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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7일 일요일

대한민국(사)관의 재정립을 제언한다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03-12일자 제54호 기사 '대한민국(사)관의 재정립을 제언한다'를 퍼왔습니다.
Corée

<무제>, 2010-막스 뉴만

근래에 한국의 진보 진영에 대해 내외에서 여러 가지 반성과 비판이 나온다. 필자는 진작부터 한국의 진보가 '후진국형 진보'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해왔다. '후진국형 진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식민지 종속국 시절의 민족주의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식민지 종속국에서는 자립경제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민주국가의 확립이 시급한 과제가 된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진보사상을 가진 지식인과 청년들은 하나같이 '민족민주운동'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같은 중도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공산주의, 심지어 무정부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공산주의운동에는 이미 1930년대부터 식민지 종속국에서는 민족해방 투쟁을 먼저 전개하라는 교리가 확립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지금까지 공산주의운동은 사실상 민족주의운동이었고, 독립운동과 민족해방 투쟁에서 주도권을 쥐는 데 몰두해왔다.

평등 가치는 대한민국 역사 속에 있다

그러면 이미 세계 굴지의 산업국가이며, 민주화도 이뤄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에서 진보는 왜 여전히 민족민주운동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가? 그것은 한국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그에 따라 민주화도 너무(?) 빨리 진행돼, 그런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청년이던 사람들이 아직 팔팔한 장년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비근한 예를 들면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해에 태어난 필자는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의 195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지만 아직 한국 나이로 육십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처럼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필자의 동년배 대다수는 앞으로 20년이나 한국 사회에 상당한 발언권을 가진 세대로 남을 것이다. 이들의 관념 속에 진보·보수의 대립 구도는 여전히 이미 청년기에 형성된 그것이다. 그들에게, 특히 그들 가운데 진보 진영에 속한 이들에게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상당히 낯선 것이다. 그들이 현재와 미래에서 계속 '진보 인사'로 살기 위해서는 한정된 의미의 '사상혁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 사상혁명의 핵심에는 바로 대한민국관(大韓民國觀) 또는 대한민국사관(大韓民國史觀)의 혁신이 있다.
미래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미래의 씨앗은 과거 속에 있다. 고대 중국 사람들이 자주 요순시대를 말한 것은 하늘에 떠 있는 환상이 아니라 땅에 근거를 가진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요순시대는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며칠 전 취임사에서 230여 년 전의 미국독립선언서를 인용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는 자명한 진리가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중산층의 나라'라는 건국 이래 미국의 정체성을 상기했다. 그래서 는 "오바마는 이번 연설에서 미국의 기원과 현재 당면한 현안들을 직접 연결하면서 미국의 미래에 대한 대담한 진보적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주나라의 예와 악은 원래 존재하기도 했지만, 공자에 의해 재발견됐다. 우리가 말하는 어떤 위대한 가치라도 원래 대한민국 속에 유전자로서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우리가 '평등'을 말하려면 평등이 이미 대한민국의 역사에 존재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미래는 과거의 회귀이고 미래는 과거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 희망은 현실에서 근거를 가져야만 관념의 유희로부터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선지자들이 솔로몬과 다윗의 나라를 말한 것은 희년(禧年)의 율법이 지켜지는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희년의 율법이 지켜진 인류 역사에서 희귀한 사건이었다.

