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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0일 수요일

'반미'와 '친미'의 롤러코스터,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의 박근혜


이글은 미디어스 2013-04-10일자 기사 ''반미'와 '친미'의 롤러코스터, 노무현과 이명박 사이의 박근혜'를 퍼왔습니다.
[분석]보수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미국이라는 딜레마와 한국 사회

한국 현대사에 있어 ‘미국’의 문제는 가장 강력한 굴레다. 80년대 이후 학번은 ‘한미동맹'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관점에 따라 세대를 구분할 수 있고, 그 세대의 집합적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나 한국 사회의 중추를 이루는 386세대에게 ’한미동맹‘은 사회의 모순을 파악하는 방법이었고, 어떻게 정치적 올바름을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 그 자체였다.
이에 대해 8~90년대 한국 사회운동의 한 증인이라고 할 사회민주주의연대 주대환 대표는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이라는 ‘괴물’이 만들어낸 반대편 ‘괴물’의 시대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광주 참극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 사회 모순의 주범으로 미국을 지목한 사고방식은 운동권은 물론 그 시대를 건너온 모두에게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지적이다. 억지로 대통령이 된 전두환의 시대에 그를 반대하기 위한 인식체계로서의 ‘반미’가 만들어졌단 그의 분석은 지금은 좀 시들해지긴 했지만 ‘젓가락이 부러져도 미국 때문’이란 세계관으로 이어졌다.

▲ 미국의 이익은 꼭 한국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두고 과잉 대립하며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이뤄졌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뉴스1


결국, ‘한미동맹’에 대한 관점을 묻는 ‘종북’이라는 질문

‘한미동맹’을 둘러싼 견해의 차이와 반대의 정도는 실제 한국사회의 변혁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딜레마인 문제이고, 여전히도 그런 문제다. 심심치 않은 수준이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아예 정국의 고정 이슈처럼 되어가고 있는 ‘종북 논란’ 역시 그 뿌리는 ‘한미동맹’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한국 보수 세력이 ‘종북’을 위험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그들이 북한을 맹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라고 하는 사회적 모순의 근본 원인이 미국에 있고, 그 원인을 해체하는 것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정서는 분명 80년가 유효기간인 정리되었어야 하는 인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의 체계는 여전히 운동권 사회의 주류적 인식을 형성하고 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수는 ‘종북’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을 발현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 당당한 나라와 미국의 ‘을’인 나라의 롤러코스터

▲ 당당한 대한민국은 노무현 대통령의 상징적 키워드였고, 어떤 이들은 이 문장 앞에 '미국에'가 감춰져 있다고 읽었다. ⓒ뉴스1


이후 미국에 당당한 ‘나라’를 선언했던 노무현 정부의 탄생은 이 사고 방식이 비로소 운동권 주류 정서를 뛰어넘어 정치적 주류로 등장했음을 입증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당당하겠다던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협상 체결을 추진하며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서자는 ‘레토릭’으로 포지션을 전환한다. 당당과 동등은 한참 다른 것인데, 이것이 혼용되며 노무현 정부는 보수로부터 오해받고, 진보로부터 지탄받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탄생했다. 이명박 정부는 중도와 실용을 노선으로 천명했지만, 쇠고기 협상에서 보듯 미국과의 관계 정립에 완전히 실패한 모습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회한 정치인이었던 아들 부시를 상대하기에 급수가 너무 낮았고 결정적으로 ‘비지니스 프랜들리’의 사고방식 속에서 미국을 보다보니, ‘을’의 위치에 서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한미동맹의 종속성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더욱 기울었고, 중국이 급부상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친미 성향은 북한과의 관계를 배척하며 ‘입’으로만 북한에 당당한 나라로 이어졌다.

▲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어가 국제 사회를 강타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어땠을까? ⓒ 연합뉴스


롤러코스터 이후의 박근혜 정부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미국에 당당한 나라’와 ‘미국의 을인 나라’의 롤러코스터 10년을 거쳐 등장한 박근혜 정부의 역사적 책무는 바로 이 롤러코스트를 해체하는 것,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는 관점 자체를 종료하는 것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의 등장이 그 자체만으로 역사적 화해의 맥락을 띤다고 이야기되는 것은 어쩜 그의 아버지 시절 만들어진 미국을 중심으로 대립해온 세력 간의 대립이 시기 만료되었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민주냐 독재냐 혹은 산업화냐 민주화냐의 이분법적 사고라면 ‘절대 악’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할 박 대통령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다는 것은 이제 세상이 그 단순한 도식을 넘어서는 ‘화합’과 ‘행복’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실패한 참여정부의 계승자’라고 몰아붙였던 박 대통령의 단호함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했다. 어떤 사람들은 참여정부의 그 슬로건이 싫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상과 실체 사이에서 큰 괴리만 낳은 채 사회를 갈등케 한 친노의 무능함이 싫어 박 대통령을 택했다.

