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박정희 대학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박정희 대학원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박정희 대학원, '박정희' 이름은 빼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30일자 기사 '박정희 대학원, '박정희' 이름은 빼라'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소유과정·인물평가도 검증 필요

이른바 '박정희 대학원'이 엊그제 2012학년도 1기 입학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정식 이름은 '영남대학교 박정희 정책 새마을 대학원', 이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앞에 내건 국제특수대학원이다. 새마을학과와 공공정책리더십학과 등 2개과에,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15개국에서 온 정치인·사회운동가·고위공무원들 30명과 내국인 2명해서 모두 32명이 신입생으로 등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사정이 매우 풍족해 보인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전원 장학금과 월 100만 원씩의생활비에 기숙사가 제공된다는 설명이 있다. 영남대 측은 이 대학원에 경제학, 지역학, 복지행정학, 산림자원학 등의 전임교수 14명을 배치했다고 했다. 대학원 명칭에 '박정희'라는 특정인 이름이 들어간 것은 우리가 짐작 할 수 있듯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닐까싶다.

영남대는 그동안 입시부정 사건으로 20년간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되었으나, 2009년 정상이사 체제로 바뀌면서, MB정부의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박근혜 후보에게 '설립자 유족' 자격을 부여해, 7명의 이사 중 4명의 추천권을 주었다. MB정부가 사실상 박근혜 후보에게 영남대 운영의 전권을 준 셈이었다. 실질적인 '주인'의 자리에 앉혀준 것이었다.

비록 박정희 대학원 입학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으나(외부의 시선 때문이었던 듯하다), 효심 지극한 박근혜 후보는 이날, 안 계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랑과 긍지와 무량한 감개에 젖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는 견해를 달리하며 당혹감까지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작년 10월 박정희 대학원이 설립되었을 때 만해도 많은 사람들은 "설마"했던 게 사실이다. 영남대학교는 박정희 씨가 빼앗은 '장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판국에 이처럼 단숨에 본격 출범하리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영남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홈페이지 ⓒ프레시안

물론 다른 나라에도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앞세운 대학이나 대학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다른 대학도 아닌 '영남대학교'에, 다른 사람도 아닌 박정희 씨의얼굴이 오버랩되는 대학원이 등장한다는 것은 차원 다른 이야기가 된다. 요컨대 박정희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영남대학을 소유했으며, 박정희 씨 개인이 한 종합대학 대학원 명칭 앞에 이름을 내걸 만큼 추앙 받는 일생을 살다간 사람이냐는 질문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박정희 대학원 설립 이전에(그 보다도 더 훨씬 전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평가되고 정리되었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구나 박정희 씨는 철권통치를 시작하면서, 그 누구도 친일 행적이나 남로당 전력 등 자신의 과거를 언급조차 못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국민들이 '알고 싶고' 또 '알아야 할' 대목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많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들도 재산 빼앗긴 사람이나 유신치하 피살자들의 유족 등 피해자들의 소송과정에서 단편적으로 밝혀진 내용에 불과하다.

다 알다시피 영남대학은 1967년 박정희 씨가 대구대(지금의 대구대와는 다르다)와 청구대를 통합해 설립인가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설립이사 명단에는 박정희 씨가 빠져 있었으나, 1981년 개정된 영남대 정관에서 그는 '교주(校主)'가 된다. 사후(死後)에 교주가 된 셈이다. 2009년 정상이사 체제 복귀 후 그는 박근혜 후보 측 이사들에 의해 교주에서 '설립자'로 신분이 바뀐다.

교주가 된 이후 1988년 국정감사 등에서, 박정희 씨나 박근혜 당시 이사가 재단에 출연한 액수가 한 푼도 없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박 씨 일가가 영남대 주인이 맞느냐는 비판이 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대권 포석 차원에서 아버지가 돈 한 푼 안들이고 '대학주인'의 자리에 앉았다는 비난에 대비하기 위해 교주를 설립자로 바꿨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어찌됐건 돈은 한 푼도 내지 않았고, 사지도 않았으면서도 박정희 씨와 그의 두 딸은 사립종합대학의 주인도 되고 설립자도 되고, 이사장도 되고 이사도 되었다.

대구대학은 유명한 경주 최부자의 후손으로, 상해 임시정부 최대 후원자였던 최준(崔浚)이 1947년 설립한 대학이었다. 1964년 대학 형편이 어려워지자 최준은 이병철 당시삼성회장에게 학교 운영을 맡겼으나, 1966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면서 이병철은 대학을 정부에 헌납한다. 이후락 씨가 중간에 들어 대학을 넘기라고 했다는 증언이 있다.

