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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6일 일요일

겁쟁이 MBC


이글은 한겨레21 2012-09-17일자 제928호 기사 '겁쟁이 MBC'를 퍼왔습니다.
[기획 연재] 릴레이기고3- 정상화를 위한 릴레이 기고 3- 겁에 질려 작가들까지 ‘청소’한 이 시대의 집단 참주는 현실을 직면하시라

정성주 드라마작가·(아줌마) (아내의 자격)

“쌤, 이거 진짜 후져요. 작가들 싹 다 청소해버렸대요!” 함께 일하는 젊은 친구들이 숨이 턱에 차서 전해주는 소식에 기사를 봤다. 그리고 이틀 뒤, ‘ 작가 전원 해고’에 항의하는 작가들의 시위에 나온 후배 이정혜의 사진을 봤다. 22년 전, 이정혜는 갓 100일 된 둘째아이를 두고 나와 의 첫 회를 준비했다. 그는 KBS의 다큐멘터리와 등 탐사 프로그램, 종합 구성 프로그램 시대를 연 작가들 중 하나로, 전무후무한 괴력의 여인이다. 두 아이를 시간제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맡긴 그 사정을 누가 봐주나. 그러니 괴력을 발휘할 수밖에. 이정혜는 과연 언제 잘까 싶었다. 사진 속 이정혜 곁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젊은이가 22년 전 100일이던 딸 이승현이다.

100일 된 아기가 저만큼 클 동안

이 모녀를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그간의 세월이 한심해서다. 100일 된 아기가 저만큼 클 동안, 이 바닥도 웬만큼 컸어야 하지 않나. 드라마나 코미디가 아닌 프로그램에도 작가가 있다는 걸 이해하게끔 설명하는 데 한참이 걸리고, PD들조차 ‘교양프로의 작가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쓰고 눈먼 돈 집어가는 사람들 아니냐’는 말을 내뱉던 미개한 시절을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참으로 많은 일을 겪으며 방송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물론 방송작가란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직종이다. 대본이 늦게 나오거나 방송에 차질을 초래한다면 잘려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에 해고된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그런 중대 사유가 도무지 없다. 해고 작가 중 한 명은 행여 에 누가 될까봐 은행 대출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무책임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았고 심지어 유능하기까지 했는데 왜 불시에 청소를 당했나 싶어 그간의 전말을 살펴보니, 시사교양 국장이, MBC 경영진이, 이들을 정말 꾸준히 미워한 것이 분명하다. 그 작가들, 노조 파업에 동조하고 해고 및 전보 발령된 PD들과 같은 무리다. 성분이 고약하다. 당연히 밉겠지.
문제는 그 미움이, 단순한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데 있다. 결정권자의 두려움은 시대의 한 불길한 징후로서 민주주의의 탈을 쓴 참주정의 예고란다. 힘을 잃을까 두려워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그 두려움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하곤 한단다. 시사교양 국장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서는 이라는 프로에 겁먹은 나머지 작가들까지 ‘청소’한 이 시대의 집단 참주다.
920명의 구성작가들이 대체 작가 거부를 결의했고 이렇게 가다간 10월 방송도 불투명하다는데, 경영진 중 한 명은 작가협회를 방문해 도와달라고 했단다. 복직도 안 되고 사과도 할 수 없지만 ‘이제 그만 화를 푸시라’고 했다. 딱한 노릇이다. MBC는 그렇듯 겁쟁이 참주 체제로 퇴행했다. 아테네 내전 당시 저항군들이 ‘우리가 함께 누리고 살아온 이 도시를, 우리가 꽃피운 모든 것을 배반하지 말자’고 했을 때 30명의 참주들은 폭정을 끝내기로 결단을 내렸지만, 작금의 그들은 좋은 방송을 함께 누려본 경험이 없으니 작가들의 결의를 절대 이해 못할 것이다.

좋은 방송을 함께 누려본 경험이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 싸움에서 작가들이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멀쩡히 계약된 상태로 일하다가 생계와 자존과 이상이 동시에 짓밟힌 작가들은 결의로 뭉쳤고 그쪽은 칼을 쥐고는 있으나 전열이 불안하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그들의 주군은 애초부터 아테네의 주인, 방송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디 이번 기회에 간도 키우시고 판도 크게 보시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은 본질과 직면하는 것이다.

