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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2일 일요일

방위산업, 경쟁이냐 통합이냐


이글은 한겨레신문 디펜스21 2013-05-03일자 기사 '방위산업, 경쟁이냐 통합이냐'를 퍼왔습니다.

국내방산 경쟁력 강화, 경쟁촉진이 해법인가
방산시장 무한 경쟁 체제는‘명품무기’만들 수 있을까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2013~2017 방위산업육성 기본계획(안)』을 통해 국내 방위산업이 자동차·조선·IT 산업과 달리 국제 경쟁력이 부족한 원인을 경쟁구도가 형성돼 있지 않은 탓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방위사업청은 국내 방산시장의 경쟁여건 확보가 필요하다며 경쟁 촉진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내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방위사업청의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방산업계는 국내 방산시장은 이미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돼 있으며 좁은 국내 방산 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제살 깎아먹기 경쟁은 결국 무기체계의 품질저하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업 혹은 국가 간 방산통합이 세계적인 추세를 이루는 지금, 방위사업청의 야심찬 계획은 명품 국산무기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을까? 

국방획득사업은 예산이 대부분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에 이르기 때문에 항상 여론의 집중 감시를 받는다. 또한 단일 사업에서 한번에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방위산업체들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알짜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방산업계의 현실은 그러한 인식과 정반대의 처지에 놓여있다. 우선 국내 방산시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약 34조 원에 달하는 2013년 국방예산 중 새로운 무기체계를 구입하거나 개발하는 예산인 방위력개선비는 10조 원에 불과하다. 이 10조 원이 곧 국내 방산시장의 규모나 마찬가지다. 참고로 2012년 한 해 대한민국 소비자들이 사들인 화장품은 10조 8천 200억 원으로 한국의 방산시장은 화장품 시장보다 규모가 작다. 

그러나 이마저도 상당부분 미국이나 유럽의 방위산업체들이 가져간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대형무기도입 사업 중 미국 보잉사의 아파치로 기종 결정이 확정된 대형공격헬기 사업은 약 1조 8천억 원, 지난 1월 영국제 와일드캣으로 결정된 해상작전헬기는 약 6천억 원, 올 상반기 기종 결정이 끝날 것으로 보이는 차기 전투기 사업은 8조 3천억 원 규모인데 모두 해외업체 몫이다. 아직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는 않지만 고고도 무인정찰기, 공중급유기,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 등도 향후 미국제나 유럽제를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가뜩이나 좁은 방산시장 내에서도 국내 방산업체는 끼어들 곳이 없다. 

캐나다 정치학자 키스 크라우스(Keith Krause)의 방위산업 분류에 따르면 한국 방위산업은 기존 군사기술을 복사 및 재생산하는 계층에 속한다. 이는 가장 낮은 기술력을 보유한 단계로 앤드류 로스(Andrew Ross), 리처드 비친거(Richard Bitzinger)등의 학자들도 한국의 방위산업을 개발도상국 수준이나 보통 수준 이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방위산업은 갈 길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자조하곤 한다. 국내 모 방산대기업에 20년째 근무 중인 A씨는 “산업화 초기 정부에서 대기업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보호한 것처럼 방위산업에도 그러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회담 중인 레이건과 고르바초프(1985). 냉전이 선물해 준 막대한 국방예산과 무기소요는 각국 방위산업체들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방위산업과 시장논리는 공존할 수 있나 

이와 달리 방위산업을 왜 시장의 논리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나서서 육성해야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다른 산업들처럼 업체끼리 경쟁을 벌여 실력을 키워나가는 게 적절한 방법이라는 말. 그러나 모든 사업이 100% 정부의 수요로 이뤄지는 방위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비판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한 방위산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방위산업에는 민간의 시장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방산업체는 공공재인 국가안보에 쓰이는 무기를 정부의 요구에 따라 개발해주는 하청업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력으 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자동차 등을 개발해 국내외에 판매하고 자유로운 투자로 사업을 벌이는 여타 산업과 달리 정부의 수요와 투자 없이는 사업이 존재할 수 없는 게 방산업체의 특성이다. 예를 들어 개발에 최소 수십조 원이 드는 전투기는 국내 최대 기업 삼성전자라도 개발이 불가능하다.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산업 특성상 수요자인 정부가 고성능 무기를 획득하고 싶으면 하청업체인 방산업체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경쟁력을 키워야하는 것이다.” 

심지어 방산업체가 개발한 무기체계의 기술도 모두 정부에 종속된다고 한다. 정부가 발주한 사업에 거액의 개발비까지 댔으니 결과물의 일부인 기술도 정부 소유라는 것이다. 또한 국방획득사업은 가격을 기업이 자유롭게 정하는 민간 산업과 달리 이윤마저 정부통제를 받아야 한다. 업체가 노력해 원가절감을 해도 초과이윤이 불가능한 체계인 것이다. 이렇게 방위산업은 일반 산업과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어 민간에 적용되는 시장논리가 통하기 어려운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각종 무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산업체의 경쟁력이 국가 전쟁수행능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평가요소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 아직 성장이 필요한 방위산업은 정부가 주도해 육성하는 것이 타당한 방향으로 보인다. 정부는 2009년 1월 전까지만 해도 방위산업에 여타 산업분야와 다른 정책을 적용하며 보호해왔다. 

