로 시나브로 펼쳐가는 민영화의 사슬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거대자본에 팔아넘겨져 민영화된 철도의 요금과 안전을 걱정할 것인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파리 행 기차표를 살 것인지?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