정성주

2012년 9월 9일 일요일

학살된 작가들을 구하라


이글은 한겨레21 2012-09-10일자 제927호 기사 '학살된 작가들을 구하라'를 퍼왔습니다.
[기획] 늘 고소를 각오해야 하는 전쟁터를 선택했던 (PD수첩) 작가들 하루아침에 내쳐져…900여 작가 대체 집필 거부, 드라마작가들도 ‘릴레이 기고’ 등으로 싸움 나서

 
» 방송작가들은 이번 해고를 ‘작가 학살’이라고 부른다. 지난 8월6일 방송작가들이 MBC 방송작가 전원 해고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가운데 노희경 드라마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작가란 이렇게 하루아침에 내쳐질 수 있는 존재였군요.” MBC 의 이김보라(31) 작가가 결국 눈물을 떨구었다. 8월28일 MBC 노조 사무실에서 정재홍·장형운·이소영·이화정·임효주·이김보라 6명의 작가들을 만난 날은 그들이 작가 교체 소식을 접한 지 한 달을 넘기는 날이었다. MBC 파업 기간까지 합치면 그들이 제작 현장에 돌아가지 못한 지 8개월이 넘었다.

통보조차 없이… ‘구인’ 보고 해고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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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미 전 작가는 한 기고문에서 이 결방되던 날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이 사내 정책설명회에서 한 이야기를 공개했다. “김 국장은 작가를 전면 교체한 이유는 노조 파업에 작가들이 지지 성명을 냈기 때문이라고 재차 확인했다고 한다. …또 (정재홍 작가가 쓴) (한겨레21) 기사를 (PD들 앞에서) 읽어 내려가며, 작가가 편향돼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고도 한다.” 노동조합원이 아닌데도 ‘언론 정상화’를 위해 급여를 포기했던 6명의 작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인터뷰하는 날도 한 PD의 도움으로 서울 여의도 MBC 사옥으로 들어가려는 그들을 경비가 급하게 제지했다. “누구십니까? 들어가면 안 됩니다.” 해고 통보조차 받지 못한 채 밥줄이 끊긴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가장 어린 신참 작가조차 MBC 시사교양국에서 5년 이상을 일해왔지만 하루아침에 계약이 해지됐다. 그것도 팀에서 다른 작가를 구한다는 소문을 듣고서야 자신들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작가가 되고 싶어서 방송작가가 되었다”는 이김보라 작가는 에서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파업을 맞았고, 해고됐다. 교양작가 5년차인 임효주(30)씨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이 프로그램”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해고됐다. 작가들이 자부심을 갖는 근거는 ‘PD 저널리즘’의 간판이 PD였다면 숨은 기둥은 작가였던 의 역사 덕분이다. 2009년 검찰이 ‘광우병 보도’ 수사에 나섰을 때 김은희·이연희 작가는 소환에 불응한 뒤 김보슬·이춘근 PD와 함께 체포됐다.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도 파업 기간 내내 빨리 돌아가고 싶었어요.” MBC 시사교양국에서 일한 지 10년차 되는 이소영(34) 작가는 2009년 3월부터 에서 일했다. 하루 12시간 노동은 기본. 방송 1~2주 전부터는 방송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틈틈이 선잠을 자는 일상이었다. 방송이 나가면 전화가 빗발친다. 제작진에게 은 늘 고소당할 각오를 해야 하는 전쟁터다. 특히 대본을 쓰는 작가들은 토씨 하나에도 송사 여부와 송사의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에 방송 일주일 전부터는 한숨도 자지 않고 눈을 부릅뜬다. 그렇게 청춘을 보냈다.

