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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8일 화요일

박근혜 대선 '라인업'…포장은 '개혁', 내용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7일자 기사 '박근혜 대선 '라인업'…포장은 '개혁', 내용은?'을 퍼왔습니다.
[분석] 개혁 인사 전면 배치…親朴 '문고리 권력'은 그대로

경제민주화를 기치로 한 중도개혁론이냐, 아니면 '보수 대통합론'에 따른 우향우인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선택은 결국 '개혁'이었다.

27일 발표된 박근혜 후보의 대선기구 인선 최대 화두는 일단 '쇄신과 개혁'이었다. 향후 꾸려질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 양대 핵심기구가 될 국민행복특별위원회와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 김종인 전 캠프 공동선대위원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을 각각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최근 새누리당 공천 헌금 사건과 '과거사 논쟁' 등으로 지지율이 출렁이는 모습을 보였던 박근혜 후보 측은 최근까지도 '보수결집론' 대 '중도개혁론'으로 양분해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론적으론 중도개혁층 구애로 방향을 잡았다. 

박 후보의 지지율 취약층인 중도층 외연 확대를 위한 방책이자, 그간 논란을 일으켜온 '친박계 전횡' 비판을 피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경제민주화 등을 두고 사사건건 개혁 성향인사들과 대립해온 '친박 실세'들은 표면적으론 2선에서 물러났지만, 캠프의 '얼굴'에서 제외됐을 뿐 '알맹이 권력'을 틀어쥘 수 있는 자리에 배치됐다. 유권자들에게 '개혁 의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얻는 동시에, 박근혜 후보 특유의 '2인자'를 두지 않는용인술의 결과로 풀이된다.

뛰는 민주당 위에 '나는 박근혜'…'차떼기 수사 검사'에게 정치쇄신 맡겨

이번 인선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김종인 전 위원장과 '투톱'으로 거론되는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자체가 공천 헌금 사태에 대한 수습책으로 박 후보가 던진 '비장의 카드'였던 만큼, 그의 발탁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란 평이다.

검사 시절부터 각종 권력형 비리 수사를 진두지휘해온 안 전 대법관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당시 한나라당에게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을 붙인 장본인이다. 당시 차떼기 사건으로 '궤멸' 직전의 상황에 처한 한나라당은 천막당사로 표상되는 '박근혜 체제'를 구축, 전격적인 당 쇄신을 추진한 결과 2004년 총선에서 121석을 건지며 선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시험 17회 동기로 참여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장으로 발탁된 그는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에도 뛰어드는 등 '성역없는 수사'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기도 하다.

안 전 대법관의 '깜짝 발탁'은 이번 공천 헌금 사태로 쏟아지는 야권의 비판을 불식시키는 것과 동시에 박 후보가 2004년 못지 않은 정치쇄신을 추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으로 풀이된다. 안 전 대법관 역시 이날 취임 기자회견에서 "측근 비리 관리 대상에는 박근혜 후보의 가족도 당연히 포함된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아울러 부산중학교 출신의 안 전 대법관이 부산지검 특수부 부장, 부산고검 차장 검사 등을 거치며 부산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18대 대선에서 최대 '승부처' 중 하나인 PK(부산·경남) 민심 공략의 의도로도 풀이된다.

다만 안 전 대법관이 대법관 퇴임 48일 만에 여권 대선주자 캠프의 요직으로 '직행'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는 남겨놨다.

김종인, '친박 핵심' 부상…경제민주화 '그대로 간다'

국민행복특별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종인 전 위원장의 경우 이번 인선으로 '친박 핵심'의 자리를 확실히 굳혔다는 평이다. 지난 4.11 총선 당시 '박근혜 비대위'에 영입돼 당 쇄신 작업을 주도해온 그는 대선 경선 캠프에서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데 이어 대선 본선 국면에서도 중용, 박 후보의 변함없는 신뢰를 드러냈다.

