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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6일 목요일

"박근혜, 두꺼운 코트 안에 셔츠만 입은 느낌"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5일자 기사 '"박근혜, 두꺼운 코트 안에 셔츠만 입은 느낌"'을 퍼왔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강경노선으로 굳어지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전문가들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에 대한 억지와 처벌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한반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4일 평화재단은 '한반도 안정화, 한미정상회담부터 시작이다'를 주제로 전문가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동대 김준형 교수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대북 '억지'에 강조점이 찍혔다고 평가했다.


▲ 평화재단은 14일 '한반도 안정화, 한미정상회담부터가 시작이다'를 주제로 전문가 포럼을 열었다. 왼쪽부터 성기영 연세대학교 북한연구원 연구교수,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준형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평화재단

김 교수는 정상회담 전부터 미국이 박근혜정부의 신뢰프로세스가 표방하고 있는 '대북억지'와 '남북대화'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며 "박근혜정부는 스스로 조정을 통해 이 부분을 미국과 타협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북핵문제에 대해 단호한 원칙론에 입각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박근혜정부가 이러한 미국의 입장과 신뢰프로세스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 미국 방송 CBS와 인터뷰에서도 신뢰프로세스가 북한의 도발과 위협을 용납하지 않으며 비핵화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도 북한과 대화보다는 단호한 원칙론이 부각되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정부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며 성공적이라고 자평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뜻을 미국이 지지했다기보다는 미국의 뜻에 한국이 맞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평가다.


▲ 김준형 한동대 교수 ⓒ평화재단

김 교수는 박근혜정부에서 동북아 다자협력구상으로 내놓은 '서울 프로세스' 역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원론적이고 선언적인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뢰프로세스와 마찬가지로 서울프로세스에서도 북한을 대화로 이끌 수 있는 적극적인 유인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 프로세스 자체가 북한을 포위하고 압박하는 기구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없이 서울프로세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성공하려면 북한 핵과 군사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선 연세대학교 북한연구원 성기영 연구교수도 서울 프로세스에 대해 "바람 부는 날 잘 차려진 코트를 두껍게 입었다는 느낌은 드는데 정작 안에는 와이셔츠만 달랑 입은 느낌"이라며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구상이 결여된 서울 프로세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반도 위기, 한국이 나서야

전문가들은 현재의 한반도 위기를 풀기 위해 무엇보다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창수 실장은 북한과 미국이 근본문제를 놓고 충돌하는 상황에서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이 쉽지 않다며 "한국이 미국·중국과 협력하고 남북접촉을 시도하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부드럽게 전환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여기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미국과 중국의 협조 속에서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역할론이 한계가 있다는 것도 한국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혔다. 김준형 교수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양국 정상이 중국역할론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지만 중국의 역할에 대한 미국의 기대가 과도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대(對)중국 의존도가 커지긴 했지만 중국의 북한에 대한 레버리지가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면서 중국이 현 상황에서 안보 위기를 해소시킬 이른바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기영 교수는 북핵문제의 해결 틀로 거론되는 4자회담, 6자회담에서의 한국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6자회담은 배터리가 방전된 자동차와 같다. 이 차를 출발시키기 위해서는 점프 케이블이 필요한데 미국과 중국의 케이블은 녹이 슬어서 잘 움직이지 못한다. 한국이 준비해야 한다"며 "이 작업이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구상"이라고 말했다.


▲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평화재단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김창수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등전략'을 복원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1968, 69년에 휴전 이후 북한의 위협과 도발이 가장 강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통일에 대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이 시기에 평화통일구상을 선언했다면서 "긴장 완화의 상태를 거쳐 평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당시의 구상은 이후 역대 한국정부 통일 정책의 골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북한에 전쟁하지 말고 어느 체제가 더 잘 살게 할 수 있는가를 경쟁하자고 던져 주는 것이 전쟁억제를 위해 몇십 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봤다며 박근혜정부가 북한의 반응에 대응만 하는 일반적이고 단순한 전략에서 벗어나 이러한 고등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 큰 틀에서 접근하고 대화 채널 복원해야

한편 지난 4월 8일 이후로 한 달이 넘도록 운영이 중단된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해 남북관계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성기영 교수는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자체를 놓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며 북한에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신호를 주기적으로 보내는 것이 현재로서는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밝힌 북측 노동자 철수 이유가 "괴뢰패당과 어용언론이 우리 존엄을 무시했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로 접근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남북 간 채널 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통일연구원 박영호 선임연구위원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또 상황이 (지금보다) 악화되더라도 대화 채널은 있어야 한다"며 "비공개 방식을 통한 남북 간 소통 채널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창수 실장 역시 "현시점에서는 비공개접촉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재가동 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현 상황을 진단한 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개성 주재 기업의) 원부자재 가져오겠다고 말해서 그것을 받아오기는 힘들다"며 "비공개접촉을 통해 상호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2013년 2월 27일 수요일

