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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3일 월요일

MB의 꿈 vs. 지율의 꿈…대한민국의 선택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3일자 기사 'MB의 꿈 vs. 지율의 꿈…대한민국의 선택은?'을 퍼왔습니다.
[민스미어 습지를 찾아서 ②] 내성천의 다른 미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물길을 막고 파헤쳤던 낙동강, 영산강, 한강, 금강의 복원 얘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막았던 물길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일부에서 경솔하게 얘기하듯이 무작정 보를 없앴다가는 예기치 못했던 또 다른 재해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개발 사업에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번 파괴한 자연은 쉽게 원상태로 복구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점에 (프레시안)은 지난 4월 19~20일 영국 동부 서포크 해안 지구의 민스미어 인공 습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번 취재에는 '낙동강 지킴이' 지율스님이 동행했습니다.

지난 5년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는데 힘써 온 지율 스님은 최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실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을 선보여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지율 스님은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번 민스미어 습지 방문도 그 연장선상에서 지율 스님의 제안으로 이뤄졌습니다.

지난 6일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프레시안은 앞으로 '생명, 평화, 평등, 협동'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을 약속했습니다. 이번 민스미어 습지 현장 취재도 이런 약속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한 줌도 안 되는 개발 세력이 파괴한 우리의 강을 어떻게 되살릴지, 이제는 같이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편집자)

민스미어 습지를 찾아서

● 첫 번째 이야기 : 새 한 마리에 영국이 '들썩', 민스미어의 기적?!

지난 4월 20일 민스미어 습지는 패밀리 데이 행사로 북적였다.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온 '민스미어의 아이들'은 개구리의 먹이인 수초를 직접 만져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버필드 부자가 아이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와서 개구리와 수초를 보라고 손짓했다. 아버지인 닉 버필드(55) 씨는 서포크 지방 정부에서 여론 조사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민스미어 습지에서 행사가 열릴 때마다 자원봉사를 한다. 버필드 씨가 자원봉사를 할 때마다 아들 잭(27)도 함께 한다. 잭에게 민스미어 습지를 언제부터 방문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처럼 민스미어 습지에서는 '민스미어의 아이들'이 자라서 또 다른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도록 돕는 일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율스님

1년 방문객 약 10만 명…지역 일자리 창출의 1등 공신!

민스미어가 단순히 자연 체험과 좋은 추억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주민은 하나같이 민스미어가 서포크 지방의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닉 역시 "1년에 약 10만 명의 관광객이 민스미어를 방문하기 때문에 서포크 지방의 지역 경제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단언했다.

영국 왕립조류보호협회(RSPB, The 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가 발간한 보고서 을 보면 민스미어가 지역 경제 활성화의 일등공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민스미어 습지는 파트타임이 아닌 풀타임 일자리를 평균 102.9명 고용한다.

런던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이 걸리는 민스미어 습지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이곳에서 매년 290만 파운드(약 50억 원)를 소비한다. 민스미어 습지에서 언론 홍보를 담당하는 이안 바소프(41) 씨는 "민스미어 습지가 있어서 이 지역의 숙박 시설이나 음식점이 1년 내내 문을 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율스님

지율 스님, 민스미어에서 내성천을 떠올리다!

민스미어 습지를 지켜보고 또 그곳에 반한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지율 스님의 눈도 빛났다. 이명박 정부 내내 낙동강 "전쟁터"에서 뭇 생명이 유린당하는 모습을 기록한 스님이 이곳 영국의 민스미어 습지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이곳은 스님이 그토록 지키고자 노력했던 천성산 자연 습지와는 다른 사람의 손때가 탄 인공 습지가 아닌가?

지율 스님은 지난 2009년 3월 낙동강에 발걸음을 내딛고 나서, 11월부터 아예 낙동강 상류 지천인 내성천 가에 텐트를 치고 터를 잡았다. 그는 이곳을 '집'이라고 부르며 홀로 기거했다. 스님은 이곳에서 사진기와 캠코더로 강의 변화를 기록했다. 최근 개봉한 4대강 사업의 실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은 그 산물이다.

혹자는 지율 스님이 낙동강이 파괴되는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날 선 반대 운동에 나서지 않은 까닭을 궁금해한다. 천성산 생태계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터널 공사에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율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 파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그런 인식은 과연 맞는 것인가?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정비 사업이 아니라 '한반도 대운하를 하겠다'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바로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아줬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리고 여기저기서 강이 유린당할 때,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고통받는 강의 아우성을 묵묵히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강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사람들이 각성하는 순간에 강과 사람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다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율 스님 역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다. 소백산에서 흘러나와 낙동강과 만나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천혜의 모래강 내성천도 파괴되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2009년 12월부터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 상류에서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 댐 공사가 한창이다. 높이 55.5미터, 길이 400미터, 총 저수량 1억8100만 톤 규모의 다목적 댐.

한국에 지어지는 댐의 상당수가 그렇듯이 이 영주 댐 역시 정부, 기업, 지역 주민 누구도 그 필요성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이미 공사가 상당히 진척되었으니, 모두가 완공을 향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뿐이다. 이른바 영주 댐도 '매몰 비용'의 덫에 빠진 것이다. 지율 스님이 민스미어 습지를 찾은 이유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해소할 출구를 찾기 위해서다.


▲ 지율 스님. ⓒ프레시안(남빛나라)

내성천의 반딧불이가 낳은 '발상의 전환'

공사 중인 영주 댐이 내성천으로 흘러들어오는 모래 공급을 막으면서, 수천 년이 만든 모래강은 순식간에 돌강으로 바뀔 태세다. 상당량의 모래가 하류로 휩쓸려서 물길이 깊어지는 것도 눈에 띈다. 이대로라면 내성천은 물론이고, 내성천으로부터 모래를 공급받는 낙동강 본류도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 지율 스님은 영주 댐의 대안으로 인공 습지를 생각했다. 영주 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정부로부터 수용당한 마을 논은 이미 1년 정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상태다. 2010년여름, 지율 스님은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논에 반딧불이가 날아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보았다. 입소문이 나자, 반딧불이를 보러 도시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지율 스님은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자기 치유 속도에 놀랐다.

