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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9일 일요일

TNT 1kg에 물기둥 솟구쳐…천안함엔 물방울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5-18일자 기사 'TNT 1kg에 물기둥 솟구쳐…천안함엔 물방울만'을 퍼왔습니다.
신영식 카이스트 연구팀 수중폭발 실험 “버블젯원리” vs “폭발없었음을 보여준 것”

천안함이 TNT 250~360kg 규모의 이른바 1번어뢰 폭발로 생긴 버블제트 현상에 따라 두동강났다는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발표와 관련해 실제 카이스트(KAIST) 연구팀이 수중폭발 실험을 실시한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실험결과 단 1kg의 TNT 만으로도 엄청난 굉음과 30m의 물기둥이 솟구친 것으로 나타났다. 천안함의 250~360분의 1 수준만으로 이 같은 현상이 생겼으나 천안함 침몰 당시엔 견시병의 볼에 물방울 또는 분무기로 뿌린 듯한 물보라만 있었다는 증언이 나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버블제트 효과를 실험했으나 되레 천안함에는 폭발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반해 연구팀은 천안함에 적용하기 위한 수중폭발 실험은 아니었다면서도 천안함도 버블제트 효과에 의한 침몰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KAIST(총장 강성모)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신영식 교수는 지난 9일 충남 당진에 위치한 한 채석장의 깊이 12m 저수지에서 폭약의 수중폭발로 인한 충격이 선박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크기 8.4m(세로) × 0.68m(가로) × 0.41m(깊이), 무게 350kg의 알루미늄 재질 모형 선박을 만들어 가속도, 속도, 압력, 변형 측정 센서를 부착해 저수지 위에 띄워놓은 뒤 여러 차례 배 밑에서 폭약을 터뜨렸다.
폭발실험 동영상을 보면, TNT 200g 만으로도 배에 큰 진동을 줬으며, 1kg을 폭발시키자 30m의 물기둥이 치솟았으며, 배는 순식간에 엿가락처럼 휘어진채 곧장 침몰했다. 연구팀은 이런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한 이유를 두고 ‘공진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특정진동수를 가진 물체가 같은 진동수의 힘이 외부에서 가해질 때 충격이 더 크다는 것이다.


지난 9일 카이스트 신영식 교수팀이 충남 당진의 한 채석장에서 실시한 수중폭발 실험. ⓒ카이스트

이번 배의 손상실험은 버블제트의 위력을 알아보기 위해 국내 최초로 실시됐다. 버블제트는 물속에서 폭약이 폭발할 때 가스 버블에 의한 엄청난 압력의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면서 수면 위로 순식간에 물기둥이 솟구치는 현상이다.
이를 두고 연구팀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은 아니라고 밝혔다. 실제로 배의 길이(8.4m)는 천안함(88m)의 10분의 1인데 반해 무게는 천안함(1200톤)의 약 3400분의 1이며, 폭약량은 250분의 1이라 정확한 축적도 이뤄져 있지 않다. 또한 배의 강도도 군함과 같이 늑골과 종강도 보강 등 튼튼한 형태를 갖추지도 않은 채 알루미늄으로만 제작됐다. 천안함 선체는 철로 이뤄져있다.
그런데도 천안함도 같은 버블제트 원리로 두동강 났을 것이라고 연구팀은 보고 있다. 신영식 카이스트 교수는 17일 저녁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배의 모델선에 근접폭발로 버블제트의 영향이 어떻게 미치는 것인지 연구한 것으로 1대 1로 천안함의 현상을 알아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천안함의 경우 굉장히 큰 사이즈의 함정인데 반해 우리 모델선은 매우 작다. 하지만 그 현상은 증명된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신 교수는 “우리 배의 경우 선저 1.5m 아래에서 공진현상이 일어나지만 천안함의 경우 5~6m 아래에서 터져쓸 때 생긴다”며 “천안함은 어뢰 TNT 450kg가 폭발해서 공진현상과 함께 두동강 나지 않았나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카이스트 신영식 교수팀이 충남 당진의 한 채석장에서 실시한 수중폭발 실험. ⓒ카이스트

