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9일 화요일

조중동과 ‘동행’하는 이석기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6-19일자 기사 '조중동과 ‘동행’하는 이석기'를 퍼왔습니다.
[김종철 칼럼] ‘언론플레이’가 아닌 정당한 논리와 확신으로 매카시즘에 맞서야

요즈음 언론에서 가장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인물은 국회의원 이석기다. 월요일인 6월 18일자 주요 신문들은 지난 일요일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문재인보다 이석기를 훨씬 크게 다루었다. 서대문 독립공원 앞에서 ‘대선 출정식’을 가진 문재인은 제1야당에서 현재로는 가장 앞서가는 예비후보인데도 대다수 신문은 그 행사를 1면에 조그맣게 다루었다. 그 대신 15일에 이석기가 기자 9명과 나눈 대화 가운데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내용은 대서특필되었다.
이석기는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하는 자리에서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특위가) 애국가 부르면 쇄신이라는데, 황당한 ‘닭짓’(멍청한 짓의 은어)이라고 본다”고 말한 뒤 기자들에게 비보도(오프더레코드)를 5번이나 요청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도 있었다.
나는 이런 보도 내용을 보면서 ‘이석기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국회의원이 되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그가 일부러 ‘닭짓’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이념과 상식이 신호등이 고장 난 네거리에서 좌충우돌하는 자동차들처럼 갈팡질팡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석기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가(國歌)라면 아리랑 이런 게 실제로 우리 민족적 역사와 정한을 다뤘다. (국가라면) 윤도현 식으로 다이내믹하든지, 최근엔 ‘버스커버스커’ 노래도 좋다. 세련된 것보다도 아마추어인데 진정이 배어서 사람 마음 스쳐가는 그런 노래가 좋다.” 윤도현과 버스커버스커가 ‘아마추어’라는 것은 이석기의 ‘독보적 상식’인가보다. 윤도현은 웬만한 한국인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윤도현 밴드’의 리더이고 버스커버스커는 2011년 한 케이블방송이 주관한 ‘슈퍼스타K 3’에서 준우승하면서 유명해진 3인조 그룹이다.

비례대표 사퇴를 거부로 지난 6일 제명결정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7일 국회 의원회관에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어사전을 보니 ‘버스커(busker)’는 ‘떠돌이 광대’라는 뜻이다. 떠돌이 광대들인 버스커버스커가 첫 앨범에 실은 표제곡인 아래와 같은 노래를 ‘국가’로 부르면 이석기의 말대로 ‘진정이 배어서 사람의 마음을 스쳐’ 갈까?
“야~ 우리 놀러 가자, 야우린 어때?/ 조각공원 갤러리 앞, 아무렴 어때?/ 나 하루종일 또 컴퓨터 앞 똑같은 하루/ 친구들과 놀러 가자/ 음... 야우린 어때”

이석기는 “국가라면 아리랑 이런 게 실제로 우리 민족적 역사와 정한을 다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시작되는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 그 많은 아리랑 가운데 어떤 곡을 국가로 지정해야 할까? 
1974년 9월 28일 육군본부 비상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던 ‘민청학련 사건’ 젊은이들은 법과 상식을 무시하는 엉터리재판에 항의하는 뜻으로 애국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교도관들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는 데도 노래는 계속되었다. 그들은 박정희의 유신독재체제는 부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은 인정한 것이었다.
6월 18일자 일부 언론의 기사와 논설은 이석기가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고 기자들에게 주장한 것은 ‘색깔론’에 다시 불을 지핌으로써 며칠 뒤에 치러질 통합진보당 대표 선거에서 당권파를 단합시키기 위한 ‘계산된 언동’이라고 분석했다. 나는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이석기의 말과 행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그가 보수언론뿐 아니라 새누리당에게도 끊임없이 ‘색깔론’의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석기는 ‘종북(從北)’과 ‘종미(從美)’도 도마 위에 올렸다. 그는 보수언론이 자신을 ‘종북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데 대해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데 내가 누구의 종이란 말인가? 그렇게 하면 진짜 종은 종미에 있다”고 말하면서 ‘근대에서는 견해가 다르더라도 토론이 가능하지만 지금은 비이성적인 전근대시대’라고 주장했다.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들이 현재 전근대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말의 논거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수구보수세력 말고 진보적인 인사들은 미국에 대한 지나친 사대주의와 군사적 종속은 물론이고 북한 체제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석기가 새로운 취재거리를 제공할 때마다 조선·중앙·동아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신바람이 난다. 그들은 ‘국회의원 이석기는 종북주의자’라고 매도하면서도 그의 발언에 지면을 아낌없이 할애한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조중동 프레임’의 가장 중요한 소재 가운데 많은 양을 이석기가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역시 이석기가 제기한 ‘애국가 시비’가 신문지면을 도배하자마자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발언이라고 공격했다.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는  17일 “(애국가 발언을) 국가 안위에 관한 문제로 생각한다. 최근의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국가안위위기관리체계를 마련하고 국가기밀보호특위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종북좌파의 국가기밀에 대한 접근, 유출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비서실 직원 등의 기밀접근 관리체제를 강화함으로써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합법적 활동과 기능을 제한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보기에 이석기는 민주주의 이념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는 지난 5월 1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회가 비례대표 경선을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규정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몇 %가 부정인가? 보통 보면 사물을 판단해서 부정이 한 70%다, 아니면 50%다, 이렇게 될 때 총체적 부정과 총체적 부실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어떤 선거에서든 단 1%의 부정이라도 저질러지면 그 선거는 무효이다. 그런데 이석기는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의 ‘양’이 적기 때문에 자신은 의원직을 사퇴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석기는 국회의원이 된 지 한 달도 안 된 정치인이다. 그는 통합진보당 경선부정은 물론이고 자신이 경영하던 씨앤커뮤니케이션(CNC)이 받고 있는 ‘회계 부정과 국고 횡령’ 의혹에 대해서 완전히 결백하다는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언론인들을 만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그가 국가의 정체성이나 종북과 종미에 관해 균형이 잡히지 않은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낸다면 그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요즘 트위터를 포함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석기를 향해 ‘그 입 다물라’는 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것이야말로 ‘민중의 소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 6월 19일은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딱 6개월 남긴 날이다. 이명박 정권이 파탄을 내다시피 한 나라살림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정직하고 성실한 정부’가 들어서기를 고대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민주와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은 수구보수세력의 악의적인 선동과 색깔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에게 ‘가슴을 열어 놓고 한 이야기’에 대해 몇 번이나 ‘비보도’를 요청하는 이석기식 ‘언론플레이’가 아니라 정당한 논리와 확신으로 매카시즘에 맞서야 할 것이다.

김종철·언론인 전 연합뉴스 사장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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