"그러고 나서 가을, 겨울에는 철새를 비롯한 각종 새가 모이기 시작했다. 농약에 화학비료에 몸살을 앓던 논을 그냥 놓았더니, 우리 때문에 쫓겨났던 동·식물이 돌아왔다. 그리고 또 그런 동식물을 보러 도시에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미 정부가 수용한 이곳을 습지로 보존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하필 인공 습지일까? 지율 스님은 어차피 어느 정도 지어진 영주 댐을 활용할 방안까지 고민해본 것이다. 그렇다. 그는 영주 댐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버려진 논이 습지로 제 기능을 하려면 저수지와 배수로가 필수적이다. 영주 댐의 설계와 기능을 조정하는 것을 통해서 인공 습지에 공급할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물론 내성천의 물길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영주 댐이 이런 기능을 할 수 있으려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마련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 소백산에서 발원해 낙동으로 흐르는 내성천. ⓒ프레시안(최형락)

RSPB 회원 수, 2009년에 이미 100만 돌파

내성천 인공 습지의 꿈! 이것이 바로 지율 스님이 민스미어 인공 습지를 방문한 이유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강과 사람을 잇는 역할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 꿈이 과연 가능할까, 힘을 받고 싶어서 민스미어 습지를 방문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이 난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연을 많이 찾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지율 스님의 말처럼 민스미어 습지에는 자연 사랑에 푹 빠진 영국인이 넘쳤다.

런던에서 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놀러 온 던스턴(34)·엘레나(32) 스미스 부부도 그렇게 자연 사랑에 빠진 영국인이다. 이들 부부는 5년 전부터 RSPB 회원이다. 던스턴 씨가 "아이가 자라면서 새와 곤충에 흥미를 갖길 바란다"고 말하자, 땅을 유심히 살피던 아들 오스틴은 "곤충이 제일 좋아!"라고 외쳤다.

민스미어 습지에서 이들 부부 같은 RSPB 회원을 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2009년에 이미 민스미어 습지와 같은 곳을 보존하며 자연 사랑, 새 사랑에 앞장서는 RSPB 회원 수가 100만 명을 넘었다. 지난 2009년 11월 영국 (가디언)은 "최근 RSPB의 발표를 보면, 600만 명의 영국인이 2주마다 새 보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 새 보기를 위해 민스미어를 방문한 관광객. 새 보기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걷고 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민스미어 습지와 내성천은 새로 연결되었다!"

민스미어 습지의 영국 사람을 보면서 지율 스님은 "발상을 전환하면 내성천 일대에 약 1150헥타르(약 350만 평)의 습지를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틀 내내 지율 스님과 기자를 안내했던 민스미어 습지 지킴이 이안 바소프 씨와 폴 다이슨(48) 씨도 이런 지율 스님의 꿈에 공감을 표시했다.

민스미어 습지를 둘러보던 중에 지율 스님이 직접 제작한 (모래가 흐르는 강)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은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의 강이 상처 입는 모습을 지켜봤다. 결국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영화가 끝나자 다이슨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성천의 새가 민스미어 습지로 날아올 수도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내성천이 파괴되는 가슴 아픈 모습은 한국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내성천 일대를 (인공) 습지로 보존하는 지율 스님의 꿈이 꼭 실현되길 바란다. 내성천과 민스미어 습지는 이미 앞에 보이는 새들로 연결되었다."

한국의 습지들, 총체적 난국

인공 습지까지 조성해서 습지 보호에 나서는 영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형편은 어떨까? 국내의 습지 보전 정책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지난 2008년 10월 28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제10차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가 개막에 맞춰서, "위기에 처한 한국의 습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위기에 처한 세계 습지 보고 대회'를 개최한 환경운동연합은 한국의 습지 보전 정책을 놓고서 "개발에 부적합한 습지를 보전 지역으로 지정하는 상태"라고 총평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력 발전소, 해안 도로, 관광 레저 단지 등 개발 가능성이 조금만 보이면 어김없이 습지는 파괴되는 형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경상북도구미시의 해평 습지다.

흑두루미(천연기념물 228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203호) 등 희귀 철새의 집단 도래지였던 해평 습지는 낙동강 사업으로 옛 모습을 잃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이곳을 찾는 두루미가 2008년 3153마리에서 2011년 1446마리로 급감했다.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의 옛 고아 습지 역시 정부가 '강정 생태 공원'으로 개발한 탓에 대부분 준설토로 매립되었다.

한국 최대 규모 내륙 습지인 우포 습지 역시 신음하고 있다. 우포 습지의 면적은 가로 2.5킬로미터, 세로 1.6킬로미터다. 담수 면적은 2.3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1500여 종의 동·식물의 서식처로 기능하고 있다. 이 거대한 자연의 보고 역시 4대강 사업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상황은 이렇다.

우포 습지는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의 토평천에 위치했다고 알려졌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화왕산에서 내려온 토평천이 낙동강으로 빠져나가는 중간 지점에 있다. 4대강 공사 후 토평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우포 습지 끝 지점에서 세굴현상(흐르는 물에 토사가 씻겨나가 강바닥이 움푹 파이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우포 습지의 훼손을 염두에 두면 한국에 습지 안전지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우포 습지는 지난 1998년 3월 국제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고, 1999년 2월 습지 보호 지역(8.54제곱킬로미터)으로 지정돼 같은 해 8월 9일부터 습지보전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 지난 2008년 한국이 람사르 총회를 주최했을 당시 공식 탐방지도 우포 습지였다. 이런 곳마저도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남빛나라 기자(민스미어)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식수마저 말라버린 내성천... 모두 우리 탓이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3-17일자 기사 '식수마저 말라버린 내성천... 모두 우리 탓이다'를 퍼왔습니다.
[전시회] 내성천 지킴이 지율스님 사진전

▲ 시대의 증언이 될 기록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기고 있는 지율스님 ⓒ 이지훈

'2008월, 4대강 개발 착공 뉴스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무너져가는 강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아온 지율스님. 낙동강과 내성천 지킴이를 자처한 지율스님은 생명, 자연,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긴 사진전을 몇 년 전부터 이어왔다.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경제 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홍보 구호와는 정반대로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무너지고 파괴되는 국토의 섬뜩한 모습이었다.