1973년 제정된 방위산업 특별조치법은 정부가 방위산업을 합리적으로 지도육성하고 조정해 방위산업 진흥에 기여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2006년 1월 방위사업법을 제정하면서 폐지했지만 오랜 기간 국내 방위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법이다. 1980년에는 방위산업육성기금이 조성돼 방산업체들이 운영자금을 쉽게 융자받을 수 있었지만 이 또한 2006년 폐지됐다. 

1983년 만들어져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방위산업 보호정책인 전문화·계열화제도는 2009년 1월 폐지됐다. 전문 분야별로 방산업체를 지정, 업체에 독점권을 부여해 과당경쟁을 막아 온 전문화·계열화 제도는 기술개발의 촉진을 저해하고 신규업체 참 여 제한 등 자유경쟁 시장경제에 위배된다는 비난에 따라 폐지조치가 내려졌다. 이로써 방위산업을 보호·육성하던 정책들이 모두 폐지돼 국내 방산업계는 본격적인 무한 경쟁체제로 돌입하게 됐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방위산업의 경쟁 요소가 부족해 경쟁 촉진 정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현대로템의 차륜형 장갑차.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 참여한 업체들은 모두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이는 과당경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현대로템

국내 방산시장은 이미 무한 경쟁 체제? 

방위사업청은 지난해 10월 발간한 『2013~2017 방위산업육성 기본계획(안)』을 통해 방위산업이 자동차·조선 산업과 같은 시기에 형성돼 매년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산업분야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건 방산시장에 경쟁구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산업은 80년대 이후 개방화·자율화를 거치며 금융지원, 세제혜택 등의 보호·육성책이 폐지돼 무한 경쟁구도가 형성된 것에 비해 보호·육성 위주의 정책 기조가 장기간 유지된 방위산업은 경영개선 및 경쟁력 강화 노력의 유인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에 방산 경쟁 심화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지 묻자 “민간기업 등 생산능력이 있는 업체에게 방위산업분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조달원을 다변화하고 이를 통해 가격 및 품질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위사업청의 주장에 대해 방산업계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항상 ‘을’의 입장인 탓에 드러내지는 못 하지만 업체마다 내부적으로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모 중견방산업체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경쟁 체제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는 방위사업청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현재 국내 방위산업에 형성돼 있는 경쟁 체제를 설명했다. 

“2009년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 뒤 이미 한국 방산시장은 무한 경쟁으로 돌아섰다. 예를 들어 군이 어떤 무기 체계를 도입 계획을 발표했을 때 국내 업체는 그때부터 해외직도입이냐 국내연구개발이냐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국내 개발로 결정이 되더라도 다시 사업 추진 주체를 결정할 때 정부가 주도하느냐 업체가 주도하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한다. 업체 주도로 결정되면 국내 업체들 간의 입찰 경쟁이 남아있다. 이러한 3중 경쟁 형태가 이미 방산업계에 심각한 출혈 경쟁을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경쟁을 촉진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반론을 제기했다. 

“업계가 주장하는 직도입 대 국내 연구개발, 정부 주도 대 업체주도는 사업추진 방식에 관한 사항일 뿐 경쟁체제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업체 간 경쟁도 방산물자·업체 지정제도가 운영되는 이상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방위사업청은 또 “그 동안 방산물자는 지정된 특정 방산업체로부터 조달해 왔으며 1물자-다(多)업체 지정이 제한적이었다”며 생산능력이 있는 민간업체의 방산분야 참여기회를 주기 위해 ‘방산물자 지정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방산물자 지정제도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제도로 간단히 말해 방산업체 지위를 부여받은 업체만 국방획득사업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방위사업청의 계획은방산물자 지정제도 개선을 통해 실력있는 업체라면 누구든 방산업체로 지정해 국방획득사업에 참여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냉전 이후 군비축소로 방위산업의 통합과 경쟁 최소화를 추구하는 세계적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지난해 EADS와 BAE시스템즈가 합병에 성공했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방위산업체가 탄생했을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대규모 방산통합 바람 

