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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2일 화요일

사상검증 하려고 종북 만든 듯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12일자 기사 '사상검증 하려고 종북 만든 듯'을 퍼왔습니다.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가기]'광의의 종북 개념'에 대하여

경향신문의 단독보도로 ‘종북’이 다시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경향신문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국정원이 북한을 찬양하는 게시물이나 웹사이트 등을 국정원에 신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초청행사를 열었고, 행사에 변희재 빅뉴스 대표가 강사로 참여했다.
이날 변 대표는 박원순, 이정희, 낸시 랭, 공지영 등이 대표적인 종북주의자라고 주장했다.(국정원 강연서 “박원순·공지영…낸시 랭도 종북주의자”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3040600145&code=940202)
경향신문의 보도 이후 CBS 시사자키가 낸시랭을 인터뷰했고, 낸시랭이 인터뷰에서 변희재를 조롱하면서 ‘종북’ 논란은 더욱 확산되었다. 그러자 변희재는 고발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낸시랭을 종북주의자로 지목한 적이 없다며 경향신문 보도는 오보라고 주장했다. (고발뉴스, 변희재 “낸시랭은 종북세력에 속하지 않아”,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8)

▲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실 주최로 지난해 6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신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종북주사파 국회입성 방지 대책은?' 토론회에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발제를 하고 있다.ⓒ뉴스1

‘광의의 종북 개념’, 종북은 과연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종북은 무엇인가? 우파들은 늘 진보좌파들을 향해 종북의 칼을 겨누고, 진보좌파들은 자신이 종북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고발뉴스에 실린 변희재 인터뷰에 종북이 무엇인지, 그 개념에 대한 소개가 등장한다. “가장 협의의 종북은 ‘간첩과 이적 단체’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가장 극단적인 광의의 개념으로 가게 되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인간의 질이 낮은 사람'까지를 말할 수도 있다. 북한 김씨 일가는 현명한 판단을 못하도록 북한 주민들의 인간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종북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인간의 질이 낮은 사람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김씨 일가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공통점 때문에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종북이 된다. 이런 논리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은 전두환 정권 시절 발생한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알리하고 포먼하고 권투시합을 하는데 김일성이 알리 편을 들었을 때 피고인도 알리 편을 들었다면 그것도 이적행위냐.” (이 말을 들은 최병국 검사는 “북괴를 찬양하는 발언을 자제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검사도 ‘광의의 종북 개념’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A와 B가 가진 공통점 혹은 유사성 때문에 A와 B가 똑같다고, A가 B를 추종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김일성이 알리를 응원하고 나도 알리를 응원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김일성과 내가 같은 편이 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김씨 일가가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또 나도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내가 북한의 김씨 일가를 ‘따르는’ 종북이 될 수는 없다. 또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주관적인 기준이 아닐까? 내 눈에는 아무한테나 종북 딱지를 붙이는 자들이야말로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같은데, 그렇다면 그 자들도 ‘종북’이란 말인가?

종북이라는 이름의 사상검증

문제는 이러한 넓은 의미의 종북을 근거로 사상검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낸시랭이나 공지영, 박원순이 간첩 행위를 한 종북세력이라는 이유로 법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종북이라고 낙인찍힌 진보좌파들이 모두 법적인 처벌을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종북’ 개념은 이들에게 사상검증의 잣대로 기능한다.
수구꼴통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자신들이 싫어하는 집단이나 인물에 대해 전부 다 ‘종북’ 딱지를 붙인다. 종북 페미니스트, 종북 학생회, 종북 동성애자 등등. 그런데 왜 하필 자신이 싫어하는 집단이나 인물에게 붙이는 칭호가 ‘종북’인 걸까?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멍청이, 바보, 찌질이라고 불러도 된다. 그런데 하필이면 ‘종북’이라는 단어를 쓴다. 종북 세력을 축출하자고 주장하는 우파 논객들은 아무한테나 종북 딱지를 붙일 의도가 없다고 말한다.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넓은 의미의 종북 개념이 인터넷 상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사상검증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동안 문재인 전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국정원 직원 김모 씨가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수서경찰서에 들어가는 모습 ⓒ뉴스1

