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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5일 토요일

[시론]일베와 국가보안법, 차별금지법


이글은 경향신문 2013-05-25일자 기사 '[시론]일베와 국가보안법, 차별금지법'을 퍼왔습니다.

최근 “종북주사파”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현실적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어 그 호칭의 허위사용은 그 대상을 범죄자로 칭하는 것이라서 명예훼손이 성립한다는 판결이 이정희 전 의원과 전교조가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나왔습니다. 몇 달 전 대법원은 “대머리”라는 허위호칭에 대해 대머리로 알려진다고 해서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지 않는다며 명예훼손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이에 비춰보면 “주사파” 등의 칭호도 평소 같으면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묘사 정도로 인정되었겠지요. 실제로 1980년대 “주사파”라는 말은 폄하 의도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상 “주사파”가 처벌 대상이 되니 주사파가 아닌 사람을 “주사파”라고 칭하는 것은 그 사람의 평판을 범죄자 수준으로 부당하게 저하시키는 것이 되어 명예훼손이 성립되는 것이죠. 결국 국가보안법 좋아하실 분들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 것이죠. 국가보안법의 역습입니다.

그런데 재역습을 당할 수도 있어요. “종북주사파” 호칭 사용이 그 대상을 국가보안법 처벌대상으로 칭한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손배·유죄 대상이 되어버리면, “매카시즘” “종북몰이”라는 호칭 사용도 똑같은 이유로 역시 명예훼손 대상이 됩니다.


최근 들어 일간베스트(일베)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분들이 많은데 만약 일베에 대해 명예훼손 판결이 내려지면 “일베충”이란 호칭을 썼다고 해서 명예훼손 책임지는 분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법으로 말을 규제하는 건 신중해야 합니다. 명예훼손은 무한순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차별금지법의 연장선상에서 약자에 대한 차별과 피해를 초래할 명백하고 현존한 위험을 가진 언사를 법으로 규제하는 건 찬성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이미 “장애를 사유로 장애인을 모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5·18 피해자들을 포함한 학살 피해자들은 아직도 보호대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실 학살이 아니더라도 살인, 강간 등의 범죄 피해자들도 모두 보호대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말이 단순히 허위라고 해서 그 허위주장이 어떤 피해를 미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말을 규제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지만원씨 무죄 판결은 좋은 예입니다. 5·18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공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만원씨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고 5·18 피해자들의 평가가 낮아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타인들이 가지는 평판을 보호하려는 명예훼손 법리로 보아 올바른 판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별적인 언사가 약자들에게 명백하게 끼칠 정신적 피해를 방지하는 차별금지법입니다. 예를 들어 차별금지법이 존재하고 차별금지 사유에 “국가범죄 피해 사망 사실”도 포함한다면 지만원씨의 5·18 왜곡은 달리 평가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차별금지법을 만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베의 5·18 왜곡에 대해 법적 규제를 하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잡으려다가는 무한순환 속에서 공적 사안에 대한 토론이 어려워집니다. 당장 천안함 사망자들과 천안함 의혹 제기의 관계도 위험해집니다. 이번에 일베의 일탈에 대해 법적 규제를 하고 싶다면 차별금지법부터 멋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 공짜는 없습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조항을 폐지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6·25전쟁 때 인민군에게 목숨을 잃은 분들에게 북한 입장에 대한 동조는 학살자 찬양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태인들 앞에서 나치를 찬양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결국 차별금지법으로 ‘국가범죄 피해 사망자 혐오발언’을 금지시킨다면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조항을 폐지하기도 어려워질 겁니다. 어떤 길을 갈지 선택해야 합니다. 물론 충분히 논의한 뒤에.