한평생 살아온 고향에서 등 떠밀리듯 떠나야 하는 수몰지역 주민들에게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들었고, 아름답게 빛나던 고운 모래사장이 검은 자갈밭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기록하고 담아왔다.

4대강 사업의 불합리함과 이를 넘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과 화해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지율스님의 내성천 사진 전시회 '내성천 왕버들 군락과 조각 사진전'이 오는 3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내 나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지율스님은 몇 년 전부터 내성천가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4대강 유지용수 공급을 위해 건설되는 영주댐으로 사라지는 내성천을 보호하기 위해 아예 강가에 둥지를 튼 것이다.

영주댐과 함께 사라질 내성천

▲ 조계사내 나무 갤러리에서 지율 스님의 내성천 사진 전시회가 3월 31까지 열리고 있다. ⓒ 김종성

▲ 수몰지역 주민들의 운명처럼 뿌리째 뽑혀 나가야 하는 강변의 왕버드나무 사진들. ⓒ 지율스님

내성천은 4대강 사업으로 망가져 가고 있는 낙동강의 제 1지류다. 조선시대 적 이름 사천 (모래 사沙. 내川)의 이름대로 모래가 풍성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하천. 최근 생겨난 영주댐 환경 평가서에 의하면 내성천 유역에 쌓이는 모래의 양은 가까운 충주댐의 배가 넘는다. 이렇게 내성천은 모래가 많은, 정확히 말하면 모래톱이 넓게 펼쳐진 강이다.

모래톱은 바다로 치면 갯벌과 흡사하며 수심이 얕고 유속도 느리다. 내성천 상류에서부터 시작되는 모래톱은 지하 10~20m까지 쌓여있다. 이 모래는 지하 6m까지 수분을 함유해 건기에는 수분 손실을 막고 우기에는 유량을 자동 조절해 주는 자연 조절 장치역할을 한다.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짓기 시작한 영주댐은 이런 내성천의 모래 줄기 위에 세워지고 있으며 올해 완공을 앞두고 있다. 댐이 완공되면 내성천 중상류는 수몰돼 사라진다. 하류는 다른 댐이 들어선 하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듯이 유량이 줄어들어 결국 육지화 된다.

4대강에 거대한 '보'들을 건설해서 녹조로 강을 뒤덮더니, 그것으로 모자라 영양댐, 영주댐, 지리산댐 같은 대규모 댐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어지는 사업을 위한 사업들. 땅도 강도 파헤쳐 지고, 뭉개지고, 자연은 인간의 삶에서 유리된다. 이익을 보는 것은 건설업체들과 토건사업을 벌여야만 자기 조직을 유지·강화할 수 있는 건설관료들과 수자원공사뿐이다.

'4년'이라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우리는 강의 원형을 잃었고, 강으로 항한 실핏줄 같은 지천들은 준설공사로 깊어진 본류의 강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 시름을 알 리 없다는 듯, 강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우리를 향해  모래강 내성천은 가뿐 숨결로 우리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인가?

당신과 나, 뭇 생명을 위하여 우리가 강이 되자

▲ 몇 년 전부터 내성천가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지율 스님의 생생한 사진들. ⓒ 지율스님

▲ 한 외국인 스님도 찾아와 내성천 사진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 김종성

내성천을 거니는 스님의 맨발 아래에서, 은은하게 흐르던 은빛 모래들은 돌멩이로, 또 자갈밭으로 변했다. 굴착기가 강바닥을 파내는가 하면 강변을 지키던 나무들이 수백 그루씩 스러졌다. 영주댐 건설로 물길이 막히고 모래가 유입되지 않는 내성천은 강바닥이 파이면서 수면이 낮아졌고 급기야 주민들이 사용할 식수와 용수마저 말라버렸다. 

영주댐 건설 이후 내성천에 닥친 냉혹한 현실이었다. 졸지에 수몰지역이 돼버려 쫓기듯 대대로 살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600여 세대 마을 주민들의 깊은 한숨에서 스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함께 묻어났다.

지율스님은 "영주댐 공사는 그동안 강에 무관심했던 우리 탓이라며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만 번 맞는 말씀이다. 산천 파괴의 역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우리의 산천은 늘 개발이라는 탐욕 앞에 노출되어 있었다. 건설과 증산, 개발과 성장 가치는 사람살이의 토대를 무너뜨리면서도 한 치의 의심 없이 강화되고 부추겨져야 하는 유일한 시대 가치였다.

그것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독재 정권이나 그 후 간신히 고개를 쳐들었던 이른바 민주화 정권 시절이나 진배 없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들에서 그들은 두 얼굴의 한 뿌리 형제들이었다. 그 끔찍한 형제 결속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동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그들더러 개발과 성장의 선봉이 되어달라고 열렬한 얼굴들로 의탁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시대의 증언자가 된 지율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성공도 실패도 없습니다. 영주댐이 완공 된다고 해서 '내성천 살리기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저는 10년이고 20년이고 내성천의 황폐해지고 사라져가는 자연 생태계를 다 기록해 증거로 남길 것입니다. 그것을 증명할 그날을 기다립니다. 또 그날이 오면 제가 기록했던 증거들이 복구의 기준이 되어 내성천이 지금과 가장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 복구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내성천 환경단체 누리집 ; www.naeseong.org

김종성(sunny21)

2013년 3월 16일 토요일

무너지는 내성천 강변을 바라보며, 강을 잊은 그대에게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15일자 기사 '무너지는 내성천 강변을 바라보며, 강을 잊은 그대에게'를 퍼왔습니다.
웅변보다 침묵을 택한 지율스님의 4대강 다큐 ‘모래가 흐르는 강’

