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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목요일

“국민 전체를 통합하기 위해 정부가 있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5-30일자 기사 '“국민 전체를 통합하기 위해 정부가 있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

“박근혜 정부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나승구(50) 신부는 산적한 환경․노동 현안과 남북관계 등을 이야기하며 박근혜 정부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나 신부는 “박근혜 정부는 조금이라도 밀리면 52%에서 48%로 된다는 조바심이 아니라 국민 모두를 포용하고 끌어안아야 한다”며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면 할 수 있는게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반쪽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있는게 아니라 전체를 통합하기 위해 정부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가랑비가 내리던 28일 오후,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나 신부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성당에서 만났다. 지난 3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새 대표로 선출된 서울대교구 소속 나승구 신부는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지도신부, 서울 신월동성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은 여전히 안 된 상태고 강정마을에서도 싸움은 계속 진행중이다. 쌍용차 77일간 옥쇄파업 이후 ‘함께 살자’는 호소도 여전하고, 최근 40일 간 공사 중단 결정되긴 했지만 밀양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문제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현장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나 신부가 있었다. 왜 그와 사제단은 이 같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 있는 걸까. 

왜 사제단이 이같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 있는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도림동성당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나 신부는 “우리는 아프고 힘든 사람 옆에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우리가 최전선에 있다고 하는데 그건 최전선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옆”이라며 “여력이 모자라서 모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다 갈 수는 없지만 ‘여기는 꼭 있어야 된다’는 곳에 힘을 나눠서 함께 있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모습을 두고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의 경우 ‘천주교에 세뇌당해 주민들이 반대한다’는 발언도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나 신부는 “직접 주민들을 만나보고 공사가 어떻게 되고 있고 할머니들이 어떻게 막는지 본다면 그런 말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나 신부는 “주민 분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주거나 변화시키거나 세뇌시킨다는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그분들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에서 신앙인들의 시작이 있다”고 밝혔다.

나 신부는 현재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통일이 너무 멀어졌다”고 우려했다. 그는 “서로 이야기해서 일단 화해하게 만들고 내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풀어나가는게 대화의 기본”이라며 “이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통일은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북에서 제안한 ‘6.15 민족공동행사’의 민간차원 개최를 우리 정부가 거절한 것에 대해 “민간행사를 가로막는 행위는 통일하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 신부는 “과거 민주정부라는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통일은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며 “이런건 정권유지를 위한 통일정책들로, 통일을 하려는 생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모자식 간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절대적인 가치는 점점 없어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도림동성당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그는 현재 한국사회가 ‘정신가치를 따를 것이냐, 자본가치를 따를것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있다’고 봤다. 그는 “부모자식 간에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자손들이 재산 때문에 다투고 절대적인 가치는 점점 없어져 간다”며 “소위 말하는 ‘경제만 살리면 정신을 죽여도 된다’는게 이미 많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나 신부는 “40년~50년전만해도 이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많이 자살하지 않았고. 이렇게 많이 형제들이 싸우지 않았다”며 “가치의 전도가 우리를 굉장히 황폐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를 굉장히 정신없이 사는 좀비처럼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 신부는 우리가 제자리를 좀 찾길 바랐다. 그는 발전이라는 가치만을 쫓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뒤로 땡기자는게 아니라 발걸음에 좀 여유를 갖자는 것”이라며 “내 마음을 둘러보고, 그렇게 할 때 진짜 인간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추가로 “선의의 동료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나 신부는 “사실 용산 때도 강정 때도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해준다는 것에 놀랐다”며 “그런 걸 볼 때 ‘우리나라의 양심이 살아있구나.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도림동성당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왜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에 관심을 갖는가.

당장 우리가 밀양에도 가고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일방적으로 당하기 때문이다. 한전이나 언론은 일방적으로 당장 전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로 공사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이 사회는 송전탑 공사로 인해 사람이 파괴되고 마을이 황폐화되고, 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원주민들이 사는게 불가능해지는 일들을 너무 쉽게 허용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밀양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개발과 발전과정에서 이뤄진 일방적인 개발의 문제다. 자극은 너무 큰데 반응은 없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건 너무 부당하다. 주변 사람들이 그 이야기 나눠서 해주면 그 분들께 더 도움이 될 것이고, 일방적 처사들이 가져올 악영향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한전 전 부사장이 “밀양 주민들이 천주교, 반핵단체에 세뇌당했다”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이 모든 일들이 이런 생각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 분들이 생각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이거다. 자기의 계획대로 하고 그게 안되면 누군가에게 탓을 미루는 거다. 그 일이 돼야만 한다는 전제로 모든 일을 하고 있다. ‘그 사고 속에서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또 있기도 하다.

직접 주민들을 만나보고 공사가 어떻게 되고 있고 할머니들이 어떻게 막는지 직접 본다면 그런 말을 하기 힘들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정책을 실행하거나 권력을 갖고 일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일을 하고 있다. 엊그저께 페이스북에 밀양 현장에서 공사를 하는 사람의 인터뷰 내용이 올라왔다. ‘월급이 2천만원이나 밀렸다’고 하더라. ‘할머니들이 방해해서 공사를 못했다’고 했다. 한전 책임자들은 그 내용을 고려할까? 한전은 가장 어려운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그 내용은 ‘나몰라라’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달라.

한전에 있는 많은 하청회사 중 ‘한백’이라는 하청회사는 계약한 것을 이행하기 위해 무리해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그런데 한전은 ‘나는 할머니들에게 손을 안댔다’며 어떤 폭력이 벌어져도 아무 생각 없이 자행되게 놔둔다. 있는 자가 없는 자들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그 가운데서 이득을 취하는 구조가 그분의 발언에 여실히 담겨있지 않을까 싶다. 밀양의 주역들은 활동가도 아니고, 우리가 늘 ‘할배, 할매’라고 부르는 그분들이다. 그분들의 판단에 우리는 도움을 드리는 것이다. 그게 저희들이 소위 말하는 우리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다. 그분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주거나 변화시키거나 세뇌시킨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분들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 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에서 신앙인들의 시작이 있다.

한전은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정부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한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을 몇 만불 올리겠다. 수출을 얼마나 하겠다’ 목표를 세운다면 이게 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국민들을 위해서다. 그런데 국민들을 위해서 일을 하는데 국민들을 괴롭힌다면 이게 올바른가? 이 부분에 대한 명백한 재고가 없다면 정부가 국민들을 압살하는 폭행의 주범이 된다. 그런 정부라면 필요도 없고 없어져야한다. 정부도 역시 보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현장을 봤으면. 그들과 현장은 너무 먼 곳에 있다.

강정마을 같은 경우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강정도 밀양과 아주 흡사하다. 해군이 해군기지를 세우겠다는 열망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냈다. 현장에서 해군들이 어떻게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짓게 됐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떻게 마을을 송두리째 찬성과 반대로 갈라놨는지. 정말 현장에서 보지 않고 일하는게 확실하다. 그들의 사고방식 안에는 자기들이 목표하는 해군기지가 세워지면 다 끝난다. 일만 끝나면 ‘다른건 알바 아니다’라는게 있다. 한 마을에서 8년 동안이나 같은 문제를 갖고 ‘아니라’고 얘기할 때는 뭔가가 있다는게 아닌가? 그 이유를 아무도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강정마을에 계신분들은 그야말로 제주도라는 섬에서 또 하나의 섬에 살고있다.

현재 남북관계에 대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어릴 때 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했고 어느 정권도, 심지어는 독재정권이라고 부르는 정권에서도 ‘통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되면서 통일에 조금 가까워졌지만,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는 통일이 너무 너무 멀어졌다. 물론 사람들은 ‘북핵 때문이다’ ‘북한의 호전적인, 말도 안되는 막무가내’ ‘3대세습 때문’ 등을 얘기한다. 하지만, 대화를 하려면 파트너에 대한 존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 사람이 어떻기 때문에 나는 못한다’는건 스스로 대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절박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일은 정권유지의 이용거리이지 민족의 염원이라든지 이런건 그들 생각에는 없는 것 같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통일부나 국가의 책임있는 기관에서 북한에 대해 얘기할 때 ‘참 예의없이 얘기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싸움을 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중재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한 쪽의 잘못을 부각시킬 것인가? 서로 이야기해서 일단 화해하게 만들고 내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풀어나가는게 대화의 기본이다. 근데 이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통일은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 얼굴이라도 보자 대화를 나누자. 종교인들끼리 만나서 통일 이야기 못할 수 있지만 작은 통일을 이뤄나가면. 그렇게 하나씩 할 때 통일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미 너무 통일조차도 돈으로 환산을 많이 한다. 개성공단도 금강산관광도 돈의 문제로 풀려고 한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해야한다. 누군가와 떨어져 있다는 건, 민족들 안에서 허전함이 늘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한 노력들이 선행될 때 비로소 거기서부터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북에서는 ‘6.15 민족공동행사’를 민간차원에서 하자고 했는데, 이게 잘 안됐다. 어떻게 보는가.

과거에 민주정부라는 시절에도 마찬가지로 통일은 자신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런건 정권유지를 위한 통일정책들이다. 득이 되면 하고 안되면 치워버리려 한다. 이건 통일하려는 생각이 아니다. 민간행사를 가로막는 행위는 통일하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박근혜 정부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스스로 아슬아슬하게 정국을 꾸리면서 반쪽으로 살아가고 있다. 반쪽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있는게 아니라 전체를 통합하기 위해 정부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52%에서 48%로 된다는 조바심이 아니라 포용하고 끌어안으면서 그런 차별을 없앤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면 할 수 있는게 훨씬 많아질 것 같다. 굳이 그 분이 독재자의 딸이라든지 그런 말은 하기 싫다. 현장에서 정말 잘한다면 칭찬해주고 싶다. 근데 박수 받을 길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우리 입에서 대통령이 나쁜 사람이다라고 말해서 시원해 할 수는 있지만, 국민 전체로 보면 굉장히 불행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가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도림동성당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무엇이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제2차 바티칸 정신의 구현이라고 보면 된다. 1962년~1965년 사이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하는 세계 교회의 전체 회의가 열린다. 65년에 제 2차 바티칸 문헌이 발표된다. 천주교회가 2천년 역사동안 살아오면서 하나님만 보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우리 곁에 고통 받고 어려워하는 이웃들,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 것들을 배우는 과정에서 민청학련 사건이 생겼다. 독재시대에 이렇게 고통 받는 형제들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여덟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사형장 이슬로 사라져 가는데 우리가 어찌 교회 안에서 기도만 하겠느냐. 그분들의 아픔과 괴로움이 우리의 아픔이라고 선언하게 됐다. 그 때부터 세상의 아픔을 갖는 신부님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게 1974년이었고. 뜻이 있고 사명이 있는 친구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활동하기도하고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일부에선 ‘사제단에서 지속적인 정치적 활동을 하고있다’ ‘방식이 시위 형식이다’ 등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프고 힘든 사람 옆에 있을 뿐이다. ‘와락’의 정해신 박사는 ‘쌍용차 희생자들은 사지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한 발만 떼면 베란다 아래로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 사람들 옆에 누군가 옆에 있어만 준다면 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지점이 우리가 있는 지점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최전선에 있다고 하는데 그건 최전선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옆이다. 우리가 여력이 모자라서 모든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다 갈 수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여기는 꼭 있어야 된다는 곳에 힘을 나눠서 함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 일의 해결사는 아니다. 역사를 봐서 알겠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늘 져왔다. 우리는 이기고 지기 위해서 싸움이나 투쟁을 하는게 아니다. 사람이 거기 있어서 가는 것 뿐이다. 그런데 그 분들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랄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시대정신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가.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가치를 따를 것이냐, 자본가치를 따를것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있다. 이미 많이들 자본의 가치로 넘어갔다. 한참 전부터 개탄해왔다. 부모자식 간에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자손들이 재산 때문에 다투고. 절대적인 가치는 점점 없어져 간다. 소위 말하는 ‘경제만 살리면 정신을 죽여도 된다’는게 이미 많이 이뤄진 것이다. 