청구대학도 약점이 잡혀 당시 중앙정보부의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야청(也靑) 최해청(崔海淸)이 1950년 '제2의 독립운동가 양성'이라는 기치아래 전 재산을 털어 세운 대학이었다. 1967년 경리부정과 신축교사 붕괴사고가 터지면서 형사문제가 생기자 이사회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설립자를 배제한 채 정부에 학교를 넘겼다고 했다.

의문이 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두 대학의 설립자들은 '대학을 자발적으로 헌납했다 치더라도', 정부에 넘겼는데 왜 그 대학들이 개인의 소유가 되고, 이른바 '영남대 설립자 유족'에게 사적(私的) 연고권이 생겨났는지 궁금하다. 그게 정의로운 일인가.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 측은 "자발적으로 헌납한 게 아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박정희 씨에게 '노후대책'으로 '대학 총장'을 권유한 사람들도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후락 씨가 박정희 씨 개인의 노후를 위해 영남대학을 관리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슴 아픈 것은 대구대학 설립자 최준이나 청구대학 설립자 최해청 모두, 개인적으로일본 경찰의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까지 겪으면서, 항일투쟁에 재산을 바치던 독립운동가들 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귀하게 쓰던 재산이, 손가락 깨물어 혈서까지 쓰며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던 개인에게, 고스란히 넘어간 대목이 참으로 참을 수 없이 가슴 아프다는 이야기다.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나 부산일보의 '장물' 문제가 나올 때마다 그랬듯이, "영남대 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박정희 대학원도 새누리당 대선후보 캠프인 국민행복 캠프에서 기획조정 특보를 맡은 최외출 교수가 대학원장 자리에 앉아있다. 그는 영남대학 부설연구기관인 박정희 리더십연구원의 원장도 겸하고 있으며 박 후보의 정책자문역인 '5인 공부모임' 소속이라 했다.

박정희 리더십연구원의 홈페이지에는 박정희 씨의 사진이 '영원한 빛'이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와 있다. '소박한 서민, 한국인의 애환과 숨결을 읽을 줄 알았던 토종 한국인, 민족중흥·조국근대화가 삶의 본질 그 자체였던 대통령'이라는 자체 평가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피죽도 못 먹던 시절에 보리 고개를 몰아낸 대통령이기도 했다. 맞는 이야기다. 잘한 일이다. 그러나 박정희 씨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은 아니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어떤 한 개인의 일생을 이야기 하면서 어느 한쪽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며 말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공과 과를 다 드러내놓고 평가하고 정리해 갈 필요가 있다. 특히 박정희 씨는 조명 받지 못한 측면이 다른 사람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 일생을 산 사람이었다. 친일 행각과 남로당 조직책, 밀고, 인권탄압, 장기집권획책, 사법살인 등 결코 추앙 받을 수도, 용서 받을 수도 없는 참혹한 일들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생이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들이 많았다.

박정희 씨 치하에서 이룬 소중한 경험을 후진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가르쳐주고 지원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에 후진국 인재들을 위한 새마을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오해 받을 수 있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인의 이름을 앞에 내거는 대학원의 설립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꼭 필요하다면 그 사람 일생에 대한 꼼꼼한 조명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때문에 지금은 새마을 대학원 정도면 족하다.

'박정희 대학원'에서 박정희란 이름은 빼는 게 옳다. 독립 운동가들의 재산이 아니더라도, 대학 같은 교육기관의 소유권이 특정 정치인의 손바닥 위에 놓이는 일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TK는 지금… ‘박정희 성역화’ 경쟁 중


이글은 시사인 2012-07-09일자 기사 'TK는 지금… ‘박정희 성역화’ 경쟁 중'을 퍼왔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의원의 정치적 근거지인 TK 지역은 ‘박정희 성역화’ 작업에 경쟁적으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2009년 구재단이 복귀한 영남대에는 ‘박정희 대학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구미역에서 출발한 택시는 ‘박정희로(路)’를 내달렸다. 새주소 사업이 진행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와 국도 33호선을 잇는 길이 2.8㎞, 왕복 4차로 길의 이름이 ‘박정희로’로 결정됐다. 생가로 향하는 길 위에서 택시기사는 박정희 체육관을 자랑하고, 대통령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딴 정수초등학교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풀이 죽어 있었다. “생가를 보면 실망하실 겁니다. 너무 초라해서 속상합니다.” 