특히 1987년 개헌 당시 헌법 119조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직접 입안해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그의 중용은 최근 캠프 내부에서 불거진 '집토끼론'에도 불구하고 정책 분야에서 대대적인 쇄신 드라이브를 계속하겠다는 박 후보의 포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친박계 내부에선 '통합형'으로 분류되는 '복박(復朴)' 인사 진영 의원과 김대중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을 역입한 문용린 서울대 교수를 부위원장에 각각 발탁한 점 역시 캠프 내 불필요한 갈등을 불식시키고 쇄신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친박 전횡' 논란 재현될라…'범박' 이주영, 대선기획단장에

관심을 모았던 대선기획단장에 4선의 이주영 의원이 임명된 것도 눈에 띈다. 이 의원은 올해 초까지 황우여 당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으로 호흡을 맞춰왔던 중립 인사로, 지난 4.11 총선 당시 당의 공약 부분을 총괄하면서 '범친박' 인사로 편입됐다.

당초 선대위의 그림을 짤 대선기획단장엔 친박계 핵심 최경환 의원과 서병수 사무총장이 물망에 올랐지만, '친박 전횡' 논란을 피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계파색인 옅은 이 의원을 낙점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경환의 '깜짝 비서실장' 인선…표면적으론 2선 후퇴, 권력은 '그대로'

'친박계 실세'로 통하던 최경환 의원이 박 후보의 비서실장에 임명된 것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지난 4.11 총선 당시 '최재오'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사천 논란을 일으키던 그가 캠프의 '얼굴'에선 물러난 반면, 박근혜 후보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비서실장에 지명되면서 '문고리 권력'은 놓지 않게 된 셈이다. '2인자'를 두지 않으려는 박 후보의 용인술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자, 개혁 인선 포장에도 '실세'는 '실세'로 남게된 셈이다.

특히 지난 총선 당시부터 박 후보의 비서실장 역할을 해온 이학재 의원이 부실장으로 '좌천'되면서까지 이뤄진 이번 인선은 경선 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지낸 최 의원을 일정 부분 '배려'한 것임과 동시에, 캠프의 실질적인 실무와 막대한 살림을 책임지던 역할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표면적으론 친박계 실세의 '2선 후퇴'지만, 내용적으로 '권력'은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공보단장에 2선에서 활동하던 김병호 전 의원을 임명한 것도 논란을 낳는 대목이다. 한국방송(KBS) 보도본부장 출신으로 지난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미디어홍보본부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박 후보의 경선 패배 후 이회창 전 총재가 대선에 출마하자 돌연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회창 캠프에 합류한 전력이 있다. 이후 그는 같은 해 12월 뇌물 수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 그의 이회창 캠프행이 18대 총선 공천이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 일종의 '자구책'이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을 낳기도 했다.

 /선명수 기자

2012년 8월 18일 토요일

유신 그, 부끄러운 유산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17일자 기사 '유신 그, 부끄러운 유산'을 퍼왔습니다.

ㆍ민족문제연구소 ‘유신 40년 기념’ 전시회ㆍ일제 군국주의 파시즘을 조국 근대화로 포장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으려 합니다.”

5·16 군사 쿠데타 직후인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A급 전범 출신인 기시 노부스케와 도쿄 요정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가 말한 메이지(明治)유신의 지사들은 바로 정한론을 펼친 사이고 다카모리, 조선침략의 원흉으로 불린 이토 히로부미 같은 인물들이었다.

박정희는 1930년대 일본 군부의 급진세력들이 추구한 일왕중심의 국가 개조론인 ‘쇼와(昭和)유신’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쇼와유신’은 국가가 혼란할 때 군부가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정당정치와 대중의 다양한 여론을 사회 혼란이라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방종 또는 국가의 ‘적’으로 돌리며 강력한 반공정책을 내세운 사상이다.

