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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1일 화요일

아무것도 없었다


이글은 시사IN 2013-05-21일자 기사 '아무것도 없었다'를 퍼왔습니다.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회담이었다. 그 결과에 따라 긴장 국면이 해소될 수도, 새로운 위기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북 관계가 나아질 만한 합의는 전혀 없다.

조짐이 안 좋다.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 태풍 불기 전의 적막감마저 느껴진다. 국가 간에 사건이 벌어질 때는 반드시 징후가 있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2008년의 박왕자씨 사건(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이나, 2010년 연평도 사건 전에도 징후가 있었다. 북한 측 동향에 밝은 소식통들은 그 징후를 예민하게 포착해 사전에 경고음을 울렸다. 박왕자씨 사건은 2008년 4월의 북한군 전군지휘관 회의가 그 징후였다. 그때 북한 하급 단위 부대들 분위기가 험악했다. 당시 불만은 개성공단 때문이었는데, 사건은 엉뚱하게 금강산에서 터졌다. 2010년 10월의 연평도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북한군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금강산, 개성, 동해와 서해 중 한 군데’에서 사건이 일어날 조짐이었다. 두 달 전 이런 내용을 정보기관이 감지했지만 연평도에서 사건이 터지는 걸 막지는 못했다.

ⓒAP Photo 5월7일 한ㆍ미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고 있다.

한·미 동맹 60주년과 정전협정 60주년

올해는 한·미 동맹 60주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한·미 정상회담의 키워드를 여기에 맞춘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또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 등에 대해 첫 국제 무대인 워싱턴에서 인정받고자 한 것 역시 뭐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말의 성찬들과 함께 꼭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바로 지금 당장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에 대한 한·미 두 나라의 견해와 해법이었다.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북한과 중국 등 주변에서 모두 이번 정상회담을 기다렸고 예의 주시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최근 현안에 대한 중간 결산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긴장 국면이 해소될 수도,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김이 새버렸다. 바로 미국 측 실무를 맡아야 할 최고책임자인 케리 국무장관이 박 대통령의 방미 첫날 러시아로 출국해버렸다. 말로는 시리아 사태가 긴박해 러시아와 협의하기 위해서라지만, 러시아 측 반응은 ‘굳이 지금 안 와도 되는데…’였다.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실무 책임자가 없으니 한·미 정상 간 합의 역시 공허하게 들린다. ‘한·미 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이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공감대’를 이뤘느니 하지만, 개성공단이나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뿐 아니라 더욱 중대하고 근본적 현안인 북한의 핵문제와 군사 도발 따위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법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특히 올해 상반기 내내 있었던 북한의 잇단 도발은 한·미 양국이 무시 또는 회피하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말로써 결기를 보이는 것만으로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나름 평가한 뒤에 다음 라운드를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2월12일의 핵실험 이후 전개돼온 일련의 사태들은 한·미 양국에 대한 대응 차원이 아니라 자신들이 관철해야 할 목표를 분명히 한 상태에서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전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의 목표는 다음 문장에 압축돼 있다.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인 올해를 평화협정의 원년으로 삼겠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지만, 올해 북한의 움직임은 예년과 매우 다르다. ‘한·미 동맹 60주년과 정전협정 60주년 간의 대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올해는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다. 북한식 표현으로는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자기들 정권을 내놓는 것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정전협정 체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절박감이 존재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자신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준비해왔다. 핵실험을 단행하고 그 결과를 이란 등 중동에 확산하겠다는 것이다. ‘확산을 통한 협상전략’은 북한이 여전히 쥐고 있는 최고의 카드다. 북측은 그 데드라인을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일인 올해 7월27일로 보는 듯하다. 북한이 개성공단 잠정 폐쇄 이후 유예기간으로 설정한 3개월이 끝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 안에 모종의 성과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북핵 문제는 동북아 차원을 벗어난다. 대략 이것이 지금까지 북한이 그려온 궤적과 스케줄이다.

지난 상반기 북한은 자신의 요구 사항이 뭔지를 분명히 해왔다. 2월12일 핵실험 이후 미국이 김정은 제1비서의 의중을 탐색하기 위해 데니스 로드먼을 보내는 반응을 보이자, 3월5일 김영철 국방위 정책국장을 통해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했다. 평화협정 전환이 자신들의 요구임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키리졸브 등에 맞서 긴장 국면을 유지해가다 4월10일을 전후해 중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 및 개성공단 잠정 폐쇄를 통해 긴장 수위를 급격하게 끌어올렸는데, 이는 북·미 간 뉴욕 접촉에서 북한이 미국 측에 평화협정 논의 재개 시점을 4월10일까지 제시하라고 요구한 것과 관련돼 있다. 개성공단 문제를 평화협정 공세의 지렛대로 삼은 것이다. 이 점은 개성공단 정상화를 ‘(북에 대한) 군사도발과 적대행위 금지’와 연결시킨 5월5일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에서도 드러난다. 5월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5월7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날이다. 그리고 정상회담 하루 전인 5월6일 북한 은 자신들이 이미 핵 보유국 지위를 ‘법화(法化)’했다며, ‘흥정하려 들거나 시야비야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종합해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북한 비핵화 같은 이미 불가능해진 문제 말고, 5월10일로 예정된 한·미 해상훈련 등을 중단하도록 설득하고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데 힘을 써주면, 개성공단 중단 등 일련의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AP Photo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은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에 러시아를 방문했다.

그런데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 미국 측 실무 책임자는 자리를 비워버렸고, 합의 내용 중에 북측이 참고할 만한 사항은 전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강경한 대북 발언으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5월6일 CBS 인터뷰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라고 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면담에서는 “북한에서는 핵도 보유하면서 경제도 발전시키겠다는 병진 노선을 걸으려 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양립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목표”라고 하는 등 수위를 넘은 발언이 쏟아졌다. 당장 북한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회담 결과에 대한 실망을 넘어 ‘저런 태도라면 대화할 이유가 없다’는 비공식 반응들이 나온다.

베이징 프로세스는 가능할까

물론 박 대통령의 처지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정권 출범도 하기 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해버리고, 개성공단으로 협박을 하고 있으니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핵이든 개성공단이든 자기가 책임질 문제도 아니다. 이명박 정권과 해결했어야 할 문제인데, 자기가 덤터기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북한 문제는 그래서 더 어렵다. 합리적으로 대처가 안 되는 부분이 많고, 그것이 현실이다. 그 현실을 안정적이고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것 역시 한국 대통령의 책무 중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중에 중국 카드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한·미 정상회담 직후로 예정돼 있는 한·중 정상회담이다. 그런데 과연 중국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최근 북·중 간 움직임은 그마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최근 중국은 두 차례에 걸쳐 특사 파견을 북한에 제의했으나 두 차례 모두 아무 반응을 못 얻었다. 첫 번째는 지난 4월22일 미국 국무부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회담하고 돌아온 우다웨이 중국 6자회담 대표의 방북 제안이었으나 북한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후 중국 공산당 쪽에서 대표를 보내겠다고 했으나 역시 무응답이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이 유예기간을 갖고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렇다. 더구나 중국이 보기에도 미국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얼마 전 국내 한 신문이 “중국이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낮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이런 우려를 (한국)정부에도 전달했다”라고 보도했는데, 이 같은 평가는 사실이다. 

