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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7일 일요일

민주노총 "여수 산업 단지 폭발 사고는 기업 살인"


이글은 프레시안 2013-03-15일자 기사 '민주노총 "여수 산업 단지 폭발 사고는 기업 살인"'을 퍼왔습니다.
사고 원인 놓고 노사 대립…한국노총도 비판 동참

전라남도 여수 국가 산업 단지 내 대림산업 HDPE(고밀도폴리에틸렌) 공장에서 14일 발생한 폭발 사고와 관련해 대림산업 측의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 회견이 개최됐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15일 오후 2시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림빌딩 앞에서 연 기자 회견에서 "대림산업 회장을 처벌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1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림빌딩 앞에서 '여수 산업 단지 화학 폭발 17명 사상 사고 대림산업 처벌 촉구 기자 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하청 노동자 사망, 누가 책임지나?

이들은 "화학 장치 산업이 밀집돼있어 화약고로 불리던 여수 산업 단지에서 급기야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며 "이는 글로벌 대기업을 자처하는 대림산업이 안전 규칙을 위반하고 무리한 공정을 진행하다가 발생한 기업 살인"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사고로 17명(사망 6명, 부상 1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상자 중 극심한 화상을 입은 2명 등 상당수가 위독한 상태여서 추가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사상자들이 모두 직격으로 화재를 당한 탓에 신체 훼손이 심해 신원 확인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재벌 회사들은 수천 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며 "이런 기업들은 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사고를 은폐하고 작업자 과실로 몰아가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이번 사고에서 발생한 17명의 사상자 중 15명이 하청 업체 노동자라는 사실을 환기하며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건설 노동 환경에 대해 지적했다. 이들은 "산업 전체가 다단계 하청 구조인 건설 현장에서는 매년 약 700명의 노동자들이 산업 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며 "그러나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화학 물질 정보 제공, 안전 교육, 보호구 지급 등이 발주처와 원청 업체의 책임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들은 하청 업체 노동자가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할 경우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는 관행을 개선하려면 "진짜 사장인 원청 업체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산재가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때문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들은 "지난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사망 사고 당시 40명의 건설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사업주에게 부과된 벌금은 2000만 원에 불과했다"며 "지난 2011년 이마트 탄현점에서도 냉동기 보수 작업을 하다 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이마트는 1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사고 원인 두고 노사 대립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폭발의 원인을 두고 생존 작업자들과 대림산업 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 작업자들과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 조합원들은 사측이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탓에 잔류 가스가 제거되지 않아 폭발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 회견에 참가한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실장은 "작업자들이 무리하게 작업에 투입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측은 '노동자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빨리 생산을 가동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대림산업 측은 저장 탱크 안에 남아 있던 연소성 가스를 모두 빼냈으나 잔류분진에 용접 불꽃이 튀어 폭발이 일어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스를 충분히 제거했지만 폴리에틸렌 원료를 저장해 둔 사일로(저장 용기) 내부에 남아 있던 분진 때문에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편, 같은 날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논평을 내 "노동자의 산재 사망을 막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특별 근로 감독 등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라"며 "국회 또한 산재 사망 기업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기업살인특별법' 제정을 더는 늦춰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남빛나라 기자

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우린 지금 매일 발암물질을 밥에 섞어먹고 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8일자 기사 '"우린 지금 매일 발암물질을 밥에 섞어먹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기업살인 사회를 넘어] 산업재해가 아니라 살인이다

요즘은 죽음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계속되는 죽음은, 한국 사회 불안정성의 결과이자 경향이다. 1964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시행된 이래,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 수는 8만1393명이다. 2010년 '활동하는 의사 수 8만4489명'과 비슷한 숫자다. 의사가 그렇게 죽어나갔다면 세상은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화재참사로 40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법원이 해당 기업에 내린 벌금은 죽은 노동자 1명당 50만 원이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수가 우리나라의 14분의 1(2010년 기준)에 불과한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일터에서 발생한 죽음에 대해 '살인 행위'에 준하는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재해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후, 노동자 1명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기업에 약 7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제 노동자의 목숨 값이 낮은 한국 사회에, 일하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기업살인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노동건강 공동행동

-기업살인 사회를 넘어

(1) 우리는 일터에 죽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2) 기록도 없이 사람 죽어나가는 그곳엔 무슨 일이…
(3) '빽'없는 윤식이들은 '찍'소리 못하고 죽었다
(4) 순식간에 5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 단 한사람이 없어서…
(5) 그녀를 미행한 범인은 회사직원, 몰래 찍힌 사진 속엔…
(6) 우체국 제복 입은 그들은 우체국 직원이 아니다
(7) 그들은 720원에 목숨을 건다
(8) 저녁이 없는 삶, "먹고 살려다 죽는다"

"매일 먹는 밥에 아주 조금씩 발암물질을 섞는 식당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안 갈 거예요. 그런데 공장에서는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요. 어쩔 수 없는 거라 여기죠."