경제발전의 발원지는 토지개혁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중국의 공산화)과 북한의 농지개혁 압력하에서 미군정이 토지개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이를 건국의 주역들에게 건의(혹은 지시)했다. 그리고 토지개혁은 독립운동 시절부터 대부분의 좌우 독립운동가들의 합의 사항이기도 했다. 이승만은 토지개혁을 방해하는 한민당을 누르기 위해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등용했다. 일찍이 자본가로 변신한 한민당의 리더 김성수는 지주 출신이지만 토지개혁의 불가피성이라는 대세를 인지하고 이를 방조했다. 그리하여 평년작 기준으로 한 해 소출의 3할(이전의 소작료에 비하면 휠씬 낮다)을 5년에 걸쳐 지가로 상환하는 조건으로 농지를 분배하니 어떤 농민도 지가 상환 부담 때문에 자기에게 분배된 농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전강수 교수에 따르면, 1960년까지 토지 소유의 평등지수는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었다. 일본과 대만이 근접했지만 한국이 가장 평등했고,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중남미의 대다수 나라들과 필리핀은 매우 불평등했다. 1960년 이후 40년 동안의 경제성장률은 거의 정확하게 1960년의 토지 소유 평등지수와 정비례했다.
이런 연구에 힘입어 필자는 2008년 이라는 책에서 "토지개혁으로 조그만 땅뙈기를 갖게 된 수많은 자영 농민들의 자발적 중노동과 창의력이, 그 말릴 수 없는 교육열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기적을 만든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적 평등에 더해 사회·문화적 평등까지 이뤄졌으니 그 대가는 엄청났다. 그것은 인구의 10분의 1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고향을 잃고 이산가족이 되는 동족상잔의 대학살 전쟁이었다.
이 전쟁이 끝날 때쯤에는 전 국민이 양반이 되었다. 아니 서로 반상(班常)을 물을 처지가 아니었고 살아남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조선 말기에 이미 양반이 많이 늘고,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반상의 구별이 희미해진 위에,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은 시골 구석의 상민은 물론이고 천민까지 다 양반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전 국민이 양반인 나라

