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디어스 2013-04-12일자 기사 ''전쟁'이라고 쓰고 '테러'라고 읽는 시대의 대북정책은'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안', 평화의 '인화점'을 만들어야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안', 평화의 '인화점'을 만들어야
솔직히, 말해보자. 지금 북한이 두려운 것은 그들이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것 때문인가? 아닌 것 같다. 지금 북한에 대해 갖는 공포는 그들이 일종의 ‘테러’를 가할 수도 있음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전쟁이라고 쓰고 있지만 실은 테러가 두려운 것이다.
테러는 일방적인 것이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면서 동시에 그 피해는 불특정 다수가 입게 되는 것이다. 9.11 사태가 그랬고, 연평도 포격도 그러했다. 언젠가부터 북한은 국제사회의 룰에 입각한 외교행위를 한다기보다는 점점 ‘근본주의’에 가까운 체제 원리주의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성군체제’라는 요한계시록에 따라 자신들이 심판당하면 최후의 날을 맞게 될 것이라며 전 세계를 ‘협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문제는 이제 외교적 합리성에 근거한 주고받기보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끊임없이 미국을 향해 ‘테러’를 가하고 국제사회가 항구적으로 중동 평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흡사한 양상으로 전개될 공산이 높다. 다만, 신념의 근본주의가 아닌 체제의 근본주의라는 것만 다를 뿐이다. 김정은 체제 북한의 타깃은 그래서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국이 아니라 자신들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대상으로 상정된 미국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보다 미국에 대한 테러를 더 숭고한 것으로 보는 것과 같다. 북한 입장에서 한국은 비난과 교란의 대상일 뿐, 체제 근본주의를 해결해줄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제안을 비판하는 12일자 조선일보 4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대화를 '얕잡아 보일 수 있다'고 말하는 조선의 의도는 무엇일까? 정녕, 하고 싶은 말은 대화제의하는 박근혜도 종북주의자일까.
남북관계의 매뉴얼은 어쩜 여기서 다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은 ‘북의 선 변화 vs 남의 태도 전환’이 마주보고 폭주하는 국면이 아니다. 남과 북이 돌이킬 수 없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국면도 아니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는 북한을 고조할 만한 어떤 잘못을 한 바가 없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 다만,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고 있는 중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말하며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천명했지만, 그 진실성을 알 수 없어 신뢰의 ‘간’을 보고 있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중동의 평화는 아시다시피 전 지구적인 문제다. 중동 평화를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미국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 있으며 동시에 언제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입장이 있다. 한반도 관계 역시 마찬가지 양상이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주변 국가들은 모두 동시에 조금씩 다른 ‘미션’을 부여받고 있다. 각자의 역할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적당한 역할을 함으로써, 이를 수행해가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으로 현재 상황을 공동 관리해나가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앉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하지만 전제는 있다. 중동 평화의 전제가 이스라엘이 테러집단에 맞대응을 자제하고 상황을 이성과 대화로 풀어간단 전제 속에서 유지될 수 있듯,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라고 할 한국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안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적절한 제스처로 보인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강 대 강의 ‘원리주의’로 맞설 경우 일차적으로는 미국이 그리고 순차적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국제 사회 전부가 그 틀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은 북미대화의 ‘발화점’을 만들 정도의 외교적 능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어떤 ‘인화점’으로는 충분히 작동할 수 있는 자격과 권한을 갖고 있는 당사자이다.
다수의 대북 전문가들은 오바마 정부 1기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까닭을 이명박 정부의 경직성에서 찾는다. 일정한 수준의 체제 보장을 약속하고, 비핵화의 단계를 밟아가려했던 오바마의 플랜이 작동하지 않은 것은, 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이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같은 이는 노골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의 플랜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체됐다고 분석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가 대화로 모드를 전환한 것은 한반도 위기 국면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밑의 ‘밀월 관계’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북미관계의 이중성을 감안할 때, 한국 정부의 스탠스는 향후 전혀 예상치 못할 정도의 진전까지 상황을 끌고 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 등이 ‘우리 정부만 얕잡아 보일 수도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그래서 적절치 않은 그리고 정세를 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내용 분석일 뿐이다. 테러는 상대를 얕잡아 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속성을 갖는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사실상 ‘테러집단’이라고 비난해온 조선일보가 정작 그에 걸맞은 대응책이 나왔을 때는 북한을 정상적 외교를 하는 국가처럼 치부하며 외교적 해결책을 비웃는 것은 형용모순이며, 그 자체로 무지한 것이거나 무모한 것이다.
근본주의적 입장은 보통 ‘고독한 군중’의 심리를 지니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체성을 유난히 강조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를 굉장히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기 마련이다. 북한이 최근의 위기 상황을 설명하며 ‘존엄을 짓밟고 있다’거나 한국 내 특정 언론의 논조를 문제 삼는 것은 이런 심리의 반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극단적 폐쇄성을 지닌 북한 체제의 특성에서 이런 심리는 도발을 통해 관심을 유도해 존재를 입증 받는 일종의 모순적 자기인정을 향할 수밖에 없는 회로이다. 중요한 것은 이 회로를 차단하는 것이지, 이 회로를 자극해 북한의 도발을 촉진하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당면한 한반도 위기는 진보, 보수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북한이라고 하는 체제를 새롭게 이해하는 인식의 전환 속에서 판단되어야 할 문제다. 민주정부 10년, ‘햇볕 정책’을 통한 북한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롤러코스터에 북한은 얹었다. 이 과정의 실패를 교훈삼아 추동해야 할 정책적 변화는 그 극단의 강경책이 아닌 북한이라고 하는 체제의 속성에 기반 한 맞춤형 대응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관리’이고 적절한 수준의 ‘존재 인정’이다. 지금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전면적 ‘전쟁’이 아닌 돌발적 ‘테러’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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