뚜렷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는 대개 넘쳐흐르는 정념을 주워 담기보다는 어떤 장면에서 특정한 감정을 느낄 것을 관객에게 강요한다. 특히 영화가 권력층의 비리와 약자들의 서러움을 파고들수록, 대부분의 연출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관객이 공명하게 만들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오는 28일 개봉될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도 그런 함정에 빠질 수 있었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영주 다목적댐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파괴되는 모습을 담았다. 과거의 내성천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각종 중장비와 콘크리트 더미에 유린되는 내성천의 모습을 보며 분노를 느끼게 마련이다. 지율 스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캡쳐 화면.(시네마달 제공)

“2008년, 4대강 착공 뉴스를 보고 산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걸으며 무너져가는 강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경제 발전 등, 정부의 화려한 구호와는 정반대로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무너지고 파괴되는 국토의 섬뜩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래가 흐르는 강)은 비탄을 토해낼 만한 대목에서조차 침묵을 지키는 편을 택한다. 서글픔이 강조된 내레이션도, 슬픔을 채색하는 음악도 없다. 간혹 한 번씩 화면 밖에서 한숨처럼 흘러들어오는 지율 스님의 한탄 같은 혼잣말에 억제되고 절제된 감정이 담뿍 배어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묵직한 침묵은 파도가 되어 관객을 강타한다.
러닝타임 75분 내내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사랑은 프레임을 한시도 떠나는 법이 없다. 지율 스님의 발길은 제일 먼저 내성천에 기대어 사는 이들에게 향한다. 60년 간 마을을 떠난 적이 없는 할머니, 90년의 역사를 간직한 초등학교, 강변에 사는 텃새 수리부엉이, 원앙 부부, 먹황새, 수달 가족 등은 모두 댐 공사가 완료되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이들에게 작별을 고하듯, 지율 스님의 카메라는 그들이 내성천 강변에서 마지막 순간을 살아 내는 모습을 멀찍이서 묵묵히 담아낸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캡쳐 화면.(시네마달 제공)

“댐 공사가 지역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그 곳에 물을 채우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불과 두 시간 만에 베어져 넘어가는 수백 그루의 나무들을 보며 지율 스님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강에 발을 담가 본 적도 없는’ 이들이 강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이, 나아가 고래로부터 자연의 질서를 지켜 온 강줄기를 마음대로 뜯어고친다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이다.
14일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모래가 흐르는 강) 조계종 시사회에 참석한 지율 스님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픈 것이 어느 물길을 따라 흐를지가 가장 고민되고 무섭다”며 “영화는 (4대강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슬프거나 기쁜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항상 기쁘고 슬펐다”며 “제가 가진 아픔을 어떻게 나누고 이야기해야 사회가 자연을 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는지가 가장 큰 화두였다”고 답했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캡쳐 화면.(시네마달 제공)

이렇듯 지율 스님은 파괴된 산천을 보면서 좌절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내성천의 옛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금, 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꽃으로 피어난 결과물이다. 지율 스님이 수없이 발을 담갔던 모래강의 물줄기가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지는 오는 28일부터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강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치 씨방에서 터져 나온 꽃씨들이 모태의 기억을 잊어버리듯 우리는 강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4대강 사업은 그런 우리의 망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내성천 보존 운동은 모래강에 발을 담그고 망각의 세계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 메인 포스터.(시네마달 제공)

윤다정 기자  |  songbird@mediaus.co.kr

2013년 2월 17일 일요일

빈집서 쫓겨난 스님, 내성천에 텐트 친 사연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3-02-17일자 기사 '빈집서 쫓겨난 스님, 내성천에 텐트 친 사연'을 퍼왔습니다.
[인터뷰-지율 스님] 수몰위기 강의 변화 카메라에 담아

▲ 낙동강의 제1지류이며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인 내성천. 영주댐 건설을 위한 준설작업이 한창이다. ⓒ 권우성

▲ 영주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12년 7월부터 경북 영주시 평은면 내성천변 '텐트'에서 생활하는 지율 스님. ⓒ 권우성

'집'이란다. 내성천 모래 위에서 '텐트'를 바라보던 지율(知律) 스님은 "우리집 참 예쁘네"라 말했다.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강둑. 지율 스님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때는 2012년 7월부터다. 영주댐 건설공사로 수몰 위기에 놓인 내성천을 지키기 위해 2011년부터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마을의 한 빈집에 살다가 강둑으로 옮겼다. 여름부터 살기 시작했는데 가을과 겨울을 나고 지금은 봄을 기다리고 있다.

내성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이다. 지율 스님은 낙동강의 젖줄인 내성천이 댐 건설로 변화돼 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기록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지난 1월말 홈페이지(초록의 공명)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눈으로 뒤덮인 텐트였다. 기자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무너지지나 않았을까, 밤새 눈을 쓸어내리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걱정하면서도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보지 못했다. 설날(2월 10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경남 김해에서 영주까지 달렸다. 점심 무렵에야 도착했다. 지율 스님이 마을 입구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마을에는 빈집이 더러 보였다. 조상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오던 사람들이 수몰 대상지가 되면서 떠난 것이다. 논밭에는 지난해 농사를 짓지 않았다는 흔적이 보였다. 대신 곳곳에서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산허리까지 깎아 길을 내고 강모래를 파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빈집 빌려준 주인들 수공 압력 때문에 힘들어해"

▲ 설날 찾아온 기자들을 위해 지율스님이 차 끓일 준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강둑에 텐트가 보였다. '지퍼'로 된 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집 주인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침대 모양의 온돌 바닥이 있고, 그 위에 이불이 깔려 있다. 어디서 주워 온 건지 아니면 누가 갖다 준 건지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고, 가장자리에는 여러 물품이 놓여 있다. 한 켠에는 촛불도 켜놓았다. "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라고 쓴 옷도 걸려 있다.

"천막에는 언제부터 계셨는지"라고 묻자 지율 스님은 "'천막'이란 말은 너무 투쟁적"이라는 반응부터 보였다.

"갈 데가 없어 왔다. 작년 7월부터다. 마을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였다. 2009년 봄부터 낙동강 답사를 했고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에 대해 2011년부터 관심을 가졌다. 처음에는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다가 겨울이 왔을 때 상주에서 1년 정도 지냈다. 작년 여름 장마가 오기 전 둑에 텐트를 쳤다."

