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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7일 일요일

재생에너지 만드는 핵발전소


이글은 한겨레21 2013-04-01일자 제954호 기사 '재생에너지 만드는 핵발전소'를 퍼왔습니다.
[특집] 핵발전소로 건립됐지만 국민투표에서 ‘탄핵’당해 시동도 못 걸었던 오스트리아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 지금은 외벽에 태양광 패널 붙여 재생에너지 만드는 시민발전소 된 탈핵운동의 상징을 가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 핵발전소를 향하는 좁은 길을 닮아 있었다. 지난 3월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약 45km 떨어진 니더외스터라이히주 츠벤텐도르프 시내를 지나 굽이굽이 가다보니 도나우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곳엔 월성 핵발전소와 다른 결정적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핵 없는 핵발전소’라는 점이다.

애물단지 된 1조4천억원 발전소

이곳은 1970년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핵발전소 6기 건설 계획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발전소다. 1972년 오스트리아의 8개 전력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6년 만에 완공한 이 발전소는 공사비만 10억유로(약 1조4천억원)가 드는 초대형 사업의 산물이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공업 시설이 많던 이 지역의 군부대 부지에 900MW 규모의 핵발전소를 세우고 도나우강 일대에는 700MW의 대규모 수력발전소 등을 세워 중앙 유럽에서 가장 큰 에너지 단지를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핵발전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스트리아는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핵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시민 모임’이 결성되고 빈에서는 대규모 반핵 시위가 열렸다. 약 50만 명의 사람들이 핵발전소 건립 반대에 나섰다. 정부는 경제 발전을 언급하며 핵발전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격렬한 시위로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 일대가 봉쇄되자 정부는 도나우강을 통해 우라늄 연료를 옮겼다. 갈등이 깊어지자 브루노 크라이스키 총리는 핵발전 폐기 법안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출범한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의 첫 국민투표였다.

» 오스트리아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의 모습. 전광판에는 발전소 곳곳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이 만드는 전기 발전량이 표시되고 있다.