중국이 보기에 그동안 북핵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심각하다. 의지와 역량이 모두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지난번 케리 방문에서 드러났듯이 중국에 떠넘기는 데 급급하고 정작 자신들이 할 일은 하지 않으려 든다. 워싱턴에서는 이미 대북 문제는 손을 놨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결국 북핵 문제가 돈 문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쓸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뉴시스 5월3일 개성공단에 남았던 한국 차량이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귀환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중국 역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운 북핵 해법은 북한의 핵확산과 동결 문제는 6자회담에서 다루되, 한국과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 비핵화’와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문제는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 양자 채널에서 다루라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북·미 대화가 중요하다. 여기서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줘야 중국이 대북 특사를 북한에 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6자회담에 시동을 걸 수 있다. 현재는 미국이 북·미 대화를 시작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이것이 없는 중국 특사의 방북은 의미가 없다’며 거부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베이징 프로세스, 즉 특사 방문을 통해 북·중 채널을 열지 못한 상태에서는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들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출발은 다시 미국인데,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중국도 자신들만 덤터기를 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중재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 먼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첫 반응이 지난 5월10일 조평통 대변인 성명으로 나왔다. 조평통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전쟁 전주곡’ ‘동족대결 행각’ 등의 표현을 써가며 거칠게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는 현 남조선 당국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 제반 사실은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남조선 당국자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해, 당분간은 지켜볼 것임을 시사했다. 일단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5월 중 베이징 프로세스를 시작할 만한 정황이 전개되지 않을 경우, 북측은 영변 5메가와트 원전 재가동을 극대화하면서 베이징의 통제력이 자신들에게 더 이상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남북 간에는 개성공단에 대해 한 단계 나아간 조처가 당장이라도 나올 수 있다. 어차피 북측은 개성공단 유예기간을 앞으로 3개월로 보고 있다. 그 데드라인 역시 7월27일에 걸려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상황대로 밀려가면 7월27일 개성공단은 완전 폐지되고, 정전협정 역시 무효화 차원을 넘어 아예 폐지가 선언될 가능성이 크다. 


ⓒAP Photo 지난해 9월 이란을 방문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

군사적으로 보면, 한·미 훈련이 진행될 때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게 여태까지 관례였다. 5월10일부터 해상훈련이 다시 시작되므로, 북측이 무언가를 하게 된다면 6월 말, 7월 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북한 군부의 피로도가 지금처럼  높았던 때가 없다. 국지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도적 또는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핵의 중동 확산과 관련해서도 주목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이미 지난 4월 이란 석유의 대북한 수출과 관련한 협정이 체결됐다.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에 대응하면서 북한의 기름 소비가 평상시에 비해 엄청날 정도로 많았다. 외부 공급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 시점을 북측에서는 8, 9월로 본다고 한다. 이란에서 배가 들어오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란에서 배로 움직이려면 한 달 정도 걸리므로 대체로 7월 정도면 어느 쪽이든 결론이 나야 한다. 

이란의 배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배가 과연 기름만 수송하게 될까? 그만큼 이번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했는데, 뉴스는 ‘방미 중 대변인 경질’이라는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끝났다. 


남문희 대기자  |  bulgot@sisain.co.kr

2013년 5월 18일 토요일

北 개성공단 협의 의사타진 왜 '비공개' 했나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5-17일자 기사 '北 개성공단 협의 의사타진 왜 '비공개' 했나'를 퍼왔습니다.
미정상회담 일정에 윤창중 스캔들.. 내부 협의 늦었을 가능성남북 각자 이해득실 따지며 기싸움의 결과라는 분석

북측이 최근 개성공단 관련 협의 의사를 우리측에 전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정권 초반 남북 간 미묘한 기싸움과 한미 정상회담 일정 등 복잡다단한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해 이를 비공개로 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15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우리 측은 지난 5월 3일 남측 잔류인원들이 개성공업지구에서 전부 철수할 때에 공업지구 하부구조 대상의 정상 유지관리를 위한 관계자의 출입과 입주기업가들의 방문 및 물자반출을 허용해줄 의사를 표명하면서 그와 관련한 날짜까지 제시해 줬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은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우리측 인원 7명이 최종적으로 철수하면서 우리측이 미수금 명목으로 1300만달러를 북측에 건네 준 날이다.
관련 당국인 통일부는 이에 대해 일단 북측이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했다는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을 북측이 이를 주장한 직후 인정했다.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16일 브리핑에서 "북한이 요구한 소위 미수금 정산을 위해 지난 3일 방북한 우리측 개성공단 관리위 부위원장에게 북측이 '미수금 정산을 위한 입주기업의 방북, 전력과 용수 등 시설관리를 위한 인원의 방북은 허용할 수 있다. 원부자재 및 완제품 반출을 위한 방북과 관련해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한 바는 전혀 없었다"고 뒤늦게 설명했다.
당시 상황을 정리해보면, 홍양호 개성공단관리위원장 등 공단에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측 인원 7명이 남측으로 귀환하면서 미수금을 북측에 전달하기 위해 김호년 관리위 부위원장이 개성공단으로 올라갔다.
북측은 김 부위원장이 공단에 들어온 자리에서 미수금을 넘겨받으면서 우리측에 관련 인원의 방북을 포함한 미수금 정산 문제 등을 협의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김 부위원장은 이에 대한 우리측의 공식적인 입장을 곧바로 전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으니, 추후 남북간 채널 등을 통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북측이 협의 의사를 전달한 만큼 우리 정부는 북측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아 지난 14일 남북 간 실무회담을 공식 제안했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당시 남측으로 귀환한 홍 위원장이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해서는 협의가 있을 것으로 본다. 여러채널을 통해 북측과 협의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던 것은 북측의 이러한 의지를 확인한 데서 비롯됐던 것으로 이해된다.
석연치 않은 것은 우리측 인원의 완전철수가 이뤄지는 등 개성공단의 완전폐쇄 가능성까지 제기되던 상황에서 공단 정상화 신호로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점이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협의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일일이 알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 간 오고간 메시지를 비공개하는 것은 북한에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민감한 문제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에도 금강산관광객 피살사건 발발 후 관광 중단 상황에서 북한이 남측의 관광 재개 요구 조건을 수락한 합의서 초안을 제시했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대외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북한 입장에선 남한 정권이 금강산관광 재개에 큰 의지가 없다는 인식을 자칫 심어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특히 이번의 경우 북측이 남북 간 협의 의지가 있음을 확인하고서도 실무회담을 제안한 날까지 열흘이 넘도록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일단 여기에는 현 정권 초반부터 이어져 오던 남북관계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기싸움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개성공단 내 우리 입주기업들의 완제품과 원·부자재 반출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회담을 제의하라고 지시했다. 이미 개성공단과 관련한 북측의 협의 의지가 있음을 청와대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상태다.
때문에 정권 초반 남북 관계의 기선을 잡기 위해선 우리가 회담 제의를 한 데 대해 북측이 수용하는 그림을 만들려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한 대북문제 전문가는 "우리 정부가 먼저 회담제의를 하면, 북한이 이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만들려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한미정상회담 등 중요한 일정이 코앞에 두고 이에 대한 내부적 협의가 늦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북측이 협의 의사를 타진한 이틀 뒤 박 대통령은 미국으로 출국했다. 북측의 의사와 관련한 보고는 들어갔겠지만, 방미 일정을 준비하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이에 대한 협의가 늦어졌을 여지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방미 일정 막판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스캔들이 터지면서 전혀 다른 정국으로 전환된 점도 고려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의 협의 의지를 알고 있었던 우리측이 판문점 연락채널 등을 이용해 북측에 먼저 연락조차 시도하지 않은 점은 우리 대응이 너무 안이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전문가는 "결국 양측이 각자의 이해득실을 따지다가 개성공단만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서울=뉴스1) 조영빈 기자


조영빈 기자 / 뉴스1  |  webmaster@pressbyple.com

2013년 5월 14일 화요일

한미정상회담 합의 내용, 이리저리 뜯어봐도...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5-13일자 기사 '한미정상회담 합의 내용, 이리저리 뜯어봐도...'를 퍼왔습니다.
[경제분야 결산] '엔저' 문제엔 무관심하고 득없는 '코리아 세일즈'에만 열올려

▲ 수행경제인 조찬 간담회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해이아담스호텔에서 열린 수행 경제인들과의 조찬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가 이번 방미를 통해 이른바 '코리아 세일즈'에 성공했다며 자화자찬 중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을 비롯한 경제5단체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구본무 LG 회장 등을 비롯한 52명의 주요 경제계 인사들을 대동하여 간 것이 성공요인이라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방미 성과 리스트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재벌 총수들까지 총 출동하여 미국까지 날아간 만큼 '엔저'로 인한 수출 위기 등 굵직한 국내 경제 현안을 풀어낼 만한 논의들도 제기되었을 법 하지만, 실상은 정 반대다. 4박 6일간 이루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 그 진실은 무엇일까.