이명박 정권 시기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권 시기 이런게 엄청 많았다. 경제만 살리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도 좋다.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치의 전도가 우리를 굉장히 황폐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를 굉장히 정신없이 사는 좀비처럼 만들 것이다. 40년~50년전만해도 이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많이 자살하지 않았고. 이렇게 많이 형제들이 싸우지 않았다. 발전이라는 가치에 그런 걸 하나씩 팔고있다. 마치 그림자를 팔아버린 인간처럼.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한 마디 제언한다면.

버려서 치우는게 아니라 내버려두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제자리를 좀 찾아서 살면 좋지 않을까.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발전한다는 것에 대한 너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면 그야말로 창조적일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창조가 아니라 쥐어짜기다. 창조는 없는데서 만드는 건데, 지금 이야기하는 창조는 없는 것을 쥐어짜서 하고있다. 뒤로 땡기자는 건 아니라 발걸음을 좀 여유를 갖자. 내 마음을 둘러보고, 그렇게 할 때 진짜 인간 발전이 이뤄지지 않을까.

추가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선의의 동료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사실 용산 때도 강정 때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누군가가 나와서 함께 해준다는 것에 놀랐다. 신자가 아닌 경우도 있고 신자인 경우도 있는데, 그런걸 볼 때 ‘우리나라의 양심이 살아있구나.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싶다. 그래서 한편으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 분노로 싸우는게 아니라 선의로 싸울 때 좀 더 아름다운 싸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2013년 5월 12일 일요일

방위산업, 경쟁이냐 통합이냐


이글은 한겨레신문 디펜스21 2013-05-03일자 기사 '방위산업, 경쟁이냐 통합이냐'를 퍼왔습니다.

국내방산 경쟁력 강화, 경쟁촉진이 해법인가
방산시장 무한 경쟁 체제는‘명품무기’만들 수 있을까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2013~2017 방위산업육성 기본계획(안)』을 통해 국내 방위산업이 자동차·조선·IT 산업과 달리 국제 경쟁력이 부족한 원인을 경쟁구도가 형성돼 있지 않은 탓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방위사업청은 국내 방산시장의 경쟁여건 확보가 필요하다며 경쟁 촉진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방위사업청의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방산업계는 국내 방산시장은 이미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돼 있으며 좁은 국내 방산 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제살 깎아먹기 경쟁은 결국 무기체계의 품질저하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업 혹은 국가 간 방산통합이 세계적인 추세를 이루는 지금, 방위사업청의 야심찬 계획은 명품 국산무기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까? 

국방획득사업은 예산이 대부분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기 때문에 항상 여론의 집중 감시를 받는다. 또한 단일 사업에서 한번에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방위산업체들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알짜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방산업계의 현실은 그러한 인식과 정반대의 처지에 놓여있다. 우선 국내 방산시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약 34조 원에 달하는 2013년 국방예산 중 새로운 무기체계를 구입하거나 개발하는 예산인 방위력개선비는 10조 원에 불과하다. 이 10조 원이 곧 국내 방산시장의 규모나 마찬가지다. 참고로 2012년 한 해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사들인 화장품은 10조 8천 200억 원으로 한국의 방산시장은 화장품 시장보다 규모가 작다. 

그러나 이마저도 상당부분 미국이나 유럽의 방위산업체들이 가져간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대형무기도입 사업 중 미국 보잉사의 아파치로 기종 결정이 확정된 대형공격헬기 사업은 약 1조 8천억 원, 지난 1월 영국제 와일드캣으로 결정된 해상작전헬기는 약 6천억 원, 올 상반기 기종 결정이 끝날 것으로 보이는 차기 전투기 사업은 8조 3천억 원 규모인데 모두 해외업체 몫이다. 아직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는 않지만 고고도 무인정찰기, 공중급유기,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등도 향후 미국제나 유럽제를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가뜩이나 좁은 방산시장 내에서도 국내 방산업체는 끼어들 곳이 없다. 

캐나다 정치학자 키스 크라우스(Keith Krause)의 방위산업 분류에 따르면 한국 방위산업은 기존 군사기술을 복사 및 재생산하는 계층에 속한다. 이는 가장 낮은 기술력을 보유한 단계로 앤드류 로스(Andrew Ross), 리처드 비친거(Richard Bitzinger)등의 학자들도 한국의 방위산업을 개발도상국 수준이나 보통 수준 이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방위산업은 갈 길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자조하곤 한다. 국내 모 방산대기업에 20년째 근무 중인 A씨는 “산업화 초기 정부에서 대기업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보호한 것처럼 방위산업에도 그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회담 중인 레이건과 고르바초프(1985). 냉전이 선물해 준 막대한 국방예산과 무기소요는 각국 방위산업체들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방위산업과 시장논리는 공존할 수 있나 

이와 달리 방위산업을 왜 시장의 논리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나서서 육성해야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다른 산업들처럼 업체끼리 경쟁을 벌여 실력을 키워나가는 게 적절한 방법이라는 말. 그러나 모든 사업이 100% 정부의 수요로 이뤄지는 방위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비판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 방위산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방위산업에는 민간의 시장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방산업체는 공공재인 국가안보에 쓰이는 무기를 정부의 요구에 따라 개발해주는 하청업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력으 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자동차 등을 개발해 국내외에 판매하고 자유로운 투자로 사업을 벌이는 여타 산업과 달리 정부의 수요와 투자 없이는 사업이 존재할 수 없는 게 방산업체의 특성이다. 예를 들어 개발에 최소 수십조 원이 드는 전투기는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라도 개발이 불가능하다.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산업 특성상 수요자인 정부가 고성능 무기를 획득하고 싶으면 하청업체인 방산업체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경쟁력을 키워야하는 것이다.” 

심지어 방산업체가 개발한 무기체계의 기술도 모두 정부에 종속된다고 한다. 정부가 발주한 사업에 거액의 개발비까지 댔으니 결과물의 일부인 기술도 정부 소유라는 것이다. 또한 국방획득사업은 가격을 기업이 자유롭게 정하는 민간 산업과 달리 이윤마저 정부통제를 받아야 한다. 업체가 노력해 원가절감을 해도 초과이윤이 불가능한 체계인 것이다. 이렇게 방위산업은 일반 산업과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 민간에 적용되는 시장논리가 통하기 어려운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각종 무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산업체의 경쟁력이 국가 전쟁수행능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평가요소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 아직 성장이 필요한 방위산업은 정부가 주도해 육성하는 것이 타당한 방향으로 보인다. 정부는 2009년 1월 전까지만 해도 방위산업에 여타 산업분야와 다른 정책을 적용하며 보호해왔다. 

1973년 제정된 방위산업 특별조치법은 정부가 방위산업을 합리적으로 지도육성하고 조정해 방위산업 진흥에 기여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2006년 1월 방위사업법을 제정하면서 폐지했지만 오랜 기간 국내 방위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법이다. 1980년에는 방위산업육성기금이 조성돼 방산업체들이 운영자금을 쉽게 융자받을 수 있었지만 이 또한 2006년 폐지됐다. 

1983년 만들어져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방위산업 보호정책인 전문화·계열화제도는 2009년 1월 폐지됐다. 전문 분야별로 방산업체를 지정, 업체에 독점권을 부여해 과당경쟁을 막아 온 전문화·계열화 제도는 기술개발의 촉진을 저해하고 신규업체 참 여 제한 등 자유경쟁 시장경제에 위배된다는 비난에 따라 폐지조치가 내려졌다. 이로써 방위산업을 보호·육성하던 정책들이 모두 폐지돼 국내 방산업계는 본격적인 무한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됐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방위산업의 경쟁 요소가 부족해 경쟁 촉진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현대로템의 차륜형 장갑차.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은 모두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과당경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대로템

국내 방산시장은 이미 무한 경쟁 체제?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2013~2017 방위산업육성 기본계획(안)』을 통해 방위산업이 자동차·조선 산업과 같은 시기에 형성돼 매년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산업분야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건 방산시장에 경쟁구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산업은 80년대 이후 개방화·자율화를 거치며 금융지원, 세제혜택 등의 보호·육성책이 폐지돼 무한 경쟁구도가 형성된 것에 비해 보호·육성 위주의 정책 기조가 장기간 유지된 방위산업은 경영개선 및 경쟁력 강화 노력의 유인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에 방산 경쟁 심화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지 묻자 “민간기업 등 생산능력이 있는 업체에게 방위산업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조달원을 다변화하고 이를 통해 가격 및 품질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위사업청의 주장에 대해 방산업계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항상 ‘을’의 입장인 탓에 드러내지는 못 하지만 업체마다 내부적으로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모 중견방산업체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경쟁 체제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는 방위사업청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현재 국내 방위산업에 형성돼 있는 경쟁 체제를 설명했다. 

“2009년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 뒤 이미 한국 방산시장은 무한 경쟁으로 돌아섰다. 예를 들어 군이 어떤 무기 체계를 도입 계획을 발표했을 때 국내 업체는 그때부터 해외직도입이냐 국내연구개발이냐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국내 개발로 결정이 되더라도 다시 사업 추진 주체를 결정할 때 정부가 주도하느냐 업체가 주도하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업체 주도로 결정되면 국내 업체들 간의 입찰 경쟁이 남아있다. 이러한 3중 경쟁 형태가 이미 방산업계에 심각한 출혈 경쟁을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경쟁을 촉진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반론을 제기했다. 