박경신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3년 5월 9일 목요일

민주당 민홍철 의원 군형법 개정 ‘역주행’


이글은 시사IN 2013-05-09일자 기사 '민주당 민홍철 의원 군형법 개정 ‘역주행’'을 퍼왔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철회한 민주당이 이번에는 군형법 ‘개악’을 시도해 비난을 사고 있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 처벌의 근거로 활용돼온 조항을 아예 ‘동성애자’로 명확히 못 박는 쪽으로 개정하려는 것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렸다. 민주당이 4월24일 차별금지법을 철회한 것도 모자라, 동성애 처벌을 명문화한 군형법 일부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주행’하는 당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쟁점은 “대한민국 군인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는 군형법 ‘제92조 6항(추행)’이다. 이는 그간 시민사회에서 대표적인 ‘반인권 조항’으로 손꼽혀왔다. 굳이 이 조항이 없어도,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은 일반 형법이나 성폭력 관련법으로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이 조항은 군대 내에서 동성애를 처벌하는 근거로 활용돼왔다.

제92조 6항은 성폭력 범죄의 성립 요건인 폭행 혹은 협박, 위계 혹은 위력을 구성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순수하게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성적 접촉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형법에서는 처벌되지 않는 동성 간 성행위가 오로지 군형법에 와서는 ‘범죄’가 된다.

민홍철 의원은 군형법 제92조 6항의 ‘개악안’(위)을, 진선미 의원은 ‘폐지안’을 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과 국가인권위원회는 각각 2006년과 2008년 이 조항의 폐지 의견을 낸 바 있다. 강제력과 공연성(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이 없는, 개인 간 합의된 성행위까지 처벌한다는 점에서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선미 의원은 폐지안 제안


그러나 군 판사와 육군 법무실장,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낸 민홍철 민주당 의원(경남 김해갑·초선)이 4월19일 민주당 의원들에게 공동 발의를 제안한 이 조항의 일부 개정안은 폐지는커녕 ‘개악’에 가깝다. 민 의원은 군형법 제92조 6항의 제목을 추행에서 ‘동성 간의 간음’으로 바꾸고, “대한민국 군인 또는 이에 준하는 사람이 동성 간에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기타 유사 성행위를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바꿀 것을 제안한다. 관계의 특성이 아닌, 구체적 성행위 방식을 형사처분 대상으로 명시했으며 처벌 근거와 대상을 ‘동성애자’로 명확히 못 박았다. 

민 의원실은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을 방패 삼는다. 이 같은 법안을 발의한 근거로 헌법재판소가 2002년과 2011년 내린 합헌 결정을 들었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를 허용할 경우 전투력 보존에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므로 그 처벌이 동성애자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라는 요지의 결정이다.
그러나 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그동안 10년 넘게 반복돼온 논리를 반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합의에 의한 동성애 성행위의 형사처분은 군 기강 유지를 보호법익으로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보호되는 것은 오직 동성애에 대한 편견 내지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증)뿐이다.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지 형법적 보호를 부여할 만한 가치가 아니다.”

민 의원실은 ‘개악안’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한 발 물러선 상태다. 보도자료를 통해 “개정안의 내용에 ‘동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인권단체의 반발이 심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수정해 내용을 더 명확히 규정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군대 내 모든 성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같은 당의 진선미 의원이 4월18일 민 의원보다 하루 앞서 이 조항의 폐지안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폐지안은 차별금지법 철회 후폭풍에 휘말려 당내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의원 10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4월26일 현재 단 한 명이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2013년 4월 26일 금요일

'반기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25일자 기사 ''반기문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를 퍼왔습니다.
[取중眞담] '성소수자 인권 강화'란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한국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7uaHZWCgGss
"저는 당신과 함께 합니다(I'm with you)."

지난 15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인권, 성적지향, 성정체성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반기문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은 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LGBT)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UN사무총장으로서 당신들을 향한 비난과 공격을 밝혀낼 것이고, 세계 정상들에게 LGBT 차별 금지 노력을 지속적으로, 강력히 요구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그즈음, 한국에선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을 철회할 계획이란 소식이 알려졌다. 두 의원은 철회 요지서에서 "차별금지법안의 취지 오해를 넘어 지나친 왜곡과 곡해가 가해져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체사상 찬양법, 동성애 합법화법이라는 비방과 종북 게이 의원이라는 낙인찍기까지 횡행하고 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 "종북 게이" 논란에 파묻힌 차별금지법 결국...)