1950년대에는 전쟁으로 불탄 모든 가문의 족보들이 새롭게 편집되고 기왕이면 왕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전주 이씨의 수가 가장 많이 불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박씨나 김씨도 신라 또는 가야의 왕족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절반은 왕족(왕후(王侯)의 후손), 절반은 귀족(장상(將相)의 후예)인 나라가 탄생한 것이다. 중인, 상민, 노비, 백정의 후손은 아무도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라는 사건을 누구의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새롭게 양반이 된 노비의 후손이나 대대로 소작농이었다가 마침내 자영농으로서 새 나라의 국민이 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기적이다. 홍길동의 눈으로 바라보면 홍길동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은 바로 '율도국'이 아닌가? (소외된 독립운동가 후손의 눈으로 바라보면 친일파와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나라이지만 말이다.)
흔히 산업화·민주화가 대한민국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더 큰 기적은 평등한 자영농의 나라 대한민국의 탄생이었다. 대한민국은 아무도 기획·의도하지 않고 오로지 역사의 간지(奸智)가 만든, 세계사의 격동과 제2차 세계대전의 부산물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적이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화가 결정적 압력으로 작용해 예방 혁명으로서 토지개혁을 미군정이 서둘렀다. 하지만 중국이나 북한에서 농민에게 분배된 토지는 곧 집단농장으로 바뀌어, 중국은 덩샤오핑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수천만 명이 굶어 죽고, 북한은 오늘날까지 만성적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것과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대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토지개혁은 30년의 시차가 나는 1979년 덩샤오핑의 개혁과 비교해야 할 사건이다.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정신없이 이어진 대한민국의 건국과 토지개혁, 그리고 한국전쟁은 역설적으로 세계사에서 가장 완벽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문화 혁명까지 숨 가쁘게 이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위대한 나라가 탄생했다. 그러나 그 탄생 과정은 부끄럽고 참담해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탄생은 사생아의 탄생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사생아라고 해서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공자도 사생아였다.
개인도 그러하지만 나라의 경우에도 생년월일, 사주팔자가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진보적 민주주의 시대에 탄생했다. 반파쇼 연합전선의 승리로 끝난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시점에 태어났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세계 최첨단의 바이마르헌법을 참고하고 임시정부의 건국강령과 중화민주공화국의 헌법 등을 참고해 진보적 내용의 헌법을 만들고, 보통선거권이나 여성의 참정권은 당연한 것으로 주어졌지만 실은 세계사에서 그리 늦은 편이 아니다.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삼권분립과 다당제, 인간에 대한 불신(不信)에 기초해 서로를 견제하게 한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거기다 언론의 자유까지 확보하니, 말인즉 이승만 독재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조선노동당 일당독재 위에 위치한 김일성 독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시끄러워 '난장판'이라는 인상을 주었지만 일사불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급속히 활력을 잃어가는 것과는 달랐으며, 국부(國父)라고 일컫는 이승만의 독재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4·19 혁명도 가능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국부의 손자에게 권력이 승계돼 3대 세습까지 이뤄진 북한을 바라보면 새삼 4·19 혁명의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무제>, 2010-막스 뉴만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신익희와 조봉암은 배신자였다. 신익희는 1946년에, 조봉암은 1945년에 각각 임정계(한독당)와 공산당에서 이탈해 이승만(및 한민당)과 손잡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했다. 그분들이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한 것은 목숨과 명예를 건 모험적인 대결단이었다. 나중에 뒤늦게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한 사람들조차 그들의 결단을 선각자의 행동이라 인정하지 않고 두고두고 신익희와 조봉암을 변절자,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신익희는 한독당의 배신자, 조봉암은 공산당의 배신자였다. 이승만과 친일파가 세우는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다니, 그것은 명백한 배신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도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한 노선과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은 노선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익희와 조봉암의 제헌국회의원 선거 참여, 대한민국 건국 참여는 옳았는가, 틀렸는가? 한독당과 공산당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신익희와 조봉암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것인가?
지금까지 올드레프트는 '민족주의=후진국형' 진보 사관으로, 한독당과 공산당의 시선으로 건국 전후사를 보았다. 반면 뉴레프트는 '민주주의=선진국형' 진보 사관으로, 해공(海公·신익희)과 죽산(竹山·조봉암)의 시선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본다.
그리고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 김구 중심의 역사 서술은 허무주의다. 김구·장준하 중심의 역사는 이승만·박정희 중심 역사의 허전한 부분을 메우는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은 오랫동안 현실에서는 이승만의 통치를 받아들이면서 정신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김구로 메우는 이중생활을 해왔다. 체 게바라의 사진을 붙여놓고 카스트로의 통치를 받는 쿠바 사람들의 이중생활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김구에게는 독자적이고 현실적인 노선과 비전이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신익희·조봉암 중심의 역사 서술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독립운동사와 분리해 건국 이후의 대한민국 역사를 서술할 수밖에 없다. 주나라의 역사를 쓰면서 백이(伯夷)·숙제(叔齊)를 주인공으로 할 수는 없다.
신익희·조봉암 중심의 역사 서술은,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인 이승만·김성수·신익희·조봉암 중에서 김성수가 친일 경력 등의 이유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기도 하고, 일찍 사거하면서 결국 신익희와 조봉암이 이승만의 정치적 경쟁자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신익희와 조봉암은 처음 옛 동지들과 결별했을 때는 거의 혈혈단신이었으나 시대를 앞서간 결단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아 결국에는 1955년께, 즉 해방 뒤 10년 만에 이승만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것이다. 이 또한 격동의 시기에 일어난 드라마틱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의 한강 유세장에 모여든 30만 인파(당시 서울시민 150만 명), 민주당의 지지 거부에도 불구하고 쏟아진 조봉암 지지 표는 드라마의 극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더 분명하게 극적 대비를 보여주는 두 사람은 죽산과 벽초(碧初) 홍명희다. 좌익인 조봉암은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해 농림부 장관이 되고, 우익인 홍명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해 부수상이 되었다. 모든 현실의 선택은 불편하다.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시점에 우물쭈물하다가 나중에 불평이나 늘어놓고 남 탓이나 하는 사람들과 그분들은 달랐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에서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가? 누가 무어라고 해도 나름의 기준으로 분명한 선택을 해서 자신의 길을 간 사람은 조봉암과 홍명희였다. 한 사람은 민주주의의 잣대, 다른 한 사람은 민족주의의 잣대로 판단했다. 그들은 소설 의 주인공 이명준과 달리 현실을 살아간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대중과 함께한 정치인이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며, 언젠가는 각기 나름대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조봉암의 선택이 옳았다.