민생경제 현안은 철저히 외면한 박근혜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미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수 있었던 의제 중 시급한 현안은 '엔저' 문제다. 일본의 무제한 양적완화로 인해 일본산 제품의 가격이 크게 떨어져 국내 수출 기업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5월 13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발표한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속화하는 일본 엔저 현상으로 인해 수출 중소기업 53%가 매출이 감소했으며 수출을 포기하는 중소기업들까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대변자 역할에 충실하여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 수출업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처지에 대해 동의를 구하고 일본의 '양적완화' 조치에 동조하는 미국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인위적인 환율 하락 정책에 대응한 박근혜 대통령의 노력은 전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방미 기간에 한미FTA와 관련한 현안들도 철저히 외면했다. 한미정상회담 전부터 국민들은 ISD 등 국가주권을 침해하는 한미 FTA 독소조항에 대해 재협상하라고 요구해왔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묵살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에서 한미FTA에 대해 "한·미 FTA의 긍정적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충실히 이행해 나갈 것"이라면서, 한미FTA로 인한 국내 산업 피해 등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는 미국과 협의할 수 있었던 굵직굵직한 현안에서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코리아 세일즈'하려다 내정간섭 받은 대통령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워싱턴 윌러드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린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청와대

그렇다면 청와대가 자화자찬중인 '코리아 세일즈'의 실상은 어떠할까. 청와대는 이른바 '경제사절단'이 총동원되어 GM의 80억 달러 투자를 재확인 하는 등 '바이 코리아'에 성공했다며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GM이 제시한 80억 달러 투자는 조건부 투자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댄 애커슨 GM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80억 달러 투자에 내정간섭에 가까운 전제 조건을 달아 취재진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댄 애커슨 GM회장은 5월 8일(현지시각) 진행된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we will not abandon Korea)"라고 하면서 '엔저'와 '통상임금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달았다. 

GM 회장이 제기한 '엔저' 문제는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본 아베 내각이 일본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여 '양적완화'에 나선 것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물론 GM 회장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엔저'에 대한 GM 회장의 문제제기는 '애로사항'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통상임금' 문제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통상임금' 문제는 고정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느냐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국내 자동차 대기업과 노조가 소송을 진행 중에 있는 국내 현안이다.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돼 늘어나면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휴일 근로 수당과 퇴직금이 늘어나게 된다. GM 회장은 '통상임금' 문제가 기업 입장에서 유리하게 판결되도록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는 국내 법원의 판단까지 뒤집어 달라고 요구한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더 큰 문제는 GM 회장의 요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답이다. 조원동 경제수석의 전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GM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갖는 문제이니까 이 문제를 확실히 풀어가겠다"는 취지의 대답을 남김으로써, 현 재판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통상임금' 문제를 기업 입장에 유리하도록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법원의 판례까지 뒤집어야 한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자화자찬 한 '코리아 세일즈'는 외국자본에 투자를 구걸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위해 국민들의 임금 결정을 위한 법원 판결까지 외국자본 입맛에 맞게 바꾸겠다는 굴종 외교에 다름 아니다. 

재탕삼탕 우려먹기 바쁜 청와대

한미정상회담의 실상이 이와 같다보니, 정부는 기존에 논의되던 제안들을 재탕삼탕하거나, 정상급 외교의 격에 맞지도 않은 성과를 과대 포장하는데 바빴다. 


▲ 한미정상회담 경제관련 발표 내용 요약 한미정상회담 경제관련 발표 내용 요약 ⓒ 김성훈

먼저 청와대는 이번 방미의 성과로 '포괄적 에너지 협력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셰일가스와 가스하이드레이트 등 에너지 개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성명' 전문 중 셰일가스 개발과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과 셰일가스에 대해 "양국의 정부와 민간분야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로 했다"는 것이 전부다.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란 결국 민간 학술 토론회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사실상 독점 생산 중인 셰일가스 개발 관련 기술을 한국 기업과 전면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셰일가스 기술선도국가인 미국과 최초로 셰일가스 협력을 추진키로 함으로써 국내 자원개발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산업부 관계자의 평가(에너지타임즈 5월 8일 보도)는 근거 없는 희망에 불과하다. 

가스하이드레이트 개발에 관련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4월 18일에 체결한 가스하이드레이트 연구 개발 정보 공유를 위한 협력 의향서 기한을 연장"했다는 것이 합의 내용의 전부다. 결국 한미 양국이 합의한 에너지 관련 협력이란, 관련 기술 이전이나 공동 개발 등 구체적 계획은 하나도 없는 '허울뿐인 협력'인 것이다. 

청와대는 장기간 논의 중인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 방안도 성과라 치장하고 나섰다. 1만5000개의 전문직 비자 쿼터는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당시부터 논의되어 협상 체결 당시 확보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미국의 무성의로 유야무야된 오래된 이슈다. 서울경제는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5월 8일 보도에서 "이번 방미 기간에 어떤 새로운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설명이 없다"고 보도하였다. 

그나마 확정된 것은 300여 명 규모의 대학생 연수 취업 프로그램 기한을 5년 연장한 것이다. '한·미 대학생 연수취업(WEST, Work, English Study, Travel) 프로그램'은 연간 300명 규모의 한국 대학생들에게 '어학연수 5개월+인턴 12개월+관광 1개월'의 미국 체류 일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올해 10월 말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사실 이런 합의는 정상급 회담이 아니더라도 실무진 수준에서 얼마든지 논의하고 합의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를 정상급 회담의 성과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미국이 과거부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실천에 동참하지 않았음 돌아본다면, 한미정상이 발표한 '기후변화 공동성명' 발표도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청와대의 정상회담 합의내용을 일일이 뜯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얼마나 실속 없는 일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누구를 위한 정상회담인가

이번 방미 결과를 되짚어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의 이익보다는 외국자본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였고, 주권 회복을 외치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들은 철저히 외면하였다. 정상회담의 진실이 이러하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은 있지도 않은 성과를 과대 포장하여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 임기 첫 한미정상회담이 사상 최악의 정상회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방미 기간 중 발생한 초유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때문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성추행 사건으로 얼룩지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는 눈치지만,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김성훈(punkkid99)

2013년 5월 4일 토요일

[인터뷰-①] 정동영 “박근혜, 한미정상회담서 미국에 끌려가지 말아야”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5-02일자 기사 '[인터뷰-①] 정동영 “박근혜, 한미정상회담서 미국에 끌려가지 말아야”'를 퍼왔습니다,

"개성공단은 조기경보기능 군사적 가치...안보 부담 늘어나"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착잡합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아직 희망의 끈은 있습니다. 끈을 놓지 말고 개성공단을 살려내야 합니다. 살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이 다 개성공단이 죽는 걸 원하지 않지 않습니까. 폐쇄해서 남과 북 모두 좋을 일이 없지 않습니까. 문제는 대화의 장이 안열리고 있다는 겁니다. 열리기만 하면..."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개성공단이 문을 연 2005년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남과 북을 오가며 산파 역할을 했다. 남북협력의 상징이자 가늠자였던 개성공단이 문을 연 지 채 10여년이 지나지 않아 폐쇄 위기에 처해있는 만큼 그의 착잡한 마음은 쉽사리 가늠이 됐다. 하지만 정 고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30일 오전에도 임동원,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박지원, 문재인 의원 등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개성공단에 관여했던 인사들과 회동을 가지고 폐쇄위기에 처한 개성공단과 관련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모인 인사들은 모임 후, 박근혜 정부를 향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내용을 조속히 공개하고 역대 정부가 북한과 합의했던 사항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것을 제안했다. 또 비핵화와 평화협정체결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고위 당국자회담과 개성공단 해결을 위한 실무회담을 제안할 것을 촉구했다.

- 오늘(30일) 모임에서는 발표된 내용 외에 추가적으로 어떤 내용이 논의됐습니까.

"개성공단을 살리기 위한 평화회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시민사회와 정당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하기 전에 한미정상회담에 바라는 내용도 발표할 계획입니다."

- 한미정상회담에 바라는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미국에 대해서는, 북미대화를 촉구함과 동시에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거에요.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강대국에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개성공단을 살리려면 미국에 가기 전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내용을 가지고 가라는 게 핵심입니다. 개성공단을 닫고 평화를 만들 수 없어요. 오늘 모임에서는 개성공단의 군사적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 됐습니다."