냉전은 선진국 방산업체들에 있어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은 거액의 국방비를 편성해 상대를 압도할 첨단 무기체계를 앞다퉈 개발했고 이는 방산업체들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획득 비용보다 성능이 중요시되는 탓에 각국 정부는 재정적 위험까지 부담하면서 업체에 연구개발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난 뒤 안보환경이 변화되면서 무기수요는 대폭 줄어들었고 주요 강대국들조차 급속도로 팽창한 방위산업 기반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탈냉전 시기 선진국의 방산업체들은 너도 나도 통합의 길을 걸었다. 유럽항공산업의 대표주자 EADS, 영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사업을 벌이는 BAE시스템즈도 업체 간 통합으로 만들어진 대형 방산업체다. 특히 BAE시스템즈는 사실상 영국내 유일 대형 방위산업체로 항공기, 방산전자, 지상장비, 함정 등 국방획득 전 분야에 걸친 사업영역을 갖고 있다. 한 국가의 방위산업을 단일 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경쟁을 더욱 촉진하려 하는 한국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러한 통합의 추세는 아직 진행형이란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EADS와 BAE시스템즈는 지난해 6월~10월에 걸쳐 합병안을 협상하기도 했다. BAE시스템즈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합병을 통해 상업용 항공우주산업 분야와 방위산업 분야를 통합한 사업체를 형성, 두 분야에서 모두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합병이 성사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방위산업체가 탄생할 수 있었지만 양측의 입장차이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전세계 국방비의 약 절반을 쓰는 미국도 통합의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롭 그루먼, 레이시온도 여러 업체를 통합해 만들어졌다. 1993년 당시 미국 국방부 차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방산업체 고위직이 모인 만찬장에서 통합을 장려하는 만찬사를 한 바있다.‘ 마지막 만찬’으로 알려진 이 자리를 통해 방위산업체 통합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는데 미 국방부는 통합으로 인해 많은 예산절감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다. 통합을 장려하기 위해 국방획득사업 계약 과정에서 통합에 든 비용까지 반영해주기도 했다. 급속도로 진척된 미국내 방위산업 통합 정책은 1997년 통합이 과도하게 진행됐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가 록히드 마틴과 노스롭 그루먼의 통합을 막은 뒤 폐지됐다. 

이러한 통합의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을 내놓은 방위사업청에 방산시장의 경쟁을 줄여나가는 세계적 추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묻자 “전 세계 방산분야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업계는 생존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합병 등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세계 방산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업체인 미국과 유럽 방산업체들이 현재와 같은 위상과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은 원가절감 등 규모의 경제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수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국내 업체의 자발적인 원가절감 노력과 기술개발 등을 통해 품질 경쟁력을 확보해 업체 간 경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의 답변은 통합보다는 일단 업체들의 경쟁력부터 확보하는 게 우선이란 말로 해석된다. 그러나 방위 사업청이 분석한 해외 방산업체들의 성장비결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한 국내 방산업체 관계자는 방위사업청의 분석에 대해“글로벌 방산업체의 성장은 냉전 시기 각국의 높은 국방비 지출과 폭발적인 무기소요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 원가절감이 성장의 한 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결정적인 것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재래식 무기만 만들던 한국 방위산업이 항공기 같은 첨단 무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기술력이 많이 부족해 아직은 경쟁보다 육성에 집중할 때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서 필요한 건 방위사업청의 주장대로 국방획득사업 분야에서의 경쟁이 과연 업체들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인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만 죽인 전문화·계열화 폐지 

2009년 1월 전문화·계열화 제도가 폐지될 당시 방산업계의 충격은 상당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 했지만 구매자 독점체제의 좁은 방산시장에서 벌어질 무한 경쟁에 대한 우려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골칫거리였다. 2010년 10월 미래기획위원회가 발표한『국방산업 G7 미래전략』 보고서에도 이러한 문제점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보고서는“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로 인해 한정된 시장을 놓고 벌어질 기업 간 과열경쟁과 중복투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방산업체의 경쟁력 확보와 중복투자 방지를 위해 기업별 전문생산 분야를 할당해야한다”고 적고 있다. 예를 들어 제도 폐지 이전 전차는 현대로템이, 장갑차는 두산DST, 자주포는 삼성테크윈이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 폐지 이후 육군 차륜형 장갑차 사업에는 3사가 모두 시제품을 제작해 경합을 벌였다. 결국 현대 로템이 수주에 성공했지만 잘못된 제도로 인한 중복투자·과당경쟁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아직 연구개발 기술력이 부족한 국내 업체들이 한 분야에 집중하지 못해 개발능력이 분산됐다는 지적도 덤으로 따라왔다. 전문화·계열화 제도 폐지는 특히 중소방산업체들에게 쥐약과도 같았다. 미래위 보고서에 따르면 제도 폐지 이후 보호막이 없어진 중소방산업체들은 대기업과도 경쟁을 벌여야 했고 무자격 중소업체들까지 끼어들어 대기업에 종속된 부품업체로 전락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방위사업청이 의도한 바와 다르게 원가절감이나 실력있는 새로운 업체가 진입하는 효과 대신 기존 업체들만 괴롭히는 체계가 구축된 것이다. 