“업계가 주장하는 직도입 대 국내 연구개발, 정부 주도 대 업체주도는 사업추진 방식에 관한 사항일 뿐 경쟁체제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업체 간 경쟁도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가 운영되는 이상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방위사업청은 또 “그 동안 방산물자는 지정된 특정 방산업체로부터 조달해 왔으며 1물자-다(多)업체 지정이 제한적이었다”며 생산능력이 있는 민간업체의 방산분야 참여기회를 주기 위해 ‘방산물자 지정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방산물자 지정제도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제도로 간단히 말해 방산업체 지위를 부여받은 업체만 국방획득사업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방위사업청의 계획은방산물자 지정제도 개선을 통해 실력있는 업체라면 누구든 방산업체로 지정해 국방획득사업에 참여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냉전 이후 군비축소로 방위산업의 통합과 경쟁 최소화를 추구하는 세계적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지난해 EADS와 BAE시스템즈가 합병에 성공했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방위산업체가 탄생했을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대규모 방산통합 바람 

냉전은 선진국 방산업체들에 있어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은 거액의 국방비를 편성해 상대를 압도할 첨단 무기체계를 앞다퉈 개발했고 이는 방산업체들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획득 비용보다 성능이 중요시되는 탓에 각국 정부는 재정적 위험까지 부담하면서 업체에 연구개발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 안보환경이 변화되면서 무기수요는 대폭 줄어들었고 주요 강대국들조차 급속도로 팽창한 방위산업 기반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탈냉전 시기 선진국의 방산업체들은 너도 나도 통합의 길을 걸었다. 유럽항공산업의 대표주자 EADS, 영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사업을 벌이는 BAE시스템즈도 업체 간 통합으로 만들어진 대형 방산업체다. 특히 BAE시스템즈는 사실상 영국내 유일 대형 방위산업체로 항공기, 방산전자, 지상장비, 함정 등 국방획득 전 분야에 걸친 사업영역을 갖고 있다. 한 국가의 방위산업을 단일 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경쟁을 더욱 촉진하려 하는 한국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러한 통합의 추세는 아직 진행형이란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ADS와 BAE시스템즈는 지난해 6월~10월에 걸쳐 합병안을 협상하기도 했다. BAE시스템즈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합병을 통해 상업용 항공우주산업 분야와 방위산업 분야를 통합한 사업체를 형성, 두 분야에서 모두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합병이 성사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방위산업체가 탄생할 수 있었지만 양측의 입장차이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전세계 국방비의 약 절반을 쓰는 미국도 통합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롭 그루먼, 레이시온도 여러 업체를 통합해 만들어졌다. 1993년 당시 미국 국방부 차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방산업체 고위직이 모인 만찬장에서 통합을 장려하는 만찬사를 한 바있다.‘ 마지막 만찬’으로 알려진 이 자리를 통해 방위산업체 통합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는데 미 국방부는 통합으로 인해 많은 예산절감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다. 통합을 장려하기 위해 국방획득사업 계약 과정에서 통합에 든 비용까지 반영해주기도 했다. 급속도로 진척된 미국내 방위산업 통합 정책은 1997년 통합이 과도하게 진행됐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가 록히드 마틴과 노스롭 그루먼의 통합을 막은 뒤 폐지됐다. 

이러한 통합의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을 내놓은 방위사업청에 방산시장의 경쟁을 줄여나가는 세계적 추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자 “전 세계 방산분야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업계는 생존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합병 등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세계 방산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업체인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이 현재와 같은 위상과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은 원가절감 등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국내 업체의 자발적인 원가절감 노력과 기술개발 등을 통해 품질 경쟁력을 확보해 업체 간 경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의 답변은 통합보다는 일단 업체들의 경쟁력부터 확보하는 게 우선이란 말로 해석된다. 그러나 방위 사업청이 분석한 해외 방산업체들의 성장비결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한 국내 방산업체 관계자는 방위사업청의 분석에 대해“글로벌 방산업체의 성장은 냉전 시기 각국의 높은 국방비 지출과 폭발적인 무기소요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 원가절감이 성장의 한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것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재래식 무기만 만들던 한국 방위산업이 항공기 같은 첨단 무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기술력이 많이 부족해 아직은 경쟁보다 육성에 집중할 때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서 필요한 건 방위사업청의 주장대로 국방획득사업 분야에서의 경쟁이 과연 업체들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인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만 죽인 전문화·계열화 폐지 

2009년 1월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폐지될 당시 방산업계의 충격은 상당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 했지만 구매자 독점체제의 좁은 방산시장에서 벌어질 무한 경쟁에 대한 우려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골칫거리였다. 2010년 10월 미래기획위원회가 발표한『국방산업 G7 미래전략』 보고서에도 이러한 문제점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보고서는“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로 인해 한정된 시장을 놓고 벌어질 기업 간 과열경쟁과 중복투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방산업체의 경쟁력 확보와 중복투자 방지를 위해 기업별 전문생산 분야를 할당해야한다”고 적고 있다. 예를 들어 제도 폐지 이전 전차는 현대로템이, 장갑차는 두산DST, 자주포는 삼성테크윈이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 폐지 이후 육군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는 3사가 모두 시제품을 제작해 경합을 벌였다. 결국 현대 로템이 수주에 성공했지만 잘못된 제도로 인한 중복투자·과당경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아직 연구개발 기술력이 부족한 국내 업체들이 한 분야에 집중하지 못해 개발능력이 분산됐다는 지적도 덤으로 따라왔다.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는 특히 중소방산업체들에게 쥐약과도 같았다. 미래위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폐지 이후 보호막이 없어진 중소방산업체들은 대기업과도 경쟁을 벌여야 했고 무자격 중소업체들까지 끼어들어 대기업에 종속된 부품업체로 전락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방위사업청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원가절감이나 실력있는 새로운 업체가 진입하는 효과 대신 기존 업체들만 괴롭히는 체계가 구축된 것이다. 

미래위 보고서는 또 “각종 경쟁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없이 제도를 폐지하는 바람에 방산 대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화를 가속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방위사업청이 만든 무한 경쟁 체제는 외려 방위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지난 정부가 강조했던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정책에도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방위사업청이 주장하는 경쟁의 효과에 대한 믿음은 과도하게 경제 이론에만 치중한 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전략학 전문가 피터 돔브로스키(Peter Dombrowski)와 정치학자 앤드류 로스가 공동 집필한 논문『군사혁신, 변환, 그리고 미국의 방위산업』에 따르면 미국에서 방산통합이 활발하던 시기에도 방산시장에 경쟁요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통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피터와 앤드류는 “경쟁이 주는 혁신의 인센티브는 전통적인 경제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경제 이론을 국방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국내 항공산업이 무한 경쟁 체제에 놓여 있었다면 T-50을 능가하는 항공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

방산통합의 두 가지 길 

한국에도 통합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실례가 있다. 바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한국항공)이다. 원래 한국의 항공산업은 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한항공 등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1999년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빅딜에 따라 대한항공을 제외한 3개 업체를 하나로 통합해 한국항공우주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비했다. 당시 정부가 항공산업을 통합한 이유는 업체들 간 중복투자를 막고 전략적으로 항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많은 빚을 지고 시작한 탓에 어려운 시기가 길었지만 지금은 국산 항공기를 해외로 수출까지 하는 국내 유일 항공기 체계종합업체로 성장했다. 

방위사업청의 경쟁 지상주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항공은 태어나선 안 될 업체다. 4개 업체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며 원가를 절감하고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존 4개 업체 경쟁체제로 갔을 경우 한국은 T-50을 뛰어넘는 우수한 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었을까?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업체의 연구개발 역량이 분산되고 대규모 생산 시설이 한 곳에 집중되지 못해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제트기 개발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여러 문제가 예상되는 방위사업청의 경쟁 심화 계획에 대해 방산업계 관계자들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하다. 바로 통합이다. 통합에도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전문화·계열화 제도와 같은 정책을 부활시켜 한 분야 당 하나의 업체만 두는 통합과 영국처럼 전체 분야를 하나로 묶어 거대 방산업체를 만드는 통합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 방산시장에서 ▲ 항공기 분야는 한국항공·대한항공 ▲ 유도무기 분야는 LIG넥스원과 한화 ▲ 방산전자 부문은 LIG넥스원과 삼성탈레스 ▲ 지상장비는 현대로템, 두산DST, 삼성테크윈 ▲ 수상함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STX조선 ▲ 잠수함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각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각 분야 당 여러 업체를 두는 대신 하나의 업체로 통합해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먼저 제시된다. 이러한 방식은 독일과 비슷하다. 독일은 항공기(EADS), 유도무기(MBDA), 방산전자(ESG), 지상장비(KMW), 잠수함(TKMS, 구 HDW) 등 분야 당 하나의 업체만 두고 국방획득사업을 추진한다. 

모든 방산분야를 하나의 방산전문기업으로 통합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이 방식에 대해 한 민간 방산전문가는 “한국 국방예산의 두 배 정도를 쓰는 영국도 BAE시스템즈로 방산역량을 집중해 대통합을 이뤄냈는데, 방산시장이 더 좁은 한국은 분야별 통합보다 영국식 통합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위산업 통합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 제기가 있는데, 바로 독점에서 오는 폐해다. 원래 국방획득사업은 구매자인 정부가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업체를 통제하기 쉽다. 그러나 단일 업체가 모든 방산시장을 독점할 경우 정부의 말을 듣지 않거나 경쟁자가 없어 품질경쟁력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단일 업체라도 강력한 제도를 통해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다”며 “통합이 완료돼도 국외도입 대 국내개발이라는 경쟁구도가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업체는 스스로 품질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무엇보다 방산업체는 민간업체고 돈을 벌고 싶어하기 때문에 우려가 제기되는 독점의 폐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모든 논의 앞서 경쟁 의미부터 재정립해야 

방산통합 외에도 무기체계의 특성에 맞춰 차별화된 맞춤식 경쟁도 제안되고 있다. 이 방식은 각 무기체계의 전략적 중요성, 시장 규모와 특성, 투자 규모 등은 물론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 등을 감안해 차별화된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방산분야를 통틀어 가장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항공분야는 독점을 허용하고 조금 덜한 유도무기나 방산전자는 제한경쟁을, 일반 군납물자나 IT분야는 완전경쟁체제로 가는 것이다. 속옷부터 전투기까지 방위산업이란 이름 아래 천편일률적인 제도 적용이 이뤄지는 한국 방산시장에서 이러한 방법은 업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제안한 정책이라고 한다. 

방위사업청은 이 제안에 대해 “방산물자의 특성·전략적 중요성, 안정적인 조달 및 품질보증에 미치는 영향과 기술발전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정된 특정업체로부터 조달하거나 1물자-다(多)업체 지정을 통한 제한경쟁 또는 방산물자 해지를 통한 경쟁조달이 이뤄지도록 추진할 계획”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현재 전문화·계열화와 같은 제도를 부활시킬 계획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방위사업청과 업계가 내놓은 해법이 모두 틀렸다는 의견도 있다. 박영욱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교수는 “방위사업청의 경쟁 촉진책과 업계의 방산업체 통합방안은 우리 방위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인 가격 중심 경쟁 체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 방위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경쟁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흔히 방위산업의 경쟁이라 하면 품질로 승부를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방위산업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주로 가격경쟁이 사업을 좌우한다. 저가 입찰 구조가 일반화된 한국 방산시장의 현실에서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건 결국 품질과 관계없이 저렴한 무기만 사겠다는 의미고 이는 필히 무기의 품질저하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국방획득사업 평가단계에서 점수배분은 기술평가 점수 80~90점, 가격 점수 10~20점 정도지만 기술 평가에 대한 변별력이 매우 빈약한 현실에서 업체들은 가격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품질경쟁이야말로 경쟁의 핵심이며 이러한 품질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정부의 방산정책이 절실하다. 또한 시험평가와 사업관리, 가격정책에 대한 실무자들의 전문성 확보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방위산업 경쟁력은 업체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국방·획득 기관들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박 교수의 말대로 국내 방산업체들은 기술 평가에서 변별력 있는 점수를 받지 못해 가격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 제안서에 예정가격 대비 60~80% 정도의 가격을 써내고 있다. 예를 들어 총점수 100점에서 기술 점수 배분이 80점 만점일 때 A업체가 77점, B업체가 75점을 받아도 가격 점수에서 A업체가 15점, B업체가 19점을 받으면 B업체가 총점에서 이겨 사업을 수주하기 때문에 업체들은 어떻게든 저가를 써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는 각종 무기체계 결함의 원흉이 되고 있다. 저가 입찰은 반드시 저가의 질낮은 부품사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위사업청의 계획대로 경쟁을 심화하면 업체들은 거의 이윤을 남기지 못 하는 가격을 써내거나 저질 부품을 사용해 무기체계의 질은 계속 저하될 것이 자명하다. 이는 곧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물에 가라앉는 장갑차, 기동 중 멈추는 전차, 추락하는 정밀유도무기로 국토 방위를 위한 전투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군단급 무인기 사업에서는 과도한 적자를 견디지 못한 방위산업체들이 입찰 참가를 거부해 유찰되거나 예정가격 대비 200% 수준의 가격을 적어내는 등의 사건이 벌어져 전력화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업계가 주장하는 방산 통합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예산절감을 이유로 계속 저가 입찰만 고수할 경우 통합된 단일 업체는 연구개발에 투자할 역량이 없어 부실화되고 이는 방위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어떤 산업이든 적절한 수준의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의 의미를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경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경쟁을 심화하든 방위산업을 통합하든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현대방위산업(The Modern Defense Industry)], 리처드 A. 비친거 편저, 정순목 역, 국방대학교 


“효율적인 경쟁과 역량 집중을 위해 통합” 
장 뤽 발레리오 EADS코리아 사장 

유럽 각국이 EADS로 항공산업을 통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EADS는 2000년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 항공(DASA), 프랑스 아에로스파시알 마트라, 스페인 카사(CASA) 등의 합병을 통해 탄생했고 현재 유럽 항공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합병은 업계가 주도했고 유럽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렇게 국경을 뛰어 넘은 합병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먼저 국제시장에서 경쟁에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흩어진 핵심 개발역량과 대형 생산시설을 집중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에 합병까지 이른 것이다. EADS뿐만 아니라 다른 방산분야에서 여러 나라 간의 범유럽적 협력은 주된 경향이다.

