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7일 목요일

삼성 직업병, 너무도 불리한 ‘산 자들의 싸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07일자 기사 '삼성 직업병, 너무도 불리한 ‘산 자들의 싸움’'을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윤지연 참세상 기자

삼성 직업병, 하면 떠오르는 것은 국화꽃잎과 새하얀 방진복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영정사진, 유족과 활동가들의 울음소리가 차례로 떠오른다. 지난 6월 2일, 쉰 여섯 번 째 삼성 직업병 피해자가 사망했다. 국화꽃잎과 오열소리가 가득 찬 빈소를 생각한 뒤에야 실감했다. 아, 또 한 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났구나. 

피해자와 유족들은 생전 백혈병과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등의 희귀병과 싸운다. 온전히 개인의 질병이라고 주장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삼성과도 싸워야 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 ‘산재 입증’ 싸움은 불리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치료비와의 싸움은 간간이 피해자와 유족의 무릎을 꿇게 한다.

그래서 삼성 직업병 기자회견이나 추모식, 집회를 가득 메우는 유족의 오열은 매번 참아내기가 어렵다. 특히 그들의 울음에 묻어있는 미안함은 분노보다도 슬프다. 법정에서, 근로복지공단에서, 삼성 본관에서 수 없이 싸워왔던 유족이 느끼는 미안함은, 정부와 삼성이 그들에게 전가한 또 하나의 상처였다.

그 상처는 공식처럼 따라다니는 생활고에 시달릴 때 그들을 더 옭아맨다. 지난 2일 사망한 윤아무개씨는 13년간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해 왔다. 그 기간 동안, 윤씨의 모친과 윤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돼 있었다. 뇌종양 수술 후 1급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혜경 씨 역시 생활고를 피해갈 수 없었다. 유일한 가족인 모친 김시녀씨는, 혼자 걷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을 수 없는 혜경 씨를 보살피느라 모든 경제활동을 포기했다. 병원비와 집세, 생활비는 언제나 그들을 짓누른다.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그들의 생존은 불투명하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자녀는 또 다시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된다. 이 사회적 병폐는 삼성 직업병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된다. 사회 구조가 어긋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유족들은 가난의 죄책감을 덜어버리지 못한다. 작년 3월, 삼성 천안공장에서 일하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고 김주현 씨의 부친 역시 부채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워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로 인해 고압적인 회사의 행동에도 아무 말 없이 숨죽여 살았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찢어져요”라며 울먹였다. 지난 5월 사망한 이윤정 씨의 남편 정희수 씨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음 세상에서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산재법의 문제도, 근로복지공단과 삼성과의 공조도, 공정 과정에서의 화학물질 사용도, 무엇보다 가난의 대물림 문제 까지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사회 구조는 그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정부나 근로복지공단이 아닌, ‘반올림’이라는 작은 단체뿐이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고 이윤정씨의 추모식에서 “저희가 무슨 힘이 있다고 이렇게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지 고통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피해자와 유족들의 삶과 죽음, 투쟁과 생활을 온전히 힘없는 개인과 단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지금까지 반올림에 접수된 삼성 직업병 제보자는 140명, 반도체 전자산업 전체 직업병 제보자는 160명에 달한다. 

윤지연 참세상 기자
하지만 정부와 삼성의 대응은 여전히 기만적이다. 2010년,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삼성이 고용한 대형 로펌인 ‘율촌’ 변호사들이 공단을 대신해 대리인단으로 포진됐다. 이들은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통해 완벽한 안전보호장구와 안전장치가 마련된 공정과정을 소개했다. 이미 신형 라인으로 교체된 공장 내부가 담긴 영상에는, 피해자들의 현장이 지워져 있었다.

그 현장을 본 유족 황상기씨는 “저것은 거짓말입니다”라고 소리를 쳤다. 재판이 끝난 후, “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황유미를 살려내라”는 그의 외침은 계속됐다. 지워져버린 현장, 땅에 묻혀 말이 없는 피해자들, 정부와 삼성의 공조에 대응해야 하는 너무나 불리한 싸움. 언제까지 이들은 너무나 공고한 삼성의 벽 앞에서 ‘내 가족을 살려내라’는 외침을 이어가야 할까.

윤지연 참세상 기자 |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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