미래위 보고서는 또 “각종 경쟁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없이 제도를 폐지하는 바람에 방산 대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화를 가속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방위사업청이 만든 무한 경쟁 체제는 외려 방위산업 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지난 정부가 강조했던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정책에도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방위사업청이 주장하는 경쟁의 효과에 대한 믿음은 과도하게 경제 이론에만 치중한 면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전략학 전문가 피터 돔브로스키(Peter Dombrowski)와 정치학자 앤드류 로스가 공동 집필한 논문『군사혁신, 변환, 그리고 미국의 방위산업』에 따르면 미국에서 방산통합이 활발하던 시기에도 방산시장에 경쟁요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통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피터와 앤드류는 “경쟁이 주는 혁신의 인센티브는 전통적인 경제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일반적인 경제 이론을 국방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국내 항공산업이 무한 경쟁 체제에 놓여 있었다면 T-50을 능가하는 항공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

방산통합의 두 가지 길 

한국에도 통합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실례가 있다. 바로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한국항공)이다. 원래 한국의 항공산업은 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한항공 등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1999년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빅딜에 따라 대한항공을 제외한 3개 업체를 하나로 통합해 한국항공우주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비했다. 당시 정부가 항공산업을 통합한 이유는 업체들 간 중복투자를 막고 전략적으로 항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많은 빚을 지고 시작한 탓에 어려운 시기가 길었지만 지금은 국산 항공기를 해외로 수출까지 하는 국내 유일 항공기 체계종합업체로 성장했다. 

방위사업청의 경쟁 지상주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항공은 태어나선 안 될 업체다. 4개 업체가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며 원가를 절감하고 품질 경쟁력을 높여야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존 4개 업체 경쟁체제로 갔을 경우 한국은 T-50을 뛰어넘는 우수한 항공기를 생산할 수 있었을까?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업체의 연구개발 역량이 분산되고 대규모 생산 시설이 한 곳에 집중되지 못해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제트기 개발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여러 문제가 예상되는 방위사업청의 경쟁 심화 계획에 대해 방산업계 관계자들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하다. 바로 통합이다. 통합에도 두 가지 길이 있는데, 전문화·계열화 제도와 같은 정책을 부활시켜 한 분야 당 하나의 업체만 두는 통합과 영국처럼 전체 분야를 하나로 묶어 거대 방산업체를 만드는 통합이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 방산시장에서 ▲ 항공기 분야는 한국항공·대한항공 ▲ 유도무기 분야는 LIG넥스원과 한화 ▲ 방산전자 부문은 LIG넥스원과 삼성탈레스 ▲ 지상장비는 현대로템, 두산DST, 삼성테크윈 ▲ 수상함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STX조선 ▲ 잠수함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각각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렇게 각 분야 당 여러 업체를 두는 대신 하나의 업체로 통합해 정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먼저 제시된다. 이러한 방식은 독일과 비슷하다. 독일은 항공기(EADS), 유도무기(MBDA), 방산전자(ESG), 지상장비(KMW), 잠수함(TKMS, 구 HDW) 등 분야 당 하나의 업체만 두고 국방획득사업을 추진한다. 

모든 방산분야를 하나의 방산전문기업으로 통합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이 방식에 대해 한 민간 방산전문가는 “한국 국방예산의 두 배 정도를 쓰는 영국도 BAE시스템즈로 방산역량을 집중해 대통합을 이뤄냈는데, 방산시장이 더 좁은 한국은 분야별 통합보다 영국식 통합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위산업 통합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 제기가 있는데, 바로 독점에서 오는 폐해다. 원래 국방획득사업은 구매자인 정부가 언제나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업체를 통제하기 쉽다. 그러나 단일 업체가 모든 방산시장을 독점할 경우 정부의 말을 듣지 않거나 경쟁자가 없어 품질경쟁력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단일 업체라도 강력한 제도를 통해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다”며 “통합이 완료돼도 국외도입 대 국내개발이라는 경쟁구도가 항상 남아있기  때문에 업체는 스스로 품질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무엇보다 방산업체는 민간업체고 돈을 벌고 싶어하기 때문에 우려가 제기되는 독점의 폐해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모든 논의 앞서 경쟁 의미부터 재정립해야 

방산통합 외에도 무기체계의 특성에 맞춰 차별화된 맞춤식 경쟁도 제안되고 있다. 이 방식은 각 무기체계의 전략적 중요성, 시장 규모와 특성, 투자 규모 등은 물론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 등을 감안해 차별화된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방산분야를 통틀어 가장 높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항공분야는 독점을 허용하고 조금 덜한 유도무기나 방산전자는 제한경쟁을, 일반 군납물자나 IT분야는 완전경쟁체제로 가는 것이다. 속옷부터 전투기까지 방위산업이란 이름 아래 천편일률적인 제도 적용이 이뤄지는 한국 방산시장에서 이러한 방법은 업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제안한 정책이라고 한다. 