산업재해 상담을 20년간 해온 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생각했다. 그 정도야? 공장 환경이 매일 발암물질을 밥에 섞어 먹는다고 말할 정도야?

 그러다 올해 9월,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사용되는 발암물질에 관한 기사였다.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되는 물질 중 30.1퍼센트(%)

가 국제 기준상 발암물질(또는 발암가능물질)이라 했다. 351종, 유통량은 1억5637만 톤이다. 게다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1A등급 물질만 2286톤이라 했다. 이 물질들 대부분은 화학섬유, 전자기계 공장으로 간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새로운 게 아니었다. 4년 전, 비슷한 결과가 있었다. 26개 사업장의 발암물질을 조사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 작업에 참여한 노동건강환경연구소의 김신범 산업위생실장은 나온 결과를 보고 망설였단다. 이걸 발표해야 하나? 그가 망설인 이유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발암물질이 검출되어서다. 공장에서 사용되는 발암물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줄여가고자 한 조사 작업이었다. 그런데 발암물질이 너무 많아 사람들이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단다.

그를 놀라게 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조사 대상인 26개 작업장에서 쓰인 물질 2600여 개 중 발암물질이 들어간 제품은 600여 개였다. 이 중 1A등급 발암물질 제품은 114개. 공장에 쓰이는 물질 중 4분의 1가량이 작업자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다음해 금속노조가 64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9000여 물질 중 870여 개의 제품에서 발암물질이 확인됐다.

이 정도면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을, 매일 그것도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식사마다 발암물질을 섞어먹는 것에 비유해도 납득이 간다.

공장에 넘치는 발암물질

발암물질이 이렇게 만연한데도 환기장치나 밀폐설비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위의 조사에 따르면 발암물질의 유독성을 차단해줄 밀폐설비가 없는 곳은 61.4%, 환기장치가 부족한 곳은 43.4%였다. 발암물질과 접촉함에도 마스크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노동자도 30%가 넘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자신이 발암물질을 사용한다면 마스크와 보호장구를 착용하겠냐고 물었더니 거의 모두가 그러겠고 답을 했다. 이는 대부분의 비착용자들이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의 유해성을 모른다는 말이었다.

사용하는 발암물질 수도 많지만, 그 관리조차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암에 걸릴 위험에 안일한 것은 공장 안 사람들만이 아니다. 노동부는 2010년 당시, 발암물질 목록으로 56종을 선정하였다. 앞서 조사들은 국제암연구소와 유럽연합, 미국 등지에서 쓰이는 발암물질 목록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이 선정한 발암물질은 550여 개다. 만약 노동부의 목록으로 위의 사업장들을 조사했다면, 대부분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유럽과 미국 노동자들이 발암물질이라며 사용하지 않는 500개 이상의 물질을 우리는 알지도 못한 채 사용한다. 몰라 속은 편하니, 암의 주요 요인이라는 스트레스는 안 받겠다.

게다가 국제암연구소는 500여 개의 발암물질 목록이 완성본이 아니라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화학물질 13만여 종. 국제암연구소가 조사한 물질은 겨우 1000여 개, 이 중 500개의 물질이 암을 일으키는 요인이라 밝혀졌다. 이조차 밝히는 데 50년이 걸렸다. 발암물질을 찾는 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아직 연구되지 않은 10만 종의 물질들과 그에 따른 부산⁄혼합물들이 있다.

그렇기에 유럽은 물질의 성분을 기업이 입증하지 못할 경우, 발암성 물질로 간주한다. 성분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국은 밝혀지지 않은 성분의 안전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일하는 이들은 안전할 수가 없다.

