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6일 화요일

피랍 선원 가족들, 정부도 못 만나


이글은 시사IN 2012-10-16일자 기사 '피랍 선원 가족들, 정부도 못 만나'를 퍼왔습니다.
올해 추석은 제미니호 선원 4명이 납치된 지 520일째 되는 날이었다. 가족들은 추석 연휴 전 외교부에 만남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방심위는 선원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 검색을 차단시켰다.

제미니호 피랍 선원의 가족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쓸쓸한 추석을 맞았다. 지난해 4월30일 제미니호에서 근무하다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선장 박 아무개씨(57)와 기관장 김 아무개씨(57), 1등 항해사 이 아무개씨(63), 1등 기관사 이 아무개씨(58) 등이 아직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 9월30일은 이들 4명이 납치된 지 520일째 되는 날이었다.

1등 항해사의 사위 강 아무개씨(36)에게도 올해 추석은 남달랐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강씨는 장인 이씨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는 사실을 지난해 12월에야 알았다. 장모가 가족에게 걱정을 끼칠까봐 숨기다가 한국인 선원 4명만 다시 납치되자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제미니호 납치 7개월째였던 2011년 11월30일, 해적은 중국·미얀마·인도네시아 출신 선원 21명을 풀어주었으나 한국인 선원 4명은 소말리아 내륙으로 다시 납치했다.

가족들은 이번 추석 연휴 전 외교통상부에 만남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시간이 없으니 명절 이후 만나자’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고 해적과의 협상을 전담한 선박회사에 찾아가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다. 제미니호는 싱가포르 국적 화물선이다. 피랍자 4명을 고용한 선박회사 ‘글로리십 매니지먼트(Glory Ship Management)’의 본사는 싱가포르에 있다. 결국 가족들은 피랍자 4명과 관련된 최근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채 쓸쓸한 추석 연휴를 보내야 했다.

지난 7월21일 소말리아 내륙에서 촬영한 제미니호 선원들 모습.

정치적 요구는 책임 못 진다는 싱가포르 회사

제미니호 사건은 한국인 선원이 외국에 1년 이상 억류된 최초의 사건이다. 선원들이 억류 217일 만에 풀려났던 삼호드림호 사건보다 이미 두 배 이상 길어졌다. 함께 억류됐던 외국인 선원들이 풀려날 때 한국인 선원들만 재납치된 특수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제미니호 사태 해결은 왜 이렇게 오래도록 난항을 겪는 것일까. 표면적 이유는 해적들이 요구하는 액수가 크기 때문이다. 해적들은 여전히 한국인 선원 4명의 몸값으로 여타 해적 사건 협상금보다 높은 액수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내막은 좀 더 복잡하다. 싱가포르 회사는 한국인 선원들이 재납치된 순간부터 사건의 성격이 ‘한국의 정치·외교적 사안’으로 전환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강씨에 따르면, 싱가포르 선박회사는 해적들이 ‘정치적 요구’를 없앨 때까지 기다린다는 전략이다. 선박회사는 해적들이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협상금으로 제시하는 배경에 지난해 1월 삼호주얼리호 구출 당시 한국군이 펼친 아덴만 여명 작전이 있다고 본다. 즉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죽은 해적의 몸값과 선원-해적 맞교환 요구를 포기한 대가를 싱가포르 회사가 지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태가 1년6개월 가까이 장기화됐지만 한국 정부는 뾰족한 대안 없이 ‘불개입 원칙’만 내세운다. 사건 해결의 주체는 선원들을 고용한 선박회사라는 것이다. 강씨에 따르면, 지난 9월3일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혹시라도 가족들이 정부에 기대를 할까봐 이야기하는데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정부는 정보가 없어서 군사작전을 할 수도 없고, 예산이 없어서 협상금을 보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10월5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

선원들의 생존 여부 및 건강 상태는 오리무중이다. 지난 7월 선장 박씨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4명 모두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이후로는 해적들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영어 잘 하는 사람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해라’ 따위 메시지만 남긴 채 전화를 끊곤 한다.

소말리아의 분쟁 전문 매체 (소말리아 리포트)(www.somaliareport.com)는 그간 한국인 4명의 소식을 비정기적으로 보도했다. 이 매체는 지난 1월23일 한국인 피랍자 4명 중 2명이 더운 날씨와 염분이 높은 식수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다고 보도했다. 4월23일에는 인질들을 서로 차지하려는 세력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10명이 죽고 20여 명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사망자 중 한국인 선원을 지키는 해적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지난 9월27일 소말리아 언론사 (리사알라)와 유튜브에는 한국인 4명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선장 박씨는 영어로, 기관장 김씨는 한국어로 각각 1분여간 구출해 달라고 호소했다. 박씨는 동영상 촬영일자가 7월21일이라고 밝히고 “지금 우리의 건강이 매우 좋지 않다(Now our people is, health is very bad)”라고 말했다. 김씨는 말라리아에 걸려 보름가량 고생하다가 겨우 회복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 각하, 우리를 구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영상은 얼마 전인 10월 초부터 한국에서 검색이 차단됐다. 동영상 주소를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영상에 접근할 수 없다. 검색을 가로막은 이유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관계자는 “아시지 않나. 드릴 말씀이 없다”라고 말했다.

허은선 기자 |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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