- 정부가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 철수 결정을 내렸습니다. 남은 사람들의 인도적 상황의 악화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향후 남북관계에서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 결정은 실책이죠. 큰 목적과 작은 목적이 있을텐데, 큰 목적은 개성공단을 유지 발전시키고 평화를 지키는 것이고, 작은 목적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죠. 그런데 개성공단에 있는 우리 국민들이 위협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았어요. 언론보도도 부정확했습니다. 식량이 떨어져서 쑥을 뜯어먹는다든지 하는 황당한 보도도 있었죠. 황당한 정책결정, 황당한 선택이었습니다."

- 박 대통령이 북에 대화를 제안할 때 야당에서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급작스레 시한을 정해 북에 대화제의에 대한 답을 내놓으라고 하고, 곧바로 철수결정을 내렸습니다. 5월 7일 한미정상회담 일정이 잡혀있고 이후에 논의가 진전될 수도 있었는데, 좀 급작스러운 느낌입니다. 왜 그랬다고 보십니까.

"어쨌든 3월까지는 초기 관리를 침착하고 차분하게 해왔다는 게 정평인데,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의 방한을 전후로 해서 뭔가 좀 꼬인 것 같습니다."

- 급작스러워서인지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도 이와 관련해서는 왜 그런 정책결정이 있었는지 뚜렷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 문제와 관련해서 아쉬운 건, 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일 때 이미 핵문제가 진행되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 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이명박정부 5년은 이랬지만 새정부는 새롭게 해볼 의지가 있다는 신호를 북쪽에 줄 수 있었죠. 그런데 그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해 12월부터 북한의 로켓발사, 핵실험과 UN의 대북제재, 한미 군사훈련이 맞물려서 계속 이어졌어요. 그 불똥이 개성공단으로 튀어버린 것이지요. 쉬면서 가닥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남북관계에 파도가 닥친 것이죠. 그러다가 지금 덜컥수가 나온 것입니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항상 신뢰를 강조하는데,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도 큰 그림보다는 한 스텝 한 스텝 차곡차곡 밟아가는 방향을 선호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개성공단 협의를 제안했는데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런 결정을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하자고 했는데 안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또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하자고 하면 그게 되겠습니까. 이미 그건 끝난 이야기죠. 그러면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포괄적 접근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MB 5년과는 다르다' '물건 사고 팔고 왕래하자'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 있다 논의하자' '개성공단 다시 돌리기 위해서 논의 위한 회담하자' '우선 장관급회담 전에 실무회담하자'. 이게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포괄적 접근입니다. 이렇게 가야 반응이 오든지 하죠. 결론은 의지입니다. 개성공단 살리겠다는 목표와 의지가 있다면 길은 있습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살아날 수밖에 없거든요. 개성공단을 죽여서 좋은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국내정치용이었다면 그 정도 보여줬으면 됐습니다. 이제는 실질적으로 살려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게 다 박 대통령의 업적이 될 수 있습니다."

- 현 사태의 해법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문제를 남북 간 소통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데요.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최근 북은 개성공단을 양보하고 우리는 금강산을 양보해 신뢰를 쌓는 것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첫 발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지금은 제목만 있지 않습니까. 프로세스라면 절차, 일정표가 나와야 되는 거죠. 궁극적인 목표는 동북아에서의 평화와 안정인데, 출발은 남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대화 자체가 안열리니 답답한 일이죠. 대화가 안열린지 실질적으로는 5년이 됐습니다. MB정부 5년 동안 6자회담 남북회담 모두 안열렸습니다. 완전히 적대시대로 돌아가버린 거죠. 그 5년 동안 누적된 적대가 지금 후유증을 낳고 있는 겁니다. 박 대통령이 새롭게 뭘 해보려고 해도 5년간의 유산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떠밀려가면 박근혜 정부도 손해고, 남북 모두 손해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합니다. 위기인 남북관계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용기에서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도자로서의 용기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 아직 개성공단에 7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 분들의 철수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7명이 다 철수하면 어떤 상황이 됩니까. 남북간의 모든 통신선과 모든 인적 교류와 모든 창구가 다 닫히는 깜깜절벽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남북간에 적십자회담이 시작된 1971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하겠다면서 대승적 제의를 해야지 어떻게 최후통첩식 제의를 합니까. 개성공단은 남북에 유익하고 앞으로도 키워나갈 것이니까 남쪽에서 외화벌이 운운한 것은 유감이다라고 하면서 소중한 싹을 위해 만나자고 점잖게 얘기했어야죠. 남북대화 역사에서 내일 아침까지 대답하지 않으면 중대조치하겠다고 한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이건 황당한 결정입니다."

- 남아있는 7명이 꺼져가는 대화의 마지막 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물밑 접촉의 연결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봐요. 통일부 차관을 지낸 홍양호 씨가 개성공단관리위원장으로 나가 있죠. 대한민국 국민으로 이북 땅을 밟고 있는 건 이들 7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 뭔가 연결선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북쪽에서도 쫓아내려고 하지 않으니까 본인들이 남아 있으려면 얼마든지 남을 수 있어요."

-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MB정부 5년과 달리 우리는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신호가 북측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상대로 신뢰할 만 한가라는 의문을 북한이 가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해법이 있겠습니까.

"최고지도자간의 소통만이 남과 북에서 뭔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7.4공동성명은 박정희 김일성, 남북기본합의서는 노태우 김일성,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한반도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의 소통이 있어야 합니다."

- 정 전 장관을 비롯해 앞서 남북대화에 관여했던 분들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양쪽 귀로 들어야 합니다. 한쪽은 참모들 의견을 듣고, 한쪽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반대편에 있지만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 참석자 면면을 보면 북한과 대화를 해봤거나 북한을 잘 아는 사람이 없어요. 딱 한 명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죠. 2002년 평양에 갔다 왔지 않습니까. 나머지는 김장수 국방장관이 수행원으로 가서 악수한 게 유일하고, 북에 가본 일도 없고 대화를 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그쪽 참모들 이야기만 들으면 실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야당에는 경험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남북관계는 초당적으로 가야지요."

- 혹시 정부에서 도움이나 자문을 요청한 일이 없었습니까? 앞으로 그런 요청이 있다면 응하실 생각은요?

"그런 제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앞으로 그런 요청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야죠. 민족문제이지 않습니까."

- 통일부 장관 시절을 비롯해 북측과 대화를 많이 하셨습니다.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지기 쉬운데, 직접 대화를 해본 당사자로서 느끼셨던 북한의 특징은 어떤 게 있었습니까. 그리고 북한과 대화할 때 주요하게 봐야할 것은 어떤 게 있을까요?

"첫번째,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80년대에 북한에 갔다와서 펴낸 책 제목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어요. 북한의 지도자들도 당국자들도 사람입니다. 두번째, 북한의 행태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게 많지만 그래도 그속에 그 나름대로 자기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있고 전략이 있어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대로 '이럴 거다'라고 생각한다거나, '저 사람들은 이런 거다'라고 선규정해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상임고문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 인터뷰 시작할 때, 개성공단의 군사적 가치에 대해서 오늘 회동 때 얘기를 나누셨다고 했는데,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개성에 있던 북한 군부대 2개 사단과 포병여단 등이 송악산 뒤쪽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경비병 정도밖에 없어요. 휴전선 155마일에 걸쳐서 양쪽이 철통같이 대치하고 있는 게 거기만 뻥 뚫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죠. 북한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들의 취약요소에요. 그걸 다시 앞으로 전진배치한다면 우리에게도 안보 부담이 됩니다."

- 안보측면에서 보자면 양측 모두 부담스러운데,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겁니까.

"2000년 8월과 2004년 8월의 장면이 생각납니다. 2000년 정주영 회장이 개성공단과 관련해 3단계 그림을 가지고 방북을 했어요. 공단 800만평에 근린시설까지 포함하면 2000만평을 만들겠다는 거죠. 김정일 위원장이 '좋다. 몇 년 걸리냐'고 묻자 정주영 회장이 '착공해서 8년 걸린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주영 회장이 '2000만평이 돌아가려면 노동력이 35만명이 필요한데 이 인력을 어디서 구하냐'고 하니까 김정일 위원장이 하는 말이 '아까 8년 걸린다고 했죠? 우리가 6.15공동선언을 발전시켜 나가면 남북관계 계속 발전되고, 남과 북의 군대가 너무 많으니까 그 단계가 되면 인민군 군복을 벗겨서 한 30만 명을 공장에 보내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북한 지도자가 그런 생각했다는 걸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방향으로 가아죠."