 
'고이 잠드소서' 【서울=뉴시스】 박문호 기자 =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故 황유미 씨의 추모기일인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노동자 추모문화제'에 마련된 고인들의 영정에 참가자가 국화를 올리고 있다. go2@newsis.com go2@newsis.com

사람 취급을 못 받았어요

안전할 수 없는 이들. 그러나 직업성 암에 걸렸다 보고되는 한국 노동자는 한 해 20여 명 정도다.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암환자 중 산재를 인정한 수가 그만큼이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암에 관한 산재 인정률은 10% 초반대에 그쳤다. 전체 암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는데, 5000만 톤의 발암물질이 국내에 들어와 있다는데, 제조업 노동자들이 매일 같이 발암물질을 마시며 일한다고 주장하는데, 직업성 암에 걸린 이는 겨우 스무 명 밖에 없다고 한다.

그토록 적은 수가 걸리는 직업성 암이기에, 근로복지공단은 회사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찾아오는 이에게 뜨악한 얼굴로 묻는다.

"담배 많이 펴서 그런 걸 왜 여기 와서 이러나요?"

평생 고무 탄내를 맡으며 일해 온 노동자가 폐암으로 죽자, 가족들이 이 말을 들었다. 노동자의 아내는 그때를 이리 기억했다.

"사람 취급을 못 받았어요."

일하다 숨이 끊어진 것도 억울한데, 왜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할까. 폐암으로 죽은 노동자는 삼십년 동안 발암물질 벤젠을 사용해 고무를 녹이고 으깨는 작업을 했다. 수십 년 전만해도 고무 으깨는 작업을 밀가루 반죽하듯 손으로 했단다. 벤젠은 1급 발암물질이다. 벤젠과 고무, 그리고 갖은 화학물질이 섞이면 어떤 물질이 만들어질지 알 수조차 없다. 분명한 것은 담배보다 더 안 좋은 물질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사실이다.

금호타이어에서 30년 동안 일한 그는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1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들어가면 입구에서부터 냄새가 났어요."

홀로 된 아내는 내게 말했다.

"남편 분 회사에 가보신 적이 있으세요?"

"가봤죠. 옛날에는 남편 고생하는 것 좀 보라고, 부인들을 회사에 초청하는 일이 가끔 있었어요."

"가보시니 어땠어요?"

"가슴이 아프죠. 새까맣고 눈이 잘 안 보이고. 누가 내 남편인지 잘 몰라요. 새카매."

검은 분진이 떠다녀 시야를 가리고, 작업장은 열기로 후끈거렸다. 기계 소리가 하도 커 이름 하나 부르려 해도 소리를 높여야 했다. 남편의 고된 노동을 보여주어 아내의 보살핌을 높이고이를 통해 노동자의 생산성을 올리겠다는 회사의 의도는 적중했다. 그녀는 남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왔다. 잘해주어야지 마음먹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녀가 남편의 병 앞에서 자신이 본 고된 노동을 떠올릴 것은 의도치 못했다. 그녀는 폐암이라는 진단을 내린 의사에게 말했다. "이건 회사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자신이 본 작업장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검은 분진이 떠다니던 곳에서 남편은 30년 동안 일했다.

남편이 집에 오면 냄새가 지독히 났다. 얼굴은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냄새가 집안 곳곳에 다 배겼다. 어릴 적 아이들은 아빠가 가까이 오면 "아빠한테 냄새나"라고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아빠는 일해야 하니까."

죽은 이의 동료가 작업 현장에 대해 말해 주었다. 고무 작업을 하려면 벤젠 없이는 안 된다고 했다.

"벤젠을 고무에다가 칠하잖아요. 고무가 녹아요. 녹았다가 다시 붙어요. 고무가 녹았다가 다시 접착이 되면, 완전히 붙는 거예요. 그러니까 벤젠이 접착제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거 없으면 작업이 안 돼요. 옆에다가 통을, 이만한걸. 그걸 두 통 써요. 얼굴에 튀기고, 팔도 튀기고, 그러다 얼굴에 새까만 게 묻으면 우리는 그게 나쁜 건지도 모르고 화장지로 벤젠 묻혀다 닦고."

아내는 남편의 병이 회사로 인한 것이라 믿었지만, 산재보험 신청을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소송을 안 한다 그랬어요. 내가 돈이 없기 때문에 못했어요."

남편은 당연히 산재보험 가입자였고, 가입자는 누구나 산재보험 보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음에도, 그녀는 소송이라는 표현을 했다. 산재 신청 절차를 모른 것이다. 돈이 없어 소송을 못하니, 직업병을 인정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렵사리 근로복지공단에 찾아갔을 때,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같은 소리나 들었다.

