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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7일 목요일

‘세계의 공장’서 기업 엑소더스…식어가는 중국 성장엔진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06일자 기사 '‘세계의 공장’서 기업 엑소더스…식어가는 중국 성장엔진'을 퍼왔습니다.

지난해 7월, 폐업을 결정한 중국 광둥성 둥관시의 수이완구유한공사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하나둘씩 빠져 나오고 있다. 저임금에 기대왔던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고 미국과 유럽시장이 악화되며 중국 경제의 중심지였던 광둥성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둥관/신화 뉴시스

위기 불똥 튄 광둥성 르포유럽·미국시장 위기로 수출 급감인건비는 3년만에 두배로 올라외국기업, 동남아 등으로 이전

첨단산업 위주 체질개편 모색외자유치 등 성과는 지켜봐야“중국 상황이 계속 이렇다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최대의 수출 산업단지인 광둥성 둥관, 한 한국계 전자제품 기업의 간부는 ‘중국 엑소더스’를 염두에 두고 최근 필리핀에 공장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둥관에서 손꼽히는 탄탄한 기업 중 하나인데도, 유럽과 미국 시장의 위기로 수출 주문이 급감하고 있는데다 임금을 비롯한 생산비용이 너무 가파르게 올라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간부는 “우리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인데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주문이 20~30% 줄었고, 주변 기업 중에는 50%씩 준 곳도 많다”며 “알고 있는 전자업체 가운데 5곳이 필리핀으로 공장을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2~5일 둘러본 광둥성 곳곳에선 최근 유럽발 경제위기 속에 ‘세계의 공장’이 겪고 있는 고통이 피부에 와 닿았다. 세계 의류·신발·완구 등 노동집약적 산업들은 이미 버티지 못하고 광둥을 떠나기 시작한 지 오래고, 비교적 상황이 좋던 전자 등 첨단 기업들마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잘나가던 전자산업도 최근에는 스마트폰 관련이 아니면 다 어렵다”고 기업가들은 말한다. 중국 경제의 핵심인 광둥성의 ‘엔진’이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2011년 광둥성 국내총생산(GDP)은 5조2673억위안(8332억달러)으로 중국 전체의 11%를 차지하며, 1인당 GDP(7819달러)는 98년 이래 부동의 1위다. 특히 대외무역 규모는 9134억달러로 중국 전체의 25%를 차지하는 수출 중심지이자 ‘세계의 공장’이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되고 그나마 지난해 나아지던 미국 경제가 다시 꺾인 것은 직격탄이 되고 있다. 1~4월 광둥성의 수출액은 1686억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5.5%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증가율 32.8%에 비하면 6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같은 기간 광둥성 기업들의 이윤은 전년 동기 대비 21.1% 감소했다. 이는 최근 한국 등 외국기업들의 ‘엑소더스’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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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럽발 쇼크 이전부터 이미 광둥성에선 중국 소기업들이 잇따라 도산하며 ‘저임금에 기댄 성장’의 한계를 드러냈다. 둥관 지역의 경우 2009년 540위안이던 최저 임금이 1150위안으로 불과 3년 만에 2배로 올랐다. 한 기업의 재무담당자는 “인건비 상승뿐 아니라 중국 정부가 외국기업에 주던 혜택이 다 없어졌고, 위안화의 급격한 절상으로 인한 환차손까지 겹겹의 타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최근 유럽발 쇼크는 이런 광둥성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느긋했던 광둥성도 다급해진 모습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도했던 광둥은 최근 몇년간 ‘제조 광둥에서 창조 광둥으로’,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騰籠換鳥)는 정책을 내걸고, 중국의 새로운 성장모델을 모색하면서 산업 고도화 정책에 나섰다. 이 정책에 따라 지난해 말까지 광둥성에서 퇴출된 기업은 7044개, 도태돼 문을 닫은 곳은 7만2200곳에 이른다. 광둥성 정부는 대신 1만4700개의 기업을 새로 유치했고 신규 유치 기업 가운데 하이테크 제조업과 첨단 서비스업 비중이 55%에 이른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이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수출과 투자 유치의 위기가 뚜렷해진 것이다. 광둥성은 얼마 전까지 ‘경쟁력 없는 기업은 나가라’는 느긋한 태도로 노동집약적인 기업 퇴출에 적극적이었지만, 기업들의 ‘광둥 탈출’ 속도가 너무 빨라지자 당황하는 분위기라고 기업가들은 전한다. 한 기업가는 “지난해 여름 중국 중앙정부에서 둥관에 조사팀을 파견해 기업 이전 상황에 대해 조사를 했다”며 “그 뒤 둥관지역에서는 임금 인상 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정젠룽 광둥성 대외무역경제합작청 부청장은 “국제 수요가 줄고 생산원가가 오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성 정부 간부들이 올해 25차례 신흥시장 국가를 방문하기로 하는 등 신흥시장 개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5일, 마카오가 손에 잡힐 듯 마주보이는 광둥성 남부 주하이의 섬 헝친다오는 106㎢의 섬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었다. 몇년 전까지 양식장이 즐비한 어촌이었던 섬이 금융·첨단과학기술산업 중심의 특구로 변신중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이곳을 상하이의 푸둥과 톈진의 빈하이를 잇는 3번째 국가급 개발신구로 지정했다. 2020년까지 1000억위안을 투자해 중국 경제의 핵심인 광둥성과 마카오, 홍콩을 통합해 ‘신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개발구 관계자에게 외자 유치 실적을 묻자, “홍콩·마카오 자본 외에 아직 확정된 외국 투자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 경제 중심지의 화려한 겉모습 뒤로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둥관·광저우·주하이/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2012년 3월 26일 월요일