그 사상은 박정희가 1972년 장기집권을 위해 단행한 ‘10월 유신’에 고스란히 담겼다. ‘유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메이지유신과 쇼와유신에서 비롯됐다. 유신체제가 표방한 ‘총력안보’ 또한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구축한 전시총동원체제(총후국방)라는 개념에서, ‘고도국방’은 만주국이 표방한 ‘고도국방체제국가’에서 따왔다. 용어만 아니라 내용도 빼닮았다.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국민총력운동이 새마을운동으로, 애국반상회가 반상회로, 조선기류령(寄留令)이 주민등록제로 또다시 등장했다. 

결국 유신체제는 겉으로는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일제 군국주의 파시즘으로부터 각종 통치 시스템을 차용한 ‘부끄러운 유산’에 불과했던 셈이다. 유신 40주년인 올해 광복절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식민의 유산, 유산의 추억’ 전시회를 다음달 22일까지 연다. 장소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정권 시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이들이 산화해 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1. 일제 ‘농촌진흥운동’과 ‘새마을운동’

일제 말 각종 기관지는 모범일꾼을 표지모델로 삼아 미담과 성공수기를 소개하고 그들을 본받으라고 촉구했다(왼쪽). 새마을운동 역시 지도자의 성공담을 퍼뜨렸다. ‘자력갱생’과 ‘농가경제부흥’을 내걸었지만 농촌 통제 수단으로 작용한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국민총력운동은 ‘유신체제의 실천도량’으로 불린 새마을운동과 빼닮아 있다.


2. 국가주의적 교육의 표상 ‘교육칙어’와 ‘국민교육헌장’

1890년 공포한 일제의 ‘교육칙어’는 천황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를 제일의 덕목으로 하는 교육지표로 국가주의적 교육의 표상이다. 1968년 12월 박정희 정권이 공포한 ‘국민교육헌장’ 또한 국가의식과 반공의식을 주입시켜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임을 다짐하는 ‘황국신민서사’ 또한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닮은꼴이다. 사진은 일제시대 교과서에 수록된 교육칙어(위쪽)와 1968년 교과서에 수록된 국민교육헌장.


3. 월요일 아침이면 전교생 모아 놓고 ‘애국조회’

일제강점기 애국조회를 진행하는 모습(위쪽)과 1970년대 애국조회의 모습. 유신체제는 특히 애국조회를 중요시했다.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 집합해 ‘교육칙어’ 대신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황국신민서사’ 대신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했다. 


4. 학교를 사실상 병영으로 만든 ‘교련’

일제강점기 학생 군사훈련(위쪽)과 1970년대 교련훈련 중인 고교생들. 일제 말 학생 군사훈련은 지원병이나 징병 등 전쟁동원의 예비단계로, 학교를 사실상 병영으로 바꾸어놨다. 박정희 정권은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인 대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1971년 1학기부터 일제의 학생 군사훈련을 본뜬 ‘대학교련’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5. 주민 통제 목적 ‘애국반상회’와 매월 25일 ‘반상회’

일제는 전시체제기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열 가구를 한 반으로 하는 애국반상회를 조직했다. 5·16 쿠데타 직후부터 운영된 반상회는 1976년 5월 말부터 매월 25일을 ‘정례 반상회의 날’로 지정해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참여토록 했다. 일제 말 애국반 회보(왼쪽)와 1977년 배포된 반상회보.


6. 즉시 연행·취조가 가능했던 상시적 ‘불심검문’

불심검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 대한 감시통제수단으로 효과를 거뒀다(왼쪽). 1953년 부활한 불심검문은 특히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악용돼 상시적으로 실시됐고,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유인물·불온서적이 발견될 경우 즉시 연행·취조했다.


7. ‘국민개창운동’과 ‘건전가요 국민개창운동’

일제 말 전시체제기에는 국민가요를 다 함께 부르자는 국민개창운동이 벌어졌다. 애국행진곡(왼쪽)은 국민가요로 보급된 대표적 일본군가다. 박정희 정권 또한 많은 대중가요를 금지곡으로 지정하는 한편, 모든 음반에 건전가요 수록을 의무화하고 관제 경연대회를 열면서 건전가요 국민개창운동을 벌였다.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