단일 업체가 항공산업 전반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나? 
에어버스, 아스트리움, 카시디안, 유로콥터 등이 결합된 EADS는 유럽 항공우주분야를 선도하는 대형 항공우주업체지만 ‘독점’하고 있다는 건 잘못된 표현이다. EADS는 아직도 유럽에서 주요 경쟁자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 유로파이터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여러 협력업체들이 다른 분야에서는 EADS의 경쟁자다. 

EADS로 항공산업이 통합된 결과 각국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이득을 얻고 있나?
EADS의 탄생은 유럽 곳곳에 흩어진 항공우주산업과 방위산업을 통합하는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EADS가 자리잡은 각 국가는 통합이 가져다 준 성공적인 결과를 통해 상업·국방 양쪽 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용이 확대된 것을 들 수 있는데, 2000년89,000명에 불과했던 근로자는 2012년 140,000명까지 늘었다. 또한 EADS는 수출을 통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의 무역 수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김동규 디펜스21+ 기자

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모 대도시에서 20년을 보냈다.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이메일 : ppankku@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semper

2012년 12월 15일 토요일

"박근혜 새누리당, 부패와 통합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14일자 기사 '"박근혜 새누리당, 부패와 통합했다"'를 퍼왔습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9회 인명진 목사 "젊은이들, 투표 많이 하세요"

대선까지 남은 기간 닷새,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 필요하다.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시킨다는 '현자의 돌'만이 요동치고 있는 대선후보의 지지율을 완전한 상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현자의 돌'은 부(副)일 수도, 만병통치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2012년 12월 현재 대한민국 정치판은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유신 시절과 군사 정권, 그리고 민주화를 겪으며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된 현실 정치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이의 '지혜' 말이다.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는 지난 13일 인명진 목사에게 '현자의 돌', 즉 '지혜'를 구했다. 2007년 12월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었던 그는 '차떼기당'이라는 오명(汚名)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정권창출을 이뤄냈다.

당시 인 목사는 금권 선거가 만연했던 한나라당을 쇄신하고, 당 대선후보 검증위원회를 통해 이명박 후보의 과오 120여 가지를 밝혀냈다. 그 결과 MB는 BBK를 비롯한 수많은 의혹들을 직접 해명하며 방어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펼쳐졌지만, MB를 향한 상대 당 후보들의 '어퍼컷'이 먹히지 않았다. 국민들은 '다 괜찮다. 경제만 살려 달라'며 MB에게 표를 선사했다. 먼저 치고 나간 한나라당 검증위 덕에 MB는 '대통령'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이철희 소장은 "목사님이 (한나라당에) 들어가셔서 당을 바꿔 놓은 것은 잘한 일"이라며 어떤 정당이든, 구태정치 공당의 체질을 바꾼 그의 활동을 높이 샀다.  그러나 인 목사는 "이명박 정부가 된 다음에 죄책감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인도적 지원조차도 막는 대북 정책, 불교와 겪은 종교 갈등, 용산참사, 그리고 300일 넘게 85m 상공 크레인에 올라가 있던 김진숙 씨 문제 등 87년 6월항쟁을 실질적으로 이끈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대변인 출신의 좌파 목사가 보기에는 마뜩잖았다.

인 목사는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인권 변호사의 길로 이끈 '선배'이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후에도 그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는 2003년 11월 조선족 데모 현장을 찾은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아니, 우리가 그렇게 고생해서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아직도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네요'라고 하면서 들어오시더라구요. (대통령이) 방명록에 글을 쓰는데, 몇 자 썼는데 펜이 안 나오는 거야. 대통령이 쓰는 펜인데 말이지. 그런데 그다음 말이 재미있어. '이 펜이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을 보니까 나하고 똑같네요.'"

한편, 인 목사는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전(前) 한나라당'에 대해 "부패하고 통합했다"며 자신이 윤리위원장으로 있던 5년 전보다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내가 윤리위원장을 했던 사람으로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거죠. 더 발전됐어야 하는데 도로아미타불 된 거 아닌가."  인명진 목사와 함께한 (이철희의 이쑤시개) 9회를 비교적 상세히 글로 옮겼다. 무엇보다 인 목사의 말투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다. (이쑤시개)를 듣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07년 대선의 막전막후를 재밌게, 그러나 곱씹듯 들어주길 바란다. 바야흐로 '현자의 돌'이 필요한 때다.(편집자 주)


▲ 갈릴리 교회 인명진 목사,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프레시안 자료사진

이철희 : (이철희의 이쑤시개) 아홉 번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이 벌써 13일이네요, 대선이 닷새 남았으니까. 19일 날은 선거운동 못 하잖아요.

서양호 : 그렇죠, (선거운동은) 18일 자정까지만 (할 수 있으니까요).

이철희 : 오늘 아주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요, 방송이나 밖에서 보면 90도로 인사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인명진 목사님. 사실 다른 수식이 필요 없는데요.

인명진 :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철희 : 짧게 이력을 말씀드리면,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내셨구요. 사실 윤리위원장 하시면서 당시 한나라당을 너무 많이 바꿔놓으셨는데, 그 바꿔놓은 것을 최근에 박근혜 후보가 다시 되돌려 놨습니다.

지난번 방송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방송국 대기실에서 잠깐 뵈었는데, 격려를 해주셔서 제가 너무 힘이 돼서 방송에서 소개해 드렸거든요.

서양호 : 목사님이 듣기에는 저희 방송이 약간 외람(猥濫)된 방송인데….

인명진 : 아니에요. 제가 최근에 사실은 이를 고쳐서 이쑤시개 꼭 가지고 다니는데(일동 웃음), 프레시안을 자주 보거든요. 그런데, 이쑤시개가 있어서 '어? 내가 가지고 다니는 이쑤시개가 여기 있네?' 하고 보니까 이철희 소장이 나오잖아요. 이철희 소장, 내가 아주 좋아하는 평론가인데 '무슨 이야길 하나?' 한번 듣다가 재미를 붙여서 시간만 나면 들어가서 듣고 있습니다.

이철희 : 고맙습니다.

서양호 : 잘 모르는 분을 위해서 제가 간단하게 (무릎팍도사) 식으로 준비했습니다.

1946년 6월 1일 충남 당진 출생. 올해로 예순여섯, 육십육! 20일 후면 예순일곱(67),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해에 출생하셨고, 소설가 이외수와 동갑!

인명진 : 호적을 늦게 올렸어요. 사실은 45년 해방둥이인데, 그래도 내가 일제 치하에 두 달 반 산 사람이예요. 모르죠? 일제치하, 일제치하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요새 사람들 모르지.(일동 웃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얼마나 험악하게 했는지….

이철희 : 두 달 동안 힘드셨습니다.

인명진 : 아이고, 두 달 반 동안 힘들게 살았어요.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이 노동자다"

서양호 : 어렸을 때 비교적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러다 장로대 신학대학원 2학년 때인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사건을 겪으면서 가난한 사람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노조 결성 저지하려는 기업(한영섬유) 측에 청부살인으로 판명 난 김진수 씨의 억울한 죽음을 보면서 노동 문제에 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빨랫비누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자 문제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이철희 : 그때부터 사실은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이 노동자다'라는 (생각으로) 활동하신 거 아니예요. 그때는 너무 어려운 때인데, 일종의 각성(覺醒)이?

인명진 : 그렇죠, 굉장히 어려운 때인데…. 나는 사회과학서적을 읽은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단순히 신앙적인 생각으로 '예수가 이 세상에 왔으면 지금 누구에게 갔을까, 누구를 가까이 했을까'라는 생각에…. 내가 목사가 된다는 사람인데, 또 '예수 믿는다는 것은 뭐냐', '예수 따라가는 거다', '목사는 다른 사람보다 예수를 조금 더 바짝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러면 노동자다'.

이렇게 해서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고 공장 갔어요. 그러니까 '위장취업'이죠.(일동 웃음) 정말 '위장취업'했어요. 남들은 다 좋은 교회 찾아가는데 나는 공장 가서 1년 동안 빨랫비누 만드느라고…. '넘버 원'이라는 가루비누예요, 면목동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거기 가서 신학(神學)을 다시 했죠.

이철희 : 그 사람들을 보면서 신학을….

인명진 : 그렇죠, 노동자의 언어도 배우고…. 근데 뭐, 노동자들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데 '왜 저러는가' (생각하면서…). 그럴만한 이유가 사실은 있는 거죠. 거기 가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는 줄 난 몰랐죠. 굉장히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난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거든요.

서양호 : 그렇게 빨랫비누 만들면서부터 운동권 생활로 들어가셔서 긴급조치 위반, YH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으로 10년 동안 3년에 걸친 4번의 옥고를 치르셨다.

인명진 : 도시산업선교회(도시와 산업 현장의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진보적 기독교 선교 단체)에서 13년 있었죠. 그 13년 동안 3년은 감옥에 있었죠. 네 번, 그래서 별이 네 개니까 대접받죠.(일동 웃음)

서양호 : 그러다 1986년 불혹의 나이, 마흔에 갈릴리교회 목사가 되십니다. 그다음 해 87년 6월항쟁을 주도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국본'이라고 하죠? 전체 국본의 대변인으로 맹활약! 그래서 그 당시 공안 당국에서 감옥 보낼 '0순위'로 꼽히십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때 부산 지역 대표였는데….

껄렁한 변호사, 노무현…"데모하라!"

이철희 :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인연이?

인명진 :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게 된 것은 KNCC(한국기독교협의회, NCC라고도 부름) 인권위원으로 있었을 때인데, 학생들이 많이 감옥에 가고 그랬어요. 부산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감옥에 간 시국사건이 생겼어요. KNCC 변호사를 선임해서 지원을 하는데,서울에 있는 변호사들이 서울 것도 많은데 부산까지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 부산에는 김광일 변호사와 이종록 변호사 두 분이 계셨어요.