"상주도 그랬고, 이 마을에서도 그랬다. 빈집을 빌려준 주인이 힘들어 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수공(수자원공사)이 집주인한테 직접 내보내라고 압력을 가했다. 집주인이 직접 이야기를 하더라. 결국 갈 데가 없어 여기에 왔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더 걱정한다. 태풍과 폭설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더 걱정한다."

지율 스님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수몰될 내성천에서는 모래를 파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율 스님은 "덤프트럭 기사들이 한번이라도 더 퍼다 나르기 위해 새벽 일찍 와서 줄을 서는데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그만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분들 덕분에 여기 머무를 수 있게 됐다. 마실 물이 없으니까 갖다 주는 사람, 전기가 안 들어온다니까 발전기를 설치해 주는 사람, 나무를 해주는 사람도 있다. 도자기 굽는 사람이 흙을 가져와 구들방처럼 만들어 주었다. 또 환풍이 잘되도록 텐트 지붕을 뚫어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바뀌어 가는 내성천 영상에 담아... 조만간 다큐멘터리 발표

▲ 준설작업으로 상처 투성이가 된 내성천을 둘러보며 촬영중인 지율 스님. ⓒ 권우성

▲ 지율 스님 "지금 내성천은 피부 찰과상 정도다. 강은 복원될 수 있다." ⓒ 권우성

지율 스님은 내성천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을 찍거나 캠코더로 영상을 담는다. 지율 스님은 "내성천 공사가 벌어지기 전부터 사진을 찍어 놓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서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만간 '다큐멘터리 영상'을 발표할 예정이다.

"제일 아쉬운 건 변화다. 변화된 강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올 변화도 예상할 수 있다. 거칠고 황량하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진행하는 개발시스템을 건강하고 자연과 공존하면서 교육과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같은 세대를 살았으니까 그 책임의 몫이 저한테도 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특히 사려 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지금은 작은 것이지만, 그런 목소리가 울려 나오는 곳에 제가 있고, 그 울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에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끝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내성천 파괴가 현재진행형이지만 지율 스님은 '그래도 희망'을 강조했다.

"여기 와서 보는 사람들은 자연파괴가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름다움도 보인다. 망가진 건 산 언덕밖에 없다. 새 길을 내는 공사를 하는데 산 표피만 거둬낸 것이다. 들도 산도 그대로 있다. 우리는 한 부분이 망가진 것을 다 망가진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포기가 빠르다. 지금 영주댐 공정률이 많이 됐다고 하지만 물이 차기 전에는 그렇다고 볼 수 없다. 지금 '그대로 다 살아 있네'라고 보고 같이했으면 한다. 그런 차원에서 아이들과 답사도 다니고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지율 스님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세계습지의 날인 지난 2일 내성천 발원지인 '생달샘'에서 '내성천 습지와 새들의 친구' 발족식을 했다. 내성천을 보전·복원하기 위한 간절한 발원을 담은 것이다. 지율 스님은 지난 1월부터 아이들과 함께 내성천 관찰을 위한 '강 길 순례'에 나서기도 했다.

"조그마한 상처에 피가 나면 다쳤다고 하는 심리와 마찬가지다. 지금 내성천은 피부 찰과상 정도다. 강은 복원될 수 있다. 이곳 주변 논에는 작년부터 농사를 짓지 않았다. 수몰 대상지기 때문이다. 논에 농약을 치지 않으니까 습지가 된 것이다. 새들이 날아오고 고라니와 노루가 온다. 반딧불이도 봤다. 발상의 전환이다."

지율 스님은 "이곳 사람들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다"면서 "그러다가 제가 계속해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자료집을 만들어 내니까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50쪽 분량의 이라는 책과 는 홍보물을 만들었다.

지율 스님은 2009년 4월부터 낙동강 답사를 시작했다. 4대강사업으로 변하는 낙동강의 모습을 직접 걸으면서 기록한 것이다. 그는 "4대강사업으로 인한 낙동강 주변의 사막화"를 걱정했다. 준설로 강바닥이 낮아지면 지천을 비롯한 주변의 물이 큰 강으로 쏠리면서 주변 물은 모자라게 된다는 것.

"천성산 소송 왜 하느냐고 묻던데..."

▲ 지율 스님 "다른 사람들은 왜 소송하느냐고 묻는다.… 할 수 없어 법원까지 간 것이다." ⓒ 권우성

천성산 터널과 관련한 소송 이야기를 꺼냈다. 일부 언론과 4대강사업을 추진한 이명박정부 관계자들은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 및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일명 도롱뇽소송) 등과 관련해 '도롱뇽소송 = 2조 5000억 손실'이라고 보도하거나 주장했다.

지율 스님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변호사 없이 진행한 '나홀로 소송'에서 2009년 승소했다. '도롱뇽소송=2조5000억 손실'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론·정정보도를 했음에도 (조선일보)는 천성산터널과 관련해 계속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9월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 도롱뇽 탓에 늦춘 천성산 터널…6조 원 넘는 손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사회·경제적 손실이 2조 5000억 원"이라 보도했다. 이밖에도 지율 스님은 지난해 (동아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최근 법정에서 조정 합의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소송하느냐고 묻는다. 처음부터 한 게 아니다. 조선일보와 거기에 글을 쓴 사람한테 편지와 자료를 보내서 잘못된 것이라고 알렸다. 그 뒤 한 교수는 '잘못됐다'며 사과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는데, (조선)은 네 번이나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할 수 없어 법원까지 간 것이다.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 언론사가 와서 인터뷰하자고 하더라. 그런데 하지 않았다. 같이 싸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터뷰하려면 소송에서 진 사람한테 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조선)과 (동아)는 법정판결에 따라 반론보도도 실었는데 또 잘못된 보도를 했다. 한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다. 그들은 필요하다고 하면 만들어서라도 쓴다. 최근에 (동아)와 법정에서 조정합의했다. 결론적으로 이겼지만 공개하지 않았다."