» 작가들은 “우리가 못 돌아가면 전례가 된다.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왼쪽부터 이소영·정재홍·장형운·이화정·이김보라·임효주 작가. 한겨레21박승화 기자

최악의 해… 검열관 두고, 기획안 찢어버리고

제작진 중 기혼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연애의 무덤’으로 불린다. 서른 중반부터 마흔 중반까지의 작가들은 모두 “이 프로그램에 청춘을 반납했다”고 말한다. “순진하지만 이렇게 하다 보면 세상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매달렸다.” 이소영 작가의 말이다. “올해 초 파업 즈음에 PD와 같이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취재하고 있었다. 파업 기간 중에도 개인적으로 좀더 취재하고 방송이 재개되기를 기다렸다.” 장형운(35) 작가는 파업이 끝나도 취재를 진행할 수 없었다. “프로그램은 많다. 그러나 은 작가로서 자부심을 갖는 프로그램이다”라고 작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재홍 작가는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장형운 작가는 ‘김종익씨 민간인 사찰’, 이소영 작가는 ‘기무사 민간인 사찰’, 이화정 작가는 ‘오세훈의 한강 르네상스’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작가로서의 자부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MBC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사이트 ‘파업채널M’은 2011년을 “ 최악의 해”라고 표현한다. “김재철 사장과 고등학교·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윤길용 PD가 시사교양국장으로 취임한 이후 ‘검사와 스폰서’편을 제작한 최승호 PD가 다른 부서로 강제 발령을 받고 경질성 인사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MB 무릎기도가 시작이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청와대 조찬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 꿇고 기도한 해프닝을 ‘생생이슈’ 코너에서 다루려고 했지만 국장과 팀장이 막았고 항의하는 PD를 다른 부서로 전출시켰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편을 만든 이우환 PD는 장기 중단 상태인 남북 경제협력 문제를 취재하러 가던 중 팀장에게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취재원을 5분 거리에 두고 고속도로에서 유턴을 해야 했다. 이우환 PD와 ‘황우석 고발’로 유명한 한학수 PD 등은 곧 지방 부서로 보내졌다. 남아 있는 작가와 PD의 전쟁이 시작됐다.
작가들은 “이전 팀장과 국장이 외압을 막는 방패였다면, 그때부터는 팀장과 국장이 감시자 역할을 했다. 김철진 팀장은 PD들의 책상과 컴퓨터를 몰래 뒤지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팩트체커팀장이라는 보직을 만들었는데 사실상 사전검열관 역할이다. 노동문제를 특히나 싫어했다. 기획안을 가져가면 ‘이런 기획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자꾸 가져와!’ 하며 찢어버리기 일쑤였다.”(이소영) 이유는 그때그때 달랐다. “4대강 사업 현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이 18명을 넘을 무렵이었다. 이를 취재하겠다고 했더니 ‘18명이 뭐가 많이 죽었다고 방송하나? 노동자들이 잘못했겠지’ 하는 거다. 포클레인 불법 개조 등 노동자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 무리한 공사 감행 때문이라는 증거를 찾았다. 그랬더니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겠지’ 그런다. 불법·편법에 그럴 만한 사연이 없는 게 어딨나. 팀장이 그런 말을 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정재홍) “희망버스로 나라가 들끓을 때도 카메라가 묶였다. 보다 못해 의 모든 작가와 PD들이 돌아가며 ‘김진숙 취재안’을 한 번씩 다 냈지만 회사 쪽은 취재 자체를 막았다.”(이화정)