- 2004년 8월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 때면 개성공단이 아직 가동되지 않았을 때인데요.

"그 때 미국 국방부에서 제가 NSC(국가안전보장회의)위원장 자격으로 럼스펠트 국방장관과 마주앉아서 '개성공단 세일즈 하러 왔습니다' 했어요. 미국은 그 때 개성공단에 반대했었는데, '대치상태인데 북에다 공장을 짓냐, 속도조절해라'고 하더라고요. 개성공단 터는 닦아놨는데 공장은 아직 못들어가던 때에요. 한미연합사의 가장 취약점이 뭡니까. 종심이 짧다는 거죠. 휴전선에서 서울까지 40km밖에 안되요. 북한의 포병 화력이 수원까지 갑니다. 그러니까 인공위성으로 사진 찍어서 영상정보 취합하고 정찰기 띄워서 음성정보 감청하고 인적정보 분석하고, 수천명의 인력이 달라붙어서 분석해요. 북한군의 특이동향을 사전에 알아내기 위해서죠. 조기경보기능이에요.

대결상태라고 보면 개성은 적지 아닙니까. 적지의 땅을 2000만평 내준다는데, 그건 조기경보기능을 최소한 24시간 48시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 속도조절하라고 하고 반대하냐고 럼스펠트에게 얘기한 거죠. 그러니까 럼스펠트가 '미스터 정 말이 맞다' 하고는 다음날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부시가 승인해서 적극적으로 미국이 지원한 겁니다.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도 너무 속도가 빠르다고 몇 번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만일에 인질사태가 나면 어쩌려는 거냐는 우려죠. 그래도 저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돌맹이 하나 만들어서는 바람 불고 폭풍치면 날아가지만, 집채 같은 바윗덩어리를 만들면 이게 오히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 5년동안 묶여 있었던 게 더 아쉬운 겁니다. 원래 완공목표는 2012년이었는데, 면적기준으로 보자면 현재는 800만평 공단에서 30만평만 돌아가는 거예요. 원래 목표대로 됐으면 개성공단 하나가 북한 전체 GDP보다 커질 수 있었어요. 그랬다면 북한도 그걸 폐쇄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남북 경제협력을 본격적으로 하면 일자리 문제나 경제성장 문제도 출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없어졌겠죠."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인터뷰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정성일, 박상희 기자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5월 한미정상회담, '박근혜 해법'을 제시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3-04-21일자 기사 '5월 한미정상회담, '박근혜 해법'을 제시하라'를 퍼왔습니다.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임경훈 서해문집 편집인(정리) 

한반도에 드리웠던 위기의 먹구름이 조금씩 걷힐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의 뜻이 있음을 밝혔고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한중일을 방문하고 북한 비핵화 대화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냈다. 케리는 마지막 방문지인 중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과 함께 6자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아주 빨리(very quickly) 움직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에 대한 북한의 반응도 나온 상태에서 이제 관심은 5월 7일에 있을 한미정상회담으로 쏠리고 있다.

4월 18일 (프레시안)은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정세 변화를 면밀하게 진단하고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4월 18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대화를 원한다면" "도발 행위를 중단, 사죄"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를 철회"하라고 밝혔다. 정세현 총장은 북한이 내건 '조건절'에 주목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5월 7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최우선순위로 놓고 대화에 임하라고 주문했다. 

정 총장은 이 과정에서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에 비해 속도가 뒤처지는 것 같다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고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확신을 북한에 심어주면 자연스럽게 남북 관계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정 총장은 3월에 한미독수리훈련이 시작되는 바람에 박근혜 정부가 얘기한 신뢰프로세스를 구체화할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면서 한미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방향성에 대해 합의한 뒤, 국민적 동의를 구하며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북한도 핵보유국 지위에 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실험을 두 번 성공한 것 가지고 국제적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핵보유국 지위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군사적 안전 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편집자)
▲ 정세현 원광대 총장 ⓒ서해문집


프레시안 : 지난 8일 북한의 개성공단 잠정 폐쇄 조치로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반도 안보 위기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의사 표명,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대북 대화 제의 등으로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중일 방문을 마친 케리 장관이 대화 제의를 한 데 대해 북한이 강경 반응을 보였습니다.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 성명을 통해 "한미 양국이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 모든 도발 행위들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사죄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러한 북한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정세현 : 북한의 화법에서는 조건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때는 조건절이 주절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을 때도 있어요. 조건절은 그냥 넘어가고 주절에서만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핵심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도발 행위들을 즉시 중단하고 전면 사죄하라"는 주절보다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북한이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이란 표현을 쓴 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의 대화 제의에 화답한 것으로 보입니다. 케리 장관의 발언에서 뭔가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봐야 해요. 케리 장관은 양제츠(杨洁篪) 중국 국무위원과 회담한 후 발언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미중 양국이 노력할 것이며, 이를 매우 빨리(very quickly) 진전시키기 위해 두 나라가 추가 협의(further discussions)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2005년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6자회담은 물론 2자회담, 4자회담도 가능하다고 얘기했어요. 북한은 그걸 보고 '괜찮은 메시지구나' 하고 판단한 뒤 이런 반응을 보인 걸로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득실을 많이 따졌을 거예요.

물론 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입장은 2005년과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내세우면서 비핵화보다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먼저 논의하자고 요구할 겁니다.

프레시안 : 2자회담, 4자회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세현 : 만약 6자회담부터 열자고 한다면 판을 어떻게 짤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해서 수많은 협상과 기싸움, 물밑 접촉 등을 거쳐야 합니다. 일을 쉽게 풀려면 미국과 북한이 먼저 만나서 판을 어떻게 짤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한 뒤에 6자로 가는 게 빠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2.13 합의는 형식은 6자회담이었지만 그전에 2006년 11월부터 미북양자가 틀을 짜놓고 6자회담에서 추인받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2.13 합의는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실천 로드맵인데,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이 복잡합니다. 9.19공동성명은 미국에서는 국무부가 주도하여 2005년 9월 19일에 합의됐는데. 바로 다음 날인 9월 20일부터 재무부 쪽에서 북한의 불법 자금 세탁에 이용된다는 이유로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경제 제재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이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9.19공동성명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죠. 아무리 다른 부서라지만, '한 대통령 아래에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북한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죠. 그러면서 '미국이 우리를 살살 달래서 우리 핵능력만 약화시키고 실질적으로 우리 뒤통수를 때려서 무장 해제를 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으면서 바로 핵폭탄 만들 준비를 했습니다.

결국 그로부터 1년 후인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하지 않습니까? 핵실험을 하고 나니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을 압박하던 부시 정부가 11월에 북한과 양자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해주면 되겠느냐. 9.19공동성명이 매력적인가? 우리가 그동안 사정이 있어서 이행하지 못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하자.' 이렇게 하면서 그 이행 계획을 만든 게 2.13합의입니다. 어쨌든 북미 양자 협의가 선행됐기 때문에 짧은 기간 안에 6자회담에서도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2자회담이 매력적입니다. 4자회담, 6자회담으로 가기 위해서는 2자회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일 겁니다. 18일에 "대화를 원하다면"이라는 토를 달았지만, 사실은 거기에 북한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는 것이죠.

4자회담이 북한에 매력적인 이유는 9.19 공동성명 4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9.19 공동성명은 6개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1항이 한반도 비핵화, 2항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3항 에너지 등 대북 경제 지원, 4항이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입니다. 구체적으로 4항은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고 돼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별도의 포럼 관련 당사국이란 한반도 정전 체제 및 평화 체제와 관련된 남북미중 4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남북미중 4자회담은 곧 한반도 평화 체제에 관한 논의를 의미하는 것이죠. 어찌 보면 4자회담이라는 것이 6자회담보다 핵심이에요. 한반도 평화체제를 요구하는 북한으로서는 4자회담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것이 반가운 일일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를 원한다면"이란 표현을 쓰게까지 만들었는데, 이렇게 띄워놓고 또다시 미국에서 북한을 향해 "비핵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느니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들어가는 조치를 선행하라"느니 하는 식으로 나오면 북한은 미국의 진의가 뭐냐 하면서 의심하고 대화 테이블에 안 나올 겁니다.

