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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일 토요일

꾸준히 잘나간 그들… ‘2012 올해의 법조인상’ 수상도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01일자 기사 '꾸준히 잘나간 그들… ‘2012 올해의 법조인상’ 수상도'를 퍼왔습니다.


‘떡값 검사’로 지목된 7인

검찰-자본 유착 고발한
의원과 기자가 유죄받는 동안
검사들은 요직 두루 거친 뒤
대부분 로펌이나 변호사 개업
일부는 경제계 입문하거나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 계획도

검찰을 조롱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표현은 ‘떡검’이다. 개방형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서는 “떡값을 받아먹은 검찰”, 곧 떡검의 유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새로 개업·이사를 하거나 명절이 되면 주위에 떡을 돌리는 미풍양속이 있는데, 검사로 대표되는 검찰 구성원이 기업체·유관기관·민원인 등에게 소위 ‘떡값’ 명목으로 뇌물을 받고, 그 결과 검찰이 담당한 사건 처리 등에 있어 편의를 봐주거나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별칭이 붙었다.”

“권악징선의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

2005년 7월22일 이상호 당시 (문화방송) 기자는 ‘엑스파일’로 불리는 안기부 불법도청 테이프와 그 녹취록 등을 입수해 삼성이 검찰 간부 등에게 거액의 ‘떡값’을 전달해 왔다고 보도했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이어 같은 해 8월18일 엑스파일에 떡값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노 대표가 밝힌 7명은 김두희·김상희·김진환·안강민·최경원·한부환 변호사와 홍석조 비지에프(BGF)리테일(옛 보광훼미리마트) 회장이었다. 한국을 뒤흔든 삼성 엑스파일 사건의 시작이었다. 기업으로부터 일없이 떡값을 받아 챙기는 검사를 가리키는 단어, ‘떡검’은 이때부터 언론에 오르내렸다.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드러낸 것은 검찰권력과 자본권력의 음습한 고리였지만, 사건의 결말은 대다수 국민이 느끼는 법감정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떡값 수수 관행을 고발한 노 대표와 이 기자는 각각 지난 2월14일, 2011년 3월17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7인의 검사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출세가도를 질주했다. 안진걸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사무처장은 이런 결과를 가리켜 “권선징악이 아니라 악행을 권장하고 착한 행실을 벌하는 ‘권악징선’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특정 기업이 떡값이라는 이름의 뇌물로 검찰권력을 길들이려 했다면 뇌물을 주고받은 이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상식인데, 이를 고발한 언론인과 야당 국회의원만 처벌하고 정작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상식과 정의가 완전히 거꾸로 선 사례로 남을 것이다.”안강민 변호사는 2005년 삼성 엑스파일 사건 당시 노 대표가 ‘엑스파일 떡값 검사 7인 실명공개’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자 그를 명예훼손과 통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당사자다. 노 대표는 엑스파일에 나와 있는 “지검장은 (떡값 리스트에) 들어 있을 테니까 연말에 또 하고…”라는 1997년 9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발언을 근거로 안 변호사 이름을 떡값 검사 명단에 올렸다.1997년 엑스파일이 만들어질 무렵 서울지검장이었던 안 변호사는 이후 대검찰청 형사부장까지 지낸 뒤 1999년 검찰을 나왔다. 변호사 개업 이후 그는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와 2008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각각 국민검증위원회, 공천심사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겨레)는 대법원의 노 대표 유죄판결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28일 안 변호사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지만 당사자와는 통화가 되지 않았다. 대신 안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엑스파일을 봐도 다른 검사와 달리 안 변호사의 실명은 찾아볼 수 없는데, 노 대표가 이름을 공개한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 변호사 생각”이라고 전했다.엑스파일이 녹음될 당시 서울지검 2차장검사였던 김진환 변호사는 “이번에 2차장 된 부산에서 올라온 내 1년 선배인 서울 온 2차장, 연말에나 하고…”라는 홍 회장 발언 때문에 7명에 포함됐다. 이를 근거로 노 대표는 2005년 국회에서 “당시 서울지검 2차장검사로 홍석현씨의 1년 선배인 김진환 전 서울지검장은 연말에 따로 떡값을 받은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지난 28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엑스파일은 대화 당사자들이 1997년 추석을 앞두고 누구에게 ‘인사’할 것인지 논의하는 내용으로, 내 실명은 나와 있지 않고 대화 내용도 떡값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지 말자는 것인데 떡값 검사로 몰아붙이는 것은 불쾌하다”고 밝혔다.김 변호사는 엑스파일 녹음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과 서울지검장 등 검찰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4년 변호사로 개업해 현재 법무법인 충정의 대표 변호사로 재직중이며 한국형사소송법학회와 대한공증인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사법시험 동기이기도 한 김 변호사는 4월24일 치러지는 충남 부여·청양지역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김 변호사 쪽 관계자는 지난 28일 “4월 재선거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비자금 사건때 변호사 맡은 사람도