이철희 : 김광일 변호사는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비서실장 지낸 분.

인명진 : 서울에서 변호사를 보내기가 너무 힘들어서 김광일 변호사에게 '부산에서 인권 운동, 인권변호사 할 사람 없는가?' 물어봤더니, 김광일 변호사가 '글쎄, 하나 있긴 있는데 껄렁거리고 또 요트 타고 일본 다니고 하는 사람 하나 있긴 있는데…. 그 사람 할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일동 웃음) 그래서 '한번 소개를 해봐라'. 그런데 어느 날 데리고 왔는데, 껄렁껄렁하고. 그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 될 줄은 몰랐지.(일동 웃음)

이 분이 사실은 부산상고 출신이니까 그때 돈 많이 벌었대요, 그때. 취미가 요트 아닙니까. 요트 타고 일본 다닌 거 대통령 선거 때 문제가 좀 되기도 했지만·…. 인권변호사를 처음 하게 된 게 KNCC에서 일을 맡겨 가지고 (하게 된 거예요). 열심히 많이 했죠, 여러 사건 맡았죠. 그러면서 사실은 학생들, 시국사건 변론하고 하면서 의식화가 된 거죠. 물론 잠재적으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애정도 있었고, 의협심도 있었고 그런 분이었는데.

6월항쟁 때 국민운동본부 지방 조직을 하는데, 대개 인권위원회 중심으로 했거든요. 그러니 이 분이 말도 잘하고 하니까 부산 집행위원장이 됐고, 문재인 변호사는 집행위원이 됐고. 그래서 서울에서 국민운동본부 전체회의를 하면 나야, 뭐 본부 대변인이니까 굉장히 높은 자리에 앉았고.(일동 웃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 집행위원장으로 지방 집행위원장이니까 저 밑에 앉았고, 문재인 씨는 오지도 못했고.(일동 웃음)

이철희 : (문재인 변호사는) 저 끝에 보이지도 않는 거였죠.

인명진 : 그런데 세월이 지나서 한 분은 대통령을 지내셨고, 또 한 분은 지금 대통령에 나온다고 하니까 감회가 무량하죠.

▲ 1987년 6월 27일, 시위 중 사망한 이태춘 장례미사 후의 거리 행진. 영정을 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옆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노무현재단 제공

6월항쟁이 끝난 뒤에 9월달에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났어요. 울산의 현대중공업, 거제의 대우조선소 등. 그래서 서울 본부에서 부산에 있는 노무현 집행위원장 보고 '울산에 가 봐라' 했더니, (노무현 변호사가) 마이크 잡고 '데모하라'고 했단 말이야.(일동 웃음) 그래 가지고 우리는 놀래가지고, '어떻게 변호사가 법 안 지키고 데모하라고 그러느냐'. 그래서 '삼자개입금지'로. '삼자개입금지'라는 게 박정희 정권 때 산업선교회 때문에 만든 것이거든요. 우리가 계속 개입을 하니까.(일동 웃음) 우리는 안 잡혀가고, 목사 잡으려고 만든 법인데 노무현 변호사가…. 당시 잡혀가지는 않았어요, 입건만 됐고.

그런데 또 대우조선소에서 또 큰 파업이 났어요, 사람도 하나 죽었어요.(1987년 8월 22일 이석규 열사 사망) 그래서 우리가 파견한 거예요. 노무현 변호사랑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참여정부), 그때 내가 데리고 있던 부대변인이거든.(일동 웃음)

이철희 : 진짜 높으셨네요.

인명진 : 높았다니까. 이 분(이석규 열사) 장례를 지내는데, 우리는 '망월동으로 모셔야 한다' 그러니까 정보부에서 유족들을 꼬셔가지고 '가족장을 하겠다'고 해서 장례를 강행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무현·이상수 이런 사람들이 장례 차 앞을 가로 막아가지고. 그래서 '장사법(장식(葬式) 방해 혐의)'로 노무현·이상수가 구속이 된 거예요. 내가 면회 가서 우유 몇 개, 계란 몇 개 넣어주고 왔지. 영치금도 넣어줬을 거야, 아마.(일동 웃음)

서양호 : 목사님이 의식화를 시키셨네요.

인명진 : 의식화는 아니고, 자기네들이 현장에 가서 생각이 바뀐 거죠.

이철희 : '장사법' 위반이면 일종의 파렴치범인데….(일동 웃음) 

인명진 : 장사지내는 것을 방해한 거니까. 그런데 대통령 후보 검증할 때 안 걸렸는지 모르겠어.

'육법당' 윤리위원장 맡다…"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서양호 : 그로부터 20여 년간 목회 활동에 매진하다가 2006년 10월 강재섭 대표최고위원, 황우여 사무총장의 간곡한 제안으로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맡으셨습니다. 인 목사님께서 2006년 11월 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별로 좋아하는 정당도 아닌 한나라당의 윤리위원장을 맡았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비판적으로 한나라당을 보던 분이 윤리위원장을 맡으셨다.

그러면서 골프를 친 의원들을 징계하고, 김용갑 전 의원의 '광주 해방구' 발언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의원을 징계하고, 2007년 '돈 공천'으로 물의를 빚은 안산 단원갑 당협위원장을 제명하면서 17대 대선 앞두고 한나라당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회초리 역할을 톡톡히 하셨습니다.

이철희 : 편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정당은 옳고 그름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아하는 정당이 있을 수 있고 싫어하는 정당이 있을 수 있지만, 민주당은 착한 편이고 새누리당은 나쁜 편으로 선과 악의 문제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명진 : 구성원을 보면 우리가 좀 평가할 수 있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으로 갔는데, 가서 보니까 나하고 옛날에 싸우던 사람이 다 있는 거예요. 나 감옥 보내던 사람들. 특별히 한나라당에 검사들이 많잖아요.

이철희 : 그래서 옛날에 (한나라당을) '육법당(陸法黨,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 법대 출신 법조인이 세운 정당)'이라는 말을….

인명진 : 그렇죠, 검사들이 아주 많거든요. 거기 가 보니까 옛날에 인연이 직간접적으로 있었던 사람들 아니예요. 그러니 사실은 내가 한나라당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 아닌데….

강재섭 씨가 대표가 되면서 약속을 했대요. 윤리위원장은 밖에서 데리고 오겠다. 안에서 해보니까 안 되거든요. 자기네들끼리 도저히 안 되니까 '밖에서 데리고 오겠다', 그러고서는 강재섭 대표가 보수 시민단체에다가 추천 의뢰를 했대요. 그런데 누가 장난삼아 '인명진 목사 어떠냐'라고 해서 강재섭 대표가 나한테 사람을 보냈어요. 지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예요, 그때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할 때.

그래서 와서 나보고 얘기하길래, '당신, 내가 누군지 알고 왔느냐'.(일동 웃음) '내가 가면 당신들 혼날 거다. 나는 그렇게 우물우물하는 사람 아니다. 나한테 걸리면 용서 없다. 간단한 사람 아니다. 지금은 나를 데려갈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나 때문에 고생할 거다'라고 했더니, 박재완 비서실장이 '안 되겠네요' 그러고 갔다.

박재완 비서실장은 경실련(2004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의장) 할 때도 알고, YS 문민정부 때 박세일 교수(1994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밑에서 비서(1994년~1996년 대통령 비서실 서기관)도 했거든요. 내가 박세일 교수하고도 친하니까 사무실 놀러 가면 박재완 씨가 있잖아요, 그래서 아는 사이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가서 강재섭 씨에게 보고를 한 거예요. 나는 강재섭 씨 모르는 사람이예요,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이예요. '가서 보니 데려오면 안 되겠습니다. 사람이 우리가 다 아는 대로 간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강재섭 씨가 그 얘길 듣고 '그러면 더 데려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황우여 씨가 당시 사무총장인데, 교회 장로니까 (강재섭 씨가) '인명진 목사를 아느냐'라고 물은 거야. 내가 문민정부 때 감사원의 부정방지대책위원회 감사위원이라는 것을 했어요, 이회창 씨가 15대 감사원장일 때(1993년). 그런데 그때 이회창 씨가 황우여 씨를 감사원에 데리고 와서 같이 부정방지대책위원회 감사위원을 했어요. 그러니 나랑 잘 아는 거지. (1993년~1996년) 5년을 같이 했어요.

그러니까 (강재섭 씨가) '사람이 어떠냐'라고 하니까 (황우여 씨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윤리위원장으로 적합한 사람이다'라고 됐겠지. 강재섭 씨가 '당신은 그러면 당사로 출근하지 말고, 그 교회 가서 어떻게든 데리고 와라. 데리고 오는 날까지 당사에 오지 마라'. 이렇게 돼서 황우여 사무총장이 그때부터 우리 교회로 출근을 한 거예요.

서양호 : '삼고초려'가 아니라 '출근초려'네요.

'어당팔' 황우여…"어떻게 소금이 제 맘에 맞는 데에만 들어가느냐"

인명진 : 한 달 동안을 새벽 기도 나왔죠. 수요일 날 나왔죠, 일요일 날 나왔죠. 그런데 왜 그렇게 나오게 됐느냐 하면, 내가 핑계를 댔어요. '난 교회 교인들 때문에 못 간다.' 그때 한나라당은 '차떼기당' 아니예요.

그런데 우리 교회가 유명한 교회예요. 본래 전교조를 우리 교회에서 만들었어요. 옛날에 이수호 씨(현재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장소를 못 구하니까 우리 교회 와 가지고, 장소를 빌려달라고 해서 우리 교회에서 첫 총회를 한 거예요. 출범이 거기예요.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 전교조 사람도 많지, 민주노동당 사람도 많지, 민주당 사람도 많지, 내가 참 그런 교회에서 목회하는 게 쫓겨나지 않는 게 다행일 만큼 우리 교회가 간단한 교회가 아니거든요. 한나라당 지지하는 사람 몇 되지도 않는데….

그런데 내가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으로 거론이 되니까 '내가 가야 될까'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 차떼기당에 목사님이 어떻게 가느냐'라는 말이야. 교회 가문에서 쫓겨나게 생겼어요. '(목사) 그만두고 가라', 이런 정도로 심하니까. '내가 이 교인들 때문에 못 간다'라고 하니까 황우여 씨가 장로 아니예요, 그러니까 교회 형편을 아는 거죠. 그러니까 와 가지고 (교회) 장로 이런 사람들을 꾀기 시작하는 거예요, 설득을 하는 거예요.

결국은 마지막에 사람들을 다 꾀었는데, 어떻게 꾀었는가. '아니, 교회가 뭐냐? 예수님이 소금이라고 했는데, 무슨 소금이 나는 여기는 안 들어가고 저기는 들어가겠다, 그런 소금이 있느냐. 필요하다는 데에는 다 들어가야지. 된장국에 필요하다면 된장국에 들어가야 하고, 미역국에 필요하다고 하면 미역국에 들어가야 하는 거지. 어떻게 소금이 제 맘에 맞는 데에만 간다고 하는 게 소금이냐.'

이철희 : 그런 논리를 편 거예요?