“JMS 테러,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글은 시사인 2012-03-26일자 기사 '“JMS 테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퍼왔습니다.
자수를 앞둔 ‘테러범’을 만났다. 독실한 JMS 신도였던 그는 도피 생활 9년 만에 “정명석 총재는 구세주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구세주가 아니었다.” 

부리부리한 눈매, 날카로운 턱, 짧게 자른 머리…. ‘테러리스트’답게 심상찮은 풍모를 지닌 민종운씨(36)가 얕은 한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그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상 보복범죄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 중이다. 도피 생활 9년 만에 깨달은 것은 자신이 20여 년 가까이 구세주로 모시던 이가 사이비 교주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었다. 검찰에 자수하기로 결심했다는 민씨를 3월13일 만났다. 

민씨가 말하는 구세주는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다. 기독교 선교 단체를 표방하며 1982년 출범한 JMS는 1990년대부터 정 총재의 성 추문으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민씨에게 정 총재는 가족이나 생명 이상이었다.


ⓒ시사IN 조우혜 JMS 반대자를 폭행하고 9년간 도피 생활을 한 민씨.

사건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홍콩 이민국 경찰은 반(反)JMS 그룹인 ‘엑소더스’ 회원들의 제보로 홍콩에 숨어 있던 정명석 총재를 체포했다. 여성 두 명과 누워 있던 정 총재가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 찍힌 영상은 한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이후, 정명석 총재는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신도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민씨는 정 총재가 “(엑소더스 회원) 집 앞에서 한 달간 번데기·호떡 장사를 해봐라. 한번은 사먹지 않겠느냐. 독을 넣으면 되잖아”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JMS 신도 남성 네 명이 당시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엑소더스 사무실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회원 두 명을 폭행했다. 우연하게도 그 현장에 신호철 편집위원(당시 기자)이 있었다. 취재 중이던 신 전 기자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폭행 사건은 계속됐다. JMS 교단회장이던 문 아무개씨와 자칭 JMS 일인자 김 아무개 목사가 몇몇 신도에게 엑소더스 회원을 ‘손봐줄 것’을 지시한 것이다. 2003년 10월 김 목사는 민씨에게 “아직 가정이 없는 데다 초범이니, (감옥에서) 얼마 안 살고 나올 수 있다”라며 당시 전북 전주에 거주하던 엑소더스 회원 김형진씨(당시 26세)를 ‘처리’할 것을 교사했다. 

얼마 후, 충남 금산 JMS 본부에서 만난 JMS 경호부 소속 이영호씨(가명·당시 26세)도 김 목사와 같은 부탁을 했다. “우리 선생님은 구세주다. 아버지보다 더 위대하신 분인데 가만있을 수 있느냐.” ‘전주 테러’에는 이씨와 민씨를 비롯한 신도 다섯 명이 가담했다. 

