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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9일 금요일

'모피아의 대부' 강만수가 걸어온 길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28일자 기사 ''모피아의 대부' 강만수가 걸어온 길'을 퍼왔습니다.
경제기획원·한국은행과 대립...고집쟁이의 뜻하지 않은 퇴장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1970년 제8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이후 그는 한국경제의 중요한 기로마다 나름의 역할을 떠안으며 살아있는 화석으로 존재해왔다. 그야말로 영욕의 세월을 보냈다고 표현할 만하다. 1945년에 태어난 그는 올해 한국나이로 69세의 고령이다. 산은지주 회장직은 그가 현역으로서 지킨 마지막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역사적 평가의 대상으로써 유유히 사라질 길만 남은 것이다.

▲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뉴스1

강만수를 평가하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은 정확히 그가 무엇을 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는 ‘강고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자기 소신을 내세워 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킨 바 있다. 그만큼 소신과 철학이 뚜렷한 관료였다는 것이다. 이의 실제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야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도 가능하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일 것이다.
강만수 회장은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를 일컫는 말인 ‘모피아’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다. 재무부 3대요직으로 불리는 이재국장, 국제금융국장, 세제실장을 모두 해본 유일한 관료인데다 현업에 종사하는 모피아 출신 중 최고참이기 때문이다.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들과 경제기획원 출신 경제관료들이 경쟁해온 이야기는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개발연대 말기부터 민주정부에 이르기까지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은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재무부 대 경제기획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예산수립과 부처 간 조정, 경제정책 기획 등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임무로 하는 경제기획원이 통화, 금융, 세제 등을 통한 관리를 주임무로 하는 재무부와 불화를 겪는 것은 당연한 측면이 있었다. 청사진을 그리는 사람과 메스를 잡고 수술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갈등의 또 다른 측면도 있었다. 박정희 시대 말기, 여전히 재무부 관료들은 개발연대 특유의 고도성장논리에 충실했지만 경제기획원 관료들이 ‘안정화‧자율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 주도의 고도성장으로 인한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는 시기가 닥치고 있기 때문에 교과서적 의미에서의 시장경제체제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견해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은행 등도 경제기획원의 새로운 구상에 찬동했지만 재무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비판이 집중된 중화학공업 과잉투자와 관치금융 등 문제의 주무부처가 재무부였기 때문이다.
이들 양대 파벌의 갈등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져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수석으로 경제기획원 출신의 김재익 박사가 임명되자 재무부 출신들은 ‘현실을 모르는 시카고 보이’(김재익 수석이 미국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비꼰 말)가 경제수석이 됐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였다.

▲ 박근혜 정부에서 중책을 맡게 된 경제기획원 출신 인사들. 왼쪽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오른쪽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스1

1982년에는 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이 터진 틈을 타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들이 재무부 요직에 임명되는 소위 ‘경제기획원의 재무부 점령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들은 금융자율화와 사채시장 양성화 등의 명분으로 그간 제한적으로 허가돼왔던 단자회사를 20개 가까이 허가하는 등의 시장화 정책을 펼쳤다. 강만수 회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 당시의 비참했던 소감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는데,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현실을 모르는 채 당시 단자회사를 무분별하게 대량으로 허가했고 이들이 종합금융회사가 됐으며 이것이 곧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하지만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이 당시 금융자율화가 실제로 시행되지 못하고 중단돼 관치금융의 구조가 이어진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경제수석을 지내기도 했던 박병원 은행연합회 회장은 2012년 10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제기획원 출신들은 일찍이 관치 금융 시대를 끝내고, 금융자율화를 도입하려고 했다”면서 “그러나 재무부의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에 1994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한 재정경제원을 만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MB노믹스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들과 재무부 출신 관료들은 외환위기 이후부터 정권에 따라 서로 번갈아 가며 요직을 맡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위기극복 등을 이유로 모피아 출신으로 분류되는 이헌재 전 부총리가 중용됐지만 참여정부 후반기에 들어서는 변양균 당시 정책실장을 비롯한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요직을 장악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때는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 모피아들이 권력의 심장부에 재입성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또 다시 경제기획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안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유유히 걸어가신 이명박 전 대통령. ⓒ뉴스1