천안함에선 찾아볼 수 없는 물기둥과 관련해 신 교수는 “작은 폭약(200g)을 넣었을 땐 물기둥이 안생기기도 하고, 천안함의 경우 폭약이 터진 깊이가 5~9미터였으며, 해당 수심이 47m였기 때문에 충격파가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이 없기 때문에 수면위로 왔을 땐 물기둥이 안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신 교수는 “우리는 천안함 침몰의 결과를 내놓으려는 실험을 한 것이 아니라 함정 제작시 수중폭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선박·해양전문가들은 신 교수의 분석과 정반대로 이번 실험결과가 천안함 침몰시 폭발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해난구조 전문가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모형선박을 보면, 중간에 늑골(프레임)도 하나 없이 격벽만 넣어서 전혀 종강도 없이 제작돼 매우 조악하다”며 “그럼에도 이번 실험을 통해 수중폭발시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거대한 물기둥이 발생했으며, 폭음도 주변이 울릴정도로 컸으며 물기둥에 의한 물벼락으로 수면에 약 30m 지름의 큰 파문이 형성된 반면, 천안함의 경우 물기둥도 없었고, 소리도 백령도 주민들은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천안함 생존자의 경우 타박상을 입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멀쩡했으며, 심지어 물벼락을 맞은 이도 없었고, 희생자 역시 모두 익사였다는 점을 우리 국민들이 다 알고 있다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번 실험이 인증된 기관에서 일반인에 공개돼 천안함에 대한 의심을 가진 사람이 다소 조악한 모형배이지만 TNT 1kg에 박살이 났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제 천안함 크기의 폐군함으로 군이 원하는 해역에서 수중폭발 실험을 해보자”며 “그렇다면 더욱 폭발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카이스트 신영식 교수팀이 충남 당진의 한 채석장에서 실시한 수중폭발 실험. ⓒ카이스트

군사평론가 김성전씨(예비역 공군중령)도 18일 “차라리 폐선박을 이용해서 직도해상 1.9km 지점의 해안에서 밤 9시10경 소음, 섬광 선박 파고형태 TOD 화면상의 반응과 선박 파괴후 바다에서 나타나는 현상 등을 모두 점검하는 실험을 하는 게 낫다”며 “또한 동물을 탑승시켜 고막파괴여부를 분석하고, 형광등이 파괴되는지 여부도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TOD 두대를 이용해서 화면 내에 해당 함정이 폭발하는 것과 주변에 폭발이 있을 때를 나눠서 파악할 필요도 있다”며 “직도사격장은 실무 사격장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상철 전 민군합조단 민간위원(서프라이즈 대표)도 “이번 실험 결과 유의미한 점은 불과 1kg의 폭약을 터뜨렸을 뿐인데 물기둥이 30m나 솟구친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라며 “천안함에서는 물기둥이 발생한 흔적도 없을 뿐아니라 물기둥을 본 대원이 단 한 사람도 없었음이 재판과정을 통해 이미 밝혀졌다”고 밝혔다. 그는 “87m 길이 10m 폭 11mm 두께 선박의 3m 하부에서 350kg TNT의 폭발물이 터졌다면 선체가 어느 정도 부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유추와 함께 그 공간에 머물고 있는 인체가 어떠한 손상을 입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며 “천안함 희생자 46명 가운데 고막이 터지거나 코피가 나거나 장파열을 일으킨 대원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천안함 함미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백령도초병 “천안함좌초 중대상황실서 전달받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1-27일자 기사 '백령도초병 “천안함좌초 중대상황실서 전달받아”'를 퍼왔습니다.
[천안함 공판중계] 김승창 상병, 사고현장 인근 “섬 전체에 관측초소 있다…물기둥 못봐”

천안함 침몰사고 당시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백령도 해병대 소속 초병이 사고 직후 ‘PCC(초계함·천안함)가 좌초됐다’는 보고를 해병대 소속 중대본부로부터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라 천안함이 백령도 서해상에서 두동강 나 침몰된 초기 상황에 대해 천안함-2함대사령부-합동참모본부 뿐 아니라 해병대에서도 좌초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 당시 백령도 서해안 247초소에서 근무했던 김승창 상병(전역)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천안함 민군합조단 민간위원)의 명예훼손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진술했다.
당시 해병대 6여단 62대대 6중대 소속이었던 김씨는 이날 법정에서 “당시 해안 경계작전에서 초병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밤 9시23분경 두무진 돌출부에 가깝고 (서쪽을 정면으로 볼 때) 2~3시 방향(북서방향)에 가까운 곳에서 ‘쾅’소리와 함께 하얀불빛이 보였다”며 “불빛이 희미하게 퍼져있다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근무는 김씨와 박일석 당시 상병(전역)이 근무하면서 상황을 함께 목격했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인지한 직후 곧바로 6중대 상황실에 ‘낙뢰’라고 보고한 이유에 대해 “당시에 해상에 큰 소리가 들렸는데 평소 낙뢰가 떨어질 때 그런 현상이 있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고했다”며 “당시에 불빛을 봤을 때 밝아졌다가 사라지는 모습만 봤다. ‘쾅’하는 아주 큰 소리가 한차례 들렸다. 낙뢰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구글어스의 백령도 서해상 지도에 합조단 발표 사고지점과 KNTDS상 최종 소실지점, 백색섬광 발화예측지점 등을 표시한 것.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변호인단

