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6일 금요일

대학가에서도 전관예우?


이글은 시사IN 2013-04-26일자 기사 '대학가에서도 전관예우?'를 퍼왔습니다.
대학이 정·관계 인사들의 ‘재취업’으로 붐빈다. 정·관계 인사들은 쉬는 동안 ‘프로필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다. 대학 역시 이들의 인맥을 활용할 여지가 생긴다.

그는 학생들에게 자기 세대가 누린 것들에 대해 여러 번 미안해했다. “행운과 혜택을 누려왔던 세대로서 미안합니다. 허락한다면 여러분들과 가까이 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자 합니다.” 4월9일 오후 5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5층 국제회의실. 안대희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대선 이후 100여 일 만에 대외 활동에 나섰다. 안 전 위원장에게는 그간의 ‘계급장’ 대신, 석좌교수라는 직함이 새로 붙었다. 그는 이날 학생 40여 명 앞에서 ‘법학과 법학도의 미래’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국민 검사’로, 대법관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였다. 

강의를 마치고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안 전 위원장은 “대선 이후 여의도 쪽으로는 한강 다리도 건너지 않았다. (선거에 승리했으니) 내 할 일은 다했다”라며 정치권과 선을 그었다. 그는 여의도에 간 게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도와 정책의 쇄신을 위해 갔기 때문에 떳떳하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한 세력의 편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부담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학기 동안 몇 차례 더 특강을 열고, 다음 학기부터는 정규 강의를 맡을 예정이다. 

ⓒ시사IN 조남진 건국대 석좌교수로 임명된 안대희 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 4월9일 특강을 하고 있다.


안 전 위원장은 이날 특강에서 법조계의 ‘전관예우’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전관예우’는 법조계에만 만연한 일은 아니다. 대학가에서도 전관예우로 의심받을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석좌·특임·초빙 교수 등 ‘비전임 교수’로 임용받는 정·관계 인사들이 줄을 잇는다. 예전의 ‘정치 백수’ 혹은 퇴임 관료들이 주로 외국행을 택했다면, 요즘은 대학교수직으로 ‘재취업’해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 한 달, 언론에 이름이 오른 인사만 해도 줄잡아 10여 명이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는 안 전 위원장 외에도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이름을 올렸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부산대 사회과학연구원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로,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유엔평화학과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로 ‘고급 도시행정 세미나’ 강의를 맡았고,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은 가천대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트랙 석좌교수로 ‘지성학’ 강의를 시작했다. 

비전임 교수 임용 기준 모호 

 
정치인뿐 아니라 고위 관료들도 대학가로 향하고 있다. 정동기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은 한양대 정책대학 석좌교수로,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성균관대 공과대학 석좌교수에 이름을 올렸다.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용부가 전액 출자해 설립한 한국기술교육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장차관과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의 경우 2011년 고위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된 후 대학행이 급속히 늘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경력과 경험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경험을 후학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굳이 교수 직함을 주지 않아도, 충분히 특강 형식 등으로 소화할 수 있다.” 김삼호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의 말이다.  
 
김 연구원은 이 같은 현상이 정·관계 인사들과 학교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정·관계 인사들이 주로 대학에서 맡는 비전임 교수는 전임 교수처럼 강의나 연구에 대한 압박이 없어 정치권에서 부르면 즉시 학교를 떠날 수 있다. 또한 쉬는 동안 교수직이라는 ‘프로필 관리’도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다. 
 
대학도 손해 볼 일은 없다. 대외적으로는 홍보 수단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대학에 유리하도록 정부에 입김을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다시 정·관계에 진출하면 대학 처지에서는 ‘연줄’이 생기니 더 좋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에 입각한 인사 중 남재준 국정원장(서경대 군사학과), 서남수 교육부 장관(경인교대 교육대학원),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동아대 국제관광학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건양대 군사학과) 등이 정·관계에 있다가 석좌교수를 거쳐 다시 공직에 진출한 사례다.   
정·관계에서 대학으로 간 인사들. 왼쪽부터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종인 전 위원장, 박진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 나경원 전 의원.


비전임 교수를 임용하는 기준이 ‘기타 총장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자’ 따위로 모호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비전임 교수 임용은 통상 각 대학의 내규로 운영된다. 대학으로서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정·관계 인사들을 영입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석좌교수의 경우 학문적 성과가 높은 교수에 대한 예우로, 연구 활동에 전력할 수 있도록 하는 명예로운 자리지만, 정·관계 인사들이 한 자리씩 꿰차면서 ‘헐값’이 됐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된 사례는 박희태 전 의장이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임용된 박 전 의장은 이른바 ‘돈봉투 사건’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가 지난 1월 특별 사면됐다. 사면된 지 3개월도 안 되어 대학으로 돌아온 박 전 의장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학교 안팎에서 터져나왔다. 건국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 노동조합은 지난 3월8일 박 전 의장의 임용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건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박 전 의장의 특강 일정이 곧 잡힐 예정이라고 했다. “바깥에서 보는 것처럼 큰 논란은 아니다. 학교 내부적으로는 (논란이) 일단락됐다.” 이 관계자는 건국대에 있는 진보적 학자를 예로 들며 “대학은 자유롭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곳이고, 보수 쪽 인사가 들어왔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직을 맡아 ‘고급 도시행정 세미나’ 과목을 강의한다. 오 전 시장의 임용을 두고도 일부 교수들이 임명 철회 서명을 받는 등 한양대 역시 진통을 겪고 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서울시장 재임 중 남긴 막대한 재정 부담, 처치 곤란 전시성 행정을 해온 분이 무얼 가르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비판했다.  
 
한양대 홍보팀 관계자는 “공공정책대학원은 일반대학원이 아니라 특수대학원으로, 해당 학문에 대한 실무 경험이 있는 분들이 주로 듣는 수업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수강생들로부터 오 전 시장 임용에 대한 요청이 있었고, 때마침 오 전 시장이 귀국하는 등 시기가 잘 맞아서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처우는 어떨까? 각 대학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급여와 관련해서는 대개가 ‘대외비’였다. 관계자들은 “돈이 아쉬운 분들은 아니지 않나”라고 말하며, 대략적인 수준만을 귀띔해줬다. 박희태 전 의장의 경우 무보수 명예직으로 임용됐고, 안대희 전 위원장 역시 소정의 특강료만 받는다고 밝혀왔다. 오 전 시장은 1년 단위 계약직 교수로 시간강사보다는 좀 더 높은 강의료가 책정됐지만, 학점당 강의료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에 위촉된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 역시 원칙은 무보수지만, “강의를 할 경우 기존 규정에 따라 강사료를 지급할 수는 있다”라고 알려왔다. 현재까지 나 전 의원의 강의 스케줄은 정해지지 않았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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