▲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정부 시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하면서 이미 외교 문제에 관여해왔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방한을 당시 촬영한 사진인데, 이로부터 40여년이 흐름 지금 박 대통령은 어떤 '한미동맹'을 기획하고 있을까? ⓒ뉴스1


비난을 위한 비난, 무용한 비난만 계속할 것인가?

지금, 박근혜 정부는 갈림길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던 다짐과 ‘이명박근혜’라고 불리던 비난조의 조소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기다. 너무 이른 가혹함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박근혜 정부 5년의 성과가 바로 지금 이 갈림길에서 결정될 수도 있다. ‘미국에 당당한 나라’라는 구호에 열광하는 세력을 진영화해 정국을 움켜줬던 대통령과 미국에 대한 의존성을 극대화하는 것 외엔 별로 한 것이 없는 대통령 사이에 박 대통령이 서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보수세력은 북한이 ‘달러벌이’ 때문에 개성공단을 버릴 수 없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북한을 앵벌이 국가로 보는 이러한 시각을 북한 당국은 “존엄을 짓밟는 것”이라고 맞받으며 개성공단의 문을 닫아버렸다. 가장 강력한 수단을 던짐으로써 자신들의 행위가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선언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버리자, 보수 세력은 국내의 피해가 수조 원에 이를 것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재장전해 북한에게 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비난이며, 비난을 위한 비난 밖에 안되는 무용한 짓이다. 박 대통령 역시 “매우 실망스럽다”는 체념인지 입장인지 모를 애매한 언급을 남겼다.

▲ 진보정부는 설령 그 내용이 '진보적 한미동맹'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인다. 노장들의 이런 무시무시한 집회들이 잇따라 열릴 경우 별일 없는 정국도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뉴스


보수정부만이 할 수 있는 전략과 노선으로서의 ‘진보적 한미동맹’과 ‘보수적 남북대화’

하지만 체념도 비난도 지금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 최고조에 달한 한반도 긴장 국면을 풀기위해서는 결국, 미국의 변화와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북한은 노골적으로 원하는 바가 그것이라고 밝히고 있고, 현재의 한반도 위기 국면을 직접 조율할 수 있는 주체는 이제 미국뿐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필요한 관점은 이른바 ‘진보적 한미동맹’에 입각한 ‘보수적 남북대화’의 자세이다. 미국의 입장에 따라 갈 길을 정하는 ‘종속적 한미동맹’과 햇볕정책을 절대시하는 ‘맹목적 남북대화’의 롤러코스터가 아닌, 상식 가능한 수준에서의 합리적 노선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인지, 도전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 ‘진보적 한미동맹’과 ‘보수적 남북대화’는 역설적이게도 진보정부가 아닌 보수정부인 박근혜 정부에게 더 적합하다. 국내 정치 지형과 언론 환경에서 보수 정부만이 취할 수 있는 노선이다.
예컨대, 진보정부가 ‘진보적 한미동맹’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이는 비본질적인 이념 논쟁으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은 반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이를 두고 ‘이념 마케팅’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전개가 ‘종북’ 논의와 맞물리면 반대진영의 대규모 보수집회가 불가피하고, 이에 대한 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진보정부는 결국 이도 저도 못하는 동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라면 많이 다르다. 보수언론은 ‘진보적 한미동맹’ 전략을 수권 능력 차원으로 바라봐줄 것이고 민주당 역시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여론 지형의 분열도 상쇄되어 진영의 충돌로 문제가 비화되지도 않을 것이다.

