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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6일 월요일

뉴욕선 대한문 앞 텐트농성 즉시 체포된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06일자 기사 '뉴욕선 대한문 앞 텐트농성 즉시 체포된다?'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따라 뉴욕 간 경제신문기자의 ‘노력’

▲ 오늘자(6일) 한국경제 1면 기사 인터넷 화면 캡처 파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 도착하여 방미 일정에 돌입하였다. 물론 각 언론사의 많은 기자들도 대통령을 따라 바다를 건너갔다. 국내에서 주로 노동단체들의 시위를 비판하는 기사 및 데스크 칼럼을 쓰던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 역시 미국에서 기사를 보내왔다.  
 
두 면에 걸친 기사 내용의 핵심은 미국에서는 대한문 앞 텐트농성 같은 것을 하면 즉시 체포되고, 용산참사처럼 화염병을 사용하면 즉시 진압대상이 되며 희생자가 나와도 경찰 측은 책임을 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폴리스라인’이 지켜지고 있고 공권력이 지극히 존중받기 때문에 평화시위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한 나라의 법률엔 수많은 맥락이 있으며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을 따로 떼어내어 단선적으로 비교해서는 곤란하다. 막말로 한국의 재벌그룹들에게 미국 수준의 경영구조를 가지게 하자고 한다면 경제신문들은 “그렇게 하면 한국 경제 다 망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속도조절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심지어 경제신문들은 한국의 재벌그룹과 비슷한 구조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의 제도에 대해서도 단지 특정 법안들의 유무를 비교해서 “선진국에는 없는 규제다. 너무 과도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옹호하려고 하는 재벌그룹의 소유구조 문제를 떠나서 노동과 시위의 문제로 보더라도 문제는 크다. 미국 사회는 그 분야에 있어 매우 선진적이거나 진보적이라 타의 모범을 보일 정도는 아니라도, 적어도 한국 사회보다는 관용적이고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 역시 일정 부분 ‘미국식 표현의 자유’에 기인한 것인지라 한국 사회에 일률적으로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해 언제나 중요한 것은 그것의 원인과 그것이 전체 사회제도 속 어떤 문맥에서 발생하는지를 알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에 기반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비교없이 제 입맛에 맞는 해외의 사례들을 가져와 상대방을 ‘무식하다’고 질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가령 참여정부의 기자실 폐쇄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논거는 “기자실을 가진 건 일본과 한국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자실은 폐쇄되어야 한다는 논리에 한국경제가 수긍했는가? 이런 논법은 검찰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나라만 바꿔서 헌법재판소에 대해 비슷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부러진 화살) 사건에서 판사에게 석궁을 쏜 교수를 옹호하는 이들은 “증거가 사라졌으므로 미국 같으면 무죄였을 사건”이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그런 식으로 따지면) 미국 같으면 검사에게 석궁만 겨눠도 수십 년형”이라고 재반박했다. 
 
윤기설 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가 ‘한국 최초의 노동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간 지면에 써왔던 기사와 칼럼은 위에 예시한 것들과 같은 단편적인 반박과 재반박의 논리에 해당한다. 특정한 법안이나 제도는 그 사회의 다른 법안 제도 정책 및 문화적 조류를 감안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소거하고 제 입맛에 맞춰 유리한 제도를 호출한다. 
 
윤 기자는 심지어 딱히 처벌한 근거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용인되고 있는 대한문 시위마저 행정지침과 ‘미국 기준’을 잣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국의 법과 법원의 판단을 깡그리 무시한 자세라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미국법에 의거해 산재보상을 피해간다는 의혹이 있는 삼성전자나 회계자료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는 쌍용자동차 같은 기업들을 재단해본 일이 있는가? 아니면 역시 한국법원의 판단을 무시하고 파견노동자의 정규직을 거부하는 현대자동차에 대해, 미국법원의 판단을 무시한 기업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성토한 일이 있는가? 
 