만져본 게 페인트밖에 없잖아요

페인트를 이십 년 칠해온 노동자도 암으로 죽었다.

"냄새를 맡지 못 했어요. 그게 시간이 좀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맡지를 못했어요. 이비인후과를 갔더니 코 속에 무슨 혹이 있다고. 수술을 했는데, 제거하면 무조건 조직 검사에 들어가잖아요. 결과가 나왔어요. 안 좋다고."

안 좋다는 결과는 백혈병 진단이었다. 그가 일한 곳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도장부. 페인트칠하는 작업을 말하는 도장은 작업자들 사이에서 특히 힘든 일로 이야기 된다. 페인트와 신나 냄새가 독한 것이 그 첫째 이유인데, 신나에는 발암물질인 벤젠이 섞여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말했다.

"23년을 근무하면서 페인트 밖에 만져 본 것이 없잖아요."

20년 넘게 페인트만 만진 남편은 마지막 몇 개월을 무균실과 중환자실을 넘나들며 보냈다. 남편의 죽음을 확인한 그녀 또한 쓰러져 소생실로 들어갔다.

"이 손발이 다 오그라들었어요."

제 몸을 다 추스르기도 전에,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쓰러졌다. 정신이 하나 없다. 어느덧 정신이 드니 "모든 것이 다 억울하다"고 했다. 그래서 산재신청을 했다. "회사 가서 직원들 작업복 입는 거 보면 속상하다"는 그녀의 소망은 산재 처리 과정이 빨리 끝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사장님은 우주복, 노동자는 맨 몸

한 반도체 노동자는 백혈병에 걸렸다. 그는 자신의 병이 반도체 공장에서 행해지는 작업 때문이라 생각했다. 산재신청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병이 발견된 후에도 1년이나 회사를 더 다녔다.

회사의 작업환경을 암의 원인이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있고 배우자가 있고 부모가 있는 그는 돈을 계속 벌어야 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발암물질을 앞에 두고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몸 상태가 더 나빠질 것을 대비해 돈을 버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공장을 짓는 이는 공장주이고, 제조물질을 결정하는 것은 일부 경영진들이라 생각했다. 발암물질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하고 말았다. 방도가 보이지 않아 체념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알지만 한 치 앞에 놓인 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목숨 귀한 걸 아는 건 회사 경영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노동자 30명이 원인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난, 국내 최대의 석면 방직 공장이 있었다. 석면은 1급 발암 물질이지만,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위험성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석면 방직기를 점검하러 가끔 공장에 들를 때마다 방진 마스크를 쓰고 보호장구를 챙겨 입었다. 우주인처럼 보호복을 뒤집어쓴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종일 석면을 만지는 노동자들이 면 마스크 하나 없이 일하고 있었다.

경영진들은 보호장구를 노동자에게 지급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노동자에게 석면의 유해성을 말할 생각도, 애초에 석면공장을 국내에 들이지 않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생명만큼 임금을 주고 부리는 노동자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사실이었다.

회사가 몰랐을까요?

23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딸의 죽음을 회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딸은 스무 살도 되지 않아 일을 하러 갔고, 일을 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병에 걸려 돌아왔다. 그는 딸의 회사인 삼성반도체에 쫒아갔다. 회사는 딸의 죽음이 작업환경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개인 질병이라고 했다. 황상기 씨는 산재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재판을 했다. 작년 6월, 법원은 황유미 씨의 죽음을 산재에 의한 것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이제 황상기 씨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딸의 죽음을 산재가 아니라고 했다.

"회사가 유해한 물질을 쓰는지 몰랐을까요?"

그는 말했다.

"회사가 알고도 그냥 둔 것이라면, 이거는 살인이에요. 살인."

그는 살인을 말했다. 딸의 죽음을 재해가 아닌 타살이라고 말했다. 작업장에 벤젠을 비롯한 유해물질이 쓰이지 않았다면, 다른 물질로 대체되었다면, 환기장치가 제 기능을 했다면, 주야간 교대근무로 면역력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작업환경이 달랐다면, 딸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죽지 않을 사람이 죽는 것은 살인이다. 그리고 살인은 지금도 하루 예닐곱씩(2010년 산재사망자 수 2181명) 일어나고 있다.