방위사업청은 이 제안에 대해 “방산물자의 특성·전략적 중요성, 안정적인 조달 및 품질보증에 미치는 영향과 기술발전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정된 특정업체로부터 조달하거나 1물자-다(多)업체 지정을 통한 제한경쟁 또는 방산물자 해지를 통한 경쟁조달이 이뤄지도록 추진할 계획”이라며 입장을 밝혔다. 방위사업청은 현재 전문화·계열화와 같은 제도를 부활시킬 계획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방위사업청과 업계가 내놓은 해법이 모두 틀렸다는 의견도 있다. 박영욱 광운대 방위사업학과 교수는 “방위사업청의 경쟁 촉진책과 업계의 방산업체 통합방안은 우리 방위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원인 가격 중심 경쟁 체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 방위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경쟁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흔히 방위산업의 경쟁이라 하면 품질로 승부를 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방위산업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주로 가격경쟁이 사업을 좌우한다. 저가 입찰 구조가 일반화된 한국 방산시장의 현실에서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건 결국 품질과 관계없이 저렴한 무기만 사겠다는 의미고 이는 필히 무기의 품질저하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국방획득사업 평가단계에서 점수배분은 기술평가 점수 80~90점, 가격 점수 10~20점 정도지만 기술 평가에 대한 변별력이 매우 빈약한 현실에서 업체들은 가격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품질경쟁이야말로 경쟁의 핵심이며 이러한 품질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정부의 방산정책이 절실하다. 또한 시험평가와 사업관리, 가격정책에 대한 실무자들의 전문성 확보도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무대에서 통하는 방위산업 경쟁력은 업체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국방·획득 기관들도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박 교수의 말대로 국내 방산업체들은 기술 평가에서 변별력 있는 점수를 받지 못해 가격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 제안서에 예정가격 대비 60~80% 정도의 가격을 써내고 있다. 예를 들어 총점수 100점에서 기술 점수 배분이 80점 만점일 때 A업체가 77점, B업체가 75점을 받아도 가격 점수에서 A업체가 15점, B업체가 19점을 받으면 B업체가 총점에서 이겨 사업을 수주하기 때문에 업체들은 어떻게든 저가를 써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는 각종 무기체계 결함의 원흉이 되고 있다. 저가 입찰은 반드시 저가의 질낮은 부품사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위사업청의 계획대로 경쟁을 심화하면 업체들은 거의 이윤을 남기지 못 하는 가격을 써내거나 저질 부품을 사용해 무기체계의 질은 계속 저하될 것이 자명하다. 이는 곧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물에 가라앉는 장갑차, 기동 중 멈추는 전차, 추락하는 정밀유도무기로 국토 방위를 위한 전투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군단급 무인기 사업에서는 과도한 적자를 견디지 못한 방위산업체들이 입찰 참가를 거부해 유찰되거나 예정가격 대비 200% 수준의 가격을 적어내는 등의 사건이 벌어져 전력화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업계가 주장하는 방산 통합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예산절감을 이유로 계속 저가 입찰만 고수할 경우 통합된 단일 업체는 연구개발에 투자할 역량이 없어 부실화되고 이는 방위산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어떤 산업이든 적절한 수준의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의 의미를 가격 경쟁이 아닌 품질경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경쟁을 심화하든 방위산업을 통합하든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는 어둡기만 할 것이다. 

▲ 참고자료 : [현대방위산업(The Modern Defense Industry)], 리처드 A. 비친거 편저, 정순목 역, 국방대학교 


“효율적인 경쟁과 역량 집중을 위해 통합” 
장 뤽 발레리오 EADS코리아 사장 

유럽 각국이 EADS로 항공산업을 통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EADS는 2000년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 항공(DASA), 프랑스 아에로스파시알 마트라, 스페인 카사(CASA) 등의 합병을 통해 탄생했고 현재 유럽 항공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당시 합병은 업계가 주도했고 유럽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렇게 국경을 뛰어 넘은 합병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먼저 국제시장에서 경쟁에 더 효율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흩어진 핵심 개발역량과 대형 생산시설을 집중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에 합병까지 이른 것이다. EADS뿐만 아니라 다른 방산분야에서 여러 나라 간의 범유럽적 협력은 주된 경향이다.

단일 업체가 항공산업 전반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제기된 적은 없나? 
에어버스, 아스트리움, 카시디안, 유로콥터 등이 결합된 EADS는 유럽 항공우주분야를 선도하는 대형 항공우주업체지만 ‘독점’하고 있다는 건 잘못된 표현이다. EADS는 아직도 유럽에서 주요 경쟁자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 유로파이터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여러 협력업체들이 다른 분야에서는 EADS의 경쟁자다. 

EADS로 항공산업이 통합된 결과 각국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이득을 얻고 있나?
EADS의 탄생은 유럽 곳곳에 흩어진 항공우주산업과 방위산업을 통합하는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EADS가 자리잡은 각 국가는 통합이 가져다 준 성공적인 결과를 통해 상업·국방 양쪽 분야에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용이 확대된 것을 들 수 있는데, 2000년89,000명에 불과했던 근로자는 2012년 140,000명까지 늘었다. 또한 EADS는 수출을 통해 프랑스, 독일, 스페인, 영국의 무역 수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김동규 디펜스21+ 기자

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모 대도시에서 20년을 보냈다.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이메일 : ppankku@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semper

2012년 2월 5일 일요일

이명박 정권 말기 14조 무기 구매 후다닥


이글은 한겨레신문 디펜스21 2012-01-25일자 기사 '이명박 정권 말기 14조 무기 구매 후다닥'을 퍼왔습1니다.
미국 눈치 보며 생색 내고 부담은 차기정권에 고스란히 비리 ‘화약고’ 예고…천문학적 운영비로 ‘돈 먹는 기계’