그동안 북미대화, 북핵회담의 역사를 보면 클린턴 정부 때부터 그래 왔습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가 모양을 만들어 놓은 뒤 그 이행을 위해서는 실무자들이 들어갑니다. 이들은 대부분 북한 전문가나 외교 전문가가 아니라 핵 검증 전문가들입니다. 이들이 들어가서 사사건건 "이건 이렇게 고쳐라", "저건 저렇게 고쳐라" 하면서 미국 쪽에서 합의 사항을 이행할 시간을 자꾸 늦춥니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도 이행 못 한다" 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원칙적인 합의를 해놓고 난 뒤 이런저런 기술적 이유를 대면서 자꾸 지원을 늦추니까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본심이 뭐냐는 의심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북한은 미국이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더 강수를 뒀죠. 그런데 우리는 미국에서 원인을 제공했던 부분은 생각 안 합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니까. 그런데 국제 정치, 외교에서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쪽은 계속 좋은친구(good guy)이고 다른 쪽은 계속 나쁜 녀석(bad guy)일 수 있겠습니까? 엄연히 상대가 있는 문제인데.

박 대통령이 4월 9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이 위기를 조성하면 타협하고 지원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된다고 발언했는데, 좁은 대롱을 통해 북한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식으로 보게 됩니다. 대롱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라버리고 보는 것이죠. 미국도 약속 위반을 많이 했습니다. 클린턴 정부만 해도 1994년 10월 21일에 제네바 기본 합의를 체결해놓고 17일 후인 11월 7일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한 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제네바 기본 합의를 제대로 이행을 못 했습니다. 그다음부터 북한은 미국의 본심을 의심하게 됐습니다. 자신들의 핵 능력만 동결시키고 시간을 끌면서 다른 방법으로 북한을 와해시키려는 거 아니냐는 것이었죠. 그래도 클린턴 정부 때까지는 성의 있게 나가면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은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2002년 10월 켈리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제기하기까지 북핵 문제는 없었습니다. 북한이 경수로 건설에 대한 기대 때문에 핵 활동을 안 했으니까요.

그런데 부시가 고농축 우라늄 문제를 구실로 경수로 건설을 중단시키니까 2003년부터 북한은 IAEA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 활동을 재개하는 등 강수를 두었습니다. 이에 부시 정부는 북핵 문제를 다자회담 방식으로 풀자면서 5자회담을 제의했고, 북한이 다시 6자회담을 역제의해 2003년 8월 6자회담이 성사됐습니다. 장시간 협상을 거쳐 2005년 9.19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BDA 제재가 시작된 거죠.

이런 지난 역사 때문에 북한이 미국의 진의에 대해 계속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오바마 정부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확고한 자세를 확립해야 하는데, 그것을 한국 정부가 촉진시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평화협정 문제를 우선적으로 협의하는 4자회담을 열어도 좋다는 열린 자세로 나가 북한 핵 활동의 진전을 막아야 우리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협정을 뒤로 미루면 북한은 회담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서 핵 활동은 계속할 것이고요. 그렇게 계속 시간을 보내면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북한에 핵멱살 잡혀 헉헉거리면서 미국에 매달려 핵우산도 확대해야 하고 미사일방어체제(MD)도 사야 되고 국방 예산도 확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4자회담도 좋다, 북미회담도 빨리 열어라',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합니다.

프레시안 : 케리 장관의 대화 제의에 북한이 내심 관심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군요?

정세현 : 그렇죠. 북한이 말로는 사죄하라 뭐하라 했지만, 20일 정도 남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좋은 말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독수리 훈련 종료 이후 상황까지 고려한 표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북한이 저 정도 나오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올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는 데 우리가 미국을 리드해나가야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북핵 문제가 우리만큼 절박한 것이 아닙니다. 이란 문제가 더 중요하고. 북핵은 해결되면 좋고 안 돼도 크게 나쁠 것은 없는 것이에요. 핵기술이 이란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로 이전만 안 된다면, 즉 핵 비확산만 보장된다면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은 하지 않은 채' 실질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을 용인하는 것이 미국의 군산복합체나 국방부에는 나쁠 것이 없습니다. 국방부나 군산복합체에 북핵은 꽃놀이패예요. 우리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이지만.

프레시안 : 2005년 9.19공동성명 때와 달리 3차례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하는데, 만약 북한이 회담 테이블에 나온다면 핵보유국 지위로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핵보유국 인정을 해줘야 회담에 나올 수 있다고 할 수도 있겠죠. 이미 그런 뜻을 비쳤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평가들이 나오니까 북한은 "이제 비핵화회담은 필요없다. 핵군축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었지요. 4월 20일에도 그런 요구를 내놓았지요. 북한으로부터 그런 요구나 주장이 나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케리 장관의 한중일 순방 후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핵탄두의 미사일 탑재 능력은 없다고 본다"고 선을 그은 겁니다. 기술 수준이 아직 핵보유국이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을 수 있는 경량화, 소형화 기술이 없다는 겁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미국이 절대 인정 안 할 겁니다.

그럼 핵보유국 인정을 안 해주면 북한이 회담에 안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데, 아마 평화협정 문제의 진지한 논의에 대한 의지가 확인되면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 2월 12일 북한의 핵실험 보도. 북한은 '제3차 지하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북한도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핵실험 3번 해서 2번 성공했는데, 그걸 가지고 핵보유국이라 하는 건 대내용이죠. 2번 실험한 걸로 국제적인 핵보유국 인정은 받기 힘들 거예요. 파키스탄의 경우를 보면 적어도 5번은 해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크게 걱정할 대목은 아닙니다. 평화협정 체결 문제가 잘 풀려나가면 북한도 핵보유국 주장을 계속하면서 회담 진전을 가로막지는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시급한 것이 평화협정이기 때문입니다. 군사적 안전 보장을 받아야 하니까. 나아가 미국과 수교가 돼야 국제 사회의 경제 지원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미국과 수교한다는 것은 단지 미국의 경제 원조뿐만 아니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입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곳에서 대북 차관을 제공받으려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이 승인을 해줘야 하니까요.

프레시안 : 미국은 핵 비확산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반면 우리는 반드시 비핵화까지 이루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양국의 정책 목표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정세현 : 미국의 본심이 뭐냐는 것을 따져봐야 합니다. 아마 미국은 비핵화면 좋고 비확산도 크게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일 겁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이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히 비핵화를 고집하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외교에서 공식적인 입장(official statement, proclaimed policy)과 본심(real intention, real strategy)이 이율배반적인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공표해왔던 공식적 입장에 입각해서 미국을 압박하면 국제 평화 유지 책임을 자처해온 미국이 '사실은 내가…' 하면서 본심을 내세우기는 힘듭니다. 공식적으로는 비핵화를 내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비확산이 군산복합체의 본심일지는 모르지만, 국무부와 백악관, 국방부까지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비핵화입니다. 명분 면에서 미국이 비확산을 공식 입장으로 채택할 수 없는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또 그게 국제적으로도 말이 됩니다.

가끔 전문가들의 기고문이나 토론 내용을 보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비핵화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수령님의 유훈이다"라는 표현을 북쪽에서 많이 쓰는데, 이건 자신들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없애려면 남쪽 것도 없애야 한다는 것이죠.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식으로 말하면 조선반도의 비핵화인데 이걸 북한의 비핵화로 동일시하는 경우, 남북대화나 6자회담에서 중대한 착오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도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반도 남쪽 미군의 전술핵은 1991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채택 때 모두 철수했습니다.