 /희정 집필노동자

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그녀를 미행한 범인은 회사직원, 몰래 찍힌 사진 속엔…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22일 기사 '그녀를 미행한 범인은 회사직원, 몰래 찍힌 사진 속엔…'을 퍼왔습니다.
[기업살인 사회를 넘어](5) KT의 민영화 질주가 낳은 상처

요즘은 죽음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계속되는 죽음은, 한국 사회 불안정성의 결과이자 경향이다. 1964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시행된 이래,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 수는 8만1393명이다. 2010년 '활동하는 의사 수 8만4489명'과 비등한 숫자다. 의사가 그렇게 죽어나갔다면 세상은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것,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화재참사로 40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법원이 해당 기업에게 내린 벌금은 죽은 노동자 1명당 50만 원이었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 수가 우리나라의 14분의 1(2010년 기준)에 불과한 영국은 2007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일터에서 발생한 죽음에 대해 '살인 행위'에 준하는 처벌을 하지 않는다면, 재해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영국은 기업살인법을 제정한 후, 노동자 1명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기업에 약 7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제 노동자의 목숨 값이 낮은 한국 사회에, 일하다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왜 '기업살인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 노동건강 공동행동

-기업살인 사회를 넘어

(1) 우리는 일터에 죽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2) 기록도 없이 사람 죽어나가는 그곳엔 무슨 일이…
(3) '빽'없는 윤식이들은 '찍'소리 못하고 죽었다
(4) 순식간에 5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 단 한사람이 없어서… 미국의 경제 구조 하에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다룬 책 (워킹 푸어)에 이런 내용이 있다. 월마트가 종업원들의 시간외 근무 수당 비용을 지급하지 않음으로 얻게 되는 이득에 대한 부분이다.

'남부 여섯 개 주 월마트 매장의 종업원들은 주당 40시간이라는 노동시간을 초과했음에도 회사 측이 시간외근무를 수당 없이 강제했다며 집단소송을 제
기했다. 종업원 측 변호사는 회사가 추가로 얻게 된 이익을 계산했다.

한 매장에서 250인의 시간제 사원이 일주일간 각각 1시간 수당 없는 시간외근무를 했다면 250시간의 임금이 지급되지 않은 것이다. 한 달이면 1000시간이 되고, 1년이면 1만2000시간이 된다. 텍사스 주에는 300개 이상의 월마트 매장이 있는데, 텍사스 주에서만 본래 종업원에게 돌아가야 할 30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이 절약되는 것이다.'

8달러가량의 한 시간 급여를 지급하지 않아 기업이 얻은 이익은 3000만 달러. 단 한 시간이 이 정도의 이익을 가져온다면 하루, 일주일, 한 달의 시간에 들어갈 비용을 '절약'할 때 기업은 얼마나 큰 이익을 얻게 될까? 더 나아가 한 사람의 근로시간 비용을 모두 '절약'한다면?

절약이 주는 이득 때문에 기업은 인력을 감축한다. 사람을 자른다.

감축의 우선순위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크지만, 때로는 정규직, 그것도 연차가 높은 직원이 될 수 있다. 연차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직원을 감원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비용을 절약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기업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나가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부양할 부모가 있고, 함께 가정을 이끌 배우자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어리거나 크거나 돈 들어갈 일은 태산인 자식들이 있다.

이득이 눈앞에 보이는데 사람들이 회사를 나가려 하지 않으니, 기업은 여러 수단을 쓸 수 에 없다. 안타깝게도 이 수단들은 대부분 폭력적이어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상처받은 이들은 아파한다. 때로 너무 아파, 죽는다.

2006년 이래 KT에서 사망한 노동자 수는 204명. 사망자 수가 그 위험하다는 조선소 남부럽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자살로 인한 사망이다. 7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가 14명이다.