차별금지법의 주 내용은 학력이나 혼인상태, 종교, 정치적 성향, 전과,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 기독교단체들은 "법이 통과되면 학교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를 가르쳐야 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두 의원실은 물론, 공동발의한 의원실과 법안을 심사할 법제사법위원회 의원실을 집중 공격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조항'이 공격의 근거였다.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은 4월 24일, 끝내 차별금지법을 철회했다.

반기문 "성소수자와 함께"... 한국은 차별금지법 철회, 동성애 처벌 움직임

차별금지법 철회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에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일마저 생겼다. 민주통합당 민홍철 의원은 19일 군형법 공동발의안 요청서를 동료 의원들에게 보냈다. 지난달 공포된 군형법 제92조 6 '추행' 조항을 '동성 간의 간음죄'로 명칭을 바꾸자는 제안이었다.

이 조항은 '군인이 항문성교나 추행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 의원은 요청서에서 "현행 법이 동성애 행위 한쪽만 처벌하는 조항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하고, 쌍방을 처벌하는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성폭력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한 취지를 반영하려면 '여성들 간의 유사 성행위'도 처벌대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는데다 그 대상까지 확대하려는 민 의원의 발의안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또 한걸음 후퇴시킨다. 성소수자임을 밝힌 이송희일 영화감독은 23일 자신의 트위터에 "민홍철의 '동성간음죄'는 형식적으로 존재했던 군형법 92조 6항을 동성애금지법으로, 더욱 폭력적으로 확장하는 희대의 퇴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한국은 동성애를 금지하는 나라가 아니지만, 졸지에 (동성애) 금지국이 될 상황에 놓였다"며 "차별금지법 철회를 포함, 발의안 많이 만들어 칭찬받고 싶은 민주당 의원들이 그 무지 때문에 엄청난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도 이날 "민 의원의 군형법 개정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성적 자기결정권과 평등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국회가 비준동의한 국제규약에도 어긋난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비판이 거세지자 민홍철 의원실 관계자는 25일 "'동성애'란 표현을 수정하거나 법안 발의 진행을 좀 더 검토할지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2013년 4월, 한국 성소수자들에겐 '잔인한 달' 프랑스는 '반가운 달'
▲ 프랑스 하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 최종 통과를 보도하는 <르 몽드> ⓒ 르 몽드


연이은 논란 속에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말하고 있지만, 프랑스의 성소수자들은 달랐다. 4월 23일(현지 시각) 프랑스 하원은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자녀 입양을 허용하는 '동성결혼법안'을 찬성 331표, 반대 225표로 가결했다. 세계에서 14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이다.  

지난 1월과 3월, 종교계 등으로 이뤄진 프랑스 보수단체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주도했고, 최근에는 하원의원과 동성커플을 상대로 한 테러 위협마저 있었다. 그럼에도 법안은 가결됐다. 반대 여론에 '법안 철회'라는 보기 드문 상황이 빚어진 한국과 상반된다. 이날 크리스티앙 토비라 법무부 장관은 법안 통과를 "위대하고 고귀한 싸움"에서 승리한 것에 빗댔다. 동성결혼은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아일랜드 등 다른 나라에서도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성소수자 A씨(33)는 2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한국은 지금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면서 인권 후진국으로 가고 있다"며 표현했다. 이미 노무현 정부 때 한 차례 차별금지법 입법 무산을 겪었고, 이명박 정부 시절엔 인권 전반이 후퇴한 만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지고 화가 난다"고도 했다. 또 "UN인권이사회에서 (한국에) 차별금지법 제정과 군형법 동성애처벌조항 삭제를 권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제 사회 권고와도 정반대로 가는 상황이니 우리는 UN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2006년 초대 이사국으로 선출된 이후 계속 연임에 성공, 현재도 이사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UN인권이사회가 2011년 6월 성적지향 등에 따른 인권침해를 우려하며 통과시킨 '인권,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결의안'은 과연 지켜지고 있는가. 아니, '최초의 한국 출신 UN사무총장'이라며 그토록 자랑스러워 한 반기문의 약속조차 우리는 지키지 못하고 있다. 인권의 풍경은 오늘도 스산하다.
박소희(sost)