이런 종북 낙인찍기는 찌질한 넷우익들의 장난질 수준을 넘어섰다. 국정원 직원 김씨는 4대강이나 무상보육 철회,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두둔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치켜세우는 글을 작성했다. 야당 인사를 비판하고 박근혜를 띄우는 활동을 하고, 야당 후보를 칭찬하는 글에는 반대를 눌렀다. 국정원은 이런 직원의 활동을 ‘대북심리전’이라 칭하고, 종북세력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야당 인사를 비판하는 게 종북주의랑 대체 무슨 상관인 걸까? 국가 정책에 반대하면 북한 편이라는 걸까? 국방부가 나꼼수를 ‘종북 앱’으로 규정한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방부는 나꼼수 등 정부 비방 팟캐스트를 듣는 군인들의 스마트폰을 조사하고, 삭제 조치했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 곧 종북이란 말인가?
국정원이 시민단체인 환경연합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가 환경연합의 항의를 받고 사과를 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 8월 6일, 4대강에서 녹조가 발생하자 환경연합은 ‘4대강으로 남조류 발생’ ‘녹조 오염 물고기, 물놀이로 독소 노출’이라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2주 후인 8월 20일 북한의 (우리민족끼리)가 ‘녹조는 이상기후 아니라 보 때문’ ‘녹조오염 물고기 섭취도 치명적’이라는 논평을 냈다. 국정원은 둘이 똑같은 주장을 한다며 환경연합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동아일보는 국정원의 주장을 인용해 (‘한쪽이 정부비판하면 바로 옳소'), (‘북한-종북 단체들, 온라인선전 2만건 글 보니’)라는 기사까지 썼다. 국정원과 동아일보는 a와 b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a와 b가 똑같으며 a가 b를 추종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일보는 통합진보당 대의원들이 이름표를 들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 북한과 닮았다고 지적했고, 넷우익들의 사이트에는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북한 글꼴로 피켓 문구를 작성했다며 종북 운운했다. 넓은 의미의 종북 개념을 학습한 이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진보좌파들이 ‘종북’ 낙인에 맞서야 하는 이유

이런 사상검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반대파를 손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개객끼 해봐.” “너 종북이지?”와 같은 물음 속에서 진보좌파들은 항상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 자신의 사상이 북한과 관계없다는 것을 밝히는 수세적인 입장에 내몰린다. 이런 사상검증이 판을 치는 이상 합리적인 토론은 불가능하고, 표현의 자유도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특히 진보좌파들에게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합리적인 문제제기나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종북세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고자 어떤 진보좌파들은 우파들처럼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종북이라는 단어는 진보진영 내에서 탄생했다. 2001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간에 논쟁이 있었을 때 사회당 인사들이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당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탈당파들이 민주노동당 당권파를 ‘종북’이라고 불렀다. 조선일보는 탈당파 인사였던 조승수를 인터뷰하여 “진보진영 내에 종북세력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고, 그 뒤로 보수언론과 우파들은 친북보다 종북이라는 단어를 더 즐겨 사용한다.
진보좌파들이 종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종북세력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자신들은 북한을 지지하는 종북세력과 다른 ‘좌파’라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사상검증으로 혈안이 된 우파들 눈에는 언제나 ‘그놈이 그놈’이 될 수 있다. ‘종북세력’의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진보좌파들은 언제나 종북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 종북이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낙인찍고 사상검증을 시도하는 이상 그 칼날은 언제든지 종북이 아닌 좌파들에게도 되돌아올 수 있다. 진보좌파들에게 “우리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 이상의 대응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조윤호 /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저자  |  mediaus@mediaus.co.kr


조윤호. 20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서 20대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 (개념찬 청춘), (별별 차별)(공저)이 있으며, 최근 박근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박근혜로 한국사회 읽기)를 출간했다

2013년 3월 5일 화요일

메가스터디 광고가 말하고 있는 것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04일자 기사 '메가스터디 광고가 말하고 있는 것'을 퍼왔습니다.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가기]

며칠 전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의 광고가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어떤 네티즌이 2013년 새 학기를 앞두고 메가스터디가 시내버스 등에 게재한 광고를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서 논란이 일었다. 문제가 된 메가스터디의 광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아브라카다브라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

▲ 2013년 새 학기를 앞두고 대형 입시업체 '메가스터디'가 시내버스 등에 게재한 광고 내용이 SNS상에서 논란이 되었다.

이 광고는 소위 ‘우정파괴’ 광고라 불리며 많은 네티즌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많은 네티즌들과 언론은 이 광고에 대해 “시험 잘 보려면 친구를 버려야한다는 말이냐.”며 메가스터디가 비교육적인 내용을 선전하고 입시경쟁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메가스터디는 “해당 광고는 새 학기를 맞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학생들에게 가장 와 닿는 소재인 친구를 차용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우정이냐 공부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지만 우리는 메가스터디에 대한 비난을 넘어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정이나 인간관계 같은 가치들과 공부를 대립 항으로 설정하고 배치시키는 한국의 교육 현실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SNS 상에서 이번 메가스터디 광고 논란에 대해 “현실이 잘못된 거고 메가스터디는 그러한 현실을 표현했을 뿐이다.”, “친구가 경쟁자인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이 더 문제다.”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미 많은 교사들이 학교에서 공공연하게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라는 말을 해왔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내가 고2때 교사들이 전교생을 강당에 집합시킨 적이 있다. 그 때 교사들은 대학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일장연설을 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우리가 하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 목록에는 연애도 있었고,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쓸데없이 잡담하거나 놀지 말라는 말도 했다. 그런 거(?) 할 시간에 수학문제를 하나라도 더 풀고 영어단어를 하나라도 더 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여 일 앞둔 시점인 지난해 7월 30일 밤, 서울 종로구 경복고에서 고3 수험생들이 여름방학임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수능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뉴스1

고3때 친구들이 쉬는 시간에 밖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학생주임 선생이 와서 아이들을 혼냈다. “고3이 한가롭게 농구나 하고 있냐? 그럴 시간에 공부해라.” 고3때 내가 야자 시간 도중에 잠깐 밖에 나와 친구들하고 잡담을 한 적이 있다. 담임이 나를 따로 불렀다. “너 그렇게 애들이랑 어울리다 성적 떨어진다.”
공교육기관이라는 학교도 이런데, 학원은 오죽하겠는가? 고등학교 때 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이사장과 학원 선생들은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모아놓고 대학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대학에 가려면 우정이나 연애, 기타 개인적인 희로애락들은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정신교육을 시켰다.