보수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

▲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를 향한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위기 속의 고요랄까. 취임 이후 계속 홀로 저녁을 먹고 있다는 박 대통령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뉴스1


결국, 한반도의 긴장으로 최대 피해를 볼 당사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활용해 미국이 무기 판매 등에 있어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도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미국에 대화를 촉구해야 한다. 다행히, 지금 미국은 민주당 정부로 ‘매파’가 지배하는 형국은 아니다. 중국 역시 북한의 자제를 촉구할 정도로 현재 상황에 대한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 틈새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찾아야 하고, 어떤 포인트라도 공략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의 마비로 인해 발생하는 직접적 피해가 수조원이고, 이를 감당해야 할 금융시장을 비롯한 경제적 주체들의 파급피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남북관계 경색은 대내적이면서 동시에 대외적인 이중의 위기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 비교적 차분하게 메시지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지점에서 어느 정도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미국에게 보낸다면 소극적 평가를 넘어 보수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택했다는 적극적 평가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역사적으로 볼 때도 한국사회가 비로소 미국이라는 굴레를 벗고 홀로서기를 시작했음을 과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지금 박근혜 대통령만이 해낼 수 있는 문제이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다시 '보수정부' 5년을 맞이하며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20일자 기사 '다시 '보수정부' 5년을 맞이하며'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사흘의 희망’과 깊은 상실감에 대한 소고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늘 오전 현충원의 '부친 묘소'에 참배하고 있다. ⓒ뉴스1