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차별금지법' 법안 철회 자체가 초유의 사태"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4-22일자 기사 '"'차별금지법' 법안 철회 자체가 초유의 사태"'를 퍼왔습니다.
시민단체 항의 기자회견 "반드시 법 제정"
▲ 지난 18일 <오마이뉴스> 보도로 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의 '차별금지법' 철회 방침이 밝혀졌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유와 평등이란 헌법의 양대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야 할 국회가 일부 세력의 반대를 이유로 법안을 철회하려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 박소희


2003년 4월 25일, 한 소년이 목숨을 끊었다. '육우당'이라고 불린 소년은 마지막 편지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한국 사회와 일부 기독교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로부터 10년, 성소수자들은 보수 기독교단체 등과 또 한 번 싸우고 있다.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발의했지만, 반대세력의 집단 행동에 '법안 철회'라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에 모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은 기자회견 내내 거듭 "참담하다", "비참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시민단체들은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해왔다. 조혜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는 "국회(민주통합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에서 우리와 소통 없이 법을 발의했지만 '꼭 제정하겠다'는 진정성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지난 3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 뜻을 밝힌 것 역시 반가운 소식이었다.

조 변호사는 "그런데 지난주 목요일(18일)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고서야 김한길 의원실과 최원식 의원실에서 법안 철회를 추진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이것도 우리와 전혀 소통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한길 의원실에서는 '(법 제정을) 포기한 게 아니라 통과를 위해 전술적 방법을 고민했고, 앞으로 책임감 있게 가져가겠다'고 하는데 법안 철회 자체가 초유의 사태"라며 "법에 있지도 않는 내용을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법안을 철회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 했다"고 비판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 자격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조광수 감독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의원실이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압력을 받아 법안을 철회한다는, 인권 후퇴적 상황"이라고 평했다. 김 감독은 "차별하지 말자는 건 인간의 기본으로, 헌법을 거론을 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라며 "그 차별을 하지 말자는 기본적인 법안도 만들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릇된 종교적 신념이 민주주의 흔들 수 없어"
▲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유와 평등이란 헌법의 양대 가치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야 할 국회가 일부 세력의 반대를 이유로 법안을 철회하려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 대표로,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조광수 감독이 생각에 잠겨있다. ⓒ 박소희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는 "(오마이뉴스) 기사를 본 날 깊이 잠들 수 없었고 지금 이순간도 마찬가지"라며 "더군다나 법의 의미를 훼손하고 왜곡하는 세력이 종교인이고, 기독교가 앞장섰다는 데에 너무나 참담하다"고 밝혔다. 임 목사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사죄드린다"며 "기독교 배경으로 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권(神權)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릇된 종교적 신념이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을 흔들 수는 없습니다. 애써 발의한 법안을 누군가 '컹' 짖었다고 꼬리 내리는 일이 19대 국회에서 또 반복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번에 후퇴하면 모든 인권 관련 조례와 규칙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습니다."

염형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 위원장(변호사)는 "우리나라 최고법인 헌법의 양대 가치가 자유와 평등이며 국회는 그 가치를 보장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데, (차별금지)법을 철회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김한길 의원은 유력한 당 대표 후보인데, 그가 이러면 누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보장하겠냐"며 "보수기독교단체만 국민으로 보고, 소수자는 아닌 걸로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어 "둘 다 같은 국민"이라며 "어떻게든 법을 관철시켜 차별을 막는 게 국회의원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동성애 등 개인취향을 법규화하는 것은 독소조항"

이날 기자회견 장소인 국회 정문 앞 한 쪽에선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1인시위가 진행 중이었다. '차별금지법반대범국민연대' 회원인 고명희(43)씨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우리도 의견을 피력하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고씨는 차별금지법 반대의 이유로 "독소조항"을 꼽았다. 정치적 성향과 전과, 성적 지향, 종교를 두고 차별하지 못하게 한 법 조항은 "개인 취향인데, 법으로 (차별금지라고) 정하면, (그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고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고씨는 또 "동성애자나 저나 같은 인간으로 존엄, 가치 등을 주장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차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박소희(sost)