평등은 대한민국의 유전자

다시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건국의 역사는 사실(史實)로서 단절됐고,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구별돼야 한다. 한독당과 공산당 중심의 역사는 신익희·조봉암 중심의 역사 서술과 크게 다르다. 그것은 '올드레프트'(후진국형 진보)의 민족주의 사관과 '뉴레프트'(선진국형 진보)의 민주주의 사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뉴레프트 대한민국(사)관으로 보면 평등은 대한민국의 본질이고 유전자다. 보수 진영에서 강조하는 자유만큼이나 중요하고 당당한 유전자다. 평등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아니다. 한국인 특유의 평등주의는 사회·경제적 뿌리가 없는 문화적 현상이 아니다.
한국인의 유별난 평등주의는 건국 당시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평등한 나라'로 출발했던 대한민국의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평등한 사회 현실이 먼저이지 평등주의 의식이 먼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와 사회 현실에서 근거를 찾아서 평등을 주장하고, 이를 통해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양대 흐름으로 분별·정립해야 한다. 이렇게 사상과 정치가 양립하면 선진국형 진보와 보수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진국 시절 우리는 반미친북 민족주의를 '진보'라 하고 친미반공을 '보수'라고 했다. 이런 대립 구도는 2030세대에게는 지극히 낯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선진국에서 태어난 선진국 사람들이고, 우리 같은 후진국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돼 중산층이 붕괴하고 청년 실업이 그들의 목을 조여오는 등 발전한 자본주의 나라들의 사회문제가 터져나오는, 곧 계급사회로 진입할 것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후진국 사람들이 감히 선진국 사람을 가르치려 하니 대화가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의 정서와 고민은 다른 데 있고, 그들의 정서는 후진국 사람들과 많이 다르다. 그들은 집안에서 부모와도 대화가 되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 486 정치인들에게도 정서적 거리감을 느끼고 대안으로 안철수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진보와 보수, 사회·경제 정책의 차이로 구별되고 대립하고 타협하는 좌우가 필요하고 가능한 지점까지 한국 사회가 발전하고 한국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사실이고, 후진국의 아이로 태어난 우리 5060세대는 이제 선진국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
글 /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협력위원, 청년연합 36.5 자문위원.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2004). 저서로 (대한민국을 사색하다) 등이 있다.

2012년 3월 6일 화요일

재벌 소유 땅값 3년새 두배 폭등, 이유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6일자 기사 '재벌 소유 땅값 3년새 두배 폭등, 이유는?'을 퍼왔습니다.
[토지+자유 비평] 재벌개혁과 토지개혁이 만나면

재벌개혁의 중요성


한국 사회에서 재벌개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재벌에 친화적이었던 새누리당까지 재벌개혁이란 말을 입에 올릴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새누리당도 재벌개혁을 부르짖지 않으면 더 이상 표를 얻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각 당이 주장하는 재벌개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많은 편차가 있지만, 제대로 된 재벌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은 꼭 포함되어야 한다. 총수들이 적은 소유로도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문제, 이른바 '소유와 지배의 괴리'라는 불합리함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폐지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켜야 하고 순환출자도 금지시켜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심하게 후려치는 횡포도 중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중소기업의 사업기회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중소상인의 사업 영역까지 초토화시키는 재벌들의 일감몰아주기도 막을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상법, 공정거래법, 조세법, 형법까지 모든 것을 총동원해야 한다.


재벌개혁은 절박한 과제다. 오늘날의 재벌을 이렇게 놔두다가는 한국경제가 회생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재벌은 소득분배 악화 및 고용생태계 피폐화의 주범이다. 이 원인을 제거해야 한국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토지개혁의 중요성