한국 법원의 판단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온전한 준법주의도 아닌, 미국 기준을 재벌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온전한 사대주의도 아닌, 사회와 법을 횡단하는 주제에 해당 사안에 대한 어떤 보편적인 권리의 충돌에 대해선 결코 말하지 않는 이러한 시선이 한국의 경제신문들의 맨 얼굴이다. 그 재벌일변도의 시선을 그냥 드러내기가 민망하여 ‘노동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면 참담하다.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2012년 1월 4일 수요일

'노예'를 거부한 케이팝의 망명자 JYJ, 그들의 운명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04일자 기사 ''노예'를 거부한 케이팝의 망명자 JYJ, 그들의 운명은…'을 퍼왔습니다.
[이동연의 케이팝 오디세이] 케이팝의 경이적인 팬덤

바야흐로 케이팝(K-팝) 열풍이 불고 있다. 도쿄에서, 베이징에서, 방콕에서, 그리고 파리에서, 런던에서, 뉴욕에서 케이팝은 새로운 글로벌 팝으로 부상하고 있다. 방송과 인터넷 미디어는 케이팝이 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글로벌 아이콘이라고 떠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얼마나 케이팝을 알고 있을까? 케이팝은 어떤 조건 속에서 글로벌 팝으로 각광을 받고 있을까? 케이팝의 음악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케이팝은 과연 실체가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팝은 케이팝이 아니다. 케이팝은 아이돌들의 음악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이팝의 외부와 내부는 단절되어 있다. 해외 케이팝 팬들과 국내 음악팬들이 케이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케이팝은 마치 무노조 신화로 글로벌 기업으로 등극한 삼성과도 같다. 아이돌 그룹들은 열심히 노력해 글로벌 스타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들의 고민과 고통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봉쇄되어 있다. 노조 없는 글로벌 기업 삼성처럼, 케이팝도 자유가 없는 무한 경쟁의 글로벌 팝이다.

케이팝의 글로벌 열풍은 분명 존재하는 사실이지만 미디어에 의해 과장되어 있다. 왜 그런가? 미디어들이 연예제작사와 공모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2010년에 있었던 SM Town Live in LA를 취재하기 위해 20여개의 한국 언론사가 취재에 동참했다. 물론 모든 경비는 SM에서 부담했다. 공연 다음날 공짜로 취재한 미디어들이 일제히 케이팝을 찬양 기사를 쏟아냈고, 이 덕분에 SM의 최대주주 이수만의 주식은 순식간에 60여억 원가량 올랐다. 이수만의 주식가치는 현재 2000억 원이 넘고, 작년 말에 코스닥에 상장한 YG엔터테인먼트 대표 양현석의 주식 시가는 1400억 원대다. 2011년 SM Town Live in Paris에는 한국관광공사가 3억 원을 지원했다. 케이팝은 언론과 정부의 집중지원을 받으며 국내 시장을 평정하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케이팝은 10대에서 20대 아이돌 팝을 좋아하는 글로벌 팬들이 만든 초국적 현상이다. 음악적으로 실력이 검증되었다기보다는 현재 세계 팝음악 시장에서 사라진 아이돌 팝의 공백기를 메우면서 대박이 난 것이다. 케이팝의 음악은 현재 미국의 팝음악의 트랜드를 참고하면서 탁월한 댄스실력을 가미해 특이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고, 제3세계 음악시장은 다시 케이팝을 모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탄생에 큰 역할을 하고, 서적 등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에 진지한 접근을 해 온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케이팝을 설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케이팝의 겉과 속, 외면과 내면, 음악과 산업, 생산과 소비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한다. 이 연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총 열 개의 꼭지(예정)를 들고 독자 여러분을 찾을 예정이다. 그 첫 번째 토픽은 케이팝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JYJ다. 추방당한 JYJ

JYJ는 케이팝의 아웃캐스트, 즉 망명자다. 그들은 케이팝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 즉 신성한 추방자다. 로마법에 나오는 호모 사케르란 추방당한 자이며,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 사회로부터 삭제 당하고 시민의 권리가 박탈당한 자다. JYJ는 물론 정치적 망명자, 사회적 천민집단이 아니다. 여전히 케이팝의 흥행 스타이자 많은 팬덤을 보유한 JYJ가 외롭고 힘든 정치적 망명자들처럼 불행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나라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망명자이자 추방자의 성격을 지닌다.