2013년 3월 8일 금요일

인종차별 당한 박지성…한국, 분개할 자격 있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07일자 기사 '인종차별 당한 박지성…한국, 분개할 자격 있나'를 퍼왔습니다.
[인권오름] 박근혜, '국민 행복' 위해선 차별금지법부터

19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 작년 말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에 이어 올해 2월 민주통합당의 김한길 의원, 최원식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3개가 현재 소관위에 접수된 상태다.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중심으로인권 단체들이 마련한 차별금지법안(권영길 의원 대표발의)이 논의조차 못한 채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던 2011년 기억을 떠올리면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나는 그보다 조금 더 기대하기는 한다.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주요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국민 통합'을 외쳐대던 상황을 떠올려 보라. 육지행선(陸地行船)이 따로 없다. 한국 사회가 "인종, 학력, 정치적 입장 등이 매우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로 변모"했다는 김한길 의원의 진단은 그보다는 '더 민주적'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 정치적 갈등, 의미 투쟁의 가시화, 즉 서로 다른 현실 인식을 전제하지 않는 사회만큼 민주주의, 인권, 차별 감수성과 거리가 먼 사회도 없을 것이다.

인권과 자국민 보호의 차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기억에 남아 있는 여러 장면이 있다. 그중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바로 2009년도 전병헌 의원실에서 개최했던 인종차별금지법 입법 공청회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성폭력 등 온갖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인종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집단이 난입하자 공청회의 마지막은 거의 아수라장이었다. 결국 인종차별금지법도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고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18대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최근에 차별금지법 관련 자료를 찾다가 몇 년 전 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를 읽었다. 작년 12월 국내 언론들은 호주에서 벌어진 몇 차례의 한인 폭행 사건에 대해 인종차별에 근거한 범죄가 의심된다며 진정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첫 사건의 피해자는 '망할 놈의 중국인들'(Fucking Chinese)이라는 욕설을 들으며 집단 폭행을 당했다. 새누리당은 한인 사회의 불안을 우려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는 논평을 발표했고, 샘 제러비치 주한 호주대사는 호주에서 인종차별은 인종차별금지법과 인종혐오금지법을 통해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으며 호주는 모든 이를 따뜻하게 포용하는 나라라는 글을 한 일간지에 기고했을 정도다.

▲박지성 선수. ⓒ뉴시스

대비되는 또 하나의 기사는 올해 1월 경기장에서 축구선수 박지성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영국 남성이 영국의 인종차별금지법에 따라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영국은 혐오 발언을 형사처벌로 규제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이 남성이 박지성을 향해 '칭크(Chink, 찢어진 눈을 가진 동양계, 특히 중국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를 끌어내라' 등의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해당 발언을 선수들이 직접 들었다면 심각한 충격을 줬을 것'이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발언이 심했다', '유죄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한인 폭행 사건들이 아시아계 밀집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인종차별에 근거한 혐오 폭력이 아니라 무차별 폭력'에 가깝다는 호주대사관의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호주의 인종차별금지법이 유명무실하다는 내용과 함께 '시대착오적인 인종 범죄를 방치하면 야만국'이라는 사설을 뽑아내는 국내 언론의 '패기'에는 감탄사가 쏟아진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몽골 국적의 미등록 미성년자를 열흘 만에 수갑을 채워 추방하고, 20여개가 넘는 차별 사유 중 장애, 여성, 나이와 관련된 3개 개별 차별 금지 법령만을 가진 한국 사회의 '야만성'과 '후진성'은 어쩌면 좋을까?) 현실에서 인권은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같은 보편의 언어로만 이해되지 않지만, 인권이 '자국민 보호주의'와 다르게 소통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우울할 뿐이다.

차별금지법, 있으나 마나?

