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2-12-18일자 기사 '공영방송의 '인적 청산'을 위하여, 투표!'를 퍼왔습니다.
[대선보도, 비평으로 뚫다]대선 이후는 공영방송을 고민해야 할 때

18대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MBC와 KBS가 보여준 공영방송의 편향적 보도 행태는 사상 최악의 대선보도로 평가할만 하다. 저녁 9시 시보가 끝나기가 무섭게 전두환 대통령의 소식부터 전했던 “땡전 뉴스”보다 더 최악이란 말인가? 그렇다. 그 시절에는 “엄혹한 군사독재시절”이라는 최소한의 핑계가 있었다.
지금은 그 핑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공영방송은 주체적으로 편향적 보도를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은 공영방송 자신에게 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중립(의 모양새)을 지켜왔던 공영방송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처음으로, 제 발로, 어느 한 진영의 선수로서, 주도적으로 활약했다. 특정 정당의 논평과 공영방송의 기사가 구분되지 못했다. 남 탓 할 수가 없다.
특정후보를 편 들며 정치적으로 개입하려했던 나쁜 보도의 수많은 예를 여기서 새삼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많은 지면(가령, 언론연대의 대선보도비평이나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선보도모니터링을 참고하라)을 통해 소개되어있기에 이를 다시 적는 것은 지면의 낭비라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는 왜 공영방송의 대선 개입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 공영방송 스스로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것으로 논의를 집중한다.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결과의 원인을 MB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낙하산 사장 투하와 그에 따른 정권의 언론장악이 사실무근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는 행태적 원인은 될 수 있어도 구조적 원인은 될 수 없다. A와 B의 다툼에서 누가 먼저 폭력을 사용했는가도 중요하지만 폭력을 야기한 A와 B 사이의 채무관계나 치정관계를 밝히는 일이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MB의 공영방송장악은 공영방송이 어떻게 MB의 언론장악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가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공영방송은 MB의 출현을 기다렸다고 보는 편이 옳다. 시청률을 인상하기 위해, 혹은 권력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지레로 삼기 위해 공영방송은 오히려 MB와 같은 인물의 도래를 반겼다. 기자 출신 정치인을 뜻하는 폴리널리스트란 말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진단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권언유착은 언론의 자발적 호응이 뒤따르지 않고는 결코 견고하게 유지될 수 없다.
둘째로, 흉내에 그쳤던 인적청산의 문제다. 우리는 지난 5년간 시대의 뒷켠으로 퇴장했으리라 여겼던 구태 언론인의 부활을 목도했다. 전두환 대통령을 민족의 지도자로 칭송한 기자가 공영방송의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은 그 대표적 예이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그는 당시의 정치적 보도에 책임을 지고 언론계에서 퇴출되었어야 할 인물이었다. 비단 수장뿐만이 아니다. 구태 수장이 등극하니 그가 임명하는 간부도 초록이 동색이다.
불분명한 과거사의 정리로 촉발된 한국 현대사회의 비극이 공영방송에서도 되풀이되어 나타났다. 궁금한 것은 왜 공영방송이 지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며 이런 인물들을 거르지 못했냐는 것이다. 어설픈 동료의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인지상정 때문이었는지, 혹은 이미 기득권을 가진 그들에게 감히 쓴 소리를 못했기 때문이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어찌 되었든 분명한 것은 성역 없는 취재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가 스스로 자신의 조직 내에서 성역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기자를 기사로서 평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셋째로 언론인의 샐러리맨화와 영혼 없는 언론인의 일반화를 들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적 관계는 대체로 임노동 관계로 구성된다. 샐러리맨은 임노동 관계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임노동관계가 건조하게 돈을 매개로 맺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생산물과 그에 따른 임금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스스로의, 조직의, 사회의 몫이다.
뉴스가 자판기 상품이 아니고 뉴스란 다름 아닌 기자 자신의 시각이 반영되는 상품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기자의 샐러리맨화는 스스로의 노동과 노동 생산품에 대한 책임 부정이자 영혼 없는 기자로서의 자기비하에 불과할 뿐이다. 기자 또한 여느 임노동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은 겸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권한은 갖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의 발로다.
여전히 공영방송에 거는 사회적 기대는 차고 넘치는 반면에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언론인은 점차 늘고 있다. 과연 공영방송으로서 KBS와 MBC가 자신의 조직원에게 어떠한 자긍심을 전해주었던가 진지하게 반성할 대목이다.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영방송의 적극적 권언유착, 인적청산의 부재, 조직 정체성의 약화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극적으로 도드라졌다. 지난 5년간 MB의 이름 때문에 가려진 공영방송의 맨살이 가감 없이 드러난 셈이다. 스스로의 개혁을 거부하는 수구적 발악은 극에 달했다. 그러므로 정권이 교체되면 공영방송 역시도 시나브로 제 역할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는 헛된 희망고문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누가 정권을 잡는가와 상관없이 공영방송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해,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고, 과거 정치적 행태를 보였던 인사를 조직으로부터 축출하며, 공영방송으로서의 조직 정체성을 견고히 다질 수 있을 때에만 공영방송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새로운 정권의 탄생은 비록 결정적이지 않을지언정 공영방송을 개혁하기 위한 작은 모멘텀은 될 수 있다. 공영방송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모아져야 한다. 이번 대선 보도를 통해 확실해진 것은 공영방송 스스로가 이를 수행하기에는 지나치게 먼 길을 돌아갔다는 점이다.
홍성일 /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 mediaus@mediau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