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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다시 갈라진 광화문 현판, 문화재위원은 알고 있는지?


이글은 대자보 2012-10-14일자 기사 '다시 갈라진 광화문 현판, 문화재위원은 알고 있는지?'를 퍼왔습니다.
[논단] 정부의 문화재 정책은 엉터리, 현판은 한글로 고쳐 달아야

오늘 10월 12일 고궁박물관에서 행사가 있어서 갔다가 광화문 현판을 살펴보니 맨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쫙 갈라져 있었다. 처음에 갈라져서 땜질한 곳이 아니고 모습도 처음처럼 삐뚤빼뚤 갈라진 것이 아니라 이번엔 1자로 다른 곳에 금이 가 있었다. 어떤 분은 8월에 그걸 봤단다. 하루에도 중국과 일본, 국내 관광객이 수 만 명씩 오는데 한심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멀쩡하고 40여년 잘 걸려있던 한글현판을 떼고 수년 동안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들어 단 한자현판이 세 달도 안 되어 갈라져서 지난해 땜질을 했는데 다시 금이 갔다. 문화재청은 지난 4월에 현판을 다시 단다고 공청회까지 했는데 아직까지 아무 말이 없다.'

▲ 다시 금이 간 광화문 현판, 전에 금이 가서 땜질한 곳이 아니고 모습도 다르다 © 이대로

그런데 오늘 10월 12일 고궁박물관에서 시행한 ‘조선어학회 항일투쟁 70돌 기념대회’에 참석한 최광식 문광부장관과 김종택 한글학회 회장, 그리고 여러 한글단체 대표들이 행사 전에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광화문 현판을 새로 만드는 일이 왜 아직 안 되고 있는지 이야기가 있었다.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이 최 장관에게 “지난번 4월 공청회에서 한글로 다는 것이 옳다는 판명이 났는데 왜 아직 바꾸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니 최 장관은 “문화재위원들이 결정할 일입니다. 처음 모습대로 복원하자고 해서 그렇게 된 일로 압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남기심 연세대 명예 교수가 “중대한 국가 정책을 문화재위원 몇 사람이 결정할 일도 아니고 미룰 일도 아니다. 옛날엔 학자나 공무원 몇 사람이 결정했지만 지금은 국민 수준이 높아져서 국민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내가 나가서 광화문 현판을 살펴보니 그렇게 금이 간 것이었다. 그래서 마침 문화재위원실이 고궁박물관 건물에 있기에 그 방에 들어가 위원장과 위원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 상근이 아니라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오는 10월 24일에 회의가 있어 그 때나 나올 것이란다. 그래서 그 전에 면담하고 싶다고 신청을 했다. 

▲ 한글단체는 지난 수 년 동안 한글로 달라고 건의하고 기자회견과 시위도 수십 번 했다. © 이대로

한글단체는 2005년 멀쩡하게 걸린 한글현판을 뗀다고 할 때부터 반대했다. 그리고 4년 전에 대전에 있는 문화재청까지 찾아가 그 부당함을 알리고 한글로 달아달라고 건의한 일이 있다. 그러나 한자로 달겠다고 해서 광화문 앞에서 수십 차래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시위도 했다. 그런데 우리 건의를 무시하고 2010년 광복절에 문화재청은 한자현판을 달았으나 세 달도 안 되어 금이 갔고, 그 현판을 땜질했으나 또 금이 간 것이다. 대한민국 얼굴인 광화문 현판이 그 꼴이나 가슴이 아프고 부끄럽다.

나는 지난 4월17일 문화재청이 주최한 광화문 현판 글씨 공청회에서 한글로 달아야 하는 주장을 발표했다. 나는 “원형복원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지만 원형을 본 사람도 없어 원형 복원은 불가능하니 한글이 태어난 곳이 광화문 안 경복궁이란 것도 알리고, 그 앞길도 세종로이며 세종대왕 동상이 있으니 한글이 더 어울린다. 문화재 창조차원에서, 외국인과 후손을 생각해서 대한민국 얼굴인 경복궁 문패를 한글로 달고 한글을 자랑하고 관광자원으로 만들자. 국민들에게 자긍심도 심어주고 나라발전의 기틀로 삼자.”는 주장을 했고, 많은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문화재청이 한 국민 여론조사도 한글로 하자는 사람이 많았다. 

▲ 한자현판을 달고 세 달도 안 되어 갈라진 현판. © 이대로

이제 두 말할 것이 없다. 당장 한글로 바꿔 달고 한글을 빛내고 힘센 나라를 만들자. 경복궁과 광화문 앞에는 중국 관광객이 날마다 밀려오고 있다. 앞으로는 더 올 것이다. 그들은 우리다운 볼거리를 찾고 있다. 옛날에 우리가 그들 문화의 그늘에 살았으며 그들 한문을 썼다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면 한글을 자랑하고 보여주자. 그 탄생 배경과 정신, 한글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려주고, 오늘날 한글로 나라가 발전한 것을 자랑하고 강동을 주자. 