서로가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부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공부가 아닐까?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문제에 부딪치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동해야 한다. 그런데 왜 선생들은 교실에 짱 박혀 문제 푸는 것 외에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한국의 교실에서는 친구들과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공부로, 교육의 일환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메가스터디 광고를 패러디했다.

한국의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다. 2008년 내신등급제가 도입될 당시 언론들은 서로 필기노트도 보여주지 않고, 친구가 교과서를 훔쳐 갈까봐 자물쇠로 사물함을 잠그는 교실의 풍토에 대해 보도했다. 아이들은 서로를 협동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이겨야 할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네가 자는 동안 남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지난해 4월 서울시교육청이 초·중·고교생 26만여 명을 대상으로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했다. ‘친구들과 사이가 원만해서 좋다’는 문항의 만족도 지수에서 고등학생은 5.0점 만점에 3.2점을 기록했다. 이는 초등학생 4.42점, 중학생 4.24점에 비해 낮은 수치다. 입시경쟁이 본격화될수록 동급생을 친구가 아닌 치열한 경쟁자로 인식하는 게 아닐까? (한겨레, [“친구 끊고 공부해” 우정파괴 메가스터디], 바로가기)

‘공동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청년들

내가 고3일 때 어른들은 “1년만 참아. 대학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해. 연애도 하고 친구들하고 마음대로 놀아.”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지금도 경쟁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대학생이 되어도 자유를 만끽할 수 없다. 학점을 잘 받으려면 서로 경쟁해야 되고 좁은 취직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에 시달리면서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고3을 겨우 버텨낸다 해도 더 심한 경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실이 20대가 정치.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현상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청년들은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내가 주변의 지인들에게 집회에 같이 가자고 유혹하고, 정치조직이나 정당에 참여해보자고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취업 스터디 때문에 바빠서”, “알바를 해야 해.” 하지만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 알바를 여러 개 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은 우리가 공통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활동’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들에게 중요한 건 이런 공통의 목소리가 아니라 취업이나 알바 등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것이 되어버렸다. 몇몇 진보적인 어른들은 요즘 청년들이 보수화되었다고 한탄하지만, 보수화된 게 아니라 원자화된 것이 아닐까?

▲ 2013학년도 전남대 총학생회 및 단과대 신임 학생회장단은 지난해 12월 6일 오후 전남대학교 1학생회관 앞에서 '대학생의 투표 기준은 반값등록금 실천 대통령' 기자회견을 가졌다.ⓒ뉴스1

한국사회는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 때부터 학생들에게 나 혼자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친다. ‘공부’는 홀로 문제집을 푸는 행위, 남들을 이기기 위한 자기계발 등의 좁은 의미로 한정된다. 메가스터디 광고가 표현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단순히 우정이냐 공부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한 양자택일 속에 숨겨진 현실은 공동체가 개개인으로 갈기갈기 찢겨짐으로써 공동체로서의 학교가 사라진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개인들은 정치. 사회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 아닐까?

교육에 대해 고민하자!

공동체는 공동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개인들을 통해 성립한다. 개인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공동체는 재생산에 실패하고, 파편화된 개인들만 남는다. 이것이 우리가 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조윤호 /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저자  |  mediaus@mediaus.co.kr


조윤호. 20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서 20대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 (개념찬 청춘), (별별 차별)(공저)이 있으며, 최근 박근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박근혜로 한국사회 읽기)를 출간했다.

2013년 2월 5일 화요일

‘정권 유지’라 쓰고 ‘국익’이라 읽는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2-05일자 기사 '‘정권 유지’라 쓰고  ‘국익’이라 읽는다'를 퍼왔습니다.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가기]댓글 알바 뛰는 국정원 직원의 현실

국정원 요원들을 다룬 드라마 (7급 공무원)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보기관 요원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 (아이리스2)도 곧 방영될 예정이다. 7급 공무원과 아이리스2 이전에도, 국가정보기관 요원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는 많았다. 그곳에서 정보기관 요원들은 임무에는 냉철하지만 인간다운 매력을 풍기는, 하지만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멋진 요원들로 묘사된다.

나 알바 아니야, 정직원이야!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 눈앞에 있는 정보기관 요원들의 모습은 어떨까? 재작년 초를 떠올려보자. 한국 무기를 구입하겠다며 방문한 인도네시아 외교사절단의 호텔방에 한국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숨어들어 노트북을 훔쳐보다 호텔직원에게 걸렸다. 그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정원의 허접한 일처리(?)와 무리한 임무수행을 질타했다.

