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월드컵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월드컵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8월 3일 금요일

우리 안의 ‘탐욕스런 국가주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02일자 기사 '우리 안의 ‘탐욕스런 국가주의’'를 퍼왔습니다.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정윤수의 안과 밖
 TV중계는 가봉 축구 비하하고 
누리꾼은 상대선수 신상 털고 
선수들은 승자의 내민 손 외면 
메달지상주의 포로가 되지말자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때 일이다. 어느 방송국이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를 소개하면서 ‘상아빛 아름다운 해안의 나라’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듣는 순간, 진짜로 귀를 의심하면서 그들이 혹시라도 그 나라에 가지 않기를 빌었다. 만약 코트디부아르 사람을 만나서 그런 얘기를 했다가는 외교 문제까지 발생할지 모를 일이다. 코트디부아르는 19세기 제국주의 침탈의 현장이고 그 해안은 서아프리카를 지옥으로 만든 상아 무역의 전진 기지였다.그런 일이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의 스포츠 저널리즘은 해당 종목의 미학이나 출전국의 역사와 현황을 거의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 중계를 하고 기사를 쓴다. 축구 대표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중계하면서 캐스터와 해설자는 가봉 선수들을 은연중 낮춰보며 말한다. 상대 팀 전력 분석이 미비한 상태에서 ‘기나긴 90분’을 채우려면 아무래도 약간은 조롱하는 듯한 그런 언어를 구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축구 경기는 세계사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풍부한 자원의 나라이며 아프리카에서는 국민 소득 상당히 높고 어려운 사정에서나마 복지 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가봉과 그 대표 선수들을 허둥지둥 하는 팀 정도로 90분 내내 낮춰 보는 것은 ‘역오리엔탈리즘’의 단면이다. 쉼없이 그들은 ‘좋아요’를 남발했는데, 나는 페이스북의 ‘추천’ 메뉴를 무한반복으로 읽는 줄 알았다.8강전에서 영국과 맞붙게 되었는데, 누군가는 아무리 축구 종가라고 해도 라이언 긱스처럼 국가도 부르지 않는 선수가 있으니 우리가 애국심으로 단결하면 승산 있다고 한다. 나는 우리 팀이 이길 수도 있다는 이유를 3천가지 쯤 알고 있는데 그 중에 국가를 부르느냐 안 부르느냐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웨일스 출신의 긱스가 왜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를 부르지 않는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경기 그 자체의 원리에 미학에 충실하려는 시도도 아직까지는 부족해 보인다. 선수와 심판과 관중이 고도의 긴장 속에서 침묵을 지켜야 하는 양궁 경기를 중계하면서 어느 캐스터는 궁수가 시위를 놓는 순간에도 쉼없이 말을 한다. 귀담아 들을 얘기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잘 했어요, 괜찮아요, 좋아요 같은 공허한 수사가 새벽의 모기처럼 성가시게 울어댄다. 펜싱의 남현희 선수를 중계하면서 어느 캐스터는 선수와 심판과 관중이 모두가 ‘1초’의 정적을 지키고 있는데 그 현장에서 혼자 ‘한 발 더!’라고 크게 외치고 나서는 숨죽이던 관중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의욕 넘치게 말을 한다. 그 갑작스런 외침 때문에 선수들의 심리적 평형이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전문 중계팀이 이런 상황이니 일부 네티즌들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 되었다. 유력 대선 후보가 군사 쿠데타를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나라,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양민을 학살한 자가 특급 경호를 받으며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는 나라. 요컨대 학살자가 버젓이 행세하는 나라라서 그런지 독일 여자 펜싱 선수에 대하여, ‘나치의 후예 같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도 그 선수의 페이스북 등 사적 공간을 침범하면서까지 말이다.물론 신아람의 ‘멈춰버린 1초’는 수 년 동안의 훈련에 대한 보상치고는 억울한 시간이었다. 그 순간 브리타 하이데만 선수가 조금은 사려깊게 행동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조준호를 이긴 일본 유도의 에비누마 마사시 선수가 심판들이 선물한 잔인한 판정번복 승리의 잔을 차마 마실 수 없어서 망설였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신상을 털고 나치의 후예 운운하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고의적으로 패하는 경기를 해서 충격의 실격패를 당한 우리 배드민턴 선수들은 어떻게 대할 것이며, 동메달을 놓친 아쉬움 탓인지 프랑스의 제브리 에망이 내민 손을 마지못해 툭 치고 관중에게 인사도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간 정다운 선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지금 세계적 차원에서 올림픽은 극소수의 선수들이 수년에 걸쳐 자주 맞붙어서 발생한 기량의 상향 평준화와 이 쌍방 맞겨루기의 미디어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규칙 개정에 의하여 극심한 혼돈을 겪고 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올림픽은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려는 짜릿한 승부에의 탐닉이 과도한 국가주의와 맞물리면서 ‘신성한 올림픽 정신’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아니, 원래 올림픽에 그런 정신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올림픽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2011년 12월 10일 토요일

조광래 감독 전격 경질 시기와 방법 적절했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2-09일자 기사 '조광래 감독 전격 경질 시기와 방법 적절했나?'를 퍼왔습니다.

조광래 감독.