돌이켜보면 기자가 이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거라 생각한 기간은 사흘 정도였다. 그 전에는 주변에서 희망을 설파하는 이들에게 ‘박빙 패배’가 예측되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다 공표금지 기간의 여론조사들을 몇 개 접하며, 문재인 후보가 동률이 됐거나 뒤집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선거 마지막 날 여론조사를 보니 또 다시 비관론이 몰려왔다. 여러 상이한 조사를 접하며 하루에도 기분이 열두 번 바뀌었다. 선거날엔 고무적인 투표율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 직전에 전해 듣고 사색이 되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다. 미디어스 기자들이 쓴 분석 역시 오류였다. 선거가 매우 어렵다고는 말했지만 투표율이 70%를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기자는 “새누리당 표는 1200만표를 넘어갈 수 없다”는 이해찬의 ‘정치공학’에 냉소했다. 하지만 역시 “박근혜 후보는 절대로 1500만표를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그랬으니 ‘3천만표’ 이상의 투표율이 나온 선거에서 ‘필승’의 기운을 느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보수는 2007년 대선 ‘이명박+이회창=1500만표’보다 더 높은 득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친노와 참여정부 2기가 싫어서 박근혜를 택할 이들의 숫자도 과소평가되었다.
이쯤에서 ‘정치공학’이란 말을 되돌아 본다. 트위터에서 어떤 분이 ‘공학’이란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처음엔 그 문제제기를 납득하지 못했다. ‘정치공학’이니 ‘선거공학’이니 남들 다 쓰는 말을 웹매체에서 조금이라도 재밌는 제목을 만들기 위해 쓰는게 무슨 문제인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민을 해본 결과, ‘썰’이 좀 길어지만 그 뒤에 ‘XX철학’이나 ‘XX의 인문학’이란 말을 붙이는게 전공자에게 기분 나쁘고 올바른 용법도 아니듯이, 뭔가 계산이 나온다고 ‘공학’ 운운하는 말들도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미디어스 정치팀에서는 다른 이들의 발언을 인용하거나 생각을 요약할 때가 아니라면 되도록 이 말을 사용하지 말자고 결의하게 되었다.
수많은 ‘정치공학’이 있다. 그리고 야권이 패배한 것도 결국 한 명 한 명 사람의 마음을 잡기보다 그러한 계산법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2년 쯤 전에 정치부 기자를 하는 한 선배가 “유시민이 대선에 나오면 무조건 대통령이 된다”고 주장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의 근거는, 노무현의 죽음 때문에 PK에서는 무조건 3할 이상을 득표할 수 있고, 유시민이 대구 출신이기 때문에 TK에서는 무조건 2할 이상을 득표할 수 있는데, 현재의 지역구도에서 야권이 그 정도 투표를 하고 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계산은 수도권의 우위와 충청/강원/제주에서의 적절한 분할을 가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산은 그저 ‘전례’에 입각한 것일 뿐이었다. 실제로 이번에 문재인 후보는 영남에서는 그의 기대 이상의 득표력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했다.
단순히 선거전술로만 봐도, 수도권과 부산경남 이외 지역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좀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5060 세대 중 일부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라는 고려도 없었다. 지난 5년 간의 정치전략을 본다면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반MB 정서’로 4년을 보내다 ‘독재자의 딸’로 1년을 보냈다. ‘안철수 현상’도 결국 받아 안지 못했다. 5년 동안 저들만 막으면 된다고 말하다 막상 저들을 막을 가능성이 더 높은 후보가 나타나자 정당정치나 집권경륜을 내세우는 꼴도 우스웠다. 결국 박근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이외의 ‘플러스 알파’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기자가 되기 전에 여기저기서 썼던 글들을 찾아본다.
“확실한 것은 2004년에 우리가 벌었던 것을 다 털어먹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진영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은 제로베이스로 돌아갔다.”
“다시 우리 시대의 정치적 투쟁은 '노무현'이란 이름의 내용없는 기호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모든 정치인들, 모든 것들을 사람들은 비난할 것이다.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난 그의 마음을 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부여잡는다. 그의 부활은 정치의식의 성숙이 아니라 탈정치성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를 반MB전선의 상징으로 삼아봤자 그 수혜자는 박근혜가 될 것이다.”
3년 반 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전후에 썼던 글의 한 조각들이다. 기자가 된 후 이번 선거 국면에서 쓴 글들도 뒤젹여 본다.
“민주당이 오늘날 처하게 된 고난은 대부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어떤 세대를 분할하는 것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공략이 쉬워보이는 특정지역(PK)과 특정세대(2030)를 부여잡으려고 한 데에서 온 것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주요 대선후보 1차 TV토론을 보고 트위터에서 ‘이정희의 발언은 문재인의 내면의 소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사로 본다면 민주당과 좌파 (민족주의) 운동권들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민주당은 가령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선 적당히 인정하고 전두환에 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취한다든지 하는 식의 (세대 유권자 분할을 위한) 현실주의적 접근을 취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경제정책이야 어쨌든 역사관에 있어서는 민족주의 좌파들과 사실상 동일한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박정희에 대한 폄하를 자신의 청년시절의 노동에 대한 폄하로 받아들이는 특정세대에 대해선 본인들이 대변해야 할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접근할 길이 막혀버린 현실이다.
민주당은 그들이 조만간 늙거나 죽어서 사라질 것이고, 새로운 세대를 선택한 자신들이 장기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처할 거라고 확신했을 거다. 보수언론은 민주당에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노인 폄하’ 발언을 확대해석하고 왜곡하면서 노년세대의 이러한 심증의 불씨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민주당의 판단은 장기적으로는 옳았다. 그러나 산업화의 성공이 가져온 평균 수명의 증대와 민주정부 이후 신자유주의의 수용 등이 얽혀서 가속화된 저출산의 기조는 세대 인구구성의 측면에서 ‘민주당의 노림수가 맞아 떨어지는 그날’을 끝없이 지연시키고 있다.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심판론’ 같은 말도 안 되는 프레임을 들이밀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에서도 그들은 ‘우리처럼 사익추구를 포기한 사람이 하는 일에 시비를 거느냐’란 식의 운동권적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적절한 대처에 실패하고 말았다. 2002년의 상황에서 부산 출신 노무현이 민주당의 다른 정치인보다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반호남 정서를 우회할 수 있는 이였기에 호남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의 의미를 그들은 망각하고 있다. 여전히 ‘PK대망론’과 같은 정치공학을 짜면서 ‘친노 2선 후퇴론’은 정략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 뒤에 숨어 있는 것이 바로 아직 시대정신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친노의 자기확신이다.“ (기사 링크)
최근의 정국을 보며 쓴 글의 한 조각이다. 결국, 문제는 달라지지 않았고 해결되지도 않았다. 민주세력이 집권했을 때도 나타났던 문제들에 대해서까지 ‘대통령 욕’을 일삼았던 지난 5년과는 달리, 새로운 보수정권을 맞이한 이번 5년은 이런 차원의 문제들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지금의 새누리당 역시 ‘1997년 대선의 패배’ 때는 운이 없었다 자조하다 ‘2002년 대선의 패배’와 ‘2004년 총선의 패배’를 겪으면서 영원히 권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며 뉴라이트를 만드는 등 뭔가 다른 길을 모색했다.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자뻑’도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배 곯는 것을 두려워하는 새누리당에 비해, 민주화 운동 출신들과 그 정서를 가진 야권은 “지더라도 버틸 수 있다”는 자세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악조건에서 버티는 것’과 ‘스스로 악조건을 만들어내면서 버티기만 하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87년 체제’의 재구성은 물건너갔지만, ‘87년 정서’의 재구성은 이루어지지 못한 ‘민주정부 3기’를 위해 필수적인 과제다.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