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7일 화요일

KBS ‘다큐 극장’에 등장한 ‘박정희의 눈물’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06일자 기사 'KBS ‘다큐 극장’에 등장한 ‘박정희의 눈물’'을 퍼왔습니다.
[리뷰] 파독 근로자들의 산업 역군 역할 강조… 다양한 관점 실리지 않아
지난달 27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다큐 극장)은 KBS의 봄 개편 과정서 가장 ‘말이 많았던’ 프로그램이다. KBS는 (다큐 극장)을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현대사를 되돌아보며 세대 간의 화합과 공감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다큐 극장)은 방영 전부터 △기획 및 편성 비밀리 진행 △제작 실무진 의견 반영 부족 △정규 현대사 프로그램의 외주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개편에서 신설 △현대사에서 비중이 높은 ‘박정희 정권’ 미화 우려 등으로 언론노조 KBS본부, KBS PD협회 등 내부구성원뿐 아니라 언론시민사회의 ‘프로그램 삭제 요구’가 거셌다.

▲ 5월 4일 방영된 KBS '다큐 극장'의 글뤽아우프! 독일로 간 경제 역군들 편


개편 단행 이후, 지금까지 드러난 방영 예정 아이템 11개 가운데 6개가 박정희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어 (다큐 극장)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한 상황이다. (다큐 극장) 지난달 27일 ‘88 서울올림픽’을 주제로 첫 방송을 내보낸 데 이어, 4일에는 ‘글뤽아우프! 독일로 간 경제 역군들’ 편을 방송했다. (다큐 극장)에서 ‘박정희 정권’ 아이템을 처음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았다.

‘산업 역군’들의 땀과 눈물로 얽힌 희생 부각

대내외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의식한 것일까. (다큐 극장)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산업 역군’으로서의 역할을 집중 조명했다. 광부들의 하나부터 열까지 생소하고 지옥 같았던 막장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살아서 돌아오라는 ‘글뤽아우프’라는 말을 습관처럼 할 만큼 아찔했던 근로 환경, 독일인의 체구에 맞춰 만들어진 기계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던 경험들이 이어졌다. 파독 간호사들 역시 긴급 상황의 환자를 돌볼 때 언어의 장벽으로 우왕좌왕했던 경험, 최저 생활비만 빼고 가족들에게 임금을 송금했다는 그 시절 이야기들을 고백했다.
(다큐 극장)은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자진해서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이유가 바로 ‘가난’이었음을 수차례 강조한다. 아나운서는 “대체 그때 우린 얼마나 가난했던 걸까요”라고 운을 떼자,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성장한 대한민국. 그러나 50년전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다.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필리핀 인도네시아보다 낮은 최빈국,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린아이들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내레이션이 뒤따랐다.

▲ KBS '다큐 극장'은 1960년대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를 여러 차례 반복해 언급하며, 당시 파독 근로자들 모두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다큐 극장' 캡처)


아나운서는 이어, 한국인들의 파독이 처음 진행됐던 1963년 한 일간지의 칼럼 일부를 읽으며 1960년대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또 독일로 떠난 근로자들이 고국으로 보내온 돈이 얼마나 귀중했는지를 일러주었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보내 온 돈은 1인당 한 달 평균 100달러. 고국의 가족들은 당장의 생계 걱정을 덜었고, 국내 경제에는 큰 활력소가 됐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처럼 고맙고 유용한 돈이었다. (중략) 이들이 보내온 돈은 연간 총수출액에 2%에 달할 만큼 대단한 액수였다. 단 1달러도 소중했던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을 비추어 보면 파독 근로자들은 나라 경제에 크게 기여했던 수출 역군이었다”
(다큐 극장)은 파독 근로자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받으려 했다는 ‘임금 담보설’도 짤막하게 다루었다. △차관 의정서 체결이 근로자 파견보다 더 먼저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황상 맞지 않고(61년 체결, 63년 파독) △그때 차관은 별도의 보증이 필요하지 않았다며 임금 담보설이 ‘근거 없다’고 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그러나 왜 오랜 시간동안 ‘임금 담보설’이 정설처럼 자리잡았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은 없었다.

울음 섞인 연설로 등장한 박정희

58분 10초에 달하는 분량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이 언급되거나 영상에 비친 것은 3분가량이었다. 하지만  ‘눈물’로 등장한 그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내레이션은 “파독 광부 간호사들과 대통령과의 만남은 1964년의 일이다. 독일의 탄광촌에서 벌어졌던 그때의 일은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다”며 ‘그 날의 만남’을 소개했다.
“고국의 대통령을 만나던 날, 낯선 이국땅에서 함께 부른 애국가는 그립고 그리운 고향이었고 가족이었다. 대통령은 가난 극복을 위해 더 열심히 달려보자며 그들의 수고와 눈물을 위로했다. 광부들이 처음부터 나라 경제를 걱정하며 독일에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나라 살림에 큰 보탬이 됐다는 사실은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은 “대통령 오신다고 차렷하고 옷도 단장해서 있는데 단상에 대통령이 올라가자 애국가가 나와요. 애국가가 나오는데 따라하지 못하고 전부 다 울어버렸어요. 막 통곡을 했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파독 근로자들과의 만남에서 눈물을 보였던 일을 ‘박정희의 눈물’이라며 상세히 언급하기도 했다.