朴, 정치와 외교 구분 못한 MB 전철 피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3-002-27일자 기사 '朴, 정치와 외교 구분 못한 MB 전철 피하라'를 퍼왔습니다.
[한반도 브리핑]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를 잘 풀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양한 정책 조언들이 언론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현안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그러나 정책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대북정책을 다루는 자세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위기라고 생각하면 초당적 협력에 나서야

우선적으로 위기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라는 말이 넘쳐나지만, 과연 위기를 진정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진짜 어려운 상황이라 느끼면, 말과 행동이 신중해진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무책임한 말들이 왜 이토록 넘쳐나는가? 그것도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근거 없는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는가? 한반도 정세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중요한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정으로 위기를 인식하면, 해결의 수단과 방법을 백방으로 찾아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위기국면에서 지혜를 모은다. 초당적 협력이 자연스럽게 가동된다. 서독에서 1982년 보수적인 기민당이 집권했을 때, 헬무트 콜 총리는 동방정책의 상징이며 사민당 총재인 빌리 브란트를 공개적으로 만나 지혜를 구했다. 서독의 대동독 정책에서 초당적 협력의 역사는 배울 만하다. 미국도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되면 항상 초당적 협력을 추진한다. 1998년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대통령과 의회가 충돌했을 때, 혹은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의 출구를 모색할 때, 초당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해법을 찾았다.

▲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북핵 문제의 적절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회동한 박 대통령(가운데)과 황우여(왼쪽)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오른쪽)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그런 점에서 인수위에서 시도한 북핵문제에 대한 초당적 협력은 잘한 일이다. 다만 선진국들의 초당적 협력은 단순히 만남의 모양이 아니라,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북핵문제의 해법을 둘러싸고 의견차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당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협력의 출발이다. 우선적으로 공통점을 찾고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가능한 수준에서 차이를 줄이는 노력, 즉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 정치사에서 초당적 협력의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러나 지금이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지혜를 모으고,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사문화된 '남북관계발전법'을 실질적으로 가동하는 것도 필요하다. 2005년 여야가 초당적으로 합의해서 만든 법이 아닌가? 여야가 함께 남북관계 발전을고민하고, 토론하고, 발전계획을 작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행정부의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국회가 초당적으로 중장기적인 남북관계 발전 계획을 세우는 일, 그것이 초당적 협력의 시작이다.

말의 관리가 필요

둘째, 말의 관리가 필요하다. 외교는 말로 시작하고 말로 끝난다. 대북정책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에 주는 메시지와 국내정치적 메시지가 충돌하는 경우다. 이명박 정부처럼 남북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말이 험악해 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태도에 비판적인 다수의 국민들을 생각하면, 그것이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고, 국내정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적 언술은 일반적으로 감정을 억제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한다. 외교정책에서의 말은 선거 국면에서의 말과 다르다. 이명박 정부는 국내정치와 외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새 정부가 발표한 외교·안보 분야의 국정과제 내용에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여전히 섞여 있다. 예를 들어 선제타격과 같은 용어는 작전계획으로 검토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튼튼한 안보는 행동으로 뒷받침되는 것이지, 말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다.

말의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부처마다 말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면 국민에게도 상대에게도 신뢰를 주기 어렵다. 새 정부에서 정보실패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분석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책임감을 갖고 정보판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부처 내의 정보소통과 협력·조정 체계가 가동되어야 한다.

정부안에서 말이 일관성이 있으려면, 전략적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대북 정책의 목표를 공유해야 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전략이 있어야, 일상의 부처 간 조정이 가능해진다.

셋째, 정책은 능동적이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대북 정책은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북한이 결정한다는 말인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7.4 남북공동성명부터 2007년 10.4 합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의 중요한 성과들은 북한이 하자고 해서 한 것이 아니다. 모두 우리 정부의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을 설득하고, 협상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이다.

대북정책이 북한의 태도에 종속되는 수동적 정책이 되면, 다양한 전략적 목표를 추진하기 어렵다. 대북정책을 포함해서 외교 정책은 우리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추진되어야 한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역시 능동적인 정책개입이 아니라, 수동적이라면 도발-제재-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어렵다.

내부의 신뢰를 얻는 일부터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가 관건이다. 신중하게 능동적으로 대북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중장기적인 과제도 있고, 단기적으로 우선 추진해야 할 일들도 적지 않다. 특히 쟁점 현안에 관한 기본 입장을 우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금강산 관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산가족 상봉을 어떻게 추진할지, 5.24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현안에 관한 입장은 중장기적인 전략이 있어야 정리가 가능하다. 현재의 정책이 미래의 비전과 충돌하면,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리고 대북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의 신뢰다. 외교 안보 통일 부처의 조정과 협력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관한 철학과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대북정책은 외교정책과 더불어, 대통령 아젠다이다. 대통령의 생각이 분명하면, 제도가 없어도 정부 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혼선은 불가피하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도 중요하다. 서로 다른 의견의 차이를 존중하며, 대화와 소통으로 합의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노력하면 정책에 관한 신뢰는 조성된다. 우리 내부의 신뢰가 정책 상대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 

