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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8일 토요일

대법, 5·16 '혁명재판' 피해자에 19억 원 배상 판결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07일자 기사 '대법, 5·16 '혁명재판' 피해자에 19억 원 배상 판결'을 퍼왔습니다.
"국가권력 이용해 불법 체포·구금... 위법 재판 통해 장기간 수감"

양민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5·16군사정변 직후 불법 체포·구금돼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고(故) 김봉철씨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 1960년 5월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발생한 이른바 '거창 박면장 살해사건'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6·25전쟁 과정 중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남 밀양 지역의 피학살자 유족들도 유골 발견을 계기로 1960년 6월 피학살자조사대책위원회를 결성했는데, 김봉철씨는 유골 발굴이나 수습에 참여했고, 밀양공설운동장에서 국회의원 후보, 유족과 주민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합동위령제에는 지역 대표로 참석했다.

김씨는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한 지 이틀 만에 수사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체포·구금돼 기소되기까지 177일간 구속상태에 있었다. 김씨가 체포된 이후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이 제정됐고, 혁명재판소에 기소됐다. 

당시 혁명검찰부는 "김씨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밀양군 피학살자조사대책위원회를 조직해 위원장에 취임한 후 유족 200여 명을 가입시키고, 이후 장의위원회를 결성해 위원장에 취임한 다음 유골을 발굴해 자신이 상주가 돼 합동위령제를 하면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취지의 구호를 외치게 하고, 경남 피학살자유족연합회 결성대회에 참석해 이사로 취임한 후 좌익분자를 찬양하고 대정부 반감을 조장하는 취지의 선언문을 채택하고 대정부 건의안을 가결하는 등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고무·동조했다"며 기소했다.

혁명재판소는 1961년 12월 김동철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혁명재판소 상소심판부는 이듬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김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해 판결이 확정됐다. 김씨는 형집행 중이던 1965년 12월 형집행이 면제돼 석방됐다. 김씨는 1986년 9월 사망했다.

양민학살 진상규명 요구 김봉철씨, '혁명재판소'에 의해 무기징역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씨 유족의 신청에 따라 2007년 7월 피학살자유족회 사건에 관해 2년간 조사를 진행한 후 2009년 10월 5·16군사정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등이 망인을 예비검속해 장기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조사한 후 혁명재판소에 기소돼 유죄로 처벌한 것을 확인, 고인(김봉철)의 재심 및 명예회복을 위한 절차를 밟을 것을 권고했다.

이에 김씨 유족이 부산고법에 혁명재판소 판결에 관해 재심을 청구했고, 부산고법은 2010년 5월 "망인이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된 것은 위법한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구속기간(30일)을 넘겨 177일 동안 구금됐으므로 수사관이 불법 체포·감금죄를 범행 사실이 증명돼 재심사유에 해당한다"며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개시된 부산고법은 재심사건에서 김봉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이에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인 서울중앙지법 제31민사부(재판장 전광식 부장판사)는 2011년 9월 김봉철씨의 유족 1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망인(김봉철)에게 5억 원, 처에게 2억5000만 원, 자녀(7명)에게 각 1억5000만 원, 형제자매에게 각 3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과 그의 가족들은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반국가단체인 북한 또는 그 구성원을 찬양·고무·동조한 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쓰고 평생을 사회적 냉대 속에 신분상·경제상의 각종 불이익을 당했음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따라서 피고는 불법행위로 인해 망인과 그의 유족들인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국가, 피해 회복 노력 없이 무려 45년 방치... 불법행위 인정"