인명진 : '우리 한나라당에서 목사님이 필요하다는데, 더군다나 불교도 있고 천주교도 있고 다 있는데 그래도 개신교 목사가 우리 당에 필요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윤리나 도덕 문제를 와서 바로 잡아달라고 하는 건데,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목사가 해야 할 일 아니냐'라고 설득을 했어요. 교회 교인들이 다 듣고 보니, 그렇잖아요. 그래서 '조건부로 가시되, 가서 수틀리거든 나오십시오'라고 해서 우리 교회 허락을 받고 (갔어요). 투표했어요.

이철희 : 황우여, 지금 새누리당 대표죠? 별명이 '어당팔'이라고 하더라구요. '어리버리 보여도 당수가 팔단'이라는데, 그런 진면목이 있네요.

'굴러들어온 돌', 시시비비를 가리다

인명진 : 가서 일을 하는데 강재섭 대표에게 조건을 한 가지 걸었어요. '절대로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면 안 된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섭하면 안 된다. 간섭하는 순간, 나는 나간다' 이랬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하라'. 강재섭 씨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에요.

한나라당이, 정당이라는 데가 간단한 데가 아니잖아요.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모든 정당이 그렇잖아요. 김용갑 씨가 한 얘기예요.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고 그러느냐.' 내가 첫 번에 가서 김용갑 씨(에게) 시비 걸었거든요. '광주를 해방구라고 한 데에 대해서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이철희 : 시비를 건 게 아니고, 시비를 가리신 거죠.

인명진 : '이건 당에 대해서 중대한 명예를 실추한 거다.' 그때 보니까 호남의 지지를 받지 않고는 한나라당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호남 비하 발언을 하는 순간, 호남하고는 끝이잖아요. '그래서 이 분을 다뤄야 선거를 치를 것 같다. 앞으로 한나라당에서 호남을 비하하는 말을 못하게 해야겠다'하고 (시비를) 걸었어요. 고생 많이 했어요. '진보가 보수에게 칼을 들이민다'는 등, 이 분이 막 그러고.

서양호 : 김용갑이라고 하면 그 당시 한나라당의 본류죠.

인명진 : 그렇죠. 당에서 난리가 났어요. '저런 사람 누가 데려 왔느냐. 강재섭, 너 어떡하려고 저런 사람 데려왔느냐. 내보내라, 당장!' 강재섭 대표가 최고위원 회의에서 굉장히 많이 몰렸었대요. 그런데 나는 당사에는 한 번도 안 갔다.

이철희 : 어쨌든 강재섭 대표는 목사님을 끝까지, 그래도….

인명진 : 끝까지 지켰어요. (강재섭 대표는) 나한테 한 번도 그런 내색도 안 했다.

이철희 : 그렇다면, 박근혜보다 훨씬 낫네요.

인명진 : 아, 박근혜 후보는 내가 만나 본 정치인 중에 아주 괜찮고 훌륭한 분이에요.

이철희 : 아니, 왜요? 제가 왜 그 말씀을 드리느냐면, 박근혜 후보는 김종인 위원장 모셔다 놓고 '팽' 시켜 버렸잖아요.

인명진 : 네, 하여간 뭐….(일동 웃음) 말조심해요, 아직은 분위기가 안 그런데….

그때 나는 당을 다루려면 조직 가지고도 안 되고, 다른 것 가지고도 안 된다. 언론하고만 상대했어요. 그러니까 (한나라당 당사에) 윤리위원장 자리에 있어도, 한 번도 자리에 가서 앉아 본 적도 없어요. 기자들하고만 (상대)했는데, 기자들은 좋지. 내가 기삿거리 주니까. 순진한 목사 하나 와서 기삿거리 주니까 기자들은 신 났고, 당에서는 '저 순진한 목사가 와가지고 기자들에게 놀아난다', 이러는 거예요.

그런데 한참 지난 다음에 기자들도 '어허, 우리가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 같다'라고 눈치 채는 사람이 생겨났고, 당에서도 '저게 보통 아니다'라고 말이야. 그래서 강재섭 대표도 나중에 얘기 한 거예요. '어떻게 지금 몰아내느냐. 저 사람 몰아내면 우린 선거 끝이다.'

내가 칼춤 췄죠. 내가 가서 보니까 한나라당(대통령 후보)에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인데 '이 사람들 가지고는 도저히 본선에서 이길 자신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씨 병역 문제 때문에 지지 않았어요. 어쨌든 내가 윤리위원장으로 갔는데, 윤리적인 문제로 또 실패를 한다?

솔직히 얘기해서 노무현 정부, 서툴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로 어설프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준비 안 된 정권이 또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사실은 있었어요. 그런 생각이 정말로 있었어요.

MB, 검증 항목만 120개…"쾌재를 불렀다"

그래서 강재섭 씨를 만나서 '검증위원회를 만듭시다, 당에서'. 그랬더니 '무슨 소리냐', '우리가 먼저 검증을 하자, 두 후보를 놓고…'. '(강재섭 씨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설명을 했어요. '우리가 스스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막판에 가서 상대방이 다 검증할 텐데 또 정권창출 못 한다. 검증위원회 만들자.' (강재섭 씨가) 최고위원회 가서 그 얘기를 하니까 '자해 행위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그래서 나 윤리위원장 그만둔다고 했어. '틀림없이 이거(검증위원회) 안 하면 윤리 문제로 정권 다시 못 찾아올 텐데, 내가 무슨 책임을 역사적으로 지겠느냐. 난 윤리위원장 안 하겠다', 이렇게 되니까 (강재섭 씨가) '그러면, 해보자'.

그런데 박근혜 대표가 얼른 받았어요. 검증하자고 하니까 자기보다는 이명박 쪽이 훨씬 걸릴 게 많았던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박근혜 캠프에서 얼른 받더라구요. 이명박 후보는 밍기적 밍기적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그쪽도 설득을 했어요.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다 걸러내서 세탁을 해야 하는 거지. 막판에 나오면 감당 못 한다.' 사실은 BBK 같은 것도 미리 터졌으니까 우리가 다 얘기했으니까 나중에 막판에 터져 나왔어도 '저 얘기, 옛날에 다 끝난 얘기 또 하느냐!'라고 국민들이 그러니까. 만성이 되어 가지고….

서양호 : 예방주사 성격이 있었던 거군요.

인명진 : 너무 재밌는 것은, 검증을 시작했습니다. 양쪽 캠프에서, 야당에서 우리가 몰랐던 것 다 (쏟아졌다). 이명박 후보는 한 120가지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검증 항목이….

이철희 : 정리를 쭉 해보니까?

인명진 : 온갖 게 다 나온 거야. 나는 뭐, 쾌재를 불렀지. '야, 이거 나올 것은 다 나왔다. 마지막에 가더라도 더 이상 나올 건 없다.'

▲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후보의 공보물, '이명박근혜'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검증위원회' 안 거친 박근혜, 대통령 될 수 있을까?

이철희 : 박근혜 후보는 몇 가지?

인명진 : 내가 그것은 지금…. 현재 후보이기 때문에 얘기하기가 상당히…. 기억이 없어요.(일동 웃음) 박근혜 후보 검증 자료 내가 다 태웠어요.(일동 웃음)

사실은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만 집중을 하니까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것은 그냥 남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다 봤어요, 정말로 갖다가 다 봤어요. 이틀 저녁 삼일 낮을 내가 다 읽었는데, 그러고는 '이것은 안 되겠다'라고 해서 다 불태웠어요.

이철희 : 그래도 태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인명진 : 아니에요, 소각했어요.

이철희 : 혹시 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인명진 : 아니에요. 그건 없어요, 다. 그래서 잊어버리고 지웠어요. 내가 그래서 박근혜 후보의 문제가 뭔지는 다 잊어버렸어요.(일동 웃음)

이철희 : 어허, 이거 참….(일동 웃음)

인명진 : 박근혜 후보가 이번에 대통령이 되면, 내 덕인 줄 알아야 해요.(일동 웃음)

이철희 : 혹시 또 모르니까,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명진 : 아냐, 아냐. 당에 남아 있는 거 내가 다 가져왔어.

이철희 : 아뇨, 저는 이번 대선에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니고 혹시 또 목사님께 위해를 가할까 봐….

인명진 : 검증청문회를 하는데 안강민 씨(2007년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 위원장)는 '우리끼리 그냥 하고 말자. 결과만 발표하자'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KBS·MBC·SBS·YTN 모든 방송을 다 시킨 거야.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잘 됐다. 저거 아주 국민들에게 다 까발리면, 자기들끼리 까발리면 국민들이 정체를 다 알고 진절머리낼 거다'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나 이게 우리끼리 하는 검증인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냐. 변명하는 기회를 주는 것 아니에요. 하루 종일 방송 3사·YTN까지 계속해서 변명, 그동안 국민들이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을 후보가 스스로 다 변명하는 변명의 자리를 만들어 줬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난번 대통령 선거 이긴 것은 검증위원회 때문이에요.

이철희 : 이번엔 검증위원회 안 했는데….

인명진 : 이번엔 안 했죠.

이철희 : 결과가 예상이 되네요, 그러면….(일동 웃음) 목사님이 들어가셔서 당시 한나라당을 바꿔 놓고 한 것은 사실 잘하신 거예요.

인명진 : 그렇죠?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우리 사회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아닙니까. 이렇게 새롭게 됐다는 것은, 어떤 당이었든 의미가 있는 일이죠.

서양호 : 운동권 목사로써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도 대단하지만, 한나라당이 목사님을 수용한 그 자세는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이철희 : 대개 운동권 출신들이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 들어간다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대개 먹혀 버리잖아요.

'변절자의 자식'이라는 말 안 듣게 하려고…

인명진 : 그런 생각은 하나도 가지지 않고, 밀려서 들어간 거예요. 사람이라는 게 얼굴맞대고 얘기를 하면 이념과 신념과 관계없이 견디기가 참 힘들거든요.

감옥에서도, 옛날에 중앙정보부에서 수사를 받을 때에도, 2개월을 받았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때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2개월 동안을 밤낮으로 수사를 받아 봤어요.

서양호 : 목사님도 고문을 하나요?

인명진 : 그럼요, 고문하죠. 그런데 고문할 때 제일 힘든 게 뭘 것 같아요? 이근안 같은 사람? 이근안 같은 사람은 하나도 무서운 사람이 아니에요. 칠성판에 올려놓고 그런 사람은….

이철희 : 혹시 잠 안 재우는 거?

인명진 : 아니죠. 회유하는 거. 그게 제일 어려운 사람이야. '이 새끼야' 그러면서 막 때리고 하는 사람한테는 정신이 딱 들지만, '굽히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와 가지고 '목사님, 그냥 좀 편하게 잘 사시죠. 그렇지 않은 분도 많이 계신데, 뭐. 집에 가보니 딱합디다. 목사님, 가난한 사람, 밖에 있는 사람 생각하지 말고 집에 있는 가난한 애들이나 좀 잘…. 가택 수사하러 가보니, 이불에서는 냄새나고 집에서 연탄가스 냄새나고곰팡이 냄새나고…'.

나는 가택 수색 때문에 굉장히 덕을 본 사람이야. 운동권 서적 한 권이 없었다. 가져올 게 없는 거야. 옛날부터 글 쓰는 것 안 하고, 사진 찍지 않고. 그러니 뭐, 사진을 가져올 게 있는가 글 쓴 걸 가져올 게 있는가. 옛날에 감옥 가서 고생하신 분, 글 써가지고 그 글 가운데 꼬투리 잡아서 며칠씩 고문당하고 했는데…. 난 글 쓴 게 없으니까, 지금까지도 글 안 써요. 글 안 쓰지, 사진 안 찍지. 사진 찍으면 사진 찍힌 놈 다 불러다 조사하니까 그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철희 : 그런데 어떻게 회유에 안 넘어가셨어요?