▲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에서 국정원 직원 불법선거 운동 혐의사건 관련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이날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는 현재 상당히 뒤집힌 상황이다. ⓒ뉴스1

최근 국정원이 다시 정치권과 언론의 중심에 있다. 국정원이 북한 간첩이라도 소탕한 걸까? 아니면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주요한 정보라도 입수한 걸까? 아니다. 문제는 인터넷이다. 민주당이 대선을 전후로 국정원 여직원이 집권여당에 동조하고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뗐으나 수사를 통해 사실이 드러나자 국정원은 인터넷 상의 종북주의자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보도를 통해 국정원 직원이 진보성향의 인터넷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야당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무더기로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국정원은 “대북심리전 활동을 위해 글을 올렸다.”고 말을 바꿨다.
이 사건을 접하고 맨 처음에 든 생각은 “아니, 국가정보기관이 정치적 중립성을 어기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여론 선동을 하다니!”라는 분노가 아니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이 최초로 의혹을 제기하며 국정원 직원의 집을 에워쌌던 날,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바로 하루 전날에도 국정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황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을 것이라 공식 발표했다. 두 가지 사건이 대비되면서 국정원의 무능함은 더욱 빛났다. 트위터에는 “인터넷에서 ‘너 알바지?’라고 물으면 기분 나빠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알바가 아니라 정직원이었구나.”라는 자조 섞인 유머가 떠돌았다.

종(從)북 vs 종(從)명박

이 사건이 황당하게 느껴지는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활동을 국가안보, 국익으로 포장하는 국정원의 가증스러움 때문이다. 국정원은 종북주의자들에게 인터넷과 여론이 조작당하지 않도록 대북심리전을 펼친 것이라 주장했다. 국정원 직원은 김정일과 김정은,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올렸다고 한다. 북한에 관련된 글이니 국정원에 이에 대해 개입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치자. 북한에 관한, 사실과 다른 정보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자 국정원이 이에 대응한 거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지난달 25일 불법선거운동 혐의를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29)가 3차조사를 마친 후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문제는 국정원 직원 김씨가 4대강 사업이나 무상보육 철회, 제주해군기지 철회 등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두둔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치켜세우는 등 이명박 정권을 옹호하는 글을 많이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당 인사를 비판하고 박근혜 후보를 띄우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칭송하고 박근혜를 치켜세우는 게 종북주의에 대응하는 것과 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그리고 이게 왜 ‘대북심리전’일까?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고 박근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적이고, 한국의 적인 북한과 똑같은 놈들이라는 걸까?
대선 직전 (한겨레)는 전직 국가정보원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국가정보원이 2011년부터 4대강 사업 등 국정홍보와 ‘좌파와의 사상전’을 내세워 심리정보국 산하에 안보 1, 2, 3팀을 설치해 ’인터넷 댓글 사업’을 전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 “국정원 엘리트 70명 ‘댓글알바…자괴감 느껴” ) 이 인터뷰에서 전직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4대강을 비롯한 치적홍보에 열을 올렸는데, 국정원에서도 처음에는 이런 정권홍보를 위해 조직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치적 홍보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홍보 활동을) 확장하게 되면서 야당 인사에 대한 비판 또는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기사에 반박 댓글을 다는 쪽으로 확장된 것이다”고 전했다.
이 인터뷰는 ‘국정원이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건 나쁘다’는 식으로 전개되었지만, 사실 치적 홍보 역시 ‘정치적 활동’에 가깝다. 특정 정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안보 관련 사항도 아닌 정부정책을 홍보하는데 왜 국가정보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걸까? 그리고 홍보처를 통해 정책홍보를 하면 되지 왜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여론전을 하는 걸까? 이들은 특정 정권,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과 국익을, 특정 정치세력의 정권유지와 국가안보를 혼동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정권의 이익 및 안정과 국익, 국가안보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UN 안보리에 회부했을 때의 일이다. 참여연대가 천안함 사건 관련 정부 발표문에 대한 의문점을 UN안보리에 서한으로 발송했다.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참여연대를 난타하며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물었다. 그 때 어김없이 국익논리가 등장했다. 한국 정부의 발표에 반박을 제기하는 주장을 한 것이 국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정부발표에 의혹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게 국익을 해친다고? 국익을 해체는 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욕을 먹는 것이 아닌가?
국방부가 나꼼수 등 정부 비방 팟캐스트를 듣는 군인들의 스마트폰을 조사하고, 삭제 조치한 일도 있었다. 군인들이 지키는 건 국가이지 특정 정권이 아니다. 나꼼수 듣는다고 종북이면, 나꼼수를 못 듣게 한 국방부는 종(從)명박이다.