그 뒤 한반도 안보 위기 때마다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해도 미국이 거절했습니다. 전술핵을 들여오는 것은 비밀리에 할 수 없는 일이고, 핵을 들여오면 당장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미국 지상군의 핵무기는 없습니다. 다만 핵우산을 통해 북한 미사일에 대응해 요격 미사일을 쏴줄 수도 있고, 괌 등의 기지에서 핵항모나 스텔스 전폭기에 탑재하고 있는 핵무기를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없앤 건 아닙니다.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 우리식으로 하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 속에는 북한의 핵무장을 해제시키려면 남쪽도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실려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만 뺐으면 우리는 걱정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부산에 입항하는 미군 핵추진 잠수함이나 이지스함에 싣고 다니는 무기 중에 핵미사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한반도 해역에 출몰하지 말라는 게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 요구, 한반도 비핵화 요구입니다.

프레시안 : 오는 5월 7일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간의 한미정상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한국 정부의 전략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정세현 :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두 정상 간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공감대를 구축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을 협의해야 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케리 장관이 이번 한중일 순방 과정에서 언급한 2자회담, 4자회담 방식으로 일을 시작해서 핵문제 해결의 수순을 빨리 밟자고 요구해야 합니다.

지난번 정세토크에서 얘기했던 '힐러리 해법'을 다시 추진하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바마 1기 때 힐러리 국무장관이 내놓은 해법의 골자는 9.19 공동성명의 4항이었던 평화협정 문제에 대한 협의의 우선순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힐러리 장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세 가지를 해주겠다고 했었죠. 첫째가 미북 수교, 둘째가 평화협정 체결, 셋째가 경제 지원이었습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초기인 2009년 2월 13일에 처음 이 얘기를 했고, 1차 북핵실험 이후 7월 23일과 11월 21일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런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비핵-개방-3000'을 내세우며 북한의 선비핵화를 요구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결국 진전을 보지 못했죠.

미국으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자꾸 말리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그런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나온 말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입니다. 북한이 위협적인 행동을 해도 거기에 놀라지 않고 자세를 바꿀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애매한 정책을 정당화하는 개념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오바마 1기 정부의 발목을 잡던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2자회담, 4자회담 빨리 해라. 평화협정 겁낼 것 없다"며 제안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번 정세토크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미 지난 1992년 1월 미국을 방문한 김용순 당시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가 아놀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에게, 그리고 2000년 10월에는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북한과 수교만 해주면 평화 유지자로서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용인하겠다고 말한 바가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평화협정 문제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2000년 10월 김정일-올브라이트 회담 내용을 확인·다짐하는 절차는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과 조건이라면 우리 입장에서도 평화협정 논의를 못 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 사회 일각에는 아직 미군의 주둔 문제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많지만, 2009년 힐러리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대책도 없이 평화협정 우선 논의를 제안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이번 케리 장관의 4자회담 언급도 난데없이 튀어나온 얘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번 정상회담에서 '힐러리 해법'과 '케리의 4자회담 구상'을 좀 더 현실성 있게 수정·보완한 '박근혜 해법'을 미국에 제안하고 합의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프레시안 : 그렇지만 평화협정 논의를 빌미로 북미 관계가 너무 진전되면 한국이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통미봉남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고, 또 개성공단 문제라든가 남북 관계 개선에 관한 요구가 나오지 않을까요?

정세현 : 모양새로는 남북 관계가 먼저 풀리고 긴밀해지는 토대 위에서 미북 관계가 빨리 개선되도록 촉진하고 도와주는 게 좋죠. '선 남북 후 북미'가 모양이 좋은데. 불행히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명박 정권에서 계획을 세웠던 독수리 훈련이 너무 세게 진행됐어요. 훈련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와서 더 강해진 건 아니에요. 대개 보면 올해 훈련 계획을 전년도에 세웁니다.

김영삼 정부 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부 말년인 1992년 가을에 국방부가 1993년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결정해버리니까 새 정부 들어 김영삼 대통령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훈련에 들어갔고, 이게 한 원인이 되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죠. 1992년에는 남북대화 진전을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했었는데,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팀스리트 훈련을 1993년에 재개하니까 북한이 발끈한 거죠. 당시 팀스피리트 재개를 결정한 미국 측 주역이 바로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국방장관이었고 아들 부시 대통령 때는 부통령으로서 네오콘의 수장 노릇을 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던 딕 체니였습니다.

1993년에 팀스피리트 훈련이 재개되면서 그해 3월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하자 북미 대화가 먼저 시작됐어요. 핵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이를 관리하기 위해서 미국이 미북 대화를 시작하려 하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그걸 막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김영삼 정부의 견제나 불평은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고 북핵 문제 해법을 논의했습니다. 우리가 못 하게 말리는데도 미국이 자기 필요 때문에 그냥 가버리니까 미북 간에는 대화가 있고 남북 간에는 대화가 막히는 상황, 이것이 통미봉남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김영삼 정부 시기의 그러한 선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무작정 미북 대화를 막으려 할 것이 아니라 권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어차피 키리졸브, 독수리 훈련 때문에 남북 관계도 꼬이고 개성공단도 막힌 상황에서, 개성공단이 시급하다 할지라도 남북관계는 뒤에 시작해도 좋다는 열린 자세로 북미 대화가 먼저 될 수 있도록 밀어주면 북한도 개성공단 등과 관련된 남북 대화에 나오리라고 봅니다. 물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은 그것대로 지금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파주 문산읍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출경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북한 당국은 이날 오전 10시 30분경 개성공단관리위원회를 통해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단 10명의 개성 방문을 불허했다. ⓒ뉴시스


최근 정부의 남북 대화 관련 발표 내용을 보면, 남북 관계 의제를 개성공단에만 국한하려는 것 같은데, 이것도 입장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성공단 출입과 조업 재개만 얘기한다면 북한에게는 큰 매력이 없습니다. 개성공단 문제를 얘기하려면 자연히 이명박 정부 시기 중지됐던 2단계 200만 평 개발을 다시 시작하자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개성공단의 규모를 지금보다 확대하자는 전향적인 제안을 내놓으라는 것이죠.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중단시켰는데. 우리가 중단시킨 금강산 관광 재개를 개성공단 출입 자유화하고 같이 묶어야 당국 차원의 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두 문제를 포괄적으로 묶어서 당국 간 경제 회담으로 시작하여 이후 장관급 회담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취해야 합니다. 개성공단 문제 하나만 가지고 마치 계란 노른자만 쏙 빼먹으려는 식으로 접근하면 별 효과를 못 볼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남북·미북 관계가 동시에 가면 좋겠지만, 필요하다면 미북 관계가 한발 먼저 나가도 좋다는 자세로 접근하는 게 북한으로 하여금 북핵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길이라고 국민들에게 설명하면 될 것입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에 그런 전향적 자세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것도 아직 구호 차원이지 구체적 내용이 없고, 이번 위기 대응 과정에서 우왕좌왕했다는 비판도 있던데,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걸로 보시는지요.

정세현 : 신뢰 프로세스에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사실인데 신뢰 프로세스를 구체화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구체화할 수 있는 시점인 3월부터, 그전보다 한층 강도가 높아진 키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이 시작됐죠. 키 리졸브 훈련은 비록 도상훈련이라고 해도 북한의 심장부를 타격한다는 개념으로 훈련을 했다는 것이 북한을 자극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북한이 강경 대응한 거 아닙니까. 바로 이어진 독수리 훈련에서는 B-52, B-2 폭격기에, F-22 전투기가 뜨고 핵잠수함, 이지스함까지 왔다갔다 하니까 북한이 그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 저항하지 않았습니까? 신뢰 프로세스의 내용을 구체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시간도 없었죠.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하는데 한미정상회담에서 신뢰프로세스의 방향성에 대한 합의를 한미 간에 먼저 끝내놓고 그걸 토대로 내용을 구체화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정권 출범 6개월도 안 된 상황에서 앞으로 5년 가까이 쓸 것을 미리 내놓는 건 대통령이 그 분야에 대해 전문성이 있는 대통령이 아닌 한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니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자신이 1971년 7대 대선 때부터 남북 관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었고, 15대 대선 직전에는 아태 평화재단을 통해 3단계 통일론까지 내놨기 때문에 그때는 로드맵이란 게 있었습니다. 지금의 신뢰 프로세스에는 그런 게 없지만 한미정상회담 이후 만들면 됩니다. 이전 정부에서 그런 것들이 잘 만들어진 선례를 잘 따르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로드맵을 만들 때는 외부 전문가들 의견을 잘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대북 정책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므로 중론을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 핵심에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신뢰 프로세스의 로드맵을 만들어서 우선 국민들부터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북한에 써먹으려면 그 대상인 북한의 이해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에게도 남북 관계 발전에 대한 신심을 줘야 하거든요.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받으려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널리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북 정책에 관한 한 비밀 군사작전 계획이라면 몰라도 남북 관계 특히 통일 문제에는 국민적 동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방부와 통일부의 차이가 그것이에요. 공개적으로 해야 하고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끌어내야만 대북 차원에서 추동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국제적 협력을 끌어들이는 데서도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압박을 가하면 북핵 문제가 풀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있습니다. 핵실험 등 북한의 행동에 대해 중국이 불쾌해하고 있다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중국 대북 압박을 주문하고 있는데.