JYJ는 지금도 한국에서 정상적인 방송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9월 초에 있었던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폐막식 축하무대에 나선 것이 유일한 방송활동이다. 그들은 동방신기로부터 떨어져 나온 뒤 2년간 공식 음반을 발매하고 국내외에서 많은 음반을 판매했지만, 단 한 번도 국내 대중음악시상식에서 상을 타지 못했다. 열악한 음반시장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데뷔앨범 [더 비기닝(The Beginning)]과 2번째 정규앨범 [인 헤븐(In Heaven)]이 각각 35만여 장 이상 팔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왜 음악시상식에서 후보 지명조차 되지 않았는지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제주세계7대경관' 홍보대사로 지명되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취소되고, 방송출연이 예정되어 있던 KBS 일정도 돌연 취소된 저간의 상황을 돌아보면, 이들의 활동을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거나, 서로 동조하고 묵인하는 거대한 이익집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JYJ의 많은 팬들은 그 방해자가 이들의 전 소속사인 SM 엔터테인먼트라고 믿고 있다. JYJ의 국내 방송활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바로 3명의 탈퇴를 처음부터 못마땅해 한 SM 엔터테인먼트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JYJ는 불공정 계약의 부당함과 수익 분배의 불투명함을 공개적으로 폭로해, 잘 나가는 SM을 곤경에 빠뜨렸다. JYJ 팬들은 SM이, 할 수 있는 한 JYJ의 활동을 최대한 방해해서 자신을 배반한 자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를 본보기로 보여주려 한다고, 그리고 현재 소속 아이돌 그룹들에게 암묵적으로 복종의 경각심을 심어주려 한다고 생각한다. 갱스터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SM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었던 동방신기가 계약 문제로 설사 활동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해도, 현재 데뷔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연습생 그룹들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제작 권력을 활용해 동방신기의 위치에 올려놓으면 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동방신기는 자신들의 연예제작의 파워를 공고하게 해주는 효자이면서 동시에 언제든지 내칠 수 있는 서자이기도 했다.


▲JYJ는 '노예'로까지 비유되는 한국 아이돌의 계약관행을 다시금 사회에 이슈화시켰다. ⓒ뉴시스

SM의 잘못된 판단

SM이 JYJ의 활동에 제동을 걸어 이들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판단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케이팝의 가장 막강한 아이돌 그룹 제작사로 성장한 SM이 자신의 힘으로 JYJ의 방송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특성상 방송 없는 흥행은 불가능하다. SM 소속 아이돌 그룹들이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막강하다. 이들 멤버들은 다른 어떤 연예제작사 소속 아이돌 멤버보다 음악프로그램과 연예오락프로그램, 라디오 프로그램 DJ와 고정 출연의 비중이 크다. 방송사들은 직접적인 압력을 받지 않더라도 많은 출연진을 보유하고 있는 SM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SM의 암묵적 동의 없이는 JYJ의 방송출연을 감행할 수가 없다. 지난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폐막식에 JYJ가 KBS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나마 이 방송이 예능국 소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는 SM과 JYJ의 소송 때문에 이들을 출연시킬 수 없다고 하지만, 이미 법원은 SM과 이전 동방신기와의 전속계약이 부당하다는 1차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그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SM이 JYJ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진정서를 받고 조사한 끝에 몇 가지 단서들을 발견하고 수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준비를 하고 있다.

두 번째로, SM은 JYJ가 동방신기 시절에 버금갈 정도로 제대로 된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확보하기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이돌 그룹이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그룹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관리하는 체계적인 관리(management)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돌 그룹의 활동에는 음악창작과 안무부터 코디네이션, 일정 관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스태프들이 필요하다. SM 측은 방송활동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동방신기 전 멤버라 하더라도 기획사의 막강한 지원 체계 없이는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건, 현재 JYJ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SM의 전폭적인 지원받아 활동하고 있는 2명의 동방신기가 JYJ만큼의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동방신기의 팬들도 JYJ의 활동과 명분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3명의 JYJ와 2명의 동방신기 간의 콘서트 매진율, 쇼케이스 흥행, 음반 판매, 광고 모델 활동, 인터넷 검색인지도 등을 비교해보면 JYJ가 훨씬 성공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팬덤의 정의로움