금오산 자락 대지 754㎡(228평)에 조성된 박정희 생가는 박 전 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 1937년까지 살았던 집을 복원해 만들었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사망 이후 희미하던 박근혜 의원의 공식 행보가 시작된 곳도 이 생가였다. 박 의원은 IMF구제금융으로 나라가 휘청이던 1997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생가에 초청해 입당을 선언했다. ‘아버지의 위업’을 잇기 위해 정치를 시작한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생가는 그 이후로 ‘정치권의 성지’가 됐다. 경북의 공직 출마자뿐만이 아니라 대권주자들 역시 생가를 방문하는 것으로 자신의 출마에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시사IN 백승기

기자가 생가를 방문한 6월26일에도 사람들이 꾸준히 들고 났다. 생가의 방문객은 지난해에만 55만명이 훌쩍 넘었다. 1997년 전만 해도 한 해 2만여 명에 불과하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생가 내부에 비치된 방명록을 보면 노인회나 상이군인회, 새마을과 관련된 단체들의 방문이 눈에 띈다. 방명록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자”라는 다짐의 말이 넘쳤다. 

“대구·경북 건드리면 가만 안 둔다”

한 지역 주민은 ‘금오산 이왕설(二王說)’에 대해 설명했다. 이 지역이 풍수지리상 왕(대통령)이 두 명 나올 지세라는 의미이다. 금오산은 부처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는 모습을 한 모양의 와불상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주민은 “와불상의 이마 부근에 꽂힌 철탑이 정기를 누르고 있어 지난번(2007년)에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저걸 빨리 뽑아내야 한다”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금오산에 세워진 철탑은 6·25 전쟁 직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통신기지용으로 세운 것이다. 구미시와 미군은 지난 3월 기지 반환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한 상태이다. 

생가 앞 주차장에는 ‘진주 노인회’에서 온 관광버스 5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생가 입구에 세워진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사진 입간판을 향해 “안녕하십니까! 고맙습니다!”를 소리내어 외치던 한 노인은 생가 내 분향소에 들러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이 노인은 “이만큼 먹고살게 해준 게 누굽니까? 젊은 사람들은 고마워할 줄을 몰라요”라며 박 전 대통령의 치적을 설명했다. 

‘대구·경북 새마을회’ 명찰을 달고 방문한 청·장년도 눈에 띄었다. 생가에서 150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높이 5m의 박 전 대통령 동상 앞에 선 이들 중 일부는 “누구든 대구·경북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다”라고 외치며 결연히 기념 촬영을 마치고 돌아섰다. 한창 공사 중인 생가 주변 공원화 부지 내에 위치한 이 동상은 지난해 11월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세워졌다.

택시기사가 ‘초라해서 속상하다’고 말한 생가 부근은 현재 대규모 예산이 투입돼 각종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근혜 대망론’과 함께 지역 역시 들썩이는 형국이다. 먼저 2008년 시작된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은 7만8789m²(2만3000여 평) 대지에 도비 25억원, 시비 261억원이 투입된다. 영상실·유품전시실·기념품 판매소가 들어설 박정희 홍보관 역시 55억원 예산이 책정되어 있다. 이 사업은 2013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새마을공원 사업에 792억원 투입

중복 사업 논란도 있다. 새마을 농사 체험장 등 체험마을 형태로 꾸며질 ‘새마을 테마 공원’ 사업은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과는 별도로 예산이 책정되어 있었다. 26만3553m²(7만9000여 평) 부지에 국비 396억원, 도비 119억원, 시비 227억원 등 모두 792억원이 투입된다. 애초 계획된 예산은 1500억원이었다. 이 밖에도 구미시는 매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일인 11월14일 열리는 미술 공모전 대한민국정수대전에 1억7000만원, 탄신제에 7500만원, 추모제에 700만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시사IN 백승기 충북 옥천의 육영수 여사 생가.

구미시만이 아니다. 경북도 내 지자체들은 너나없이 박정희 성역화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6월13일 문경 상리 청운각에서는 박정희 사당과 기념관을 갖춘 공원 준공식이 있었다. 시비 17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이 문경에서 교사 시절 머물렀던 초가 하숙집 터를 바꾼 것이다. 구미시 재정자립도가 45%인 데 비해 문경의 재정자립도는 18%에 그친다. 역시 재정자립도가 겨우 13%인 울릉군은 15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이 울릉도 방문 당시 숙박했던 곳을 박정희 기념관(가칭)으로 개관할 계획이다. 가난한 지자체 살림치고 큰돈을 쓰는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을 ‘선점’하기 위한 지자체 간 신경전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새마을운동 발상지가 어디냐를 두고 청도군 신도리와 포항시 문성리는 10여 년간 마찰을 빚어왔다. 청도군은 2009년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와 이미지를 상표화해 발 빠르게 특허청에 등록했다. 2011년에는 ‘새마을운동 발상지 성역화사업’ 준공식을 열기도 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은 청도군에 방문해 “새마을운동은 정신혁명이었다”라는 방명록을 남기기도 했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위치한 충북 옥천 교동리 역시 본격적인 성역화에 나섰다. 6월26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충북 지역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70여 명이, 대구 남구의 노인정에서 90여 명이 생가를 다녀가는 등 이날 오전에만 400여 명이 생가 방문을 마쳤다고 했다. 지난해 17만명, 올해 6월까지 9만여 명이 육 여사 생가를 다녀갔다. 지난해 5월 생가 복원 당시 국비 4억원에 도비 16억원, 군비 16억원 등이 사업비로 쓰였다. 11월29일에는 육영수 탄생 86주년을 맞아 숭모제가 열리기도 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탄생 숭모제는 2010년부터 옥천군이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이 됐다. 