“작가는 글로 싸워야 한다” 릴레이 기고

“아무에게도 해가 가지 않는 종교, 불륜, 살인사건 같은 아이템을 선호했다. 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취재를 시작하면 ‘너희들은 나라 잘되는 꼴을 왜 못 보냐’고 했다”고 한다. “눈총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작가들은 벌써 벌집이 됐을 것”이라는 정재홍 작가는 “결과적으로는 무력화를 막으려던 내부전을 치열하게 치른 덕분에 오늘날 이렇게 한꺼번에 잘리게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 교체로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방송사 쪽의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 8월21일 방송 재개 예정이던 은 결국 결방됐다. 방송이 제작조차 되지 못하자 PD들은 MBC 사옥 앞에서 ‘ 정상화’를 촉구하는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 대체 집필 거부’를 밝힌 시사교양 작가는 900명을 넘겼다. 방송 4사 구성작가협의회를 이끄는 구성다큐연구회 최미혜 회장은 “방송 4사 교양국 소속 작가는 물론 외주사 소속 작가, 종편 작가조차도 연대 서명을 보냈다”고 밝혔다. 임정화 EBS 구성작가협의회장도 “작가 생활 18년 만에 이런 연대는 처음이다. 처럼 작가의 역할이 큰 프로그램조차도 쉽게 작가들을 갈아치운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크다”고 전했다. 작가들의 공분을 부른 것은 이번 사태가 노골적인 언론 탄압이자 작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모욕으로 비쳐진 탓이 크다는 것이다.
방송작가들의 분노와 연대가 거세다. 교양부문 구성작가뿐 아니라 다른 장르 작가들도 ‘ 작가들의 원직 복귀’를 요구하고 나섰다. “작가는 글로 싸워야 한다”며 온라인 뉴스 사이트에서 전직 작가들이 릴레이 기고를 한 데 이어 (한겨레21) 등 지면에서는 드라마·예능 같은 다른 장르 작가들까지 연대와 지지를 호소하는 ‘릴레이 기고’에 나섰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금림 이사장은 “군사정권 시절에 작가들이 경험했던 외부의 압력보다도 더 굴욕적인 작가에 대한 박해”라며 “작가들이 원직 복직될 때까지 모든 작가들이 총력으로 이 사태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작가들의 집단행동으로 프로그램이 결방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작가들을 핑계 대서 대선 국면에 이라고 하는 정권에 껄끄러운 방송을 내보내지 않으려는 방송사 쪽의 음모가 아닌가 의심한다”며 “일이 이렇게 돼가는데도 방통위는 작가협회와 면담을 거부했고 방문진은 8월27일 논란이 됐던 김재우 이사장을 여당 쪽 인사라는 이유로 연임했다. 다음 수순은 김재철 사장 유임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이래저래 절망이 가까운 시절이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영전, 영전, 영전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4월 MBC는 ‘인사 쇄신’이라는 미명 아래 비판적 제작진 속아내기를 주도했던 김현종 전 시사교양3부장을 시사제작국장으로, 김철진 전 팀장을 교양제작국장으로, 배연규 전 팩트체커팀장은 시사제작3부장으로 임명했다. 임기 동안 세 차례 을 결방시켰던 윤길용 국장 또한 편성국장으로 영전했다. (한겨레21)은 방송 정상화 책임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고 윤길용·김철진·김현종 국장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배연규 현 팀장은 “말해봐야 어차피 기사는 제대로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PD수첩) 잔혹사 일지
2010년 8월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편 방송 보류
2011년 1월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을 두고 사전 심의 논란
2011년 2월 윤길용 시사교양국장 취임 직후 최승호 PD 강제 전출
2011년 3월 ‘MB 조찬기도회 무릎기도’ 취재 보류 항의하는 전성관 PD 인사 조처
시사교양국 PD들, 인사 조치 항의해 집단 연가 투쟁
2011년 5월 김철진 팀장, ‘남북 경제협력 중단’ 취재 중단 요구, 이우환 PD 퇴출 명령
2011년 7월 김철진 팀장 PD 사찰 논란
드라마세트 관리 담당으로 발령받은 이우환 PD, 경인지사로 발령받은 한학수 PD 부당 인사 가처분 신청 승소
2011년 8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다룬 ‘누구를 위한 한강변 개발인가’ 편 방송 직전 화면 긴급 수정
2012년 1월 ‘정치검찰’ 취재 중단 명령
2012년 2월 ‘FTA’ 촬영 중단 명령
2012년 7월 작가 전원 해고
2012년 8월21일 파업 중단 뒤 첫 방송으로 예정됐던 불방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밥줄 끊고 방송 펑크 내는 게 분위기 쇄신인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24일자 기사 ' “밥줄 끊고 방송 펑크 내는 게 분위기 쇄신인가”'를 퍼왔습니다.
[PD수첩 역대작가 릴레이 기고 ④] 김미라 전 PD수첩작가