그러자 국가는 "통상적인 사망 사건과의 균형성,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한국전쟁 전후의 유사 사건 희생자들과의 형평성, 인혁당 사건 등 일부 과거사 사건과의 차별성 등을 고려하면, 1심법원이 인정한 위자료의 금액은 너무 과다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제11민사부(재판장 김용상 부장판사)는 지난 5월 "이 사건에 있어서 불법행위의 내용 및 정도, 망 김봉철에게 선고된 형의 종류와 복역기간, 망인과 원고들의 관계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면 1심법원이 인정한 위자료 금액은 정당하다"며 국가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그러자 국가는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상고해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망 김봉철씨의 유족 1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국가가 약 19억 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해 국가권력을 이용해 망 김봉철을 불법 체포·구금하고 위법한 재판을 통해 망인을 장기간 수감하고, 그럼에도 망인 및 그의 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무려 45년이 경과하도록 방치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위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피고가 주장한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되지 않고, 판시와 같은 액수의 위자료를 지급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신종철(sjc017)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국정원 ‘5·16은 군사혁명’ 표기해 논란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23일자 기사 '국정원 ‘5·16은 군사혁명’ 표기해 논란'을 퍼왔습니다.

ㆍ쿠데타 기술 교과서와 대조돼
 ㆍ비판 일자 홈피서 그냥 ‘5·16’

국가정보원이 인터넷 홈페이지(www.nis.go.kr)에 5·16 군사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표기해온 사실이 23일 드러났다. 비판이 일자 국정원은 이날 오후 ‘군사정변’이나 ‘군사혁명’이란 성격 규정은 생략한 채 ‘5·16’으로 바꿨다.

국정원 홈페이지의 안보수사 항목 가운데 1960년대 ‘국내안보 위해세력’ 활동실태 소개에서 ‘4·19 혁명 후 혁신정당 건설 등 통일전선체 구성을 주도하다 5·16 군사혁명 이후 지하로 잠복하여…’라며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역사교과서가 5·16을 군사정변이나 군사쿠데타로 기술한 현실과 대조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4년 중학교 역사교과서 세부 검정기준으로 ‘국가적, 사회적으로 인정된 주요 역사적 사실(제주 4·3사건, 친일파 청산 노력, 4·19 혁명,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은 충실히 반영하여야 함’이라고 제시했다. 

‘임시정부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 계승’을 규정한 헌법 전문에 비춰, 그 법통을 뒤집은 5·16을 ‘혁명’으로 옹호하는 것은 위헌적 행위이다. 

국정원의 ‘5·16 군사혁명’ 표기는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쿠데타 주역인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통치기구였던 점에서 안일한 역사 인식의 발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 딸인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도 5·16에 대해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두둔해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은 대선을 앞두고 논란이 일 조짐이 보이자 군사혁명이라는 표현은 삭제하고 ‘5·16’이라고만 표기했다. 국정원 공보담당관은 “과거 5·16을 군사혁명이라고 배운 홈페이지 관리자가 무심코 쓴 것”이라며 “애초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게 아니라 특정 시기만을 뜻했다. 시비가 일기 때문에 표현을 바꿨다”고 말했다. 여전히 5·16이 쿠데타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 셈이어서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쿠데타를 쿠데타로 부르도록 허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0일자 기사 '"쿠데타를 쿠데타로 부르도록 허하라"'를 퍼왔습니다.
[이태경의 고공비행] 이상돈 위원의 위험한 역사인식

박근혜 캠프의 이상돈 정치발전위원이 6일 5.16군사정변에 대해 "당시로 볼 때는 군사혁명이 맞다. 역사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군사정변'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변명한 모양이다.전화 인터뷰 도중에 실언을 하거나 착오를 일으키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 이 위원이 순전히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자신의 인터뷰 발언이 불거지자 이 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로는 군사정변이 맞지만 이후의 국가발전을 고려한다면 단순하게 쿠데타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고 완곡하게 표현한 것", "사회자가 '군사정변'이라고 물어본 데 대해서 '군사정변이 맞다고 답했다고생각하고, '군사정변'은 '쿠데타' 동의어로 생각했던 것", "그 이후의 경제발전 등을 고려할 때 총제적 관점에서 5.16을 중남미 국가에서 흔히 있었던 쿠테타와 같이 보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였는데 마치 5.16 자체를 '미화'한 것처럼 되었다" 등으로 '군사혁명'발언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군사정변'을 '군사혁명'으로 잘못 발언했다는 이 위원의 발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위원이 매우 위험한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다는 건 이 위원 스스로가 남긴 블로그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이 위원의 역사인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압축적 산업화 등의 업적이 있기 때문에 5.16군사 정변을 쿠데타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정도가 될 것이다.