정세현 : 북한이 핵문제로 하도 중국을 곤란하게 만드니까 중국도 짜증이 날 수도 있죠. 하지만 더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燾) 주석 후반기부터 동북3성 진흥 계획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 계획 속에는 길림성 쪽에서 나진·선봉으로 나가는 출해권을 확보하는 문제가 아주 중요합니다. 중국이 자기 돈을 투자해서 나진·선봉 쪽으로 고속도로 등의 인프라를 만들고 있어요. 그것은 중국의 경제 부흥에 북한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뜻입니다. 또한 중국은 서쪽으로는 신압록강대교를 건설 중입니다. 신압록강 대교는 앞으로 남한으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중국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을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끌어안아야 하는데 자꾸 골치 아픈 일을 벌이니까 중국도 피곤할 겁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북한을 관리하라고 주문하는데 여기에 또 반응을 안 할 수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세게 나가다 북한이 튕겨 나가면 동북3성 진흥 계획이 무너집니다. 동북3성에서 생산하는 물자를 중국 내륙으로 수송하는 데도 북한을 통해야 편하고, 수출할 물건들을 나진·선봉을 통해 상하이나 홍콩으로 옮기는 물류비용이 훨씬 싸게 먹힙니다. 나진·선봉·신의주는 중국 경제 순환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북한을 중국보고 내치라고 하는 것은 순진한 요구입니다.

중국이 눈앞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도 북한을 함부로 내칠 수 없지만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우리는 한미동맹이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중국이 외국과 맺은 조약 중 가장 강력한 것이 1961년 맺은 '북·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입니다. 그 닷새 전인 7월 6일 김일성이 소련에 가서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를 만나 '북·소 우호 협력 및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6월 29일 평양을 떠난 뒤 7월 6일에야 동맹조약을 체결했으니, 사실은 그동안 소련이 북한의 요구를 잘 안 들어주었다는 얘기죠. 소련과 어렵사리 조약을 체결한 뒤 바로 중국으로 가서 11일에 북·중 동맹조약을 체결한 겁니다. 두 조약 1조에는 똑같이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하거나 개전상태에 놓이게 되면 상대방은 지체 없이 군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만큼 강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소련의 조약 효력 기간은 10년이고 이후 5년씩 연장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 중간에 한쪽이 문제 제기를 하면 고칠 수도 있었습니다. 5년씩 연장해오다 1992년 러시아 쪽에서 이런 조약은 부담돼서 안 되겠다면서 북한에 폐기를 통보했습니다. 그런 후에 2000년 9월 '북·러 신(新)우호선린협력조약'을 새로 체결했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이제 일반적 우호관계가 된 것입니다. 조소동맹은 이미 1992년에 끝났죠. 반면 조중동맹 조약은 20년 기간으로 하되 또 20년씩 연장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폐기하려면 쌍방이 합의해야 합니다. 지금도 강력하고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그만큼 북한이 중국에게는 중요한 국가라는 얘기죠. 사정이 이런데 중국보고 북한을 내치라? 그건 물정을 잘 모르는 얘기입니다.

더 근본적인 건 한(漢)나라, 당(唐)나라 이래 중국은 전통적으로 주변 유목민족들이 중국을 괴롭혀도 그들을 다스리는 데 군사적 조치가 아닌 화친(和親)으로 다스려왔다는 것입니다. 귀찮게 하면 먹을 것을 주거나 공주를 시집보내 그 왕을 사위로 만들어서 관리하는 식으로 화친(和親) 외교를 했습니다. 중국 외교에는 기미부절(羈縻不絶)이란 중국 외교 방침도 있습니다. 기미는 소나 말의 고삐와 재갈이란 뜻인데, 고삐를 느슨하게 놔두고 일정한 테두리에서 움직이게 하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면 경고를 하거나 제재를 가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국 외교의 기본이고 전통 외교의 방식입니다. 그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저우언라이(周恩來) 평화공존 5원칙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내정불간섭.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평화공존, 호혜평등입니다. 주변국이 중국의 수염을 뽑으려는 짓만 안 하면 웬만하면 다독거려서 데리고 가는 것이 중국 주변 외교의 기본입니다.
▲ 정세현 원광대 총장 ⓒ서해문집


오늘날 중국 외교 방침은 4자성어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덩샤오핑(鄧小平) 시절 도광양회(韜光養晦, 어둠 속에 자신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로 시작해 힘을 기른 뒤 후진타오 시대인 2003년부터는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 2004년 유소작위(有所作爲, 적극적으로 참여해 내 뜻을 관철시킨다)를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시키는 대로만 안 한다, 행동이 필요하면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었죠. 그러다 2005년에 와서는 화해세계(和諧世界, 세계와 조화롭게 어울린다)를 얘기했습니다. 조화롭게 만든다는 뜻이지만, 그 말 속에서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죠. 주변국들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얘기는 골치 아픈 놈들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자기 말을 듣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시진핑(習近平)은 중화부흥(中華復興), 중국의 꿈(中國夢)을 들고 나왔습니다. 화해세계와 연결되면서도 "중국은 하늘 아래 가장 가운데 있는 나라다. 이게 중화다"라는 걸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흥시키겠다는 방침으로 나가는 데 거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미국과 관계 설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게 붙어 있는 북한을 어떻게든지 안정적으로 관리해야만 중화부흥으로 가면서 동북아에서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중국에다 대고 북한을 버리라니요? 중국이 러시아에 가서 낡은 무기 사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도, 파키스탄과도 손을 잡고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했죠. 미국이 베트남에 가서 협력을 한 데 이어 러시아에도 손을 뻗치려 하니까 중국이 이를 차단하기 위해 수호이-35 전투기 같은 낡은 무기를 사줬습니다. 러시아더러 중국 편이 되든지 아니면 최소한 중립을 지키라는 얘기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가서 200억 달러를 차관으로 주기로 한 것이나, 잠비아에 50억 달러를 원조하겠다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걸 보면서 시진핑 시대 중국 외교가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의 '3개 세계론'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오쩌둥 시절 중국은 미국 중심 나라들을 1세계, 소련 중심 나라들을 2세계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에 못 끼거나 둘 다 상대 안하는 나라들인 아프리카, 동남아 등의 나라들을 3세계로 분류하고, 그들에게 중국과 손잡고 미국, 소련에 대항하자고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중국의 패권을 확립하겠다는 것이 '3개 세계론'이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천하 3분론관도 비슷한데, "지금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 안 된 나라들은 모두 중국 편으로 만들겠다. 그렇게 해서 전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과 한번 힘겨루기를 해보자", 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도 북한은 중국에게 중요한 나라입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중국에 어떤 합리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중국에 기대할 수 있는 건 북한이 비핵화를 확실히 할 수 있게 설득하는 일입니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방식은 잘 안 쓸 거라고 봅니다. 아무튼 북한의 비핵화가 중국에도 바람직합니다. 비확산은 중국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는 용인하되 대외 확산만 못하도록 막으면서, 북한의 핵무기를 빌미로 중국에 대한 군사적 봉쇄 조치를 강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중국도 비확산보다는 비핵화를 바란다?

정세현 :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는 한중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 중국이 확실한 입장을 정립하도록 협조를 해야죠. 뭐든지 미국에게만 부탁하거나 매달리지 말고, 북핵 문제 때문에라도 독자적인 중국 외교를 강화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