찰랑거리던 긴 생머리를 상큼하게 자른 학생이 다가온다. “어, 머리 잘랐네. 실연의 후폭풍?” “아뇨. 개강도 다가오고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여대 교수인 내가 개강 무렵 마주치는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우리는 가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집안의 가구 배치를 바꾸고, 주머니를 털어 여행을 떠난다. 나에게 ‘분위기 쇄신’이라는 말은 그동안 이런 상황에 주로 쓰는 일상적인 표현이었다. 그런데 고락을 같이 해온 의 작가 전원을 해고하면서 MBC의 한 간부가 처음에 그 이유를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한국 방송사에 전대미문의 오욕을 남기면서, 방송 제작의 한축인 작가들의 밥줄을 끊고 자존심을 짓밟으며 한 표현치고는 참으로 개념 없고 저열하다.
후배작가로부터 (PD수첩) 전직 작가들의 릴레이 기고에 동참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고민이 깊었다. 방송현장을 떠난 지도 벌써 7년이 넘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15년을 몸담았던 MBC는 밉든 곱든 친정이나 다름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함께 부대끼며 (PD수첩)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왔던 선배이자 동료였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PD수첩) 22년 역사 가운데 6년 10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한 작가로서, 길거리로 내몰린 후배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고 잘못됐다 말하는 것이 지식노동자들의 소임이라면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서있는 학자로서의 길이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MBC 사측이 밝힌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의 ‘진짜’ 이유는 그들이 불편부당성과 중립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공정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파업에 앞장섰던 PD들을 해고하고 비제작부서로 내몰던 명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현장을 떠나있던 나로서는 최근 (PD수첩)의 분위기나 제작과정을 면밀하게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일련의 사태에 사측이 내세운 명분이 곧 공영방송이라는 MBC가 얼마나 허술한 조직인지, 그 실상을 만천하에 스스로 폭로하는 자충수를 둔 꼴이 됐다는 점이다. 속된 말로 ‘자뻑’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언제부터 일개 PD가, 일개 작가가 프로그램의 전체 방향을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제작 시스템이 되었단 말인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PD수첩 작가. 이치열 기자 truth710@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사 조직에는 엄연히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라는 과정이 존재한다. 팀장과 국장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뉴스를 제작하는 보도국이나 (PD수첩)과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부서에서 게이트키핑 기능은 필수적인 것이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일개 PD의, 일개 작가의 개인적인 편향이 그대로 방송 프로그램에 반영되었다면, 공영방송 MBC의 게이트키핑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PD나 작가가 아닌 팀장이나 국장에게 먼저 직무유기의 책임을 묻는 것이 누가 봐도 타당하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 정확한 단어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대사가 나온다. 부하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클라이언트를 찾아가 계약을 파기한 건축사무소 소장(장동건 분)은 회사의 손실을 염려하는 직원에게 “그건 내 일이야. 내가 너보다 월급 많이 가져가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일 해결하라고 그런 거야…” 라고 말한다. 지위와 권력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방송사가 일선의 제작인력보다 팀장이나 국장에게 더 많은 임금과 대우를 하는 것 역시 그동안의 기여도 있겠지만 그가 안고 가야할 책임에 대한 대가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자신이 바람막이가 돼 보호해야할 후배PD들이나 비정규직 작가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에게 칼을 쓰는 것은 수치라는 고대 철학자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PD수첩) 작가 해고사태는 작가들에게 상처만 준 것은 아닌 듯하다. 칼자루를 쥔 그들의 의도는 정녕 아니었겠지만 작가들의 위상과 존재감을 세상에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두 축은 누가 뭐라고 해도 PD와 작가이다. 이것은 드라마뿐 아니라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그런데 그동안 전면에 부상되지 않았던 탐사보도 작가들의 존재가, 역할의 중요성이 불미스러운 사태로 알려진 셈이다. 사측과 보수단체의 주장, 일부 언론보도만 보면 일반인들은 (PD수첩) 작가들이 소위 좌편향의 투사쯤 되는 줄 알기 십상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정규 대학교육을 받고 작가로 입문한 지극히 상식적인, 우리 사회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이들일 뿐이다. 자신이 우측으로 가있는 것을 모르고 중간에 서있는 사람에게 뚜렷한 근거도 없이 너무 좌로 가있다고 비난하는 형국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권력도 조직도 감시와 비판이 없으면 부패하기 마련이다. 특히 언론조직은 내부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다른 의견을 내는 ‘악마의 변론인(devil's advocate)’을 키우고, 그 스스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악마의 변론인이 되기를 자처할 때 본연의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도삼이사(桃三李四)’라는 말이 있다. 복숭아나무는 3년, 자두나무는 4년은 길러야 결실을 낸다는 뜻이다. 작가도 다르지 않다. 일정기간 다듬어지고 내공이 쌓여야 비로소 제 몫을 할 수 있다. 방송가에서 (PD수첩) 작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과 경륜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2년을 (PD수첩) 한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작가들은 자신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MBC가, (PD수첩)이 길러낸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위해 아름드리 재목의 밑동을 스스로 잘라내는 우를 범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을 내친 결과 21일로 예정됐던 은 결국 전파를 타지 못했다. 노조의 파업 때는 그렇게 ‘시청자의 볼 권리’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대표적인 정규프로그램의 결방에는 왜 침묵하는지 묻고 싶다.
정재홍, 장형운, 이화정... , MBC 노조의 파업 이후 벌어지고 있는 살풍경을 지켜본 이들 작가들은 아마 이 싸움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또 누군가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고 이들을 회유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럽고 치사해서 그냥 떠나 버리면 그 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들처럼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해야 할 싸움이 있다면 기꺼이 동참할 때 세상은 아주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진보한다.
지난 21일에 있었던 정책발표회에서 이번 사태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시사제작국장은 다시 되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다. 의로운 일에 뜻을 굽히지 않는 것은 소신이지만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집하는 것은 아집에 불과하다. 이쯤 되니 문득 고은 시인의 짤막한 시구(詩句)가 떠오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들은 위태롭기 그지없는 그 의자에서 내려설 때에야 정녕 자신이 밟고 올라간 그 꽃들을 볼 수 있을까. 
(김미라 작가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6년 10개월 동안 (PD수첩)을 집필했으며, 2005년까지 15년을 MBC 전속작가로 활동. 이후 언론학 박사학위를 취득, 현재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 이다.)