인명진 : 자식 생각하고 안 넘어갔죠.

이철희 : 햇볕 정책이 무서운데….

인명진 : 제일 무서운 거야, 햇볕 정책이 무서운 거예요. '내가 여기서 넘어가면 우리 집 애들이, 언젠가는 저거 변절자의 자식이라고 할(손가락질당할) 거다.' 그 생각하고, 아이들 생각하고. 아이들의 일생에 대해서 내가 이 아이들에게 뭐를 제대로 해주지 못하지만, 내가 노동 운동하고 가난하게 산 사람이니까. 유치원을 보냈겠어, 피아노 학원을 보냈겠어, 과거를 시켰겠어요. 돌잔치를 해줬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집 애들이 지금도 '나는 돌 사진이 없냐, 백일 사진도 없느냐' 그러잖아요. 그래도 내가 이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내가 살아왔다'. 그 말 하나를 내가 남겨줘야겠다. '저게 변절자의 자식이다', 평생 동안 그런 굴레를 씌우면 안 되겠다. 그걸 가지고 회유를 견뎠는데, 가장 어려운 게 회유예요.

서양호 : '하나님, 또는 신앙의 힘이다' 그러실 줄 알았는데…. 목사님, 솔직하시다.

인명진 : 거기서 하나님 생각 안 나지, 거기서….(일동 웃음)

'인명진'이 도와서 대통령 된 MB, 그러나…

그런데 강재섭 씨가 2007년 대선도 이겼지, 2008년 총선도 이겼지, 그랬는데도 이명박 정부에서 쳐다보지도 않잖아요.

서양호 : 목사님도 사실은 이명박 같은 한나라당 본류가 아닌 변화라고 하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게 한 훌륭한 토대를 만든 분인데,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인명진 : 자리라는 것은 옛날부터, YS 문민정부에도 이런 저런 얘기가 있었지만 거절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된 다음에는 내가 죄책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나 주변 사람 들은 인명진이 도와서 자기가 대통령이 됐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해요. 안 해, 진짜 안해요. 내가 5년 겪어 보니까 안 해요.

이철희 : 검증을 좀 덜 하셨네.

인명진 : 유일하게 나 스스로만 내가 이 정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어떤 때는 나 스스로가 우스운 거예요. 상대방은 안 그런데, 왜 내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나 책임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인수위원회 하는 거 보니까 안 되겠어요. '오뤤지' 하는 분 데려다 놓고 이러는데, 안 되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내각을 하는 것 보니까 큰일 났구나. 윤리위원장 때니까 이상득 씨를 만났어요. '국회의원 나오지 마라. 한집안에 동생이 대통령 나왔으면, 그 이상 뭐가 있느냐. 조용히 사라지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명백이가!'.(일동 웃음) 내 그때 이분이 경기도 의왕시(서울 구치소)로 가실 줄 알았어, 그 소리 하는데….(일동 웃음)

그러니까 요지는 이거예요. '내가 먼저 정치를 했다. 이명박 득 본 것 없다. 동생 득 본 것 없다. 내가 이번 대선에 얼마나 많은 일을…. 내 이 정부에 지분이 있다'라고 생각하시더라구, 이 분이….

이철희 : 그럴수록 사실은 좀….

인명진 : 그럴수록 물러나셔야 하는데, 이 분이 그러시더라구요. 그때부터도 계속 얘기했다. 그때 마침 노건평 씨 일 있고 그럴 때라 '이것을 반면교사로 생각해야 한다. 5년 후에 누가 또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라고 말이야. 목사 양심이어서 그런지…. 이 정부에 대해서 내가 부담스럽게 책임을, 죄의식을 느끼고. 이런 정권을 내가 도왔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말이지.

▲ 인명진 목사는 현재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회장을 맡고 있다. 북민협은 지난 10월 5일 2억 6000만 원 상당의 밀가루 500t을 북측에 지원했다. ⓒ연합뉴스

특별히 나는 5년 동안 대북 문제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요, 이명박 정부하고. 애들이 다 굶어 죽잖아요. 안보 이런 것은 철저하게 해야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좀 해야 한다. 아이들 굶어 죽고, 영향 부족하고 그러면 언젠가 통일될 텐데 이 아이들 어른 되면 앞으로 사람 구실도 못 한다는 것 아니에요. 유엔 얘기가 세 명 중 한 아이가 그렇다는 것 아니에요. 성인이 돼도 사람 구실 못한다. 통일되면 건강한 노동력, 건강한 국민, 이래야 통일 비용도 줄어들 텐데…. 계속해서 그럼, 남쪽 사람은 병약한 사람들 뒤치다꺼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이거죠. 멀리까지 생각할 것도 없이 당장 인도적인 면을 보더라도, 눈이 와서 산짐승들 먹을 것 없다고 헬리콥터로 먹이도 뿌리고 하는데 몇 km 뒤에 북방한계선 넘으면, 휴전선 넘으면 북한의 주민들이 굶어 죽는데…. 그러면 남쪽의 새나 개, 멧돼지보다 북한 동포들이…. 동물이 굶어 죽는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이철희 : 그런데 줄기차게 말씀했는데도, 줄기차게 안 들었나요?

인명진 : 줄기차게 얘기했죠. 청와대 비서실 들어가서 책상을 뒤엎은 때도 있었어요. 잔인하다 말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이철희 : 그런데도 안 들어요?

인명진 : 안 들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데…. 사실은 북한 주민들 영양실조, 특별히 어린 아이들 이게 먼 훗날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 그 책임을 이명박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도 들고.

"MB 정권, 죄책감이 들었다"

또 하나는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불교와의 갈등, 있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계속해서 불교 쪽과 같이 다니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애를 썼어요.

그다음에 용산참사, 장례를 1년 가까이 못 지냈잖아요. 내가 이것도 나섰어요. 정부가 까닥도 하지 않는 거예요. 1월달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5월, 6월 반년이 지나도록 누구 하나 나타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용산구청 직원하고 용산경찰서 담당 형사하고만 나타나는 거예요. 책임이 없는 거예요. 서울시도 책임 없고 정부도 책임 없고, 정부는 서울시 책임이라고 하고 서울시는 업자들 책임이지 우리들 책임이 아니라고 하고. 그래서 내가 가서 '(책임) 누구냐, 나와라!'. '사람이, 국민이 죽어서 몇 개월 동안 장사 못 지내고 있는데 책임이 없다는 게 무슨 소리냐, 누구냐!' 그래 가지고 내가 어떤 사람 끌어내서 장례위원회하고 협상을 해서 그걸 풀었어요.

또 김진숙, 크레인 올라갔을 때도 제가 역할을 했습니다. 이건 얘기가 아직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마는, 유성진이라고 개성공단에서 (북에) 잡혀갔었던 현대아산 근로자 있잖아요. 그 문제도 내가 석방을 도왔잖아요, 북과 교섭을 해서…. 내가 이명박 정부에서 정말 궂은일은 다 했어요.

이철희 : 많이 하셨네요.

인명진 : 그것은 죄책감 때문에 그랬어요.

이철희 : (이명박 대통령) 재임하면서, 아직 퇴임한 거 아니니까 한번 따로 보셨어요?

인용진 : 아니죠. 한 번도 안 만났어요.

이철희 : 밥도 한 끼 안 먹으셨어요?

인명진 : 그래도 이해는 합니다. MB 대통령이 자원외교 때문에 외국을 많이 다니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이 없지.(일동 웃음)

이철희 :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사람이 그러시면 안 되지.

서양호 : 한나라당 쇄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명박 정부가 탄생할 수 없었을 텐데….

인명진 : 아마 내가 굉장히 불편했을 겁니다, 그 분이….

이철희 : 사실 대통령 되기 전에는 편하게 지내셨을 거 아니에요. 개인적으로 잘 모르셨어요?

인명진 : 박근혜 후보하고도 그렇고,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고 모르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박근혜 후보 쪽에서 굉장히 오해한 것은 '내가 목사고 (MB가) 장로기 때문에 MB를 도울 거다'. 그리고 MB를 돕기 위해 내가 갔을 것이다, 밖에서도 저 사람이 목사니까 MB를 도왔을 것이다 그러는데, 나는 이명박 대통령 모르는 사람이에요. 서울 시장할 때도 공적인 자리에서 만난 것 말고는, 내가 이 분을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아니에요.

"인간적인 노무현, 힘없는 노무현"

이철희 : 인간적으로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훨씬 더 가까이 지내신 거네요?

인명진 : 그렇죠. 인간적으로 훨씬 노무현 대통령이 가까운 분이죠. 또 박근혜 후보와도 개인적으로 만나서 얘기를 해 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철희 : 언뜻 목사님께 들은 기억이 났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시절 교회에 찾아오신 적이 있다고. 참 감명 깊게 들었는데….

인명진 : 네, 그분이 참 깜짝 놀랐는데…. 대통령 되신 다음에 서울조선족교회라고 있어요, 구로동에 있는. 서경석 목사가 담임이고, 제가 당회장인데. 그 사람들이 불법체류 문제 때문에 농성을 했어요. 서경석 목사가 유인태 씨가 정무수석비서관 할 때였는데, '노무현 대통령 한 번 오시라'라고 계속 그런 거예요. 나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노 대통령이 무슨 일인지 거기를 오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내가 법적으로 그 교회 책임자니까 나 보고 오라고 하니까 갔어요. 2003년 11월 29일인데, 정말로 이 분이 오셨어요. 관용차를 타고 온 게 아니라, 일반 승용차 타고 오셨어요. 아주 간단하게 경호실장하고, 몇 사람하고 오셨어요. 조그만 방에 앉았는데, 만나자마자 '아이고, 선배님!' 이러는 거예요.(일동 웃음) 내가 하도 놀라가지고, 국본 때 하던 말을…. 노동, 인권에 눈을 뜨게 된 계가가 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그때는 내가 먼저 했던 사람이니까.

'아니, 우리가 그렇게 고생해서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아직도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네요'라고 하면서 들어오시더라구요. (대통령이) 방명록에 글을 쓰는데, 몇 자 썼는데 펜이 안 나오는 거야. 대통령이 쓰는 펜인데 말이지. 그런데 그다음 말이 재미있어. '이 펜이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을 보니까 나하고 똑같네요.'(일동 웃음)

서양호 : 마음 아프다.

인명진 : 그 말에 내가 맘이 짠하지. '아니, 대통령께서 그런 말씀 하시면 어떡합니까. 잘하세요. 힘내서 하세요.' 내가 옆에서 그랬죠.

조선족이 (법적으로는) 외국 사람 아닙니까, 중국사람. 외국 사람이 데모하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거긴 노동부 장관도 오면 안 되는 자리죠. 그런데 이 분이 파격적으로….

이철희 : 조금 과격하게 대비를 시키자면 외국인인 조선족이 힘든데 찾아가는 대통령이 있는 반면에, 내국인 빈민을 그냥 참사로 몬 대통령이 있고, 차이가 있네요?

인명진 : 정운찬 (총리) 보내지 않았습니까.(일동 웃음)

이철희 : 네.

인명진 : 자꾸 나쁘게만 얘기하시지 말고.