동방신기의 불공정 계약 파문 이후 SM이 간과하고 있던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팬덤의 위력이다. SM은 소송을 제기한 3명이 동방신기를 탈퇴하더라도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 팬들의 동요는 없거나, 있어도 미미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동방신기라는 브랜드만 지켜낼 수 있다면, 팬들은 여전히 그 이름에 환호하고 지지할 것이라는 판단. 그러나 그러한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동방신기 팬덤의 다수는 3명의 JYJ의 행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팬들에게 중요한 것은 동방신기 자체의 이름이 아니라, 동방신기의 정의였던 셈이다. 더욱이 소송을 제기한 3명의 정당한 사유가 SM으로부터 개인 사업에 대한 욕심으로 왜곡되면서, 그리고 2명의 동방신기 멤버들의 책임 전가식 발언이 이어지면서 동방신기의 팬덤은 3명의 JYJ로 이동했다. JYJ는 동방신기의 정의와 진실의 이름인 것이다. 팬들은 비록 동방신기라는 기표를 갖지 못했어도, 동방신기가 뮤지션으로 가야할 정의로운 길은 JYJ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JYJ 팬덤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자신들스스로 지켜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팬덤은 이기적이다. 팬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배타적인 행동을 한다. 그래서 팬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들과 그 스타를 길러낸 제작사를 기꺼이 분리하길 원한다. 제작사가 있기에 스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팬덤은 제작사가 없으면 스타도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팬덤에 제작사는 어찌 보면 필요악이고 불편한 진실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가 성공하기 위해 막강한 제작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경제적투자로 제작사가 큰 돈을 벌고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어 스타들이 다시 강한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욱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이 맺고 있는 계약이 부당하고, 그들의 스케줄이 살인적인데다, 정당한 수익 분배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작사는 팬들에게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동방신기의 제작사인 SM에 대한 팬덤의 불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SM과의 전속 계약 불공정 문제로 떠났던 HOT, 신화의 전례를 비춰볼 때 팬들에게는 동방신기가 인기 절정의 순간에 혹여나 불공정 계약 문제로 큰 난관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한국 아이돌 팝, 이른바 케이팝 성공 신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또한, 아이돌 노예계약을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뉴시스
그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나자, 동방신기의 팬덤은 이름 대신 정의를 선택했다. 곧바로 3명의 동방신기를 긴급 지원할 수 있는베이스캠프를 차렸고, SM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다. 동방신기의 전속예약이 왜 불공정한지, 그들에게 왜 충분한 경제적 보상이 돌아가지 않는지, 왜 SM은 일본에서의 활동 수익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지를 구체적인 논리와 실증적인 데이타를 동원해서 설명하고, 이를 통해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시켰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에 동방신기의 전속 계약이 부당하다는 진정서를 냈고, JYJ의 방송활동이 가로막히자 SM이 JYJ의 방송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여 역시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그들은 동방신기 팬덤에서 JYJ 팬덤으로 전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마련한 돈으로 "당신의 청춘을 응원합니다"라는 JYJ 지지 캠페인 광고를 진행했다. JYJ가 방송 출연을 못하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 이라는 풍자 광고를 인터넷 무가지에 게제하기도 했다. JYJ가 망명자로 생활하는 동안, 그들을 지지하는 고국의 동포들은 정의로운 공화국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행복의 원천, 자유의지

그렇다면, 케이팝의 망명자 JYJ는 행복할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JYJ 팬덤의 정의가 JYJ를 행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JYJ 행복의 원천은, 겉으로는 상업적인 성공으로 볼 수 있다. 2010년에 공식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JYJ는 동방신기 시절 못지않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2개의 정규앨범과 멤버들의 솔로 싱글앨범, OST 앨범, 콘서트 실황 앨범 등을 합해 최소한 120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롯데면세점 모델 등 10여 곳이 넘는 광고에 출연했고, 화보집, 에세이집, DVD를 출간했을뿐 아니라, 멤버들이 각종 영화 뮤지컬 드라마에 출연했다. 라이브 공연도 일본 투어를 비롯해 2010년 월드 와이드 쇼케이스, 2011년 월드투어 콘서트까지 2011년 11월 6일 현재 총 33회, 약 55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들은 과거 동방신기보다도 경제적으로 더 많은 이익을 얻었고, 2명의 동방신기와 비교해도 더 큰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JYJ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진짜 이유는 아마도 자신들의 활동을 자신들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게 된 환경 때문일 것이다. 소속사의 결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활동을 자신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회복이야말로 JYJ 행복의 원천이다. 현재 JYJ는 소속사가 없이 씨제스엔터테인먼트와 에이전시 계약을 맺어 자신들의 활동에 필요한 일들을 맡기고 있다. 동방신기 시절 SM의 일방적인 스케줄에 의해 활동해야 했던 것과 달리 그들은 자신의 활동에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 이제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프로듀싱하고, 그래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아티스트로 불리길 원한다. 공연을 하고, 유니트 활동을 하고, 음반을 발매하고, 공익적인 활동을 해야 할 때, 그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비록 동방신기라는 국적을 포기한 망명자의 신세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의 활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본래의 이름과 기득권을 포기하고 대신 생각과 활동의 자유의지를 갖게 된 것, 이것이야말로 케이팝의 많은 뮤지션들이 꿈꿔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동방신기는 JYJ 멤버들을 비판하는 뉘앙스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뉴시스

다시 동방신기로의 재회?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계보에서 가장 완벽한 그룹으로 평가받았던 동방신기는 어쨌든 지금 동방신기와 JYJ로 분리되었다. 엔터테이너로서 최고의 정점을 달리는 시점에서 발생한 이들의 운명적인 분리는 팬들에게는 불행이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신화의 예처럼 5명의 동방신기가 모두 SM에서 나와서 독립적인 활동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이런 저런 사적인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이들은 분리되고 말았다.