사촌 관계인 김두희, 김상희 변호사는 엑스파일에 가장 적나라하게 이름을 올린 경우다. 엑스파일을 보면 홍 회장은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김두희 전 총장은 한 둘 정도는 줘야 할 거예요. 김두희는 2천 정도. 김상희는 거기 들어 있으면 500 정도 주시면, 같이 만나거든요”라고 말했다. 당시 김두희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뒤 성균관대 이사를 맡고 있었고, 김상희 변호사는 대검 수사기획관 자리에 있었다.이후 김상희 변호사는 법무부 차관까지 올랐으나 엑스파일 사건이 터진 뒤 곧바로 사퇴했다. 이후 2009년 엘지(LG)전자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김두희 변호사는 성대 이사를 거쳐 1999년 유민문화재단 초대 감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유민문화재단은 홍 회장의 부친 홍진기 중앙일보 설립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법인이다.홍석조 비지에프리테일 회장에게는 ‘떡값’이 의미 없었는지 모른다. 그는 ‘범삼성 일가’다. 홍석조 회장의 아버지는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고, 그의 형과 누나가 홍석현 회장,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다. 홍 관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이다.노회찬 대표는 엑스파일 폭로 당시, 홍석조 회장의 이런 위치 때문에 그가 삼성의 ‘떡값 배달’ 역할을 맡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엑스파일을 보면, 그의 형 홍석현 회장은 “석조(당시 서울지검 형사6부장)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 좀 주라고 하고…”라고 말한다.홍석조 회장은 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불거진 이듬해인 2006년 광주고검장을 그만두고 경제계에 입문했다. 2007년 3월 보광훼미리마트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홍석조 회장은 폭로 당시 “나한테 돈을 받았다는 사람을 찾아오라”며 의혹을 부인했다.또한 엑스파일에는 홍석현 회장이 “그다음에 생각한 게 최경원”이라고 하자 이학수 부회장이 “(명단에) 들어 있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홍 회장은 “들어 있으면 놔두라. 한부환도 들어 있을 거고…”라며 말을 받는다.최경원 변호사(김앤장법률사무소)는 1997년 엑스파일에 이름을 올렸을 때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 1998년 법무부 차관을 거쳐 2001년 장관 자리까지 올랐다. 전직 검찰공무원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인 최 변호사는 지난 연말 검사 비리와 성추문 등 검찰 조직이 위기에 처하자, 1월11일 동우회 모임에서 “정부 수립 이후 검찰이 어려움을 맞은 적도 많았고 정부 내에서 비중이 줄어든 적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참담할 정도로 위상이 실추된 적은 없었다. 뼈를 깎는 과감한 자기혁신만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길”이라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1일 전화통화에서 “떡값을 줬다는 명단이 아니라 주라는 명단이다. 삼성에 아는 사람도 없고 받은 적도 없다. 주변에서 장관까지 한 사람이 나설 필요가 있냐고 해서 (명예훼손) 소송을 걸지 않았다”고 말했다.한부환 변호사는 1997년 서울고검 차장검사였고 2002년에는 법무부 차관을 맡았다. 노회찬 대표의 폭로 직후 그는 “97년 삼성 쪽과 접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삼성 출신 김용철 변호사가 의혹을 제기해 특검 수사가 이뤄진 2008년 2월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 때 삼성 쪽 변호사에 선임됐다가 석달 만에 사퇴한 적이 있다. 지난해 말 법조언론인클럽은 “제1기 로스쿨 평가위원장을 맡아 법학전문대학원의 세밀한 평가를 주도했다”며 한 변호사를 ‘2012 올해의 법조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최성진 남종영 기자 csj@hani.co.kr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형님들만의 잔치는 아직도 진행형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07-01일자 기사 '형님들만의 잔치는 아직도 진행형'을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 Ⅱ 경제계의 MB맨들- ① 임기 말에도 건재한 측근들