투표 결과는 총리의 예상과 달리 ‘법안 반대’로 근소하게 기울었다. 1978년 11월5일 국민투표 결과 49.53%(157만6839명)가 찬성을, 50.47%(160만6308명)가 반대를 했다. 완공된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는 시동 버튼을 누를 수조차 없게 됐다.
투표는 끝났지만 24만㎡ 부지에 지어진 츠벤텐도르프 발전소는 고스란히 남았다. 재가동에 대비해 발전소에는 200여 명의 직원이 8년 동안 시설을 지켰다. 시설 유지 비용만 5억유로(약 7200억원)가 들었다. 예정됐던 핵발전소가 문을 열지 못하자 화력발전소를 돌려야 했고, 오일쇼크(1978) 직후 전기료 폭등의 후폭풍은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메르켈, 탈핵으로 돌아서다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가 새롭게 탈바꿈한 건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건을 겪으면서부터다. 사고 직전, 운영 업체가 유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에파우엔(EVN)이라는 전력회사에 발전소를 매각했다. 중요한 부품은 독일 등의 핵발전소에 팔았다. “츠벤텐도르프 발전소는 오스트리아 역사의 일부분”이라며 매입 이유를 밝혔던 에파우엔은 부지 활용을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짜냈다. 오스트리아의 잘못된 정책을 알리는 박물관, 또는 오스트리아판 할리우드 스튜디오처럼 유명 영화 제작소를 유치하자는 논의 등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현재 이 발전소는 아이러니하게 핵발전소의 모습을 띤 재생에너지 발전소가 됐다. 이미 발전시설 부지로 허가받은 땅에는 바이오가스 발전시설 등을 설치했다. 발전소 외벽에도 태양광 패널을 붙였으며, 건물 너머에는 대학과 함께 운영하는 태양광 시설도 들어섰다. 450kW를 생산하는 이 시설은 츠벤텐도르프 지역의 150~2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시설로 지역 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시민발전소다. 1999년부터는 발전소 안에서 친환경 기업이 후원하는 음악 축제 ‘누크 페스티벌’(Nuke Festival)도 열린다. 내부의 원전 시설은 견학 프로그램이나 독일 등 핵발전소를 가동 중인 나라의 인력이 와서 교육받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츠벤텐도르프의 교훈’은 주변 마을도 바꿔놨다. 당시 탈핵 운동을 직접 경험한 주민들이 재생에너지 사업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퀴트라이버 츠벤텐도르프 시장은 “지난 10년 동안 쓰레기 재처리와 연료에 쓰이는 바이오에탄올 사업 등을 해왔으며 마을 안에는 바이오가스 시설도 있다”면서 “2020년까지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에서 공급받겠다는 전략을 우리 마을이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세웠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에서도 일찌감치 탈핵을 선언한 국가다. 유럽에서는 그리스가 1975년 지진 발생시 안전성이 낮다는 이유로 핵발전소 산업을 폐기했으며,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스웨덴(1980), 노르웨이(1984), 이탈리아(1987~90), 스위스(1990), 네덜란드(1994), 아일랜드(1999) 등이 한시적·영구적 원전 건설 금지, 가동 중 원전의 단계적 폐쇄 등을 법제화하거나 정부 정책으로 삼았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을 받은 국가는 독일이다. 러시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건의 피해를 겪기도 했던 독일은 1980년대 녹색당이 빠르게 성장했으며 1988년에는 뮐하임케를리히 핵발전소의 가동 중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2년 사민당과 연정을 통해 재집권한 녹색당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과 기존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정책을 이끌어냈다. 특히 2009년 선거에서 승리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기독민주당)는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핵발전소 수명을 평균 12년 연장하는 정책을 결정했지만,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 “후쿠시마가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에겐 안전이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탈핵 정책을 고수하기로 해 전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탈핵 선언을 한 지 35년이 지난 오스트리아의 전체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67.9%. 탈핵 11년차 독일은 21%다. 그동안 이들 국가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기까지 만만찮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긴 논쟁을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탈핵이 여전히 진행될 수 있는 건, 바로 ‘안전’이라는 가치를 가장 앞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45개 지자체장 참여한 ‘탈핵 모임’

국내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1년 뒤인 2012년 초 지방자치단체들의 ‘탈핵 선언’이 이어진 바 있다. 지난해 1월9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여 원전 1기를 줄이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으며, 지난 2월13일에는 전국 228개 지자체의 21%에 해당하는 45개 지자체장이 참여한 ‘탈핵-에너지 전환을 위한 자치단체장모임’이 출범했다. 이들은 전력 소비를 줄여 핵발전소를 대체하고 재생에너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탈핵 선언을 한 지 35년이 지난 오스트리아의 전체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67.9%, 탈핵 11년차 독일은 21%다. 그동안 이들 국가는 재생에너지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기까지 만만찮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긴 논쟁을 벌여야 했다. 그럼에도 탈핵이 여전히 진행될 수 있는 건, 바로 ‘안전’이라는 가치를 가장 앞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츠벤텐도르프(오스트리아)=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핵발전소가 안전? 그럼 대도시에 지어라"


ⓒ프레시안(최형락)

"삼척 지역 중심의 운동에 머물렀다"

박혜령 :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된 영덕·삼척 투쟁이 승리한다고 탈핵이 될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역운동이 '탈핵'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삼척 투쟁은 지역 중심 운동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있다. 어떻게 탈핵 운동으로 확장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이상호 : 동해시의 작은 교회 3개가 모여 반핵사진전이나 집회, 촛불집회도 했지만, 일회성으로 끝났다. '왜 삼척의 문제를 동해 사는 우리가 하느냐'는 생각에 갇혀 귀를 닫고 있다. 삼척의 노력에 감사하지만, 외부 사람들은 공유할 기회가 없었다.