김씨는 물기둥을 봤느냐는 신문에도 “보지 못했다. (합조단에서 조사받을 때도) 일관되게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하얀 불빛이 수중폭발에 의해 생긴 물기둥이 아니라 낙뢰였다고 것이다. 김씨와 박일석 당시 상병이 목격한 하얀 불빛을 두고 국방부 합동조사단은 최종보고서에 “물기둥”이라고 기술했었다.
특히 김씨는 사고 발생 직후 중대 상황실에서 PCC(초계함:천안함의 정식 명칭 ‘PCC 772 천안’)가 좌초됐다는 상황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 PCC가 좌초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사고직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PCC가 좌초됐다고 들었다. 중대본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PCC 좌초 상황이라는 얘기를 들은 경위에 대해 “(사고발생 상황을 보고한 뒤 중대본부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PCC가 좌초됐다, 비상상황이다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중대본부 상황 근무를 서고 있던 장교 또는 사관 상황병 중 한 사람한테 전달받았는데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않다”고 증언했다.
앞서 김씨는 사고직후인 2010년 4월 2일 작성한 진술서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247초소에 근무자가 계속 근무했고 이후 ‘PCC 좌초 인지후’ 연화리 쪽으로 중대본부 인원이 전투배치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었다. 김씨가 들은 곳이 중대본부였다는 것.
이후 김씨와 박일석 상병은 지시에 따라 ‘좌초된 PCC’에 탐조등을 비췄다고 김씨는 전했다. PCC에 탐조등을 비추라고 지시한 것도 중대상황실이었던 것같다고 김씨는 밝혔다. 김씨는 당시 PCC에 대해 “(우리가 본 것은) 그 정도 크기이면 PCC 정도되는 배로 추정했다”며 “야간엔 민간어선이 없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미

김씨와 박 상병이 당시 탐조등을 비춘 PCC의 위치 역시 국방부 합조단이 발표한 사고지점(폭발원점-백령도 서방 2.5km)와 크게 차이가 난다. 탐조등을 비춘 위치에 대해 김씨는 “(두무진) 돌출부에서 정반대 방향이었다. (서해를 정면으로 보고) 9시 방향(정남쪽) 정도였다”며 법정에 게시된 해도 상에 변호인이 지목한 위치를 보고 답했다. 이는 거의 해안에 인접한 곳이며 위치도 연화리 남쪽에 해당되는 곳으로 합조단이 발표한 사고지점과는 크게 다르다.
이와 관련해 사고 이틀 뒤(2010년 3월 28일) 작성된 박일석 상병의 진술서에 따르면, “9시30분경 247초소 기준 방위각 170도 2km 지점에서 해군함정 3척이 와서 구조했다. 해안탐조등으로 247초소 근처 해안을 비추면서 해군들이 이쪽으로 올 수 있게 비췄고, 생존자가 있지 않을까 탐조등을 계속 비췄다. 그 후 247초소 방위각 3km 지점으로 해군함이 계속 와서 ‘좌초된 PCC’를 구조”했다고 기재돼 있다.
한편, 당시 상황을 목격한 247초소 외에도 백령도 북쪽해안가(두무진)부터 남쪽해안가에 이르는 전 지역에 관측초소가 있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김씨는 ‘두무진 쪽에서부터 백령도 아래 쪽 끝까지 관측초소가 있느냐’는 변호인 신문에 “있었던 것으로 안다. 섬 지역에는 초소가 전부 있다”며 “모두 우리 중대(6중대 관할)였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령도 연화리에 설치된 천안함위령탑 사고지점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조현호 기자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