김미라·(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 | jinpress@mediatoday.co.kr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황우석 취재 때도 위에서 전화 빗발쳤다, 하지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8-15일자 기사 '황우석 취재 때도 위에서 전화 빗발쳤다, 하지만…'을 퍼왔습니다.
[PD수첩 작가해고 사태 릴레이 기고 1] 그래도 그땐 방송 다 나갔다, 제작진도 무사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다음 날, 나는 동료 PD와 술을 마시며 그를 추억했다. 그땐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또한 먼저 간 이들에 대한 예우가 그렇듯, 좋은 추억들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노 대통령에 대해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들이 더 많았다. 나는 소위 ‘노빠’ 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참여정부 당시 ‘PD수첩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PD수첩)을 하는 동안, 나는 본의 아니게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우석 사태며 한미 FTA 같은, 당시 정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아이템들이 나를 거쳐 갔다. 특히 황우석 사태는 참여정부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황우석 박사를 그 선봉에 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친히 황 박사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가 하면, 정부는 그에게 연구비며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황 박사는 참여정부의 후광 아래서 온갖 수혜를 다 받으며 ‘거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니 (PD수첩)에서 황 박사를 취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윗분들의 전화가 조용히 빗발친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청와대, 정부 할 것 없이 여러 루트를 통해 취재 중단을 종용해왔고, 나중에 황 박사의 사기극이 들통 날 즈음엔 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방송 중지를 ‘요청’해오기도 했다.
그 당시엔 정말 화가 났다.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이 언론에 개입하고 크든 작든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권력의 입김은 그닥 세지 않았던 것 같다. 취재는 계속되었고 진실은 밝혀졌으며 방송은 나갔다. 그리고 제작진도 무사했다. 그렇게 황우석 사태는 끝이 났다.