 

MB 측근들 요직 장기 독점… 경제계 곳곳에 흔들리지 않는 아성 구축

정치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산산이 흩어진 데 반해, 경제계에서는 아직 측근 그룹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소수의 MB맨들이 요직을 장기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말로 가면서 인사 편중은 더 심화되고 있다.
김중겸 한국전력 사장은 기업인 가운데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린다. 경북 상주 출신 TK(대구·경북) 기업인인데다 고려대를 나왔고, 이 대통령과 현대건설에서 같이 근무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3월 산업은행 등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건설 사장에 선임됐고, 2011년 9월에는 관련 분야 경험이 전혀 없는 한국전력 사장이 됐다. 두 차례 모두 이 대통령과의 특수 관계가 작용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한전 사장 선임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논란이 거셌다.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 정책 등 민감한 이슈들이 걸려 있는데다 한전의 비중과 위상을 고려할 때 결코 민간인 비전문가가 맡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사장에 취임했다. 자기 사람 챙기기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김 사장뿐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 활동한 이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체로 비슷한 궤적을 거쳐왔다. 몇몇 핵심 인물들이 이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요직을 돌아가며 맡는 방식이다. 물론 자리를 바꾸지 않고 연임을 통해 5∼6년씩 임기를 보장받는 경우도 있다. 관료, 학자, 기업인 모두 마찬가지다. 일단 MB맨으로 분류되면 임기 말까지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현재도 경제 각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MB맨들이 줄줄이 거세되는 현실과는 대조적이다.
경제계의 MB맨 가운데 원로 그룹을 든다면 강만수 KDB금융 회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사공일 전 한국무역협회장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최측근으로 불리는 강 회장은 기획재정부 장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11년 3월부터 3년 임기의 KDB금융 회장을 맡고 있다. 일단 2014년 3월까지는 임기를 보장받는 셈이다. 최 전 위원장은 정권 출범과 함께 방송통신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의 강도가 높아지자 올해 초 위원장직을 물러났고, 4월 말 관련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파이시티 사건이 아니었다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방통위원장 자리를 지킬 상황이었다. 사공일 전 한국무역협회장은 정권 초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지낸 뒤 2년 임기의 무역협회장을 마치고 지난 2월 물러났다. 많은 측근 인사들이 임기 말 자리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비교적 깨끗하게 물러난 경우다.