강만수 회장은 소위 MB노믹스로 불리는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입안했다. 여기에는 정통 재무부 관료다운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그 유명한 부자감세정책이다. 강만수 회장이 당시 추진했던 감세정책은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는데, 감세를 통해 대기업 등의 활동을 숨통을 틔우면 대기업이 거둔 이득이 중소기업과 가계에 까지 긍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낙수효과’가 논리적 근거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낙수효과가 발생하지 않아 대기업과 부자들만 이득을 보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강만수 회장은 “세율을 올려봐야 세수가 늘어나지 않는다”면서 “지나치게 높은 세율은 조세회피 방법을 다양하게 할 뿐”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기업들이 탈세를 하다 지치면 외국으로 도망을 갈 것이란 얘기다.
감세정책의 시행을 경기부양 목적뿐만 아니라 강만수 회장의 개인적 철학이 관철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강만수 회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세금은 원칙적으로 버는 돈에 소득세, 쓰는 돈에 소비세, 남는 돈에 재산세만 매기면 된다는 소위 3세론을 설파한 바 있다.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등의 세금은 원칙에 맞지 않는 세금이라는 것이다. 실제 강만수 회장은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직후 종합부동산세부터 박살을 내버리기도 했고 저서를 통해 법인세는 아예 0%에 수렴할수록 좋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금융과 관련해서는 소위 ‘메가뱅크론’이 강만수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로 알려져 있다. 이는 외환위기를 전후해 완전히 무너지다시피 한 국내 금융산업의 허약한 체질에 대한 반성에서 도출된 결론인 것으로 보인다. 강만수 회장은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세계 50위 안에 드는 국내 은행을 육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외환위기 이후 부실화된 은행을 인수할 국내 금융자본이 없었던 상황 등을 상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정책금융과 상업은행의 혼재된 기능을 갖고 있던 한국산업은행을 정책금융기능과 상업은행기능을 분리시켜 상업은행 부분을 민영화하는 ‘산업은행 민영화’ 정책으로 현실화됐다.
MB노믹스 체제에서 그가 보여준 또 하나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환율정책에 대한 남다른 집착이다. 대부분의 경제관료들이 환율은 시장조절기능에 맡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비해 강만수 회장은 “환율은 주권”이라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환율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경상수지와 인플레이션이 상충하는 상황이라면 인플레이션을 감수하고서라도 경상수지를 방어해야 한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물가가 다소 오르더라도 수출 증대를 위해 환율 방어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게 그 유명한 ‘고환율 정책’이다.
한국은행과의 대결
그의 환율정책에 대한 철학은 필연적으로 한국은행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화신용정책은 한국은행이 수립하고 집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측은 강만수 회장이 통화정책에 대한 민감한 발언을 할 때마다 반발하고 나섰다. 통화정책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몫이며 물가안정을 가장 핵심적인 목표로 한다는 논리다.
이들의 충돌은 강만수 회장이 재무부에 있을 때부터 이어져 왔다. 한국은행은 87년 이후 끊임없이 ‘중앙은행 독립’을 외치며 정부로부터 독립된 권한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강만수 회장과 일부 재무부 관료들은 이미 한국은행이 충분히 독립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거나 환율은 정부기관이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펴며 대립했다.

▲ 현행 중앙은행 체제(왼쪽),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체제(가운데), 강만수 회장이 주장한 중앙은행 체제(오른쪽)를 비교해보았다.

강만수 회장의 중앙은행에 대한 대표적 지론은 통화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한국은행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기관으로서 한국은행 위에 있어야 하며, 금융통화위원회가 바로 중앙은행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은행을 중앙은행으로 하고 그 산하에 금융통화위원회를 두는 현 체제의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으로 한국은행 측의 엄청난 반발을 야기했다.
중앙은행이 정부기관의 일부여야 하는지, 정부로부터 독립된 주체여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끝없이 이어진 이 논쟁은 결국 1950년대 한국은행 설립의 기초가 됐던 ‘블룸필드 보고서’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오늘 날 강만수 회장의 주장은 그저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분위기지만 그 고집스러운 뚝심만큼은 알아주지 않을 방도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더러 있다. 오늘 날처럼 인터넷 사용이 자유로운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면 틀림없이 유명한 '키보드 워리어'가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2012년 9월 20일 목요일

안철수와 이헌재의 결합, 매우 위험하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20일자 기사 '안철수와 이헌재의 결합, 매우 위험하다'를 퍼왔습니다.
[뉴스분석] 낡은 정치 혁신하겠다면서 모피아 대부를 경제 멘토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19일 서울 충정로 구세군 아트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배석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얼굴이 눈길을 끌었다. 이 전 부총리가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다는 소문은 일찌감치 나돌았으나 공식적인 행사에 동행한 것은 처음이다. 이 전 부총리는 박근혜 캠프에 합류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에 견줘 안철수의 경제 멘토로 불린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과 경제 부총리 및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정권이 바뀐 뒤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도 경제 부총리를 맡아 신용카드 사태를 해결했다.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관치금융의 화신이라거나 모피아(재정경제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대부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엇갈린다. 