'부패'와 손잡은 새누리당, 쇄신 1호는 '박근혜'?

이철희 : 목사님은 정말 따뜻하신 것 같아요. 비판 하시면서도 너무 격하게 내몰진 않으시는 것 같아요. 새누리당이 그때 좀 바뀐 게 지금까지 유지되면 좋았을 텐데요, 많이 다시 돌아가 버렸어요. 이름은 다시 또 새누리당으로 바꿨는데, 정신은 조금 더 목사님 윤리위원장 하시기 이전으로 돌아가 버렸어요.

인명진 : 이건 뭐, 객관적인 사실이죠. 새누리당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의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한 한광옥 씨, 또 기획특보 김경재 씨 이런 분들 있잖아요. 또 몇 사람들 다시 입당한 사람, 이 분들이 다 부패 혐의로 징계 됐다든지 출당된 사람이 복당이 된 거예요.

물론 새누리당이 동서화합 차원에서 옛날에 김대중 계(동교동 계) 분들이 들어오신다, 이런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또 헤쳐 모여니까 굉장히 좋은 것으로 봐요. 한나라당에 있었던 사람들은 또 민주당으로 가기도 하고, 윤여준 씨 같은 사람도 민주당으로 가기도 하고. 어떤 면으로는 우리가 너무 경직되게 '변절이다, 옮겼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좀 왔다 갔다 해야 서로들 좀 싹 갈라지지 않고 통합에 좋을는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안대희 씨(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조차도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은 후퇴다, 이것은 후퇴다. 무슨 통합이라는 것을 통합할 사람하고 해야지, 부패하고 통합하면 안 된다. '내가 윤리위원장이었으면 그렇게 안 했을 뻔했다'는 생각이다. 또 지난번(4.11 총선)에 공천할 때도 보니까 최소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람이어야 하거든요. 특별히 돈 문제 이런 거 없는 사람이어야 하거든요, 여야를 불문하고. 야당도 마찬가지고.

한나라당 얘기가 나왔으니까 좀 얘길 하자면, 그래서 여러 사람 지금 문제가 되고, 기소돼서 재판받는 사람도 있고, 이런저런 소문도 끊이질 않고. 이것은 옛날보다 후퇴한 것이 아닌가. 내가 윤리위원장을 했던 사람으로서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거죠. 더 발전됐어야 하는데 도로아미타불 된 거 아닌가.

이철희 : 그런 결기 때문에 옛날에 하신 말씀이 남아 있는 거 아시죠? '사람을 공천해야지, 새를 공천하면 되느냐'.(일동 웃음)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멀지도 않은 옛날 얘기인데, 목사님 말씀 들으니까 교훈이 되는 얘기도 많고 외람 됩니다만 재미있는 얘기도 많고 그렇습니다. 이번 대선도 좀 걱정되는 부분도 있고 또 기대되는 부분도 있죠?

"앞으로 5년, 굉장한 위기"…해법은 북한?

인명진 : 우리 사회가 언제든지 중요한 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앞으로 5년 굉장히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일본·미국·중국 국제 정세에도 그렇고, 세계적인 금융위기도 그렇고, 남북문제도 과거에 보지 못했던 굉장히 중요한 시기에 있는데….

그래서 나는 이번에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면, 적어도 남북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안보는 튼튼히 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국민들의 요구가 '복지를 해야 한다'고 해서 강력한 요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장이 없는 복지는 하다만 일이 될 수도 있거든요, 오히려.

그런데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왔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북한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중소기업이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하지 못하다가 외국으로 나갔거든요. 싼 임금을 찾아 나갔는데, 외국도 지금 임금이 200달러 이상 하거든요. 그러니 경쟁에서 견디지를 못하는 거예요.

개성공단 있지 않습니까. 개성공단 가보고 참 놀랐습니다. 난 거기서 새로운 비전을 봤어요. 이명박 정부가 남북문제 모든 면에서 파탄을 냈지만, 개성공단은 지켰거든요. 이명박 정부가 보더라도, 남북문제에 대해서 일방적인 생각을 하는 이명박 정부가 없애면 안 되겠다 생각한 것이거든요. 여기에 중소기업이 가야 하거든요. 북한에 아주 좋은 노동력이 있잖아요. 또 지금 (임금이) 70달러잖아요. 더 줘야 하지만….

이런 개성공단을 다섯 개, 여섯 개, 일곱 개 만들어 보세요. 우리나라 중소기업 중국으로 안 가도 되고, 동남아로 안 가도 됩니다. 이게 사실은 통일 비용입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반대를 많이 하지만, 나는 상당한 부분 이해를 해요. 왜냐하면토목 공사 때문에…. 이젠 아파트 더 지을 수도 없고. 이거 사실은 지금 북한에 가서 해야 돼요, 지금. 다리 놓고, 길 닦고, 철도 놓고 해야 하거든요.

(대신) 뭘 가져오느냐? 광물 가져와야죠. 우리가 '자원외교'로 아프리카 이런 데 가서 사기당하지 말고, 북한에 가서 광물을 가져와야죠. (북한과) 경제적인 협력을 해야 우리나라는 살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일자리도 생긴다고 생각하고, 중소기업이 산다고 생가하고, 경제도 살고, 남북문제도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주장해서 남북문제도 실용주의 할 줄 알았어. 난 이거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을 하는 거예요. 난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는 실용주의였었어요. 실용주의 중에서도 남북문제. 그러니까 나는 북한하고는 이념과 관계없이 실용적으로 경제적으로 접근할 줄 알았어요. 대담하게 접근할 줄 알았어요. 이 분 옛날에 현대건설에 있었을 때 수교 안 됐을 때 러시아도 다니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런 걸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 실망인 거잖아요.

자살은 늘고, 출산은 줄고…'희망 없는 사회'에 대한 항거

그리고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는 이러나저러나 사회 통합이예요. 사회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문제예요.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보고 1대 99, 세계에서 가장 편중된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것 아닙니까. 미국보다도 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副)가 미국보다도 훨씬 더 많은…. 1%가 가지고 있는 부(副)가.

이게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인데, 외국 사람들이 볼 때 '이 나라에 폭동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하다', 그래서 내가 '폭동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뭐냐?', '자살이다'. 하루에 42.6명이 자살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 왜 자살하는가. 우리 사회에 희망이 안 보이는 거예요. 이게 폭동이지 뭡니까. 우리 사회에 대해서…. 폭동이 일어나도 하루에 사십몇 명씩 죽는 폭동이 어디 있습니까. 시리아에서 그러든가?

서양호 : 거의 내전 수준이다?

인명진 : 내전 수준이지, 이건 내전으로 봐야 하는 거거든요. 마흔 명 이상이 죽는 거예요. 싸움이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 아닙니까?

또 젊은이들이 아이 안 낳잖아요. 뭐예요?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이 사회에…. 아이 기를 자신도 없고, 아이가 살아갈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얼른 아이 하나 낳아서 이런 행복한 세상에 살게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 대한 꿈을 보지 못한다는 것 아니에요. 아이를 안 낳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민족의 운명에 대한 도전 아니에요. '엿 먹어라', 그 얘기 아니에요. '너희들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아이 한번 자라 길러봐라. 난 안 낳겠다', 이거 아니에요.

이철희 : 일종의 항거(抗拒)죠.

인명진 : 그렇죠. 이것을 우리가 항거로 봐야 하거든요. 아이를 안 낳는다. 이것은 인명의 손실이다. 어떤 내전에서 이만한 사람이 죽어나가고 이런 인명의 손실을 보겠습니까.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거든요. 경제민주주의, 이것 중요하거든요.

"어떤 정권이든 1년 안에 엄청난 어려움 당할 것"

그런 면에서 양극화 문제와 함께 우리 사회가 갈기갈기 이념적으로 찢어지지 않았어요. 소통의 문제인데, 소통이라는 것은 넓게 사람들의 말을 듣고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하거든요. 누구는 된다, 누구는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그런 후보를 사실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 우리 미래가 있거든요.

그런데 참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도 그런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김순자 후보 같은 분들, 이 분들 TV 토론하는 것을 봐야 하는데 혹시 그중에서 고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봐야 하는데….

여야가 아직은 이 면에 있어서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이 문제 때문에 '1년 안에 엄청난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라고 보고 있어요.

이철희 : 저는 혹시 목사님이 맘에 드는 분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표현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인명진 : 네, 감사합니다. 자꾸 나보고 표현하라는 사람이 많아서 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철희 : 그것은 뭐, 꼭 얘길 한다고 해서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분이 정치적으로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

인명진 : 더군다나 종교인은 사실은 (지지 같은 거) 안 하는 게 좋습니다.

이철희 : 이제는 양쪽 다 귀담아들을 수 있는,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인명진 :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줄을 섰죠.

이철희 : 한참 나이 어린 후배라서 우리 사회 원로들이 선택한 것을 흉보고 싶지는 않은데, 본받고 싶지도 않고…. 그런 소회는 있습니다. 이번 대선이 사실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크게 보면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구요.

인명진 : 편이 너무 쫙 갈라졌죠? 이것을 아마 봉합하기 어려울 것 (이다). 누가 되든지 간에,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외부무 장관, 제일 잘할 사람. 총리, 여야 구분하지 말고 제일 잘할 사람. 국방, 제일 잘할 사람. 교육…. 이런 사람을 뽑아서 전면에 배치해야지 그렇지 않고, 또 고소영이다 강부자다 이렇게 나가면 나라의 희망이 없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역사는 진보…투표합시다!"

이철희 : 젊은 사람이 많이 듣거든요. 한 말씀 해주시고 끝내겠습니다.

인명진 : 한평생을 살아온 우리가 더 좋은 나라를 젊은이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죠.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고, 지금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고 희망이 보이질 않지만, 내가 일제 때 태어났을 때만 해도 깜깜했어요.(일동 웃음)

이철희 : 두 달 반?(일동 웃음)

인명진 : 내가 유신 반대하며 박정희, 그 분 대통령 되셔서 할 때도 감옥에 들어앉아 있는데 깜깜했어요. 어쨌든 역사라는 것은 한 발짝, 한 발짝 진보한다. 실망하지 말고,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도 해야 하고…. 젊은이들 이번에 투표 많이 해야 합니다. 투표,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프 보고 놀랐어요. 50대 이상은 90%가 투표한다는데, 20·30대는 70~80% 나오니까 안 된다. 왜냐하면 사실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대통령 잘 뽑아봐야 덕 볼 시간이 짧잖아요.(일동 웃음) 우리가 잘 뽑아서 세상 좋아져 봐야, 우리가 덕 볼 게 뭐 있겠어요. 얼마 안 되지. 그러나 젊은이들은 지금 어떤 대통령 뽑느냐 하는 게 두고두고 오랫동안 영향을 받은 분들인데, 내가 안철수 대변인 됐네? 안철수 전 후보 '투표 열심히 하라'고 한다는데….

이철희 : 목사님이 이쑤시개로, 요지(要旨)로 '투표 많이 하셔야 합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오늘 너무 기분 좋게 행복하게 를 마치겠구요, 투표합시다!


▲ <이철희의 이쑤시개> 녹음 현장. 왼쪽부터 이철희 소장,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인명진 목사, 서양호 실장 ⓒ김대현

* 더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 9회 "박근혜 새누리당, 부패와 통합했다"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이철희의 이쑤시개) 바로가기 클릭! http://pressian.iblug.com/index.jsp



/이명선 기자(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