지율 스님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을 상대로도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지율 스님은 문 의원이 낸 책 (운명)에서 천성산터널과 관련해 잘못 기술된 부분이 있다고 보고 관련 부분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 소송은 아직 재판 진행 중이다.

"조선일보도 그랬고, 법정에 서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갈 때도 막막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전에 싸웠던 변호사를 또 만나기도 한다. 상황 반복이라 힘들다. 판사는 구체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저는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 터널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심정이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했는데, 알고도 또 들어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힘들다. 자료를 다시 찾고, 정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료를 다시 들춰 보아야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한다."

"소중하다는 생각하지 못한다면 싸움하지 못해"

지율 스님한테 힘들게 싸우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과 한진중공업 노동자, 쌍용자동차 노동자,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해주고 싶은 '설날 덕담'을 부탁했다. 지율 스님도 힘들게 살지만 해주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했더니 '사랑'을 강조했다.

"천성산(도롱뇽) 소송 끝나고 나서 느꼈다. 패소했지만 아픈 만큼 소중했다고 생각했다. 나한테 소중한 것만큼 움직이는 것이다.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싸움을 하지 못한다. 연대하는 것도 내가 그것이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기에, 그 아픔 속에 들어간 것들을 이해해야 한다. 마을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신데, 그 할머니도 누우면 저를 걱정하신다고 했다. 저는 그 할머니를 보며 명절이 다가오는데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사람은 다 이해할 것이다."

지율스님은 이어 '언어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얼마 전 '내성천 습지와 새들의 친구' 행사를 하는데, 현수막 내용에 대해 고민했다. '자연과 우정을 회복하기 위한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썼다. 그런 방식으로 언어 순화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적 언어 폭력성에 길들여져 있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언어를 더 거칠게 쓴다. 진보나 사회변혁을 해나가려는 사람들이 더 거친 언어를 쓰는 것이다. 자기 식구들이 잘못하면 더 잘 보이듯이, 우리쪽 사람들이 그런 언어를 쓰면 더 화가 난다. 그런 지적을 하면 우익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와서 내성천을 걷기도 했고,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도 다녀갔다. 그들이 내성천에 와서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아픔이 아픔한테 말을 걸고 위로를 하는 것 같았다. 노동자 죽음은 마음이 아프다. 사회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만약에 어떤 일을 하게 되면 피해나 파괴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피해를 막기 위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것인데, 그런 저항조차 보이지 않거나 못하게 한다면 사회가 무섭지 않나."

지율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텐트 안에서 떡국도 먹었다. '지율 스님의 집'을 나와 내성천 모래 위를 걸었다. 파냈던 모래가 다시 퇴적되고 있었는데 단단하지 않아 발이 쑥 빠지기도 했다.

지율 스님은 모래와 자갈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줍고 있었다. 도자기 파편들이었다. 물에 휩쓸려 굴러 내려오면서 무뎌진 파편들이었다. 텐트 안쪽 가장자리에는 도자기 파편들을 진열해 놓았는데 지율 스님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것이 사람들이 강과 함께 산다는 증거다."

▲ 내성천 물에 쓸려 내려온 도자기 파편들. ⓒ 권우성

▲ 지율 스님과 함께 내성천 모래를 걷고 있던 윤성효 기자가 갑자기 모래속으로 쑥 빠져버렸다. 오랫동안 다져진 모래밭과 달리 준설작업 후 다시 쌓은 모래밭은 사람의 몸무게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 권우성

▲ 내성천 모래밭에 꽂혀 있는 공사장 붉은 깃발. ⓒ 권우성

권우성(kws21)
윤성효(cjnews)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병도 고치는 강, 내성천이 아프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환경전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3-01-14일자 기사 '병도 고치는 강, 내성천이 아프다'를 퍼왔습니다.

지율스님과 함께 한 낙동강 답사기 ①
대형댐 들어설 내성천 약수로, 썰매로 느끼기 "신나지만 슬퍼요"
경작 중지된 논에는 생명체 풍성…몇 년 뒤엔 수장되겠지만

눈이 많이 내렸다. 기온도 ‘영’ 아래로 쑥 내려갔다. 1월 3일. 이틀 뒤가 소한인 그야말로 엄동설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 안에서 움츠리고 있을 때, 영주역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였다. 지율스님을 필두로 한 강 답사단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들과 어른들, 봉화에서 온 나와 유하, 사과농사를 짓는 농부 문종호님 등이다. 모두 모이고 나니 스무명 가량 된다.

지율스님은 수 년 전부터 강에 깃들어 살고 있다. 강의 신음소리를 가까이에서 듣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재작년부터는 내성천 강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두고서 강을 바라보며 살고 있고, 강이 처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알리고 있다. 조계사 앞에서 1년이 넘도록 내성천의 현실을 알리는 전시공간 ‘스페이스 모래’를 운영했고, 현장에서는 ‘물빛 풀빛 별빛 내성천 텐트학교’나 다양한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답사도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활동으로, 좀 다른 것은 내성천의 상류(즉, 낙동강의 상류)에서 낙동강의 하구까지 둘러본다는 것이다. 1월 3일부터 1월 9일까지 정확히 일주일간의 일정이다.

내가 가져간 해리포터(유하와 나의 차, 기종은 포터II)에 사람들의 등짐을 모두 실었다. 사람들이 모두 타기 위한 조처다. 신기하게도 내 차엔 짐을 싣기 위한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짐에 녹물이 배지 않게 깔 수 있는 방수천이 있었고, 짐을 묶기 위한 고무밴드도 있었다. 나 답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한 것처럼. 답사도 이처럼 술술 풀리면 좋겠건만! 예감이 좋다.

» 물야저수지와 백두대간 줄기. 내성천은 이 일대에서 발원한다.

영주역에서 출발한 차는 소백산 자락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내성천의 발원지로 향하는 길이다. 불과 이틀 전에 내린 눈으로 산야는 온통 흰 색이었다. 심지어 도로도 흰 색. 평소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달렸다. 도로 위로 듬뿍 뿌려진 모래 덕에 크게 무리는 없다. 뒷 좌석의 사람들은 김서린 창을 문질러 밖을 확인한다. ‘아름답다’는 표현들이 들린다. 느린 속도 덕분에 아름다운 경치를 얻은 셈이다.