그러나 재벌개혁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개혁이 있으니, 그것은 토지개혁이다(여기서는 토지개혁의 방법과 효과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김윤상 외. 2012. . 평사리 참고.).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토지개혁은 재벌개혁에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재벌개혁이 커버하지 못하는 상당히 많은 영역들, 예를 들어서 주거불안문제, 재개발ㆍ재건축 문제, 금융 불안정 문제, 토지투기로 인한 각종 사회 갈등과 일자리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한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정치인들은 토지개혁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이는 아마도 정치인들이 주로 귀를 기울이는 전문가들이, 실물에 밝은 일반인들도 다 인식하는 토지의 중요성과 토지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미국의 사회경제사상가 헨리 조지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 영국의 수상 처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토지독점이 존재하는 모든 독점 가운데 유일한 독점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토지독점은 단연코 가장 거대한 독점이며, 영원한 독점이다. 토지독점은 다른 모든 독점의 어머니이다(프레드 헤리슨 저ㆍ전강수ㆍ남기업 역. 2009. . 범우사. 258쪽).


처칠은 사악한 지주주의(地主主義, landlordism)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리고 이것이 경제체제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처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찍이 자본주의 운동방식을 예리하게 파헤친 마르크스도 토지독점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노동 수단은 토지 소유자(토지소유의 독점은 더구나 자본 독점의 토대이다)와 자본가의 독점이다(칼 마르크스 저ㆍ최인호 역. 1995. "고타 강령 초안 비판." . 박종철출판사. 373쪽. 강조는 필자).


어찌 보면 재벌은 독점의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처칠과 마르크스의 말에 따르면 토지독점이 오늘날 재벌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마르크스와 처칠은 토지독점을 시장독점의 주범으로 지목했을까?


그것은 토지와 자본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마르크스의 경제학 체계가 집약되어 있는 에서는 토지가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토지를 생산수단으로 하나로, 즉 자본의 하나로 간주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데, 토지와 자본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는 '치명적 실수(fatal mistake)'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본질적으로 자본은 절약과 저축의 결과이지만, 토지는 절약한다고 생기지 않았다. 토지는 주어졌다. 필요하다고 외국에서 수입(import)할 수도 없다. 토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토지를 독점한 자가 자본도 독점할 수 있고, 토지를 독점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노력도 갈취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은 스스로 엄청난 지주(landlord)이다. 그러면 도대체 한국의 재벌들은 얼마나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재벌들은 지주(landlord)


15대 재벌의 토지소유 현황




재벌들이 소유한 땅의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는 자료가 없어서 파악할 수가 없지만 가액기준으로는 파악이 가능하다. 을 보면 2010년에 15대 재벌이 소유한 토지가격이 무려 83.7조 원에 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유지 전체 토지가격의 2.7%, 전체 법인의 11.8%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대한민국 사유지 전체 토지가격은 2007년에서 2010년 사이 6.8% 오르는데 그친 반면, 15대 그룹의 소유토지의 가격은 무려 115.2%나 올랐다는 점이다. 그것은 가액기준으로 전체 토지에서 15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1.35%에서 2010년 2.72%로, 전체 법인에서 15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이 6.6%에서 11.8%로 오른 것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3년 사이에 전체 토지에서, 전체 법인 토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두 배로 상승한 것이다.

3년 동안 재벌들이 소유한 토지가격이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재벌들이 생산적인 투자는 하지 않고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했거나, 아니면 재벌들이 가진 땅이 다른 것보다 더 크게 오른 것일 텐데, 아마 진실은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지고 있는 땅 중에는 가격이 폭등할 개발예정지가 많기도 하고 땅값이 오를 곳을 귀신같이 알아내서 매입하기도 했을 것이다.

재벌들은 나라의 중요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관료들을 수시로 만나고, 그들이 현직에서 물러나면 사장이나 본부장으로 영입하기 때문에 개발예정지가 어딘지는 훤히 알고 있다. 재벌들은 쌓아놓은 유효자금도 많다. 또 증자를 통해서 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다. 가지고 있는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엄청난 돈도 빌릴 수 있다. 한마디로 재벌들이 토지를 통해서 돈을 버는 것은 땅 집고 헤엄치기다. 심지어는 재벌들이 가진 땅값을 올리기 위해서 개발계획까지 바꿔 놓으니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이 바로 독점의 중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토지를 소수가 독점하면 나머지는 토지를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하려면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한다. 또 토지투기로 인한 지가의 폭등은 엄청난 땅을 소유한 재벌들에겐 매우 유리하지만, 사업을 확장하려는 중소기업이나 신규로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에겐 매우 불리하다. 다시 말해서 땅값 폭등은 재벌들에겐 불로소득 잔치이지만, 중소기업과 신규기업에겐 엄청난 진입장벽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지 불로소득 환수 장치는 대단히 미흡하다.