ⓒKT노동인권센터

회사에 불을 지를까, 자다가도 생각이 나

20년간 KT 직원이었던 A씨를 만났다. 그는 퇴직 후 몸담았던 KT 자회사에 대해 설명했다. 3년간 운영되었다가 사라진 회사다. 나는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자회사를 만들어 직원들을 그리로 보냈는데, 회사가 3년 만에 없어졌다는 거지요. 그때는 전문화한다고 굳이 업무를 따로 떼어 자회사로 만들었으면서, 어떻게 몇 년 새 다시 없애버린 거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자회사는 우릴 내보내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4년 전, 중앙 전산업무 관리직이던 A씨는 KT가 VOC(고객민원처리)업무를 특화한다며 만든 자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자신의 의지로 간 것은 아니었다. 계속된 면담이 있었다. 면담의 내용은 제 발로 나가는 것이 이롭다는 것. 하지만 그는 끝까지 거부했다. 낮은 월급, 계약직인 지위도 마음에 걸렸지만, 무엇보다 자회사로의 전직이 정리해고 절차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자 회사는 전근 발령을 내렸다. 지방 지사의 현장직으로 발령이 났다. 이전까지 그는 IT 업무를 해왔다. 현장직이라면 전주에 올라가고 맨홀에 들어가는 일이다. 당연히 처음 접하는 일이다. 게다가 그의 거주지는 서울이었다. 한마디로 나가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는 4개월을 버텼다. 일은 낯설고, 다른 직원들은 윗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그를 따돌렸다. 4개월도 오래 버틴 거였다. 결국 그는 회사의 요구대로 자회사에 들어갔다.

이직할 때, KT는 약속했다. '3년 동안 업무 능력을 평가하여 상위 성적을 보이면 고용을 유지하겠다.' 그러나 3년 후, 아예 회사가 없어졌다. KT가 VOC 업무를 도로 가져간 것이다. 250여 명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 중 60여 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정리해고를 거부한 것이다. 사표를 받지 못한 회사는 그들을 또 다른 외주업체(KTIS)로 집어넣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100 콜센터이다. 낭랑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내뱉는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쉰이 넘은 그가 고객들의 상담 전화를 받는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하루에 처리하는 업무 전화는 최하 60통. 인터넷, 휴대전화, 전화 등 KT의 서비스 요금 상품은 1000여 가지에 다다른다. 젊은이들이 발 빠르게 처리해도 과부하가 걸리는 업무량이다. 콜센터로 발령난 60여 명의 정리해고 거부자들은 대부분 쉰 살이 넘었다.

당연히 인사고과 점수는 D등급. 기본급이 낮고, 고과 점수에 따른 성과급이 주를 이루는 콜센터 임금체계에서 이들은 KT 정직원 때 받았던 임금의 3분의 1을 가져갈 뿐이다. 그 사이 아이 둘은 대학에 입학했다. 돈 들어갈 곳은 많고, 월급은 줄어만 간다. 게다가 이곳에 온 후 무슨 일만 있으면 징계가 내려져, 그는 이번에도 정직 5개월이다.

나는 왜 그만두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냥은 사람이 못 다니죠. 그렇지만 이게 너무 부당하다는 것을 아니까. 나는 굴복하지 않을 거다, 이런 마음으로 버티는 거예요."

처음 자회사에 들어간 이는 500여 명. 3년 사이 남은 이가 250여 명. 이들 중 사표를 쓰지 않아 콜센터로 이직된 이가 60여 명이다. 남은 이들은 '굴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버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일하면 미친다. 그도 말한다.

"지금은 그나마 진정이 됐지만, 여기로 옮기고는 한동안은 부글부글 했지요."

그는 조심스럽고 점잖은 사람이다. 그래서 초면인 나에게 '부글부글' 정도의 표현을 했다. 그러나 더 격하게 표현하는 KT 노동자를 만난 적이 있다. B씨라 부를 그 사람은 내게 말했다.

"밤에 회사에 가서 불을 지를까 생각했어요."

밤에 누우면 울화가 치밀어 헛것까지 보였다고 한다. 어떤 날은 죽어버릴까 생각하고, 어떤 날은 회사에 불을 지를까 생각했다.

그는 민주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전근을 가야 했다. 특히 그에게 상처를 준 곳은 익산에서 군산 지사로 발령받은 후 소속된 상품판매팀이다. 상품판매팀은 보통의영업팀하고 달랐다. 팀 구성부터가 남달랐는데, B씨처럼 민주노조 활동을 하거나 희망퇴직을 거부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구성만 보아도 회사 눈 밖에 난 직원들의 유배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일 같지도 않은 일', '자존심 구기는 치사한 일'을 했다. 아파트 돌아다니며 타업체의 전단지를 회수해오는 일 같은 거였다. 80년대 체신부에 속해있던 시절부터 현장 일을 하던 그가 전단지나 훔쳐오려니 속이 타 들어갔다.