부석사 입구를 지나치고 드디어 봉화의 물야면에 닿았다. 왼쪽 차창 밖으로 보이던 백두대간을 이제 정면으로 두고 달렸다. 차 안에서 그나마 그 지역을 아는 내가 설명을 했다. “정면으로 보이는 저 능선이 ‘백두대간’이에요. 저기 골짜기 곳곳에서 물이 흘러와 내성천이 되는 거에요.”

곧 오전약수라는 곳에 도착할 거라고 덧붙였다. 강은 어느 한 곳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야 전체에서 발원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으나 차는 금세 오전약수에 도착했다.

지율스님은 앞장서 걸어가 약수 앞에서 참가자들에게 설명했다. “30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그 땐 정말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정말로 병을 고쳐나간 사람들이 있었어요.” 조선시대 약수대회에서 1등을 했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그야말로 ‘사람도 고치는 강’인 셈이다.

» 물야저수지. 3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일대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 그들은 이곳에서 물을 꾸준히 마시고 요양한 뒤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 거북이 조형물에서 '병도 고치는' 약숫물이 끊임없이 나온다

» 물 맛을 보는 참가자들. 처음 맛보는 물에 대해 표정이 제각각.

» '철봉 맛'을 본 참가자 재희. 표정에서 물 맛이 느껴진다.

» 어느 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그토록 큰 낙동강도 처음에는 작은 개울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게 물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다.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물은 70%내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생명의 생성과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물이 병을 치료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은 우리를 만들어 주고 또 치료도 해 주는 그야말로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

그런 막강한 능력을 가진 약수가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거북이 입에서 많지 않지만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 물맛이라면 내가 판단하기로 ‘철봉 맛’이다. 병을 고치는 이유가 아니라면 보통의 맹물처럼 벌컥벌컥 들이킬 ‘맛’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스님의 설명 덕인지 아이들도 한 바가지씩 들이킨다. 처음 맛보고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했던 나의 반응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도 고치는 내성천 발원지를 조금 떠나 하류 쪽으로 조금 내려오니 넓디 넓은 호수가 나왔다. 다름아닌 물야저수지다. 얼음이 얼고 그 위로 눈이 쌓였다. 꼭 드넓은 설원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인공적인 호수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괜히 심술이 났다. 참가자들도 ‘멋지다’, ‘아름답다’ 같은 말들을 뱉어냈다. 그들에게 ‘4대강 사업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乃城川 三百里(내성천 삼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하고 새겨진 발원지 비석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은 밝다. 이른 아침 따뜻한 이불 속에서 지었던 ‘귀찮은 표정’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부터 진짜 답사의 시작이다. 

» 내성천 발원 기념비 앞에서 단체사진. '소한'의 혹한에도 참가자들의 표정이 밝다

내성천은 봉화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일대에서 발원해 물야면과 봉화읍내를 관통한다. 영주의 이산면과 평은면 사이사이의 크고 작은 논 밭 사이를 흘러흘러 예천군의 산야도 비껴 흘러간다. 이제는 유명해진 회룡포에서 360도 방향을 튼다. 이렇게 300리, 즉, 120㎞ 정도를 흐른 뒤 경북 예천의 삼강마을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 공식적(?)으로 낙동강은 태백시의 황지에서 발원한다고 하지만 강으로 흘러오는 산골짜기 곳곳이 어찌 ‘발원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내성천은 발원하자마자 물야저수지에 갇혀 강 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도중에 크고 작은 수많은 농업용 보들로 멈칫거린다. 봉화 읍내를 지나 이산면에 이르면 내성천은 자연적인 모습으로 회복한다. 좌우로 굽이치며 한 쪽은 가파름을 한 쪽은 완만함을 남겨둔다. 완만한 쪽엔 깨끗한 모래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다양한 생물들의 쉼터가 된다. 사람들이 느끼는 이곳의 아름다움은 크나큰 덤이다.

특히나 내성천은 우리나라에서 또 세계적으로도 드문 모래강이다. 강 표면에 드러난 곳은 물론이고 영주댐을 건설하며 드러났 듯 강 속 20m 내외까지 모래가 가득 차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는 물은 충분히 흘러가고 유기물은 걸러낼 만큼의 공간이 있다. 걸러진 유기물은 모래 알갱이에 붙어사는 다양한 미생물의 먹이가 된다.

그 덕에 모래강은 ‘정수기’ 노릇을 톡톡히 하며 맑은 물을 유지시켜주는 특별한 강인 셈이다. 더군다나 낙동강에도 엄청난 모래를 공급하여 ‘정수기’ 구실을 전해주기도 한다. 안동댐 상류의 낙동강 모습과 내성천이 합류한 다음의 낙동강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도 그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내성천에 거대한 댐이 건설되고 있다. 영주시 평은면에 공공기관(국토해양부와 수자원공사)과 여러 민간건설사(삼성물산과 동부건설 등)이 힘을 모아 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갇혀버리면, 댐 상류는 거대한 호수가 되어 버리고, 하류는 모래가 끊겨 자갈만 드러나게 된다. 모래강의 특징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세워졌던 댐 계획은 1999년에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고, 10여년간 아무런 문제없이 지내왔던 걸 생각하면, 댐 건설 목적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영주댐 홍보물에는 댐 건설의 첫번째 목적으로 ‘중하류지역의 수질개선을 위한 하천유지용수’라고 밝히고 있다.

모래강의 신비나 영주댐으로 인한 파괴에 관한 이야기도 좋지만 피부로 직접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지율스님은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첫 날의 메인 프로그램을 ‘내성천 얼음썰매 타기’로 넣었을 것이다. 

» 어른이 아이의 썰매를 끌어주기도 하고,

» 어른이 어른의 썰매의 끌어주기도 했다. 썰매에 타면 일단 아이로 변신!

» 강은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함박 웃음을 주었다.