이 전 부총리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안 원장은)개혁 성향이 강해 보이지만 급진적인 경제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 경쟁을 바로 잡는 과정에서 재벌집단을 정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안 원장의 경제 멘토라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동시에 안 원장이 과격한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자신과 같은 합리적인 시장주의자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전 부총리는 최근 출간한 ‘경제는 정치다’에서 “안철수 현상은 그를 포함한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던 변화에 대한 열망이 폭발한 것”이라며 “기존 시스템과 타성에 젖은 사람들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요구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노골적인 헌사를 구직 선언으로 받아들였지만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다시 공직에 출사하지 않는다는 개인적 원칙을 세워 정치권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안철수와 이헌재의 조합은 언뜻 낯설지만 두 사람의 발언에는 동일한 기조가 발견된다. 안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제 민주화의 방향을 묻는 질문에 “근본적 접근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점진적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가 ‘경제는 정치다’에서 “개혁은 뜨뜻미지근할수록 좋다”면서 “은근히 스며들었다가 나중에 보니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성공 확률이 높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안철수와 이헌재의 결합은 안철수라는 신인 정치인의 정체성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 전 부총리는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구조적인 병폐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다. 안 원장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이 전 부총리와 손을 잡았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고 알면서도 손을 잡았다면 안 원장이 말하는 개혁의 실체를 다시 평가해야 할 수도 있다. 진보진영과 거리를 두면서 합리적인 시장경제를 말하는 안 원장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 원장 입장에서는 정치나 행정 경험이 전무한 그가 국정을 운영하려면 그의 손발이 돼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겠지만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패가 모피아 관료들의 저항 때문이었고 그 중심에 이헌재 사단을 비롯한 보수 기득권 계층이 있었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 안 원장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던 디지털 마인드와 수평적 리더십을 여러차례 정권을 거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노회한 관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도 의문이다. 정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흔히 이 전 부총리가 신용카드 사태를 해결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1999년 4월, 신용카드 현금 서비스 한도를 폐지한 사람이 바로 이헌재다. 그해 8월에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400개가 넘는 금융기관을 퇴출시켰고 재계 2위의 대우그룹을 포함해 수많은 부실기업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방식으로 처리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과 부채비율 200%를 맞추지 못하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그 과정에서 모두 도태됐다. 

이 전 부총리는 외환은행 불법 매각에도 책임이 있다. 론스타가 금감위의 편법 승인을 얻어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일 때 이 전 부총리는 론스타의 법률 자문을 맡았던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일했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이 전 부총리가 론스타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외환은행 뿐만 아니라 제일은행과 한미은행 등의 매각 과정에 이른바 이헌재 사단이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이헌재 사단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규제 완화를 주도했다. 

조금 비약하면 IMF 이후 15년, 한국 경제의 변화는 이 전 부총리가 설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기업의 이익은 빠른 속도로 불어났지만 노동자와 저소득 계층의 고통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부동산 거품을 키웠고 그 과정에서 빈부격차와 양극화도 더욱 확산됐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사실상 국유화됐던 금융기관과 제조업 기업들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모피아 집단은 환율을 끌어올려 수출 대기업을 지원하고 국민들 세금을 풀어 물가를 잡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펼쳐왔다. 그게 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한국은행 적자가 발생했고 통화안정증권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해야 했다. 명백한 환율 조작이고 부의 강탈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많지 않았다. 안 원장은 그 중심에 이 전 총리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만약 그가 집권을 한다면 수출이 잘 돼야 경제가 산다는 경제 관료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던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은 “노무현 정부는 삼성과 재경부와 조중동에 고립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홍종학 민주통합당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의 최대의 패착은 재경부를 장악하지 못하고 모피아들에게 휘둘려 모피아들에게 경제를 맡겨 놓은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 비판의 핵심에 이 전 부총리가 있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안철수와 이헌재의 결합은 매우 위험하다. 안 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안 원장은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을 부정하면서 상식과 선의, 원칙을 이야기한다. 안 원장은 지금까지 정치의 바깥에서 정치를 비판했지만 그가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상식과 선의, 원칙은 기껏해야 이헌재 같은 사람과 결합한다. 섣불리 판단하기 이르지만 그게 이제 막 실체를 드러낸 안철수의 한계가 아닐까. 

이정환 기자 | black@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