▲ 지난 4월 17일 공청회 때 이대로가 발표한 한글 현판 본보기. 한자보다 아름답다 © 이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한글로 우리 힘을 키워 독도를 지키자


이글은 대자보 2012-06-11일자 기사 '한글로 우리 힘을 키워 독도를 지키자'를 퍼왔습니다.
[이대로의 우리말글 사랑] 정부는 빨리 독도에 방파제를 만들라

나는 지난 6월 3일 이 땅에 태어나 처음 독도를 가봤다. 20여 년 전 민족문제연구소 후원회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독도 지키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여러 번 글도 쓰고, 관련 행사도 참여하면서 독도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은 허가를 받아야 독도에 갈 수 있게 했고 뱃길도 없어서 가기 힘들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신고제로 바뀌어 이제 한 해에 수십만 명이 가지만 아직 불편하고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어업과 관광업을 할 수 있도록 선착장도 늘리고, 방파제도 만들고, 동도와 서도가 오갈 수 있는 구름다리도 만들고, 방문객과 어민이 쉴 곳과 관리사무소, 식당과 숙박시설 들을 운영할 민간이 10여 가구 이상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 흥사단 독도수호본부 회원들이 방파제를 빨리 만들라고 외치고 있다. © 이대로

그런데 어렵게 갔으나 독도에 올라갈 수도 없고, 그 곳에서 30분밖에 머물 수 없어서 기념사진 찍기도 바빴다. 아쉽고 섭섭했다. 지금은 해양경찰만 그곳을 지키고 갈매기만 살 수 있는데 그래서는 제대로 지킬 수도 없고 활용을 못한다. 그리고 울릉도를 거쳐서 가기 때문에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도 가기가 힘들다. 왜 우리 땅에 그런 시설도 마음대로 못한단 말인가! 많은 이들은 지난날 정부가 일본과 밝히지 않는 거래가 있어 일본 눈치를 보기 때문에 방파제 시설도 못 하고 우리 국민 출입을 막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근본은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우리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을 많이 하고 듣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아 지쳐있다. 이제 두 꼬인 실타래를 모두 풀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번 독도 방문 때도 흥사단 독도수호본부, 코리아독도녹색운동연합, 애국국민연합, 경실련국경발전시민연대 들의 400여 회원들이 독도를 방문했다. 독도로 가는 배를 타려고 묵호항에서 기다릴 때부터 방문객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도는 한국 땅, 정부는 독도에 방파제를 빨리 만들고, 바로 갈 수 있는 뱃길을 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독도 땅을 밟자마자 빨리 떠나라고 하니 아쉽기만 더했다. 적어도 두 시간 이상 머물 수 있게 해야 한다. 바다와 어업 개발 시설도 해야 한다.

▲ 조선시대 대마도와 울릉도, 독도가 경상도 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도가 문경새재 박물관에 여러 점 있다. © 이대로

왜놈들은 신라 때부터 우리 땅을 자주 짓밟고 노략질을 했다. 그래서 신라 문무대왕(재위 661∼681)은 얼마나 왜구 침투에 시달렸던지 죽어서도 이들을 막겠다고 포항 앞바다 물속에 무덤을 만들었다. 고려 말기엔 왜구들이 남해안은 말할 것이 없고, 서해안 황해도까지 자주 출몰해서 노략질을 하는 바람에 해안 몇 십리에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였다. 왜구 침략이 고려가 망한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선은 건국하자마자 전라도 충청도에 병영을 만들고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해서 나라를 편안하게 했다. 그리고 대마도와 독도는 그 이전부터 확실한 우리 땅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보다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나라 힘을 키운 뒤에 우리나라를 먹을 생각으로 19세기에 먼저 대마도를 제 땅으로 만들고, 다음에 독도를 먹은 뒤에 1910년 우리나라를 통째로 먹었다. 다행이 1945년 연합군과 싸우다가 일본이 지게 되어 왜놈들은 물러갔으나 남북이 두 동강이 났는데 이 또한 왜놈들 때문이다. 그 뒤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이란 국경을 선언하면서 독도를 되찾고 대마도도 우리 땅이라고 외쳤으나 대마도는 되찾지 못했다. 그리고 1950년 남북 전쟁으로 이 땅은 완전히 폐허가 되면서 일본이 다시 일어나니 우리는 큰소리를 칠 수 없고, 왜놈들은 독도가 제 땅이라고 떠들면서 교과서에까지 넣어 가르치고 있다. 거기다가 현대판 친일 정치인과 기업이 설치고 있다.

▲ 지난 6월 4일에 독도에 가서 “한글로 힘을 키워 독도도 지키고 대마도를 되찾자!”고 외치고 다짐했다. © 이대로

나는 이번에 독도 땅만 잠깐 밟아보고 되돌아오면서 왜 임진왜란 때에 그들에게 짓밟혔고, 1905년에 왜놈들에 독도를 빼앗겼으며, 1910년에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더욱이 오늘날 독도는 제 땅이라고 우긴다. 나는 “우리가 힘이 없어서 일본이 우리를 깔보고 괴롭힌다. 빨리 일본보다 더 힘센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글로 힘을 키우는 길이 해결책이다.”라는 일본 문제 해답을 되새겼다. 한글은 우리 자랑이고 자존심이며 문화와 산업 발전 최신 도구요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한글날을 공휴일로 되돌리고 나라 기운을 북돋을 때 국민 정신력과 지식수준이 일본보다 높아져서 일본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다짐했다.

오래 전부터 한글사랑 운동을 같이 한 배준성 회장은 독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배안에서 내게 “독도 본래 이름은 돌섬이다. 대마도도 일본인들이 쓰시마라고 하는 데 그 이름도 우리말 ‘두 섬’을 자기들 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우리말 땅이름을 되찾아 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 한글과 우리말로 우리 자주정신을 키우고 힘센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자꾸 우리 땅이라고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힘을 키우자. 그래야 왜놈들이 깔보지 않는다. 천 년이 넘게 우리를 괴롭히고 나라까지 통째로 빼앗았던 왜놈들의 못된 짓을 절대로 잊거나 용서할 수 없다. 평화로울 때 튼튼한 나라, 힘센 나라를 만드는 일은 나라 빼앗긴 뒤에 목숨을 바쳐서 싸우는 일보다 먼저 잘해야 할 일이고 매우 중요한 일이다. 

▲ 나는 얼숲(페이스북)에 대마도를 되찾자는 모임인 “두 섬(쓰시마) 되찾자”를 만들었다. © 이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중국 절강성 월수외대 한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