이게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와 법치주의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법학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지 모르겠다. 쿠데타가 쿠데타지 그후에 압축적 산업화를 했으면 쿠데타가 아닌 것이 되나? 산업화로 쿠데타라는 헌정파괴행위, 불법행위가 치유되나? 그 알량한 산업화도 더러운 그리고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무수히 많은 불행을 잉태한 산업화에 불과했음을 역사와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 이상돈 정치발전위원ⓒ뉴시스
이상돈 위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일제의 조선 병탄과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비판하기 어렵게 된다. 경제발전 등의 성과를 고려할 때 총체적 관점에서 5.16을 군사쿠데타로 규정짓는게 망설여진다면 근대화 등의 성과를 고려할 때 일제의 조선 강점과 가혹하기 그지 없었던 식민지배도 함부로 비판하는데 주저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한민국 내에 완강히 버티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위원은 그나마 진보 진영과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 보수로 알려져 있다. 그런 분의 역사인식이 이 지경이니 박근혜새누리당이 집권하면 역사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퇴행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상돈 위원이 무엇이라고 말하건 5.16은 군사반란이고 군사쿠데타일 뿐이다. 5.16 군사반란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가능했다는 판단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너무나 업신여기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쿠데타를 쿠데타로 부르도록 허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10일자 기사 '"쿠데타를 쿠데타로 부르도록 허하라"'를 퍼왔습니다.
[이태경의 고공비행] 이상돈 위원의 위험한 역사인식

박근혜 캠프의 이상돈 정치발전위원이 6일 5.16군사정변에 대해 "당시로 볼 때는 군사혁명이 맞다. 역사발전의 측면에서 보면 단순히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군사정변'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변명한 모양이다.전화 인터뷰 도중에 실언을 하거나 착오를 일으키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 이 위원이 순전히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자신의 인터뷰 발언이 불거지자 이 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로는 군사정변이 맞지만 이후의 국가발전을 고려한다면 단순하게 쿠데타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고 완곡하게 표현한 것", "사회자가 '군사정변'이라고 물어본 데 대해서 '군사정변이 맞다고 답했다고생각하고, '군사정변'은 '쿠데타' 동의어로 생각했던 것", "그 이후의 경제발전 등을 고려할 때 총제적 관점에서 5.16을 중남미 국가에서 흔히 있었던 쿠테타와 같이 보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였는데 마치 5.16 자체를 '미화'한 것처럼 되었다" 등으로 '군사혁명'발언의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군사정변'을 '군사혁명'으로 잘못 발언했다는 이 위원의 발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 위원이 매우 위험한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다는 건 이 위원 스스로가 남긴 블로그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이 위원의 역사인식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압축적 산업화 등의 업적이 있기 때문에 5.16군사 정변을 쿠데타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정도가 될 것이다.

이게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와 법치주의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 법학자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지 모르겠다. 쿠데타가 쿠데타지 그후에 압축적 산업화를 했으면 쿠데타가 아닌 것이 되나? 산업화로 쿠데타라는 헌정파괴행위, 불법행위가 치유되나? 그 알량한 산업화도 더러운 그리고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무수히 많은 불행을 잉태한 산업화에 불과했음을 역사와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 이상돈 정치발전위원ⓒ뉴시스
이상돈 위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일제의 조선 병탄과 식민 지배에 대해서도 비판하기 어렵게 된다. 경제발전 등의 성과를 고려할 때 총체적 관점에서 5.16을 군사쿠데타로 규정짓는게 망설여진다면 근대화 등의 성과를 고려할 때 일제의 조선 강점과 가혹하기 그지 없었던 식민지배도 함부로 비판하는데 주저되기 때문이다. 일본과 대한민국 내에 완강히 버티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 위원은 그나마 진보 진영과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 보수로 알려져 있다. 그런 분의 역사인식이 이 지경이니 박근혜새누리당이 집권하면 역사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퇴행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상돈 위원이 무엇이라고 말하건 5.16은 군사반란이고 군사쿠데타일 뿐이다. 5.16 군사반란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가능했다는 판단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너무나 업신여기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