2013년 2월 5일 화요일

박근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시험에 들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04일자 기사 '박근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시험에 들다'를 퍼왔습니다.
북한 핵실험 정국으로 출범 전부터 도전 직면…돌파구 있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시작되기도 전에 시험대에 올랐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제재에 반발해 핵실험을 공개 언급하면서부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향후 출범할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이번 사태로 인해 '강경'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박 당선인은 4일 "북한이 공공연하게 핵실험 도발 위협을 밝히고 있는 데 대해서 많은 걱정이 든다"며 "북한은 이것을 당장 중단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오후 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로부터 긴급 안보현안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북한은 모든 안보리 결의를 지키고 도발을 중지하는 것만이 미래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평화와 발전으로 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기를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박 당선인은 이날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포드대 교수 등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 핵심은 강한 안보와 억지력을 토대로 꾸준히 신뢰를 구축해서 관계를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뤄나가자는 것"이라며 "만약 핵실험을 하게 되면, 이런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국제사회는 '이렇게 해선 절대로 얻을 게 없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이끄는 한미정책협의단 출국 전 인사 자리에서도 "'신뢰프로세스'에 관련해 궁금해 하는 분들, 유화정책으로 잘못 알고 있는 분도 있다"며 "북한의 도발 등에는 강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세 차례의 일정에서 공통된 박 당선인의 메시지는 '북한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당선인의 이날 언급은 계속된 일련의 흐름 속에 있어 더욱 주목된다. 박 당선인은 지난 1일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 접견 시에도 북한에 대해 "추가적 도발을 하지 않을까 많이 걱정된다"며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핵을 용납할 수 없고, 만일 추가도발이 있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같은 박 당선인의 메시지는 예상되는 북한의 3차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북한은 전날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통해 김정은 국방위 1위원장이 "당과 혁명 발전의 요구에 맞게 인민군대를 '백두산 혁명강군'으로 더욱 강화하고 나라의 안전과 자주권을 지켜나가는 데서 강령적 지침으로 되는 중요한 결론을 했다"고 밝혔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4일 오후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간사 김장수 의원, 왼쪽)로부터 안보 현안 보고를 받고 있다. ⓒ뉴시스

시험에 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만약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강행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현 전망은 불투명해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관측이다. '신뢰 프로세스'란 남북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에 입각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박 당선인은 지난달 16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까지만 해도 북핵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이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만큼, 인도적 지원 문제를 포함한 대화의 창을 열어두고자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캠벨과의 면담 1주일 후 안보리 제재안이 통과되고 북한이 '비핵화 포기'를 공식 선언하면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대북지원 단체들은 새 정부에 인도적 지원 재개를 촉구하고 있지만, 통일부는 오히려 개성공단 등 북측 지역으로 반출되는 물품들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4일 발표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는 '신뢰 프로세스'가 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지금 북한은 남북대화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북미 간 '그랜드 바겐'이라도 성사된다면 모를까,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까지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국장을 지낸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도 "이 국면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다"며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 (보수세력은) '신뢰 프로세스'의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며 박 당선인 측에서 대북정책 기조를 바꿀 가능성을 높게 봤다. 

더 나아가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신뢰 프로세스'나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핵 문제 해결을 교류협력과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원래 강경했다"며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최대석 인수위원의 사퇴와 청와대 국가안보실 신설을 들었다. 

앞서 최대석 인수위원의 전격적 사퇴는 박 당선인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대북정책과 관련된 신호로 해석된 바 있다. 김 교수가 지적한 것도 이 지점이다. 김창수 전 국장도 이와 관련해 "최대석 교수 같은 분도 용납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기조는 우경화된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인수위는 현재까지 최 교수의 후임자를 선임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최대석 사태' 넘어 전환 시도할까?

전문가들은 3차 핵실험 국면으로 조성된 엄중한 정세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전망하면서도, 새 정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교수는 "남북관계라는 '끈'이 있어야 북핵 위기로 인한 긴장 고조를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원론적이지만,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신뢰를 회복해 북한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창수 전 국장도 "박근혜 정부는 출발부터 새로운 남북관계 판을 짜는 것으로 설정하고, 일정한 냉각기를 거쳐서 대화가 재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북미, 북중 대화가 진행될 수 있도록 중재 역할을 해 나가고, 핵 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도적 지원 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냉각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과제로 들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더 적극적인 방법인 특사 파견을 주문했다. 백 위원은 "특사를 통한 대화의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핵실험을 막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남북관계가 국제사회의 분위기에 같이 휩쓸려 종속변수로 끝나 버리면 이명박 정부 5년 간의 실패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백 위원은 "최소한의 대화의 단초를 만들어야 한다"며 "어렵더라도 '신뢰 프로세스'를 나름대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같은 조언들을 새로운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험에 든 박 당선인과 박근혜 정부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것도 이 지점이다. 하지만 김연철 교수는 이와 관련해 "지금 정부와 같은 기조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힘들다. 진지한 고민과 국제적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움직임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곽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