직장 내 왕따, 감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날은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기에 경찰에 신고했는데, 범인은 회사 직원이었다. 이 정도는 약과다. 100 콜센터로 옮겨가길 거부해 상품판매팀으로 유배 온 114 직원은 관리자에게 근무시간에 사적인 업무를 보지 않았냐고 추궁당했다. 그런데 관리자가 증거라고 내놓은 것은 그녀의 일상이 분 단위로 찍힌 사진이었다. 사진을 본 그녀는 경악했다. 당연히 신경쇠약에 걸렸다.

B씨 또한 우울증을 겪었다. 밤에 잠이 안 와 불면증 치료를 받으러 갔다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산재 신청을 했고, 회사의 감시와 차별 때문에 생긴 직업병이라 인정받았다. 물론 KT는 직업병을 인정 못 한다며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갔다.

ⓒ정성희

나는 또 물었다. 왜 우울증이 올 때까지 회사를 다녔냐고. KT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답답해서 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KT 새노조 이해관 위원장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질문을 자주 한다고 했다.

"KT는 장치 산업이에요. 이곳에서 배운 기술은 여기를 떠나면 아무데서나 못 써요. 쓸 데가 없어요. 여길 나가면 펼쳐질 인생이 뻔한 거죠."

특정 기술을 가지고 20년 30년을 살아온 사람들. B씨는 말했다. 나간 사람 중에 고물상이라도 하면 그나마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그는 잘 살아야 했다. 그에게는 아들딸이 있었다.

"내 혼자 몸이라면 그만두지만, 우리가 전부 다 부모한테 받은 거 없고, 도토리 키 재기에, 재산도 고만고만하고. 그만큼 자존심 상하면서도 다니는 것은 다 내 새끼들 보고 그러는 거지요."

제 목소리를 내도 죄인, 나이를 먹어도 죄인 취급인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싸우고, 숨죽이고, 병에 걸릴 때까지 참는다. 때로는 참다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는 새노조 위원장에게 물었다.

"혹시 돌아가신 분들 중에서 노동조합에 와 토로하고 그랬던 분은 안 계신가요?"

위원장은 말했다.

"그 정도 되면 안 죽지요."

사람 목숨이 얼마나 질긴데, 그럴 정신이 있으면 안 죽는다. 더 처절하게 외롭고 절망스러워야 죽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KT 노동자 14명은 그렇게 죽어갔다.

10년 간 1만 3000여 명 퇴출

그럼에도 죽은 사람, 버틴 사람보다는 회사의 뜻대로 나간 사람이 더 많다. KT가 민영화된 후 10년 간, 1만3000여 명의 노동자가 퇴출당했다. 구조조정 이전 KT의 규모는 4만4000여 명. 4분의 1가량이 사라진 것이다. 이들 중 많은 수는 A씨처럼 자회사에 계약직으로 배치되었다가 기간만료와 동시에 사라졌다. 수 천 명을 내보내는데 큰 공을 세운 CP(인력 퇴출 프로그램)는 이미 유명하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KT는 공기업 시절에 비해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국가 기간산업인 통신에서 두 배의 매출 이익을 낸 것이 그리 큰 자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익 증가는 경영진 보수 123.7% 인상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부족했는지, 얼마 전 KT 이석채 회장은 대학생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근로자들이 고급 일자리를 내놓지 않아 젊고 능력 있는 구직자들이 2류 일자리로 떠밀려 갈 수 밖에 없다."

이 말에 '나가려면, 제일 늙은 낙하산 회장이나 나가라'고 했던 해고 노동자들의 반응을 전할 필요는 없겠다. 취업의 험난함에 지친 젊은이들이 잠시 혹할 수는 있어도, 솔직히 다들 안다. 나이 든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가 그대로 새로운 일자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19조 원의 흑자를 냈던 2009년, KT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8000여 명이었다. 그해 그 수만큼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KT 본사 정직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경쟁률이 200대 1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토록 힘겹게 들어간 KT에서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희망퇴직 신청 대상자는 15년 이상 근무자들이다. 전산 관리직이었다는 A씨가 해고를 위한 단계로 자회사로 배정되었을 때 나이는 47세. 나는 말했다.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말을 줄인 표현)이네요."

그때 그가 얼마나 씁쓸하게 웃던지, 나는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은 기업, 아니 감원을 흑자 경영의 비결이라 보는 기업, 그곳에 들어간 젊은이들이 십오 년 후 그렇게 씁쓸히 웃지 않길 바란다.


 /희정 집필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