MBC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PD수첩)이 겪고 있던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구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피디들이 정권의 직접적인 탄압을 받는 것만도 경악할 일인데, 더욱이 작가에게까지 그 손길이 미치다니. 동료 피디들과 후배 작가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정에 세워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문득 상상하기도 했다. 만약 황우석 사태가 이 정권에서 터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했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취재는 접어야 했을 것이고, 방송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방송을 강행했다면 나 또한 저들 못지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분명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황우석 사태’ 후에도 당시 정부에게 정말이지 ‘몹쓸 방송’을 또 감행했었기 때문이다. 
2006년 에서 다룬 ‘한미 FTA’는 참여정부에게 광우병 방송 못지않게 타격이 컸다. 정부가 공들여 한 홍보 덕에 국민들은 한미 FTA에 대해 무지갯빛 환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PD수첩) 방송이 나간 후, 대다수 국민들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여론조사 결과, 방송 전후 한미 FTA 찬반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대통령이고 정부 관계자라 해도 정말이지 (PD수첩)이 미웠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토록 ‘미운 PD수첩’에 대한 대응은 현 정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방송 후, 제작진은 청와대로부터 놀라운 제의를 받았다. 한미 FTA를 놓고 제작진과 대통령이 방송으로 ‘끝장 토론’을 해보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낸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만큼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절체절명의 과업으로 생각했고, 국민들의 반대보다 지지 속에 추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뜻밖의 제안에 더 놀란 쪽은 제작진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해, 그 정책을 비판한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함께, 대통령이 직접 ‘토론’을 하자니...그것을 방송을 통해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니...지금 시대라면 상상이 되는가.
그 토론은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초긴장 속에 토론 준비를 하던 즈음 급작스레 국제적 이슈가 터졌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방송 역사상 길이 남았을 그 토론이 불발된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책은 미웠지만, 언론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차마 미워할 수 없었던 대통령. 나에게 있어 노 대통령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남아 있다.

황우석 교수. ©MBC

군사정권에서 시작돼 다섯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PD수첩)은 늘 정권으로부터 ‘미움’ 받는 존재였다. 심지어 국정원인가 어느 기관의 직원은  (PD수첩) 다음 주 아이템이 무엇이고 어떤 내용인가 사전에 파악해 보고하는 것이 임무였다고도 전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하는 일을 칭찬하기보다 잘못한 일, 감추고 싶은 일들만 콕콕 짚어내어 비판하니, 누가 예뻐할 것인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움 받는 것은 (PD수첩) 같은 시사프로그램에겐 숙명이다.
중요한 건 그런 ‘미운’ 프로그램을 대하는 정권의 태도다. 지금까지 모든 정권은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전화로 불같이 화를 내고, 방송 내용에 반박하는 보도 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어 열심히 성토하고,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심지어 거액을 들여 신문에 반박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진을 용서할 수 없다며 협박하고, 권력기관을 동원해 물리적인 탄압을 가해온 적은 없었다.
그사이, 정권과 권력기관으로부터 쏟아지는 그 모든 불만과 압력에 대해 ‘바람막이’가 되어준 건 데스크를 포함한 ‘회사의 윗분’들이었다. 각 정권에 따라 그들이 ‘저 위’로부터 어떤 닦달과 고초를 겪었는지 나는 모른다. 작가에게까지 그 ‘바람’이 전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를 할 때 팀장이나 국장에게 어떤 아이템에 대해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들은 건 그저 꼬투리 잡히지 않게 잘 만들어달라는 ‘당부’뿐. 그 당부대로, 작가로서 묵묵히 내 할 일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것이 모든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받으면서도 (PD수첩)이 22년간 사라지지 않고 ‘무사히’ 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정권 들어 (PD수첩) 제작진들에게 가해지는 폭압의 정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잘하고 있는(너무 잘 해 탈인) PD들을 프로그램에서 내쫓는가 하면, (PD수첩)이 ‘절대 할 수 없는’ 아이템들이 늘어간다. 이 정권에서 또 한 번 논란이 된 ‘한미 FTA’ 아이템은 취재까지 다 끝내놓고 끝내 전파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방송을 막은 건 현 (PD수첩)의 팀장과 국장이라는 분들이다.
그리고...급기야 작가들까지 전원 강제 퇴출이란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도 든다. 단지 ‘미운’ 차원이 아니라 ‘두려운’ 거구나...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인지. (PD수첩)의 힘이 그리 무서운 것인지. 작가의 능력이 그리도 대단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PD수첩) 출신 작가들은 지금의 작태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찾는구나 생각까지 든다.
MBC에서 작가 생활을 한지 올해로 만 20년째.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독하게 일했던 (PD수첩)에서의 3년을 내 이력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마도 (PD수첩)을 거쳐 간 모든 작가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보수가 많아서도 조명을 받아서도 아니다. 이 사회에 뭔가 소용이 될 만 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 그거 하나 때문이다. (PD수첩)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작가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 일이 되었는지...‘PD수첩 아이템’ 같은 지금의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윤희영 MBC 전 PD수첩 작가 | media@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