  이명박 정부가 최근에는 외국 무기를 직구매하려는 질주가 거침없다. 올해 10월까지 14조 원에 달하는 무기도입 계약서에 반드시 도장을 찍겠다는 입장이다. 대형 무기도입 사업은 검토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리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그러나 1년 만에 사업추진전략을 수립하고 협상과 시험평가를 거쳐 계약서까지 체결하겠다는 초스피드로 사업 추진에 전문가들의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 이어 어김없이 병 도져

지난해 11월에 국회 국방위원회의 권기율 수석전문위원은 ‘방위사업청 소관 2012년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조기에 강행되려는 정부의 무기도입 ‘꼼수’를 들춰냈다. 보고서에서는 주요 핵심무기도입 사업들이 ▲짧은 검토 및 협상기간 설정 ▲부정확한 가격정보에 기초한 예산편성 ▲무기운용 개념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부족 등을 이유로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누가 보아도 무리한 정권 말기의 무리한 사업 추진임에 분명하다. 청와대는 최근 방위사업청에 “조속히 사업을 추진하라”고 독려하고 있으며 “예정된 도입 일정에 차질을 빚을 경우 방사청을 문책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 정부의 행태를 보면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정권 말기 무기도입 증후군’을 실감하게 된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무기도입 실태를 보면 하나의 법칙처럼 명확한 패턴이 드러난다. 정권 말기에 한꺼번에 몰아서 무기를 도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태우 정권 말기인 1991년에서 1992년까지 도입된 무기는 39억9천만 달러어치이다. 1991년 이후 10년간 무기도입액의 30%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기간 도입이 결정된 무기들은 F-16 전투기, 독일로부터 도입한 잠수함, P3-C 해상초계기와 같은 대형 사업들이다. 특히 이 시기 도입이 결정된 무기체계는 93년 문민정부의 출범 직후부터 감사원의 ‘율곡비리 특별감사’와 국회 국방위원회의 ‘율곡비리 국정조사’로 이어져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출범한 해인 1993년의 무기도입은 5억5천7백88억 달러인데 10년간 무기도입액 중 가장 적다. 이 추세는 1994년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지면서 신정권 초기에 무기도입액이 줄어드는 뚜렷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가 1995년부터 다시 10억 달러대로 늘어나면서 급격하게 증가한다. 그러다가 문민정부 말기인 1996년과 1997년 두 해의 무기도입액은 32억8천6백만 달러어치다. 

문민정부 말기에는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 백두정찰기, 수송기, 동부지역 전자전장비, 헬기야간침투장비 등 각종 외제무기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물론 이 사업들은 문민정권 말기부터 의혹의 대상으로 부각되었으며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초기에 완전히 비리의 실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린다 김 사건으로 유명한 백두정찰기 사업이 그것이다. 

외환위기로 눈물의 금모으기 할 때 환차손만 1천억 넘어

당시 정부 말기의 대규모 무기도입의 비정상적인 실태를 살펴보면, 97년도 정부의 달러 기준 환율은 8백 원대였다. 그런데 외환위기로 환율이 폭등하더니 12월에는 무려 1천5백 원, 가장 심한 시점에는 2천 원대에 달했다. 정부 기준 환율보다 무려 87.5%가 오른 것이다. 바로 이때 국방부는 휴대용 대공유도탄, 중형수송기 등 7개 종목의 무기에 대한 계약금과 중도금을 12월에 집행하도록 조달본부에 지시했다. 이 때문에 12월 한 달 동안 약 3천억 원대에 달하는 무기 도입대금 지불이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환차손만 1천억 원 이상이 발생했다.  97년에 국방부의 해외 도입 계약 강행과 대금지급은 외환위기가 발생한 11월 말부터 12월에 대부분 집중되었다. 이 당시 국민들이 달러 한 푼이 아쉬워서 금모으기 운동을 하던 시기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현상인지 짐작할 만하다. 한편 이 당시 도입된 무기체계는 국민의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각종 비리의혹에 시달렸는데, 백두정찰기 도입을 비롯한 국회 국방위원회의 ‘5대 의혹사건’ 등으로 비화된 바 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인 1998년, 1999년, 2000년 3년 동안의 무기도입 총액은 27억 달러 정도다.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액수다. 99년부터는 전력투자비가 동결되거나 삭감되기도 한다. 신규 무기도입의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이 현상은 확연하게 증가세로 반전되고 있다. 갑자기 2000년에 소요 결정된 F-15K 전투기, 이지스 구축함, 대통령 전용헬기 사업 등 핵심 사업들이 한꺼번에 결정되었고 이 때문에 2001년부터 계약액 기준으로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까지 다시 무기도입은 괄목할 만하게 증가한다. 이 당시 도입된 무기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최근까지도 국회가 그 의혹을 제기하는 등 후유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미국 방문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긴급 지시

마치 빚잔치하듯이 역대 정권은 집권 말기에 몰아서 무기도입을 체결하고 돈을 펑펑 쓴다. 다음 정부가 꼼짝 못하고 뒤처리하도록 대못을 땅땅 치는 격이다. 현 정부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친 현 정부가 ‘적극적 억제전략’을 표방하면서 새로운 무기소요가 정권 말기에 제기될 환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새로운 군사전략이 채택되었다고 해서 졸속으로 무기를 구매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정작 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009년 5월 중순. 강남의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에 방위사업청 관계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당시 KID는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공격헬기 획득대안 분석 및 사업추진 기본전략” 연구 용역을 수행 중이었다. 전화를 한 관계자는 황급하게 연구용역을 중단하라고 지시하며 ‘윗선의 지시’라고 강조했다. 