▲ '다큐 극장'에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은 1964년 파독 근로자들과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을 상세히 소개한다. ('다큐 극장' 캡처)


백영훈 원장은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가서, 가지고 간 연설문 읽으려고 몇 번 읽다가 놓고 울어버려요. 박정희의 눈물 아닙니까”라는 설명을 한 후, “여러분, 이게 무슨 꼴이에요. 여러분, 새까만 얼굴을 보니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나와요. 여러분, 나는 어떻게 하라고요. 우리 합시다”라고 말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다큐 극장)은 파독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해 나라 경제에 보탬을 준 데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 시행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고생하는 근로자들을 보며 탄복한 박정희의 ‘눈물’을 보여주었다. 애국가도 부르지 못할 정도로 울음바다가 됐던 당시의 극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긴 시간 동안 노골적으로 찬양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다양한 관점 반영도, 심층성 강화도 ‘부족’

(다큐 극장)은 산업화라는 큰 물결 속에 잊힌 개인들의 역사를 조명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독일 현지 촬영을 통해 많은 파독 근로자들을 만나 그들의 애환을 담았으나, 대부분 ‘헌신적’이고 ‘근면한’ 이미지만을 부각시켰다.
2004년 6월 방영됐던 MBC 스페셜 3부작 (독일로 간 파독 광부·간호사)는 파독 근로자들의 고생만 부각된 (다큐 극장)과 달리, 보다 다양한 지점을 살폈다. 높은 임금이 보장돼 인생 역전을 기대했던 이들의 설렘, 젊은 날의 꿈을 실현시킨 파독 근로자들의 성공담, 여자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았던 한국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나온 간호사의 경험담 등이 고루 녹아 있었다. (독일로 간 파독 광부·간호사)는 방송위원회가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과연 우리가 정말 파독 근로자들을 모른 체하고 살아온 것인지도 의문이다. (다큐 극장)에서는 파독 근로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론조사나 통계 자료조차 제시되지 않았다. 그들의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파독 근로자들의 역할이 축소돼 평가되는 데에는, 박정희 대통령만을 ‘산업화를 이끈 유능한 지도자’로 치켜세우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었어야 했다고 본다.
또한 (다큐 극장)은 당시 국가가 파독 근로자들에게 이렇다 할 지원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두어 차례 반복하면서도 ‘왜 그랬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개인들의 노력과 희생이 컸던 데 반해 국가의 도움이 적었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다만, 과거 기사들과 당시의 정황을 언급하며 나라가 그만큼 가난했다는 점만을 알렸을 뿐이다. 파독 근로자 가운데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자들도 다수 포함돼, ‘두뇌 유출’ 측면이 있었다는 사실도 정승일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연구위원의 한 마디 언급으로 처리되고 만다.

▲ '다큐 극장'은 파독 근로자에 대한 양지와 음지를 고르게 다루지 않았다. '두뇌 유출설'은 한 마디 언급으로 처리됐고, 국가의 지원이 빈약했다는 사실은 몇 차례 언급되면서도 그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다. ('다큐 극장' 캡처)


파독 광부, 간호사에 대한 심층 분석에서도 부족한 면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광부, 간호사 등 근로자 파독 50주년을 맞아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신년 기획물을 연재한 바 있다. 이때 (조선일보)는 파독 근로자들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파독 경험에 대해 자녀들과 교감하는 사례,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파독 광부·간호사 전시관을 찾은 어린 방문객들의 반응, 파독 근로자들이 송금해 온 임금 덕에 1960년대의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며 구체적인 분석 등을 실었다.
“힘들고 가난했던 우리 역사 속엔 독일로 떠났던 2만 여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국가는 그들을 위해 그 어떤 지원도 해주지 못한 채 그들을 해외로 내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웃으며 떠났고, 태극기를 흔들며 한복을 입고 한국임인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름도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달려준 사람들, 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꿈을 키워왔던 그들. 그들이 있었기에 그들처럼 달려온 우리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오늘날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글뤽아우프. 살아서 돌아오라. 우린 그들의 눈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 (다큐 극장) 마지막 멘트
(다큐 극장)은 ‘파독 근로자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이만큼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는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끝맺었다.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상반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현대사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면을 고르게 조명하지 않고, 뚜렷한 기획 의도만을 밀고 나간다면 어떨까. 공정성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1회 ‘88 올림픽’ 편에서부터 노출된 (다큐 극장)의 뚝심은 앞으로도 프로그램의 주요 ‘위험 요소’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수정 기자  |  girlspeace@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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