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8일 월요일

법치주의 흔드는 ‘이명박근혜’의 손


이글은 시사IN 2013-02-218일자 기사 '법치주의 흔드는 ‘이명박근혜’의 손'을 퍼왔습니다.
21세기 첫 보수 정부였던 MB 정부는 ‘법치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 역시 예사롭지 않다. 법치주의의 핵심인 ‘권력의 공적 제한’을 거추장스러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법치주의’는 보수가 내세우는 단골 레토릭(수사)이다. 이명박 대통령(MB)은 입버릇처럼 법치주의를 달고 다녔다. 박근혜 당선자의 2007년 대표 공약인 ‘줄·푸·세’의 ‘세’도 법질서를 세운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는 법치주의를 원래 의미와 다른 뜻으로 바꿔놓았다. MB는 이 말을 ‘실정법을 잘 지켜야 한다’라는 의미로 즐겨 쓴다. 주로 사회적 약자나 일반 대중의 의무사항이다. MB는 2008년 한국법률가대회 축사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법치를 무력화하려는 행동은 용인되지 않을 것이다. 법을 무시하고 떼를 쓰면 된다는 의식이 가시지 않고 있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MB식 법치주의’를 압축해 보여준다. 법치주의란 ‘떼법 근절’ ‘실정법의 엄정 적용’과 동의어가 된다. 박근혜 당선자의 ‘법질서 세우기’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뉴시스 1월31일 구치소에서 풀려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차량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법치주의의 원래 의미는 이와는 정반대다. 정치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권력자가 법에 구속을 받는 것, 국가권력에 제한을 두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규정했다. 권력자가 제멋대로 통치하지 못하도록, 권력 행사의 원칙과 한계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 법치주의라는 의미다. 법치주의가 제약하는 대상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권력자다. 

지난 한 주, 법치주의가 파산했다. 과거의 약속, 현재의 신뢰, 미래의 기대가 나란히 휘청거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의 약속을 어기며 사면권을 남용했다. 박근혜 당선자는 법치의 근간을 흔드는 인사를 하다가 첫 총리 지명자가 낙마하는 역풍을 맞았다. 가장 위태로운 것은 법치주의의 미래다. 총리 후보자 낙마 이후 박 당선자는 인사 검증 미비를 사과하는 대신 인사청문회 절차를 탓하고 나섰다. 신구 권력자가 나란히 법치의 원칙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 한 주였다.

스스로 했던 약속 뒤집은 MB

1월29일 MB는 임기 마지막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권 핵심 실세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명단에 포함됐다. 사돈 집안인 조현준 효성 섬유부문 사장도 사면했다. 

MB 본인이 제시한 사면권 행사 원칙마저 어겼다. 임기 첫해인 2008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의결하는 국무회의에서 MB는 “법질서를 지켜나간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내 임기 중 부정비리에 대해서는 공직자와 기업인을 불문하고 단호히 처리하겠다”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를 ‘임기 내 비리 사면불가 원칙’으로 정식 발표했다. 하지만 천신일·박희태·김효재 세 사람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은 모두 MB 재임 중에 벌어졌다.  

ⓒ뉴시스 1월31일 석방된 천신일 회장을 태운 응급차에 누군가가 돈과 두부를 던졌다.

‘죄질’도 나쁘다. 핵심 측근인 최시중 전 위원장은 MB가 서울시장이던 시절 인허가 대상 사업자인 ‘파이시티’로부터 6억원을 받은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로 유죄를 받았다. 최 전 위원장은 이 돈을 2007년 MB 대선 캠프에서 썼다고 주장한 바 있어, 현 정권의 탄생과도 연관성을 의심 받는 사건이다. MB가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최 전 위원장은 징역 2년6개월 형을 받았지만 3분의 1도 채 살지 않았다. 최 전 위원장은 구치소를 나온 1월31일 “나는 무죄야. 나는 돈을 내 사적으로 받은 바도 없고, 정책 활동의 일환으로 그 사람들이 도와주기 위해서 한 것이지”라고 말했다.  

천신일 회장은 기업인으로부터 워크아웃과 대출 등의 청탁을 받고 해결해주면서 46억원을 받았다. 천 회장은 금융기관 등에 직접 청탁을 했다. 대통령 최측근이 돈을 받고 청탁에 개입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다. MB 임기 중에 일어난 일이다. 천 회장 역시 징역 2년형의 절반도 채우지 않았다.

박희태·김효재 두 사람은 2008년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집행유예 2년과 1년을 받았지만 사면·복권됐다. 2008년 전당대회는 MB가 한나라당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고, 이후 박희태 대표는 4대강 예산안과 미디어법 처리에 앞장섰다. 김효재 전 정무수석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기밀 누설로도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함께 사면·복권됐다. 

조현준 사장은 MB의 사돈 집안이다. MB의 셋째 사위 조현범씨와 사촌이다. 법무부는 사돈은 법적으로 친·인척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특별사면 브리핑에서는 “주요 친·인척을 제외했다”라고 ‘주요’를 추가했다. 

MB의 사면권 남용은 처음이 아니다. 2009년 12월 MB는 이례적인 1인 단독사면을 단행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대상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쓰라는 묘한 사유를 들었다. MB는 고작 반년 전인 2009년 광복절 특사 당시, ‘무분별하게 사면 대상이 되어온 경제인을 배제해 법 원칙을 세웠다’며 자화자찬했던 바 있다. 반년 만에 말을 뒤집었다. 