얼마 후 KID 측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5월 중순은 한 달 후에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예상되고 있는 시기였다.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방사청 최고위층은 이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아파치 중고 헬기 구매에 대한 요청을 받고 올 경우 이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비해 방사청은 아파치 헬기 구매에 불리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용역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킨 것이다. 

‘전략동맹’을 표방하는 현 정부 하에서 미국 무기구매를 강행하기 위해 획득정책이 어떻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중고 아파치 헬기 구매는 연구용역을 따질 것도 없이 방사청이 대당 260억 원에 구매한다는 기대와 달리 미국이 대당 460억 원을 제시하는 바람에 그 직후에 무산되었다. 그러나 변무근 당시 방사청장은 이미 대통령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헬기를 도입하는 경제적 방안”이라고 보고까지 끝낸 상황이었다. 가짜 가격정보에 현혹되었다가 사업추진이 난망해진 방사청은 사업 추진을 머뭇거리자 이상희 당시 국방장관이 벌컥 화를 내며 재검토를 지시하는 바람에 저절로 무산되었다. 

잘못된 가격 정보를 근거로 연구용역 수행

2009년에 산업개발연구원의 연구용역이 종료된 이후인 2010년에 상반기에 ‘한국형 공격헬기사업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산업연구원과 국방대학교에, 하반기에 ‘사업타당성조사 연구용역’을 국방연구원(KIDA)과 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전트에 발주한다. 상반기의 연구용역 보고서인 ’10년의 한국형 공격헬기 사업분석평가서‘에서 대형공격헬기의 도입가격을 대당 484억 원으로 예상함에 따라 한국형 공격헬기보다는 해외구매가 타당하다는 ‘High-Low Mix’ 방식이 타당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1년 7월에 한국형 기동헬기(KUH) 기반의 공격헬기 개발이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대형공격헬기는 해외구매로, 소형공격헬기는 국내개발로 정책을 변경한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대당 400억 원대에 아파치급 대형공격헬기를 도입하는 사업추진 전략을 수립한다. 

그러나 국방위 전문위원 보고서는 미 국방부 안보협력국(DSCA) 자료에 의하면 아파치 공격헬기의 경우 인도에는 687억 원, 대만에는 912억 원, UAE에는 900억 원, 사우디에는 1485억 원으로 판매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400억 원대라는 저렴한 가격을 근거로 헬기의 해외도입이 타당하다는 앞의 연구용역은 잘못된 가격정보를 근거로 수행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2009년에 잘못된 가격을 근거로 아파치 헬기를 도입하려던 시도와 아주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점은 사업추진 전략이 결정된 2011년 7월이라는 시점이다. 이 무렵은 10월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 미국을 방문한 시기다. 김 비서관은 국방부의 무기도입 사업에 공공연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방미 시점에 때맞춰 사업추진전략이 결정되고 8월에는 천영우 청와대 안보수석이 재차 미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8월 말에 청와대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호출하여 매우 의미 있는 지침을 하달했다. 2013년 이후로 예정된 대형공격헬기 도입 추진시기를 2012년으로 앞당겨 차기전투기(F-X) 사업추진 일정과 동일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어떻게든 미국무기 구매를 늘리려는 정치적 고려가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아파치 헬기 구매에는 주한미군의 영향력도 작용된 것으로 보여 진다. 전임 연합사령관이나 현 사령관은 “전 세계 4성 미군 장군 중에서 아파치 헬기 부대가 없는 지휘관은 한국밖에 없다”며 수시로 불평을 한다. 주한미군 관계자에 의하면 “미군 지휘부는 한국군의 아파치 구입 여부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다”고 전한다.