‘정권 유지’라 쓰고 ‘국익’이라 읽는다

이명박 정부만 이렇게 해괴한 국익 논리를 내세운 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 벌어진 황우석 사태를 떠올려보자. 황우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도한 (PD수첩을 비롯한) 언론은 정치권은 물론 온갖 ‘국민’들의 물리적, 정신적 협박에 시달렸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은 황우석을 비난하는 건 국익을 해치는 것이라 주장했다. 유시민은 "언론의 자유가 판을 쳐서 악취가 난다"는 말까지 했다. 국익이 침해되는 게 아니라 황우석을 밀어주고 줄기세포 사업을 추진한 정부의 공이 사라지기 때문에 정당한 의혹제기를 막은 게 아닌가? 만약 황우석에 대한 의심이 전혀 제기되지 않다가 나중에 황우석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은 개망신을 당했을 것이고 세계인들의 안주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누가 국익을 침해한 걸까?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국정원의 모습도 유사하다. 정권 유지를 위해 봉사하면서 이를 국익과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다. 정권 유지라 쓰고 국익이라 읽는다. 경찰이나 검찰 등 다른 국가기관이라고 다를까? 보수우파들은 언제나 그들이 하는 일에 국익, 국가안보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국익은 누구를 위한 국익이며, 그들이 내세우는 국가안보는 누구를 지키기 위한 것일까. 국정원은 ‘대북심리전’을 한답시고 정권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쳤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국정원은 아마 그런 네티즌들은 국민도 아니고, 지켜야 할 대상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내세우는 국가안보가 많은 사람들을 지켜줄 수 없는 이유다.

조윤호.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학내 자치언론 (대학문화)의 편집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서 20대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 (개념찬 청춘), (별별 차별)(공저)이 있으며, 최근 박근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박근혜로 한국사회 읽기)를 출간했다.

2013년 1월 7일 월요일

문제는 비정규직이야, 이 바보들아!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07일자 기사 '문제는 비정규직이야, 이 바보들아!'를 퍼왔습니다.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가기]

나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다. 이제 나는 졸업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떻게 먹고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난 또래 친구들과 달리 토익이나 제2외국어, 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약간 막막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 그런 거 없어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막연하게 언론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교육센터의 언론사 준비반에서 수업을 들었다. 현직 PD인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한 명씩 일어나 왜 언론사에 입사하고 싶은지 말해보라고 했다. 하나같이 언론인의 꿈과 포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쭈뼛쭈뼛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원래 방송작가가 하고 싶었는데요. 작가를 하면 비정규직에 삶도 불안정하다보니 부모님이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다 피디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PD는 그래도 정규직이잖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몇몇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마 입사면접을 보러 가서 저런 식으로 말했다간 바로 ‘광탈(광속 탈락)’할 지도 모른다. 청년들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쓰는 내내 그리고 면접장에서 열정과 꿈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나의 열정과 꿈이 당신네 회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끊임없이 어필해야 한다. 그런데 꿈과 열정은 온데간데없고 부모님이 반대해서, ‘정규직’이라서 이 직업을 선택하겠다니! 하지만 난 그의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가 꿈과 열정을 팔아가며 얻고자 하는 건 정규직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아닐까?
그의 말이 끝나고 강사였던 PD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PD도 이제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가 아니에요. 만약 여러분들이 무언가 표현하고 싶고 방송 제작이나 기획을 정말 하고 싶어서, 그래서 외주제작사건 비정규직이든 뭐든 상관없다면 PD시험을 보세요. 하지만 PD를 하는 이유가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 때문이라면 포기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문이 너무 좁아요. 방송3사도 요즘 다 외주에 비정규직 씁니다.”
정규직 일자리 때문에 PD가 되고 싶다는 한 학생의 말도, 이에 대해 ‘이제 그런 거 없다.’고 대답하는 PD의 말도 모두 사실이다. 청년들은, 그리고 고용시장에 새로 들어서는 구직자들은 수없이 많은 비정규직 일자리, 소수의 정규직 일자리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정규직을 더욱 더 갈망한다. 
취업 준비를 조금만 해본 사람이면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면 나처럼 이제 갓 취업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본 사람도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려면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 채용 자리는 쉽게 나지 않고, 고시도 경쟁률이 엄청나다. 하지만 언제 붙을지도 모르는데 몇 년 동안 고시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다가 나이 많이 먹으면 취직도 잘 안되는데 말이다.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에 대한 어른들의 말말말

청년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 현실을 잘 모르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다. 취업준비생들에게 명절날 만나는 친척 어른들의 ‘취직’ 이야기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아는 형은 잘 나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데도, 명절 때마다 어른들에게 “언제 이직하냐.” “아직도 거기 다니느냐.”라는 말을 들으며 산다. 친구의 사촌형은 10대 일간지 중 한 곳에서 일하는 한 기자인데도 조중동이나 방송3사 아니면 언론 취급도 안 해주는 어른들 때문에 매번 “때려 치고 대기업 시험 봐라.”라는 말에 시달린다. 어른들이 다른 사람의 직업을 무시하는 파렴치한들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어른들도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식들을 다그치는 것이다.

▲ 필자와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시립툰)이 그린 4컷 만화. 인터넷에 떠돌며 취업준비생들의 많은 공감을 샀다.