임기 말까지 자리 보장받는 측근들

핵심 측근 가운데 이보다 젊은 층으로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백용호 청와대 정책특보, 곽승준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 등을 꼽을 수 있다. 박 장관은 정권 초기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정기획수석을 하다가 고용노동부 장관을 거쳐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 가장 화려한 이력을 쌓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강만수 회장 못지않게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웠던 백용호 특보는 지난해 12월 청와대 정책실장을 끝으로 현 정부를 떠났다.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청와대 정책실장을 두루 거친 뒤 물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화여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퇴임 3개월 만에 다시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 정책특보로 복귀했다. 결국 정권이 끝날 때까지 이 대통령과 한배를 타게 됐다. 강만수 회장, 백용호 특보와 함께 경제 분야의 대표적 MB맨으로 꼽히는 곽승준 위원장은 집권 초반에 국정기획수석을 거친 뒤 4년이 다 되도록 미래기획위원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혁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측근 그룹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대부분의 대통령 주변 인사들과 달리 이권을 챙기기보다는 정책 개발에 집중해왔다는 점이다. MB 진영 안에서 경제정책과 관련해 그나마 균형 잡힌 목소리를 내는 편에 속한다. 공교롭게도 박 장관은 성균관대, 백 특보는 이화여대, 곽 위원장은 고려대 등 모두 강단에 섰던 교수 출신이다.

MB맨들로 장악된 금융권 수장들이 김석동 금융위원장·권혁세 금감원장과의 간담회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김석동 위원장, 권혁세 원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강만수 KDB금융 회장. 한겨레 강재훈

경제 관료 중에서는 오래전에 정치인으로 변신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을 제외하면 윤진식 새누리당 의원,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이현동 국세청장 등이 눈길을 끄는 MB맨들이다. 윤 의원은 MB 정부 출범 1년 뒤 청와대에 합류해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거쳤으나 곧바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에서 활동했다.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최중경 전 장관은 강만수 회장의 후광에 힘입어 발탁된 사례다. 기획재정부 차관, 경제수석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을 했다. 경제수석 시절에는 이 대통령에게 상당한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리하게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관치를 부활시켰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장관에서 물러난 뒤 현재 뚜렷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있다.
권 장관은 부동산 정책 분야에서 이 대통령과 코드가 가장 잘 맞는 인물이다. 경북 의성 출신의 TK 관료인 그는 정권 출범 직후 국토해양부 차관으로 있다가 1년 남짓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했으며, 지난해 5월부터 국토부 장관을 하고 있다. 5년 임기 내내 차관과 장관을 거치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이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을 가장 충실하게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역시 경북 청도 출신의 TK 관료인 이현동 국세청장은 현 정부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경제 관료 중 한 명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장에 불과했던 그는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불과 3개월 근무한 뒤 국세청의 최고 요직인 조사국장에 선임됐다. 이어 7개월 만에 서울지방국세청장이 됐고, 6개월 뒤 국세청 차장, 다시 1년 뒤 국세청장이 됐다. 서울청 국장에서 서울청장이 되기까지 11개월, 국세청장이 되기까지 2년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청장이 들어선 뒤 국세청의 주요 간부들은 TK 등 영남 일색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간인 출신 공직자로 눈에 띄는 인물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이윤호 외교통상부 경제통상 대사 등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때 각각 경제수석, 금융위원장, 지식경제부 장관을 맡았고 이후에도 여러 요직을 거치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이들은 애초부터 측근이었다기보다는 민간 출신을 선호했던 이 대통령의 의중과 맞아떨어져 신임을 얻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TK나 고려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특징이다. 김 총재는 집권 초기 이례적으로 경제수석에 발탁됐으나 6개월 만에 하차했다.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나가 있다가 2009년 4월 임기 4년의 한은 총재에 임명됐다. 기획재정부나 한은이 아닌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출신으로 경제수석과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전 이사장은 현 정부에서 초대 금융위원장을 맡았고, 1년여 공백 기간에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있다가 2009년 12월부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똑같이 평가하긴 어렵다. 전 이사장은 세계은행·우리금융·딜로이트컨설팅 등 다양한 경력 때문에 이전부터 주요 보직 물망에 여러 차례 올랐으나, 김 총재는 학자로서의 경험 외에 별다르게 내세울 게 없는 상황이었다. 김 총재는 민간인 출신으로 가장 잘 풀린 경우에 해당한다. 이윤호 대사는 정부, 기업, 경제단체를 두루 거친 민간 경제전문가라는 점을 높게 평가받아 지경부 장관에 발탁된 사례다.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지경부 장관에 임명됐고, 퇴임 이후 몇 달 되지 않아 모스크바 대사로 발령이 났다. 대사 임기를 마친 뒤에는 유력한 무역협회장 후보로 거론됐으나 한덕수 전 주미대사가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낙마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거나 신임을 받는 정부 및 재계 인사들. 왼쪽부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백용호 청와대 정책특보, 김중수 한은 총재,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이현동 국세청장,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김중겸 한전 사장. 한겨레 자료 & 뉴시스