조광래 감독이 경질되었다. 한마디로 기습적으로 단행된 경질이었다. 당사자인 조광래 감독 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충격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허정무 감독의 뒤를 이어 A대표팀(이하 대표팀)감독에 오른 조광래 감독은 1년 남짓한 길지 않은 시간을 뒤로 한 채 야인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조광래 감독의 시작은 긍정적이었다. 스페인과 같은 짜임새 있는 짧은 패싱게임을 표방하며 대표팀을 꾸린 조광래 감독은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정점은 바로 아시안컵이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짧고 정확한 패스를 기반으로 전방의 공격수들이 유기적으로 위치를 변화시키며 상대 문전을 위협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목표였던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조광래 감독은 박수를 받았을 만큼 경기력은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한 박지성과 이영표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면서 경기력은 추락했고,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패싱게임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여기에 선수차출과정에서 불거진 협회와의 불협화음, 몇몇 특정 선수에게 집착하면서 불거진 경기력 문제, 무리한 포지션 파괴가 이어지면서 한일전 참패는 조광래 감독에게 씻을 수 없는 오점이었다.

더 심각한 것은 대표팀 경기력에 대한 문제인식이 너무 안이했다는 것이다. 경기 직후 쏟아아지는 각계의 충고와 비판을 너무 쉽게 흘려버렸고, ‘돌아 보겠다’, ‘실력있는 K리거를 선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았다.

결국,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이하 3차예선)에서 레바논에 1-2로 패하면서 최종예선진출도 장담할 수 없게 된 상황에 직면하면서 감독교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3차 예선을 통과 한다 해도 일본과 호주가 기다리고 있는 최종예선에서 조광래 체제로는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조광래 감독이 보여준 선수선발과 선수활용 측면에서 보면, 그의 경질은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 시기와 방법에서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되짚어 보아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이 장단점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한국축구를 잘 아는 것과 감독으로써의 역량은 별개다. 검증도지 않은 감독의 섣부른 선임은 지금 시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3차 예선 최종전을 남겨 놓은 현시점, 과연 적절한 시기인가? 

3차 예선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최종예선 진출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다. 장거리 중도원정에서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았고 해도, 조광래 감독이 상대해야 하는 팀들은 객관적으로 한수 아래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달랐다. 승점 10점(3승 1무 1패)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2위 레바논이 승점 10점, 3위 쿠웨이트가 승점 8점으로 최종전 진출을 예측하기 쉽지 않아졌다. 한국은 쿠웨이트 전에서 무승부 이상만 기록하면 최종예선 진출이 가능하지만 패한다면 그대로 탈락이다.

쿠웨이트 전은 2월에 치러질 예정이다. 남은 시간은 두달이 안 된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새로운 감독이 부임해서 선수들을 구성하고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경질 된 조광래 감독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독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쉽게 생각하면 기존 조광래 감독 체제의 전술과 전략을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자신의 축구스타일을 팀에 접목시키기도 전에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면, 이후 대표팀 운영에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어 시기의 적절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최종예선과 이후 과정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최소한 쿠웨이트 전까지는 기회를 주었어야 한다. 그것이 기존 감독이나 새로운 감독 모드에게 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해임 결정과 통보, 과연 최선이었을까?

조광래 감독의 경질과정에서 빚어진 절차와 방법에서도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한 나라의 국가대표 감독을 해임하고 새로 선임하는 과정이 일방적이고 독단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은 실망스럽다. 그것도 감독인선을 관장하는 기술위원회의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최종전을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협회는 경질을 결정하고 새로운 감독후보까지 물색하고 있었다는 것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계약의 당사자인 협회와 조감독은 최소한의 의사소통은 있어야 했다.

7일 오후 내내 인터넷에는 쿠웨이트전을 대비해 조광래 감독의 구상들이 스포츠뉴스를 장식했다. 경질이 보도 된 저녁시간에도 그 기사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하는 본인이나 갑작스런 뉴스를 접한 팬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유력한 후보군까지 언급되면서 조광래 감독의 배신감은 컸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축구를 이끌어가는 축구협회에서 이렇게 일을 처리해야 했을까? 어떤 이유에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후임 감독 선임,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해야..... 

이래나 저래나 결정은 이미 났다. 뒤집을 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감독의 선임이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유력한 후보군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독의 경질을 결정하고 물밑 작업을 벌인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그 만큼 검증시간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왕 새로운 감독으로 변화된 한국축구를 원한다면 좀 더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후보군을 찾고 검증작업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축구를 잘 안다는 것은 짧은 기간 선수들을 파악하고 팀을 꾸리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경기력차원에서는 결코 긍정적일 수 없다.

지한파라는 이유로 우리 곁을 지나간 수많은 외국감독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이 정도면 국내파 감독이 못할 것 없다’는 자조 섞인 탄식뿐이었다. 국내감독, 물론 능력입증이 수월하고 실력파 감독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은 프로구단에서의 성적과 지도력이 국가대표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일단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선수를 발굴하고 활용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의 차이는 확연히 있다.

달라진 세계축구의 흐름을 이해하고 지금껏 우리가 구사했던 축구스타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외국감독들이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물론, 하나의 대안측면에서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현실에 안주하는 섣부른 판단으로 한국축구의 100년 대계를 거스르는 일이 없길 바라본다.

전제은 축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