시험평가 및 협상 기간 불과 3개월, 졸속 검토 불 보듯

한편 전문위원 보고서에서 거론한 ▲차기전투기사업(F-X 8조2905억 원) ▲대형 공격헬기사업(AH-X 1조8384억 원) ▲해상작전헬기사업(5535억 원) ▲고고도무인정찰기사업(HUAV 4854억 원)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사업(4093억 원)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장 시선을 집중시키는 F-X사업의 경우 보고서에서는 실제 사업비용이 국방연구원(KIDA)이 제시한 것과 1조 8342억 원의 차이가 난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업이 추진되면 사업비가 대폭 상승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2016년에 전력화한다는 목표 역시 F-35 전투기의 경우 공급업체인 록히드마틴의 사정으로 현실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2012년 10월 계약이라는 사업 추진 일정 역시 보고서에서는 “항공기 제조업체의 제안서 제출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고, 고성능의 첨단 차기 전투기를 도입하는데 소요되는 시험평가 및 협상 기간이 불과 3개월로 계획되어 있으며, 기종결정평가위원회가 구성된 후 2개월 내에 기종이 결정될 것이라는 정부의 계획은 다소 현실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계약 일정을 마치려면 졸속 검토가 불가피하고 변칙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도입이 유력시되는 F-35 스텔스 전투기의 경우는 개발기간 지연과 비용 상승으로 미국에서도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고고도무인정찰기사업의 경우를 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대상기종으로 거론되고 있는 미 노스롭 그루먼사의 글로벌호크의 경우 우리 측이 예상하는 4세트 4854억 원은 이미 비현실적인 가격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방위사업청 협상팀이 올해 4월경에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미 측은 9400억 원을 제시하였으며 계약서에 “글로벌호크를 배치하는 2차 기지로 한국 영토가 아닌 괌을 명기하자”고 압박했다. 글로벌호크의 정보를 수신하는 지상기지의 시설과 장비들이 괌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운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업을 재검토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방사청은 계속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호크의 해외수출을 승인하는 절차를 현재 미 국방부와 의회가 계속 지연시켜 설령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 해도 조기에 도입이 어려워졌다. 역시 현실성이 부족한 사업이다. 

무기획득 정책 뿌리 뒤흔드는 잘못된 방식

그러나 청와대 사정을 아는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반드시 임기 중 계약 체결이라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고 말한다. 군의 한 관계자는 “국방개혁의 골격이 나오던 올해 초부터 김 비서관의 무기구매에 대한 압박이 강하게 국방부에 가해졌다”며 “김관진 장관도 김 비서관과 무기구매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수시로 전화 통화도 하고 접촉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기 구매라면 반색하는 군도 청와대의 무리한 정권 말의 사업추진에 대해서는 끌려다니는 입장이다. 

그러한 정치논리가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데 요구되는 초보적 검토조차 부실한 이유가 된다면 이는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패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에 무기구매에 소요되는 계약금은 4100억 원에 불과하지만 차기정부는 그 나머지를 전부 떠안아야 한다. 게다가 앞에서 거론한 무기들은 미국 내에서도 도입 이후 천문학적 운영비로 악명이 높은 ‘돈 먹는 기계’들이다. 이 무기가 한국에 들어오고 난 이후에 30년 간 장비 운영비로 도입비용의 3~5배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 결국 무기도입 20조 원, 그 운영비 60조 원이라는 현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비용 지불은 전부 해외로 유출되는 국부에 해당되며, 반면에 이들 무기 도입을 위해 한국형 무기체계 개발은 축소, 변형, 왜곡된다는 또 다른 기회비용의 손실도 예상된다. 도입방식 역시 국내에 경제적 부가가치 효과를 유발하는 기술도입생산 방식이 아니라 해외 직구매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 역시 국익에 정면으로 위반된다. 이제껏 무기획득 정책의 뿌리를 뒤흔드는 잘못된 방식들이다. 

기술도입 생산이 아니라 사업추진 속도 매달려 직구매 집착

국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기술도입 생산이 아닌 해외 직구매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조속한 사업추진에는 직구매가 유리하다는 논리가 작용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예컨대 유럽제 전투기인 유로파이터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50대 이상 현지 생산 하겠다”며 자신들의 생산라인을 한국에 공여할 뜻도 밝히고 있다. F-35나 F-15 SE 기종의 경우에도 기술도입 생산은 충분히 협상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나 방사청은 이에 전혀 관심이 없다. 국내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사업추진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점은 첨단 무기에 쏠리는 국방예산은 야전의 전투력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킨다는 점이다. 첨단무기에 밀려 야전 보병과 기갑, 포병 등 주요 전투력과 일선의 전투원들에 대한 자원배분이 악화됨으로써 한국군의 총체적인 전투준비태세는 계속 제자리 걸음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실패한 이유가 첨단무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전투원들에 대한 빈약한 무장과 군수에서 기인함은 잘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들 첨단무기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국지전과 비대칭 위협에 주목하는 북한군은 확실하게 억제하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 새로운 무기를 도입해서 상대방에게 보여주자는 식의 무기도입은 전략이 될 수 없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의가 있었다. 

윌리엄 하퉁이 올해 출판한 ‘전쟁의 예언자(prophets of war)’라는 책에는 흥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비로 인해 재정압박에 시달리던 펜타곤은 야전을 우선시하는 게이츠 장관에 의해 F-22 전투기 프로그램을 삭감하려 했다. 그러자 록히드마틴은 공군과 의회를 상대로 프로그램을 삭감하지 못하도록 로비를 했다. 이에 화가 난 게이츠 장관이 록히드마틴의 CEO인 로버트 스티븐을 펜타곤으로 불러들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이 문제(F-22 예산 삭감)에 당신이 나의 의견에 반대한다면, 나는 당신의 점심을 먹을 것이다(if you oppose on this, I will eat your lunch).”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jdkim20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