박홍표 : 실제로 내부를 보면 고리는 고리발전소, 월성은 월성발전소의 문제가 제일 크다. 지역색이 아니라 당면 과제이다. 당면 과제를 하다가 '탈핵'의 인식에 이를 수 있다. 전국적인 탈핵 모임을 확산시키려면 오히려 당면 과제에 대해 죽어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전국의 탈핵을 삼척이 다 할 수는 없다. 시민들을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먼저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도 필요하다.

성원기 : 탈핵에너지전환교수모임에서 '탈핵과 문명 전환'이라는 주제로 원광대에서 신년 세미나를 했다. 주된 내용은 지금과 같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한다면 미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명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 대국민적으로 이뤄질 때, 탈핵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광우 :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무한정의 전기를 생산해서 쓰자는 것이 골자다. 생산·공급만이 아니라 소비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고, 핵 반대 운동을 하면서 전기 소비를 줄이는 시민들의 운동을 병행해야겠다.

백경순 : '핵이 위험한 것은 알고 있지만 핵이 없으면 전기를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대안이 있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대안 모델을 삼척에서도 적용해보면 좋겠다. 절전은 기본이다. 대안 제시를 동시에 해야 한다.

성원기 : 전기 공급은 주택용, 산업용, 상업용, 교육용 등으로 구분되는데, 주택용은 (전기 수요의) 15%. 산업용이 55%다.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기업은 여태까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산업 부문의 왜곡된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꾸려면 전기세를 현실화해야 한다.

박설희(강원녹색당 창준위 준비위원) : 삼척 이외의 강원 지역에서는 '삼척 투쟁'이 탈핵 이슈라기보다 김대수 시장을 향한 주민반대운동의 측면으로 부각되었다. 아직 탈핵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탈핵에 대한 연대틀이 있다면 각 지역에서 결합하고 꾸준히 소통하면서, 핵에너지의 위험성과 함께 에너지 소비 구조와 지역 에너지 자립 문제 등을 논의하고 탈핵 이후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공유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붕희 : 핵발전소가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데, 5000만 인구가 외면하고 있다. 사용자 부담 원칙을 강조해서 '안전하다면 대도시에 지어라', '사용자들이 생산하라'라고 말해야 한다. 왜 소수자들에게 강요하는가. 그래야 사용자들에 대한 규제도 마련될 것이다.

박혜령 : 영덕도 주변의 대구·경북 지역이 이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힘들다. 삼척의 경우 타 지역의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연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는가?

이광우 : 주변 지역을 끌어들이기 위한 삼척의 역량이 부족하다. 금년부터라도 삼척이 연대체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야 하겠다.

박홍표 : 삼척투쟁위가 만들어진 지 2년 반이나 됐지만, 전문성과 기술력에 한계가 있고 이광우 실장도 시의원이 되어 여력이 없다. 사람들을 엮어낼 전문적인 사람이 내부에 없어 걱정이다.

신규 부지인 삼척과 영덕의 연대

박혜령 : 한국의 핵정책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지역 안에서 연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이 다른) 삼척과 영덕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이광우 : 5월 정도에 여력이 된다면 삼척 사람 5명, 영덕 사람 5명이 '(지정)고시 해제하라'는 깃발을 걸고 해안선을 따라 도보 투쟁을 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박홍표 :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이야기를 나눈다면 영덕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각 지역에서 싸우면서 동시에 그들의 관심을 계기로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협의체를 만들자.

이붕희 : 핵발전소가 있는 울진도 함께하면 좋겠다.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들만의 네트워크도 만들어서 이슈를 크게 만들 필요도 있다.

성원기 : 영덕과 삼척이 어떻게 탈핵 운동을 해나갈지 모색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한 지역의 문제,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지구적인 문제다. 우선 지역부터 연대하자.

이옥분 :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영덕과 삼척이 신규 부지로 함께 선정된 만큼 힘을 합치자.


 /(탈핵신문)

2012년 6월 27일 수요일

핵발전소 안은 부산의 미래, 핵폭탄 피해자는 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27일자 기사 '핵발전소 안은 부산의 미래, 핵폭탄 피해자는 안다'를 퍼왔습니다.
[초록發光] 탈핵 운동과 원폭 피해자는 만나야 한다!