» 이렇게!

» 썰매타기의 마무리는 뜨끈뜨끈한 군고구마

봉화읍내에는 내성천 위에 모래를 조금 걷어낸 뒤 물을 가두어 만든 얼음썰매장이 있다. 게다가 썰매는 무료로 빌려주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신나서 썰매를 들고 얼음판으로 달려갔다. 며칠 전만 해도 얼지 않아 운영을 못 했다. 강추위가 고맙기도 하다.

썰매 위에 앉거나 무릎을 꿇었다. 못이 박힌 작대기를 얼음판 위에 꽂고 뒤로 밀었다. 쌓인 눈 때문에 ‘신나게’ 가지는 못했지만 아이들 웃음소리만큼은 얼음판 여기저기로 미끌어져 갔다. 서로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얼음판을 즐겼다.

이 썰매장 홍보물에는 ‘추억의 썰매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강 가장자리가 얼면 나무 판자에 길고 날카로운 쇳조각을 대고 썰매를 만들어 탔다. 논에 물을 대고 얼려 아이들을 위한 썰매장을 만들기도. 어른들의 ‘추억’을 지금의 아이들에게 주는 셈이다. 이젠 이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도 이날의 썰매타기는 오래동안 기억될 것이다. 다만, 아이들이 다 컸을 때, 그들의 아이들도 이와 같이 탈 수 있다면 좋겠다. 다 사라지고 지금은 이렇게 진짜 강 위에서 썰매를 탈 수 있는 곳은 몇 안되니 말이다.

썰매장의 흥분 때문이었을까 괴헌고택으로 이동한 뒤에도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았다. 강은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져 있었고, 논은 경작금지 팻말을 앞세우고는 여러가지 들풀들이 자라나 있었다. 

강 일대 새들의 생태를 설명할 요량으로 참가한 박중록 선생님(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은 우리들이 도착하자 날아오르는 작은 새들이 ‘쑥새’라고 설명했다. 그는 “쑥새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있는 건 처음 봅니다.”라며 이곳 일대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알렸다. 

지율스님은 “댐이 건설되면서 이곳에 농사를 못 짓게 했어요. 1년 정도만 묵혔을 뿐인데 여러가지 생명들이 돌아왔어요.” 두더지나 곤충들, 그리고 새들도 기존의 논에 비해서 훨씬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이 논들은 사실, 제방이 생기기 전까지는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강 습지 였다.

» 이산면 일대의 논은 지난해 농사를 짓지 않았다. 불과 1년 정도만 지났을 뿐인데 많은 생명들이 돌아왔다.

» 말똥가리는 하늘에서 답사단을 반겨주었다.

» 수몰지구 내에 있는 괴헌고택.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 하더라도 그 '문화'까지 옮길 수 있을까?

» 괴헌 고택 안을 살펴보는 지율스님.

» 괴헌 고택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 아이들.

곧이서 큰 새가 날아올라 우리 위를 빙~빙~ 돌았다. 말똥가리였다. 이들도 곤충이나 작은 새들, 두더지들과 함께 불어났다. “와~ 크고 멋진 새가 우리를 반기네요!” 아이같은 순수가 섞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지율스님이었다. 마치 이곳의 자연이 다소나마 살아난 것이 자신이 살아났다는 듯한 인상이다. 얼마나 기쁜 목소리인지!

아쉽게도 파헤쳐진 강은 이곳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었다. 즐겁게 놀던 아이 준일이도 ‘멋진 새’를 올려다보다 휘청하며 강 쪽으로 떨어질 뻔 했다. 그가 서 있던 곳이 포클레인으로 모래를 가파르게 쌓아놓은 작은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로 영주댐이 완공되고 담수를 하게 되면 몇 년동안은 이곳 논은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결국엔 수장되고 말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런 일은 절대 없도록 빌었다.

숙소 봉화전원생활센터엔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동국대학교에서 생태학을 가르치는 오충현 교수님이다. 그는 답사단에게 복잡하지 않은 ‘생물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리산에 방사한 몇 마리의 곰들이 번식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던진 뒤 생명들이 대를 잇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개체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다. 호랑이의 경우에는 암수 각각 300마리 이상이 있어야 ‘유전자의 다양성’이 유지되어 그들이 멸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근친으로 태어난 자식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상’ 범위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 그는 참가자들에게 '생물다양성'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또 다른 질문으로 “‘종’보전을 위해 동물원만 있으면 될까요?”하고 던진 뒤, 그들이 살 수 있는 서식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생’의 서식지가 없으면 보전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범위는 어떤 동물은 좁고, 어떤 동물은 넓다. 서식범위가 넓은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충분한 서식지가 보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이론을 강에 접목시켜 설명했다. 강이 댐이나 보들로 가로막혔을 때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기존의 환경에 적응해오던 동물들이 호수가 된 강에서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은 수위에 따라서 온도 차이가 많이 날 뿐 아니라 흐름도 각기 다르다. 갑자기 그런 곳이 깊은 호수로 변했을 때 어떻게 될까? 강 속의 생태가 바뀌면 그 강에 적응해 있던 강 밖의 생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내성천은 더군다나 모래강으로 모래에 적응해 살고 있던 생물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생물이 이곳에서 멸종되면 전세계에서 멸종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흰수마자’가 그런 꼴일 것이다. 

낮의 쾌활했던 분위기는 잠시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슬퍼할 수만은 없는 노릇아닌가. 우리가 내성천의, 낙동강의 슬픈 현실을 알았다면 행동하면 될 일. 희망을 갖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기쁜 일이다

» 가장 활기차게 뛰어놀던 아이, 준일. 갑자기 눈 밭에 드러누워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 조심스레 일어나 머리위에 선을 하나 그었다. '천사'라는 설명이다. 그는 강변에 천사를 남겨두고 왔다.

글·사진 김성만(필명 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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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 현장팀에서 활동했었다. 파괴를 막는 방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2012년 3월부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달려라 자전거)를 냈고,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서울성곽 걷기여행)의 저자이기도 하다.이메일 : sungxxx@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likeb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