2003년 10월26일 밤 8시, 사건은 벌어졌다. 이들은 김형진씨가 살던 빌라 안과 밖에서 기다리던 중 김씨가 집에 들어서자 파이프로 머리를 가격했다. 손과 얼굴에 피가 낭자했다. 이웃 주민과 눈이 마주친 JMS 신도들은 빌라를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이씨가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실 거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씨가 입은 부상은 다행히 전치 3주에 그쳤다. 당시, JMS 내부에서는 이씨가 정 총재의 직접 교사를 받은 장본인이며 ‘전주 테러’는 경호부를 통해 은밀히 내려온 지시라는 소문이 돌았다. 

민씨의 도피 생활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민씨가 본래 살던 광주 지역 목사들은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으니 숨어 지내라고 지시했다. 피의자 넷은 인천 영종도 원룸에서 석 달간 합숙했다. 광주로 돌아온 뒤에는 가명을 썼다. 그때부터 2012년 현재까지 9년째 민씨는 민종운이 아닌 ‘정주만’으로 살아왔다. 2004년 9월, 느닷없이 해외로 도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김치공장·떡공장을 전전했다.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숨어 다녀야 하는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폭행 사건에 가담한 이들에게 특혜

2006년 5월, 공범 이씨가 긴급 체포됐다.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씨가 경찰에 공범들의 인적사항을 말하면서 민씨를 비롯한 피의자 세 명에 대한 지명수배도 시작됐다(나머지 한 명은 이씨가 이름을 달리 밝혀 수배에서 제외됐다). 서른 살이던 민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안양·충주·서울 등지 교회를 떠돌았다. 통장과 휴대전화, 신분증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기도는 빼먹지 않았다. 대학부 성경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민씨는 “도중에 잡혔다간 주님(정 총재)께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 시간만 지나면 JMS에서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반JMS 폭행 사건에 가담한 이들에 대한 보상은 컸다. 2003년, 엑소더스 사무실 난입 주도자 김 아무개 목사는 대형 교회 목회자로 발령받았다. JMS 내부에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회원들의 상당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전주 테러’ 피의자 가운데 유일하게 복역을 마친 이씨도 현재 JMS 2인자 정 아무개씨의 최측근 경호를 맡고 있다고 한다. 


ⓒ시사IN 윤무영 2003년 서울 방배경찰서 앞에서 반JMS 단체 회원들과 JMS 신도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전주 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사흘 후 발생한 ‘용인 테러’ 가담자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JMS 신도 몇몇은 경기도 용인에 살던 엑소더스 회장 김도형씨를 찾아 나섰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도형씨 아버지 김민석씨(당시 63세)를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김민석씨는 얼굴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용인 테러’ 피의자 다섯 명은 징역 4∼5년을 선고받았다. 여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복역 중에 JMS로부터 매달 300만원가량을 받았다고 한다. 범행을 주도한 장 아무개씨는 출소 후 JMS 인사국장을 거쳐 현재 서울의 한 대형 교회 목사로 있다. JMS가 의도적으로 보복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민씨는 “‘용인 테러’는 교단회장 문 아무개씨의 지시로 윤 아무개씨가 실제 조직했다. 또 ‘전주 테러’는 김 아무개 목사가 지시했다. 그러나 수사에서 이들의 이름은 아예 빠져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일종의 꼬리 자르기로, 현장에서 범행에 가담한 평신도들만 죗값을 치렀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JMS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모든 폭행 사건은 신도들이 우발적이고 자발적으로 자행한 일이다. 위대한 영도자에게는 원래 안티가 생기기 마련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9년간 민씨는 3∼6개월씩 여관과 고시원, 교회 등지를 떠돌았다. 어떤 날은 온종일 기도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할수록 ‘구원받기 위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나’ ‘예수님이 정말 이런 분일까?’ 하는 의구심이 커져갔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정 총재가 구세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주일을 뜬눈으로 보냈다. 충주의 한 고시원 부엌에서 35㎝짜리 식칼을 들고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온종일 자살 충동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2월에 만료되리라 기대했던 공소시효는 검사 직권으로 10년 더 연장된 상태였다. 범죄자로 숨어 지내는 사이 그의 20대는 훌쩍 지나가버렸다. JMS를 탈퇴하며 시작한 회개기도와 금식이 3월13일로 19일째라는 민씨는 “얼른 죗값을 치르고 새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