30년이 조선 왕조 500년만큼 된다는 다이내믹 한국사회에서 한 달 전의 기억을 복기해가며 글을 쓰려니 여러 상념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굵직한 사건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새로 들이닥치는 일이 반복되니 정말 중요한 뉴스도 그 이면을 살피기 전에 다음 정보들에 밀려 잊히고 있었다.

통장 잔액이 3000원 밖에 없었다던 60대 노부부가 시신 기증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이혼 소식과 나란히 뉴스 목록에 오르는 혼돈스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종종 일말의 통제 감각과 윤리적 판단력까지 잃어버리거나 유보시킨다. (당장 나부터 자주 그런 상태가 됨을 고백하련다. 뉴스 읽기를 주저하고 그저 눈에 띄는 헤드라인만으로가슴을 쓸어내리며 뉴스 창을 떠나버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부산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나에게 존재론적 위협으로 다가온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노력들이 온갖 뉴스의 홍수 속에 끼어 가끔씩 단신 뉴스 정도로만 취급되는 상황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절망을 느끼게 만든다.

지난주부터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는 "고닥폐(리 1호기 치고 쇄)"라는 희한한 이름의 길거리 카페가 낮 동안 열리고 있다. 전국 70여 개 단체로 구성된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집중 행동'의 일환으로 주중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탈핵을 외치는 사람들이 시민을 만나기 위해 노상카페를 연 것이라고 한다.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해 오늘 카페를 어떤 단체가 지켰고, 카페에는 누가 방문했고, 모금은 얼마가 이루어졌는지 소식들이 떠돈다. 길거리 카페와 선전전의 결합은 진입 장벽이 낮고, 인증샷 놀이하기 좋고, 또 그만큼 온건하다. 바로 그 착한 세련됨 때문에 참가자들은 안전한 거리에서 즐겁게 탈핵의 목소리에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그렇지만, 우리 좀 솔직해져 보자. 탈핵을 위해,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해, 우리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맞나? 6월 29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점검 결과 발표까지 2주라는 기한을 못 박고 시작된 탈핵 카페가, 착한 논평이, 탈핵을 소재로 한 문화 행사가 '할 만큼 하고 있다'는 자기 확인의 알리바이를 축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운동이 굳이 엄숙하거나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그러함에도 노란 우산과 말간 해바라기 그림을 들고, 전기 자급률 3퍼센트 미만의 서울에서 탈핵을 노래하는 모습은 너무도 온건해서 공명(共鳴)하기 어렵다. 가슴을 뜨겁게 하지는 못해도 잠시라도 덜컹 삶의 무게와 맞닿는 진정성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탈핵 운동이 더 많은 현장과 더 두텁게 접촉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이자 애초의 설계 수명을 이미 4년 이상 넘겨버린 고리 1호기는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운전된 것을 순전히 "운"이라 할 만큼 문제덩어리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벌어졌던 크고 작은 핵발전소 고장 및 사고의 20퍼센트가 고리 1호기에 집중된 까닭이다. 그래서 폐쇄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반핵, 탈핵 진영에서는 고리 1호기 폐쇄를 탈핵을 위한 첫 단추로 받아들이고 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내 마음의 한 곳에서는 온건한 참여와 몇몇 국회의원들의 힘을 지렛대 삼아 '고리 1호기 폐쇄'라는 정책적 합의가 '덜컹' 이루어질까봐 약간 걱정도 된다. 더 많은 현장과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힘에 근거하지 못한 '핵발전소 폐쇄 결정'은 미래세대나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예방적 조처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또 다른 경제성 논리로 수렴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일방적인 안정성 주장과 핵발전소 확대 정책 기조를 봤을 때, 이러한 정책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도 정말이지 경천동지할만한 진전일 것이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탈핵 운동도 더 많은 사람이 딱딱해진 가슴 빗장을 열고 윤리적 감각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옳을 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롭지 못한 핵으로 인한 피해를 불공정하게 감당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해당사자들과의 더 많은 접촉 및 그들에 대한 윤리적 태도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당사자들로는 핵발전소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지역 주민들, 핵발전소의 노동자들 그리고 핵 쓰레기의 부담을 안게 될 미래 세대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 세 집단 중 한국에서 탈핵의 직접 이해당사자로 탈핵 진영이 접촉해 볼 만한 집단은 현재로선 찾기 어렵다. 핵발전소 인근의 지역 주민들은 지역 발전 기금과개별 보상이란 단물에 취해 핵 발전의 안전 강화 조처를 요구할 뿐이고, 한국에서 핵발전소들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실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래 세대? 단군 이래 하루 270만 원씩 매일매일 써야 다 쓸 수 있다는 2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국민 세금을 단 4년 만에 강바닥에 처넣는 나라에서 미래 세대는 여전히 이해당사자로 거론되기 어려운 범주의 비가시적인 집단이다.