토지 불로소득 환수 장치는 부재

토지개혁의 핵심 내용은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것이다. 소유권의 3요소인 이용권, 처분권, 수익권 중 수익권 환수에 개혁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더 이상 땅이 돈벌이 수단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금으로 하는 방법과 공공이 국공유지 비율을 계속 늘리면서 이 토지를 임대하는 방법이 있는데,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세금, 즉 토지보유세 강화를 통한 방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인 토지보유세 실효세율은 미국, 캐나다, 일본, 영국 등과 같은 선진국의 1/5 수준 밖에 되지 않는데, 거기에다가 법인 소유 토지에 부과하는 세율은 주택보다 훨씬 낮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합쳐서 주택에 부과하는 보유세율은 0.1~2%까지인데, 재벌들이 주로 소유한 대규모 상가빌딩과 사업용 토지에 부과하는 세율은 0.2~0.7%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재벌들의 토지독점을 무력화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한 것이다.

'재벌개혁의 효과' < '토지개혁의 효과'

그러면 재벌개혁과 토지개혁의 효과를 비교해보자. 먼저 소득분배 개선에 있어서는 두 개혁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토지개혁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빈부격차 심화의 가장 큰 원인은 토지인데, 토지개혁이 성공하면 토지로 인한 빈부격차는 해소된다.

또한 고용생태계 개선에도 두 개혁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재벌개혁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토지개혁을 단행하면 지가가 경향적으로 낮아져 신규기업과 중소기업에게 매우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데, 이것은 그곳에 근무하는 노동자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재벌개혁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갈등,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로 인한 사회갈등 등을 예방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토지개혁도 용산참사와 같이 재개발ㆍ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빚어지는 갈등, 토지투기로 인한 사회적 갈등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데, 그 기여 정도로 봐서 토지개혁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재벌개혁과 달리 토지개혁은 우리 사회의 주요 과제인 주거문제 해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왜냐면 주택문제는 건물이 아니라 토지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지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주거불안정은 거의 다 해결 될 것이다. 또한 토지개혁은 토지거품의 생성과 붕괴에 따른 금융위기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리고 토지개혁이 단행되면 토지에 짓눌렸던 생산의 용수철이 튀어 올라 일자리 증가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토지개혁의 효과가 재벌개혁의 효과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정리하면 아래의 와 같다.

토지개혁과 재벌개혁의 효과 비교



토지개혁과 재벌개혁이 만나면

재벌개혁과 토지개혁은 단시일에 성공할 수 없다. 두 개혁은 적어도 앞으로 10년 정도 치밀한 계획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그리고 깨어있는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두 개혁이 만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란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까지 유래가 없었던 굉장한 변화들이 우리 사회에 일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재벌개혁 자체도 긍정적인 변화를 낳지만, 토지개혁 자체가 시장에서 독점력을 행사하는 재벌들의 주요 기반을 허물어트리기 때문이다. 두 개혁이 만나면 위 에서 볼 수 있듯이 소득분배 개선, 고용생태계 개선, 사회갈등 예방에서 놀라운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거기에 추가하여 일자리문제, 주거문제, 금융 불안 문제 등도 해결될 것이다.

'2013년 체제'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2013년에 우리는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일자리의 획기적인 증가, 주택문제의 근본적 해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 근절,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삶을 누리는 사회 등일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개혁은 토지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두 개혁이 성공하면 대한민국은 북유럽 복지국가들보다 '더욱 역동적인 시장'이, 영미 국가들보다 '더욱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프레시안(조형·사진=손문상)

/남기업 토지+자유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