흥미로운 점은 호주의 인종차별금지법의 실효성에 대해 비판하는 호주 언론의 기사들이 국내 언론에서도 번역되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는 것인데, 그 근거는 기소까지 이어진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소 건수는 사람들이 차별 금지 관련법의 존재를얼마나 인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얼마나 활용하는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법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다. 그렇다면 호주에서 차별금지법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2012년에만 500건이 넘는 인종차별 관련 제소가 인권위원회에서 처리됐다는 호주대사의 해명은 무엇일까?

호주에서 1975년에 인종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20년 후인 1995년에 인종혐오금지법이 보완적으로 제정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인종차별금지법의 보호 범위를 확장하면서 고용, 재화, 용역, 서비스 등에서 이뤄지는 불평등 외에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욕설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혐오 발언을 형사처벌 하는 영국의 차별금지법을 예외로 둘 때, 혐오 발언을 규제하는 국가들에서 차별 사건을 다루는 절차나 방법이 소송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형사·민사소송 외에도 화해·조정·중재 등의 역할을 하는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대안적 분쟁 해결) 기구들이 준정부조직으로 기능하기도 하는데, 이때 판례만큼이나 조정례 역시 법의 역할과 실효성을 판단하는 주요 근거가 된다. (물론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입증 책임과 과도하게 엄격한 법 집행의 문제로 접수 건수에 비례해 기소 및 소송 건수가 적을 가능성이 높고, 권리 구제절차는 어느 국가의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이슈다.)

현실은 차별금지법이 존재하는 국가라고 해서 모든 차별이 급격하게 감소하거나 해소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차별의 공적 가시화로 인해 사회적 분쟁이나 갈등, 차별 조장이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이 '정상'이고 '수순'일 것이다. 그래서 '밤늦게 돌아다니는 아시아인이 문제다'라는 경찰의 발언도 공무집행 위반으로 사회 문제가 된다. 이 때문에 차별금지법의 효과와 의미는 처벌과 금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인권과 보호, 상식과 차별, 중심과 주변의 차이를 사회적 의제이자 논쟁거리로 환기시키면서 어떻게 그 거리를 좁혀나가는가이다.

혐오 발언에 대한 적극적인 형사처벌을 옹호하다가, 차별금지법이 있으나 마나 그 실효성이 담보되기 어렵다며 비판하다가…. 자아분열 수준의 한국 언론을 보고 있자면,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만을 발표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일관성과 뚝심을 칭찬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흔히 하는 말로 '아'와 '어'가 다르고 심지어 '님'에 점을 찍으면 '남'이 되는데, 한국 정부는 언제쯤 차별금지법 존재 유무의 차이와 효과를 인지하고 제정 움직임을 보일까? "각종 법률에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는 규정이 없고 어떠한 기준에 의하더라도 불합리한 차별 대우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다고 이미 존재하는 차별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심사에서 한국 정부가 한 답변이다.)

인권 정책 찾아보기 어려운 박근혜 정부

대선 전 박근혜 후보가 발표한 인권 관련 공약은 북한 인권 단 하나를 빼고는 전무했다. 그런데 당선 후 취임식에서는 '국민 행복'을 약속하며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 주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외치는 '국민 개개인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 방패의 역할을 해 주는 정의롭고 공정하게 실현될 수 있는 인권기본법인 차별금지법조차 없는 현실이다. 이미 3개의 차별금지법안들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고 법무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의 '국가별 인권 상황 정기 검토(UPR)' 권고 사항을 수용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추진을 발표한 만큼,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만큼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3월 6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다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들을 해 나갈 예정이다.


▲ 박근혜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6일 기자회견 모습. ⓒ인권오름

"호주를 포함해 인종차별이 없는 곳은 없으며 법적·제도적 장치만으로 이를 방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는 발언을 인종차별법과 인종혐오금지법이 존재하는 국가의 호주대사가 (자기 비판과 성찰의 의미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조차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국민 통합을 외치기에, 법치와 국민 행복, 정의와 공정함을 외치기에는 그동안 한 일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현실 인식' 정도는 하고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 통합보다 민주적인 갈등"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에도 실렸습니다.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몽 언니네트워크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