금융권은 지금도 MB맨들이 장악

금융권은 MB맨들이 완벽하게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강만수 KDB금융 회장을 비롯해 어윤대 KB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등 4대 천황이 건재하다. 김 전 회장은 최근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하나금융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나머지 3명도 금융권에서 입지가 확고하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역시 대표적인 MB맨으로 분류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연·학연으로 엮인 이 대통령과의 관계다. 4대 천황은 하나같이 영남 아니면 고려대 출신이다. 강 회장은 경남 합천 출신이고, 어윤대·이팔성 회장은 고려대를 나왔다. 최 회장은 금융권에서 몇 안 되는 포항 동지상고 출신으로 이 대통령과 동문이다.
기업에서는 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장은 2009년 2월 KT 회장으로 선임됐고, 지난 3월 연임에 성공했다. 경영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고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데도 연임에 성공한 경우다. 이 회장을 MB의 측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회장 취임 뒤 KT에선 정권 주변 인물들의 잦은 낙하산 인사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서유열 KT 사장이 불법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차명폰을 만들어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KT 관계자는 "일종의 공생 관계"라고 말했다. 정준양 회장도 같은 시기인 2009년 2월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후광에 힘입어 포스코 회장에 올랐다. 지난 3월에는 연임에 성공했다. 그는 현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08년 초 부사장으로 승진한 지 2년밖에 안 된 상황에서 사장으로 승진했고, 다시 1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올랐다. 역대 포스코 회장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이 사장을 했던 현대건설 인맥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건설 부사장 출신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과 김중겸 한국전력 사장이 대표적이다. 이 사장은 임기가 3개월밖에 안 남았지만, 김 사장은 2년3개월이나 남아 있다. 현대건설 출신은 아니지만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도 MB맨으로 분류된다. 경북 문경 출신인데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기 때문이다. 서 사장은 이 대통령 당선 직전인 2007년 11월 사장에 선임됐고, 2011년 1월 연임에 성공했다.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에서 산업은행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뒤에도 사장직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경영실적이 안 좋은 상황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경제 분야에서 측근이나 실세로 불리는 사람들의 특성은 대체로 비슷하다. 여러 자리를 옮겨가며 임기 말까지 실속을 챙기고 있다. 정부 안에서는 물론이고 공기업, 공공기관, 금융권, 오너가 없는 민간기업에 이르기까지 정부 손길이 미치는 곳이면 예외가 없다. 믿는 사람만 쓰는 이 대통령의 평소 인사 스타일 때문이다. 특히 연임이 많은 게 특징이다. 어느 정권이든 임기 말이면 자리를 챙겨주지 못한 측근들을 배려하느라 2∼3년씩 연임을 허용해주기 힘든 게 현실이다.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현 정부에서는 최시중 전 위원장, 이석채 회장, 정준양 회장, 서종욱 사장 등 연임자가 많다. 소수의 사람들이 핵심적인 자리를 놓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 분야에서 MB맨들로 구성된 '이너서클'은 아직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권력의 배려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낙하산 기관장들은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기업 주주총회가 한창일 때 한 금융사의 고위 임원은 "사외이사 선임 요구 등 권력 핵심부의 인사 청탁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다. 소수가 요직을 장기간 독점하다 보니 그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인사 편중이 더욱 심하다. 임기 말로 가면서 영남이나 고려대 출신 인사들의 인사 독점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남기 (이코노미 인사이트) 편집장 jnam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