정치권이나 정책결정자들, 일부 언론들의 시각도 취업준비생들의 친척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년들이 ‘눈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왜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꺼려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은 막상 자기 자식이 비정규직이 된다고 하면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해줄까? 아마 웬만하면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거나 언젠가는 대기업으로 이직하라고 닦달하지 않을까?
몇몇 경제학자나 칼럼리스트들은 청년들에게 해외취업이나 창업을 권한다. 해외취업이야말로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보다 더 ‘좁은 문’이다. 한국에는 없는 일자리가 해외에는 넘쳐날 거라는 생각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모르겠다. 경제위기와 실업은 한국에만 닥친 일인가? 외국 나간 친구들도 취업이 안 돼서 다시 국내로 돌아오고 있다.
창업 역시 취업길이 막힌 청년들에게 하나의 ‘통로’는 될 수 있지만 ‘대안’은 될 수 없다. 자영업자 중  40%가 도산하고, 수없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빚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에서 자영업은 포화상태다. 청년들이 창업을 한다 해도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들마저 자영업자들의 도산이 사회문제라고 보도할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성공한 자영업자들의 성공신화를 보여주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망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면 너도 성공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를 위한 커리어, 인턴!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청년인턴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기업들에게도 이를 권장했다. 취업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던 나 역시 실무능력도 쌓을 겸 인턴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턴은 구직자들이 거쳐야할 ‘코스’ 중 하나다. 기업이 ‘신규’ 채용 대상자들에게 ‘경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인턴을 구하려고 보니 이게 인턴인지 정직원인지 구별이 안 간다. 인턴을 하기 위해 또 ‘스펙’이 필요하다.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 언론사의 인턴으로 일하려는데 온갖 화려한 스펙을 가진 취업준비생들이 모여든다. 인턴 하는데도 자기 스토리와 꿈과 열정이 필요하고, 토익성적과 무슨 놈의 '경력'이 필요하다. 경력을 쌓기 위해 인턴을 하려고 했는데 인턴에도 경력이 필요하다니.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 고교 졸업생 취업박람회와 채용설명회를 통해 중소기업에 조기취업한 새내기 청년인턴사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시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11 중소기업 새내기 청년인턴 합동연수'에서 연수시작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합동연수는 서울시인재개발원이 인턴사원을 위한 별도의 연수실시가 어려운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조기취업 인턴자들의 조직적응 및 역량강화를 위해 마련됐다.ⓒ뉴스1

여차저차 해서 인턴이 된다 치자. 그래도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데 정규직이 아니라고 돈도 안 준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안 늘리고 인턴을 적극 활용하여 기업을 운영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 기업들도 ‘선진국’에서 배운 모양이다. 기업들이 평일 내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인턴으로 고용하다보니 대학생의 경우 휴학을 안 하면 인턴으로 지원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졸업은 늦어지고, 졸업이 늦어지고 나이 먹으면 취직에 불리하고.......진퇴양난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인턴 제도를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놓고 청년실업이 줄었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인턴은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청년실업 대책이었다. (아, 4대강 파서 일자리 몇 개 늘린 거 빼고.)

문제는 비정규직이야, 이 바보들아!

국민통합을 내세우는 박근혜는 청년실업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박근혜가 대선 때 내세운 청년 취업 정책은 한 마디로 ‘스펙초월’이었다. 청년들이 스펙에 매달리지 않고도 취업할 수 있도록 모든 직종에 요구되는 직무 능력을 표준화하고(국가직무능력표준시스템), 이 직무능력을 교육할 ‘스펙초월 청년취업센터’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하지만 이미 기업들이 각자의 채용 절차를 가지고 있는데. 국가직무능력표준시스템을 수용할 지 미지수다. 오히려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서는 할 일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가 내신등급제를 도입했던 때를 생각해보자. 노무현 정부는 수능에 대한 수험생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내신등급제를 도입했지만, 수험생들의 부담은 오히려 늘었다. 수능과 내신 둘 다 잘해야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또한 취업준비생들은 이미 ‘표준화’된 토익과 ‘표준화’된 인·적성을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비판은 하지만 나에게도 답이 없다. 아마 나 역시 다른 취업준비생들처럼 열심히 스펙을 쌓고 시험 준비를 해서 취직할 것이다. 아니, 사실 그조차 불확실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청년들이 정규직의 안정된 일자리로 몰려드는 현실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정규직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정규직들에게 가해지는 높은 노동 강도와 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단순히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문제, 즉 한국사회의 재생산 문제가 걸려 있다. 비정규직의 노동조건과 불안안정노동을 해결하지 않고 청년실업에 대해, 한국사회의 재생산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기만이다.
이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은 어떤가? ‘노동의 유연성은 인정하되 기업들이 고용 형태를 공시하도록 해 사회적 압박을 유도한다.’는 것이다.(기업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의 구체적인 내용을 외부에 공시하도록 의무화) 고용 형태를 공시하도록 하면 기업들이 “아, 우리 기업이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는 게 들통 났어. 부끄러워. 이제 정규직화를 해야겠어.”라고 생각한다는 것일까?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는 이들이?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박근혜 시대는 청년과 구직자들, 노동자들에게 험난한 시기일 것 같다. 박근혜의 시대, 우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뭉치고 연대하며 이 시기를 함께 견뎌야 한다. 아마 나도 그럴 것 같다.