그렇다면, 탈핵 진영은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구체적인 연대 없이 순치되어 온건한 탈핵 노래만 부르고 있어야 할까? 최근 다시 공사 재개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밀양의 주민들이 있고, 그리고 오늘 소개할 피폭 피해자들이 있다.

한 달 전인 5월 26일(토)에 부산 민주공원에서는 지난 2005년 35세의 나이로 타개한 원폭 2세 환우회 초대회장 故 김형률 씨의 추모제가 열렸다. 라는 책을 쓴 일본인 이치바 준코에 의하면,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 총 69만 명 중 조선인은 약 7만 명이나 되었다.

전체 피폭자 중 10퍼센트나 되는 비율인데, 더 주목해야할 점은 전체 피폭자 중 사망자가 약 3분의 1 정도인 반면 조선인의 경우엔 피폭자의 절반 이상의 사망하였다. 식민지 2등 국민으로서 조선인은 적절한 보상과 원호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존자 중 해방 후 귀국한 조선인들이 오랫동안 가난과 각종 질병에 고통당해왔는데, 김형률 씨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증명하듯 피폭의 후유증은 다음 세대로까지 전달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법적, 도덕적, 재정적 부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피폭 후유증의 2세 대물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김형률 씨는 생전에 병약한 몸을 이끌고 한국의 원폭 2세 환우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었다.

핵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과 무지는 군사적 이용으로서의 핵무기와 평화적 이용으로서의 핵 발전을 철저하게 분리해 왔다. (물론 이러한 분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미국과 일본에서부터 유래되고 각인된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그에 대한 대응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핵전쟁에 반대하는 피폭 피해자 운동은 역사의 영역, 인권과 평화 운동의 틀 안에, 핵 발전에 반대하는 탈핵 운동은 대부분과 환경 운동을 위시한 시민 운동의 틀 안에서 구분된 채 이루어져 왔다. 지인들의 기억 속에서 김형률 씨 역시 생전에 "핵발전소"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7주기를 맞이한 올해의 추모제에서 김형률 씨를 추모하고 반핵에 동조하는 한일 양국의 참가자들은 "피폭 피해자들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세워졌더라면 후쿠시마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피폭자와 환우회의 고통이 제대로 기록되고평가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재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노동자와 주민과 가장 주요하게 후쿠시마의 어린이들이 그 고통의 전철을 다시금 밟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들과의 두터운 만남은 안전한 거리에서 착한 구호를 외치는 온건한 캠페인에 진실과 진정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직접 피폭자와 피폭 2세 환우들에게서 지속되는 고통과 생활상의 고단함을 직접 맞닥뜨리고 핵 발전과 핵무기가 결국 같은 뿌리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 우리의 탈핵의 언어도 보다 진지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생전에 김형률 씨가 지인들에게 보낼 때마다 삽입했다는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구는 그를 추모하는 평전의 제목이 되었다. 가장 소외받는 자의 인권이야말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인권이다. 탈핵이 시민의 언어를 넘어 민주주의 일반의 언어, 인권의 언어, 평화의 언어와 교호하면서 더 넓게 퍼져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 진행하는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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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은희 부산대학교 HK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