법치주의를 단순히 ‘법을 지킨다’라는 뜻으로만 이해하면, 사면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법치주의는 권력자가 제멋대로 통치하지 않고 법과 원칙의 구속을 받는다는 의미다. 중형이 불가피하다는 사법부 확정판결을 형량의 절반도 지나기 전에 뒤집고, 통치자 본인도 무관치 않은 권력형 비리를 ‘셀프 사면’했으며, 그나마도 스스로 내세운 원칙(임기 내 범죄는 사면 배제)조차 지키지 못했다. 법치주의 원칙은 철저히 무너졌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오른쪽)와 김용준 인수위원장(왼쪽)이 1월30일 인수위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했다.

사법부 최고위직이 행정부 기웃거리는 풍경

김용준 총리 후보는 낙마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는 청문보고서 채택 불발로 공중에 떴지만 버틴다. 이 와중에 안창호 헌법재판관은 검찰총장 후보군에 올랐는데, 본인이 인사검증 요구에 동의해 논란이 인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논란을 일으킨 세 사람이 다 사법부 최고위직까지 올라선 법조인이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총리 후보로 지명되자마자 부동산 투기 의혹과 아들 병역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지명 닷새 만인 1월29일 후보직 사퇴를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기도 전에 낙마부터 경험했다.

김 위원장에 쏟아진 부동산과 병역 의혹도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따로 있었다.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후보 지명 다음 날인 1월25일 “지명이 삼권분립 원칙에 맞는지 검증하겠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장과 더불어 사법부의 수장인 헌법재판소장을 지낸 인사가 행정부 요직을 맡는 게 원칙에 맞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안창호 헌법재판관의 사례는 한 술 더 떴다. 법무부가 검사 출신인 안 재판관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추천했고, 안 재판관은 인사검증 절차에 동의해 검찰총장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을 드러냈다. 사법부 최고위 인사가 행정부 요직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시도가 재연됐다. 더욱이 안 재판관은 5년 이상 임기를 남겨둔 현직이다. 12년 전 헌재소장이었던 김용준 사례보다 훨씬 논쟁적이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제기된 공금유용 의혹 등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데다, 법조계에서 이례적으로 내부 제보가 쏟아지면서 조직 내 신망도 낮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신뢰성은 법치주의의 중요한 한 축인데, 정작 사법부의 위상이 뿌리째 흔들려버렸다. 특히 헌재는 전직 소장과 현직 재판관이 행정부 요직으로 가려다 구설에 올랐다. 차기 소장 후보자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사법부 인사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로 버티는 대신 행정부의 ‘양지’를 기웃거리는 인상을 준 것은 특히 치명적이다. 대법관 출신인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총리 후보자로 거명되자 “사법부 최고위직인 대법관과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원장을 지낸 자신이 행정부로 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말해 이를 에둘러 비판했다.

박근혜 당선자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4년 10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를 비판한 것을 두고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라고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다. 헌재가 흔들리면 법치주의가 흔들린다는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하지만 정작 박 당선자는 자신의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잇따른 인사 실패로 헌재의 위상을 극적으로 추락시킨 꼴이 되었다. 김용준·안창호 사례는 박근혜 당선자의 인사이고, MB가 임명권을 행사한 이동흡 후보 역시 박 당선자와 상의를 거친 결과물이다. 

법치주의의 미래가 위험하다

김용준 후보자 총리 지명이 좌절된 이후, 박 당선자는 이례적으로 이틀에 걸쳐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1월30일 삼청동 안가에서 새누리당 강원지역 국회의원들과 만난 박 당선자는 “사적인 부분까지 공격당해 좋은 인재들이 공직을 두려워하는 것이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고 참석한 의원들이 전했다. 

이튿날인 1월31일 경남 의원들과의 오찬에서도 발언 기조는 유지되었다. 이날 박 당선자는 “예전의 관행이 있는데 요즘 분위기로 재단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생활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이번이 아니라 중간 개각 때라도 제도 보완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틀에 걸쳐 인사청문회의 부작용을 적극 주장하고, 청문회 때문에 인재를 등용하기 힘들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인사청문회에는 행정부 권력을 입법부가 견제하는 기능도 있다. 이에 대해 행정부 수장이 불만을 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즉각 나왔다. 통치 권력의 한계를 규정한 법·제도에 최고 권력자가 반발한 꼴이 된 탓이다. 새누리당에서도 “인사 실패는 청문회가 아니라 검증 부족 때문이다”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치주의란 결국 공공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권력이 권력자가 제멋대로 휘두르는 사유물이 아니라 공적 제한에 맞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 원리의 핵심이다. 21세기 첫 보수 정부였던 MB 정부는 이 ‘권력의 공적 제한’이라는 원칙을 마지막까지 무너뜨렸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의 출발 역시 예사롭지 않다. 출범 전 인사 문제에서부터, 권력 행사에 따르는 공적 제한을 거추장스러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보수 원로인 윤여준 전 장관은 (시사IN) 제277호 인터뷰에서 “박 당선자가 공공의식은 엄격한데, 이게 민주적 공사 구분에서 나오는 공공성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일종의 가족 재산으로 봐서 나오는 거 아니냐, 그렇다면 위험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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