조윤호.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학내 자치언론 (대학문화)의 편집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서 20대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 (개념찬 청춘), (별별 차별)(공저)이 있으며, 최근 박근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박근혜로 한국사회 읽기)를 출간했다.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대선 이후, 남 탓과 무책임을 넘어 진보에 대해 고민하자!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24일자 기사 '대선 이후, 남 탓과 무책임을 넘어 진보에 대해 고민하자!'를 퍼왔습니다.
[조윤호의 우파의 시대에 살아남기]

대선이 끝난 지 5일이 지났다. 대선에 관한 이야기도 점차 줄어드는 분위기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멘붕’했던 이들도 점차 일상으로 돌아가고,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어 열광했던 이들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선의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당내 논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여타 정치세력도 대선 이후의 정국에 관해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 정부의 5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 10년에 이어 우파정부 10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파들은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다. 훗날 진보세력은 우파정부 10년을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진보적인 시민은 우파정부 10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

대선을 둘러싼 각종 책임론

트위터나 페이스북, 아고라 등 인터넷 공간에서는 아직도 대선을 둘러싼 ‘책임론’이 진행 중이다. 나는 이전에 미디어스에 올린 글에서(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486) 민주진보세력의 대선 패배 요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킨 경제문제의 해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독재 대 민주주의의 구도로 선거를 끌고간 점. 둘째, sns 등을 통한 진보담론이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점. 셋 째,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에게 유리하다는 오판. 하지만 민주진보세력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이 보기엔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특히 민주진보세력이 밀집한 인터넷 공간에서) 첫 번째 책임론은 ‘20대 개새끼론’이다. 20대가 50대만큼 투표하지 않아 민주진보세력이 졌다는 것이다. 20대의 투표율은 65.2%이고, 50대 투표율은 89.9%이다.(선관위가 공식 발표한 수치는 아니다) 선거가 끝나기도 전부터 트위터에는 ‘투표장에 20대가 안 보인다.’ ‘20대 투표 좀 해라’라는 협박성 글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고 박근혜가 당선되자 20대 개새끼론이 인터넷 공간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65.2%가 꽤 높은 투표율이라 생각한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지닌 20대들이 무려 65%나 투표한 건 대단한 일이다. 실제로 이는 지난 대선보다 약 18% 상승한 수치이다. 또한 투표한 20대 중 약 33%, 즉 3분의 1은 박근혜를 찍었다. 대체 20대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진보세력이 승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어디에 근거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저 ‘깨어있는 시민’들은 20대 투표율이 높은지 낮은지는 관심이 없다. 유일한 관심사는 자기네들이 지지하는 민주진보세력이 승리하느냐 마느냐이다. 노무현이 당선되었던 2002년 20대 투표율은 약 56.5%였고, 박원순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2011년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약 35%였다. 그런데도 당시 언론과 민주진보세력은 20대가 세상을 바꿨느니, 소외받은 20대가 투표로 응답했느니라며 온갖 20대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았다. 이번 대선의 20대 투표율은 노무현과 박원순이 승리하던 때보다 높다. 하지만 20대를 욕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은 그런 변화에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민주진보세력이 승리하느냐 마느냐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책임론은 ‘이정희 책임론’이다. 많은 언론들이 투표율이 경이적으로 높았던 50대를 인터뷰하며 이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정희가 박근혜-문재인과의 3자 토론에서 박근혜에게 너무 몰아붙이듯이 토론을 주도해, 이에 거부감을 느낀 장년층과 노인층이 투표장으로 대거 몰려와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이정희를 탓하거나 대선 패배의 책임을 이정희에게 돌리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다. 많은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정희가 박근혜를 시원하게 까준다며 오히려 좋아하지 않았던가? 쟁점 없는 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좋아하지 않았던가? 나아가, 이정희가 ‘왜’ 문재인이 어떻게 하면 승리할지를 고민하면서 토론에 임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정희는 존재감이 미미한 독자후보였고, 토론을 통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의 존재감을 알려야하는 처지였다. 더욱이 문재인 캠프는 이정희 캠프에 단일화나 선거연대를 제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급적이면 같은 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제스처를 취했다. 통합진보당 사태나 종북 이미지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정희가 문재인에게 가급적이면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토론에 임해야 하는 걸까? (심지어 이는 후보 등록 전에 사퇴한 심상정의 사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재인 캠프가 심상정 캠프에 먼저 단일화의 손길을 내밀거나, 정책 협상을 하자고 말한 적이 있던가?)
세 번째는 이정희 책임론과 유사한 ‘군소후보 책임론’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헤와 문재인을 제외한 강지원, 김순자, 김소연 등이 독자후보로 출마했다. 군소후보의 존재감이 워낙 미미했던지라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 비해 군소후보 책임론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깨어있는 시민들은 대선패배의 책임을 군소후보에게 돌리고 있다. 다 합쳐야 1%도 안 되는 후보들이 따로 출마한 게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진 거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또한 김소연, 김순자 후보의 지지자들 중에 박근혜가 싫어서 문재인을 찍은 사람들도 있다. 군소후보 책임론은 이런 비판적 지지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다. 더욱이 군소후보가 영향력이 미미하니까 단일화나 선거연대 등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면서 선거에 지니까 이제 와서 군소후보 탓을 하는 건 정말 꼴불견이다.
이 세 가지 책임론보다 더욱 가관인 네 번째 책임론은 ‘노인 책임론’이다. 정중하게 표현해서 그렇지 한 마디로 ‘노인 개새끼론’, ‘가난한 서민 노인 개새끼론’이다. 이명박 찍은 국민 욕하는 ‘국개론(국민 개새끼론)’의 다른 판본인 듯하다. 인터넷에는 노인복지를 없애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노인들을 고려장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미FTA가 되건 민영화가 되건 자기는 관심 끄고 불우이웃돕기도 안 하며 살겠다는 글들도 있었다. (이런 주장의 근저에는 ‘나는 복지나 경제민주화에 큰 이해관계가 없지만 힘든 서민들을 생각하여 복지나 경제민주화를 주장해왔는데 그걸 모르고 박근혜를 찍다니’라는 시혜적인 태도가 담겨 있어서 매우 불편하다.)
이 깨어 있는 시민들은 경제위기를 실감한 노년층이 안정된 변화를 위해 박근혜를 지지했으며 민주진보세력이 경제문제의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가 집권하면 어떻게 될지 한 번 당해보라고 노인복지 없애고 다 죽게 놔두자고? 그러면 그 사람들이 민주진보세력을 지지할 것 같은가? 박근혜에 대한 열광은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줄 지도자에 대한 신앙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 민주통합당 선대위 해단식 ⓒ연합뉴스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어디로?

