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21일자 기사 '증인석 선 ‘고문기술자’ 이근안 “고문 없었다” 궤변'을 퍼왔습니다.

이근안 전 경기경찰청 대공분실장이 2008년 10월3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 교단의 목사 임직식에 참석해 목사 안수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올해 1월14일 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 총회의 긴급 징계위원회에서 ‘자질 논란’으로 목사직 면직을 당했다. <브레이크뉴스> 제공
목사직 잃고 행방 묘연했던 이씨
30여년전 납북어부 간첩사건 재심서
“오래전 일이라 기억 안난다”
함께 근무했던 수사관 증언에도
185일 불법구금 사실 잡아떼
올해 1월 목사직을 잃은 뒤 행방이 묘연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74)씨가 최근 간첩 조작 의혹 사건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유족들이 신청한 재심사건 재판에 나와 “불법구금이나 고문은 없었다”고 항변했다.이씨는 지난 13일 오후 인천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송경근) 심리로 열린 30여년 전 ‘납북어부 간첩 사건’의 안아무개(2006년 사망)씨 재심 사건에 검찰 쪽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20여분 동안 진행된 검찰과 변호인의 신문에서 불법구금과 고문에 의한 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나는 목사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이씨는 “오래돼서 언제 (안씨를) 연행했는지 알 수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혹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 활동의) 의심이 나서 3개월 공작을 했고, 안씨가 다른 사람을 포섭중이었고, 이런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 불법구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당시 경기경찰청 대공분실에 함께 근무했던 나아무개 수사관은 이씨의 증언 직전에 있었던 변호인 신문에서 “이씨가 조사하는 것을 보지 못해 고문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안씨를 185일간 영장 없이 구금한 게 맞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변호인이 전했다. 안씨는 같은 마을에 살던 어부들이 납북된 지 수년이 지나 간첩 사건이 터지자 1977년 2월 참고인으로 경찰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그는 조사과정에서 피의자로 바뀐 뒤 그해 8월 구속됐다.안씨의 변호인 쪽은 “이씨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고 답변하는 반면, 유리한 것은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말했다. 이씨는 ‘편리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이씨는 증언을 한 뒤 전직 동료 수사관으로 보이는 10여명에게 둘러싸여 당당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안씨의 아들(51)은 “이씨의 말대로 아버지가 순순히 자백했으면 뭐하러 185일간 불법구금을 했느냐”며 어이없어했다. 방청객 정아무개(63)씨는 “최근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 1985)가 나오자 변명하려고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말했다.이씨는 1970년대 초부터 1988년까지 경기경찰청 대공분실장 등으로 근무하며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치다 불법체포와 고문 혐의로 오랜 수배 끝에 2000년 자수했다. 2008년 10월 안수를 받고 목회자로 변신했지만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애국자’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다가 올해 1월 ‘자질 부족’ 등을 이유로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인천/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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