예전의 동방신기 팬덤이나 현재의 JYJ 팬덤은 이들이 다시 재결합하는 것을 한번쯤은 꿈꿀 것이다. 2명이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나와 다시 동방신기의 이름으로 재결합하는 것 말이다. 3명의 JYJ가 동방신기의 이름이 그리워 다시 SM으로 합류할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명의 동방신기는 SM에서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하며 다시 활동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SM이 스스로 동방신기라는 상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의 재회는 어떤 형태로든지 불가능하다. 이미 SM에 잔류하기로 결심하고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2명의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 최강창민이 한때 고민했었던 SM으로부터의 해방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가능성도 그리 많지 않다. 만일 이들의 합류가 가능해도 동방신기의 이름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동방신기로의 복귀 혹은 재회를 위해 남은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2명의 동방신기와 3명의 JYJ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되, 마음속으로는 3명의 JYJ를 실질적인 동방신기로 인정하는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쓸 수 없고, SM에 소속된 2명의 동방신기가 분명 존재하지만, 3명의 JYJ에게 '동방신기'라는 실질적인 이름의 권위를 부여해주는 것 말이다. 즉 이름과 내용이 불일치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들은 여전히 동방신기라는 원래의 국적을 포기하는 대신 팬들로부터 상징적 권위를 부여받고 영원히 망명자로 살아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2명의 동방신기가 SM에서 나와 JYJ와 다시 합류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동방신기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실제적으로 동방신기의 국적을 획득할 수 있다. 동방신기의 모든 인구가 망명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이름은 상관없다. 아마도 JYJYC나 YCJYJ가 될지 모르겠다. 비록 과거의 오해와 반감이 있었더라도, 팬들은 아마도 이 두 번째 경우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동방신기를 동방신기로 부르지 못하고 대신 새로운 망명자의 이름을 불러도 말이다.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11년 12월 15일 목요일

[사설] 일본, 수요시위 1000회 피맺힌 외침이 안 들리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4일자 사설 '[사설] 일본, 수요시위 1000회 피맺힌 외침이 안 들리나'를  퍼왔습니다.
어제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길 건너편에 130㎝ 높이의 작은 소녀상이 세워졌다. ‘평화비’로 이름 붙여진,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이 소녀는 일본군 성노예로 희생당한 할머니들의 당시 모습을 상징한다. 어린 소녀의 평화로운 삶에의 희망은 일제의 전쟁범죄로 인해 갈가리 찢겼다. 한맺힌 삶을 살아온 길원옥씨 등 위안부 할머니 다섯명은 평화비 앞에서 각국에서 모인 2000여명과 함께 “일본은 사죄하라”고 피맺힌 절규를 토해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시위는 이렇게 1000회 행사를 치렀다.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 대만 타이베이 등 세계 곳곳에서도 수요시위 1000회에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집회가 열렸다.
1992년 1월8일부터 어제까지, 20년 동안 수요일마다 어김없이 열린 수요시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과 분노, 슬픔의 역사 자체였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눈을 감기 전 한을 풀어달라”며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알린 뒤,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왔다.
군대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은 이미 국제적으로 판정이 내려진 상태다. 1996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일본 정부의 보상을 촉구했고, 1998년 유엔 인권소위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했다. 2007년엔 미국과 유럽연합 등의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하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식민지배의 책임 문제가 모두 청산됐다며 꿈쩍도 않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압박을 사실상 꺼려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10월 서울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위안부 생존자는 234명에서 63명으로 줄었다. 올해에만 16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촉박하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일본은 진정으로 사죄할 대상을 마주할 길마저 잃게 된다. 일본의 침묵은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내몬 비인도적 범죄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안부 문제를 공식 인정하고 사죄·배상하지 않는 한 일본은 지구촌의 평화와 공존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