그런가 하면 경북 경산의 영남대에서는 매달 1일 새벽 6시30분이면 ‘진풍경’이 벌어진다.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PSPS:Park Chung Hee School of Policy and Saemaul)’ 소속 외국인 학생들이 이른바 ‘새마을정신 실천운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PSPS가 적힌 새마을 조끼를 입고 청소도구를 든 채 캠퍼스 정화 운동을 벌인다.  

영남대 중앙도서관 12층에 위치한 이 대학원은 지난해 11월 영남대 이사회가 설립을 승인했고 올해 3월 첫 입학생을 받았다. 방글라데시·필리핀·캄보디아 등지에서 모두 15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석사 학위 과정으로 새마을학과와 공공정책리더십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중앙도서관 건물에는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새마을연구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모두가 이른바 2009년 ‘재단 정상화’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 중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의 경우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협약을 맺어 구미시 예산에서 매년 1억원씩 지원된다. 또한 연구소는 지난해 6월 구미시와 조갑제닷컴의 후원으로 ‘박정희 리더십 독서감상문 대회’를 열기도 했다. 

2009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여 년간 관선이사 체제로 운영됐던 영남대의 정상화를 추진하며 사실상 구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29세의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에 올랐던 박 의원은 2009년 ‘종전이사’의 자격으로 이사 추천권을 행사해 측근 4명을 영남대에 앉혔다. 강신욱 전 대법관, 우의형 전 서울행정법원장, 박재갑 서울의대 교수, 신성철 카이스트 교수가 그들이다. 

“재단 정상화가 아닌 구재단의 복귀다. 박근혜 본인이 직접 들어오지 않고도 ‘섭정’ 체제를 갖췄다”라는 게 한 영남대 관계자의 전언이다.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의 설립 역시 박 의원이 추천한 이사들이 결정한 사항이다. 이들은 정관상 논란이 됐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교주(校主)’라는 표현도 세련되게 바꾸었다. 2011년 개정된 영남대 정관 1조는 ‘이 법은 대한민국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의 창학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적혀 있다.

1988년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영남대 설립자로 알려진 박 전 대통령 및 이사장을 역임했던 박근혜 의원이 영남대에 출연한 돈은 ‘0원’이다. 또한 당시 29명의 부정입학 사건, 인사 전횡 사건 등 각종 비리의혹으로 학원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이사장은 이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퇴진해야 했다. 그런 영남대가 구재단 복귀와 함께 박정희를 다시 소환한 셈이다. 

‘5인방’ 최외출 교수가 대학원장 맡아특히 눈에 띄는 것은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최외출 교수이다. 1977년 ‘새마을 장학생 1기’로 영남대에 입학한 최 교수는 이른바 박근혜의 과외선생 5인방 중 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5인방은 박 의원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설립을 주도한 5명의 학자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최 교수를 비롯해 김광두 서강대 교수(경제학), 19대 국회에 비례로 당선된 안종범 의원, 김영세 연세대 교수(경제학),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등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대구 지역의 한 정치학자는 “정치권력이 지난 수십 년간 바뀌어본 적 없는 TK 지역은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과잉 충성심 경쟁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이 이를 묵인하며 사실상 부추기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 이르면 이런 ‘일부 세력’의 결집은 결국 박 의원에 짐이 될 수도 있다(20~22쪽 딸린 기사 참조).  

박정희는 여전히 살아 있는 모델이다.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 설문조사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 영향력은 ‘박근혜 대망론’으로도 이어진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박 의원의 최대 지지 기반인 TK와 TK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계도 째깍째깍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만, 그 시곗바늘은 미래가 아닌 박 의원에게 정치적 유산을 물려준 아버지를 향해 역주행을 하고 있다.

대구·구미·옥천/장일호·송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