이러한 책임론 공방 속에서 진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사라졌다. 가장 큰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지금의 광경은 4.11 총선의 데자뷰다. 4.11 총선 때도 당연히 새누리당이 패배할 줄 알았으나 오산이었다. 정권교체만 부르짖던 민주당 대신 변화를 보여준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그러나 총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총선에서 왜 졌는지에 대해 자체적인 분석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여전히 정권교체였고, 독재자 박근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대선에서 패배하자 “이길 선거를 졌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황당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지난 21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대선 패배에 대한) 분석은 나중에 하자”, “적을 두고 내부끼리 공격해선 안 된다.”, “문재인 후보 때문에 진 것”이라는 주장들이 난무했을 뿐 민주당이 어떤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선전했다며… ‘쇄신’ 없는 민주당”, 경향신문, 2012.12.23) 아마 이러한 내부의 논란은 친노와 비-친노 간의 권력 다툼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또 있다. ‘사회원로’니 진보재야인사니 하는 훈수꾼들이다. 소위 시민사회의 재야원로들은 원탁회의 등을 구성해 항상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번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이번 대선에게 한 게 도대체 뭘까? 문재인과 안철수의 후보 단일화를 압박했다. 안철수가 출마하자마자 단일화를 해야 한다며 문재인과 안철수를 압박했고 단일화에 진척이 없자 "무소속 대통령이 여야를 두루 아우르며 더 잘할 수 있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라는 성명까지 냈다. 일부 인사들(소설가 황석영 등)은 단일화 중재안을 내놓으며 사실상 안철수를 압박해 안철수 캠프의 반발까지 샀다. 결국 단일화는 ‘단일화를 위한 단일화’ 외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는 많은 야권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에게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재야원로들은 선거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판이 잘못되면 나 몰라라 다시 재야로 돌아가는 짓을 반복할 것이다.

남 탓과 무책임을 넘어 진보에 대한 고민으로

나도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한 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 박근혜가 된 걸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대선 후 소위 깨어있는 시민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들을 보며, 남 탓에 무책임으로 무장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왜 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세력을 확장하고 보수적인 노인층의 지지를 받을지, 20대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을지 고민하지 않은 채 그들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았다며 개새끼라 욕하는 정치세력에게 무슨 미래가 있을까. 이들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낸 진보정당의 정치인들이나 진보좌파들 또한 민주당과 깨어있는 시민들이 왜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적 지지’의 대상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파의 시대를 살아가는 진보세력에게는 대선패배의 책임을 남에게 돌릴 시간, 책임져야 할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시간이 없다. 한진중공업의 노동자와 현대자동차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금도 철탑 위에 노동자들이 있다. 경제위기의 심화로 벼랑 끝에 내몰린 저소득층과 비정규직이 있다. 문용린 교육감의 정책 변화로 다시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여전히 사회의 차별과 싸우는 성소수자, 장애인들도 있다. 이들이 보수우파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버티고, 또 승리할 수 있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지 차근차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번 대선에서의 박근혜의 승리가 남 탓과 무책임을 넘은 진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조윤호.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학내 자치언론 의 편집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서 20대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에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 (개념찬 청춘), (별별 차별)(공저)이 있으며, 최근 박근혜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바탕으로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박근혜로 한국사회 읽기)를 출간했다.

조윤호 / '보수의 나라 대한민국 ' 저자  |  mediaus@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